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7화 (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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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희는 5세대 각성자였다.

당시에는 각성자 튜토리얼로 소환된 2만 명 중에서 1만 1천여 명이 살아남았다.

이때는 이미 각성자 튜토리얼에 대해서 거의 모든 정보가 공개되었고, 이제는 그것을 더 높은 성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방법 연구도 상당한 진척을 보이던 때였다.

한국 정부는 이미 3세대 시절부터 아직 각성자 튜토리얼에 소환되지 않은 소환자 후보들을 대상으로 기초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각성자 튜토리얼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훈련까지 실시하고 있어. 지금은 더 체계적일 거야.”

이런 조치는 대단히 효율적이었다. 지금의 한국은 각성자 튜토리얼에 소환되었다가 살아서 돌아오는 이의 비율이 굉장히 높은 국가였다.

그 결과 인구 대비 각성자 수가 많고 그만큼 국토방위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졌다. 중국이 7개국으로 찢어지고, 북한이 망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크게 성장해서 국제적인 영향력이 큰 선진국이 되었다.

“그게 도움이 많이 됐지.”

각성자 튜토리얼의 소환 대상자는 거의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젊은 사람들이다.

우희도 이 기준에 포함되었기에 매년 실시되는 기초 교육을 받고, 간단한 실습 훈련까지 받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내던져졌으면…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거야, 나는.”

우희는 그때를 떠올리며 복잡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별로 많은 포인트를 따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살아 돌아와서 각성자가 되었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인생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을 좋은 추억이었다고 회상할 수는 없었다.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그녀는 언제나 죽음을 염두에 두어야 했고, 합동 미션에서 함께 힘을 합쳐서 싸우던 사람들이 끔찍한 몰골로 죽어나가는 것도 봐야만 했다.

그것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악몽으로 남아 있었다.

“각성자들은 대부분 헌터가 돼. 이상할 정도로 헌터가 되는 비율이 높아서, 각성자 튜토리얼의 소환자 선정 기준에 전투 종사자가 되기에 적합한 정신을 가졌는가가 고려되고 있다는 게 정설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헌터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난 회복계 스펠들 몇 개가 주력이었고, 전투에 적합한 스펠은 별로 없었어. 전투 수행 중에 실시간으로 팀원들을 원격 치료 하는 수준도 못 되었고.”

우희가 말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자, 즉 전장에서 다른 헌터들과 함께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배틀 힐러’는 극히 드물었다.

지금은 6세대 각성자가 나오고 7세대 각성자 후보들이 각성자 튜토리얼로 소환된 시점인데도 그렇다.

“그래서 난 헌터 업계로 안 가고 병원에 취직했어. 힐러는 어딜 가도 대우받는 직업이거든.”

헌터로 일하던 각성자 중에 치료계 스펠을 지닌 이들도 은퇴한 후에 병원이나 헌터 팀의 의료반에 고용되어 힐러로 일하고는 했다.

힐러의 치료계 스펠과 현대 의학이 결합되면 의학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태마저도 회복시킬 수 있었고, 죽어야 정상인 환자도 멀쩡하게 살려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난 돈은 잘 버는 편이니까 오빠는 옷 사는 정도로 걱정 안 해도 돼. 15년 만에 돌아와서 많이 혼란스러울 텐데, 바로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당분간은 그냥 놀아. 놀면서 그동안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공부도 하고, 앞으로 뭘 할지 생각도 해보고 그래. 돈 필요하면 말하고.”

“정말이지…….”

자신감에 넘치는 우희의 태도가 용우는 눈부셨다.

“내가 아르바이트할 때마다 바로 용돈 좀 달라고 달라붙던 내 여동생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군.”

“왜? 싫어?”

“아니, 너무 멋져서 잘못하다가는 반해 버리겠다. 조심해야겠는데?”

용우가 장난스럽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오빠, 아까 하려던 이야기 말인데…….”

“아, 내 외모 말이지?”

“응.”

