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오크 마법사-356화 (355/360)

30장 마지막 전투(26)

----------------------------------

30장 마지막 전투(26)

바다 망망대해 속에 있는 외딴 섬. 그 외딴 섬에는 거대한 동굴이 하나가 있었고 동굴 속에 한 마리의 드래곤이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드래곤의 이름은 오빌리스. 그에게는 또 다른 하나의 이름이 있었는데 바로 망각의 드래곤이였다.

그런 오빌리스는 2천년 전에 있었던 대륙전쟁 이후로 수면을 한 이후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바로 오늘, 오빌리스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그리고 그는 아주 기분 나쁘다는 것처럼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누구냐?】

2천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던 거대한 몸이 일어섰다.

【누가 이 금단의 영역인 망각의 섬에 발을 들이는 것이냐!】

거대한 목소리와 함께 나온 드래곤 피어는 오빌리스를 중심으로 일제히 퍼져 나갔고 듣는 존재의 몸을 얼어붙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 드래곤 피어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여유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망각의 드래곤 오빌리스가 네놈이 맞겠지?"

【그러는 네놈은 누구냐?】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한 명의 인간이였다. 하지만 오빌리스는 눈앞의 인간이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대한 기운과 존재감이 그의 강력함을 대변시켜 주었고 끝없는 어둠과 같은 눈빛은 드래곤인 자신조차 한기를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은 라자드. 네게서 한가지의 물건을 받으러 왔다."

【한가지의 물건?】

"그래. 네가 가지고 있겠지? 마몬의 인자."

【어떻게 그걸?!】

라자드의 말에 오빌리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2천년 전에 있었던 대륙전쟁 때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마왕을 봉인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왕을 봉인하면서 생긴 것이 바로 마왕의 인자였다. 마왕의 인자는 하나의 구슬로 마왕의 힘과 기운이 깃들어져 있는 정수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 정수를 누군가가 악용한다면 커다란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기에 망각의 드래곤 오빌리스가 나서기로 했다. 오빌리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망각 마법을 사용하여 정수와 자신의 존재를 모두 없애버리고 마왕의 인자를 가지고 사라졌다. 그렇게 가지고 도착한 것이 바로 지금 있는 곳인 망각의 섬이었다.

그렇기에 마왕의 인자를 아는 존재는 전 대륙에서 오빌리스를 제외하고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존재 또한 알고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눈앞에 나타난 존재는 자신과 마왕의 인자 두 비밀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빌리스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망각 마법으로 모든 이들의 기억을 지운다고 해도 남은 기록마저 지울 수는 없지."

【그 인자를 어디에 사용할 예정이냐?! 그건 한낱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오빌리스는 지금 이 순간이라도 눈앞의 라자드를 없애버릴 것 같은 살기와 위협을 뿜어내었지만 라자드는 그 위협에도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사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사용해봐야 아는 것이지."

【닥쳐라! 이 비밀을 눈치챈 네놈은 죽어야겠다!】

시전 동작도 없이 오빌리스는 입을 벌려서 브레스를 뿜어내었다. 거대한 화염이 동굴 내를 휘몰아쳤고 브레스의 뜨거운 열기가 나가기 힘든 동굴의 기류를 불태웠다. 온도가 급상승하고 화염지옥과 같이 변했지만 오빌리스는 화염 내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환경 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라자드는 그것을 버티지 못하고 화염 브레스 앞에서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화염 브레스를 뿜어내고 입을 닫은 후에 보이는 광경에 오빌리스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뭐,뭐야?!】

화염 브레스가 지나간 길에 검은 구형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빌리스는 저 구형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자신의 화염 브레스에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드래곤도 별거 아니군."

【뭐,뭐라고?!】

검은 구형이 해제되면서 구형 안에서 라자드가 나왔다. 멀쩡한 라자드의 모습에 오빌리스는 다시금 당황했는데 그 당황을 숨기려고 하는 것처럼 오빌리스는 마법을 사용했다.

【헬파이어!】

오빌리스의 몸 옆에서 몇 개의 헬파이어가 생겨 라자드를 향해 날아갔다. 라자드는 그것을 보고 검은 연기를 움직였고 검은 연기는 날아오는 헬파이어를 감쌌다. 헬파이어는 검은 연기에 흡수되는 것처럼 사라졌고 라자드는 헬파이어를 흡수한 검은 연기를 오른손 위에 모으기 시작했다.

【헬파이어가?】

"네 성의는 그대로 돌려주도록 하지."

