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오크 마법사-360화 (359/360)

30장 마지막 전투(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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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장 마지막 전투(30)

듀로크가 만든 파이어볼이 마몬의 가슴에 있는 구슬과 부딪히는 순간 빛을 뿜어내었다. 그리고 파이어볼에 있는 양기와 듀로크의 강력한 마나가 구슬에 전해졌고 안 그래도 로그의 광선에 의해 불안정했던 구슬에 금이 갔다.

"으아아아!!"

《크아아아악!!》

듀로크는 모든 힘을 다해서 구슬에 자신의 힘을 전달했고 금이 가면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마몬은 비명을 질렀다. 듀로크는 고통스러워하는 마몬의 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마몬! 네놈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와 이곳에 오기까지 희생된 이들에게 너는 끝나는 것이다!"

《본,본인이...여기가..끝이라고?!》

"그래! 그러니 이제 좀 꺼져! 이 자식아!!"

듀로크는 왼손으로 파이어볼을 누르면서 오른손을 크게 위로 올렸고 이내 오른손의 주먹으로 세게 파이어볼을 강타했다. 그리고 듀로크의 주먹이 파이어볼과 함께 구슬을 강타했고 그 순간, 가슴에 있던 구슬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깨졌다.

『끄아아아악!!』

구슬이 깨지는 순간 지옥에서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튀어나왔고 모든 이들이 귀를 손으로 감쌌다. 이어서 구슬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검은 연기는 하나하나가 모두 얼굴의 형상을 갖추고 있었고 그런 연기가 수십, 수백, 수천을 넘었다. 하지만 그런 검은 연기도 이내 단숨에 허공에서 흩어지며 사라졌다.

《힘,힘이..사라진다...내..존재가..사라진다..내가..이런..놈들한테..끝나..다니..말도..안...돼..》

가슴에서 깨진 구슬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마몬의 입에서 하나의 거대한 검은 연기가 나왔다. 검은 연기는 마몬의 모습과 똑같았지만 이내 괴로워하며 몸부림쳤고 작아졌다. 그리고 그 연기도 이내 조그마하게 변하면서 고통의 비명을 질렀고 이내 허공 속에서 사라졌다.

라자드의 몸에서 마몬이 나가자 고룡보다 커졌던 몸도 단숨에 작아졌고 뿔과 피부도 사라지며 원래의 라자드의 몸으로 돌아왔다.

【드디어...끝난 건가?】

"그래...끝났어. 우리의 승리야."

수많은 감정이 담긴 다르디엔의 질문에 듀로크는 대답했다.

"우리의...승리라고?"

"진짜...끝난 것인가?"

"이겼어! 이겼다고!"

"우아아아악!!"

자신들이 마왕을 죽이고 드디어 오랜 전투 끝에 이겼다는 사실을 그제야 피부로 느낀 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는 승리 소식을 듣자마자 마치 실이 끊어진 것마냥 쓰러지는 이들이 있었다.

"다르디엔! 부상자들의 치료를! 심각한 이들부터 우선으로!"

【알겠네!】

듀로크는 다르디엔에게 상황의 정리를 부탁하였다. 듀로크가 직접 그들을 치료할 수도 있었지만 그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정신이 드나?"

"듀로크."

마몬이 사라지면서 정신을 되찾은 라자드가 조용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하지만 라자드의 몸은 이미 생기가 모두 빠져나가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상태로 얼마 가지 않아서 죽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듀로크는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봐주려고 하는 것이다.

라자드는 적이였지만 그의 과거를 보고 동정하는 점도 없지 않아 있었고 지금까지 길었던 전투도 막이 내려 이제는 그저 적과 적 사이가 아니게 되었다. 수많은 이들을 죽이고 학살하며 누구보다 악한 존재이지만 그가 지금까지 겪은 고통을 듀로크만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라자드의 옆에 다가가서 앉았다. 마치 친한 친구의 곁에 있는 것처럼.

"지금 말하는 것은 누구지? 루시폰인가? 아니면 파괴의 인격인 라자드?"

"어차피 두 인격...모두 나다."

"그렇지. 쓸데없는 질문이였군."

듀로크는 라자드의 말에 피식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지나가면서 얘기하는 것처럼 가벼운 어조로 얘기했다.

"왜 마지막에 도와준 것이지?"

"나는 그저 내 몸을 찾으려고..했던 것뿐이다."

"그래?"

듀로크의 말에 라자드가 답변했지만 그는 이내 썩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면...나도 모르게 지치고 있던 것일 수도."

"...그런가?"

"300년..길다면 긴 시간이였지. 그 시간 동안 라티나를 살리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저질러왔다. 하지만...마음 한편으로는 그녀를 살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수도."

"...."

"듀로크. 너도 트레비아의 눈에 들었으니 분명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겠지. 드래곤의 힘을 물려받았다고 했나? 그렇다면 나보다 훨씬 긴 삶을 살겠지. 그게 과연 축복일까? 네 주변의 동료들, 일행, 반려자는 모두 네가 살아가는 동안 모두 떠나갈 것이다. 그것을 너는 혼자 두고 보면서 외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지."

"...알고 있다. 충분히 알고 있지."

"그래...그렇다면 다행이군."

라자드의 몸이 이내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손과 발을 시작으로 먼지가 되고 있었고 그 진행은 점점 팔과 다리를 통해서 전파되고 있었다. 그것을 본 라자드는 자신의 시간이 얼마나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듀로크에게 얘기했다.

"듀로크...네게 마지막으로 부탁해도 되겠나?"

"...좋아. 오랜 악연으로서 함께 한 정으로 들어주겠다. 뭐지?"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두 가지다. 첫 번째는...라티나의 시신을 불태워줬으면 한다."

"시신을?"

"라티나의 시신은 여전히..아키드의 공방에 있다. 지금도..그대로 보존되어 있지. 그런 그녀의 시신을 불태워줬으면 한다. 죽어서라도...그녀를 만나고 싶으니까."

"알겠다. 그 정도쯤이야."

"그리고 두 번째...마지막 부탁이다. 트레비아 녀석에게...한방 먹여주지 않겠나?"

"트레비아에게?"

"그래. 너도 트레비아를 마음에 안 들겠지. 트레비아는 너와 나를 비롯해서 수많은 이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다. 그리고 그 피해자 중 한 명인 네게 부탁하는 것이다. 들어주지 않겠나?"

"그건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하려고 했으니까. 안 그래?"

"당연하지."

어느새 다가온 나미래가 듀로크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리고 그 둘의 대답에 라자드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쉽군. 이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듀로크. 너와 친구가 됐을...수도..있었을...텐데."

라자드의 몸은 이제 가슴을 중심으로 위밖에 남지 않았다.

"너도..고마웠다."

[아니. 충분히 즐길 수 있었으니까.]

"그래...이제...드디어..라..티나를..만날..수...있겠..."

파삭.

라자드의 남은 부위들이 일제히 가루가 되면서 부서졌다. 그리고 라자드의 온몸이 부서지자마자 그의 몸에서 하나의 빛이 생겨났고 그 빛은 일직선으로 하늘을 향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빛은 이내 하늘 위에서 폭발하면서 동시에 주위에 있는 검은 구름들을 일제히 몰아냈다.

화아아악!

지금까지 빛을 차단하고 있던 검은 구름이 단번에 사라지면서 환한 빛이 내려왔고 빛의 폭발로 인해 세레티의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해졌다. 듀로크는 그런 환한 빛이 피부에 따뜻함을 주는 것을 느끼며 얘기했다.

"다음 생에는..꼭 친구가 될 수 있기를..."

"왼쪽 레드 드래곤! 오른쪽 진영으로 가서 켈베로스를 상대해! 자칫하면 밀린다!"

【알겠다!】

"오른쪽 골드 드래곤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친위대 오크들은 모두 정면을 막아! 와이번 라이더들은 공중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들을 계속 상대하고!"

【그러겠다.】

"취익! 알겠다!"

"취직! 맡겨줘라!"

이츠는 끝없이 다가오는 몬스터와 리치, 데스나이트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듀로크를 비롯한 초인들이 라자드를 상대하는 동안 뒤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 자리를 지키며 방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쪽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늘어만 가는 와중에 몬스터와 리치, 데스나이트들은 끝없이 생기며 다가왔다.

아무리 상황을 모두 인지하고 대처법으로 나선다고 해도 한계는 다가왔다. 이미 남은 병사와 오크 그리고 드래곤들은 모두 만신창이였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모래성과 같은 상태였다.

"이츠! 더 이상은!"