“이건 그러니까… 음.”

용우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설명해 주었다.

자신이 어비스로 끌려가서 3년을 보냈으며, 마지막 순간 스스로를 봉인해서 시간이 흘렀다는 실감 없이 12년이 지나 버렸다는 것을.

“…잠깐. 그럼 오빠는, 스스로 주장하기로는 26살이네?”

“사회적으로는 38살이고, 내 체감상으로는 26살이지.”

“지금 오빠가 나보다 어리다고 주장하려고?”

“어, 그게 그렇게 되나?”

우희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는 것을 본 용우는 괜히 움츠러들었다.

왠지 그녀가 화가 났다고 느꼈는데, 그 직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럴 거면 이제부터 누나라고 불러.”

“뭐, 뭐?”

“연하라고 주장할 거면 누나라고 부르라고. 내가 29살이고 오빠가 26살이면 이상하잖아? 내가 용우야∼ 하고 부르고 오빠는 나를 누나라고 불러야 맞지.”

“…….”

“흥.”

코웃음을 치는 우희를 보며 용우는 찔끔했다.

왜 저렇게 뾰로통해진 걸까? 역시 내년이면 서른 되는 사람한테 나이는 민감한 문제인가?

어비스에 있는 동안에는 도통 신경 쓸 일이 없던 문제다 보니 잘 감을 못 잡겠다.

“그냥 내 체감상 그렇다는 거고, 사회적으로야 38살이지, 뭐. 설마 내가 어디 가서 26살이라고 말하고 다니겠어? 주민등록증 나오면 거기도 생년월일이 떡하니 박혀 있을 텐데.”

“그렇지?”

“당연하지.

“그럼 됐어.”

우희는 묘하게 만족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표정을 본 용우는 자신이 정답을 골랐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괴물 심리 읽는 것보다 더 힘드네.’

어비스에서 괴물의 심리를 파악하던 것보다 여동생 마음을 파악하는 게 더 어려운 기분이다.

‘하긴 얘는 중학생 때도 갑자기 토라지면 왜 그랬는지 알기가 어려웠지. 이제 좀 내 여동생 같군.’

우희가 용우를 대하기가 혼란스럽듯 용우 역시 우희를 대하기가 혼란스러웠다.

이 사람이 나의 혈육이다.

부모님이 세상을 떴으니, 이제는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눈앞에 닥친 현실은 너무나 받아들이기 버거운 것이다.

그래서 만난 후로 지금까지 두 사람은 어설픈 상황극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득 우희가 말했다.

“오빠.”

“응?”

“배고프지? 저녁 먹으러 가자.”

“방금 들어왔는데?”

“어차피 짐은 가져다둬야 했잖아. 그리고 나 피곤해서 밥하기 귀찮아. 이 근처에 한정식 맛있게 하는 집 있으니까 가자. 그동안 한식 못 먹어봤을 거 아냐.”

용우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 * *

다음 날은 바빴다.

어제는 헌터관리부의 요청으로 조퇴를 했을 뿐이고 병원에서 힐러로 일하는 우희는 바쁜 몸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반차를 내고 용우를 행정 복지 센터로 데려가서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고, 휴대폰도 새로 개통해 주었다.

“헌터관리부에서 신경을 좀 써줬네.”

용우는 공식적으로 실종 상태였다. 원래대로라면 본인임을 확인하고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는 데 꽤 귀찮은 절차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절차를 각오하고 갔더니만 헌터관리부의 지시가 내려와 있어서 쉽게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그 여자, 일할 줄 아는군.’

용우는 김은혜를 떠올리며 웃었다. 분명 그녀의 수완이리라.

“그럼 난 출근할게. 노트북은 따로 세팅해 줄 필요 없지?”

“어, 아마 그렇겠지?”

“왜 아마 그렇겠지, 야?”

“너한테나 구형이지 나한테는 미래에서 온 노트북이잖아. 3년 동안이나 IT 기기하고는 먼 삶을 살다 보니 좀…….”

