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장 마지막 전투(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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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장 마지막 전투(24)
콰콰쾅!!
"히히힝!"
"크아아악!"
【%&[email protected]#%!】
성기사와 데스나이트가 서로 격돌하면서 거대한 굉음을 만들어내었다. 말로 충분한 거리를 달리면서 생긴 돌진력과 중장갑을 한 말과 사람의 무게가 합쳐져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게 되고 그런 파괴력을 가진 두 존재가 부딪혔으니 굉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 파괴력에 중장갑을 입은 것이 무색하게 갑옷이 우그러들며 찢겨져 나갔고 갑옷을 입고 있는 착용자가 멀쩡할 리 없었다. 사람은 고기 반죽으로 변하고 새롭게 태어나서 단단한 육체를 가진 데스나이트도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소멸했다. 그렇게 두 존재가 부딪히면서 상당수의 성기사와 데스나이트가 죽고 나서야 진정한 혈투가 시작되었다.
"홀리 아머!"
"홀리 브레싱!"
격돌에서 살아남은 성기사들이 각자 신체 및 성속성 강화 마법을 걸고 데스나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몸에서 나오는 신성한 빛은 데스나이트의 마 속성에 상성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데스나이트들도 마찬가지였다.
【[email protected]#$#%!】
데스나이트도 흑색의 연기로 이루어진 무기를 꺼내 들고 성기사들을 향해 달라붙었고 성기사와 데스나이트는 서로를 죽이는데 모든 신경을 집중하였다. 성기사는 데스나이트보다 약 5배에 가까운 숫자를 보였는데 데스나이트의 무력은 일반 성기사보다 훨씬 강하여 거의 비등비등한 전투를 펼쳐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균형도 리치들의 개입으로 단번에 무너졌다.
콰콰콰쾅!!
리치의 마법이 데스나이트와 성기사들이 전투를 펼치던 곳에 더불어 뒤에서 오는 병사들을 덮쳤다. 리치들은 마치 데스나이트들이 마법에 피해를 받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이 마법을 난사했고 그것을 예상치 못한 성기사들은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타고 있는 병사들은 리치들을 상대해라! 그리고 중상을 입은 성기사는 뒤로 빠져서 치료를 하고 합류하도록!"
레인은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처를 하면서 눈앞에 있는 데스나이트를 상대했다. 데스나이트는 레인을 보고 거대한 검을 휘둘렀고 레인은 왼발을 옆으로 움직이면서 검을 가볍게 피해냈다. 그리고 레인은 성속성을 부여한 검을 상단으로 돌리며 그대로 내려쳤다.
서걱.
단단한 몸과 갑옷을 입고 있는 데스나이트가 마치 두부처럼 가볍게 정수리를 시작으로 고간까지 두 조각으로 찢어졌다. 두 조각으로 찢긴 데스나이트는 그대로 연기로 변하면서 사라졌고 레인은 다음 데스나이트를 향해 다가갔다.
신성제국 최강의 창답게 레인은 데스나이트 상대로 마치 일반 병사와 싸우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죽이고 다녔다. 그런데 그때 레인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오싹한 기운에 흠칫했고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러 자신을 보호했다.
쾅!!
"윽!"
강력한 힘을 모두 흘리지 못한 레인은 옆으로 몇 미터 날아갔고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착지를 안전하게 성공했다. 레인은 자세를 바로잡은 후에 자신을 공격한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싸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브리트님."
다른 데스나이트보다 2배는 커다란 데스나이트. 지금은 데스나이트 킹이라고 불리고 생전에 레인의 동료였던 브리트였다. 데스나이트 킹은 레인을 향해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거대한 두 개의 검에는 지금까지 벤 성기사들의 피가 묻어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레인은 검을 잡고 상단베기 자세를 취한 채 입을 열었다.
"과거에는 동료였지만 지금은 서로 적인 관계. 과거의 인연은 잊고 죽어서도 받는 그 고통을 제가 직접 끝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의 행동입니다."
