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오크 마법사-349화 (348/360)

30장 마지막 전투(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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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장 마지막 전투(19)

거대한 도시와 같이 성장한 아키드의 공방 중심에는 두 개의 실험실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의 실험실에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사지에 쇠사슬이 묶인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인간, 오크, 드워프에 이어서 엘프까지 해서 대표적인 4종족은 거대한 4개의 철창 속에 갇혀있었다.

나머지 2개의 철창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무력화된 상태로 누워있었고 그렇게 6개의 철창은 정육각형을 이루고 있었다. 모든 생명체가 정신을 잃어서 고른 숨소리를 내뱉는 가운데 한 명의 인물이 실험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조용히 정육각형의 중심으로 걸어갔고 이내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쳤다.

우우웅!!

그러자 마치 지팡이에 반응한 것처럼 거대한 정육각형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마법진의 꼭짓점에는 6개의 철창이 있었고 마법진에서 빛이 점점 강해지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으...아..."

"아아아악!!"

"크아아아!"

"캬아아악!"

철창에 갇혀있던 이들이 모두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4종족은 물론이고 동물들 또한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 비명과 함께 그들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나오기 시작했고 수많은 생명체들의 몸에서 나온 빛은 그대로 중심으로 집중되었다.

그 빛은 그대로 인물의 몸속으로 흡수되었고 점점 그 빛이 인물에게 흡수되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와 비례하여 생명체에서 나오는 빛의 세기도 굵어졌고 비명의 소리 또한 더욱 커졌다. 그리고 그들의 몸도 급속하게 생기를 잃어갔다.

탱탱했던 피부는 노인처럼 주름지게 변하고 몸을 구성하던 살은 가죽과 뼈밖에 남지 않았다. 머리카락 또한 가뭄 속의 벼처럼 빠져서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반짝이던 눈은 죽은 동태눈깔처럼 변했다. 아름다웠던 엘프의 미모도 마치 늙은 추녀처럼 변했고 거대한 살덩이를 가지고 있던 오크도 아무것도 먹지 못한 거지처럼 삐쩍 말라갔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모두 비명을 지르지도 못할 정도로 생기를 잃었고 마지막 빛이 나오면서 숨을 거두었다. 그들의 몸에서 나온 마지막 빛까지 인물은 모두 흡수했고 그제서야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야. 여전히 아니야."

수많은 생명체의 생기를 흡수한 그는 약 70세로 보이는 노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 그는 130세라는 믿기지 않는 나이를 가지고 있었다.

끼이익...

"뭔가 불만스럽습니까?"

"왔나? 루시폰?"

루시폰은 올해로 딱 70세에 돌입하지만 그는 누가 봐도 30대의 청년으로 볼 정도로 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효율이 좋지 않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생기를 흡수해도 내 몸 안의 생명력이 빠르게 늘어나지 않는다. 지금도 이 많은 생명체를 흡수했건만 겨우 몇 년 분량의 생명력만이 늘어났다."

8서클 흑마법사 아키드는 불만이 가득한 어투로 루시폰에게 얘기했다.

"신체 나이가 점점 늘어나서 그렇습니다. 그 한계를 뛰어넘을 방법은 단 한 가지 입니다."

"9서클의 벽을 말하는 것이냐?"

"예."

"훗. 말은 쉽구나. 천재라고 불리는 너 또한 9서클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지 않으냐?"

아키드의 말대로였다. 루시폰 또한 여전히 9서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키드는 그의 놀라운 성장 속도를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 수많은 제자 중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였고 자신도 놀랄 정도로 획기적인 사고 능력과 무력은 두려움마저 느끼게 할 정도였다.

아키드는 최근 루시폰이 자신을 따라잡았다는 것을 알기에 그 두려움을 피부로 직접 느끼고 있었다.

"이제 때가 무르익었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아키드님."

아키드는 루시폰이 자신을 보는 눈빛이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눈빛과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는 건가 하는 심정이였지만 그의 몸은 계속 경고 신호를 주고 있었다.

"그게...무슨 소리인가?"

"9서클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아키드 스승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뭐?"

아키드는 루시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전히 몸은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고 루시폰의 눈빛이 자신을 잡아 삼킬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피해망상일까 싶었다. 하지만 의혹과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였다.

"아키드 스승.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9서클 벽을 넘기 위해서 제 양분이 되십쇼."

루시폰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아키드를 감쌌다. 그 광경을 본 아키드는 지팡이를 들어 실드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했고 검은 연기는 실드를 뚫고 들어가려고 했다.

"네놈! 이게 무슨 짓이냐!"