“요즘 건 더 쉬워. 금방 익숙해질걸. 노트북이랑 폰 좀 만지다 보면 아마 내가 퇴근해서 올 거야.”

“설마 그럴 리가…….”

우희는 그런 용우에게 코웃음을 치고는 출근했고, 용우는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남았다.

‘조용하네.’

평일 낮이라 그런가, 조용하다.

용우는 그 적막함이 어색해서 여동생이 내준 노트북을 펼쳐 들었다.

2025년에 나왔다는 구형 15인치 노트북은 놀랄 정도로 가볍고 화면이 좋은 데다 배터리까지 하루 종일 유지되었다.

‘이건 뭐, 거의 꿈의 노트북인데?’

2012년 당시하고는 OS의 버전이 많이 달라져서 낯설었지만, 기본적인 사용법은 비슷해서 1시간쯤 잡고 끙끙거리다 보니 좀 익숙해질 수 있었다.

“음…….”

용우는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실종된 후의 일들을 조사해 보았다.

우희의 말대로 인터넷에 워낙 정보가 많아서 조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알게 된 세계 정세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북한 멸망.

-대한민국은 강원도, 제주도 초토화. 경기도 파주 북부 지역 일부가 피해. 현재 한국 정부는 구 북한 영토 일부… 2할에 해당하는 지역을 병합함.

-중국은 퍼스트 카타스트로피로 베이징이 초토화. 이후 정치적, 군사적 혼란을 겪으면서 7개국으로 분열.

-일본은 도쿄가 초토화되고 오사카로 수도 이전.

-영국 멸망…….

이밖에도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국도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때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비교적 피해가 적은 편에 속했다.

“끔찍한 시기였군…….”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때 인류가 입은 피해는 극심했다.

1세대 각성자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전 인류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나타난 후에도 사태가 극적으로 나아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1세대 각성자들은 전 세계를 통틀어 1,700여 명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각성자 전용 장비도 개발되지 않았을 때였고, 다른 조건도 열악해서 그들만으로는 상황을 뒤집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인류의 진정한 반격이 시작된 것은 2세대 각성자들이 발생한 후부터였다.

1세대 각성자들의 적극적인 정보 공유 덕분에 2세대 각성자들의 수는 5천 명이나 되었다.

또한 이때는 각성자용 장비들이 개발되었고, 그들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의 연구와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전술 연구도 시작되어서 인류는 몬스터들에게 적극적으로 맞설 수 있었다.

하지만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3년간은 인류에게 정말 힘든 시기였고, 그때의 상흔은 아직까지도 치료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강원도, 제주도는 완전히 사람이 못 살게 됐나…….’

지금까지 한반도에는 4개 지역에 전술핵이 투하되었다.

평양에 2발이 떨어졌다.

강원도에 1발이 떨어졌다.

그리고 제주도에 1발이 떨어지고…….

개성에 1발이 떨어지면서 파주와 김포 지역 일부에까지 피해가 미쳤다.

‘DMZ고 뭐고 다 날아갔겠네.’

자신이 알던 세계가 어떤 식으로 파괴되고 생소한 세계가 나타났는지를 알면 알수록 가슴 속에서 어떤 감정이 끓어올랐다.

파지직…….

갑자기 노트북 화면에 노이즈가 끼였다.

“이런.”

용우는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여기서는 화도 마음대로 못 내는 신세인가?”

자신의 분노에 호응하여 일어난 마력 파동이 노트북에 오작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다운된 노트북을 리부팅시킨 용우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다스렸다.

‘내가 알던 세계는 없다.’

그가 그리워하던 세계는 모두 파괴되고 재구축되었다.

용우는 새삼 그 사실을 실감하고 슬퍼했다.

그리고…….

‘모두가 나를 어비스에 처박은 놈들 때문이겠지.’

가슴속에서 용암 같은 분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Chapter3 안 되면 힐러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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