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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마비.
참 쉽게 접할 수 있는 증상이다.
물론 현실에서가 아니라 창작물 속에서 말이다.
살면서 진짜 심장마비를 일으켜 보거나, 혹은 심장마비를 일으킨 사람을 볼 기회가 어디 흔하겠는가?
하지만 소설이나 만화, 드라마 등에서는 너무나 흔하게 심장마비를 접할 수 있다.
김은혜 또한 그러했고, 그래서 그녀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심장마비를 가볍게 보는 실수를 말이다.
“커억… 헉, 허억…….”
암전되었던 시야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잠시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패닉에 빠져 있던 김은혜는 곧 주변에서 요란한 소리와 비명이 들려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고개를 든 그녀는 보았다.
취조실에 들어왔던 병력들이 모조리… 아니, 복도에 대기 중이던 이들까지 모조리 제압당해서 땅에 엎드려 있는 것을.
김은혜가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것을 본 병사들이 공격에 들어갔고,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전원 용우에게 당해 버린 것이다.
“공무원 아니랄까봐 정말 융통성이 없군. 실수로 쏜 한 발을 참아준 것만 해도 관대한 처사라고 생각하는데…….”
콰직!
싸늘하게 중얼거리는 용우의 손아귀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김은혜는 그것이 소총이 두 동강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기겁했다.
소총을 한 손으로 잡고 악력을 가하는 것만으로 두 동강 낸다고? 스펠을 쓴 것도 아닌데?
부러진 소총을 내던진 용우가 다시 취조실의 자기 자리로 걸어와서 앉았다.
“페널티를 확인했으니 이제 유익한 대화를 나눠도 될 것 같군요. 자, 그럼 질문하지요. 지금 있었던 일도 포함해서 내가 지구로 돌아와서 한 모든 일을 당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불문에 부쳐주지 않을래요?”
“…그, 그럴게요.”
“고마워요. 그럼 이제부터 나 혼자만 일방적으로 질문하고 당신은 뭐든지 대답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 괜찮겠지요? 나는 단 한 가지 질문도 받지 않는 일방적인 질답 시간으로 진행하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해 줄 거죠?”
“…….”
“아, 참고로 대답을 회피했다고 판정 뜨기까지는 8초가 걸립니다.”
상냥한 용우의 말에 김은혜가 허겁지겁 말했다.
“그럴게요!”
아니라고 하면 이 남자는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 그런 공포가 김은혜에게 대답을 강요했다.
“고마워요. 아, 참고로 진실의 서약으로 묶인 동안에 ‘하겠다’고 말한 내용은 진실의 서약의 유효 시간이 끝나도 계속 강제됩니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 맹세한 말을 지키지 못하면 심장마비가 오겠죠.”
“…….”
그 말에 김은혜가 하얗게 질려 버렸다.
‘사실 유효 시간 후에도 적용 한계 시간이 있으니 길어봐야 3시간만 더 버티면 되겠지만.’
예를 들어 진실의 서약으로 평생 동안 지켜 나가야 할 맹세를 했다고 해도, 평생 동안 강제력에 시달릴 일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까지 말해줄 이유는 없었다. 용우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용우가 물었다.
“지금이 2027년 9월이라는 것, 사실입니까?”
“예.”
“거짓말이길 바랐건만… 역시 그랬나.”
탄식한 용우가 질문했다.
“내 가족에게 연락은 했습니까?”
“아, 안 했습니다.”
“왜 안 했습니까?”
용우의 시선이 얼음장처럼 싸늘해졌다.
“…….”
“8초라고 했을 텐데, 심장마비 한번 당해보니 버틸 만했나 보네요.”
“당신의 존재를…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왜요?”
“당신이 0세대 각성자라서…….”
