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오크 마법사-329화 (328/360)

29장 세레티 왕국으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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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장 세레티 왕국으로(1)

가르모스 평야에서 움직일 수 없는 부상자나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중상자들을 제외하고 70만에 달하는 대군이 세레티 왕국으로 움직였다. 산맥을 넘고 평야를 지나가고 강을 건너면서 약 20일에 달하는 행군을 하였고 끝내 세레티 왕국의 경계에 있는 말튼 평야에 도착했다.

그렇게 말튼 평야에 도착한 70만의 대군은 세레티 왕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정비를 하기로 하였다. 듀로크는 70만의 병사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눈앞에 존재하는 세레티 왕국을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저기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군."

아직 세레티 왕국의 경계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레티 왕국은 어둠으로 뒤덮여있었다. 하늘에는 수많은 먹구름으로 가득했고 세레티 왕국 전체에 검은 연기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검은 연기 안에서 수많은 좀비나 스켈레톤 등 언데드 몬스터로 변한 인간들이 움직이는 것이 이곳에서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세레티 왕국의 중심으로 보이는 곳에는 완전한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내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듀로크. 모두 준비되었네."

"알겠어."

듀로크는 다르디엔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지막 회의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미 각 왕국의 중심인물들과 지휘관과 그리고 드래곤까지 모두 모여있었고 그 가운데 듀로크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전에 했던 계획대로 병사들은 두 번째 벽까지만 이동할 생각이야. 그리고 그 병사들을 이끌 총 지휘관으로는 르. 네게 맡길게."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로그님이 더 어울리지 않습니까?"

"로그는 나와 같이 라자드를 상대하기 위해 안쪽까지 가야 하거든. 그리고 두 번째 벽에서도 마기가 꽤 있으니까 힘들어하는 병사들이 있으면 뒤로 빠지도록 해."

"예."

"명심해. 너희 병사들이 해줄 임무는 섬멸이 아니야. 우리 정예들이 나아가는 동안 뒤를 잡히지 않도록 시간을 끌며 방어해주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르셰와 쿠로딘, 그리고 클레아도 르를 도와줘."

"...듀로크 오빠."

클레아는 예상은 했지만 듀로크가 못을 박고 얘기하니 그를 나무라는 듯이 쳐다보았다. 하지만 듀로크는 그녀의 어리광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클레아. 네 힘으로는 세 번째 벽의 마기를 버틸 수 없어. 그 정도는 너도 알고 있잖아?"

"...예."

"모두 너를 잃고 싶지 않아서 얘기하는 거야."

"알고 있어요. 하지만...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걸요."

클레아는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듀로크는 그녀가 속으로는 자신의 얘기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용히 넘어가며 얘기를 계속 진행했다.

"이어서 세 번째 벽까지만 가는 정예 집단은 친위대 오크와 와이번 라이더. 그리고 요리스의 용병 20명, 일루드 마법사 30명, 수인 10명, 드워프 전사 10명, 엘프 정예 20명, 나이트의 기사 20명, S급 암살자 4명. 그리고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드래곤 22명. 이렇게 할 예정인데 질문 있는 사람?"

"지휘관은 누구로 둘 건가?"

"흐음...쉐이드?"

"뭐지?"

팔짱을 끼고 듣고 있던 쉐이드가 듀로크의 말에 듀로크에게 시선을 맞혔다.

"S급 암살자들에게 여기 지휘관을 맡기고 싶은데 괜찮나?"

"에?!"

"우리요?!"

이츠를 비롯한 4명의 S급 암살자들은 자신을 지목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모양인지 당황한 기색이 여력 했다. 하지만 쉐이드의 대답에 그들은 더욱더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관없다."

"에?!"

"쉐,쉐이드님!"

S급 암살자들은 쉐이드를 바라보며 말을 철회해달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쉐이드는 짜증이 난 게 확실한 태도로 그들을 마주했다.

"뭐가 불만인가?"

"아,아니 그게 저희한테 너무..부담되는 임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누군가를 이끌 수 있는 이들이 아닙니다."

"듀로크. 이 녀석들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상황판단과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이 필요하거든. 그리고 그런 능력에 최적화된 것이 S급 암살자니까."

"들었지?"

"하,하지만!"

