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장 마지막 전투(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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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장 마지막 전투(17)
위기를 넘긴지 5개월이 지났고 안나는 전과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활발하게 바깥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5개월 전을 생각하면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게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안나를 조나단은 행복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루시폰과 나눈 약속대로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누가 어떻게 치료했냐고 물어도 그는 얼버무리고 절대 얘기하지 않았다. 그도 약속한 의리와 자신의 딸을 회복시켜준 은혜를 잊지 않고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킬 생각이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조나단은 안나가 가죽 공을 놓치고 잡기 위해서 뛰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때 안나는 미쳐 다가오는 상대를 보지 못해서 부딪혔고 안나는 밀려서 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다. 안나는 넘어진 것에 깜짝 놀라서 울먹거리기 시작했고 조나단은 안나에게 다가갔다.
"안나, 괜찮니? 죄송합니다. 우리 아이가 보지 못한 것 같..."
조나단은 부딪힌 상대에게 사과하다가 상대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하면 상대는 한 명이 아니였고 복장을 통해 그들이 누군지 눈치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성...기사단."
신성기사단. 신성제국 알브란의 성기사들로 이루어져 있는 기사단이다. 그들은 신을 섬기고 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며 서슴지 않게 순교를 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신성기사단은 무력도 무력이지만 광신도에 버금가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신을 모욕하면 모욕죄라는 죄목으로 국경에 상관없이 처벌을 내리고 신에 관련돼서 허투로 말을 해도 그자를 찾아가서 무기를 휘두른다. 거기다 흑마법사를 매우 배척하고 혐오하여 흑마법사의 정보를 수집하면 신성기사단이 집단으로 움직여 흑마법사를 제거할 때까지 추적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였다. 흑마법사뿐만 아니라 흑마법의 가족, 흑마법사가 있던 집과 마을, 마을 사람들까지 모든 것을 불태우고 파괴하는 행위까지 하여 그들은 신성제국을 제외하고 모든 대륙에서 두려워하는 집단이였다.
그래서 조나단은 그들의 복장을 통해 신성기사단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우리의 앞길을 막다니 불경한 아이로군."
"그 더러운 손으로 신의 전도자인 우리를 만지다니."
"죄,죄송합니다. 부디 자비를!"
신성기사단은 십자가의 무늬가 그려져 있는 하얀 제복을 입고 있었고 성검처럼 빛나는 하얀 검과 성서를 들고 있었다. 조나단은 성기사들이 부딪힌 안나에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황급히 다가가 엎드리며 빌었다.
"안,안나도 이리 와서 사과하렴! 얼른!"
"죄,죄송해요."
안나는 아직 놀라워하는 표정과 함께 몸을 떨고 있었지만 조나단이 엎드리면서 얘기하자 본능적으로 고개를 내려 사과를 했다. 그러나 성기사들은 마치 좋은 먹잇감을 찾은 것처럼 둘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을 보면 뭔가 수상합니다."
"저는 이 아이가 악의 앞잡이가 아닐까 의심스럽습니다."
"맞습니다. 지금 바로 확인 절차를 실시해야 합니다."
"아.아닙니다! 저와 딸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상인으로서.."
"그것은 모두 신의 재판 앞에 밝혀질 겁니다."
"신의 재판 앞에서는 누구도 모습을 감출 수 없으니까요."
"신,신의 재판!"
신의 재판. 거대한 나무 십자가에 죄수를 묶어두고 칼로 사지의 힘줄을 모두 자른다. 그리고 신성한 불을 붙여서 십자가와 함께 죄수를 태워서 그 불 속에서 살아남으면 죄가 없다고 판결한다. 그것이 바로 신의 재판이었다.
하지만 그 신의 재판이라는 명목하에서 살아남은 자가 없다는 것을 신성기사단을 제외하고 모두 알고 있었다.
"제발! 저와 제 딸은 무고한 사람입니다! 정말 믿어주십쇼!"
"어허. 신의 재판을 받아보면 아는 것을. 그렇게 거부하는 것을 보면 뭔가 찔리는 것이 있나 보지?"
"아닙니다!"
"그럼 신의 재판을 진행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건가? 우리의 신을 모욕하려는 건가? 지금?"