레인의 검에 하얀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일반 성기사의 검에서 나오는 빛이 촛불이라고 하면 레인의 검에서 나오는 빛은 마치 태양과 같았다. 그 빛에 근처에 있던 데스나이트들이 무서운 것을 본 것처럼 주춤거렸고 데스나이트 킹 또한 움찔거렸다. 하지만 데스나이트 킹은 그 빛에 저항하듯이 거대한 두 검을 들었고 이내 레인을 향해 돌진했다.
데스나이트 킹의 돌진을 본 레인은 검을 잡은 두 손에 힘을 주고 그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데스나이트 킹은 거대한 몸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스피드를 보이며 거리를 줄였고 검의 사정거리에 들어간 데스나이트 킹은 몸을 날리면서 거대한 검을 휘둘렀다.
그에 맞혀서 레인도 상단자세에서 검을 내리찍었고 거대한 두 검과 레인의 검이 부딪혔다.
콰쾅!!
놀랍게도 데스나이트 킹의 두 검은 충격에 바닥을 내리찍었고 그 틈을 레인은 놓치지 않고 데스나이트 킹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서걱.
레인의 검이 데스나이트 킹의 양팔을 자르고 지나갔고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검은 그대로 머리를 향해 나아갔다. 데스나이트 킹은 레인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했고 검이 머리를 지나가는 순간 데스나이트 킹의 몸이 멈췄다.
"...이제 편안히 잠드십쇼."
"고맙네..레인."
데스나이트 킹은 마지막 말을 내뱉으면서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이어서 레인은 연기로 사라지는 데스나이트 킹에게 기도를 한 후에 아직 쌩쌩한 전투마를 하나 잡아서 올라탔다. 그리고 레인은 그대로 전투마를 이끌고 혼자서 리치들의 집단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혼자서 전투마를 이끌고 리치들의 집단 속으로 가는 레인은 제 3자가 봤을 때 우매하고 어리석은 존재로 보일 것이다. 물론 그것이 일반 병사였다면 그 생각 그대로 될 것이다. 하지만 레인이라면, 신성제국의 최강의 창인 레인이라면 얘기가 다르게 흘러간다.
퍼퍼펑!
멀리서 리치들이 마법을 쏘는 소리가 들렸다. 리치들의 고서클 마법은 레인이 있는 지역을 초토화하는데 충분했고 레인도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레인은 검을 들어 다시 신성한 빛을 뿜어내었고 그 빛은 그를 중심으로 실드처럼 둥근 막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이어서 리치들이 쏜 마법이 레인을 강타했다.
콰콰쾅!!
수많은 마법이 지역을 폭격하면서 거대한 폭발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미리 성스러운 막으로 자신을 보호한 레인은 피해를 받지 않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상당한 거리를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레인은 그대로 전투마의 등을 밟고 위로 날아올랐다.
그것을 본 리치들이 각종 마법을 활용했지만 레인은 검을 잡은 채 막으로 자신을 방어하였다. 물론 워낙 많은 리치들이 있을뿐더러 좀 전에 막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번엔 모든 마법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믿은 레인은 그대로 검을 들고 리치들의 중심으로 떨어졌다.
서걱!
떨어지면서 검으로 리치의 목을 날린 레인은 그대로 주위에 있는 리치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접근전에 약하고 신성한 빛으로 감싼 검에 주위에 있던 리치들이 순식간에 연기로 변했다. 하지만 그 순간 리치들이 일제히 손을 들고 마법서를 펼치는 것을 보았고 레인은 본능적으로 회피 동작을 펼쳤다.
콰콰쾅!!
리치들은 자신의 동료 리치가 피해를 입든 말든 상관없이 마법을 사용했고 무차별적인 공격에 레인도 모두 피할 수 없었다.
"쿨럭!"
내장이 뒤흔들리고 내상으로 인해 피가 울컥 올라왔다. 레인은 그 피를 억지로 삼킨 후에 마법을 사용하고 나서 생긴 틈을 놓치지 않고 검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검이 레인의 기운을 먹으면서 3미터가 넘는 빛을 뿜어내었고 레인은 그렇게 늘어난 검을 공중에서 휘둘렀다.
"받아라!"
공중에서 휘두른 검에서 새하얀 빛으로 된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검기가 그대로 리치들을 베고 지나가면서 수십 명의 리치들을 단번에 없애버렸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기운을 소모하면서 레인의 호흡이 가빠졌다.
