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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과과과광……!
굉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용우가 빌딩 위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언월도를 든 사내가 초인적인 움직임으로 괴물과 근접전을 벌이고, 계속해서 위치를 바꾸는 저격수가 때때로 가하는 공격이 그를 엄호한다.
뿐만 아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언월도 사내 말고 커다란 양손 대검을 든 여자 하나가 합류해서 합공을 펼쳤고, 다시 잠시 후에는 빌딩 위에 나타난 중화기를 든 남자가 시간차를 두고 강력한 화력을 퍼붓기 시작했다.
용우는 이 전투를 자세히 관찰했다.
만약 저들이 크게 열세에 처했거나 주변에 민간인이 있었다면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계가 잘되는군. 충분히 이기겠어.’
그러나 4명의 초인들은 훌륭한 연계로 검은 비늘의 도마뱀 괴물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무기가 정말 훌륭해. 우리가 쓰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군.’
어비스에서, 납치당해 전사가 될 것을 강요받은 24만 명에게 주어진 무기는 중세 시대에나 썼을 법한 냉병기였다.
그 무기에 특별한 구석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몇몇 스펠은 무기를 들었을 때 진가를 발휘하기에 썼을 뿐이다.
‘현대 병기라기보다는… 현대의 기술로, 스펠의 활용도를 최대한 높이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병기다. SF인지 판타지인지 모르겠군.’
용우가 헛웃음을 흘렸다.
저 무기들은 정말 훌륭하다.
이들은 본신 능력만으로 보면 저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러나 장비가 그들의 힘을 제대로 살려주고 있고, 텔레파시 스펠을 쓰는 것도 아닌데도 소름 끼칠 정도로 멋진 연계를 보여주고 있다.
‘관측 장비와 통신기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어비스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신속하고 정교한 연계를 위해서는 텔레파시 스펠이 필수적이었다.
퍼어엉!
다시금 저격수의 공격이 괴물을 때린다.
용우가 보기에 저격수의 장비는, 그가 저격 시에 쓰고 있는 스펠 염동충격탄(念動衝激彈)의 위력을 3배 이상으로 높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탄두에 따라서 사거리와 성향이 바뀌는 것 같군. 관통 중시인지 아니면 저지력 중시인지…….’
달인의 컨트롤을 가졌어도 스펠을 그 정도까지 원하는 대로 최적화하기 어렵다.
그런데 장비를 갖추는 것만으로도 그런 일이 가능하다니…….
“하하하…….”
용우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는 동안 전투는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허공장이 거의 다 벗겨졌다.’
허공장(虛空場; Hollow Field)은 저 괴물이 현대 인류에게도 무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단순한 물리적 타격은 허공장에 무력화되기에, 어비스에 납치당한 24만 명은 초창기에는 대형견 사이즈의 괴물 하나가 덤볐을 뿐인데도 몇 명이나 죽어나갔다.
하지만 스펠의 힘으로 타격하면 괴물의 허공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리고 허공장을 완전히 벗겨내고 나면 그때부터는 단순한 물리 타격만으로도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물론 체내 허공장이 있으니 웬만한 타격으로는 안 되겠지만…….’
괴물은 몸 밖에만이 아니라 안에도 허공장이 있어서 주요 장기들을 보호한다.
하지만 체내 허공장은 체외 허공장보다 약하다. 체외 허공장을 걷어내고 나면 사실상 승부가 끝났다고 봐도 좋았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는 드론과 무인 전차들이 있다. 폭약의 충격량을 생각하면 저 괴물을 죽이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더 보고 싶지만… 휘말리기라도 하면 안 좋을 것 같군.’
용우는 냉정하게 스스로의 상태를 파악했다.
흥분 상태라 몰랐지만 마력기관만 바싹 말라버린 게 아니었다. 신체 컨디션 자체가 영 좋지 않았다.
‘오랫동안 식물인간처럼 잠들어있었다고 생각하면 이 상태가 이해가 간다. 아무래도 봉인 스펠은 봉인된 존재의 시간을 정지시키거나 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난 아마도 가사상태에서 마력을 대가로 오랜 시간을 버틴 거겠지.’
뭔가 영양분을 보충해야 한다. 인간의 신체를 위한 영양분과 마력기관을 위한 영양분 양쪽을.
-시공의 보물고.