조나단은 자신이 말하면 말할수록 수령에 빠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사이에 한 성기사가 안나의 옷을 잡고 들어 올리는 것을 봤고 안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 광경을 본 조나단은 안나를 잡은 성기사의 바지춤을 잡고 빌었다.
"안됩니다! 제게 하나밖에 없는 딸입니다! 제발 자비를!"
"이거 놓지 못해?! 어디서 더러운 손으로!"
성기사는 발로 조나단을 찼고 조나단은 멀리 날아갔다. 안나는 그것을 보고 더욱 울음을 터트렸고 성기사는 검을 꺼내 조나단에게 다가갔다.
"우리의 신성한 재판을 방해하고 소중한 시간을 낭비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죄는 크니 네게 처벌을 내리겠다!"
성기사의 번쩍이는 검에 조나단은 덜덜 떨며 바닥에 엎드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성기사는 검으로 조나단을 베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그를 멈추게 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흘흘. 거기까지 하게나."
성기사는 그 목소리에 바로 검을 검집에 넣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다른 성기사들도 모두 똑같은 행동을 하며 길을 터주었다. 그 길을 통해서 나온 한 명의 노인이 조나단에게 다가왔다.
노인은 다른 성기사보다 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기다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조나단은 그의 옷차림과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과 분위기를 통해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교황...예하."
"우리 신성기사단도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취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네. 그리고 자네의 간절함이 느껴지니 넘어가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조나단은 머리를 바닥에 찎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하지만 교황이라는 노인의 말은 그게 끝이 아니였다.
"그러나 자네의 딸에게서 불온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예?"
"자네의 딸은 밖으로 나오지 못할 정도로 위독한 병을 가지고 있었지.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네의 딸은 이렇게 밖에서 뛰어다닐 정도로 회복되었네. 그 이유가 뭘까?"
"그,그건..."
"그건 자네의 딸이 모종의 치료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네. 그것도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말이지."
"....."
"신에 제일 가까운 위치에 있는 나의 눈을 속일 수는 없네. 자네 딸의 심장 속에서 흐르고 있는 불온한 기운을. 그러니 어떻게, 누구에게 치료했는지 얘기하는 것이 좋을 거네. 말하지 않으면 이 아이가 어떻게 될지 나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
교황은 잡고 있는 지팡이로 안나의 가슴을 향해 가리켰고 조나단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이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무덤까지 가지고 갈 비밀을 이미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루시폰은 오늘도 약사의 일을 하기 위해서 물품들을 챙기고 있었다.
"라티나. 내가 없을 때 무슨 일이 생기면 알지?"
"알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말한 거야?"
"그래도 불안하니까. 이제 태어나려면 얼마 남지 않았잖아."
라티나의 배는 누가 봐도 튀어나온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불룩 커져 있었다. 라티나가 임신한지 약 8개월이 되어서 루시폰은 라티나에게 일을 하지 말고 집에 있게 하였다. 물론 흑마법의 연구도 금지하여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쉬라고 강력히 주장하여 라티나도 그 말에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둘 다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 루시폰 혼자 약사로 활동하며 생활비를 벌어왔다. 그래서 라티나가 혼자 집에 있는 것을 루시폰은 항상 불안해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앵무새 사역마로 연락할 것."
"또."
"공방에 있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활용할 것. 항상 얘기해서 달달 외웠다니까."
"사소한 일이라도 상관없이 전해야 해? 바로 달려올 테니까."
"알겠어. 알겠어. 자자, 늦었으니까 빨리 가."
라티나는 루시폰을 밀면서 내보냈고 루시폰은 마지막까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문을 닫고 나서야 루시폰은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고 라티나는 그것을 창가로 보고 나서야 한숨을 쉬었다.
"휴..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단 말이야?"
루시폰이 시간이 갈수록 자신을 더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고 어떨 때는 과보호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지켜주려고 그런 행동을 보여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라티나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루시폰도 갔으니까...마법서나 보고 있을까?"
하루 종일 집에 있어서 심심한 라티나는 종종 마법서를 보며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오늘도 마법서를 보기 위해서 라티나는 지하에 있는 마법서를 가져오려고 바닥에 있는 천을 걷어내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라티나는 노크하는 소리에 걷어내던 천을 다시 깔았고 집안에 뭔가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후에 문을 조금만 열었다. 조그마한 문 틈새로 조나단이 보였고 라티나는 그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조나단?"
