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오크 마법사-331화 (330/360)

30장 마지막 전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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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장 마지막 전투(1)

마지막 전투의 날이 밝았다. 어제 그렇게 활기찼던 분위기가 거짓말이라고 하듯이 지금은 70만의 병사들이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목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인간, 오크, 엘프, 드워프 그리고 드래곤까지.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모든 장비와 무기들을 갖추고 완벽한 중무장을 한 상태였다.

그렇게 70만의 병사들이 모여서 말튼 평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병사들의 앞에는 검은 구름과 연기 속에 있는 세레티 왕국이 있었다.

"드디어 오늘이 왔군."

듀로크 또한 망토와 지팡이 그리고 가면까지 착용한 상태로 어느 때보다 마음을 굳건하게 잡았다. 그리고 듀로크는 70만의 병사 앞에 서서 그들을 향해 얘기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병사들이여. 자네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펼치고도 살아남은 정예이며 용사이다. 그리고 그런 자네들에게 마지막 하나의 전투만이 남아있다. 그 전투는 무엇보다 치열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힘들 것이다."

듀로크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믿음과 존경, 긴장과 흥분. 투지와 열망. 다양한 감정들이 담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전투에서 질 수 없다. 왜냐하면 대륙의 운명이 걸린 전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기면 대륙은 유지될 것이고 우리가 진다면 대륙은 멸망할 것이다. 이런 막중한 책임감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인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책임감은 한 명이 갖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동료가. 여기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나눠서 가져가는 것이다."

자신의 옆에 있는 동료들을 보았다. 누구보다 믿음직하고 사지로 같이 서슴없이 나아갈 동료들. 그들이 있었기에 라자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믿기 힘들다면 옆에 있는 동료를 믿어라. 동료를 믿기 힘들면 나를 믿어라. 그렇게 믿고 나아간다면 우리는 이 위기를 헤치고 나아가 대륙의 멸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당당하게 역사에 이름을 새길 것이다!"

듀로크가 소리치며 지팡이를 들었고 그 광경을 본 70만의 병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

우렁찬 함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듀로크는 들고 있는 지팡이로 세레티 왕국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전군 전진! 마지막 전투를 시작한다!"

듀로크의 전진 명령과 동시에 전병력이 세레티 왕국으로 전진했고 세레티 왕국 전체를 둘러쌓고 있는 검은 연기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세레티 왕국의 경계선으로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검은 연기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든 생명체들이 그 변화를 감지했다.

"윽!"

"숨,숨이..."

마치 고지대의 산에 올라온 것처럼 호흡이 가빠지며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검은 연기에 들어있는 마기를 초인이나 어느 정도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이들은 차단할 수 있었지만 일반 병사들은 불가능했기에 그런 증상을 겪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제 초입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심각한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매우 국한되어있었다. 최대 수십 미터까지 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 이상은 검은 연기에 막혀 아예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듀로크는 전병력에게 밀집된 지형을 갖추도록 명령하였고 그로 인해 각 왕국의 병력끼리 뭉쳐 조금씩 전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시야가 심각하군."

【그러게 말이네. 문제는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마기가 심각해져 시야 또한 나빠지겠지.】

"라이트 마법을 사용해도 불가능하려나?"

【한번 실험해보겠네.】

다르디엔은 듀로크의 말을 듣고 간단한 라이트 마법을 사용했다. 다르디엔의 손에 생겨난 빛의 구체 여러 개가 주변을 향해 날아가면서 검은 연기를 몰아내듯이 주변을 밝혔다. 하지만 이내 검은 연기가 빛의 구체를 감싸면서 소멸시켜버렸고 원상태로 돌아갔다.

【한순간에 사라지는군. 마치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초인이나 너희 드래곤들은 이 마기 속에서도 마나를 감지하여 시야가 국한되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병사들에게는 어둠 속에 있는 것과 느껴지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나?】

"마나를 계속 사용하여 라이트 마법을 유지시키는 것도 방법 중 하나지만 라자드와의 전투를 생각한다면 마나를 아껴야 하니 그대로 전진하는 수밖에 없어."

【그럼 속도를 높이겠나?】

"그래. 조금이라도 빨리 전진하겠다."

