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9화 (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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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 등록증 발급 과정은 빠르게 끝났다.

별 감흥 없이 등록증을 받은 용우가 김은혜에게 물었다.

“헌터 라이센스를 발급해 줄 수 있나?”

각성자 등록은 각성자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헌터 라이센스는 이야기가 다르다.

개인에게 국가 영토에서의 전투 활동을 허락해 주는 자격증이기에 발급 조건이 까다로웠다.

초창기에는 헌터가 되고자 하는 각성자라면 누구나 쉽게 라이센스를 딸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체계가 잡혀서 이제는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이번 분기 시험은 끝났고, 다음 분기 시험은 2개월 후로 앞당겨서 실시될 예정이에요.”

지금은 7세대 각성자 후보들이 각성자 튜토리얼로 소환된 지 2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대략 2주 후면 살아남은 자들이 각성자가 되어서 귀환할 터.

그들이 돌아와서 적응을 마칠 때쯤 바로 헌터 라이센스 시험에 도전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는 건 알아들었을 텐데?”

“알아듣긴 했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라서요. 초창기라면 모를까 지금은 법적인 문제가 빡빡해요.”

“편법적으로 발행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죠.”

“알았어. 그럼 그때까지 놀고먹기는 싫으니 힐러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어디 병원에 취직이라도 해야겠군.”

“네?”

김은혜가 깜짝 놀랐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왜?”

“힐러셨어요?”

“힐러로 불릴 만한 스펠을 가졌냐는 의미냐면, 맞아. 동생이 그러는데 힐러는 헌터와 달리 라이센스 발급이 간편하다더군. 부탁해도 되겠나? 취직처야 내가 돌아다니면서 알아보면 되고…….”

“아니, 아니, 잠깐만요.”

김은혜가 당황해서 그를 제지했다.

“우리가 CCTV로 확인한 바로는 당신의 보유 스펠이 최소 10개 이상이고 그중에서 3개는 미확인 스펠로 추정되는데…….”

“나를 스토킹해서 분석했다는 소리를 아주 당당하게 하시는군?”

“당신이 불법 전투 했을 때랑 헌터관리부에서 난동 피웠을 때 자료만 갖고 분석한 결과거든요?”

“아, 배틀 필드. 거기에 CCTV가 있었나? 그래서 내가 몬스터를 해치우는 장면이 포착된 거고?”

용우는 그제야 왜 자신의 은신이 간파당했는지 알고 실소했다.

그의 모습은 안 보인다 해도 몬스터가 죽어나가는 모습이 CCTV에 기록되었으니 들킬 수밖에.

“그래서?”

“하여튼 은신에, 신체 능력 강화 말고도 근접 전투 스펠을 잔뜩 보여주고서는… 힐러라고요?”

“치료 스펠도 가졌다고 했을 뿐인데.”

“그러니까 그게 말이 안 되는 부분이라고요! 스펠 트리는 어디다 갖다버리고 스펠을 그렇게 얻은 거예요?”

그 말에 용우가 눈을 껌뻑거리더니 물었다.

“스펠 트리가 뭔데? 게임 스킬 트리랑 비슷한 뜻이라는 건 짐작이 가는데…….”

“…….”

“난 그 각성자 튜토리얼이라는 게 뭐 하는 건지도 아직 잘 몰라. 알아야 할 게 워낙 많아서 그건 아직 조사 못 해봤어.”

그 말에 김은혜가 이마를 감싸 쥐었다.

“아, 진짜 말도 안 돼. 0세대 각성자는 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그래서 스펠 트리라는 게 뭔데?”

“저 생각 좀 하게 놔두고 그냥 폰으로 검색해 봐요. 인터넷에 널려 있는 정보라고요.”

김은혜가 눈을 부라리자 용우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폰을 들어서 검색을 해보았다.

‘이거 아주 웃기네. 각성자 튜토리얼이라더니… 정말 게임 튜토리얼처럼 친절하게 각성자를 만드는 구조인 건가?’

물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니 ‘친절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긴 하지만.

스펠 트리라는 것은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추천하는 스펠 획득 순서였다.

맨 처음 소환되자마자 각자의 적성에 따라서 기본 스펠 하나를 부여받게 되고, 그 후로는 매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얻는 포인트를 투자해서 새로운 스펠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이미 가진 스펠과 같은 계통으로 분류된 스펠은 더 적은 포인트로 획득할 수 있기에, 각성자 튜토리얼을 마치고 돌아온 각성자들은 개인별로 익힌 스펠들의 성향이 특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비스에는 스펠 트리 따위는 없었어. 스펠도 이런 식으로 얻지 않았고.”

“그럼 어떻게 얻었는데요?”

“그 정보는 유료입니다, 고객님.”

“…….”

“진심이다. 시간당 2억 원이라고 했잖아? 알고 싶으면 과금하시던가.”

코웃음을 친 용우가 말했다.

“뭐, 하여간 힐러 라이센스 따고 싶은데 내일까지 준비해 줄 수 있나?”

“아니, 잠깐만요. 서용우 씨, 당신 혹시… 그 힐러 스펠이 배틀 힐러 수준이에요?”