연기로 흡수한 헬파이어들의 에너지가 라자드의 오른손에 모였고 모인 에너지를 화염으로 변환시켰다. 그렇게 변환된 화염은 검은색을 불꽃을 띠며 헬파이어보다 더 강력한 온도와 위력을 뿜어내었고 라자드는 그 화염을 오빌리스에게 날렸다.

퍼퍼펑!!

【크아아아악!!】

화염 내성이 있는 오빌리스가 라자드가 날린 화염에 불타오르며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화염 내성을 가지고 있는 오빌리스가 왜 화염에 피해를 입느냐. 그것은 라자드가 날린 화염이 순수한 화염이 아니였기 때문이었다. 순수한 에너지와 마의 기운까지 섞인 화염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빌리스는 화염에 몸이 불타올랐고 살이 타며 가죽이 화상으로 흉측하게 변했다. 라자드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검은 연기들을 칼날의 형태로 만들어 오빌리스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오빌리스는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고유 마법을 사용했다.

【파워 워드 킬!】

오빌리스는 내뱉는 언어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망각 마법 또한 언어에 기억 소거의 힘을 불어넣고 뇌로 직접 전하여 강제로 기억을 제거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사용한 파워 워드 킬도 언어에 강력한 정신 마법을 불어넣어 들은 인물의 정신을 파괴시키는 오빌리스만의 고유 마법이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이 오빌리스의 말을 들은 라자드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 광경을 본 오빌리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더욱 거대한 힘을 불어넣어 소리를 질렀다.

【파워 워드 킬!!】

푸화아악!

라자드의 입과 눈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고 라자드가 그대로 바닥에 꼬꾸라졌다. 바닥에 쓰러진 라자드는 쓰러진 그대로 시간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았고 그것을 본 오빌리스는 폭소를 터트렸다.

【하핫...하하하하핫!! 그깟 인간 주제에 드래곤에게 대드니까 이렇게 된 것이다! 신의 품 속에서 오늘의 일을 후회하도록! 푸하하핫!】

쓰러져 있는 라자드를 조롱하며 오빌리스는 웃음을 계속 터트렸다. 하지만 오빌리스는 그런 성취감과 통쾌함에 눈이 멀어 하나를 눈치채지 못했다. 라자드가 쓰러졌지만 그의 주변에 있던 검은 연기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콰직!

【푸...쿨럭!】

오빌리스는 웃다가 피를 토했다. 왜냐하면 라자드의 몸 근처를 떠돌고 있던 칼날 형태의 검은 연기가 오빌리스의 목을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누워있던 라자드가 몸을 일으켰다.

"역시 고룡이군.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어,어떻게?】

"내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흡수했는지는 넌 모르겠지."

라자드가 사악한 미소를 짓자 검은 연기 또한 웃음을 짓는 것처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검은 연기가 곧 죽은 영혼들이 절규하는 모습으로 변한 것은 한순간이었다. 수십, 수백, 수천을 넘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혼들의 비명과 절규에 오빌리스는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미,미친 놈...대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여온 것이냐?!】

오빌리스는 피를 토하면서도 말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목적을 위해서 다른 생명 따위 관심 없다. 남이 얼마나 죽든 무슨 상관이지? 네놈 또한 죽든 말든 관심없다. 그저 네놈이 가지고 있는 마몬의 인자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져서는 안 될 녀석이 있다면 그게 바로 네 녀석이다!】

"그렇다면 힘으로 직접 뺏도록 하지."

라자드는 칼날 형태의 검은 연기를 사용하여 오빌리스의 팔과 다리를 관통했고 오빌리스는 그러한 칼날에 의해 마치 표본이 된 곤충처럼 벽에 고정되었다.

【크아아악!!】

"죽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을 거다."

라자드는 고정된 오빌리스를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동굴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동굴의 중심에는 순수한 검은색을 띠는 구슬이 제단 위에 있었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과 경이로운 힘에 라자드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생겼다. 그리고 라자드는 그 구슬을 향해 검은 연기를 사용하여 손을 뻗었고 그 광경을 보던 오빌리스는 피를 토하며 입을 벌렸다.

【내가 죽더라도 네놈과 함께 죽겠다!!】

오빌리스의 가슴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 빛은 이내 오빌리스 온몸으로 퍼져갔다. 그리고 그 붉은 빛은 이내 오빌리스의 몸을 불태우기 시작했고 오빌리스의 몸을 매개체로 불타기 시작한 화염은 주변의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그렇게 화염은 한순간에 주변을 불태우며 동굴을 녹였고 이내 라자드가 있는 곳까지 전파되었다.

"칫."

【죽어라! 내 모든 것을 담은 화염 앞에!】

....!!