"후...후..."
레인의 몸은 휴식을 취하라고 얘기하고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리치들은 또 마법을 사용하려고 하고 있었다. 레인은 또 회피 동작을 펼쳐서 피했지만 그때 레인의 눈앞에 거대한 기운을 가진 리치가 나타났다.
"테오도르님."
하아아...
리치 킹은 눈앞에 있는 레인을 보고 하얀 김을 내보내며 주문을 외웠다. 그것을 본 레인은 테오도르와의 만남의 여운을 느끼기도 전에 움직였고 정확히 리치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여기서 레인이 간과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리치 킹은 다른 리치들보다 캐스팅이 훨씬 빠르다는 것이었다.
콰쾅!!
"뭣?!"
바닥에서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튀어나왔고 레인은 갑작스러운 얼음을 막기 위해서 검을 일자로 세워 자신의 몸을 방어했다. 그러나 얼음 덩어리가 미는 힘에 레인은 위로 올라갔고 그것을 본 리치 킹이 또 마법을 사용했다.
"윽!"
이어서 리치 킹이 사용한 마법은 중력 조작 마법인 그래비티 마법이었다. 얼음 덩어리의 힘에 의해서 공중에 날아가고 있던 레인은 그래비티 마법에 빠른 속도로 낙하했고 그 낙하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레인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레인은 바닥에 떨어지는 와중에 검으로 바닥을 향해 세게 휘두르면서 그 반작용으로 낙하하는 속도를 줄였다.
쾅!
그래도 낙하하는 힘 때문에 커다란 소리와 함께 뼈가 울렸다. 레인은 그 충격과 그래비티 마법진에 잠시 움직이지 못했는데 그때 리치 킹이 레인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블링크로 이동한 리치 킹은 뼈다귀만 남은 손으로 레인의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었고 리치 킹의 손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레인은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반사적으로 리치 킹의 손을 검으로 잘라내었다. 리치 킹의 손은 밑으로 떨어졌지만 이미 레인의 오른쪽 어깨는 살이 바짝 말라서 가죽만이 남아있었다. 리치의 손에 생기가 빨려서 이젠 검은커녕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레인은 왼손으로 검을 들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리치 킹을 바라보았다.
리치 킹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로 웅얼거리기 시작했고 그러자 검은 화염이 리치 킹의 앞에 생성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도 레인은 그저 가만히 리치 킹이 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오히려 눈을 감고 정신을 통일시킨 채 때를 기다렸다.
리치 킹은 레인이 기다리는 사이에 검은 화염을 완성시켰고 레인을 향해 화염을 날려 보냈다. 그리고 가만히 있던 레인은 그제야 앞으로 치고 나갔고 화염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염은 그대로 레인을 불태웠고 리치 킹은 불타오르는 레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때 검은 화염을 레인이 뚫고 나오면서 그는 왼손으로 든 검으로 리치 킹의 몸을 향해 휘둘렀다.
차차창!
레인의 검이 그 짧은 사이에 리치 킹의 몸을 수십 번 지나갔다.
"테오도르님. 이제 편안히 쉬십쇼."
"미안..하네..레인...군."
몸이 잘게 썰린 리치 킹은 이내 연기가 되면서 사라지면서 리치 킹까지 처리하는데 레인은 성공했다. 하지만 레인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조금 전의 검은 화염으로 인해서 레인의 오른팔은 오른쪽 어깨를 중심으로 불타서 재로 변했고 리치들의 마법으로 받은 내상 또한 그대로 남아있었다.
주위에는 아직 수없이 남은 리치들이 레인을 노리고 있었고 남은 기운은 얼마 남지 않아 있었다. 아직 진정한 적은 만나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그래도...포기할 수는 없지."
누가 봐도 절망적인 상황이였지만 레인은 포기하지 않고 일어섰다. 하지만 리치들은 그런 레인의 행동에 신경 쓰지 않고 마법서를 펼쳤고 레인을 죽이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레인은 그 수많은 마법을 보고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회피 동작을 취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나타난 성기사들이 말과 함께 리치들을 덮쳤고 검과 백마법을 사용하여 리치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레인님!"
"지원 왔습니다!"