"시끄럽다."

쉐이드가 살기를 뿜어내며 S급 암살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불만을 뿜어내던 S급 암살자들의 입이 닫혔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해졌다.

"언제부터 그렇게 결정에 토를 달 수 있었지? 하라면 해라. 그게 아니였던가?"

"...그,그렇습니다."

"듀로크의 말대로 지휘관은 너희들이 해라. 우리가 라자드를 상대하는 동안 한 마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도록."

""예!""

S급 암살자들은 쉐이드의 말에 복창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쉐이드는 듀로크를 바라보았고 듀로크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고맙다는 뜻을 표했다.

"그럼 다음으로 라자드를 상대하러 갈 구성원을 얘기할게. 우선 요리스 왕국의 헤츠와 모리스. 일루드 왕국의 제네스와 루키드. 나이트 왕국의 메스, 크리드, 아무드, 타노스, 레이트. 게덴 왕국의 베로나. 밀런 왕국의 나르샤. 그리고 그라이언 동맹에서 그란, 맥, 쉐이드, 벨리온, 나미래, 로그, 매트, 에밀리.

드래곤 쪽에서는 세트리나, 데미가스, 다르디엔, 제라서스, 비아토스, 아그리마, 디오노스, 다미우스. 이렇게 갈 예정이야."

듀로크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보며 얘기했다.

"아. 물론 나도 갈 예정이고. 혹시 이거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

"나."

듀로크의 질문에 손을 드는 인물이 한 명 있었고 듀로크는 그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때가 됐나?"

"응. 그런 것 같아."

손을 든 인물은 바로 벨리온이였다.

"예? 때가 됐다니 무슨 말인가요?"

"벨리온을 봉인할 때가 되었다는 거지."

"예?!"

클레아는 듀로크의 말에 깜짝 놀라워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벨리온은 마족이야. 마왕의 힘을 흡수한 라자드에게 있어서 거스를 수 없는 존재지. 지금도 벨리온은 버티고 있지만 마기가 깔려있는 세레티 왕국으로 들어가는 순간 명령을 어길 수 없게 되겠지."

"그럴 수가.."

듀로크는 벨리온이 가르쳐준 마법진을 바닥에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진을 그리면서 듀로크는 벨리온에게 얘기했다.

"봉인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어차피 네가 다시 풀어주면 만날 텐데 필요한가?"

"훗. 그렇긴 하지. 하지만 다른 이들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나 본데?"

벨리온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클레아, 나르샤, 쿠로딘 등 그란 왕국에서부터 알고 지냈던 이들도 있었고 일루드의 루키드와 제네스처럼 같이 전투를 펼치면서 친해진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수많은 감정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벨리온은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벨리온은 과거에 귀족 활동을 하면서 아이를 구하고 선심을 베풀었다. 하지만 그는 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영지민에게 배척을 당하고 봉인을 당했다. 그것도 선심을 베풀면서 구한 아이에게 배신을 당하면서까지. 그리고 듀로크가 자신과 같은 착오를 할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광경을 보고 벨리온은 자신의 쓸데없는 걱정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둘러싸고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눈빛에는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며 안쓰러워하는 감정이 담겨있었다. 과거에 봉인되었을 때와 똑같이 봉인 마법진 위에 서 있는 것은 같았지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완전히 정반대인 것이다. 과거 영지민들의 눈빛과 지금 있는 이들의 눈빛이 교차되면서 벨리온은 미소를 지었다.

"나도...행복한 놈이였군."

수천 년 동안 쌓였던 앙금이 풀리는 것과 같은 상쾌함이 가슴 속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벨리온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다음에 만나도록 하지. 그때는 모든 것이 끝나고 여유롭게 술이나 마시며 얘기하자고."

"그래. 아직 나와의 술 대결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취익! 나도 잊지 않겠다!"

"하하하! 술통째로 준비해둘 테니 걱정 마라!"

"흑..꼭! 다시 깨워드릴게요!"

나르샤와 그란과 쿠로딘, 그리고 클레아가 각자 벨리온에게 얘기했고 그 말을 들은 벨리온은 듀로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라."

"알겠어."