앨런이 급한 목소리로 얘기했고 그와 동시에 진영이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이츠는 이를 악물며 실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렇게 절망 속에서 포기하려는 찰나, 하늘의 구름이 한순간 사라졌다.

화아아악!

한순간에 하늘의 구름이 사라지면서 빛이 내려왔고 그 빛을 쐰 몬스터와 리치, 데스나이트들이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키야아악!!"

"[email protected]#%@#$%"

괴로워하던 몬스터와 리치, 데스나이트들은 이내 그 빛 앞에 연기가 되며 사라졌고 갑작스러운 변화에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멍하니 쳐다봤다.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이게 무슨..】

"뭘 그렇게 당황하는 거야? 답은 한 가지밖에 없잖아?"

이츠는 바닥에 몸을 대자로 뻗으면서 얘기했고 이츠의 말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으이구. 드래곤들은 융통성도 없는 거냐?"

【뭐라고?!】

이츠에게 말한 드래곤은 위협을 하는 것처럼 화를 냈지만 그가 이츠를 향해 진심으로 공격할 리는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함께 싸운 정으로 이미 그들은 한몸이 된 동료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말한 대로 답은 한 가지지. 우리가 믿었던 이들이 이겼다는 것. 그것뿐이야."

이츠의 말에 그들은 처음에 믿을 수 없는 모양인지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인간, 오크, 드워프, 엘프, 드래곤 등 종족에 상관없이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껴안으며 기쁨을 나타냈다.

그리고 그런 광경을 보고 이츠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자. 어떻게든 살아남았으니 이제 쉬어야지."

이츠는 그렇게 수많은 종족들이 기쁨을 나누는 가운데 드러누운 채로 잠에 들었다. 그리고 기쁨을 나누는 것은 이곳만이 아니였다.

"하늘이..."

"빛이..내려온다."

성을 수성하며 싸우고 있던 병사들은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내려오는 빛에 자신도 모르게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빛에 괴로워하며 사라지는 몬스터를 눈앞에 멍하니 바라보았다.

성을 수성하기 위해서 수많은 이들이 죽고 상처 입었다. 하지만 끝내 몬스터들은 사라졌고 성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승리를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었고 총사령관인 르는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우리가 이겼다!"

르의 몸은 상처 투성이로 온몸이 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승리에 대한 기쁨으로 아픔을 전혀 느끼지 않았고 거대한 함성을 울부짖었다. 늑대인간의 야성과 지금까지 쌓였던 감정이 터지면서 그의 함성은 병사들의 마음에 새겨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감정을 병사들 또한 느끼면서 동시에 그제야 승리를 인식하며 같이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

살아남은 병사들의 함성 소리에 성과 대기가 뒤흔들렸고 그들은 자신의 옆에 있는 동료들을 껴안으며 기쁨을 표했다. 그리고 그 병사들 중에서 클레아도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듀로크 오빠...해냈군요."

클레아는 드디어 듀로크를 만난다는 것과 살아남았다는 것에 무한한 행복을 느꼈고 그렇게 전쟁은 끝이 났다.

전쟁이 끝나고 며칠 후...

"여긴가?"

듀로크는 자신이 도착한 곳을 보며 얘기했다. 이제 와보니 참 감회가 새롭다고 생각하는 듀로크였다.

전쟁이 끝났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바로 한 것은 사망자 확인과 부상자의 치료였다. 그리고 병사들 중에서도 사망자가 많이 나왔지만 초인들 중에서도 사망한 자가 나왔다. 레이트와 타노스, 그리고 크리드가 사망했다.

모두 나이트 왕국의 초인들로 아무드 국왕은 눈물을 숨기지 않으며 슬퍼했고 메스 또한 자신의 스승과 제자를 손수 묻어주었다. 물론 초인과 드래곤들 중 부상자를 찾지 않는 것이 쉬울 정도였다.

그렇게 많은 생명들이 죽었고 희생되었다. 그들을 위해서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그들을 잊지 않고 추모했다.

그렇게 죽은 자들을 위한 슬픔을 나누고 모든 이들이 승리했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기쁨을 표현했다. 듀로크 또한 눈물을 흘리며 오는 클레아와 같이 기쁨을 만끽했고 자신을 끝까지 믿어준 동료들에게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시간 지나서, 사망자와 부상자들을 모두 처리하고 모든 이들이 자신의 갈 길로 가려고 할 때 듀로크는 그들에게 승리의 축제를 열자고 제안했다. 듀로크의 제안에 놀랍게도 축제를 여는데 한 명도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 그들도 지금이 아니면 이렇게 모든 종족이 만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금까지 함께 한 정으로 곧바로 이별하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거대한 축제를 열기로 했고 그 축제를 여는 사이에 듀로크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

"아키드의 공방."

라자드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키드의 공방과 실제로 와서 보이는 공방은 조금 달랐다. 왜냐하면 라자드의 기억 속과 현재의 시간 차이는 꽤 컸고 그 결과, 공방 전체가 낡아서 지금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눈앞에 보이는 문은 전혀 녹슬지 않고 기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라자드가 이 문에 얼마나 공을 세워서 마법진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라자드. 네 부탁을 위해서 해제하겠다."

그의 소중한 이가 있는 만큼 마법진은 엄청난 수식과 노력의 흔적으로 가득했고 그로 인해 해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듀로크도 몇날 며칠이 걸릴지 가늠조차 안 될 정도였다. 물론 그것은 그의 기억을 보지 않았다는 조건에서였다.

"이것도 미리 예견하고 내게 보여줬던 것은 아니겠지?"

듀로크는 충분히 있음직한 추측을 하면서 마법진 해제에 들어갔다. 기억을 근거로 만든 것을 역추적하면서 해제하였고 마법진의 구성이 워낙 복잡해서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좋아."

끼이익.

마법진의 해제가 끝나자마자 오랜 세월로 인해서 녹슨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듀로크는 문이 열린 사이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고 라이트 마법을 사용하여 안을 밝혔다.

내부에는 다양한 마법 도구와 그걸 보좌하는 물품으로 가득했는데 여전히 가동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가동시키게 하는 마나석은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며 영구히 에너지를 공급할 것이고 그 마나석을 만들기 위해서 라자드가 얼마나 고생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부의 중심에는 하나의 투명한 관이 있었다. 투명한 관의 겉은 먼지가 쌓여서 안이 보이지 않고 있었는데 듀로크는 그 안에 있는 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

"네가...라티나인가?"

듀로크는 손으로 먼지를 걷어내었다. 투명한 관 내부에는 라자드의 기억 속에 봤던 모습 그대로인 라티나가 존재하고 있었다. 라자드가 그녀의 몸을 치료해서 그런지 그녀의 피부에는 상처 하나 없이 깔끔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몇백 년 이상을 관에서 잠자고 있는 상태로 영혼이 남아있는지도 몰랐다.

물론 이미 죽은 몸뚱어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불과 죽은 몸뚱어리라 하더라도 라자드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고 그가 죽은 지금, 그녀 또한 그의 곁으로 보내줘야 한다. 그렇기에 듀로크는 주저 없이 관을 향해 손을 들었다.

"오랜 기다림을 이제 끝내주겠다. 비록 살아서 만나지는 못하겠지만 이제 그를 만나러 보내주겠다."

듀로크는 관을 향해 파이어볼을 사용했고 파이어볼은 관은 물론이고 주변 마법 도구와 물품을 향해 전파되었다. 불은 빠르게 단번에 번져나갔고 듀로크는 불타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때 듀로크의 귀에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워요.]

단 한마디였지만 듀로크는 그 목소리를 정확히 들을 수 있었고 그 목소리의 주인은 한 명밖에 없었다. 듀로크는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얘기했다.

"천만에. 이제 그와 만나서 함께 행복하게 살라고."

듀로크는 불꽃 속의 일렁임이 마치 고개를 수그리는 것처럼 움직이고 사라지는 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듀로크는 미련을 가지지 않고 그 장소에서 멀어져 갔다. 이제 그가 할 일은 승리의 축제를 즐기는 것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 가지가 또 남아있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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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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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1)★

라이언 왕국의 왕성. 왕성에는 놀랍게도 발 디딜 곳조차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존재들이 몰려있었다. 그들은 인간, 드워프, 엘프, 오크, 드래곤 등 다양한 종족들로 나누어져 있었고 그들은 모두 서로서로가 부대끼며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은 각자 크기와 종료 모두 다른 음식과 술을 든 채로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많은 존재들을 앞두고 듀로크는 플라이 마법으로 하늘에서 바라보며 얘기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싸움이 있었고 수많은 이가 희생되어 죽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승리할 수 있었고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후세들을 위해서 자랑스러운 역사를 남길 수 있게 되었지. 자. 모두 잔을 들어라!"