성기사들은 레인을 향해 회복 마법을 걸었고 하얀 빛과 함께 레인의 내상을 치료하고 기운을 조금 충족시켜 주었다. 레인은 호흡이 조금 편해지는 것을 느끼며 성기사와 리치가 싸우는 광경을 보며 얘기했다.
"현재 상황은?"
"상황은 거의 대등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레인님이 데스나이트 킹을 처리해주신 덕분에 데스나이트와 비등하게 싸우고 있고 흑마법사도 병사들이 수로 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그 지휘관이 문제인가?"
"예. 그 지휘관에게 죽은 숫자만 이미 천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자를 상대할 수 있는 분은...당신밖에 없습니다. 레인님."
"알고 있다."
성기사는 레인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레인밖에 없어서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인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성기사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어디에 있지?"
"흑마법사들이 있는 북쪽에 있습니다."
"알겠다. 그럼 그를 상대하러 갈 테니 나머지 지휘는 맡기겠다."
"...예! 부디 다시 돌아오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최대한 노력하겠다."
성기사와 레인 둘 다 자신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을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레인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말에 타고 왼손에 검을 쥐며 얘기했다.
"영원한 신성제국에 영광을."
"영원한 신성제국에 영광을!"
그 말을 끝으로 레인은 북쪽으로 말을 이끌었다. 주변에서 죽어 나가는 병사들, 수없이 떨어지는 마법과 피와 살이 터지면서 생기는 파육음.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소리와 절망이 깃든 비명. 끔찍한 소리와 광경이 눈앞에 지나가고 귀로 들렸지만 레인은 애써 무시하며 목표로 향해 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저긴가."
레인은 말을 몰고 가면서 라자드가 어디 있는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멀리서도 피부에 찌릿찌릿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를 중심으로 검은 연기가 몰아치면서 다가오는 병사들과 성기사들을 벼를 베듯이 가볍게 죽이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레인은 오히려 그들이 시선을 끌어주는 사이에 최대한 라자드에게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기운을 최대한 숨기고 말을 조용히 이끌었다.
콰콰쾅!!
"으아아악!"
"포기하지 마라! 계속 돌격해!"
"우아아아!!"
라자드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도 성기사들은 병사들을 격려하며 돌진했지만 계란에 바위치기를 하는 것처럼 라자드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레인은 말을 이끌어 수십 미터 거리까지 다가갈 수 있었고 레인은 직접 그의 강력함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성벽 위에서 봤던 거대한 존재의 느낌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알려줬고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일깨워줬다. 온몸이 떨렸고 여기서 도망치라고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인은 도망칠 수 없었다. 아니, 도망치지 않았다.
자신만이 그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을 믿고 있는 병사들과 성기사들을 위해서 그는 도망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감정을 마음속으로 다스리면서 남은 성기운을 폭발시킬 준비를 했다.
화아아악!
이어서 라자드가 레인을 눈치챈 모양인지 수많은 검은 연기가 레인을 향해 다가왔다. 레인은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는 것을 눈치채고 성기운을 사용하여 하얀 막을 만들어 내었다. 이내 검은 연기가 막에 부딪히면서 성기운과 마의 기운이 서로 부딪혔고 공방이 펼쳐졌다.
빠직!
"크윽!"
그릇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출력에서 차원이 다를 줄은 몰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검은 연기에 둘러싸인 막은 위태위태하게 흔들리며 부서지려고 했고 좋지 않은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레인은 입에서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기운을 뿜어내는 것을 멈추지 않고 라자드에게 다가가는 것에 집중했다.
"아직이다! 아직 멀었어!"
"아니. 끝이다."
쩌쩡! 푹!
"....."
레인은 고개를 내렸다. 자신의 복부를 검은색으로 된 손톱이 관통하고 있었다.
"쿨럭!"
내장이 뒤틀려 피가 울컥 올라왔고 레인은 힘이 쭉 빠지고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복부를 관통한 손톱은 레인을 그대로 들고 라자드에게 가져왔다. 라자드의 몸에서 나온 검은 연기는 수많은 형체를 이루고 있었고 그중 하나가 실드를 뚫고 레인을 관통한 것이었다.