"...미안...미안하네. 라티나."
"에?"
라티나는 조나단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때 문 틈새로 한 손이 불쑥 들어왔다.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인 성기사는 틈새로 라티나를 보며 얘기했다.
"부인. 잠시 얘기 좀 가능할까요?"
"...당신은 누구시죠? 그리고 갑자기 들이닥치다니 무례하네요."
"무례를 용서해주십쇼.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신성기사단에 속해져 있는 성기사 레단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이 조나단에게 들은 이야기에 대해 듣고 싶은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얘기 없습니다. 이만 사라져주세요."
라티나는 힘으로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성기사는 발까지 틈새로 밀어 넣어서 그런 행동을 미연에 방지했다.
"잠시 얘기만 할 뿐입니다. 이렇게까지 꺼리시는 것을 보면 혹시 뭔가 찔리는 거라도 있습니까?"
"그건..."
라티나는 성기사의 질문에 입이 막혔다. 그리고 라티나는 이내 각오한 표정을 짓고 성기사에게 얘기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다른 남정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옷이 아니라서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 않는게 좋을 겁니다."
그 말과 함께 성기사는 발과 손을 틈새에서 뺐고 라티나는 문을 닫았다. 이어서 라티나는 철창 안에 있는 앵무새를 꺼내서 조용히 창가로 내보내고 난 후 바닥에 깔린 천을 빠르게 걷어내었다.
그리고 소리가 들리지 않게 문을 열고 라티나는 공방 밑으로 황급히 내려간 후에 공방 중앙에 새겨져 있는 텔레포트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어서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아니, 발동시키려고 했다.
"뭐야?"
마나를 불어넣었는데도 텔레포트 마법진은 발동되지 않았다. 마치 뭔가에 방해를 받는 것처럼 텔레포트 마법진에 마나가 흡수되면서 동시에 흩어지고 있었다. 그런 형상에 라티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때 라티나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흘흘.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려고 하는가? 잠시 얘기 좀 하자고 했을 뿐인 것을."
교황은 성기사와 함께 공방으로 내려왔고 공방에 있는 물품과 실험체들을 보며 얘기했다.
"혹시나 했는데 정답이였군. 이런 명백한 증거를 두고 아니라고 발뺌하지는 않겠지? 흑마법사."
교황의 비아냥에 라티나는 쓴웃음을 지었고 테이블 위에 있는 마법서를 잡으며 마법을 사용했다.
"파이어 플레임!"
라티나의 손에서 검은 화염이 뿜어져 나와서 교황과 성기사들을 덮쳤다. 하지만 교황의 옆에 있는 성기사들이 성서를 펼쳤고 그로 인해 하얀 실드가 생겨났다. 검은 화염은 하얀 실드를 향해 날아갔고 이내 두 개의 상반된 성질이 부딪히면서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쾅!!
라티나는 폭발이 일어난 사이에 미리 만들어놓은 비밀 통로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폭발 연기 속에서 두 개의 성검이 튀어나와 라티나의 양쪽 어깨를 꿰뚫었다.
"아아아악!"
"신의 전도자인 우리를 앞두고 도망칠 수는 없네."
성검은 어깨와 함께 벽을 관통하여 라티나를 고정시켰고 교황은 연기를 뚫으며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교황은 라티나의 배를 지팡이로 찔렀다.
"아악!"
"임신한 흑마법사는 처음이군. 과연 2개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흑마법사는 신의 재판 앞에서 무고한지 봐볼까?"
'루시폰...미안해.'
라티나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루시폰의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렸고 그녀는 이내 의식을 잃었다.
"이틀에 한 번씩 꼭 먹어야 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
"고맙네. 약사 양반."
"돈을 받은 만큼 일하는 겁니다. 저는 그럼 이만 가볼게요."
"약사 양반. 간식을 먹고 가지 않겠나?"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집에서 임신한 아내가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러면야 어쩔 수 없지. 잘 가게나."
"예."
루시폰은 노인 부부가 사는 집에서 나오고 받은 대금을 확인했다. 대금을 제대로 받은 것을 확인한 루시폰은 마지막으로 방문하기로 예정된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뭘 사가지고 갈까? 사과와 배를 좋아했으니까 오늘도 과일을? 아니면 오랜만에 고기? 고민되네."
