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4화 (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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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관리부 제3과 제2팀장 김은혜는 골치가 아픈지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혹시 내가 SNS 계정 폭파한 후에 유행하기 시작한 장난인가? 바빠 죽겠는데 장난하자는 건 아니지?”

김은혜가 보고 있는 서류는 게이트 브레이크를 수습하기 위해 배틀 필드로 설정된 지역에서 불법적으로 전투 행위를 하다가 붙잡혀 왔다는 미등록 각성자의 진술서였다.

부하 직원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거짓말 탐지기 체크도 했고요.”

“이런 미친…….”

김은혜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있던 미등록 각성자를 신문한 결과, 믿을 수 없는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중요한 것은 두 가지였다.

2012년 실종자.

미등록 각성자.

“이게 진짜라면… 완전 폭탄이잖아?”

“진술이 사실이라면 분명 그거겠죠. 전설의 0세대 각성자.”

“그것도 세계 최초지. 유일하기도 하고. 미쳐 버리겠군.”

“우리 선에서 처리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맞아. 하지만 대박이지.”

“…….”

“잘만 처리하면 승진은 따놓은 당상일걸?”

김은혜는 흥분 섞인 미소를 지었다.

서용우가 정말 0세대 각성자라면 그의 존재는 폭탄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 폭탄의 가치는 엄청나다. 그에게서 모두가 궁금해할 사실들을 진술받고, 그의 존재를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은폐한 채로 상부에 넘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공이 되리라.

김은혜는 야심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럼 어디 내가 한번 이야기를 해볼까?”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취조실로 향했다.

* * *

서용우는 취조실에서 편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절대 편안한 환경이 아니어야겠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한 일은 자신들을 헌터관리부 직원이라고 밝힌 조사관의 묻는 말에 정직하게 대답해 주는 것뿐이었다.

구속당한 후로 지금까지 죽 얌전히 굴었기에 저들도 거칠게 나오지 않았고, 배가 고프다고 하니 먹으라고 컵라면에 물을 부어서 주기도 했다.

‘컵라면과 수세식 화장실에 물 콸콸 나오는 세면대라니… 하하하.’

그것만으로도 용우는 세상 모든 악(惡)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컵라면을 먹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단맛도 별로 안 나는 과일, 악취 나는 괴물의 고기를 진수성찬이랍시고 먹으며 살던 3년…….

화학조미료로 구축된 문명의 맛은 얼마나 위대한 문명의 산물이란 말인가.

그가 컵라면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자 신문하던 조사관이 당황해서 상냥한 태도를 보였을 정도였다.

용우가 포만감에 젖어 늘어져 있을 때, 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들어왔다.

이번에 들어온 것은 아까 전의 그 조사관이 아니라 헌터관리부의 제복을 입은 여성이었다.

“서용우 씨.”

“예.”

“저는 헌터관리부 제3과 제2팀장을 맡고 있는 김은혜입니다. 진술서는 잘 봤습니다. 정직하게 대답해 주신 것 맞겠지요?”

“맞습니다. 물어보신 것 중 상당수는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 어려웠습니다만. 미등록 각성자라거나…….”

김은혜는 용우의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용우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러시죠?”

“음, 고생이 많으셨던 것 같아서요.”

용우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노숙자라고 해도 너무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옷은 완전 누더기였고, 머리는 원시인처럼 삐죽삐죽하게 자랐으며, 수염까지 덥수룩하게 자라나 있어서 원래 생김새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녀는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이 진술서대로라면 당신은 2012년에 일어난 대실종의 실종자 24만 명 중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까 조사관분이 제 가족에게 연락을 해보겠다고 하시던데 그건 어떻게 됐습니까? 주민등록번호도 말씀드렸는데…….”

실종되기 전, 용우는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에 복학하려고 준비하던 처지였다.