"제가 왜 당신을 다시 찾아온 줄 모르시나 보군요. 저는 당신이 흡수할 만한 가치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를...흡수하겠다고?!"

"예."

"...하하하. 하하하하하!!"

아키드는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고 그와 동시에 지팡이로 바닥을 가격했다.

"내가 그렇게 우습게 느껴지느냐?!"

아키드가 힘을 뿜어내자 실드를 감싸고 있던 검은 연기가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본 루시폰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제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군요."

"뭐라?!"

"당신 정도니까 제가 흡수할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마 당신은 모르고 있겠지만 이미 오래전에 저는 당신의 힘을 넘어섰습니다."

그 순간, 라자드의 몸에서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도 거대한 검은 연기가 튀어나왔다. 그 검은 연기는 그대로 아키드의 실드를 감쌌고 그로 인해 아키드의 실드가 이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저적!

"말,말도 안 돼! 감히 네놈이!!"

아키드는 전력을 다해 마나를 불어넣어서 실드를 유지시켰지만 루시폰의 검은 연기가 실드를 부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리고 아키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내 실드가 부서지면서 검은 연기가 아키드를 삼키었다.

쩌저쩡!

"크아아아악!"

"저는 그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이라는 열매가 잘 익기를 말이죠."

검은 연기가 아키드를 둘러싸면서 그의 생기와 힘을 흡수했다. 그러자 아키드의 몸은 빠르게 원래 자신의 연령으로 돌아갔고 철창에 쓰러져서 죽은 이들과 똑같이 뼈만이 남았다. 그는 그렇게 뼈밖에 남아있지 않은 손을 들어서 루시폰을 가리켰다.

"절대 용서치...않을...것이다! 네...녀석을..."

그 말을 끝으로 검은 연기가 완전히 아키드를 감싸서 그의 모습이 일절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검은 연기는 마치 입이 움직이는 것처럼 위아래로 움직였고 소화를 끝낸 검은 연기는 다시 라자드의 몸으로 돌아왔다.

두근!

"드디어..."

두근! 두근!

"나는 한 단계 더 높은 존재로 변한다!"

두근! 두근! 두근!

그의 몸이 아키드의 생기와 힘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루시폰은 자신도 모르게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의식을 잃은 루시폰의 중심으로 검은 연기가 그를 둘러싸았고 마치 검은 달걀처럼 원형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렇게 루시폰은 검은 연기 속에서 의식을 잃은 채 몸과 정신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예상치 못한 것이 2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바로 변화가 끝나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50년이라는 것과 자신의 안에서 새로운 인격이 태어났다는 점이었다.

"프리안. 오늘 당직은 너지?"

"예."

"그럼 오늘도 수고하도록."

프리안은 선배 마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가 걸어가는 곳은 커다란 실험실이였다. 아니, 실험실로 사용되었던 곳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당직을 서고 있던 마법사가 있었고 프리안은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 없었나요?"

"그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갈 생각은 하지 마라."

"알고 있어요. 전에 누가 호기심으로 들어갔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말도 마라. 너는 보지 못했겠지만 말 그대로 한순간이였다. 검은 연기에 끌려가서 흡수된 것은. 그러니 항상 조심하도록."

"예."

마법사는 그 말과 함께 열쇠를 건네준 다음에 프리안이 걸어왔던 길로 돌아갔고 프리안은 조심스레 문 틈새로 그것을 훔쳐봤다.

"저게 그렇게 위험하다는 건가?"

쇠사슬이 걸린 문 틈새로 실험실의 내부가 보였다. 내부는 어둠으로 가득했는데 그 어둠 속의 중심에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구형이 존재했다. 그 구형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위아래로 움직였고 그 외의 다른 움직임은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귀신같이 구형에서 검은 연기가 튀어나와 침입자를 감싸서 흡수했다.

그런 행동에 마법사들은 그저 그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프리안은 고령의 흑마법사들에게 저 구형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들어왔다.

"정말로 저 구형이 50년이나 되었다는 거야? 믿기지가 않네."

50년전, 아키드와 루시폰이라는 흑마법사가 존재했고 그 두 명이 이 아키드의 공방을 이끌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날, 아키드와 루시폰 두 마법사가 동시에 모습을 감추었고 저 검은 구형이 갑자기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 흑마법사들은 저 구형이 그 두 흑마법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보물처럼 여기며 당직까지 세우며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것도 벌써 50년, 아키드와 루시폰을 본 흑마법사는 이제 손을 꼽을 정도로 적어졌고 아키드의 공방도 세력을 급격하게 약화되어 힘을 잃어갔다.