“배틀 힐러 조건이 원거리에서 대상에게 적용 가능하냐 하면 가능하고, 한창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대상도 치료할 수 있고, 그리고 나 자신이 전투 수행이 가능하냐였나? 또 있나?”

“그 3가지만 충족시키면 돼요.”

“그럼 배틀 힐러 맞아.”

“…….”

김은혜가 입을 쩌억 벌렸다.

배틀 힐러라니!

6세대 각성자들이 활약 중인 현재, 현역으로 활동 중인 배틀 힐러는 전 세계를 통틀어 12명뿐이었고 한국에는 1명밖에 없었다.

“맙소사. 헌터 라이센스 따세요. 내일까지… 는 안 되겠고, 3일 내로 준비하고 연락할게요.”

“시험은 2개월 후라더니?”

“편법이 없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 편법 중에 제일 쉬운 길이 배틀 힐러예요. 정보가 공개되면 대기업들이 앞다퉈서 당신을 데려가려고 할걸요. 연봉을 아무리 적게 잡아도 40억은 넘을 거고요.”

“40억이라…….”

용우가 눈을 크게 떴다.

그의 금전 감각은 2012년 당시에 머물러 있었다. 어비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시간당 2억을 받겠다는 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그건 그 금액이 갖는 진짜 의미를 실감하고 한 소리는 아니다.

“어쨌든 편법이 존재했다니 잘됐군. 일단 집으로 가자고.”

“타세요.”

김은혜는 용우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다시 헌터관리부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녀의 보고를 받은 헌터관리부 상층부에서 한차례 소란이 일었지만, 용우는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 * *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우희는 용우의 이야기를 듣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오빠가 배틀 힐러? 정말?”

“그게 헌터가 되기 쉽다고 하니 그걸로 가야지.”

아무래도 치료와 서포트는 용우의 진짜 특기 분야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입수한 정보들로 미루어 보건대 그 정도만으로도 명성을 떨치기에는 충분할 듯했다.

“세상에. 배틀 힐러라니…….”

“별 거 아냐.”

용우는 무덤덤했다.

배틀 힐러의 기준을 생각하면, 용우가 경험한 어비스 후반기에는 전투에 참가하는 거의 모든 인원들이 배틀 힐러였다고 할 수 있다. 각자 특기분야가 있기는 했지만 보유한 스펠로만 보면 올라운더가 아닌 이가 없었던 것이다.

“아, 우희 너도 배틀 힐러로 만들어줄까? 딱히 헌터가 되진 않더라도 배틀 힐러로 인정받을 수 있는 능력이면 병원에서도 훨씬 대우가 좋아질 거 아냐?”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용우가 황당한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던 우희는, 곧 용우의 표정을 보고는 경악했다.

“…오빠, 설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당연히 진심이지.”

용우는 우희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아해했다.

그 표정을 본 우희는 용우가 자기가 얼마나 엄청난 폭탄발언을 한 것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오빠가 몰라서 그러는데… 지금 오빠가 말한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지금 오빠는 각성자 튜토리얼을 끝내고 돌아온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추가적으로 스펠을 익힐 수 있다고 말한 거잖아?”

“음? 그게 안 돼?”

“오빠, 인터넷 검색해보지 않았어?”

“스펠 트리라는 게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아직 다 알아본 건 아니야. 알아볼 게 너무 많아서…….”

“어디 가서 그런 거 할 수 있다고 말하지 마. 무슨 반응이 나올지 무서우니까.”

우희가 설명해주었다.

각성자의 잠재력은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나오는 순간 결정된다.

마력이 얼마나 크게 성장할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지만 어떤 스펠들을 보유하는지에 대해서는 변동이 없다. 각성자들이 스펠을 터득하는 것은 오직 각성자 튜토리얼에서만 가능한 일이니까.

“그래서 각성자들이 갈수록 강해지는 거야. 각성자 튜토리얼에 대한 정보가 쌓이고, 공략법이 발전하니까 다음 세대로 갈수록 평균 성적이 올라가거든.”

“이상하군…….”

용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우희에게 물었다.

“그럼 지구에는 스펠 스톤이 없다는 거지?”

“스펠 스톤이 뭔데?”

“스펠이 각인된 돌 같은 거야. 그걸 통해서 자기한테 없는 스펠을 익힐 수 있지.”

어비스에서는 화폐 대신 쓰였던 물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헌터들이 몬스터를 처치했을 때, 위장 같은 곳에서 스펠 스톤이 발견되는 일도 없었다는 거지?”

“내가 알기로는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어.”

“그럼 네 말대로 스펠 스톤에 대한 건 비밀로 하는 게 좋겠군.”

용우는 스펠 스톤의 존재가 헌터 업계를 뒤집어놓을 수 있는 폭탄임을 알아차렸다.

지구의 각성자들이 안고 있는 한계를 생각하면, 스펠 스톤의 존재가 알려질 경우 국가 차원에서 용우를 노릴지도 모른다.

‘마력기관이 회복될 때까지는 몸을 사려야겠어. 나중에는 비싸게 팔 방법을 찾아봐도 괜찮겠군.’