듀로크는 그려놓은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고 그에 반응해 마법진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이어서 마법진에서 하얀빛으로 된 채찍이 튀어나와 그의 몸을 조금씩 둘러싸았다. 벨리온은 자신의 몸을 점점 감싸는 빛을 바라보며 듀로크에게 얘기했다.

"이겨라."

"당연하지. 잠시 잠자고 있어. 일어나면 모든 것이 끝나있을 거다."

"2천 년 전에는...이 무력화해지는 기운이 그렇게 싫었는데 오늘은 왠지...포근해지는...기분이군."

벨리온이 그 말을 하며 눈을 감았고 몸에서 힘을 뺐다. 그러자 채찍이 벨리온의 몸을 모두 감쌌고 봉인 마법진이 거대한 빛을 뿜어내었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면서 보이는 것은 공중에 떠 있는 조그마한 구슬뿐이었다.

듀로크는 그런 구슬을 조심스레 잡아서 품속에 넣으며 얘기했다.

"라자드를 이겨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군...진군은 정확히 내일 오전 8시에 한다. 그러니 마지막 날을 대비해 모두 휴식을 취하고 풀 수 있는 대화는 모두 풀도록. 나도..오늘은 휴식을 취하려고 하니까."

듀로크는 병사들이 쉬는 무리 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걸어 다니는 이유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듀로크라고 해도 마지막 결전이여서 그럴 수도 있었다. 아니, 듀로크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모두 이 한 번의 싸움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베아트리스의 힘과 의지를 이어받은 것까지 친다면 2천년이 넘는 시간의 결판이 이제 곧 이루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이런 감정은 참 오랜만이네."

다양한 적들을 만나고 그들을 상대할 때마다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과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라자드는 달랐다. 자신이 모든 힘을 쏟아내도 이길 수 있을지 의심이 가는 존재. 또한 지금까지 얘기는 했지만 직접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불안감 같은 것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런 불안감으로 인해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것이고 그런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듀로크는 걷고 있었다. 하지만 듀로크의 그런 마음과 다르게 주변은 시끌벅적했다.

"취이익! 마셔라! 마셔!"

"푸하하하! 오크들은 통쾌하게 잘 마시는군! 엘프들은 저렇게 못 마시는 거냐?"

"흥! 우리도 마실 수 있거든?"

"호오? 그럼 보여주시던가?"

"취이익! 여기 있다!"

"좋아! 보여주도록 하지!"

오크, 엘프, 드워프, 인간이 모두 섞여서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가르모스 평야에 있던 전투로 인해서 그들의 관계는 더욱 좁혀졌고 지금은 동료라고 봐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친밀해져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듀로크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는데 그때 어디선가 낯익은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듀로크는 그에게 다가갔다.

"자네는...분명 피터라고 했나?"

"듀,듀로크님?!"

피터는 자신을 부른 인물이 듀로크라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피터의 옆에 있던 그레이와 스티아, 그리고 뤼나티크 또한 놀라워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여기는 어쩐 일로?"

"잠시 걷고 있었지. 그런데 피터. 당신도 지금까지 살아있었군. 정말 다행이야."

"아닙니다. 모두 듀로크님과 동료들 덕분인걸요."

피터는 듀로크가 그렇게 얘기해준 것에 감동을 받은 모양인지 함박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듀로크는 그런 피터를 보다가 이내 다른 3명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모두 부상을 입었는지 붕대로 상처를 막고 있었고 특히나 그레이는 왼쪽 팔이 아예 잘려져 있었다.

"자네 팔이?"

"아. 이번 싸움으로 뜯겨져 나가서 말이죠. 다행히 제 팔을 되찾기는 했지만 붙이기에는 힘들다는 말을 들어서 그냥 한쪽 팔로 싸우려고 합니다."

그레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고 그의 농담에 나머지 3명 또한 똑같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듀로크는 그레이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잘려진 팔은 가지고 있나?"

"예? 예. 여기 천에 말아두고 있었죠."

그레이는 천으로 말아둔 팔을 보여주며 얘기했다. 듀로크는 마물들에 찢겨져 손상이 심한 팔을 보며 그레이에게 얘기했다.

"내가 붙여줄 테니 붕대를 풀어라."

"예?"

"빨리."

"예,예! 알겠습니다."