“그게 뭔지 차근차근 설명해 보시죠. 아까 전부터 무슨 소리 하는지를 알아먹을 수가 있어야지. 일단 각성자가 뭔지부터 말해봐요. 아, 스펠을 써서 어비스의 괴물과 싸울 수 있는 존재를 가리킨다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몬스터와 싸우는 사람들은 각성자가 아니라 헌터입니다.”
“음? 그러고 보니 여기가 헌터관리부라 그랬죠. 각성자와 헌터의 차이는?”
“각성자는 2년에 한 번 발생하지만, 그들 전원이 헌터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헌터는 각성자로만 이루어진 직업군이 아니고요.”
“흠, 그러니까… 정리 좀 해보죠. 당신들은 내가 어비스의 괴물이라고 부르는 존재를 몬스터라고 부른다, 맞습니까?”
“예.”
“그리고 몬스터와 싸우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전투 종사자들을 가리켜 헌터라고 부른다?”
“맞아요.”
“그리고 각성자 중에서는 헌터가 되는 사람도 있고 안 되는 사람도 있다?”
“예.”
용우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자신이 실종된 15년간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기 위한 질문을.
그 결과 현재는 상식으로 통하는, 하지만 용우 자신에게는 반드시 필요했던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각성자는 퍼스트 카타스트로피가 일어난 2015년의 1세대를 시작으로 2년 단위로 발생해 왔다.
-2년에 한 번, 때가 되면 전 세계에서 2만 명의 실종자가 발생한다. 그들은 지구가 아닌 다른 세상에서 ‘각성자 튜토리얼’이라 불리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1개월 뒤 생환하는 자들은 전원이 각성자다.
-1세대 때는 생환자가 1,700여 명에 불과했으나 세대를 거듭할수록 생환율이 높아져서 2025년 6세대 각성자는 1만 2천여 명에 달했다.
-생환율이 높아지는 이유는 정보 공유와 분석이다. 각성자 튜토리얼의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전 세대가 정보를 공유하고, 그것이 분석되면서 생환율이 높아진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이 실종된 24만 명은, 생환했다면 0세대로 분류될 각성자다 이거군.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당하던 존재가 실제로 나타났고, 그래서 관심 가질 놈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내 존재를 은폐하려고 했다, 이거지?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어디로 나갈 수도 없게 가둬둔 채로 연구하려고?”
“…….”
“유예 시간 8초라는 거 벌써 까먹으셨어? 공무원으로 한자리할 정도면 머리가 좋을 것 같은데, 아닌가?”
질답을 진행하는 동안 용우의 태도는 북극의 바람보다도 싸늘해졌고 한 줌의 예의조차 남지 않았다.
“…맞아요.”
“그렇군. 알겠어. 그럼 이제 집에 가야겠군.”
“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당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불문에 부쳐주기로 했잖아? 그럼 난 가도 되는 거 아닌가?”
“그, 그렇기는 하지만…….”
“아, 그렇지. 내 가족 연락처와 주소는? 당연히 알려줄 거지? 그리고 입을 옷 좀 부탁해. 시민에게 총질을 해놓고 설마 당장 입을 옷을 못 내주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
“…….”
김은혜에게 ‘아니오’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 * *
용우는 추리닝 차림으로 헌터관리부를 나섰다.
헌터관리부 창고에 처박혀 있던 추리닝은 후줄근해 보였지만 그래도 용우가 입고 있던 누더기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해도 바로 강한 각성자가 지원으로 오지 않은 걸 보니 사태가 급박하긴 한 모양인데.’
게이트 브레이크.
게이트가 출현하고 일정 시간이 지날 때까지, 정확히는 지구와 게이트 사이의 에너지 압력이 균일화될 때까지 게이트를 파괴하지 못하면 일어나는 현상이다.
게이트 너머에 존재하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지구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게이트가 발견되면 곧바로 전문가들이 상태를 체크하고 카운트를 시작해서 급한 쪽부터 처리하지만…….