듀로크는 그 말을 하며 잔을 들었고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똑같이 듀로크처럼 잔을 들었다.

"희생한 전우들을 위하여."

""희생한 전우들을 위하여!""

"살아남은 우리와 동료를 위하여."

""살아남은 우리와 동료를 위하여!""

"오늘은 승리의 축제다! 순수하게 즐기고 마셔라! 오늘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즐기는 것이다!"

듀로크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 함성을 지르며 축제의 시작을 알렸고 동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듀로크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플라이 마법으로 내려와서 걸어갔다.

"정말...다시금 실감이 나는군."

만면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는 이들을 바라보니 듀로크는 자신들이 승리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듀로크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다르디엔. 잘 즐기고 있는 거지?"

【당연하지.】

다르디엔은 듀로크의 말에 거대한 술통을 손으로 들며 다가왔고 듀로크는 자신의 술병을 술통에 부딪혔다. 그리고 둘 다 단번에 원샷으로 술을 마셨고 듀로크는 입가를 닦으며 얘기했다.

"다른 드래곤들은?"

【각자 잘 즐기고 있지. 저길 봐라.】

다르디엔이 가리킨 곳에는 제라서스와 다미우스, 데미가스 3명이서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그 근처에 성룡의 드래곤들이 마몬과 싸웠던 것에 대해서 물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세트리나는 엘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아그리마는 재밌는 것을 찾기 위해서 호기심 가득 한 눈빛으로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비아토스는 마몬과 싸웠을 때와 완전히 정반대로 조용히 언덕 위에서 고독을 즐기고 있었다. 마몬과의 전투 이후에 비아토스의 몸은 죽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그래서 드래곤들이 붙어서 치료한 결과 겨우 저승에서 발을 뺄 수 있었고 흉터도 상당수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래도 전보다 비아토스의 몸에 있는 흉터는 더 늘어났고 변함없이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인해서 그런 비아토스와의 거리도 줄었고 지금도 언덕 위에 혼자 있는 비아토스에게 다가가는 이들이 있었다.

비아토스는 그런 이들을 보고 고개를 돌리며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전보다 확연히 나아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다행이군. 그러는 너도 즐기고 있는 거겠지?"

【그럼. 걱정하지 말게나. 이런 축제를 맞이하면서 누구보다 기쁜 것이 나니까.】

"그러게."

듀로크는 모든 종족들을 이끈 대표자와 같은 존재였고 다르디엔은 드래곤의 대표자였다. 같은 대표자로서 막중한 책임을 이제 모두 내려놓아서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심정을 서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드래곤들과 함께 돌아가서 원래대로 조용히 살아야지. 나도 이제 살날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네. 드래곤 로드라는 자리도 넘겨주고 여생은 조용히 보내려고 하네.】

"그래. 나도 몸은 오크지만 베아트리스의 힘을 이어받아서 언제까지 살지 몰라. 그래서 나중에 시간 나면 찾아가도록 할게."

【기대하도록 하겠네.】

"...그러고 보면 너와도 첫 만남은 좋지 않았지."

【후후. 손을 잡지 않으면 같이 죽겠다고 했을 때는 조금 식은땀이 나긴 했지. 물론 이런 결말이 올 거라는 것도 상상힞 못했지만.】

"그러게."

듀로크는 다르디엔과 있었던 일을 빠르게 돌이켜 보며 미소를 지었다.다르디엔은 술통을 들었고 듀로크도 같이 술병을 들어서 마셨다.

그리고 잡다한 대화를 나눈 후에 듀로크는 다르디엔에서 멀어졌고 다시 길을 걸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루드의 국왕 루키드가 마법사들과 함께 열변을 토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아무드와 메스가 술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그 옆에서 베로나가 대결에 갑자기 합류했고 보고 있던 수인족과 기사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듀로크는 그런 술 대결 장소로 걸어가서 이내 술병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얘기했다.

"잠시 대결에 합류해도 되겠나?"

"듀로크!"

"당연히 되고 말고. 자, 자리에 앉게나."

메스는 자리 하나를 비워주며 얘기했고 듀로크는 테이블에 합류했다. 아무드는 이미 만취한 상태인 모양인지 제대로 된 정신이 아니였고 그 반대로 메스는 멀쩡한 상태였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아무드 국왕은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테이블에 엎드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듀로크는 술을 마시며 메스에게 얘기했다.

"뭐가 죄송하다는 거야?"

"내 스승과 제자에게 얘기하는 것이겠지."

"...그렇군."

듀로크는 메스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는데 그런 듀로크의 등을 메스가 손으로 쳤다.

쾅!!

"윽! 뭐야?!"

"푸하하핫!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이미 지난 일이고 죽은 제자와 스승님도 모두 자신이 선택한 것이니까. 특히 두 스승님은 오히려 웃으면서 죽었지. 만족스러운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냐?"

"그래. 그보다 이제 전쟁도 끝났으니 우리 둘의 결혼식에 참석할 거지? 참석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못한다?"

메스는 베로나와 어깨동무를 하며 얘기했고 메스의 말에 듀로크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아직 클레아와 결혼식도 안 했거든?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매트도 할 거라고."

"그러면 다 같이 하면 되겠군. 어떠냐?"

"내 의견은 안 물어보냐?!"

베로나는 주먹으로 메스의 얼굴을 가격했고 메스는 잠시 잊고 있었다면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메스. 그럼 너는 이제 뭘 할 생각이야?"

"글쎄...베로나와 결혼하고 은퇴하여 조용히 살아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그러면 몸이 너무 근질거려서 살지 못하겠지? 새로운 인재를 찾거나 혹은 수련이나 더 할 생각이다."

"베로나는?"

"나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게덴의 여왕이니까 조금 바빠서 힘들 수도."

"그렇군."

듀로크는 다시금 이들과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를 죽이려고 싸웠었는데 그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지금은 끝까지 함께 싸워준 동료였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다시금 인연이란게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메스. 너도 나이가 있으니까 무리해서 마시지는 말고."

"푸하하핫! 그래. 그 말 새겨듣도록 하지."

"그럼 베로나와 함께 잘 즐기도록 해. 나는 다른 이들도 만나러 갈 테니까."

"알겠다. 하지만 그 전에...알지?"

메스는 한 손으로 술통을 들고 테이블에 올렸고 그 행동에 주변 기사들과 수인들이 모두 함성을 지르며 듀로크를 바라보았다. 듀로크는 메스의 행동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보다가 이내 술통을 들어서 단번에 들이켰다. 그런 듀로크의 모습에 모두 함성을 질렀고 원샷으로 마신 듀로크는 술통을 세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꺼억! 이제 됐겠지?"

"이래야 듀로크지! 푸하하핫!"

메스는 듀로크의 등을 치며 일으켜 세웠고 듀로크는 그 자리에서 멀어져갔다. 아니, 그 전에 하고 싶은 얘기를 듀로크는 얘기했다.

"메스, 베로나."

"응?"

"왜?"

"고마웠다. 아무드 국왕에게도 전해줘."

듀로크는 그 말을 끝으로 손을 흔들며 자리를 옮겼고 메스와 베로나는 그런 듀로크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자리를 옮기면서 듀로크는 주위를 둘러봤고 지나가면서 듀로크는 단둘이서 구석에 앉아있는 카르티네와 맥을 발견했다. 그 둘은 소소하게 음식을 먹고 있었고 맥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듀로크는 조용히 그들에게 다가갔고 카르티네는 그런 듀로크의 접근을 눈치채고 고개를 들었다.

"듀로크."

"카르티네. 그동안 별일 없었지?"

"네가 싸우는 동안 나는 그저 라이언 왕국에서 네가 부탁한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저 너와 맥이 잘 이겨내리라고 믿는 것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지."

"믿었던 것에 보답했으면 됐잖아? 그리고 준비한 것은 됐어?"

"나 혼자서는 완전히 완성시키는 못했지. 하지만 로그라고 했나? 그 녀석의 도움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고맙다."

"예? 뭘 준비했다는 거에요?"

맥은 자신이 모르는 내용을 듀로크와 카르티네가 말하는 것을 듣고 물었다.

"맥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내용이다."

"에에? 그런게 어딨어요?"

"진짜다. 그렇지? 듀로크?"

"그래. 맥.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몰라도 괜찮은 내용이지."

"듀로크님도 그렇게 말하신다면야...알겠어요.