“주민등록번호 조회는 마쳤고, 가족분에게 연락하도록 지시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음…….”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당신은 실종되어서 이상한 공간으로 떨어졌고, 그곳에서 3년을 지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비스라고 불리는 곳이었죠. 이런 말을 하면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건 압니다만…….”

“그런 의도로 말씀드린 건 아니었습니다. 이미 보셨겠지만 세상은 당신이 실종된 2012년과는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돌아와서 놀라지 않으셨습니까?”

“…….”

물론 놀랐다. 너무나 놀라서 지금도 불안에 시달리는 중이다.

잠시 침묵하던 용우는 큰 결심을 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지금이 몇 년도입니까? 제가 실종된 후로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거죠?”

“15년이 흘렀습니다. 오늘은 2027년 9월입니다.”

그 말에 용우가 눈을 크게 떴다.

“…15년이 흘렀다고?”

그가 멍청하니 중얼거렸다.

그리고 김은혜가 보는 앞에서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간다.

처음에는 경악, 그다음으로는 불신, 그리고 결국은 당장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분노했다.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쾅!

그가 주먹을 내려치자 철제 책상이 쪼개져서 주저앉았다.

동시에 김은혜가 창백하게 굳은 얼굴로 권총을 겨누었다.

“그, 그만두십시오.”

그녀의 목소리가 떨린 것은 놀라서만은 아니었다.

분노한 용우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정체불명의 마력 파동이 숨쉬기도 어려운 압력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뭐?”

용우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순간 김은혜는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용우의 눈은, 방금 전까지의 유순함이 온데간데없이 어마어마한 살의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간의 대치를 깬 것은 문이 격하게 열리고 사람들이 뛰어 들어오는 소리였다.

완전무장한 병력들이 돌입해서 용우에게 총구를 겨누었고…….

“컥…….”

그들 모두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탕!

그리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한 사람이 실수로 방아쇠를 당겨 버렸다.

‘안 돼!’

김은혜가 경악해서 용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더더욱 놀랐다.

총탄이 꽂힌 지점. 용우의 어깨에 투명한 푸른빛의 파문이 번져 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게이트로부터 나와 인류를 위협하는 적, 몬스터들이 기본적으로 가진 힘.

‘허공장?’

또한 각성자 역시 가진 힘이기도 했다.

그러나 각성자의 허공장은 거의 대부분 체내 허공장뿐이다. 몸 밖으로 허공장을 전개할 수 있는 헌터는 극소수였다.

“히이익…….”

실수로 발포해 버린 헌관부 병사가 신음했다.

용우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순간, 마치 이를 드러낸 괴물과 마주한 것 같은 위압감이 덮쳐왔기 때문이다.

숨 막힐 것 같은 긴장감이 그 자리를 지배했다.

그 긴장의 끈을 풀어낸 것은 용우였다.

“…미안합니다.”

살기를 거두고 사과하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던 것이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더니 감정이 격해져서 그만.”

“이, 이해합니다.”

김은혜가 반사적으로 대꾸하자 용우가 말했다.

“이해하신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일단 다들 총구를 물려주시겠습니까? 진정하기 어렵군요.”

김은혜가 병사들에게 눈짓하자 병사들이 총구를 내리고 한 걸음씩 물러났다.

“총에 한 발 맞은 건 없는 일로 하죠. 대신 제가 한 일도 불문에 부쳐주십시오.”

“그러겠습니다.”

“여기 오기 전의 불법 전투 행위를 포함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

그 말에 김은혜가 움찔했다.

용우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구속에도 응하고, 진술도 순순히 했습니다만 좀 귀찮군요. 총까지 맞고 나니 내가 왜 이래야 하나 싶은데, 내가 그쪽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경고도 없는 발포 행위는 혹시 불법 아닙니까?”

“그렇지는…….”

“그 말, 목숨을 걸고 진실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말을 자르고 들어온 용우의 질문에 김은혜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을 노려보는 용우의 시선이 너무나 날카로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용우는 대충 찔러본 것이겠지만, 법률이 그의 지적대로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법 발포로 총에 맞은 사람이라면 이 정도 요구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물론 상처는커녕 아픔조차 없었다.