듀로크는 병사들의 전진 속도를 조금 더 빠르게 명령하였고 그로 인해 병사들이 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검은 연기 속에서 70만의 병사들이 넘는 병력이 앞으로 나아가고 약 20분 정도 지났을 무렵. 한가지의 변화가 일어났다.

【듀로크.】

"알고 있어."

다르디엔과 듀로크 그리고 일부 초인들은 그 변화를 눈치챘고 듀로크는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전투 준비! 긴장을 늦추지 마라!"

그 외침에 병사들은 어둠 속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기 위해서 무기와 방패를 들고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리고 듀로크가 외치고 약 30초도 되지 않아서 조그마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어어어...으아아..

무언가 가래가 섞인 목소리였다. 그것도 한,두개가 아니고 수십, 수백 개가 넘는 목소리가 수많은 방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라이트!"

듀로크가 마나를 듬뿍 머금은 라이트 마법을 수십 개 사용하면서 일시적으로 주변을 밝혔다. 그리고 라이트 마법이 검은 연기에 먹히기 전에 주변을 밝히면서 병사들은 그제야 그 소리의 정체가 뭔지 알 수 있었다.

"좀비!"

"좀비다!"

살이 썩어서 흐물흐물해져 있고 뼈에 살점이 위태롭게 붙어있었다. 사지가 모두 달려있는 것을 찾기 힘들 정도로 훼손도가 높은 좀비들이 많았고 이미 생전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그런 좀비들이 수백 마리를 넘어 수천 마리가 느린 걸음으로 병사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중장갑병과 전사 및 기사들은 전방으로. 마법사들은 유지. 궁수들은 머리를 노리도록 해라. 전 병사들은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다."

마기에 의해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 제한되는 가운데 좀비를 해치우기 위해서 마나를 사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아직 첫 번째 벽을 넘어서 두 번째 벽까지 가야 하는 병사들에게 벌써부터 마나를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콰직! 퍼석!

좀비들의 무서운 점은 압도적인 숫자와 발톱이나 이빨에 의해 생긴 상처로 들어가는 독이다.

하지만 지금 병사들은 모두 완벽 중무장을 한 이들로 제일 가벼운 복장인 마법사들도 좋은 질의 가죽 갑옷을 착용하고 있어서 좀비의 공격이 통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병사들이 좀비들보다 훨씬 많은 숫자를 자랑하면서 좀비의 강력함을 살릴 수 없어 좀비들은 병사들의 앞에 무력하게 쓰러져갔다.

"전진! 그대로 전진한다!"

궁수들의 지원도 필요 없을 정도로 중장갑병과 전사 및 기사만으로 좀비들을 학살하며 지나갔다. 그렇게 일방적인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그 좀비들은 바로 세레티 왕국의 일반인들이 변한 모습이었다. 숫자만 많을 뿐이지 하나하나는 일반 병사들도 잡기에 힘든 몬스터가 아니였다. 그리고 지금 70만의 병사들은 마물들과 수많은 전투에서도 살아난 정예들이었다.

그 결과 좀비에게 당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고 그대로 파죽지세처럼 좀비들을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언덕을 넘어가고 나서 거대한 평야와 절벽이 듀로크의 눈에 들어왔다. 70만의 병사들을 모두 수용하기에 충분한 면적이였고 절벽으로 인해 3면이 허공에 있어서 정면만 방어하면 되었다.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로 듀로크는 병사들에게 절벽으로 움직이도록 명령했고 이내 70만의 병사들은 절벽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보급 부대까지 모두 수용하고 정면을 수비할 병사들을 몇 부대로 나뉘어 시간에 따라 좀비들을 상대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듀로크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로그. 얼마나 온 거지?"

"이제 반나절 정도 와서 아직 4일하고 반나절을 더 가야 합니다."

"좀비들 자체는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이 마기지."

듀로크는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검은 연기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아직은 초입이여서 마기가 약한 편이지만 그래도 일반 병사들의 몸에는 조금씩 마기가 축적될 거야. 조금이라도 빨리 갈 수 있으면 빨리 가야 해."

"하지만 보급 부대까지 감안한다면 속도를 더 이상 올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겠지. 그렇다면 병사들의 몸에 축적되는 마기를 없애는 수밖에 없는데...다르디엔. 혹시 드래곤 중에서 축적되는 마기를 제거하는 방법을 아는 녀석이 있어?"