맥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볼을 부풀리며 여전히 불만에 차 있는 표정이였다.

"카르티네. 너는 이제 뭘 할 생각이지?"

"계약상으로 나는 라이언 왕국을 떠나지 못하니 왕국에서 지내며 살아야지. 그리고 그동안은 맥과 여생을 보낼 거고."

"정말요?!"

"그래. 네가 얼마나 살지는 모르겠지만."

우웅...

그때 맥의 허리춤에 있는 마검 오블리가 흔들렸다.

"뭐라는 거냐?"

"제가 반마족이 됐으니까 오래 살 수도 있을 거라는데요?"

"그렇군. 확실히 일반 인간보다는 훨씬 많이 살겠지. 오히려 카르티네가 남은 인생보다 더 많이 살 수도?"

"예? 그건 싫은데..."

"왜?"

"그럼 르티네 누나가 죽는 것을 지켜봐야 하잖아요. 그건 싫어요."

"...훗. 그것부터 생각하는 거냐? 참으로 순진하구나."

듀로크는 아직 순진한 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그런 순진한 맥에게 이번 전투에서 얼마나 도움을 받았는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런 맥에게 고마움과 대견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카르티네. 맥은 이번 전쟁에서 정말 잘 싸웠어. 맥 덕분에 위기를 벗어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야."

"그런가?"

"그래. 그래서 너희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해줄 수 있는 선에서 모두 해줄게. 원하는 것이 있어?"

"원하는 것이라..."

카르티네는 듀로크의 말에 하늘을 향해 고개를 올렸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카르티네는 고개를 내리고 듀로크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나는 그저 맥과 생활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만 있으면 된다. 거기에 그저 여흥을 더할 거리만 있으면 충분하다."

"네가 그렇다면 알겠어. 그럼 조금 있다가 궁금하면 잠시 들르도록 해."

"알겠다."

"맥. 너도 오늘 축제를 충분히 즐겨. 그리고 고마웠다."

"헤헤. 천만에요."

맥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고 듀로크는 다른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맥은 듀로크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고 그런 모습에 듀로크는 입가를 올렸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다니던 듀로크는 한쪽의 분위기가 다른 곳보다 더 달아오른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곳에 쉐이드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듀로크는 다음 목표를 쉐이드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곳에는 암살자들과 라이언 왕국의 기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이츠와 앨런, 그리고 르와 제이슨이 한 테이블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 테이블에서 이츠의 연인인 위스퍼와 같은 엘프인 밀리나가 함께 있었고 하프 오우거인 쿠르는 조용히 커다란 술통을 들며 입에 붓고 있었다. 쉐이드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혼자 동떨어져 있었는데 듀로크가 온 것을 누구부돠 빨리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듀로크. 왔나?"

"그래. 잘 즐기고 있는 거지?"

"보면 알지 않은가?"

쉐이드는 이츠를 가리켰고 이츠는 술병을 들고 테이블에 다리를 올려두며 소리를 질렀고 암살자들이 모두 그에 호응하며 호쾌하게 입에 술을 부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질세라 르와 제이슨도 똑같이 술을 부었고 기사들도 똑같이 호응했다.

"훗. 그런 것 같군."

듀로크는 그들이 즐기는 모습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쉐이드를 바라보았다.

"쉐이드. 이젠 넌 뭘 할 거지?"

"뭘 할 거냐고?"

"전쟁은 이제 끝이 나고 평화가 지속될 거야. 언제까지 지속될 줄은 모르겠지만 아마 상당히 길겠고 네가 움직일 일도 거의 없어지겠지. 물론 그렇다고 암살단이 해체되는 것은 아니지만."

"흐음...평화를 즐기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래도 그것은 성미에 맞지 않을테니 싸움을 찾아 떠나지 않을까? 암살단은 이츠나 앨런에게 넘기고. 아무리 평화가 지속된다고 해도 싸움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확실히. 하지만 그런 싸움이 네 욕구를 충족시켜줄까?"

"글쎄. 그것은 실제로 겪어봐야 알겠지. 나도 과거에는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하긴."

처음에 자신을 죽이려고 온 쉐이드와 이렇게 깊은 관계가 될 거라고는 쉐이드와 거래한 듀로크조차 예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끝까지 함께 싸워서 치열했던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아서 이렇게 옆에 있었다.

"쉐이드."

"뭐냐?"

"고맙다."

타탁!

듀로크의 말을 들은 쉐이드는 옆에 위험한 것이 있는 것처럼 듀로크의 옆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쉐이드는 진심으로 식은땀을 흘리면서 듀로크에게 얘기했다.

"갑,갑자기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군. 소름이 돋으니까."

"...푸하하핫! 진심으로 그렇게 꺼려하면 오히려 더 하고 싶은걸?"

"농담은 그쯤 하라고."

쉐이드는 진심으로 그만해달라는 표정이었고 그 표정이 너무나 웃긴 듀로크는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듀로크는 그 말을 끝으로 쉐이드에게서 몸을 돌렸다.

"다른 녀석들에게도 고마웠다는 말을 전해줘."

"알겠다."

"그리고 너도 도와줘서 고마..."

"그만하라고!"

쉐이드의 말에 듀로크는 다시 한번 웃으며 빠르게 움직이며 멀어졌다. 그리고 듀로크는 다음에는 누구를 만날까 고민했고 지나가면서 보이는 익숙한 얼굴에 발걸음의 방향을 잡았다.

"피터. 벌써 한계인 것은 아니겠지? 자자, 더 들이키라고."

"끄윽. 그레이. 좀 봐달라고."

"이런 좋은 날에는 사양하지 않는 거라고. 안 그래? 스티아."

"뭐...오늘만큼은 마셔도 되지 않을까?"

"봐봐. 스티아도 그렇잖아? 설마 영감은 다른 생각인 것은 아니겠지?"

"후훗. 그럴 리가. 약속한 대로 내가 좋은 술을 가져왔는데 내가 말리겠는가?"

"봤지? 자자. 피터. 모두 너가 마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우윽..."

피터는 한계에 거의 부딪혔지만 주변 동료들의 응원에 겨우겨우 술병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몸이 입에 술병을 가져가는 것에 거부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움직임이 멈췄다. 피터는 이 술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그의 손에 있던 술병을 누군가가 집어갔다.

"어?"

꿀꺽. 꿀꺽.

피터의 손에서 사라진 술병을 향해 모두 시선이 돌아갔고 그 주인공인 듀로크는 술병에 든 술을 원샷하면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푸하아아!"

"듀로크님!"

"잘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너무 무리는 하지 말도록. 알겠나?"

"예!"

"그리고 너희들이 모두 살아남아서 기분이 좋군. 수고했다."

듀로크의 수고했다는 말에 4명은 가슴에서 뭔가 찡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닙니다! 오히려 듀로크님 덕분에 이 평화가 오게 된 겁니다!"

"맞습니다! 듀로크님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너희들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지휘관도 나야.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

"그렇지.."

"그렇지 않습니다!"

피터는 빨간 얼굴로 강력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이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듀로크님이 아니였으면 이런 평화가 찾아오지도 않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상자가 생겼을 겁니다! 듀로크님이였기에 이 정도로 끝낼 수 있었던 겁니다!"

지금까지와 다른 피터의 모습에 모두 놀랐고 피터는 그대로 그레이의 손에 있는 술병을 뺏어서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들이킨 술병으로 테이블에 세게 내려놓으며 얘기했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단 한 사람도 듀로크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듀로크님이 이끌어주지 않았으면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알겠어요?!"

피터는 듀로크에게 얼굴을 들이밀었고 그런 피터의 기세에 듀로크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알겠다."

쿵!!

듀로크의 말이 끝나자마자 피터는 테이블에 고개를 박으며 정신을 잃었고 그것을 본 이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어지간히 말하고 싶었나 보군."

"그러게 말입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듀로크님. 제 한 잔을 받아주시겠습니까?"

"당연하지."

그레이는 듀로크에게 술 한잔을 따라주었고 듀로크는 가볍게 들이켰다.

"듀로크님. 저도 피터와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십쇼."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런데 자네는 이제 뭘 할 건가? 전쟁도 끝났으니 라이언 왕국에 계속 있을 생각인가?"

"아마...그러지 않을까요? 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긴 한데..."

"하고 싶은 거라고?"

"예."

그레이는 그 말을 하면서 스티아를 쳐다봤고 그 시선의 뜻을 눈치챈 듀로크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그레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열심히 해봐. 응원할 테니까."

"감사합니다!"

