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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혜는 사흘 만에 준비를 마치고 연락을 해왔다.
그녀가 차로 데리러 와준 덕분에 이번에도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가는 길에 김은혜가 물었다.
“그제랑 어제 유진병원의 마력 시술소를 이용했더군요?”
“그랬지. 거긴 이용했다는 사실이 정부에 기록으로 남는다더니만 헌터관리부에서 열람할 권한도 있나 보군?”
“맞아요. 그런데 당신 같은 사람한테도 마력 시술이 필요한가요?”
마력 시술이란 오로지 각성자를 위한 서비스다.
각성자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가, 그 잠재력은 거의 각성자 튜토리얼 통과 성적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귀환 후에도 각성자는 성장할 수 있다. 마력기관을 단련하고, 거기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함으로써.
초창기 각성자들은 마력석을 직접 흡수했다.
하지만 이것은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는 데다가 육체에 부담을 주는 위험성도 있었다.
각성자에 대한 연구가 치열하게 진행된 지금, 각성자들은 마력 시술소에 배치된 첨단 기기를 통해서 마력기관에 필요한 영양분을 보충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마력석을 직접 흡수하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이며, 평균적으로 마력석을 직접 흡수할 때의 5배 효율이 나온다고 한다.
“그 정보는 유료입니다, 고객님.”
“제가 당신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알아요?”
“흠, 좋아. 어비스에 대한 정보도 아니니 그 정도는 서비스해 주지. 마력 시술소는 당연히 나한테도 효과가 있어. 당신들이 0세대 각성자라는 존재에게 어떤 환상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보기에 각성자로서의 기본적인 부분은 나나 다른 각성자나 별 차이가 없어. 디테일이 다를 뿐이지.”
“그렇군요.”
마력석을 개인이 사들이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용우는 우희에게 부탁해서 그녀가 근무하는 유진병원의 마력 시술소를 이용해 보았다.
‘여동생의 신용카드로 3천만 원을 결제하는 죄악감의 맛이란……. 인간쓰레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용우는 마력 시술소의 효과에 놀라면서도 입맛이 썼다.
그래서 그는 이것이 투자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헌터가 되고 나면 여동생에게 백배 천배로 갚아줄 것이다.
‘덕분에 마력기관 상태는 확실히 좋아졌고.’
문명의 힘이란 대단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의 마력기관은 한 달 동안 굶고 나서 막 물과 수프를 마셔가면서 회복하기 시작한 사람의 근육 같았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걷는 정도의 운신이 가능한 수준까지 회복되었다.
‘권장되는 기간을 지켜가면서 꾸준히 투입하면… 빠르게 회복할 수 있겠어.’
마력 시술은 사람마다 1회에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치가 달랐다.
그 한계치만큼 시술할 경우 다음 시술까지는 최소한 10일은 쉬었다 할 것을 권장한다. 시술로 투입된 마력을 마력기관이 완전히 흡수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뭐 일단 시공의 보물고를 열 수 있게 되었으니 문제가 반은 해결된 셈이지.’
대량의 마력석과 스펠 스톤을 언제든지 꺼내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어떻게 고생하고 있는데? 시말서 쓰는 거 말고?”
“상부에서는 당장 당신을 출두시켜서 연구 협력을 강요하고 싶어 해요. 왜 놔줬냐, 어떻게든 붙잡아뒀어야 할 게 아니냐고 저를 들들 볶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누명을 씌워서 다시 붙잡아 들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는데… 아, 무서운 표정 짓지 말아요. 상부에서도 의견이 갈려서 기각되었으니까.”
“그런 소리를 한 놈이 누군지 이름이나 말해줄래?”
“어쩌려고요?”
“나중에 기회 봐서 모가지를 꺾어버리게.”
“…….”
“농담이야.”
전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살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당신에 대한 정보는 기밀로 인가되었는데, 이미 대기업 수뇌부에는 정보가 흘러들어 갔더군요. 아마 조만간 연락이 올 거예요.”
“대한민국의 정경유착(政經癒着)은 15년이 지났어도 안 변했나 보군. 그 문제는 당신에게 일임하지. 어쨌거나 지금까지는 일 처리가 믿음직해.”
“그거 참 고맙군요.”
그녀는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 * *
용우의 시험은 헌터관리부의 트레이닝 센터에서 이루어졌다.
“왜 트레이닝 센터지?”
“단순한 힐러가 아니라 배틀 힐러의 자질을 확인하는 시험이니까요. 힐러용 시험 자재까지 이송해 뒀어요. 그리고 오늘 시험관으로 참가하는 인원 중에 거물이 있는데…….”
“제 소개는 제가 해도 될까요, 김은혜 팀장님?”
복도 모퉁이를 돌아 나오며 끼어든 것은 동안의 남자였다.
언뜻 보면 10대 소년으로도 보일 정도였는데 그것은 체구가 작아서이기도 했다. 키가 178센티미터인 용우와 비교해 볼 때 160센티미터를 겨우 넘는 정도인 것 같았다.
빙긋 웃고 있는 얼굴은 온후하고 친근감을 주는 미형이었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스스로를 소개하며 악수를 청했다.
“팀 크로노스의 지윤호예요.”
“서용우입니다. 명성은 들었습니다.”
용우는 그의 악수에 응하며 말했다.
