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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용우가 알던 그곳이 아니었다.
본래 용우네 가족은 서울 변두리의 오래된 개인 주택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에 신축된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아파트 1607호예요. 그리고 이건 제 명함이에요. 휴대폰 개통하면 연락주세요.”
“그러지.”
김은혜의 명함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은 용우는 아파트 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멈칫했다.
입구부터 유리문으로 막혀 있고 비밀번호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음…….”
용우는 머뭇거리다가 호출 버튼을 누르고 1607호를 찍었다.
그러자 잠시 신호가 가더니 인터폰을 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저기, 음, 그러니까… 여기 혹시 서우희 씨네 집 아닙니까?”
순간 어떤 예감이 뇌리를 스쳐가서, 용우는 나이 차가 많이 났던 여동생의 이름을 댔다.
그러자 인터폰 너머의 목소리는 한동안 말없이 침묵했다.
그러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정말 오빠야?]
용우가 실종되었던 2012년 당시, 복학을 준비하던 용우는 23세였고 여동생 서우희는 중학교 1학년생, 즉 14세였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15년이 흘렀다.
“우희야, 너냐?”
용우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처음 인터폰에서 성인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때부터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예상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아니었으니 남은 것은 여동생뿐이다.
하지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자신이 알던 여동생의 목소리와는 달랐으니까.
[들어와. 들어와서 이야기하자.]
서우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입구 문을 열어주었다.
* * *
서로의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는 것은 SF 창작물의 단골 소재다.
광속으로 우주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몇 년을 보내고 지구로 돌아와 보니, 지구에서는 수십 년이 지난 후였다. 지구를 떠난 후에야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던 딸이 늙어서 노인이 되어 있었다…….
여동생을 보는 순간, 용우는 자신이 그런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꼬꼬마 중학생이었던 여동생은, 어느덧 눈가에 다크서클이 있는 29세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오빠는…….”
우희는 멍하니 용우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많이 변했네.”
“그래?”
용우가 당황했다.
그는 실종되기 전에 이미 성장기가 끝난 청년이었다. 그리고 용우 스스로의 체감으로는 그 후로 3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많이 변했다고?
“꼴이 노숙자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지저분해서 그런 것 같아. 좀 씻고 머리도 자르고 수염도 다 밀면 내가 아는 오빠 모습이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
그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어비스에서는 외모에 신경 쓰고 살 여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머리는 대충 귀찮을 정도로 길면 칼로 퍽퍽 쳐 내버렸고, 수염은 지저분하게 자라든 말든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용우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목소리는 그대로인 것 같네, 오빠.”
“그건 다행이군.”
“나도 많이 변했지? 그 후로 15년이나 지났으니까.”
우희는 얼굴은 나이 들어서 성숙해졌다 뿐, 그 속에서 용우가 기억하는 14살 꼬꼬마 중학생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근데 이거 아무래도…….’
용우는 우희에게서 한 가지 지나칠 수 없는 문제를 발견했다. 그녀에게서 보통 사람은 가질 수 없는 느낌이 배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용우는 그것을 지적하는 대신 다른 것부터 물었다.
“그럼 네 나이가… 29살인가?”
“그렇지. 내년이면 서른이야.”
서글프게 웃는 우희를 보며 용우는 가슴 한구석이 아파왔다.
용우는 본인의 인식대로라면 26살이다. 그 인식대로라면, 어비스의 끝에서 봉인당해 있는 동안 여동생은 그보다 나이가 많아져 버린 것이다.
“헌터관리부에서 오빠가 돌아왔다고, 각성자 튜토리얼 비슷한 일이 아주 긴 시간 동안 일어난 것 같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그래도 영 실감이 안 나네. 난 지금까지 오빠가 죽었다고 생각했으니까.”
“…….”
용우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미안하다?
그렇게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았다.
그 지옥 같은 세계로 납치당했던 것이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자의든 타의든 가족에게 슬픔과 상처를 준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랬다가는 마치 자신이 겪은 시간을 과오라고 인정하는 것만 같아서, 용우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용우는 그 화제를 피해서 다른 것을 물었다.
“아버지랑 어머니는? 아직 안 들어오셨나?”
“헌터관리부에서 아무 말도 안 해줬어?”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왜?”
“아빠랑 엄마는 돌아가셨어.”
가슴속에 쿵 하고 돌덩이가 내려앉는 것 같았다.
우희가 무거운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2015년에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때였어. 우리 집도 거기에 휘말렸거든. 난 아직 학교에 있을 때여서 피난해서 살았고…….”
“그랬, 구나…….”
용우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우희가 말했다.
“나중에 유골 모신 곳으로 같이 뵈러 가자.”
“그래…….”
용우는 기분이 무겁게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우희는 그런 용우의 기분을 배려하려는 듯 잠시 동안 말없이 지켜보더니 말했다.
“그럼 일단 씻어.”
“응?”
“노숙자 같다고 그랬잖아. 얼굴도 못 알아보겠으니까 당장 씻고 면도도… 음. 면도기가 없으니 내가 금방 사올게. 그다음에 미용실 가서 머리도 다듬고 옷도 좀 사오고 그러자.”