【흐음...잘 모르겠네. 아그리마. 자네라면 알고 있지 않은가?】

지식의 드래곤인 아그리마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말에 모든 이들이 기대의 눈빛으로 아그리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기대에 반은 호응했고 반은 따르지 못했다.

【축적된 마기를 없애는 마법진이 존재하긴 해. 하지만 문제는 그 마법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기가 필수적이야.】

"그 말은?"

【마족만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

"반마족인 맥으로는 힘드나?"

【힘들어. 왜냐하면 이 마법진은 적의 마기를 흡수하여 자신의 힘으로 돌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마족들이 다른 마족들의 마기를 흡수하기 위해 만들어졌지. 하지만 저 반마족의 성질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과연 저렇게 많은 병사들의 몸에 축적된 마기를 흡수하여 자신의 힘으로 변환시킬 수 있을까?】

"...흐음."

듀로크는 아그리마의 말대로 맥이 병사들의 마기를 흡수하여 자신의 힘으로 변환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때 듣고 있던 맥이 듀로크에게 나서며 얘기했다.

"제가 할게요. 해보지 않고는 모르잖아요."

"아니. 그러다가 네가 잘못 되면 내가 카르티네를 볼 면목이 없어진다. 도박은 하지 않겠어."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거야? 지금 벨리온이 없으니 마기를 사용할 줄 아는 녀석은 없다고."

벨리온의 빈자리가 어떤 때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듀로크였다. 듀로크는 다른 방법이 없나 골머리를 썩이며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한 명의 인물이 듀로크에게 얘기했다.

"주인님."

"응?"

"저는 가능합니다."

"...맞아. 네가 있었지!"

듀로크는 4대 마족을 상대한 이후로 마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로그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로그! 지금 당장 아그리마에게 그 마법진을 전수받고 가능한지 확인해봐라."

"알겠습니다."

로그는 듀로크의 말대로 아그리마에게서 마법진의 작성법과 세세한 구성들을 들었고 곧바로 마법진 실험에 나섰다. 로그는 병사들이 쉬고 있는 절벽의 중심으로 가서 한쪽 무릎을 꿇고 손을 바닥에 올려두었다. 근처에 있는 병사들은 그런 로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쳐다보았지만 로그는 그 시선을 일체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눈을 감고 몸 안에 있는 마기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로그의 몸속에서 숨어있던 마기들이 움직이며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어내었다. 마법진은 검은색의 빛을 띠면서 70만의 병사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고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마법진에 당혹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듀로크가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하자 병사들은 그의 말을 믿고 마법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로그는 마기를 활용하여 마법진의 완성에 박차를 가했고 시간이 지나 듀로크를 향해 얘기했다.

"준비됐습니다."

"시전해라."

"알겠습니다."

듀로크의 말을 들은 로그는 곧바로 마법진을 시동했고 그 결과, 검은 마법진이 하얀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얀 빛이 나는 순간 병사들의 몸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어?"

"몸이 가벼워진다?"

"숨이..."

병사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들의 몸에 쌓였던 마기가 몸에서 배출되면서 마법진 안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병사들의 호흡이 원래대로 돌아와서 몸이 가벼워진 것과 같은 효과를 일으켰다. 또한 마법진은 주변에 날아다니는 검은 연기들에 포함된 마기도 흡수하면서 마법진이 존재하는 곳은 깨끗한 공기를 가진 것처럼 시야가 말끔해지고 연기가 사라졌다.

"좋아. 성공했군. 로그 상태는 어떠냐?"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게는 긍정적인 효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로그의 말대로 병사들의 몸속에 있던 마기와 연기에 포함된 마기를 흡수하면서 로그가 사용할 수 있는 마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런 로그의 말에 듀로크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이제부터 병사들이 휴식할 때마다 마법진을 설치하도록. 그리고 마기를 흡수할 수 있을 만큼 흡수해라. 너의 그 마기는 라자드와의 전투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로그 덕분에 병사들은 검은 연기 속에서도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좀비들이 끝없이 쳐들어왔지만 강력한 중장갑들의 방어선을 뚫지 못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후에 70만의 병사들과 보급부대는 다시 이동을 하였다.

