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장 가르모스 평야 대전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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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장 가르모스 평야 대전투(2)
평야에서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울리드는 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아공간에서 꺼냈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이유도 있지만 자신에게 수치를 준 숙적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울리드의 명령에 따라 검은 구멍 속에서 수많은 생명체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검은 슬라임처럼 생긴 생명체가 있는가 하면 수많은 촉수를 갖고 있는 것도 있었고 단단한 방패와 같이 생긴 놈도 있었다. 그렇게 다양하고 각자 특징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들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역시 제일 압도적인 것은 본 드래곤이었다.
쿵!
본 드래곤 5마리는 움직이는 것만으로 땅이 울릴 정도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고 죽은 시체인데도 불구하고 보는 이들에게 위압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눈앞의 적을 제거하라."
울리드의 명령에 본 드래곤들은 밀집되어 있는 병사들을 향해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각자 성질이 다른 브레스가 모이기 시작했고 이내 브레스는 병사들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그런 브레스의 앞에 병사들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고 단번에 전멸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5개의 브레스 앞에 나서는 이들이 있었다.
【앱솔루트 실드.】
"하앗!"
거대한 실드와 함께 이중으로 안에서 방어막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 실드와 방어막은 본 드래곤의 브레스에도 견고하게 막아내었고 이내 브레스가 끝날 때까지 병사들에게 일절 피해도 입지 않게 해주었다.
"드디어 나타났나? 가증스러운 녀석들."
울리드는 눈앞에 나타난 드래곤들과 낯익은 얼굴들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드래곤 로드 다르디엔과 골드 드래곤들, 요리스 왕국의 왕 헤츠, 마지막으로 나미래. 요리스에서 만난 인연이 이곳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이봐. 보고 싶지 않았어? 난 꽤 그리웠다고...네 얼굴이 말이야!"
쾅!!
나미래는 발에 힘을 주고 뛰어올라 울리드를 향해 떨어졌다. 울리드는 자신에게 떨어지는 나미래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팔을 휘둘러 맞대응했다.
콰아앙!!
둘이 맞붙으면서 생기는 충격에 바닥이 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미래와 울리드가 전투를 펼치는 사이에 헤츠와 다르디엔은 예정했던 대로 본 드래곤을 상대하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저 본 드래곤은 내가 맡겠네.】
"죽은 반려자라고 했었나?"
【...그렇다.】
"알겠다. 그런데 우리가 1마리씩 맡는 동안 나머지 드래곤들이 3마리를 상대할 수 있나?"
【힘들겠지. 그러니 우리가 빨리 처리하고 도와줘야 하네.】
"그렇다면 먼저 가겠다."
헤츠도 본 드래곤 한 마리를 향해 바스타드 소드를 꺼내 들고 돌진했고 나머지 골드 드래곤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홀로 남은 다르디엔은 자신의 상대인 메니에르의 본 드래곤을 보며 얘기했다.
【...지금까지 많이 기다렸네.】
"....."
【이제...고통에서 해방시켜주겠네.】
다르디엔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못 알아듣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본 드래곤은 그저 다르디엔의 말이 끝나기까지 기다리고 있었고 그가 움직이고 나서야 똑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르디엔은 본 드래곤을 향해 거대한 몸집을 움직여 돌진했다. 그와 동시에 본 드래곤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마법진이 만들어졌고 마법진을 본 다르디엔은 방어 마법을 사용했다.
【앱솔루트 실드.】
방어막이 다르디엔의 몸을 감싸는 동시에 본 드래곤이 만든 마법진에서 마법이 발동됐고 그와 함께 수십 개의 마법이 방어막을 향해 날아왔다.
콰콰쾅!!
【으윽..】
방어 마법을 사용했는데도 뼈가 시리고 통증이 느껴졌다. 메니에르는 살아 생전에도 골드 드래곤에서 손을 꼽을 정도로 강한 드래곤이였고 그 결과, 본 드래곤임에도 불구하고 그 강함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강했던 그녀조차 골드 드래곤의 최강자는 아니였다. 왜냐하면...