하지만 살상용 탄이 아니라 제압용 탄일지언정 저쪽에서 총을 쐈고, 용우가 맞았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곤란해.’

김은혜가 입술을 깨물었다.

작전 중 헌터관리부의 힘은 아주 강력하다.

불법적인 발포?

그건 그냥 묻어버리면 그만이다. 용우가 난동을 부려서 경고할 새도 없이 쐈다고 처리하면 민간인인 용우가 뭘 어쩌겠는가?

문제는 지금 당장 용우를 저지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 자신도 각성자고, 지금 돌입한 병사들 중에서도 2명은 각성자다. 그리고 아무리 전투 직종에 종사하지 않는 각성자라고 해도 그들은 일반인을 압도하는 전투 능력을 가졌게 마련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용우의 상대가 될까?

‘CCTV에 잡힌 장면들만 봐도 가진 스펠이 한두 개가 아니야. 정체불명인 데다 이동 능력은 불가사의한 수준. 게다가 스펠들 중에는 아예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있었고 지금 일어나는 이 현상도…….’

은신한 채로 행동하던 용우가 포착된 것은 CCTV 때문이다.

배틀 필드 설정이 끝나는 순간, 그 안 곳곳에 드론들이 회수 가능한 간이 CCTV들을 설치해 놓았고 용우는 그 사실을 모르는 채로 몬스터들과 싸웠던 것이다.

그 CCTV에 포착된 영상만 봐도 용우는 무서워해야 할 대상이었다. 도무지 전투 능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0세대 각성자를 이대로 보내주면… 시말서 정도로 끝나지 않을 텐데.’

바로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0세대 각성자는 허무맹랑한 전설에 불과했다.

하지만 용우의 존재로 인해서 이제는 전 세계의 주목을 모을 떡밥이 될 것이다.

김은혜는 용우와 면담을 해보고 나서 그를 구금해 둔 채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 정보를 통제하고 윗선에 보고를 올리면 분명 무슨 죄목으로든 구속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을 것이다.

“별로 머리 굴릴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도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안 좋은 속셈이 있으신 것 같은데.”

김은혜는 아차 했다. 생각이 길어지자 용우의 눈이 가늘어졌기 때문이다.

“팀장님, 나랑 약속 하나 하죠.”

“약속?”

“지금부터 서로 진실만을 답할 것을, 또한 대답을 회피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시다. 어떻습니까?”

“서로 말인가요?”

“예. 서로.”

“그 정도라면야… 좋아요.”

김은혜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 방에는 거짓말 탐지기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기계로 인한 판독 결과는 밖에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김은혜는 용우가 거짓말을 했는지 나중에 알아볼 수 있지만 용우는 김은혜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볼 수가…….

-진실의 서약!

하지만 그 순간 뭔가가 김은혜의 뇌와 심장을 움켜잡았다.

‘뭐지?’

김은혜가 당황할 때였다.

“페널티는 5초간의 심장마비로 설정했습니다.”

“네?”

“서로 진실만을 말하고, 대답을 회피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잖아요? 약속을 어기면 5초간 심장마비가 온다고요.”

“…….”

“못 믿는 눈치군요? 여긴 이 스펠을 가진 사람이 없거나, 있어도 적어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모양이군. 뭐, 정 못 믿겠다면 시험해 봐도 좋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김은혜가 맞습니까?”

도발하는 듯한 용우의 말에 김은혜는 잠시 갈등했다.

방금 전에 뇌와 심장을 뭔가가 움켜잡는 듯한 감각은 생생했다. 뭔가 스펠이 걸리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용우의 말이 진실일까?

블러핑이라면 정말 허무할 것이다. 완전히 용우의 뜻대로 끌려가게 될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김은혜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말했다.

“아니에요.”

그리고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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