라티나가 임신하면서 루시폰은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미 자식이 태어난 것처럼 아이 이름은 뭐로 해야 할지, 옷은 뭘 입혀야 할지 등 벌써부터 다양한 고민을 했다.
마치 과거의 루시폰이 그를 본다면 자신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둥그러졌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일을 마치고 빠르게 집으로 가볼까?"
루시폰은 그렇게 얘기를 하며 마지막 행선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때 루시폰의 시선에 한 새가 눈에 들어왔다. 그 새는 정확히 루시폰을 향해 다가왔고 루시폰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 새는 루시폰의 행동에 맞혀서 손가락 위에 앉았고 그를 향해 애교를 떨었다.
"이것은...위험할 때 쓰라는 앵무새...설마?"
루시폰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마침 한 청년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고 있었고 그 청년은 루시폰을 보고 멈추었다.
"헉..헉...루,루시폰! 큰,큰일이야!"
"...무슨 일이지?"
"신,신성기사단이 나,나타났어. 그,그리고 그 신성기사단이 너,너희 집으로 갔대. 조,조나단과 안나를 데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루시폰의 가슴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듯한 충격이 일어났다.
"...라티나."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이라고 빌고 싶었다. 하지만 루시폰의 바램과 달리 모든 감각이 현실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안돼..."
"...루시폰?"
신성기사단이 조나단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는 말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찾아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신성기사단은 혼자 있는 라티나를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안돼..안돼..."
불타오르는 집. 붉은 피와 거대한 십자가. 그리고 신성기사단 앞에서 갈기갈기 찢기며 놀아나고 있는 라티나와 배 속의 아기. 그 광경이 루시폰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안돼..안돼...안됀다고!!"
콰콰콰콰!!
루시폰의 함성과 함께 그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나왔다. 지금까지 숨기고 있던 것을 방출하듯이 검은 기운은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고 날려 보냈다. 루시폰의 앞에 있던 청년은 마치 태풍을 만난 것처럼 날아갔고 주변의 집과 마을 사람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라티나!!!"
루시폰은 손에 있는 것을 모두 던지고 플라이 마법으로 집을 향해 최대 속도로 날아갔다. 자신을 누가 보든, 흑마법사로 보든 상관없었다. 그의 정신과 몸은 오직 집으로 돌아가 라티나를 구한다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루시폰은 태어나서 신이란 존재를 한 번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신을 싫어하면 싫어했지 믿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루시폰은 상대가 신성기사단인데도 불구하고 신에게 빌었다.
'제발...내 모든 것을 희생해도 되니까 라티나를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제발...제 평생 처음으로 당신에게 빕니다. 신이시여.'
그렇게 비는 사이에 최고 속도로 날아간 끝에 루시폰의 시야에 집이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기도를 무시하듯이 집에서는 불안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연기를 보자마자 루시폰은 땅에 착지하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항상 가는 언덕이었지만 오늘따라 끝없는 산을 올라가는 것처럼 한없이 가파르게 느껴지고 영원처럼 지나갔다. 그렇게 영원 같은 시간도 지나고 루시폰은 드디어 자신과 라티나의 집 앞에 도착했다.
"....."
타탁. 타탁.
눈앞의 광경을 본 루시폰의 시간이 멈추었다. 둘이 살고 있던 집은 불이 붙어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고 힘없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집 앞에는 하얀 제복을 입고 있는 이들과 안색이 창백해져서 덜덜 떨고 있는 조나단과 안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는 하나의 거대한 십자가가 있었다. 십자가 밑에는 언제든지 불을 붙일 수 있도록 지푸라기가 있었고 아직 불이 붙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루시폰은 십자가의 중심에 있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십자가의 중앙에는 죽어있는 한 명의 여성이 있었다. 여성의 사지는 십자가에 맞혀서 못이 박혀있었고 배는 마치 여닫이 문이 열린 것처럼 활짝 열려있었다. 그리고 열린 배를 통해 내장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내장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주먹만한 아기였다. 하얀 제복을 입은 이들은 그 아기를 마치 장난감처럼 쥐고 놀고 있었고 자신들이 만든 참상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루시폰은 그 광경을 보고 라티나와 있었던 일이 마치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
아키드의 밑에서 라티나와 처음으로 만났었던 기억. 서로 경쟁하고 다투면서 정이 들었던 기억. 점점 관계가 깊어지며 사랑을 싹트고 아키드에서 도망쳤던 기억.