【내가 더 강했으니까!】
다르디엔은 방어막을 유지한 채로 몸으로 본 드래곤을 박았다. 그러면서 본 드래곤은 다르디엔과 함께 뒤로 밀려 언덕에 박혔고 그로 인한 충격에 언덕이 부서지면서 무너졌다. 그리고 다르디엔은 본 드래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다시 한번 꼬리를 휘둘렀다.
쾅!
드래곤의 거대한 몸집으로 휘두르는 꼬리는 산을 깎고 땅을 파이게 할 정도로 커다란 충격을 줄 수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꼬리에 맞은 본 드래곤은 또다시 뒤로 날아가서 땅에 박혔다. 하지만 본 드래곤은 드래곤의 뼈로 만들어진 존재로 엄청난 내구성을 자랑하여 다시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어나려고 하는 동작을 취할 때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다르디엔이 노리는 것이었다.
【일렉트릭 브레스!】
그 잠깐의 시간. 그동안 다르디엔은 입을 벌리고 브레스를 모았고 이내 본 드래곤이 일어나려는 순간 브레스를 입에서 뿜어내었다. 그리고 뒤늦게 일어난 본 드래곤도 입에서 브레스를 뿜어내었고 두 개의 브레스가 맞붙으면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고 다르디엔은 그 폭발에 밀려 뒤로 날아갔다. 폭발은 주위의 모든 것을 까맣게 태울 정도로 강력했고 고룡인 다르디엔조차 온몸에 상처를 입을 정도였다. 조금만 더 늦게 브레스를 쐈으면 살아남지 못한 것은 자신이라고 다르디엔은 확신할 수 있었다.
폭발로 인해 생긴 상처가 온몸에서 통증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다르디엔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인연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
폭발의 중심지에서 조금 더 가보니 본 드래곤이 쓰러져있었다. 본 드래곤은 원래 크기의 절반도 남아 있지 않았고 남은 뼈도 조금씩 공기 속에서 부스러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르디엔은 그런 본 드래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서 폴리모프 마법을 사용해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상처를 입은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한 다르디엔은 조그마한 손으로 본 드래곤의 얼굴을 만지며 얘기했다.
"메니에르."
[...다르...디엔.]
"미안하다. 이렇게밖에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괜찮..아.]
다르디엔은 마지막으로 사라지기 직전이여서 그녀의 정신이 잠시 돌아온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짧은 시간을 준 신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몇천 년 동안 직접 말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메니에르. 정말...미안하다."
[...뭐가?]
"나는 드래곤들을 위해서 너를 희생하는 선택을 했어.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더 많은 드래곤들이 죽지 않을 수 있었지. 하지만 나는 몇천 년 동안 그 선택의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영혼을 팔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그 선택 때문에 네가 이런 고통을 느끼게 만들었으니까...정말...미안했다...미안해."
다르디엔의 눈에서 조그마한 눈물이 떨어졌다. 수천 년 동안 썩히던 감정과 마음이 그 눈물에 담겨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메니에르는 다르디엔의 머리 위에 남은 손가락을 얹으며 얘기했다.
[괜..찮아. 나는...괜찮으니까.]
"하지만..."
[다르디엔...나는 공과 사를...구분하는 당신이 좋았어. 그래서...나를 선택하지 않았어도...당신을 원망하지 않았어. 그것이 당신이니까. 그 선택을 하는 것이 비로소 당신이니까...그러니 자신을...원망하지마.]
"메니에르..."
다르디엔의 머리에 얹은 손도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부식은 점점 빨라졌고 이내 어깨까지 올라왔다.
[이제...시간이 됐나 봐.]
"가는..건가?"
[오랫동안 눈을 감지 못했으니까..슬퍼하지 마. 우리의 만남은 이것이 끝이 아니잖아?]
"...그래."
부식으로 인해 온몸이 부서지면서 얼굴 뼈가 바닥에 떨어졌다. 얼굴 뼈도 이내 부식되어 가루로 변하면서 메니에르는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그럼...먼저 가서 기다리고...있을게.]
"...응."
[다음 생에서도...같은...인연..을...맺었...으면..좋..겠...네.]
메니에르의 그 말과 함께 그녀를 이루고 있던 가루가 바람에 의해서 날아갔다. 다르디엔은 그런 그녀의 가루가 날아가는 것을 보며 얘기했다.
"나도...같은 마음이야. 메니에르.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랄게."