이동하면서 또다시 좀비들이 몰려왔지만 이미 좀비들에 적응된 병사들은 가볍게 밀어붙이며 앞으로 나아갔고 그렇게 약 반나절 정도 이동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파죽지세로 움직이고 있던 병사들의 진격이 갑자기 멈추게 되는 일이 생겼다.

"이건?"

"도시?"

연기에 막혀 나쁜 시야 때문에 가까이 다가와서야 병사들은 거대한 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벽에서 더 나아가 성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야 이곳이 하나의 도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듀로크 또한 그 사실을 눈치채고 세레티 왕국에 일가견이 있는 에밀리에게 가서 물었다.

"이곳이 어딘지 아나?"

"여기는...레기너스 도시에요."

에밀리는 마치 추억의 장소를 보는 것처럼 아련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얘기했다.

"평화롭고 화목한 도시였죠. 다른 도시들 중 정령사가 많은 편이여서 저도 자주 오고는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그때와 많이 다르네요."

통나무집은 마기에 의해 마치 마녀의 숲에 사는 나무처럼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있었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던 분수에는 처음 보는 식물들이 피어나 있었다. 집과 바닥에는 좀비조차 변하지 못해 죽은 시체들로 가득했고 시체에게서 나오는 악취가 연기와 합쳐져 풍겨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변화한 분위기가 에밀리에게 있어서는 누구보다 커다란 차이로 느껴졌고 세레티 왕국이 정말로 변화했다는 것을 다시금 인식시켜주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건가? 돌아서 가겠나? 아니면 도시를 경유해서 가겠나?】

"에밀리. 어느 경로로 가야 더 빠르지?"

"당연히 도시를 경유해서 가는 경우가 더 빨라요. 돌아가는 경우랑 약 반나절 정도 차이가 날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도시를 경유해서 가는 것으로 하지. 아직은 상태가 괜찮으니까."

【알겠네. 드래곤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전하겠네.】

도시를 경유하기로 결정한 끝에 병사들에게 명령을 전달하여 병사들은 도시 속으로 들어가 진격하기 시작했다. 70만의 대병력이다 보니 도시에 존재하는 몇 개의 길로 나뉘어서 나아갈 수밖에 없었고 병사들은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긴장하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여기가 그 평화의 도시 레기너스라고? 완전히 마녀의 도시라고 말해도 믿겠다."

"쉿! 그런 말을 하면 옴 붙는다고. 재수 없는 소리는 혼자 있을 때 얘기해."

"킥킥킥. 네가 겁쟁이일 줄은 몰랐는데?"

"시끄러. 지금도 위에서 누군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병사들 중 일부는 그렇게 대화를 하며 분위기에서 나오는 긴장감을 떨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의 대화를 들은 한 병사가 양옆에 있는 건물 위를 바라보았고 이내 건물 위에서 뭔가 흐릿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손으로 눈을 비볐지만 여전히 흐릿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잠깐. 저건 뭐야?"

"뭐?"

"건물 위에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병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동시에 이변이 발생했다.

콰직!

"크아아아악!"

"뭐,뭐야?!"

건물 위에서 숨어있던 존재들이 일제히 위에서 점프하면서 진격하고 있던 병사들을 덮쳤고 그들의 목을 향해 이빨을 박아내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일부 병사들이 반격도 하지 못하고 죽어 나갔고 다른 병사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무기로 습격한 몬스터들을 공격해내었다.

그리고 무기로 몬스터들을 죽이고 나서야 병사들은 몬스터의 정체를 파악했다.

"뱀파이어?"

창백한 안색에 송곳니를 가지고 피를 빨아내는 몬스터. 뱀파이어였다. 하지만 그란 왕국의 뱀파이어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눈이였다. 그란 왕국의 뱀파이어들은 외형에 있어서 인간의 눈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지금 나타난 뱀파이어들은 완전히 붉게 물든 혈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처럼 괴성을 지르며 한번 목을 물면 모든 피를 빨아낼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뱀파이어들이 건물 위에서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고 병사들은 뱀파이어들과 전투를 펼치기 시작했다.

"뭐야? 이 뱀파이어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듀로크.】

"초인들과 드래곤들도 나서서 처리하도록 하지. 대신 모두 죽이지는 않고 몇 마리는 제압하는 것으로."