오빌리스의 모든 생명과 드래곤 하트까지 불어넣은 화염은 망각의 섬이라고 불리는 외딴 섬 전체를 단번에 폭발시켰다. 그 폭발은 망망대해의 바닷물을 모두 밀어내어 수십 미터가 넘는 파도를 만들어낼 정도로 강력했다.

그리고 그 폭발 속에 망각의 섬은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내었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크레이터 속에 단 두 가지만 멀쩡했다. 하나는 그 폭발 속에서도 멀쩡한 마몬의 인자였고 나머지 하나는 검은 연기로 자신을 보호한 라자드였다.

"쓸데없는 발버둥을 하다니. 어차피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을."

오빌리스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공격은 라자드의 검은 연기를 뚫고 라자드에게도 피해를 줄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라자드의 상처는 그렇게 위중한 수준은 아니였고 그 상처 모두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정도였다. 그래서 라자드는 상처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마몬의 인자에게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드디어. 첫 번째 조건이 달성되었군."

라자드는 마몬의 인자에 손을 뻗어 잡았다. 그리고 라자드는 잡는 순간 구슬에서 전해지는 거대하고 순수한 기운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냥 잡았을 뿐인데 이 정도면 자신의 몸에 심었을 때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조건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내 손에 준비됐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넘어서 이곳에 도착했는지 다시금 기억들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라자드는 드디어 100년이 넘는 자신의 숙원이 조금씩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마몬의 인자를 품속에 들고 모습을 감추었다.

듀로크는 라자드가 오빌리스를 죽이고 마몬의 인자를 얻는 광경까지 모두 지켜봤다. 이어서 주변의 광경은 빠르게 지나갔고 라자드는 듀로크에게 설명을 하였다.

"나는 마몬의 인자를 얻고 그 후로 듀로크. 네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나를?"

"그렇다. 강력한 양의 기운을 가진 자. 나와 필적할 정도로 강력한 기운과 힘을 가진 자를 기다렸다. 그래서 나는 듀로크. 네가 나타나기 전까지 준비를 갖추었다. 이 대륙 전체에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세력을, 병력을 준비했다."

"그래서 전 대륙의 왕국에 심복들을 심어둔 것이냐?"

"그렇다. 전 대륙에 전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각 왕국에 심복을 심어두는 것이 제일 쉬웠지. 그래서 나는 나를 따르는 이들을 모았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 내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 더 많은 권력을 위해서, 영원한 삶을 위해서, 자신을 버린 놈들을 복수하기 위해서.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의 힘 앞에 집결하였다."

"...그렇다면 나를 기다린 것도 모두 이때를 위한 것이란 거냐?"

"모든 것을 본 너는 이해할 수 있겠지.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약 30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네가 나를 찾아오는 때까지 걸린 시간이. 너는 정말이지 나의 목적대로 움직여주었다. 죽지도 않고 이 나에게 필적할 정도로 강력한 힘과 기운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훗. 그러다가 내가 죽었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지?"

"그러면 다시 다음 탄생을 기다릴 뿐이지. 네가 죽는다면 그저 그만한 그릇밖에 되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더구나 네놈도 알고 있지 않나? 트레비아는 균형을 위해서 움직인다는 것을. 네가 죽으면 너를 대신할 기운을 가진 존재를 데려올 것이다."

"그렇겠지."

듀로크는 라자드가 하는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트레비아라면 그렇게 행동하고도 남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너의 과거를 보여준 이유가 뭐지? 설마 자신을 동정해달라고 보여준 것은 아닐테고."

"당연히 아니지. 네게 보여준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뭐지?"

"첫 번째는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시간? 뭘 기다린다는 거지?"

"슬슬 시간이 되었군."

라자드는 그 말을 하며 손가락을 팅겼고 그러자 주위의 광경이 사라지며 다시 하얀색으로 가득한 공간으로 돌아왔다. 듀로크는 갑자기 왜 새하얀 공간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라자드가 조용히 고개를 위로 하고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듀로크는 그런 라자드의 모습에 자신도 고개를 올려 위를 바라보았고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왜냐하면 상상도 하지 못했던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건...대체 뭐야?"

"저것이 바로 트레비아. 이 세계를 만든 신의 모습이다."

하얀 공간의 하늘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다. 그 마법진은 자신을 못 움직이게 하고 새하얀 공간으로 들어오게 한 마법진과 매우 흡사했다. 그리고 라자드의 과거의 기억을 봤던 듀로크는 그 마법진이 양피지에 적혀있던, 신을 제거하고 새로운 신을 만들기 위한 마법진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마법진의 중심에서는 거대한 하나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존재는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에 시선을 강탈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에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중성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 존재는 신비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그 신비한 빛은 거대한 존재감과 더불어 따뜻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저게..신 트레비아라고?"