“어, 하지만…….”
“뭐가 하지만이야? 이 집 깨끗한 거 안 보여? 그런 꼴로 여기서 못 재우니까 얼른 내 말대로 해.”
“그, 그래.”
반론을 용서치 않는 단호한 태도에 용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 *
용우가 씻는 동안 우희는 집 근처의 편의점에서 전기 면도기를 사와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거실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오빠라니…….”
그가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12년 전,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때 부모님을 잃었을 당시 우희는 17세. 아직 고교 1년생이었다.
친척들은 별로 없었고, 그나마 있는 이들도 부모님과 사이가 소원했기에 그녀는 일찌감치 할머니와 사별하고 혼자 남은 할아버지네 집에서 지내다가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녀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아버지도 돌아가셨고… 그 후에는 정말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악착같이 살아온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오빠라니?
솔직히 지금은 용우에 대한 기억조차 흐릿했다.
그래도 그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쁜 느낌은 아니다.
남매는 대체로 사이가 안 좋다지만, 둘은 워낙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매라서 그런지 우희는 용우가 좋았다. 오빠라기보다는 남들이 말하는 삼촌 같은 느낌에 더 가까웠던 것 같기도 하지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죽었다고 생각했던 혈육이 살아 돌아왔으니 기뻐서 눈물이라도 흘려야 할 것 같은데, 우희는 전혀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혼란스러웠다.
* * *
미용실에서 스타일리스트의 손길을 거친 용우를 본 우희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더니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 우리 오빠였네…….”
집에서는 씻고 면도만 한 뒤 추리닝 차림으로 동네 미용실에 왔다.
그리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깔끔하게 자른 서용우는, 놀라울 정도로 우희의 기억을 자극했다. 흐릿해진 기억의 밑바닥에서 그 시절의 일들이 기포처럼 떠올라 눈앞을 스쳐갔다.
평소에 잘 웃는 편이지만, 웃지 않을 때면 묘하게 위압적으로 보이는 눈매. 그랬다. 그녀의 오빠 얼굴은 저런 모습이었다.
‘피부는 많이 상했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모습은 군에서 전역하고 집에서 뒹굴거리던 때였는데, 그때는 참 피부가 뽀송뽀송했다. 군 생활 말년에는 시간이 많아 남아서 공부도 하고 피부 관리도 열심히 하다 나와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피부가 많이 상해서 좀 나이 들어 보였다. 그래봤자 20대로 보이는 건 똑같지만.
‘아니, 이상하잖아?’
우희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 흠칫했다.
용우는 실종 당시 23세였고, 그 후로 15년이 흘렀으니 38세다.
그런데 지금도 20대 후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동안이라도 그럴 리가 없잖아? 피부라도 예전처럼 뽀송뽀송하면 모를까…….’
여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자 용우가 겸연쩍어했다.
“이상한가? 머리를 워낙 오랜만에 잘라봐서 원.”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너무 젊어 보여서.”
“음, 그건…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
용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 듣는 데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매는 미용실 근처의 상가에 들러서 실내복과 외출복, 그리고 속옷까지 대량으로 산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한동안은 그걸로 입어. 겨울이 오기 전에 내가 괜찮은 옷들 봐서 사줄게.”
“갑자기 이렇게 돈 써도 괜찮아?”
용우는 어비스로 납치당하기 전에 군대까지 다녀왔다. 학비는 부모님이 지원해 줬지만 용돈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스스로 벌어서 썼기 때문에 금전 감각은 좀 있는 편이었다.
오늘 하루 우희가 용우를 위해 쓴 돈이 1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당장 필요해서 쓴 돈이라고는 하지만 이래도 되는지 걱정되었다.
“오빠, 난 이제 꼬꼬마 중학생이 아냐. 돈 잘 버는 힐러니까 그 정도로 걱정 안 해줘도 돼.”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용우는 곧 한 가지 이상함을 깨닫고 물었다.
“힐러? 그건 뭐야?”
“뭐긴 뭐야? 힐러지.”
“아니, 그러니까…….”
“오빠는 15년 사이에 일어난 일을 전혀 모르는 거야?”
“음, 어느 정도는 알긴 한다만.”
용우가 헌터관리부에서 알게 된 사실들을 하나하나 나열하자 우희가 한숨을 쉬었다.
“핵심만 알고 다른 중요한 건 모르네.”
“또 알아둬야 할 게 뭔데?”
“엄청 많아. 당장 북한이 망했다는 것도 모르잖아?”
“뭐?”
용우가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북한이 망했다니?
그건 용우가 실종된 2012년 시점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이야기였다.
“그런 국제 정세에 대한 부분은 인터넷 뒤져보면 다 나올 거야. 내가 전에 쓰던 노트북을 오빠 줄 테니까 시간도 보낼 겸 조사해 봐.”
오빠를 놀리는 게 재밌는 듯 웃은 우희가 중요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각성자에 대해서는 안다고 했지? 나도 각성자야, 오빠.”
용우가 그녀를 보았을 때 느낀 위화감의 정체, 바로 각성자가 되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