지윤호.
4세대 각성자이며, 국내 헌터 업계 1, 2위를 다투는 톱클래스의 팀 크로노스에 소속된 헌터.
지구로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도 않은 용우가 그의 이름을 아는 것은 그가 국내 유일의 배틀 힐러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 제2의 배틀 힐러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에 흥분되어서요. 다른 일정을 다 취소하고 찾아왔습니다.”
4세대 각성자인 그는 이미 6년째 헌터로 활동하면서 명성을 쌓아왔으며, 그 명성은 국내에 그치지 않는다. UN의 요청을 받아서 몇 번의 해외 파견을 나가서 최고의 헌터들과 함께 재앙을 수습했기 때문이다.
“김은혜 팀장님, 시험 치르는데 왜 이렇게 대단하신 분이 게스트로 와 있는 건가요? 혹시 다른 게스트도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앞에 있었기에 용우는 김은혜에게 존대를 해주었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용우의 눈빛에는 가시가 돋쳐 있어서 김은혜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 글쎄요. 지윤호 씨에 대해서는 막 설명드리려던 참이었는데…….”
지윤호가 말했다.
“사전에 이야기를 듣지 못하셨나 보군요. 저 말고도 몇몇 팀에서 와 있어요. 다들 시험에 협력해 준다는 조건으로…….”
“…….”
용우가 김은혜를 째려보자 그녀가 딴청을 피웠다.
지윤호가 재미있다는 듯 쿡쿡 웃더니 말했다.
“사실 게스트들은 전원이 정보가 빠르신 분들이랍니다. 물론 제2의 배틀 힐러라는 사실만으로도 바쁜 일정 쪼개서 오기에 충분한 이유였겠지만, 그것만은 아니죠.”
“무슨 뜻입니까?”
“7세대 각성자들은 아직 귀환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6세대까지의 각성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이 배틀 힐러의 자격을 시험받는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 아닌가요?”
지윤호의 말에 용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더니 가식을 벗어던진 태도로 말했다.
“난 뻔한 사실을 그런 식으로 돌려 말하는 화법,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런가요? 사과드리지요, 0세대 각성자 선배님.”
“팀장.”
용우는 지윤호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김은혜를 보며 물었다.
“나에 대한 정보는 은폐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처리했죠.”
“그런데?”
“당신이 그런 말을 했었잖아요? 정.경.유.착.”
“…….”
“헌터관리부의 상층부는 거의 헌터 출신이고, 이름난 헌터 팀들은 전부 대기업의 자회사이거나 대기업이 지분을 가진 회사예요. 이해하기 쉽죠?”
“그렇군. 알겠다. 일개 팀장인 당신을 타박할 일은 아니로군.”
실소한 용우가 말했다.
“뭐, 좋아. 어차피 헌터로 일할 거였고, 언젠가는 알려질 일이었을 테니.”
“쿨하시네요.”
“그럼 잘 부탁하지, 젊고 팔팔한 4세대 후배님.”
용우의 말에 지윤호가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미소를 지으며 용우와 함께 시험장을 향해 걸었다.
“오늘 시험, 좀 빡빡할지도 몰라요. 다들 흥미가 넘치거든요.”
“나한테만 특별히 불공정한 시험이 될 거라는 소리인가?”
“채점 기준은 그렇지 않을 텐데, 시험 내용은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소리죠.”
“어떻게 돌아가는 이야기인지 대충 알겠네. 헌터관리부하고 작당을 했군?”
용우가 코웃음을 치자 지윤호가 눈을 크게 떴다.
“눈치가 빠르시네요?”
“나를 가둬놓고 모르모트로 삼겠다는 발상을 한 놈들이니까. 그런데 내가 연구 협력도 거부했으니 앙심을 품었겠지.”
물론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경위야 어찌 되었든 용우가 헌터관리부에서 난동을 부린 것은 그들의 권위를 상처 입힌 짓이고, 권력자들은 권위에 목을 매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0세대 각성자의 떡밥을 이용해서 업계의 거물들을 모아놓고 내 버르장머리를 고쳐줄 겸 연구 협력이나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게 만들겠다, 뭐 그런 거 아닌가?”
그렇게 말하면서 김은혜를 한번 노려보자, 그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잠깐 둘이서 이야기 좀 해요.”
“그러지.”
용우는 지용우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김은혜와 자리를 피했다.
“오해하지 말아요. 전 시험장 들어가기 전에 설명하려고 했어요.”
“…….”
“진짜라니까요. 상부에서 발설하지 말라는 지시를 듣긴 했어요. 하지만 다 설명하려고 했다고요.”
“좋아. 믿지.”
“지윤호 씨 말고도 시험장에는 헌터 업계의 거물들이 참관인으로 와 있어요. 아마 당신 신경을 건드릴지도 모르는데… 웬만하면 참아요. 일단 라이센스는 따야죠.”
“노력해보지.”
“근데 참… 눈치가 빠르시네요. 아주 정확히 짚었어요.”
“악의라는 건 대부분 뻔한 거거든.”
인간이 인간에게 품는 악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디에서나 비슷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용우에게는 자신을 향한 악의를 알아차리고 통찰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스펠화하지 않았을 뿐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 능력이 없었다면 용우는 어비스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그럼 가지.”
용우는 김은혜와 함께 시험장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