"뤼나티크도 마법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나 물어보고 스티아 자네도 조금은 그와 잘 지내도록 해."

"예! 꼭 찾아뵙겠습니다!"

"예?"

"그럼 이만 갈 테니 축제를 잘 즐기도록."

듀로크는 감명받은 뤼나티크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스티아를 두고 다른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얼마 가지 않아서 또 다른 인물을 볼 수 있었다.

"벨치스 국왕."

벨치스 국왕은 매트와 에밀리와 함께 얼굴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웃고 있었고 그 옆에는 소크라 백작과 소크라가 있었다. 듀로크는 조용히 벨치스 국왕의 뒤쪽으로 다가갔고 그들이 하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크하하하. 그럼 언제 식을 올릴 생각이느냐?"

"아직 딱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에밀리. 자네는 생각해둔 날짜가 있는가?"

"저,저도 따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전하. 두 분을 재촉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예. 이제 막 전쟁이 끝났으니 시간은 많습니다. 기다리는 것도 저희 연장자가 할 일이죠."

"하하하! 내가 조금 조바심을 낸 것 같군. 자네 말을 명심하겠네."

"감사합니다."

"나도 그 말에는 동의해."

"듀로크!"

"듀로크님!"

듀로크의 목소리에 모두 듀로크에게 시선을 돌렸고 뒤늦게 알아차린 벨치스 국왕은 두 팔을 벌려 그를 꽉 안았다.

"잘 왔네! 이 축제의 영웅이자 주인공 아닌가? 자. 모두 잔을 들게나!"

벨치스 국왕은 잔을 들며 얘기했고 그에 맞혀서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두 그에 호응했다.

"우리의 승리를 이끌어준 듀로크를 위하여!"

""듀로크를 위하여!""

술을 단번에 들이켠 벨치스 국왕은 듀로크에게 어깨동무를 하였다.

"자네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네. 이런 날에 함께하지 않으면 섭섭하지 않은가."

"이래 봬도 몸이 하나여서. 주위를 돌아다니다 보니 지금 오게 되었어."

"듀로크 오빠. 저도 있다고요."

소피아는 볼을 마치 복어처럼 부풀리며 불만을 표현했고 그 모습에 듀로크는 소피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미안, 미안. 그동안 잘 지냈니?"

"예. 듀로크 오빠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으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버지를 도와주면서요."

"그래?"

"소피아의 말대로네. 이번에 소피아가 있어서 정말로 많은 도움을 받았지. 그러는 자네도 힘든 싸움을 한 것 같네만?"

"치열했지. 지금 살아있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이번 싸움으로 잃은 것도 있지만 깨달은 것도 있었어."

"깨달은 것? 그게 무엇인가?"

"완전한 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자네?"

소크라는 한층 더 깊어진 듀로크의 눈을 보며 놀랐고 듀로크는 소크라 백작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잔을 들었다.

"이런. 내가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을 했군. 다시 말을 돌려서..매트와 에밀리의 결혼식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저쪽에서 메스가 함께 하는 것은 어떠냐고 물어보던데? 나와 클레아, 메스와 베로나. 그리고 너희 둘이."

"오! 6명이 동시에?!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하지만 과연 6명이 모두 동의할까?"

"그건 이 둘의 의견도 들어봐야지. 물론 지금 답을 안 줘도 돼. 충분히 생각해. 급한 것은 아니니까."

"예. 에밀리 누나와 함께 고민해보겠습니다."

"그래. 그런데...너희들 진짜 결혼하기로 한 거야?"

"그렇게...약속했으니까요. 그렇지?"

"예. 그리고 그 약속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듯이 얘기하는 에밀리와 다르게 매트는 자신 있게 답변했다. 그런 모습에 듀로크는 휘파람을 불었고 벨치스 국왕은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화목한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었는데 듀로크를 향해 달려오는 한 인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인기척을 느낀 듀로크는 그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다가오는 인물을 몸으로 받아내었다.

"스승님!"

"로아프. 잘 있었느냐?"

"예! 스승님이 돌아오실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그동안 전진도 있었겠지?"

"그럼요. 스승님에게 마법을 배운 제자로서 실망시킬 수 없는걸요?"

"마법 수행도 좋지만 네 나이 때는 노는 것도 중요하단다.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

"여기 있잖아요. 제 친구."

로아프는 소피아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았고 소피아는 듀로크에게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둘이 어느새 그렇게 사이가 좋아진지 몰랐네."

"하하하. 소피아에게도 친구가 생겨서 나도 얼마나 기뻤는지 듀로크 자네는 모를 거네. 그리고 둘은 참으로 서포트를 잘했지."

"굉장한걸? 둘 다?"

"에헴!"

"별 거 아니에요."

로아프는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얘기했고 소피아는 조금 부끄러워했다. 듀로크는 술병에 있는 술을 한번 들이켠 후에 입을 열었다.

"소크라 백작. 자네는 이제 뭘 할 건가?"

"전쟁이 끝나고 난 지금 이후를 말하는 건가?"

"응."

"나는 이 왕국을 더 성장시키도록 해야지. 그리고 소피아가 자라는 것을 바라볼 거고."

"소피아는?"

"저는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저는 스승님보다 강한 대마법사가 될 거예요!"

"그렇구나. 매트와 에밀리는?"

"저는 에밀리 누나와 행복하게 사려고 합니다."

"저,저도요."

"벨치스 국왕은?"

"나는 이제 자리에서 물러나서 매트에게 물려줄까 싶네."

"전하?"

"물론 둘이 어느 정도 신혼 생활을 나눌 때까지는 있을 생각이네."

"그렇군."

듀로크는 그렇게 또 이 테이블에서 쓸데없는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듀로크는 이내 또 익숙한 얼굴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자리에서 일어서기로 결정했다.

"그럼 이만 가볼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까."

"영웅을 혼자서 독차지할 수는 없지. 이만 가보게나."

"조금 있다가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둘 다 이 축제를 즐기렴."

"예."

"그럴게요!"

듀로크는 양손으로 로아프와 소피아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에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에 사람이 꽉 차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는데 듀로크는 플라이 마법으로 올라가서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지나가는 인물을 향해 듀로크는 얘기를 걸었다.

"쥬디아. 데이트 중인가?"

"듀,듀로크님!"

쥬디아는 집사와 함께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듀로크를 보고 놀라워하면서 팔짱을 뺐다. 그것을 본 듀로크는 피식 웃음을 내보냈다.

"숨길 필요는 없는데. 나는 남 연애를 뭐라고 하는 성격은 아니거든."

"아,아닙니다. 무,무슨 일이신가요?"

"그냥 지나가는 길에 보여서. 참, 그러고 보니 부탁한 일은 됐어?"

"예. 오늘 불렀으니 아마 시간에 맞혀서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마워. 그럼 축제를 즐기도록 해. 네가 이제 하고 싶은 것은 뭔지 알았으니까.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예?"

"아니야. 그리고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당분간 휴가 쓰고 연애를 즐기도록 해. 알겠지?"

"..감사합니다."

쥬디아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대답했고 듀로크는 웃음을 지은 얼굴로 조용히 그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리고 얼마나 걸어갔을까. 옆에서 갑자기 한 남성이 날아왔고 듀로크는 남성을 손으로 가볍게 받아든 후에 남성을 쳐다보았다.

남성은 이미 만취된 상태로 정신을 잃고 있었고 날아온 것에 비해서 몸에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그리고 남성이 날아온 방향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고 듀로크는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하하핫! 마셔라! 마셔! 다음은 누구냐?!"

"제가 도전하겠습니다!"

"좋아! 빨리 올라와서 덤벼봐라!"

거대한 테이블 위에 헤츠가 올라가서 도발하고 있었고 그 도발에 용병 한 명이 테이블에 올라갔다. 그리고 그 둘은 거대한 술통을 들어서 들이키기 시작했고 결국 용병은 술을 모두 마시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그것을 본 헤츠는 웃음을 터트리고 술통으로 용병을 가격했다.

쾅!!

"푸하하핫! 이것밖에 되지 않는 거냐?!"

술통에 맞은 용병은 밖으로 날아갔고 듀로크는 그 광경에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이런. 조금 과격한 것 같지만 오늘이니까 봐주도록 할까?"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맙군."

"오? 모리스와...아르셰?"

듀로크는 어느새 다가온 모리스를 볼 수 있었는데 모리스의 옆에는 아르셰가 서 있었다. 그리고 아르셰는 모리스의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듀로크를 보고 부끄러운 것처럼 모리스의 뒤로 숨었다.

"너희 둘 그런 사이였냐?"