"아아.."
함께 집을 지으며 미소를 지었던 기억. 집에서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었던 기억. 흑마법을 연구하면서 다투었던 기억.
"아아아."
임신했다는 소식에 서로를 얼싸안으며 기뻐했던 기억. 라티나의 배에 귀를 대며 행복했던 기억. 아이의 이름을 뭐로 지을지 함께 고민했던 기억.
수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기억들 모두 이제는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걸려있는 여성, 라티나가 죽었다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루시폰의 내면에서 악마가 태어났다.
아아아아악!!!
루시폰의 외침은 주위에 있는 신성기사단은 물론이고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 사람들까지 귀를 막을 정도로 엄청난 소리를 내보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신성기사단은 귀를 감싸며 루시폰을 바라보았고 자신들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뭐,뭐지?"
"춥,춥지도 않은데 몸,몸이."
그들은 이빨을 수없이 부딪치고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통제하고 싶어도 뇌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루시폰이 한발짝씩 다가오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신성기사단의 한 성기사는 그를 향해 검을 뽑으며 얘기했다.
"정,정지! 지,지금 이곳은 신성한 재판을 하,하고 있는..."
성기사는 잘 나오지 않는 말로 내뱉다가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그는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시폰의 악마 같은 눈빛과 그의 뒤에서 나오고 있는 거대하고 섬뜩한 기운을. 그리고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이 인물이 자신을 살려둘 생각이 없다는 것을.
그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챈 성기사는 자신도 모르게 성검을 꺼내서 루시폰에게 달려들었다.
"죽,죽어라!!"
성기사의 행동은 마치 밟힌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반사적인 생존 행동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렁이의 꿈틀거림이 소용없듯이 그의 행동 또한 쓸모없었다. 루시폰의 등 뒤에서 나온 검은 기운은 그대로 성기사를 감쌌고 성기사는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검은 기운에 먹혔다.
"뭐,뭐야?"
"저,저 검은 것은?"
신성기사단은 루시폰이 뭘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행동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몇 초 후에 검은 기운 속에서 둘러싸였던 성기사가 나왔고 그 성기사를 본 신성기사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그 성기사는 마치 미라처럼 가죽만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저게 대체?!"
"교,교황님!"
"당황하지 마라! 우리는 신의 전도자 신성기사단! 흑마법사 앞에 무릎을 꿇을 이들이 아니다!"
교황의 말에 신성기사단은 그제야 침착을 되찾고 교황의 곁에 모였다.
"흑마멸진을 실행하겠다. 모두 내 뒤로 와서 힘을 보태도록 해라."
""예!""
성기사들은 교황의 말에 맞혀 성서를 읊기 시작했고 성기사들의 몸에서 나온 하얀 빛이 교황을 중심으로 모이고 있었다. 교황은 자신의 몸에 힘이 모이는 것을 느끼면서 지팡이를 들었다. 그러자 지팡이 앞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겼고 교황은 지팡이의 끝을 루시폰을 향해 가리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항복하면 신의 재판으로 무고한지 확인할 기회를 주도록 하겠다."
"라티나...라티나..."
루시폰은 그저 똑같은 말을 하면서 일정한 발걸음을 유지하며 터벅터벅 걸어왔다. 교황은 그 모습을 보고 주저 없이 마법진을 발동하였다.
"사악한 악마여! 신의 힘 앞에 무릎을 꿇어라!"
마법진에서 새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광선은 두께가 몇 미터는 될 정도로 두꺼웠고 마(魔)의 상극인 신성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흑마법사나 마족이 그 광선 앞에 있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고 교황은 확신했다. 그러나 실제로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교황의 믿음을 배신하는 모습이었다.
"뭐,뭐야?!"
"흑마멸진을...막고 있다고?"
루시폰의 등 뒤에서 나온 검은 연기는 마치 날개처럼 보였다. 그 두 개의 흑익은 루시폰의 앞을 감싸고 신성한 빛으로 이루어져 있는 광선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루시폰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고 그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아..."
루시폰은 정신이 파탄난 사람처럼 비틀거렸지만 광선 속에서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고 성기사들은 자신들의 비장의 수로도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다.
"교,교황님!"