날아가는 가루가 그의 말에 대답하듯이 잠시 살랑거렸고 이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사라져갔다.
쾅!!
나미래의 주먹과 맞붙으면서 울리드는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울리드는 찌릿찌릿하게 저리는 주먹을 느끼며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인정해주마. 네년이 힘에서 나보다 위라는 것을!"
"뭘 새삼스럽게? 이제야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냐?"
나미래는 울리드의 갑작스러운 말에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지만 울리드는 여전히 자신의 페이스대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네년이 나보다 강하다는 것은 아니다!"
울리드는 자신의 품속에서 한 개의 약병을 꺼내서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들이킨 약병이 떨어지는 순간 울리드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우드득..
약 2미터에 불과했던 몸이 점점 커지면서 5미터에 늘어났고 온몸의 근육이 검은색으로 변하며 근육들의 혈관이 튀어나올 것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또한 머리에서 2개의 커다란 뿔이 튀어나오고 발과 손에서 긴 발톱이 나오면서 등에 거대한 날개가 펼쳐졌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검은 슬라임이 팔에 붙으면서 거대한 검과 같이 변하여 마침내 울리드는 완전한 괴물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야. 완전히 괴물인데?"
나미래는 울리드가 변한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는데 그 순간 울리드의 모습이 나미래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나미래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하여 팔로 오른쪽 옆구리를 막았고 그와 동시에 울리드가 나타났다.
뿌득!
팔이 부러지는 것을 느끼며 나미래는 충격에 뒤로 물러났고 그와 동시에 나미래의 팔이 원상태로 복구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처럼 울리드는 나미래에게 달라붙어서 얼굴을 손으로 붙잡고 땅에 박았다.
쾅!!
나미래를 중심으로 땅에 크레이터가 생겼고 그 충격에 나미래는 잠시 기절하여 축 늘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미래는 정신을 차려서 자신의 얼굴을 붙잡고 있는 팔을 두 손으로 잡고 비틀었다.
우드득!
울리드의 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비틀렸고 그와 동시에 악력이 약해졌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미래는 뒤로 빠져서 태세를 정비하였다.
"으윽..꽤 아프잖아? 잠시 기절했었다고...응?"
울리드의 비틀렸던 팔에서 뼈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근육과 함께 강제로 원상태로 돌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미래는 그 회복 속도와 마치 시간을 되돌리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은 자신과 매우 비슷한 특징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대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냐?"
【크아아아!!】
울리드는 자아를 잃은 것처럼 괴성을 지르며 나미래를 향해 돌격했다. 울리드는 검처럼 변한 팔로 나미래를 향해 휘둘렀고 나미래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팔을 들어서 몸을 보호했다.
서걱!
나미래의 질기고 단단한 외피가 울리드의 팔에 찢겨져나갔다. 또한 팔에서 나오는 검은 마기로 인해서 생긴 상처는 평소보다 회복이 느렸고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 전에 울리드의 다음 공격이 계속됐다.
쾅!!
"커억!"
울리드가 발로 나미래의 옆구리를 찼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나미래가 옆으로 날아갔다. 이어서 울리드는 날아가는 나미래를 향해 발로 땅을 박차면서 올라간 후에 팔로 얼굴을 찔렀다. 하지만 나미래는 머리를 움직이는 것으로 가까스로 피했고 이어서 주먹으로 울리드의 복부를 가격했다.
쾅!!
"어?"
【크으으...】
나미래의 주먹이 울리드의 복부를 강타했지만 울리드의 몸은 뒤로 조금 밀려날 뿐이지 제대로 된 타격을 입지 않았다. 자신의 주먹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나미래는 순간 당황했고 그 때문에 자신의 얼굴에 다가오는 울리드의 무릎을 피할 수 없었다.
쾅!
울리드의 주먹에 고개가 위로 올라갔고 그와 함께 뇌가 흔들렸다. 뇌가 흔들리면서 나미래의 정신이 잠깐 끊어졌고 그사이에 울리드의 무자비한 공격이 이어졌다.
콰콰콰쾅!
팔로 나미래의 가슴을 찢고 주먹으로 얼굴을 으깼다. 무릎으로 팔의 뼈를 분쇄시키고 발로 무릎을 강타하여 탈골시켰다. 그 외에도 울리드는 손과 발을 쉬지 않고 움직였고 나미래의 몸을 다진 고기처럼 만들어나갔다.