그레이는 듀로크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의 말대로 잘려진 팔의 단면에 묶은 붕대를 풀었다. 그리고 듀로크는 팔을 단면에 붙인 다음에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리커버리."

잘려진 팔이 없었다면 퍼펙트 힐을 사용해야겠지만 남은 팔의 부위가 있으니 리커버리로 충분했다. 듀로크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처럼 잘려진 단면끼리 붙기 시작했고 손상된 상처 또한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4명은 신비롭게 쳐다보았고 이내 리커버리의 빛이 사라진 후에는 완벽하게 달라붙은 그레이의 팔을 볼 수 있었다.

"움직여봐라."

듀로크의 말에 그레이는 팔을 움직여보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팔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장,장난 아니군요. 마치 시간이 되돌아간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니다. 내일부터 또 싸워야 하니 조심하도록."

듀로크는 그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때 피터는 그를 붙잡았다.

"잠시만요! 듀로크님!"

"응?"

"시간 되시면 잠시 대화 가능하시겠습니까?"

듀로크는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잠시 어울리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듀로크가 자리에 앉았고 피터는 그가 합석한다는 것에 기뻐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듀로크가 앉자 잠시 침묵이 이어졌지만 이내 그레이가 고개를 수그리며 듀로크에게 얘기했다.

"제 팔을 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니 신경 쓰지 마라."

"아닙니다. 듀로크님에게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제게는 커다란 일입니다. 그러니 그럴 수 없습니다."

"...알겠다. 마음은 받아두도록 하지."

"예!"

그 말이 끝나고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5명의 중심에는 화톳불이 붉게 불타오르고 있었고 장작이 타는 소리만이 그 침묵을 깨고 있었다. 그런데 피터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모두 피터를 바라보고 있었고 피터는 그들이 자신을 왜 쳐다보는지 이해하며 듀로크에게 얘기했다.

"듀로크님. 듀로크님은 불안감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

"제가 듀로크님의 입장이였으면 책임감과 불안감에 압도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듀로크님은 멀쩡한 모습을 보이시니 역시 듀로크님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도 그런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여기 걸어 다니는 것도 그런 감정이 없지 않아 있어서니까."

듀로크의 솔직한 말은 지휘관으로서 하지 말아야 하는 말 중에 하나였다. 지휘관이 불안해하면 그 불안감이 밑에 있는 이들에게까지 전파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과장한다면 병사들이 지휘관을 믿지 않으면서 명령체계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듀로크는 솔직하게 얘기했다.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어서 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다른 이들도 자신의 심정을 알았으면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혹은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었다. 무슨 이유가 됐건 간에 듀로크는 그저 말하고 싶었고 그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자신의 말을 듣고 그들이 보이는 모습은 듀로크가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그렇습니까?"

"헤에?"

의외라는 표정과 함께 조금은 기뻐하는 감정이 담겨있었다. 듀로크는 왜 그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 기뻐 보이는군."

"아. 죄송합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듀로크님은 우리와 다른 차원의 존재라고 생각했거든요."

"맞아, 맞아. 불안감 같은 것은 절대 느끼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듀로크님도 저희와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느껴 기쁜 겁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자네들은 불안감을 어떻게 없애지?"

"간단합니다. 동료와 지휘관을 믿는 겁니다."

"동료와 지휘관을 믿는다?"

"예. 제가 하지 못한다면 여기 있는 그레이와 스티아, 그리고 뤼나티크님이 어떻게든 해주실 거다. 그래도 안 된다면 듀로크님. 당신이 해결해주실 거라고 믿고 있는 겁니다."

"듀로크님만큼 믿음직스러운 지휘관도 없죠. 저희는 그저 듀로크님을 믿고 나아가는 겁니다. 영감도 그렇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런 거였나."

듀로크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깨달았다. 극히 간단한 것이였던 것을.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동료들을 믿는다. 항상 하던 것이지만 잠시 잊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든든한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자신과 함께 라자드를 향해 나아가는 20명의 동료들과 드래곤들. 그야말로 대륙에 존재하는 역전의 용사들이자 누구보다 강한 초인들이었다. 그들만큼 믿을 수 있는 동료는 존재하지 않았다.

"고맙다.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잠시 까먹고 있었군."

"천만에요. 저희 덕분에 편안해지셨으면 오히려 영광입니다."