문제는 게이트를 처리할 수 있는 전투 전문가들, 헌터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때때로 게이트가 출현하는 빈도수가 그들이 커버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서 폭주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이때는 헌터관리부에서 결정한 우선순위대로 병력이 투입되고,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킨 지역은 배틀 필드로 설정해서 전투를 벌이게 된다.
즉,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일대의 상황이 급박하다는 뜻이다.
쓸 만한 헌터 인력은 전부 현장에 투입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어떨지 모르지. 그 팀장이나 병사들이야 별거 아니었지만 배틀 필드에서 싸우던 각성자들은 확실히 강했으니.’
용우의 상태는 에너지 드레인과 마력석 흡수로 약간 회복되기는 했다. 헌터관리부에서 먹을 것과 물을 섭취하면서 몸 상태도 좀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좋지는 않았다. 부상으로 약해진 상황에서도 싸운 경험이 많아서 약해진 몸을 어떻게든 멀쩡한 척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타세요.”
김은혜가 차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그녀는 용우가 혼자 떠나는 것을 막아냈다.
‘서용우 씨, 지도 앱을 띄울 휴대폰도 없잖아요. 주소만 갖고 집까지 찾아갈 수 있겠어요? 아, 그러고 보니 2012년에 스마트폰 나왔었나요? 전 어릴 때라 잘 모르겠는데.’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 그 말에 용우는 김은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은혜는 용우의 가족, 정확히는 가족의 직장에 연락해서 조퇴시키도록 조치하고 용우를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왜 이런 배려를 해주지? 미안해서는 절대 아닐 거고.”
“물론 아니죠.”
운전대를 잡은 김은혜가 이를 갈고 싶어 하는 표정으로 용우를 쏘아보았다.
진실의 서약의 유효 시간은 끝났다. 하지만 그녀가 보이는 감정이 진심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 같았다.
“시말서를 질리도록 쓰고, 그러고도 경질될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하면 당신을 갈아 마셔도 모자라는데요.”
“자업자득이잖아?”
시큰둥한 용우의 말에 빠드득, 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났다.
김은혜가 잠시 호흡을 고르면서 감정을 다스리고는 말했다.
“뒷일을 생각하면 당신한테 적의는 사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적의는 이미 샀는데? 설마 그런 시커먼 속셈을 토로해 놓고 적의를 갖지 않길 바랐나? 당신, 진짜 바보 아냐?”
“…말씀이 참 거침없으시네요.”
“적의로 대해야 할 사람한테 가식 떨어서 뭐 하게?”
“저 운전대 잡고 있거든요? 감정이 끓어올라서 사고 내면 어쩌려고요?”
“괜찮아. 사고 나면 내가 다치기나 할 것 같아? 댁 혼자 죽을 거야.”
“…….”
다시금 빠드득, 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났다.
한동안 심호흡을 한 김은혜가 말했다.
“그럼 적의를 좀 줄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라고 해두죠.”
“그렇게 해서 뭘 바라지?”
“당신이 저를 대화 창구로 써줬으면 좋겠는데요.”
“정부랑은 당신을 통해서 이야기하라고? 중개자로서 이익을 취하시겠다?”
“그래요.”
“노골적이군.”
“돌려 말할 방법이 생각 안 나는 건수라서요. 장담하는데 전 꽤 도움이 될 거고요.”
김은혜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무리 봐도 뭔가를 부탁하는 태도가 아니다. 하지만 용우는 왠지 웃음이 나왔다.
“좋아. 그렇게 하지.”
“정말이죠?”
“잘해야 할 거야. 당신 직장에서처럼 귀찮고 짜증 나는 상황이 터지면 그때는 모가지를 칠 테니까.”
좋아하던 김은혜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무례한 남자가 말하는 모가지를 친다는 표현이 비유적인 게 아니라 진짜로 목숨을 취하겠다는 뜻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마… 아니겠지?’
불안감이 들었지만 김은혜는 굳이 확인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Chapter2 연상의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