문득 우희가 이상함을 느끼며 물었다.

“그런데 오빠. 오빠는 집에 왔을 때 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잖아. 혹시 어디 숨겨놓은 거야?”

“아, 그건 아공간에 있어. 지금은 내 상태가 안 좋아서 아공간을 못 여는데, 그 안에 처박아둔 스펠 스톤이 상당히 많거든.”

“아공간은 또 뭐야?”

“시공의 보물고라는 스펠이 있는데…….”

용우가 아공간에 대해서 설명하자 우희는 어이가 없었다.

시간의 흐름에서 격리된, 언제든지 여닫을 수 있는 창고처럼 사용되는 별개의 공간이라니?

그런 스펠이 존재한다고는 상상도 못해봤다.

우희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빠,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을 겪은 거야?”

우희는 용우가 각성자 튜토리얼 비슷한 것에 끌려갔다가 돌아왔다고만 들었을 뿐이다.

당장 캐묻기에는 아직 용우가 오빠라는 실감도 나지 않았고, 대하기도 어색해서 그냥 넘어갔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각성자 튜토리얼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봤다.”

용우가 동문서답을 하자 우희는 어리둥절해했다.

하지만 용우는 그런 기색을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기본적으로 참가자가 직접 몸으로 뛰어서 해결해야 하는 게임 같은 형식이더군. 하지만 그 와중에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고.”

“응……. 맞아.”

“내가 다녀온 곳은 그런 곳이 아니라 어비스라는 곳이야. 낮과 밤의 구분이 없고 그저 언제나 붉은 하늘이 지배하는 곳이었지.”

용우는 지구로 돌아온 후 처음으로 어비스에서 겪은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비스는 각성자 튜토리얼처럼 친절한 세계가 아니었다.

각성자들에게 지침을 내려주는 것은 마치 인공지능처럼 역할을 다할 뿐,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건 저주 때문에 어비스의 각성자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이 지정하는 전장으로 나아가서 전투를 치러야만 했다.

“그런 존재들이 있었으니 가이드라인이 없지는 않았지. 하지만 그들이 알려주는 정보는 대단히 제한적이었어. 우리는 그걸 단서로 삼아서 스스로 능력을 파악하고 살길을 찾아야 했고.”

초창기에 어비스의 각성자들은 빠르게 죽어나갔다.

그리고 수가 줄어드는 것만큼이나, 생존자들이 강해지는 속도도 빨랐다.

“하지만 강해지면 강해지는 대로 그만큼 위험한 전투로 몰아넣었지.”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다.

보장된 휴식 따위는 없었다. 때로는 열흘 밤낮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계속 산악을 뛰어다니며 괴물들의 맹공을 버텨내야 했다.

“어비스에는 우리 말고도 괴물들과 싸우는 존재들이 있었어. 하지만 그것들에게는 지성은 있어도 감정은 없었지.”

각성자들에게 싸움을 지시하는 자들을 포함해서, 그 세계는 마치 인공지능과 무인 병기만이 남은 세상 같았다.

다만 그런 것치고는 그 무인 병기들이 발달된 문명과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싸웠을 뿐이다.

“그곳에서 3년간을 보냈지.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계속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인간이 거대한 파괴의 힘에 폭발해 버리는 것을 보았다.

커다란 괴물에게 삼켜지는 것을 보았다.

작은 괴물의 무리에게 뜯어 먹히며 발광하는 것을 보았다…….

“막바지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나 말고도 다들 유능했어. 어떤 역할이 필요해도 해낼 수 있는 자들만이 살아남았지.”

물론 그렇게 유능해진 것은 그들이 친밀해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지만.

어비스에서의 3년, 그 후반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캄캄하고 역겨운 감정만이 가득하다.

저주와 괴물들만이 아니라 인간들끼리도 서로에게 품은 살의를 내려놓을 수 없었던 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우희야, 그런 것까지 네가 알 필요는 없다.’

우희는 용우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비록 어비스와 비교할 바는 못 된다고 하지만 그녀 역시 목숨을 걸 것을 강요당하는 경험을 하고 온 사람이다. 그 경험은 평생 떨칠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어서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용우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그가 겪은 고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오빠는… 정말…….”

우희는 목이 메어서 좀처럼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 우희를 보며 용우는 미소 지었다.

“난 괜찮다. 이렇게 살아 돌아왔잖아? 그리고 그동안 훌륭한 어른이 된 여동생도 기다리고 있었고.”

아까 전까지만 해도 용우는 우희를 대하기가 어색했다.

그녀가 자신의 혈육이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15년의 시간 동안 변해 버린 그녀의 모습이 용우에게서 가족으로서의 실감을 앗아갔다.

그녀가 여동생이라고 머리로만 생각할 뿐, 가슴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 자신을 위해 진심으로 울어주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용우는 자신이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았다고 느꼈다.

“…그러니까 울지 마라.”

그렇게 말하는 용우의 눈시울도 젖어 있었다.

15년 만에 재회한 남매는 서로를 끌어안고 조용히 눈물 흘렸다.

Chapter4 시험당하는 것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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