"남은 전투에서 살아남아라. 그리고 다음에도 이렇게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꼭 살아남겠습니다."

"물론이죠! 다시 팔을 붙여준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꼭 살아남을 겁니다!"

피터를 비롯한 4명은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듀로크는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조그마하게 일렁이던 불안감이 어느새 싹 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훗. 정말 근소한 차이인 것을."

"뭐가 그렇게 재밌냐?"

듀로크는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다가 자신을 향해 얘기하는 인물을 보며 얘기했다.

"나미래."

"바쁘지 않지? 한잔하면서 대화 어때?"

나미래는 양손에 들고 있는 술통을 올리며 말했다.

"좋아. 한잔하자."

"그래야지. 자."

나미래는 듀로크에게 술통 하나를 넘겼고 듀로크는 술통을 가볍게 받았다. 그리고 둘은 한적한 곳으로 가서 술통의 술을 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푸핫!"

"...나쁘지 않군."

"그래. 이런 날에 먹는 것은 또 다른 맛이 있다니까?"

나미래는 그런 말을 하며 다시 술통을 들고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런 호쾌한 나미래의 모습에 듀로크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마지막이다."

"그러면 길었던 여행도 끝나는 거잖아? 끝나면 뭘 할 거냐?"

"아마 클레아와 나르샤와 같이 여행을 떠날 것 같다."

"그래? 그러면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고?"

"지구 말인가?"

"응."

나미래의 말에 듀로크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자신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고 그 시선을 본 듀로크는 술통을 들어 술을 마신 다음에 입을 열었다.

"가지 않을 거다."

"그래?"

"이제 내 고향은 여기니까."

"...그렇군."

"왜? 너는 돌아가고 싶냐?"

"아니. 나도 별로 가고 싶은 생각 없어. 돌아간다고 해도 어떻게 살아갈지도 막막하고. 오히려 내 몸을 해부하려고 달려들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단지.."

"단지?"

"너가 돌아간다고 했으면 나도 따라간다고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했었어. 하지만 가지 않는다면야 나도 그냥 있는 거지."

"그래...하지만 라자드를 처리하고 우리의 공통된 목표가 있지 않았나?"

"목표? 아! 맞다! 그 트레비아란 신 녀석에게 한 방 먹어야지!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됐어?"

"라자드를 먼저 쓰러트리고 생각할 예정이였다. 그리고...한가지 짐작되는 것도 있고."

"무조건 불러 달라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아아."

듀로크는 나미래의 호탕한 태도와 행동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새삼스레 자신과 나미래가 이렇게 같이 있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때 네가 나를 치지 않았으면 이런 미래도 없었겠지."

"그건...나도 반성하고 있다고."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이렇게 좋은 결과로 되었으니까."

"그럼 다행이고."

"그리고 너도 슬슬 그 녀석과 좋은 인연을 맞이해야 하지 않겠나?"

"그 녀석?"

"모른 척하지 마라. 요리스 왕국의 그 덩치를 말하는 거다."

"글쎄. 나도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우선 이번 싸움에서 살아남은 후에 생각해보려고. 아니, 나는 죽지 않으니까 그 녀석이 살아남으면 인가?"

나미래는 듀로크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눈치채고 썩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듀로크는 그녀를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나미래. 네가 이번 가르모스 평야의 전투로 인해서 한 걸음 더 성장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래? 역시 눈치는 빠르네."

"하지만 라자드는 상정 외의 인물이다. 특히나 흑마법 중에는 생명력을 흡수하는 것들도 존재한다. 아무리 네가 생명력이 넘친다고 해도 라자드의 앞에서는 조심해라."

"알겠어."

"너는 라자드를 상대하기 위한 중요카드 중 하나니까."

"그렇게 생각해주니 영광이네."

나미래는 어깨를 으쓱 올리며 얘기했고 듀로크는 나미래를 향해 술통을 들었다.

"마지막 싸움을 위해."

그녀는 듀로크가 무슨 의도로 그러는지 이해하고 똑같이 술통을 들고 얘기했다.

"라자드를 쓰러트리고 신에게 한 방을 먹이기 위해."

텅.

술통과 술통이 부딪히면서 경쾌한 소리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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