"그렇다. 누가 봐도 이 차원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나? 이 압도적인 존재감. 모든 존재의 운명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 대륙에서 제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너와 나조차 저 앞에서는 아무런 존재도 아니다. 이런 힘을 신이 아니면 누가 가지고 있단 말이냐?"

듀로크 또한 저것이 신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따스한 느낌을 주는 신비한 빛과 시선을 집중시키는 아름다운 외모,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새하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의 존재감이 신이라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트레비아는 마법진의 중심을 통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듀로크는 라자드에게 얘기했다.

"그래. 네가 이 순간을 기다리기 위해서 나에게 그 광경을 보여준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나머지 한가지 이유는 뭐지?"

"나머지 한가지는 너와 거래를 하기 위해서이다."

"나랑 거래라고?"

듀로크는 라자드가 거래라는 말을 할 줄 몰랐기에 놀라워하는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렇다. 듀로크 네가 내 기억을 봤으면 알 것이다. 나는 라티나를 살리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와 반대로 라티나만 살릴 수 있다면 만족한다."

"...그 말은?"

"듀로크. 내가 저 신을 제거하고 새로운 신으로 되겠다. 그리고 라티나를 살리겠다. 하지만 그 외로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의 운명을 건드리지 않겠다."

"뭐?"

"나는 라티나를 살리기 위해서 신이 되는 것이다. 신이 되서 모든 것을 학살하고 파괴시킬 생각은 없다. 그것은 나의 다른 자아가 행한 행동이지 나는 관심 없다."

"하지만 그 자아도 네 자신이지 않나?"

"그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지금 그 자아는 나와 떨어져 있다. 그는 현재 마몬이 내 몸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고 있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신이 되면 그와 마몬을 내 몸에서 떨어트리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모든 존재의 운명을 뒤틀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너는...신이 되는 것을 방해하지 말아달라는 건가? 라티나만 살리고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을 조건으로?"

"그렇다."

"네가 약속을 어기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어디 있지?"

"원한다면 영혼의 계약서를 적어도 상관없다. 내 목적은 라티나가 살아나는 것이고 그를 위해서는 난 어떤 행동이든 할 생각이니까."

듀로크는 라자드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보여준 라자드의 기억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어떤 행동이든 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방해할 것을 염려했다면 혼자서 이 공간에 오면 되지 않았나?"

"그것을 내가 모르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당연히 이 공간에 올 수 있는 것은 상반된 기운을 가진 두 존재가 접촉한 상태에서 마법진을 발동시켜야 가능했던 것이다. 나 혼자서 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지."

"...그렇군."

"너도 트레비아를 원망하지 않나? 내가 트레비아를 제거하는 것에 너 또한 찬성할 것이다. 아닌가?"

"....."

"또한 내가 신이 된다면 이 이상의 희생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네 동료들과 내가 싸우지 않아도 되고 쓸데없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 이 마법진이 실패하는 순간 다시 그 전투의 현장으로 돌아갈 것이고 내 무력 앞에 너와 동료들은 무참하게 살해당하겠지."

"그건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고."

라자드의 말에 듀로크는 도발했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하여 라자드를 상대하고 모두가 살아남을 수는 없다는 것을. 누군가는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듀로크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라자드의 말은 달콤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

"남은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저 마법진도 다른 차원에 있는 신을 억지로 이 자리에 소환한 것이기에 제한시간이 존재하지. 자. 듀로크. 나의 손을 잡아라."

라자드는 듀로크에게 손을 내밀며 얘기했다.

"과거는 모두 잊고 단 한번만 나를 믿어줘라. 나는 라티나를 살리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하겠다. 영혼의 계약서를 써도 되고 네가 하라는 대로 하겠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나를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진심을 다해 말한 라자드는 그저 손을 내밀고 듀로크가 반응하기를 기다렸다. 지금까지와 다른 존재인 것처럼 라자드는 절실하고 순수한 모습, 처음 봤던 루시폰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 모습을 본 듀로크는 하늘에 있는 마법진과 라자드를 번갈아가면서 보고 고민했다.

라자드의 과거, 그의 진심, 지금까지 보여뒀던 행적과 그의 간절한 감정. 수많은 것들이 듀로크의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그리고 듀로크는 오랜 고민 끝에 선택할 수 있었고 이내 자신의 오른손을 움직였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