【키키킥!】
나미래의 몸은 엉망진창으로 변했지만 다시 조금씩 회복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울리드의 몸에 붙어있던 검은 슬라임이 떨어져서 나미래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검은 슬라임은 이내 나미래의 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둥글게 말은 후에 다시 울리드의 몸으로 날아와서 붙었다. 그와 동시에 검은 슬라임이 울리드의 몸에 흡수되어 들어갔다.
【크으으...크아아아!!】
울리드가 괴성을 울부짖자 몸에서 지금까지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폭발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압도적인 생명력! 일부를 흡수했는데도 이정도라니...이것이라면 마왕의 자리도 꿈이 아니다.】
나미래의 힘을 직접 느껴본 울리드는 그녀의 힘을 흡수하고 싶었다. 그녀의 힘을 흡수한다면 자신이 한 단계 위로 진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를 위해서 신체 강화 물약까지 만들고 그녀의 힘을 흡수하기 위한 검은 슬라임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계획대로 나미래의 몸은 지금도 검은 슬라임에 의해서 조금씩 녹아 그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이제 나의 세상이다! 이 힘으로 모든 존재를 굴복시키고 내가 모든 것을 지배할 것이다! 크하하하!】
울리드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웃음소리를 내뱉었고 그의 웃음소리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울리드는 자신이 웃는 사이에 검은 슬라임이 잠깐 꿈틀거렸다는 것을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어둠...그저 어둡기만 하지 않았다. 마치 어머니의 배 속에 있는 것처럼 편안함이 느껴지는 어둠이었다. 나미래는 그런 어둠에 의식을 내려놓은 채 떠다니고 있었다.
'조용하고...편안한 느낌이야.'
편안한 느낌에 나미래는 깨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저 언제까지라도 이렇게 마음을 놓고 살아가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잊고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는 것처럼 조그마한 소리가 들려왔다.
'.....'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미래는 손으로 귀를 막으며 그 소리를 무시했다.
'....!'
'...!!'
'..!!!'
하지만 그 소리는 점점 켜져갔고 이내 손으로 막아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커졌다. 결국 나미래는 항복을 외치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성을 내었다.
'알겠어! 알겠다고! 무시하지 않으면 되잖아!'
나미래는 눈을 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밑을 봐도 위를 봐도 옆을 봐도 모든 곳이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끝이 없는 칠흑이라는 말이 바로 이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누구야! 누가 나를 자게 놔두지 않는 거야! 엉?!'
나미래는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질렀다. 이런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 반응하듯이 눈앞에 나타나는 이들이 있었다.
'너희...들은?'
눈앞에 한 마리의 트롤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어서 한 마리의 오우거가 나타났고 이어서 와이번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어서 구울과 고블린, 슬라임 등도 나타났고 그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몬스터들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은 단숨에 2마리, 3마리, 5마리, 10마리처럼 숫자를 불려 나갔고 이내 나미래를 중심으로 둘러쌓았다.
'너희들은...설마. 내가 먹은 녀석들이냐?'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렇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을 부른 목소리도 눈앞에 있는 몬스터들이 내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야? 그러면 여기는 어디야? 내 안쪽인가? 아니면 내가 죽어서 너희들을 만난 건가? 대체 무슨 일이야 이건?'
수많은 몬스터들은 나미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엇다. 하지만 나미래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무슨 의지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안쪽이여서 그런지, 아니면 자신의 일부여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린다고? 뭐를?'
네가 깨어나기를.
'내가 깨어나기를? 왜?'
이곳에서 우리의 여행을 끝낼 것인가?
'뭐?'
잊었는가? 그와의 싸움을.
'...울리드.'
그렇다.
나미래는 그들의 말에 그제야 울리드와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여기에 있다는 말은...내가 진 건가?'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라고?'
그렇다.
'그럼 어떻게 하면 깨어날 수 있는데? 어떻게 해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그건 네게 달렸다.
'뭐?'
너와 우리는 하나다. 하지만 지금까지 너는 우리를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우리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를 받아들여라. 그리고 너 자신을 인정해라. 너는 나고 나는 너다. 우리는 같은 존재다. 그리고 우리는 네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끝까지 어울려줄 것이다.