"그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아니. 그저 의외여서 그런 것이지. 아르셰도 임자를 찾아서 다행이다."

"감,감사합니다."

"...모리스. 왼팔은 괜찮나?"

모리스의 왼팔은 이번 전쟁 때 잘리고 파괴돼서 복구가 불가능했다. 다행히도 검을 쓰는 오른팔이 아니라는게 불행 중 다행이지만 외팔로 생활하면서 불편한게 없을 리가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편한 것이 있긴 하지.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내 왼팔 대신이니까."

"푸핫! 네가 팔불출이 될 줄이야. 아르셰는 물론 알고 있겠지만 다른 종족 간의 연애가 얼마나 힘들지는 너도 알고 있겠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 됐고. 그럼 둘은 이제 상당히 먼 장거리 연애를 하겠네?"

"그래서 한동안 라이언 왕국에 있을까 고민이다. 아니면 그녀가 우리 왕국에 와도 되고."

"흐음...아르셰는 상당한 인재고 뱀파이어들의 리더여서 그건 안 되겠는데?"

"듀로크님?"

"...진짜로?"

듀로크의 말에 아르셰와 모리스가 진심으로 말하는 거냐고 묻는 것과 같은 표정을 지었고 그런 표정에 듀로크는 피식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전쟁도 끝났으니 괜찮겠지. 마음대로 해."

"..훗. 듀로크. 농담도 늘었군."

"성장하는 것은 무력뿐만이 아니니까."

듀로크는 술잔을 들었고 그 모습에 모리스는 남은 한쪽 팔로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둘은 술잔을 서로 가볍게 부딪친 후에 단번에 술을 들이켰다.

"크아아!"

"푸우!"

술을 들이킨 듀로크와 모리스가 한숨을 내뱉었고 듀로크는 모리스의 어깨를 탁 치며 얘기했다.

"내 부하를 울리지 않도록 하라고."

"명심하지."

"그럼 이만 갈게. 축제를 잘 즐기도록 해. 아르셰도 모리스를 잘 대해주고."

"예!"

듀로크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듀로크는 이내 멀리서 느껴지는 친숙한 기운에 발걸음을 돌렸고 얼마 가지 않아서 그는 나미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미래는 돼지 한 마리를 한 손으로 들고 뜯어먹고 있었는데 듀로크가 온 것을 보고 돼지 한 마리를 한입에 삼키며 얘기했다.

"우걱..우걱...뭐야?"

"아니. 그냥 기운이 느껴져서 왔는데...경이적인 광경인데?"

"한 번에 먹는 거 처음 보냐? 아직 간에 기별도 차지 않았구만."

나미래는 그 말을 하면서 또 다른 돼지를 향해 손을 뻗었고 듀로크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미래는 돼지를 또 입에 넣다가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는 것처럼 손바닥을 쳤다.

"그러고 보니 네 일행들이 저쪽에 있는 것 같던데? 오면서 봤었어."

"어디라고?"

"아니다. 내가 안내해줄게. 따라와."

나미래는 양손에 돼지를 하나씩 잡고 물어뜯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나미래의 포스에 엄청난 인파로 가득 찼던 길이 마치 파도에 갈라지는 것처럼 두 갈래로 퍼졌다.

"듀로크."

"응?"

"준비는 잘 돼가?"

"카르티네와 쥬디아에게 부탁했으니까 됐을 거야. 로그도 함께 했으니까 확실하겠지."

"나도 부르는 거 잊지 않았겠지?"

"당연하지. 그러니 내 신호에 맞혀서 오기만 하면 돼."

"알겠어."

나미래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듀로크는 그녀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기로 하였다.

"나미래. 너는 이제 뭐 할 거야? 전쟁도 끝났는데."

"글쎄...다시 산에 처박히지 않을까?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아!"

"응?"

"그러고 보니 아까 헤츠가 자신의 왕국에 올 생각 없냐고 하던데. 나를 왕비로 맞이하고 싶다거나 뭐라나."

"진짜로?"

"응. 리얼로."

"그래서 뭐라고 했어?"

"생각해본다고는 했는데 뜬금없기도 하고. 아직까지는 와닿지 않더라고."

"잘 생각해봐. 우리 같이 평범하지 않은 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 테니까."

"알고 있어."

나미래의 표정을 본 듀로크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고 어느새 나미래와 듀로크는 일행들이 대화하는 목소리가 귀로 들을 정도로 가까워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주변 오크들이 술통에 얼굴을 처박으며 먹고 있었고 와이번들이 고기를 물어뜯기 위해서 몸을 부대끼고 있었다.

또한 취해서 주먹으로 서로를 가격하는 오크들도 있었고 그것을 본 오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술을 들이켰다. 거기에 드워프까지 합세하여 난장판을 이루고 있었고 듀로크는 이 모든 축제 중에서 이곳이 제일 시끄럽고 왁자지껄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난장판의 중심에는 역시나 그란과 쿠로딘이 있었다. 그란과 쿠로딘의 옆에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음식의 잔해와 비어있는 술통이 있었고 여전히 서로 입 안에 넣는 것을 경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나르샤와 벨리온이 응원을 하고 있었고 로그와 클레아는 조용히 마시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지켜보고 있던 오크들 중 일부가 듀로크와 나미래가 온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취직! 듀로크다!"

"듀로크?!"

"듀로크 오빠!"

오크들의 말에 일행들도 듀로크에게 시선을 돌렸고 응원을 하고 있던 벨리온이 그 말에 갑자기 일어나서 듀로크에게 다가와 주먹을 휘둘렀다.

퍽!

듀로크는 그 주먹을 손으로 막았고 벨리온은 그런 듀로크에게 얘기했다.

"이봐!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없진 않겠지?"

"글쎄?"

"글쎄? 글쎄라고? 봉인을 푸는 것을 잃어버려 놓고선 글쎄라고? 다 들어서 알고 있었거든?!"

"너도 알고 있잖아. 내가 워낙 바빠야지."

"바빠도 잊고 있을게 있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지!"

듀로크는 라자드와의 싸움이 끝나고 너무나 바쁜 나머지 벨리온의 봉인을 해제하는 것을 까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오늘이 되어서야 벨리온의 봉인을 해제했고 해제와 동시에 듀로크가 모습을 감춰서 벨리온이 화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 사소한 일은 잊어버리자고."

"뭐? 사소한 일?"

"자자. 다 모였으니까 축제나 즐기자고."

듀로크는 그렇게 능글맞게 빠져나가면서 클레아의 옆에 앉았다. 클레아는 그런 듀로크에게 음식과 술을 건네주었고 듀로크는 미소를 지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나미래는 조용히 그란과 쿠로딘의 테이블에 다가가서 도전장을 내밀었고 둘은 나미래를 환영하며 받아주었다.

벨리온은 그런 듀로크의 행동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결국 자기 제자리로 돌아갔다.

"클레아. 축제는 즐기고 있니?"

"당연하죠. 오늘만큼 기쁜 날은 없으니까요."

"너희들도?"

"뭐..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는 충분히 즐기고 있습니다. 주인님."

"흥. 누가 더 빨리 신경 써줬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은데."

"그럼 다행이고."

듀로크는 술잔을 들이키고 주위를 둘러봤다. 처음부터 함께 했던 일행들과 오크들이 지금 이 자리에 남아있었다. 물론 지금 이곳까지 오는데 많은 희생자가 나와서 이 자리에 없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자신과 일행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겪은 시련과 고뇌, 수많은 시간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한순간에 지나갔다.

"정말 길고도 짧은 여행이였군."

"듀로크 오빠?"

"아무것도 아니야. 이봐 나르샤. 너는 이제 뭘 할 거지?"

"먼저 아빠를 다시 묻어주고 글쎄...우선 질릴 때까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벨리온은?"

"나는 내 영지로 돌아가서 귀족 행세나 계속하려고 한다. 심심할 때만 놀러 오고."

"로그는?"

"저는 주인님을 보좌할 예정입니다."

"그란과 쿠로딘은?"

"취익! 나는 내 왕국에서 놀면서 수련할 것이다!"

"난 우선 여기서 더 있을 것 같다. 네놈에게서 더 재밌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란과 쿠로딘은 술을 들이켜면서도 질문에 대답할 정도로 여력이 남은 것 같았다.

"그래. 나는 오늘 돌아다니면서 모두에게 미래에 대해서 물었어. 다들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었지. 그리고 그런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노력하여 지금 있는 현재를 만들었기 때문이야. 그러니 이 순간을 잊지 말도록 하자. 이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조금은 긴...여행을 해왔으니까."