아키드와 루시폰이라는 두 중심점이 있었기에 성장한 것이지, 그 중심점이 한꺼번에 사라지자 흑마법사들은 신성제국의 힘에 계속해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과거 50년 전과 5분의 1에 해당하는 전력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프리안 또한 자신이 당직을 서는 것이 불만이었다. 당직을 설 시간에 마법을 더 연구하여 공방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 낫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결과물에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까웠다.

"젠장. 늙은이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단 말이야."

프리안은 전 당직자가 먹고 남긴 음식 접시를 발로 찼다. 접시는 그대로 문 틈새로 들어갔고 프리안은 구형이 움직이는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검은 구형은 접시에 반응하지 않았고 조용했다.

"뭐지?"

프리안은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틈새로 눈을 밀어 넣어 자세히 쳐다봤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전과 다른 차이점을 볼 수 있었다.

"움직임이...멈쳤어?"

검은 구형은 항상 심장이 뛰는 것처럼 위아래로 움직였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이 검은 구형은 완전히 정지하여 멈춰있었다. 프리안은 설마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잘못된 건가 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서 그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 전 당직자에게 받은 열쇠로 자물쇠를 풀었다.

자물쇠가 풀리자마자 걸려있던 쇠사슬이 떨어졌고 락 마법 또한 동시에 풀려 문이 저절로 양옆으로 열렸다.

"움직이지 않으니...들어가도 되겠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프리안은 구형의 움직임이 멈춘 것을 위안 삼아서 용기를 내어 첫걸음을 내디뎠다.

탁.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워낙 조용한지라 발자국 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왔다. 프리안은 침을 꿀꺽 삼키며 검은 구형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검은 구형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그런 반응에 프리안은 조금 간이 커지는 것을 느끼며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으...여기만 왜 이렇게 추운 걸까?'

프리안은 한 겨울에 벌거벗은 몸으로 나온 것처럼 피부 위로 한기를 느꼈고 몸을 움츠리며 눈앞에 있는 검은 구형을 쳐다보았다. 검은 구형은 움직임이 멈춘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다가가 보니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움직임이 갑자기 미세해진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프리안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쉬며 안심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그 찰나, 듣지 못했던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쩌저적.

뭔가 갈라지는 소리. 그 소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프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뒤로 고개를 돌렸고 그는 볼 수 있었다. 검은 구형에서 금이 가고 있는 것을. 그 광경을 본 프리안은 몸이 굳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어?"

쩌저적!

"갑자기 왜?!"

프리안은 금이 점점 커지는 검은 구형을 보고 허둥지둥하며 당황했다. 하지만 그가 당황하는 사이에 금은 빠르게 검은 구형 전체로 퍼져 나갔고 그 증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프리안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금이 이내 한계까지 전파되면서 검은 구형은 산산조각 났고 프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팔을 들고 눈을 감았다.

쩡!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프리안은 눈을 떴고 그는 검은 구형 속에서 한 명의 인물이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인물은 조용히 일어났고 프리안은 정체불명 인물의 등장에 자신도 모르게 지팡이를 들었다.

"당,당신은 누,누구냐?!"

"내가 얼마나 자고 있었던 거지?"

흠칫.

프리안은 인물의 목소리를 듣고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눈앞의 인물이 자신이 지금까지 만난 어떤 인물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공방에 있는 고령의 흑마법사들조차 그의 앞에는 갓난아기와 같다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프리안은 인물의 질문에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검은 구형이 생긴 날부터를 묻는 것이라면 약 50년이 지났습니다."

"50년...이건 예상치 못했군. 하지만..."

인물은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프리안은 그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 순간 인물의 몸에서 검은 연기와 마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마기를 느낀 프리안은 마치 모든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아..."

프리안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너무나 감명받은 나머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프리안은 그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앞에 있는 인물에게 엎드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절대자시여...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모두 당신을 위한 것이였군요."

"네 이름은 뭐지?"

"제 이름은 프리안입니다."

"프리안. 지금부터 50년 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얘기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프리안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일들을 모두 얘기했다. 아키드와 루시폰의 행방불명, 검은 구형의 등장, 아키드 공방의 쇠락, 현재 신성제국의 동향 등 간략하고 중요한 사건과 일들을 모두 얘기했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들은 인물은 프리안에게 얘기했다.

"지금부터 너는 모든 흑마법사들을 집결시켜라."

"예?"

"기다림의 시간은 끝이 났다. 나 아키드가 되돌아왔으니 신성제국의 멸망이 다가왔다고 전해라."

"...예!"

프리안은 기쁨에 겨운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바깥으로 나갔고 혼자 남은 그는 조용히 얘기했다.