【알겠네.】

수많은 뱀파이어들이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처음 기습을 빼고는 부상자와 사망자가 많이 생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병사들은 뱀파이어들보다 훨씬 강한 마물들을 상대해왔기에 뱀파이어들 상대로 죽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초인들과 드래곤들도 개입하면서 뱀파이어들이 빠르게 사라졌고 듀로크의 말대로 몇 마리의 뱀파이어를 생포하는 것으로 습격은 마무리되었다.

"크아아아!!"

"피,피!!"

생포 당한 뱀파이어들은 괴성을 지르거나 피를 마시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렇게 생포한 뱀파이어를 앞에 두고 듀로크는 그란 왕국 뱀파이어의 리더인 아르셰에게 물었다.

"이 뱀파이어들은 너희들과 다른 존재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뱀파이어들은 이렇게 혈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피를 갈구한다고 해도 이렇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군. 그럼 아그리마. 이들에 대해서 알고 있어?"

듀로크는 아르셰도 모른다는 말에 자연스럽게 아그리마에게 물었다.

【이 뱀파이어들은 세레티 왕국에 존재하는 이들이 변한 뱀파이어지. 하지만 이들은 마계에서 살고 있던 뱀파이어와 매우 흡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마계에서?"

【여기 있는 아르셰란 뱀파이어를 비롯해서 이 대륙에 존재하는 뱀파이어들은 마계에서 살고 있던 뱀파이어들이 대륙에 떨어지고 나서 적응하며 퇴화한 이들이다. 살아남기 위해 피를 갈구하던 욕망을 줄이고 몬스터로서 갖고 있던 흉포한 본성을 없앤 것이지. 하지만 죽음의 도시로 인해 마계와 비슷한 조건이 되면서 이 녀석들은 마계에 있었던 뱀파이어와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럼...저의 조상과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되나요?"

"특징만 그렇다는 것이지 이들은 세레티 왕국의 사람들이 변한 존재니까. 아그리마. 이들에게 피를 주면 어떻게 되지?"

【준다고 해도 정신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에밀리. 이들을 어떻게 할지 네게 결정권을 주겠다."

"제게요?"

"그래. 이들은 원래 세레티 왕국의 사람들이니까. 이미 죽인 뱀파이어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이렇게 사로잡은 이들을 어떻게 할지는 네게 맡기고 싶다. 죽여도 상관없고 풀어줘도 상관없다. 어떻게 하겠나?"

"그건..."

에밀리는 몬스터처럼 괴성을 지르며 핏발이 선 눈으로 피를 갈망하는 뱀파이어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에는 낯익은 얼굴도 있었고 자주 얘기를 나누었던 정령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이미 기억 속의 얼굴은 사라져있었고 흉포한 몬스터의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되돌릴 방법이 없다면...죽일게요."

"괜찮겠나?"

"예. 오히려 편하게 해주는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알겠다."

듀로크는 그들을 제압하고 있던 마법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뱀파이어들은 제일 가까이 있었던 에밀리를 향해 일제히 덮쳤고 에밀리는 그들을 보며 고개를 수그렸다.

"미안해요."

뱀파이어가 에밀리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그들은 얼어버리거나 화염에 의해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에밀리는 그런 그들에게 묵념하였고 그들의 얼굴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듀로크는 에밀리의 다짐과 선택을 속으로 인정하였고 그녀가 이제부터 나아갈 길을 지켜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르가 갑자기 듀로크에게 다가왔고 듀로크는 르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이냐? 르."

"한 명의 뱀파이어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뱀파이어가 조금...이상합니다."

"이상하다고?"

듀로크는 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묻는 수밖에 없었다.

"혈안을 가지고 피를 갈구하는 것은 똑같으나 그 뱀파이어는 자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자아를?"

【놀랍군.】

아그리마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흥미가 생겼는지 눈을 번쩍이며 르에게 다가왔다.

"예. 그리고 그 뱀파이어는 에밀리님을 만나고 싶다고 요청하였습니다."

"에밀리를?"

"저를요?"

에밀리는 그 뱀파이어가 자신을 찾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다음에 이어진 르의 말을 듣고 기절초풍하듯이 놀라워했다.

"그는 자신을 라미온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라미온이라고?!"

"라미온님이...살아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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