듀로크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보이고 사라졌다. 그들은 모두 듀로크와 처음부터 함께 해 온 이들로 제일 많은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듀로크가 하는 말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따라와준 너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너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나는 뭐든지 할 생각이다."

듀로크는 말을 하는 도중 옆에 있는 술통을 들어올렸다.

"물론 오늘은 같이 즐기는 거고."

우와아아아!!

듀로크의 말에 주변에 있는 이들이 모두 함성을 질렀고 듀로크는 술통째로 들이켰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 이어서 일행들과 함께 왁자지껄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듀로크는 기분 좋은 취기에 빠져들어서 어느새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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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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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2)★

"...인님."

"으음..."

"주인님."

"음?"

듀로크는 취기에 곯아떨어졌다가 로그가 부르는 목소리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수많은 이들이 쓰러져 있었고 아직도 술을 마시며 남아있는 이들도 있었다.

"무슨 일이야?"

"왔습니다."

"...드디어 인가?"

듀로크는 로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바닥에서 뻗어서 자고 있는 나미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나미래의 어깨를 손으로 건드렸다.

"이봐. 나미래."

"커어어...쿠우울..."

"왔다고 한다."

"뭐?"

그냥 얘기했을 때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지만 왔다는 말에 나미래는 한순간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듀로크는 고개를 끄떡였고 나미래는 두 손을 꽉 쥐면서 뼈가 갈리는 소리를 내뱉었다. 이내 듀로크, 로그, 나미래는 조용히 모습을 감추면서 목표로 했던 곳을 향해 나아갔다.

"분명히 여기라고 들었는데..."

한 명의 소녀가 지팡이로 바닥과 벽을 치면서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앞이 보이지 않는 모양인지 지팡이에 의존한 채 느린 걸음으로 나아갔고 그녀는 끝내 언덕 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소녀는 주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기요...아무도 없어요?"

소녀는 목소리를 높여 누군가가 응답해주기를 기다렸고 그것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소녀의 질문에 한 명이 대답했다.

"오랜만이군. 루미나."

"듀로크님?"

듀로크는 루미나의 앞에 다가왔고 루미나는 듀로크에게 얘기했다.

"여기로 오라고 하신 것이 듀로크님이였나요?"

"그래.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저한테요? 뭐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도록 하지. 언제까지 그 가면을 쓰고 있을 거지?"

"예?"

"네 정체는 알고 있다."

"대체 무슨 소리세요? 듀로크님?"

루미나는 듀로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듀로크는 그 모습을 역겹다는 것처럼 바라봤다.

"아직도 시치미를 떼겠다? 그럼 이걸 보고 뭐라고 할 거지?"

듀로크는 마법 배낭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냈다. 그가 꺼낸 물건은 바로 청아한 남색 빛깔을 띠는 하나의 책이였다. 그 책은 놀랍게도 강력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그 빛이 루미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래도 아니라고 할 건가? 루미나. 아니, 트레비아."

"....."

듀로크의 말에 루미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미나는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를 내려놓았고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루미나가 뜬 눈은 놀랍게도 인간의 눈이 아니였다.

마치 천상의 빛이 들어있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도 빛을 뿜어내며 광원을 띠고 있었다.

"언제부터 눈치챘죠?"

루미나, 아니 트레비아는 이제 숨길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여유가 넘치는 미소와 함께 듀로크에게 얘기했다.

"라자드와 싸우기 전에 너와 만났을 때 책이 잠깐 빛을 냈었지. 착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너는 내게 중요할 때만 미래를 가르쳐주었었다."

"겨우 그것만으로?"

"확신이 든 것은 바로 최근. 라자드와 함께 하얀 방에 들어갔을 때 네놈의 모습을 본 적이 있지. 그때 너의 기운을 느꼈었는데 루미나의 몸에서도 아주 미약하게 비슷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것을 눈치챘다."

"놀랍군요. 겨우 그것만으로 저를 눈치채다니. 그래서 이곳에 오게 한 이유가 뭐죠? 겨우 이런 대화를 하기 위해서 부른 것은 아니겠고."

"물론 그런 대화를 원한 것은 아니지. 나의 목표는 단 한 가지. 네놈을 패기 위해서다."

듀로크의 말에 숨어있던 나미래와 로그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을 본 트레비아는 듀로크에게 얘기했다.

"그래서 저를 때리겠다는 거에요? 물론 당신들에게 제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말리지는 않을게요. 저도 양심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주세요. 이 몸의 주인인 루미나는 제가 만든 객체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이 소녀의 몸을 빌리고 있을 뿐이니까. 그러니..."

"루미나에게 피해를 입게 하지 마라? 그건 걱정하지 마라. 나도 그것은 바라던 것이 아니니까."

"...예?"

"그것을 위해서 이렇게 준비된 곳에 너를 부른 것이니까. 로그. 시작해라."

"알겠습니다."

듀로크의 말을 들은 로그는 손을 바닥에 두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언덕 위에 미리 설치되었던 마법진이 바닥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빛으로 이루어진 감옥을 만들어내었다. 트레비아는 그 마법진이 발동됐는데도 자신의 몸에 아무런 변화나 이상이 없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뭐하는 거죠?"

"가만히 있어봐. 나미래."

"응."

트레비아가 말하는 것을 무시한 채 듀로크는 나미래의 양손목을 잡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미래의 양손이 광원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나미래는 양손을 서로 부딪히면서 제대로 됐는지 확인했다.

"좋아. 된 것 같아."

"그럼...트레비아."

"예?"

듀로크의 말에 트레비아는 왜 부르냐는 표정으로 바라봤는데 듀로크는 그런 트레비아에게 씨익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이 꽉 물어라."

"...예?"

퍼어어억!!

트레비아가 반응하기도 전에 나미래가 주먹으로 루미나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로 인해 두 가지의 일이 일어났는데 첫 번째는 루미나의 몸이 축 늘어지면서 의식을 잃은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루미나의 몸에서 하나의 영체가 튀어나왔고 그 영체가 그대로 팅겨나간 것이다.

[으악!]

트레비아의 영체는 투명하고 새하얀 몸에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중성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라자드와 함께 들어갔던 공간에서 봤던 얼굴이였지만 다른 하나의 점은 그때와 다르게 인간의 몸과 크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어떻게?]

"너를 위해서 영체를 때릴 수 있는 지식을 종합해서 미리 준비해두었다. 그리고 영체를 분리시키기 위한 마법진도 설치했고. 로그와 카르티네가 함께 준비한 마법진이니 실수는 없을 것이다."

[그,그렇게 나를 때리고 싶은 거에요?!]

"당연하지. 한 대 때리지 않으면 못 참을 정도로. 나미래."

"알겠어!"

나미래는 그대로 주먹을 들고 트레비아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다가가서 그대로 복부를 향해 어퍼컷을 날렸다. 빛에 감싸인 손은 하얗고 투명한 영체인 트레비아를 때렸고 놀랍게도 영체가 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주먹에 타격감이 느껴졌다.

우드드득!

[꺄아아악!]

영체에서 뼈가 부러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리면서 트레비아의 영혼이 멀리 날아갔다. 하지만 영혼은 빛으로 만들어진 감옥 벽에 부딪히면서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나미래는 손에서 아직도 느껴지는 타격감에 통쾌한 미소와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이 느낌! 크으...속이 다 시원하네!"

[커...컥!]

트레비아는 나미래에게 맞은 충격이 아직도 남아있는 모양인지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고 그 광경은 제 3자에게 있어서 동정심을 일으킬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미래와 듀로크는 그 상대가 지금까지 자신의 운명을 농락한 트레비아라는 것에 엄청난 통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안 끝났거든?!"

나미래는 트레비아를 들어서 주먹으로 다시 한번 복부를 강타했고 트레비아는 강력한 비명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트레비아는 우연히 듀로크의 발밑에 떨어졌는데 듀로크는 피식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어때? 무력하게 당하는 기분은? 네놈에게서 무력하게 운명을 강요받은 이들의 기분이 조금은 느껴지나?"

[어,어째서...힘이 사라진 거죠?]

"그건 당연히 네놈을 없애기 위해서 수백 년을 준비한 라자드의 기억을 응용했기 때문이지. 괜찮지? 수백 년간의 노력의 결과가."

[보,보복이 두렵지 않은 건가요?]

"보복? 미안하지만 나도 알 것은 알고 있다. 나랑 나미래 같이 강력한 인자를 가진 인물의 운명은 쉽게 비틀 수 없는 것을. 물론 처음에는 쉽게 비틀어서 이렇게 만들었지만."