"더 힘을 불어넣어라! 젖먹던 힘까지 사용해라! 악에 굴해서는 절대 안 된다!"
""예!""
교황의 말에 성기사들이 성서를 읊으며 자신의 모든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마나가 부족하면 자신의 생명력까지 아낌없이 퍼부은 결과 광선은 더욱 두꺼워지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두 개의 흑익도 강력해진 광선을 모두 막을 수 없었고 루시폰에게 드디어 상처를 입히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신성한 힘은 흑마법사의 상극이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마치 황산에 닿은 것처럼 루시폰의 몸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루시폰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아...아..."
아프다.
"아...아..."
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아프다.
"아...아..."
하지만...라티나가 더 아팠겠지.
"아아..."
라티나는 산 채로 배가 갈라졌다. 이런 아픔과 비교조차 되지 않겠지.
"아아..."
왜 라티나가 죽어야 하는 거지? 그녀가 그저 흑마법사라는 이유로?
"아아아..."
그녀를 죽인 이놈들을 용서치 않을 거야.
"아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인간들을 죽일 거야.
"아아아!"
라티나를 죽을 운명을 만든 신을 죽일 거야! 모두, 모든 것을 죽일 거야! 라티나를 죽게 만든 네놈들! 모두를!
"아아아아아아악!!!"
루시폰의 외침과 더불어 거대한 검은 기운이 튀어나왔다. 그 검은 기운은 한순간에 언덕을 모두 덮으면서 마치 빛이 사라진 것처럼 완전한 어둠을 깔았다. 마법진에서 나오는 광선만이 그 어둠 속에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무,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빛,빛이 사라졌어!"
"대,대체 무슨..."
성기사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을 감추지 못했고 교황 또한 처음 보는 광경에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느낄 수 있었다. 흑마멸진에서 나오는 광선이 조금씩 어둠에 침식당해서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악,악마 자식! 신을 거역하는 존재 주제에 어떻게 이런 힘을!"
【죽어라! 그녀가 받은 고통을 네놈들도 똑같이 느껴라!】
어둠은 이내 광선의 빛까지 모두 침식하였고 그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깔렸다. 그리고 어둠이 깔리는 순간 그들의 몸을 해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드득! 지지직!
"아아악!"
"배,배가!"
"살,살려줘!"
살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성기사들은 비명을 질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배가 찢어지고 내장이 튀어나오는 가운데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루시폰은 그들이 어떤 비명을 지르든, 회개를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어떻게하면 최대한의 고통 속에서 공포를 느끼게 할지, 그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이 지나 성기사들이 모두 죽고 나서야 어둠이 물러났다. 그리고 루시폰은 내장을 꺼내고도 아직 죽지 않고 떨고 있는 교황에게 다가갔다.
"네,네놈은 죽,죽어서도 영,영겁의 고통을 느낄 것이다. 신,신의 앞에 무력하게 말이다."
"그럴 일은 없다. 신도 내가 죽일 거니까."
"뭐,뭣?"
서걱.
루시폰은 교황의 목을 단번에 베어버리고 십자가에 걸려있는 라티나에게 다가갔다. 그는 성기사가 가지고 놀던 아기를 라티나의 배에 다시 넣고 마법을 사용해 배를 다시 닫았다. 그리고 십자가에 걸려있는 라티나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안았다.
"미,미안해!"
그때 옆에서 덜덜 떨고 있던 조나단이 루시폰에게 무릎을 꿇었다.
"모,모두 내 탓이야. 용서해줘!"
"시끄러. 라티나와의 만남을 방해하지 마라."
서걱.
"아빠!"
루시폰은 용서를 구하던 조나단의 목을 검은 연기로 단번에 베었고 그 광경을 본 안나는 아빠에게 달려갔다.
"네게 줬던 것도 돌려받겠다."
루시폰이 오른손을 들자 안나의 가슴에서 빛이 튀어나와 루시폰의 손으로 흡수되었다. 동시에 안나가 바닥에 갑자기 쓰러지면서 격한 호흡을 했고 그녀는 살려달라는 듯이 루시폰에게 손을 들었다.
하지만 루시폰은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일절도 신경 쓰지 않았고 안나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렇게 루시폰은 죽은 그녀의 시신을 들고 사라졌고 이날을 기점으로 그는 다른 존재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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