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2화 (2/225)

1

서용우는 눈을 떴다.

기나긴 시간 동안 혼돈 밑바닥에 잠겨 있었던 기분이 들었다.

‘살아 있다.’

마지막 순간을 기억한다.

당초 24만 명이었던 어비스의 전사들 중에 마지막 전투까지 살아남은 것은 용우 혼자뿐이었다.

승산 없는 절망적인 싸움이었지만 용우는 결사의 각오로 맞섰다.

그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비스의 전사들은 전투를 회피할 수 없는 저주에 걸려 있었다. 살고 싶으면 싸워 이겨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마지막 바로 전의 전투에서 30명의 생존자가 용우만 빼고 다 죽은 상황이었다. 용우 혼자서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용우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그동안 모은, 폭발력을 지닌 물질들을 하나로 모아서 전장의 중심부에서 대폭발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자신도 살아날 길이 없는 방법이었지만, 용우는 여기에서 한 가지 도박수를 던졌다.

용우는 어비스에서 ‘스펠’이라 불리는 갖가지 초능력들을 얻었고 그중에는 그 순간에 써볼 만한 것이 하나 있었다.

봉인(封印).

그것은 지정한 대상을 별개의 시공간에 격리시키는 스펠이었다.

용우는 스스로를 대상으로 지정해서 그것을 사용했다.

실패한다면 그대로 폭발에 휘말려 죽을 것이고,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스펠의 효과가 영원히 지속되어서 죽은 것과 다름없는 꼴이 될 수도 있는 도박수였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용우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박에 나섰고…….

“정말로… 돌아온 건가?”

너무나도 오랜만에 본 푸른 하늘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가 납치당했던 이상하고 가혹한 어비스는 언제나 붉은 하늘이 지배하고 있었다.

낮과 밤의 개념조차 없는 핏빛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몇 번이고 하얀 구름이 떠 있는 푸른 하늘과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을 꿈꿔왔는지 모른다.

쿠구구구……!

한참 동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던 용우를 자극한 것은 먼 곳에서 들려오는 굉음이었다.

용우는 흠칫 놀라서 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뭐야?”

그리고 한층 더 놀랐다.

빌딩 사이로 한 줄기 푸른 섬광이 솟구치고 있었다.

투두두두두……!

콰콰쾅!

그리고 중화기로 미친 듯이 사격을 가하는 소리와 폭음이 이어진다.

“…전쟁이라도 났나? 설마 나 없는 사이에 북한이 쳐들어오기라도 한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도심지 한복판에서 저런 소리가 울려 퍼질 이유가 있겠는가?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용우는, 그제야 주변 상황을 인지하고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여긴 뭐야?’

그가 있는 곳은 폐허였다.

용우는 파괴된 채로 무너져 내린 건물들과 녹아내린 철골들의 모습으로 이곳이 파괴된 시가지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정말로 전쟁이 난 건가? 3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용우는 혼란에 사로잡힌 채로 걷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바로 폭음의 진원지였다.

쿠구구구……!

지금까지의 소음들, 중화기를 연사하는 총성과 폭음과는 질적으로 다른 굉음이 울려 퍼졌다.

분명 맨 처음에 들렸던, 하늘로 솟구친 섬광을 목격하기 직전의 그 소리다.

‘저건 설마?’

용우는 또다시 푸른 섬광이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

하늘로 거의 똑바로 쏘아졌던 아까 전과는 각도가 다르다. 훨씬 낮은 각도로 쏘아진 푸른 섬광은 바로 앞에 있던 빌딩에 직격했고…….

콰과과과광……!

그대로 빌딩을 관통하면서 하늘 저편으로 쏘아져 갔다.

‘틀림없어.’

그 광경을 똑똑히 목격한 용우는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스펠이다.’

21세기의 현대 병기가 옛날 SF 영화를 능가하는 수준에 도달했다지만 여전히 광학병기는 꿈의 영역이었다.

게다가 저 섬광이 불러일으키는 파괴 현상은 레이저 병기에 대한 통념과는 동떨어져 있다.

열로 녹여 버리는 게 아니라 순수한 압력만으로 빌딩을 관통한 것이다.

“설마 돌아온 게 아닌 건가?”

지구로 돌아왔다는 생각은 착각일 뿐, 이곳은 여전히 어비스인 게 아닐까? 어떤 요인으로 모습이 변해서 용우가 착각했을 뿐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자 덜컥 겁이 났다.

“…그럴 리가 없어.”

용우는 스스로에게 들려주듯이 중얼거렸다.

“그 엿 같은 동네에는 현대병기 따윈 없었다고.”

그래서 납치당한 24만 명은 마치 중세 시대로 돌아간 것처럼 냉병기로 괴물들과 싸워야만 했다.

본래 사람에게는 불곰만 해도 괴물이나 다름없다. 동물원에서 유리벽 너머로만 봐도 인간이 그 거대한 맹수와 인간이 싸운다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인지 알 수 있으리라.

그런데 용우는 불곰이 아니라 코끼리보다도 몇 배나 거대한 놈들 상대로 칼이나 창 같은 무기로 싸워서 죽여야만 했다.

“후욱, 후욱, 후우……. 좋아.”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가라앉힌 용우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점으로 향했다.

굳이 그쪽으로 뛰어가는 것은 미친 짓으로 보였지만 용우에 한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은신(隱身).

스펠을 사용하자 그의 모습이 허공에 녹아들듯이 사라졌다.

SF 영화 속 광학미채(光學迷彩)와는 달리 윤곽이 보이지도 않고 이동할 때도 전혀 알아차릴 수 없는, 마치 진짜 형체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은 은신이었다.