"루시폰. 너의 목적은 내가 대신 이루어주마. 아키드의 이름을 대고 말이야. 그러니 조용히 자고 있어라. 일어나면 모든 것이 끝나 있을 것이니. 크하하하하!"

이날, 파괴와 폭력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루시폰의 새로운 인격. 고대어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자'라는 이름을 가진 라자드가 태어나게 되었다.

"저게 그 라자드라고?"

"그렇다. 나와 아키드가 합쳐지면서 새로 생긴 인격. 그리고 네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라자드이지."

과거에 루시폰이라고 불린 라자드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듀로크에게 얘기했다.

"나는 아키드의 힘을 흡수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새로운 인격이 생기고 내 몸이 힘에 맞게 변화하면서 5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된 것이지. 더구나 그 인격에 내 몸을 뺏겨서 25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의식을 잃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기억을 보여주고 있는 거지?"

"새로운 인격의 라자드 또한 내 몸에서 나온 인격. 그의 기억 또한 나에게 공유되고 내 기억 또한 그에게 공유된다."

"...그렇군. 그럼 저 라자드가 한 행동은 너와 관련이 없다는 거냐?"

"그것은 아니다. 저 라자드 또한 나의 다른 인격. 나의 검은 면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또한 나인 것은 틀림없다. 그 예로 그는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것을 모두 이루어줬으니까."

"뭐?"

라자드가 기억 영상의 재생을 다시 시작하면서 주위의 광경이 또 변화하였다.

라자드는 프리안이 공방의 마법사들을 모으는 사이에 실험실 밖으로 나와서 걸어갔다. 50년의 시간 동안 길과 내부가 많이 변했는데도 그는 마치 상대가 어디 있는지 아는 것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걸음을 나아갔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하나의 방에 도착했다. 그 방 앞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것처럼 정교한 마법진이 문에 새겨져 있었다. 마치 소중한 것을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한 것처럼.

하지만 라자드는 그 정교한 마법진을 매우 쉽게, 그것도 손 한번 휘두르는 것으로 없애버렸다. 그리고 마법진이 사라지자 닫혀있던 문이 자동으로 활짝 열렸고 라자드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있었군."

라자드가 손으로 검은 화염을 만들어내자 그 빛에 내부가 환해지면서 주변 사물이 보였다. 방안의 중심에는 하나의 원형관이 있었고 원형관의 옆에는 다양한 물품과 함께 마법진이 보좌하고 있었다. 라자드는 그 원형관을 향해 다가갔고 손을 내밀어 관을 쓰다듬었다.

"...라티나."

원형관에는 라티나의 몸이 들어있었다. 라티나는 5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죽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있었다. 라자드 또한 전과 다를 게 없었고 그 둘만 바라본다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일 텐데...이렇게 강력한 감정이라니. 신기하군."

라자드는 자신의 몸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감정에 감탄했다. 그리고 그는 몸을 수그려서 바닥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너를 위한 선물이다."

라자드의 몸에서 넘쳐흐르는 검은 마나가 마법진에 흡수되면서 마법진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정교했던 마법진에 수많은 문자와 조그마한 마법진이 중첩되면서 이제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라티나를 보호할 절대 마법진이 완성되면서 라자드는 다시 일어섰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그의 소망대로 너를 되살리겠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기다려라..라티나."

그 말을 끝으로 라자드는 다시 바깥으로 나갔고 그가 나가면서 동시에 마법진이 발동되어 문이 닫혔다. 어떤 폭발과 충격에도 버틸 수 있고 라자드를 제외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마법진의 보호 앞에.

수많은 흑마법사들이 강당과 같은 커다란 공간에 모여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을 것 같은 고령의 노인도 있었고 아직 앳된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 소년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아키드의 공방에 속해있는 흑마법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무슨 일로 모인 거야?"

"글쎄. 고령 흑마법사들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뭐라고 하는데?"

"아까 얼핏 듣기로는 누가 다시 돌아왔다고 하던데?"

"누가 돌아왔다고?"

"확실한 것은 모르겠어. 하지만 고령 흑마법사들이 상당히 흥분해 있더라고. 심상치 않은 일인 것은 확실한 것 같아."

고령 흑마법사들을 제외하고는 자신들이 왜 모인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고령 흑마법사들의 분위기가 고양된 것을 보고 무언가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강당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이 있었다.

"....."

"....."

조금 전까지 수많은 흑마법사들이 웅성거리며 대화하고 있었고 그 소리 때문에 서로 간에 대화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인물이 들어오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들어온 인물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아니, 지금까지 만나본 어떤 인물과도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그들은 온몸의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들어온 인물이 조용히 마법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본 고령 흑마법사들은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드디어...드디어 그분이 돌아오셨다."