용우가 아공간을 여는 스펠을 사용했다.
이 스펠은 시간의 흐름에서 격리된 별도의 아공간을 열고 관리할 수 있는 스펠이었다. 지구의 물리법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마치 게임의 인벤토리를 현실에 구현해놓은 것 같은 능력이다.
치지직…….
하지만 용우의 스펠은 제대로 발동되지 않았다.
“큭…….”
용우의 마력기관 상태가 워낙 부실했기 때문이었다.
시공의 보물고는 마력 소모는 적지만 상당히 고위 스펠이다. 그리고 고위 스펠을 발동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마력 보유량이나 출력보다는 마력의 질적인 부분이었고,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병자나 다름없는 용우는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빌어먹을.”
용우는 짜증을 내면서 다른 선택지를 고민했다.
-블링크.
그리고 그대로 공간을 뛰어넘어서 전장을 벗어났다.
목적지 없는 후퇴는 아니었다.
‘저놈이 딱 좋겠어.’
충분한 시간차를 두고 2번 블링크를 사용, 700미터 바깥쪽에 도달한 용우는 곧바로 팔을 휘둘렀다.
-사일런트 엣지!
파악!
그러자 팔의 궤적으로부터 2미터 떨어진 지점에 있던 무언가가 절단되면서 검은 피가 튀었다.
캐애앵!
용우에게 기습을 당한 괴물이 비명을 질렀다.
대형견만 한 덩치를 자랑하는 최저등급 괴물, 주시견.
언뜻 보면 4족 보행하는 개과 생물처럼 보이지만 잘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실루엣만 닮았을 뿐, 털이 하나도 없고 대신 비늘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으며 눈은 개의 그것보다 5배는 큰 것 하나만이 박혀 있었으니까.
서걱!
용우는 신속하게 주시견의 목을 잘라 버렸다. 최저등급이라고는 하지만 저 눈에 내재된 마력이 발현되면 귀찮았기 때문이다.
“마력석은… 꽝이군.”
용우가 혀를 찼다.
괴물들을 처치하다 보면 확률적으로 마력석이라 불리는, 마력이 응집된 광석이 나온다.
이 광석은 마력을 다루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유용한 자원이었다. 특히 용우 입장에서는 마력기관을 회복시킬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영양분이 될 수 있기도 하다.
-에너지 드레인!
하지만 마력 회복을 마력석에만 의존해야 했다면 용우는 어비스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스펠을 펼치자 주시견의 커다란 안구에 담겨 있던 마력이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순식간에 주시견의 눈이 쪼그라들어 버리고, 목 잘린 시체는 검은 모래가 되어 부서지기 시작했다.
-정화!
용우가 또 다른 스펠을 펼쳤다.
그러자 체내로 흡수된 주시견의 마력이 정수기 필터를 거친 물처럼 맑게 정화되어서 마력기관을 촉촉하게 적시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흡수한 마력의 절반이 손실되었지만, 양에 욕심을 내다가 탁한 기운에 오염될 위험을 생각하면 이편이 나았다.
“크…….”
용우는 말라비틀어졌던 마력기관이 순식간에 마력을 흡수하는 감각에 신음했다.
동시에 격렬한 허기가 끓어올랐다.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에다가 물 한 바가지 부은 셈이지.’
마력기관을 회복하려면 아주 많은 마력을, 장기간에 걸쳐 투입해 줘야 할 것이다.
‘마침 상황이 좋군.’
용우는 미소를 지었다.
주시견을 덮치기 전, 그는 빌딩 옥상에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상황을 파악했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문명이 거의 멸망 직전에 달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전투를 지켜보는 동안 제정신이 돌아왔고,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전장이 되어버린 시가지 사방에 커다란 쇠기둥들이 꽂혀 있었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고출력 전자파가 이 구역을 외부와 격리시키는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수 킬로미터에 걸친 이 울타리 안에는 저 거대한 검은 도마뱀 괴물 말고도 많은 괴물들이 있었다.
투두두두두……!
그리고 하늘에는 전장을 통제하는 역할로 보이는 헬기 몇 대가 떠 있었고, 보다 저공비행하는 드론들이 그 괴물들에게 총격을 퍼붓거나 폭탄을 투하하는 것으로 특정 방향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몰아간 곳에는 마력을 다루는 병력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용우가 잡은 주시견은 드론들이 드나들지 않은 좁은 골목에 위치한 놈이었다.