듀로크는 그 말을 하며 트레비아의 팔을 붙잡았고 어느새 듀로크의 양손에도 빛이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복한다고 해도 상관없어. 왜냐하면 나도 지금까지 쌓인 것이 있어서 풀고 싶거든 그리고..."

퍼억!

[커어억!]

듀로크 또한 주먹으로 트레비아의 가슴을 가격했고 트레비아는 충격에 무릎을 꿇었다.

"라자드와의 약속도 있으니까 물러날 수는 없거든."

듀로크와 나미래는 그대로 트레비아를 향해 지금까지 쌓였던 것을 풀어내었고 트레비아는 무력하게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느끼는 것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고...속이 풀릴 때까지 움직인 나미래와 듀로크는 통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트레비아는 영체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후하! 시원하다!"

"만 년 동안 쌓인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네. 어휴!"

[흑흑...너무하잖아!]

"너무하긴 뭐가 너무해? 네게 농락당한 사람들이 고통받은 것에 비하면 이것은 새발의 피라고."

[나도 그런 짓은 하기 싫다고...흑흑...누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변명할 수 있으면 변명할 기회를 주도록 하지."

[거기 책에 적혀져 있던 대로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세상은 그대로 멸망의 길을 간다고. 그래서 나는 최소한의 피해로 그칠 방법을...]

"그러면 그 최소한의 피해에 들어간 이들은 어떻게 되지? 나랑 나미래. 그리고 라자드처럼? 나는 원하지도 않는 전쟁과 거대한 임무를 맡게 되었고 나미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몸을, 라자드는 연인을 잃고 아픈 과거를 겪었지. 이런 우리는 피해를 받아도 된다는 거냐?"

[그,그건...]

"그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라고? 웃기지도 않은 집어치워! 네가 소가 된 입장의 기분을 알아? 항상 위에서 바라본 네가?!"

듀로크는 말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위압감을 뿜어내며 얘기했고 그의 모습에 트레비아는 입을 자연스럽게 다물었다. 그리고 그런 듀로크의 어깨에 나미래가 손으로 올리며 그를 만류했다.

"듀로크. 조금 흥분했어."

"...미안."

나미래의 말에 그제야 침착함을 되찾은 듀로크는 트레비아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라자드의 영혼은 어떻게 됐지? 그녀와 만났겠지?"

[그는...라티나의 영혼과 만났어요. 하지만 그는 수많은 자를 죽인 당사자. 지옥에서 영겁의 고통을 받아야 해요.]

"그와 그녀를 환생시켜라. 단, 기억을 잃은 채로."

[뭐? 그건 불가능...]

"하라면 해!"

듀로크는 반론은 불가하다는 눈빛으로 강력하게 얘기했고 그의 말에 트레비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 이상 나와 내 동료들로 네 똥을 닦으려고 한다면...내가 직접 너를 처단하겠어. 이것은 최후통첩이다! 알겠나?!"

[알...겠어요.]

"...로그."

"예."

"풀어라."

"알겠습니다."

트레비아의 대답을 들은 듀로크는 로그에게 말했고 로그는 곧바로 마법진을 해제했다. 마법진이 해제되자 트레비아는 곧바로 루미나의 몸에 들어갔고 루미나의 몸을 사용해서 일어났다.

"정말로...이 몸에는 피해를 주지 않았네요?"

"당연하지. 약속이고 루미나에게 피해를 줄 생각은 일절 없었으니까. 너와 다르게."

"...그래요."

"이제 다시는 만나지 않도록 하자. 너와 다음에 만났을 때는...이보다 더 좋지 않은 만남이 될 것 같으니까."

"나도 마찬가지니까 명심하라고."

듀로크와 나미래는 더 이상 트레비아를 꼴도 보기 싫어서 그런지 그 말을 끝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로그 또한 트레비아에게 한번 고개를 끄떡인 후에 그 뒤를 따라갔다. 트레비아는 혼자 남은 언덕 위에서 축제를 즐기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듀로크. 당신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어요. 나와 같은 방법을 쓰고 있는 신은 나를 이외에도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의 굴레에서 당신도 포함되어 있을 거에요. 그러니 부디...지금을 즐기시길 바랄게요."

"속이 풀렸냐?"

"어! 완전히 풀렸어. 역시 듀로크란 말이야. 다음에도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불러달라고. 다음에는 힘 조절을 하지 않고 풀스윙으로 때려버리게!"

"후훗. 명심하도록 하지...응?"

"어?"

듀로크와 나미래는 언덕 위에서 내려오다가 길가에 한 명의 여인이 서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녀가 클레아라는 것을 눈치챈 나미래는 듀로크의 옆구리를 툭 치며 얘기했다.

"이만 방해자는 빠질게. 좋은 시간 보내라고?"

"주인님. 저도 실례하겠습니다."

나미래는 뭐라고 하기도 전에 사라졌고 조금은 눈치가 생긴 로그도 자리를 비켜주었다.

"무슨 일이야? 클레아?"

"그냥 듀로크 오빠와 얘기를 하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마무리는 잘 하셨나요?"

"속 시원하게 해결했지."

"다행이네요."

듀로크의 말에 클레아는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에 듀로크는 다시금 행복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듀로크는 주변을 둘러보며 전망이 좋아 보이는 언덕을 발견했고 클레아의 옆구리에 손을 얹은 채 플라이 마법으로 날아갔다. 클레아는 그런 듀로크의 행동에 놀라지 않고 가만히 있었고 이내 둘은 언덕 위로 올라왔다.

언덕 위에서는 축제를 즐기고 있는 이들이 한눈에 다 들어왔고 그 광경에 다시금 감동이 밀려왔다.

"클레아. 배는 괜찮아?"

"괜찮아요. 아직 4개월밖에 안 됐잖아요? 배도 아직 나오지도 않았고."

"그래도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 클레아 너도 똑같았잖아?"

"당연하죠. 이번 전쟁 때도 오빠를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나도야. 임신한 몸으로 무리는 하지 않았는지. 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할지. 그런 생각을 했어."

"역시 똑같네요. 후후."

듀로크는 클레아와 대화를 하면서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이용하려고 인간을 찾았지만 그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녀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건들이 일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한순간에 불과했다.

"클레아. 나는 지금까지 이 오크의 몸을 가지고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어. 하지만 네가 있어서 나는 더 이상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지. 왜냐하면 내가 오크이지 않았으면 너를 만나지 못했을 거니까."

"...오빠."

"그래서 나는 트레비아를 놓아준 거야. 너와의 미래를 위해서. 분명 나는 너보다 오래 살겠지. 네가 죽는 것을 지켜보게 될 것이고 한순간에 불과할 수 있어. 하지만 나는 그 순간까지 후회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 한순간의 시간이라도 놓치지 않고 너와 함께 하고 싶어."

"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오빠."

"여기서 맹세할게. 너의 일생이 끝날 때까지 옆에 있어줄 것이고 너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저도 맹세할게요. 제가 죽을 때까지 오빠의 옆에서 있어서 함께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맹세할게요."

"고마워...클레아."

듀로크는 클레아의 얼굴에 다가갔고 클레아도 그의 행동에 호응했다. 그렇게 둘은 맹세의 키스를 하며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축제를 끝내고 각자 행복을 찾아 떠났고 듀로크와 클레아도 결혼식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클레아와 듀로크의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났고 듀로크는 클레아가 죽을 때까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듀로크의 여행은 이것이 끝이 아니다. 그의 힘과 영향력은 이 한 번의 위기를 헤쳐나가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때...그의 여행은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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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싸움이 펼쳐졌던 세레티 왕국의 왕성. 그곳은 처참하게 파괴돼서 더 이상 누구도 발길을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록을 마치 깨는 것처럼 한 명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 인물은 마치 뭔가를 찾는 것처럼 주위를 살폈고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걸어갔다. 그리고 이내 그는 목표했던 것을 찾은 것처럼 바닥에 있는 것을 주웠다. 그가 주워든 것은 바로 라자드의 가슴 속에 박혀있었던 구슬의 조각들이었다.

파괴된 조각은 이미 힘을 잃은 것처럼 아무런 기운을 뿜어내지 않고 있었지만 인물은 그것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훗. 뒷처리가 깔끔하지 않군요. 이것은 제가 잘 사용하겠습니다."

그 인물은 조각을 챙긴 채 사라졌고 조금 전과 똑같이 침묵이 대기를 감쌌다. 그렇게 구슬을 챙긴 인물, 마계순위 1위 메블리는 모습을 감춘 채 때를 기다린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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