“크윽…….”

그런 놀라운 능력을 사용한 용우가 비틀거렸다.

‘마력 고갈 현상? 고작 은신 하나 썼다고?’

용우는 어이가 없어서 눈을 감고 감각을 내면으로 향했다. 의료 기기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의 체내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이 능력은 어비스의 전사들은 모두들 기본적으로 터득한 능력이었다.

‘거의 탈진 상태잖아?’

스펠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마력이라는 특별한 에너지가 필요하며, 이 에너지는 어비스의 전사들의 체내에 형성된 특수한 기관을 작동시키면서 발생한다.

그런데 지금 용우의 전신에 골고루 퍼져 있는 그 마력기관이 바싹 말라 있었다.

오랫동안 못 먹어서 영양실조에 걸린 것 같은 상태다.

‘젠장. 봉인되고 오래 시간이 지나서 그런 건가? 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났기에…….’

부상을 제외하면 이런 경우를 경험해 보지 못한 용우는 당황했다.

하지만 부상당해서 약해졌을 때의 경험을 되새기면서 천천히, 그리고 세심하게 마력기관을 다루어 힘을 끌어내었다.

-블링크.

곧 그의 몸이 한 번 깜빡이듯이 공간을 뛰어넘었다.

한순간에 100미터씩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고 목표 지점을 향해 이동한다.

그리고 용우는 곧 아직 멀쩡한 빌딩 옥상에 올라서 전장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투두두두두!

군사용으로 보이는 길이 5미터 정도의 드론(Drone : 무인 비행기)들이 하늘을 날며 기관총을 갈겨대고 있었다.

쾅! 콰아아앙!

그리고 역시 무인기로 보이는, 일반적인 전차보다 훨씬 작은 사이즈의 전차들이 빠른 기동력을 뽐내면서 포를 쏘아대고 있었다.

그 무인 병기들이 교전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말도 안 돼.”

덩치가 4층 빌라만큼이나 큰, 검은 비늘과 홍옥 같은 눈동자의 도마뱀 같은 괴물이었다.

“어째서 저게 여기에 있는 거야?”

용우는 악몽을 꾸는 사람처럼 경악과 불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괴물은 바로 그가 어비스에서 수십 마리도 더 처치했던 바로 그 괴물이었으니까.

쾅!

그때 사방에서 퍼붓는 화력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던 괴물이 움직였다.

포효는 없다. 그저 앞으로 나서며 긴 앞발을 휘둘러서 드론을 후려쳤을 뿐이다.

일격으로 드론이 부서져서 추락했다.

쾅! 쾅! 콰과광……!

무인 전차들 역시 괴물 앞에서는 장난감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의 공격은 괴물에게 아무런 대미지도 주지 못했다. 괴물은 그 사실을 과시하듯이 무인 전차를 들어 올려서 다른 무인 전차를 찍어버렸다.

꽈과과광……!

처참하게 부서진 무인 병기들의 잔해를 넘어서 괴물이 전진한다.

그런데 그때였다.

용우의 눈이 빛났다.

‘사람이다.’

한 사람이 빌딩 사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검은 라이딩 슈트 위에 무거운 장갑을 덧댄 것 같은 옷을 입은 거구의 남자였다.

저런 장비라면 분명 헬멧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맨얼굴을 드러낸 상태다. 그러나 얼굴 반쪽을 물들인 붉은 유혈의 흔적이 그가 왜 헬멧을 벗어던졌는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남자는 손에 든 커다란 무언가를 땅에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그것은 현대의 전장에 등장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무기, 언월도였다.

시퍼런 스파크를 휘감은 길이 3미터의 언월도를 든 남자가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5분도 못 버텨주다니 이거 너무하잖아.”

무인 병기들을 향해 투덜거린 남자가 언월도를 들어 올리고 자세를 잡았다.

4층 빌라만큼이나 거대한 괴물 앞에 인간이 혈혈단신으로 선다.

그야말로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와 마주 본 괴물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인간이, 사실은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크르릉!

먼저 움직인 쪽은 괴물이었다.

그만한 덩치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돌진, 긴 앞발을 휘둘러 남자를 후려친다.

이에 대한 남자의 대응도 놀라웠다.

척 봐도 무거워 보이는 옷과 언월도까지 든 채로 3미터 이상을 도약해서 피해내는 게 아닌가?

화아아아악!

하지만 그것은 괴물이 유도한 회피 동작이었다. 괴물이 기다렸다는 듯 입에서 불을 뿜었고…….

퍼어엉!

대각선 위쪽에서 날아온 푸른 섬광이 괴물의 머리통을 후려쳐서 그것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용우가 깜짝 놀라서 공격 방향을 바라보았다.

‘은신 스펠과 장거리 공격 스펠을 가진 저격수.’

용우가 올라서 있는 것과는 다른 빌딩 위, 한 사람이 라이플을 든 채로 엎드려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용우에게 은신 간파 능력이 있어서 흐릿하게라도 보이는 것이지 일반인은 아예 그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리라.

그리고 그렇게 저격을 당해서 허우적거리는 괴물에게 쇄도한 근접 전투원이 언월도를 후려친다.

콰직!

시퍼런 스파크를 휘감은 언월도가, 중기관총과 전차포로도 흠집을 내지 못한 괴물의 몸을 가르자 새카만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

자신이 알고 있던 현대전과는 너무나 다른 그 광경에 용우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미쳐 버린 건가? 아니면 세상이?”

그것은 용우에게 있어서는 한시라도 빨리 답을 구해야만 하는 의문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