‘정말 능숙하다. 괴물을 상대하는 매뉴얼이 완벽하게 잡혀 있다는 건데… 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용우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몸 상태를 보니 봉인에서 풀려나기까지 꽤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체 그 시간이 얼마 만큼일까? 혹시 100년이나 200년이 지나 버린 것은 아닐까?
‘일단은 몇 마리 더 잡아서 회복 좀 하고 빠져나가자.’
방침을 정한 용우는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은신을 유지한 채로 작고 약한, 그리고 드론들에게 포착되지 않은 괴물들만 골라서 사냥한다.
4마리를 잡자 그중 하나에서 손톱보다도 훨씬 작은 마력석이 나와서 흡수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에너지 드레인으로 마력을 포식했다.
“후우, 좋아. 이제야 좀 살겠군.”
당장 쓰러질 것 같았던 상태는 면했다.
[경고한다, 미등록 각성자.]
그런데 그때였다.
그의 위로 날아온 5미터 정도 크기의 드론 한 대에 설치된 마이크를 통해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장 불법적인 전투 행위를 중단, 은신을 해제하고 신병 구속을 받아들이도록! 불응한다면 발포하겠다!]
“어?”
순간 용우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은신 스펠을 발휘하면 완벽하게 모습이 감춰진다. 적외선 시각을 가진 괴물들도 보지 못하는데 들켰단 말인가?
[다시 한 번 경고한다. 미등록 각성자, 은신을 해제하고…….]
자신에게 경고하는 드론을 보며 용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후우, 바빠 죽겠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이래?”
그런데 그때 그의 뒤쪽에 한 사람이 사뿐하게 내려섰다.
동시에 드론이 뿌연 뭔가를 살포했다.
쉬이이익……!
용우는 유독 성분이 있는 가스인가 싶어서 호흡을 차단했다.
그런데 살포된 분말 속에서 용우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게 아닌가?
‘발광체?’
심지어 용우의 몸에 달라붙어서 반짝반짝 빛을 내기까지 하고 있었다.
소총을 든 젊은 남자가 용우를 겨누며 말했다.
“어이, 빨리 은신 풀고 손 들어. 좋게 좋게 가자고. 우리 지금 진짜 바쁘다. 게이트 브레이크 터져서 수습만으로도 미치겠는데 범죄자 상대하느라 총탄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
“…….”
어차피 쓸모없어진 은신이었기에 용우는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들어 올렸다.
‘블링크로 도망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대한 대응책이 있을 수도 있어. 지금 몸 상태로 교전을 벌이기보다는 상황을 보는 게 낫다.’
상대는 어비스의 괴물들과 달리 말이 통하는 인간이었고, 한국어를 쓰는 것으로 봐서 한국인이 확실하다.
‘아마도 여긴 한국이겠지. 그럼 괜히 소동을 일으키는 건 안 좋아.’
용우는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3년간 어비스에서 지옥을 맛보면서 형성된 흉포한 충동이 고개를 쳐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도망치려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어.’
용우는 이 전장에서 본 각성자들의 수준을 바탕으로 그렇게 판단했다.
일단은 정보를 얻어야 한다.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공권력에 신병을 구속당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한 투자다.
“말 잘 들어서 좋네. 수갑 채워.”
소총수가 말하자 뒤쪽에서 은신으로 접근해 온 다른 남자가 용우에게 접근, 양손을 들어 올린 채로 모아서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양다리를 모으게 하더니 발목에도 구속구를 채워서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응?’
그리고 다음 순간 일어난 일은 용우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철컥…….
드론에서 발사된 줄이 수갑과 연결되는 게 아닌가?
그리고 2대의 드론이 추가로 날아오더니 줄을 연결했고, 용우의 머리 위에 삼각형으로 배치된 채로 날아올랐다.
“어, 어어어어?”
드론에 의해 하늘을 날게 된 용우가 깜짝 놀랐다. 이런 식으로 인간을 구속해서 수송한단 말인가? 건물에 부딪치거나 끈이 잘려서 추락하기라도 하면 어쩌라고?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변한 거야?’
용우는 드론에 매달린 채로 전자파 울타리 밖으로 수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