"우리의 오랜 기다림은 역시...틀리지 않았어."

"아아...죽기 전에 다시 뵐 수 있을 줄이야."

고령 흑마법사들은 마치 신을 마주한 것처럼 행동했고 그 모습에 다른 흑마법사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인물은 그런 고령 흑마법사들에게 다가가 얘기했다.

"생각보다 오랜 기다리게 했군."

"아닙니다!"

"돌아오실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공방을 유지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자리를 비우는 동안 공방을 유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약화시켜서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쇼!"

고령 흑마법사들은 그동안 참고 있었던 얘기를 하였다. 하지만 그 인물은 그들의 얘기를 한마디로 압축했다.

"이제 걱정하지 마라. 내가 왔으니."

""...예!""

인물의 말에 고령 흑마법사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절대 신뢰하였다. 다른 흑마법사들은 지금까지 누구보다 강하고 카리스마를 보이며 공방을 이끌던 고령 흑마법사들이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더불어 저 인물이 누구길래 저런 모습을 보이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인물은 느린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흑마법사들에게 얘기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너희들에게 가르쳐주마. 내가 누구인지."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침묵이 유지되는 가운데 인물은 얘기했다.

"나는 이 공방을 만든 아키드와 그의 대제자 루시폰이 합쳐져 태어난 존재다. 이 아키드 공방의 설립자라고 봐도 될 것이다."

"합쳐져 만들어진 존재?"

"그게 무슨?"

그를 처음 본 흑마법사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때 인물의 등 뒤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검은 연기는 강당을 모두 채울 정도로 늘어났고 모여있는 수많은 흑마법사들을 감쌌다.

흑마법사들은 갑작스럽게 자신을 감싸는 검은 연기에 놀라워했지만 이내 그들은 그 검은 연기에서 아주 친숙한 느낌이 난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것은..."

"검은 마나?"

"이 모든...것이?"

"말도 안 돼..."

압도적인 양과 질의 차이에 흑마법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힘이 10이라고 한다면 눈앞의 인물이 뿜어내는 힘은 수천, 수만을 넘어서 단위부터가 달랐다.

"나는 9서클의 벽을 넘어섰다. 흑마법사들이여. 이제 기다림은 끝이 났다. 신성제국의 눈으로부터 숨어 살 필요 없다. 왜냐하면 오늘부로 신성제국은 내 손에 의해 무너져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인물의 말은 누가 들으면 미치광이가 내뱉을 거라고 생각되는 말이였다. 하지만 흑마법사들은 눈앞의 인물이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인물에서 나오는 위압감은 상상을 초월했고 본능적으로 그가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했다.

"지금까지 흑마법사라고 차별당하고 배척당했다. 누군가는 가족을, 누군가는 친구를, 누군가는...연인을 잃었을 것이다. 단지 흑마법사라는 이유로. 나는 이런 세상을 바꿀 것이다. 신성제국이라는 기둥을 부수는 것으로."

인물은 흑마법사들이 모여있는 중심에 다가왔다.

"물론 신성제국을 무너트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 있는 태반이 죽어나가겠지.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장담할 수 있다. 나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고 신성제국을 무너트리라는 것을. 그런 나의 계획에 동참할 생각이 있나?"

인물은 두 손을 펼치며 얘기했고 그와 동시에 주위를 감싸고 있던 검은 연기가 단번에 사라졌다.

"당연한 말씀을."

"이미 남은 수명을 모두 바칠 생각이였습니다."

"부디 저희의 목숨을 가치 있게 사용해주십쇼."

인물의 질문에 고령 흑마법사들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에 이어서 다른 흑마법사들도 모두 동참하기 시작했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신성제국을 무너트릴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어!"

"흑마법사들이 빛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무엇을 하지 못하랴!"

"이제 더 이상 숨어 사는 것도 지겨워!"

"맞아, 맞아!"

한 명, 한 명씩 동조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빠르게 확산되었고 이내 강당 안에 모인 모든 흑마법사들이 찬성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인물, 라자드는 미소를 씨익 지으며 얘기했다.

"알겠다. 그렇다면 오늘 부로 나, 아키드의 이름 앞에 신성제국을 무너트린다는 것을 선포하겠다. 보아라. 흑마법사들이여. 보아라. 신성제국이여. 보아라. 대륙이여. 우리 아키드의 공방 앞에 모든 것이 뒤틀릴 것이다!"

우와아아아!!

라자드의 말과 함께 흑마법사들은 힘찬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자드는 허공을 보며 얘기했다.

"보아라. 트레비아.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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