"네놈이 지휘관인가?"
"그,그렇다."
"나쁘지 않은 기운이군. 하지만 생명력이 빠져나가면서 약해지고 있다. 정상적인 상태였으면 재밌었을 텐데 아쉽군."
"재미? 네놈은 전쟁이 재밌나?"
"전쟁? 푸하하하핫! 전쟁이라고?"
라자드는 레인의 말에 폭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폭소를 멈춘 라자드는 레인에게 얘기했다.
"네놈은 이게 전쟁으로 보이나? 이것은 복수극이며 학살이며 유린의 광경이다. 전쟁은 비등한 집단과 존재끼리 하는 것을 얘기한다. 이게 비등한 것처럼 보이나?"
라자드는 그 말을 하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병사들과 성기사 수십 명을 한 번의 손짓으로 베어내었다.
"지휘관인 네놈조차 내게 아무것도 못 하고 내 손에 생명이 좌지우지 당할 처지이다. 그럼 남은 신성제국이 내게 당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어림도 없지. 오늘 신성제국은 멸망할 것이다. 내 손에 의해서, 흑마법사들의 손에 의해서 오늘 신성제국은 역사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레인은 의식을 붙잡으며 라자드의 얘기를 계속 들었다.
"그러니 재밌을 수밖에 없지! 나의 아내 라티나를 죽인 녀석들을! 신 트레비아를 섬기는 녀석들을! 우리 흑마법사의 적을! 죽이는데 재밌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풉!"
달아오른 감정이 웃음소리에 의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주변 분위기가 안 그래도 라자드의 거대한 기운에 의해서 싸늘했던 것이 극한의 한기처럼 차가워졌다.
"지금...비웃은 건가?"
라자드는 검은 연기로 레인을 감싸며 얘기했다.
"그래. 참으로 웃기니까."
"뭐가 웃긴 거지?"
검은 연기로 둘러싼 레인을 라자드는 가까이 오게 하고 소리쳤다.
"뭐가 웃기냔 말이다!"
라자드가 소리치면서 땅과 대기가 울리고 그의 분노가 주변을 휘감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인은 미소를 띤 얼굴을 계속 보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다가갈지 그렇게 고민했는데 직접 이렇게 해주니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라서."
"뭐라고?"
라자드는 레인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때 레인의 몸에서 강력한 빛이 뿜어나왔다. 그 빛은 지금까지 어떤 빛보다 강렬했고 레인을 감싸고 있던 검은 연기가 그 빛에 밀려 사라졌다. 그리고 레인의 붉은 머리도 한순간에 하얗게 변했고 지금까지 차원이 다른 기운을 뿜어내었다.
"이 일격을 막아봐라!"
레인은 자신의 모든 생명력을 불태워 모은 기운을 검에 집중시키고 라자드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 라자드는 순간적으로 몸에서 검은 기운으로 된 수많은 손톱을 내보냈지만 레인은 방어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찌르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라자드를 죽이겠다는 의지만이 남아있었고 그렇게 검과 손톱이 서로를 향해 나아갔다.
푸푸푹!
"....."
"크크큭...쿨럭!"
검은 손톱이 레인의 몸을 꿰뚫었다. 중요 내장들도 모두 관통되었고 심장 또한 터지면서 온몸에서 피가 분출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레인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만들어놓은 광경을 바라보았다.
레인의 검은 정확히 라자드의 가슴을 뚫었고 검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통해 그의 심장을 관통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레인은 동귀어진의 방법으로 그를 죽이는데 성공했다는 것에 만족하며 이내 사라져 가는 의식을 놓으며 눈을 감았다. 아니, 감으려고 했다.
"놀랍군."
라자드의 목소리에 레인은 눈이 번쩍 떠졌다. 심장이 뚫린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여유와 침착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불안은 다시 눈을 뜨고 본 광경에 확신으로 변했다.
"어,어떻게..."
"죽지 않았냐고?"
레인의 검은 여전히 라자드의 가슴에 박혀있었다. 하지만 라자드는 심장을 관통당하고도 멀쩡히 살아있었고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조차 보이지 않았다.
"말도 안 돼...대체..왜?"
"나에 대해서 너무 우습게 봤군. 내가 인간의 몸을 버린지 얼마나 된지 아는가?"
라자드는 가슴에 박혀있는 검을 손으로 빼냈다. 검을 빼자 검이 찌른 상처에서 피가 울컥 튀어나왔지만 그것도 잠시, 상처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그것을 본 레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라자드를 바라보았다.
"어,어떻게..."
"목을 베었다면 그대로 죽었을 가능성이 있었을텐데 아쉽게 됐군. 그래도 내 속박을 벗어났을 때는 조금 놀라웠다."
"분,분명히 심,심장을 관통했는데.."
"확실히 네 검은 심장을 관통했다. 하지만 너는 모르겠지. 내 몸이 얼마나 많은 생명체의 생명력을 흡수했는지. 관통당한 심장쯤은 다시 재구성하면 될 뿐이다."
"네,네놈은...대체..."
"나는 아키드이자 라자드라고 불리는 존재. 신성제국에 멸망을 가져올 흑마법사이다. 하지만 이제 죽을 네놈과는 상관없는 얘기겠지."
라자드의 말에 레인은 끝없는 절망을 느끼며 자신의 생명력이 이제 바닥이 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신으로서는 라자드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그저 절망감과 함께 황제와 신성제국에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이내 레인은 정신을 잃었다. 라자드 또한 잠시나마 자신을 놀라게 해준 레인을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라자드의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번쩍 지나갔다.
"그래..죽이는 것은 아까운 일이지."
"....."
"좋은 생각이 떠올랐군."
라자드는 호흡이 점점 약해지는 레인을 보고 관통하고 있는 검은 손톱을 빼내었다. 그리고 그 손톱으로 생긴 구멍을 향해 라자드는 손을 쑤셔 넣었다. 레인의 몸이 그에 반응하는 것처럼 움찔거렸고 라자드는 쑤셔놓은 손으로 관통당해서 너덜너덜해진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라자드는 너덜너덜해진 심장에 흡수한 생명력과 마의 기운을 섞어서 불어넣었다. 그러자 박살 났던 심장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성스러운 기운이 아닌 마의 기운을 머금고 온몸에 펌프질을 하기 시작했다. 마의 기운과 충만한 생명력이 온몸에 맴돌면서 상처가 사라졌고 그의 몸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성기운으로 가득 찼던 몸이 새로운 마의 기운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라자드의 끝없는 마의 기운이 이내 성기운을 압박하면서 그의 몸도 마의 기운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정신을 잃었던 레인도 의식을 되찾았다.
"으음..."
"후훗. 정신이 드나 보군."
"이건...대체?"
레인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넣고 있는 라자드를 보고 그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있는지 알 수 없었고 무슨 일이 벌어난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아직 살아있기에 레인은 다시 라자드의 목을 치려고 왼팔을 움직였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묶여있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을 본 레인은 성기운을 사용하여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제야 그는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성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그렇겠지."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라자드는 레인의 몸에 쑤셔 넣었던 손을 뽑았고 벌어져 있던 상처도 다시 연결되며 닫혔다. 그 광경을 본 레인은 자신의 몸에 있던 상처들이 모두 닫힌 것을 볼 수 있었다.
"언데드의 몸이 된 소감은 어떻지?"
"뭣? 언데드?!"
"그래. 넌 언데드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성기운의 마법은 이제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사용했다가는 너의 몸만 무너지게 만들겠지."
"미친 녀석! 날 이런 몸까지 해서 살린 이유가 무엇이냐?!"
"네놈은 마지막까지 지켜봐야겠다. 신성제국이 무너지는 모습을. 그것을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이 네놈에게 어울리는 벌이다."
"뜻대로 될 것 같냐!"
레인은 왼손의 검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라자드의 검은 기운이 레인의 눈을 제외하고 온몸을 꽁꽁 싸매면서 무력화되었다. 무력화된 레인은 그저 눈만 꿈뻑거리며 라자드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라. 끝은 이제 멀지 않았으니. 내 손에 의해서 무너지는 신성제국을 그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라. 크하하하!!"
라자드는 폭소를 내보내며 앞으로 나아갔고 그가 목표로 하는 곳은 신성제국의 중심, 왕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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