'받아...들인다.'
나미래는 눈을 감았다. 나미래는 지금까지 자신이 인간인지 아니면 괴물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인해서 그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몬스터들과 대화를 나누자마자 나미래는 눈치챘다.
자신과 그들은 다르지 않다고. 자신은 자신일 뿐이고 그들은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그렇게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일부를 인정했다.
'너희들과...나는...같다.'
나미래가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나미래의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연기로 변하면서 나미래에게 흡수되었다. 조그마한 슬라임도 고블린도 구울도, 거대한 트롤과 와이번 그리고 오우거까지. 모든 몬스터들이 연기로 변해 나미래의 몸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모든 몬스터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미래는 눈을 떴다.
"그래. 나는 나일 뿐. 인간과 괴물로 나눌 필요가 없었던 거야. 나눈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가 달라지지 않아!"
그 순간 주변에 있던 어둠이 갈라지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미래는 잠자고 있던 의식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럼 방해되는 녀석들을 죽이러 가볼까.】
울리드는 자신을 방해했던 황금 도마뱀과 국왕이라고 했던 인간을 떠올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몸 안에서 넘치는 생명력에 어떤 존재든 압살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그 힘을 직접 눈으로 보고 증명하고 싶었다.
【저기 있군.】
멀리서 자신의 본 드래곤을 상대하는 이들이 보였다. 벌써 2개의 본 드래곤을 무력화시켰는지 3개의 본 드래곤밖에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나미래를 흡수하기 전이라면 자신의 최고 작품을 부순 녀석들에게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하나의 발버둥처럼 하찮게 느껴졌다.
【노력이 가상하군. 그 노력에 대한 대가를 줘야겠지.】
울리드는 본 드래곤과 싸우고 있는 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울리드의 손에서 막대한 마기가 뭉치기 시작했고 거대한 검은 구를 만들었다. 검은 구는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며 점점 크기를 키워나갔고 누구나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본 드래곤과 싸우고 있는 이들은 전투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이쪽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이만 죽어...윽!】
울리드는 검은 구를 날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작스러운 통증이 일어났고 그와 함께 검은 구의 마나가 흩어지면서 분산되었다.
【크으...뭐야?!】
통증은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커져갔고 이내 몸의 근육이 일제히 꿈틀대기 시작했다. 울리드는 그런 자신의 몸을 통제하기 위해서 나섰지만 몸은 의지를 벗어난 것처럼 더욱 팽창해나갔다. 이어서 근육은 풍선처럼 터질 듯이 불어났고 울리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이냐?!...설,설마?!】
찌지직!!
【크아아악!!】
근육이 찢어지면서 엄청난 고통에 울리드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찢어진 근육 속에서 한 명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네...네년!】
"미안하지만 그대로 흡수될 생각은 없거든?"
모습을 드러낸 나미래는 주먹을 쥐고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숨을 내뱉으면서 동시에 주먹으로 울리드의 복부를 강타했다..
쾅!!
【커억!】
복부에 주먹을 맞은 울리드는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뒤로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나미래와 울리드가 분리되었고 울리드의 복부에는 커다란 주먹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울리드는 자신의 복부에 남은 흔적을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나미래를 바라보았다.
【네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글쎄. 그저 내 안에서 정리가 끝났을 뿐인데."
【뭐?!】
"한마디로. 넌 이제 내 상대가 안 된다는 거야."
나미래가 마치 위에서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시선으로 울리드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 시선을 본 울리드는 분노에 몸을 떨며 그녀를 향해 덮쳤다.
【개소리는 집어치워! 넌 나보다 약하다! 넌 그저 나를 강하게 해주는 양분에 불과하단 말이다!!】
"아니."
나미래는 울리드의 팔을 피하며 얘기했다.
"그건 네 착각이다. 울리드."
콰콰콰쾅!!
나미래의 주먹이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번 움직였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로 움직였고 그로 인해 나미래의 주먹이 너덜너덜해졌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울리드의 몸에 주먹이 수십번 박혔고 그대로 울리드의 몸에 타격을 주었다.
【크헉!】
내부의 뼈까지 모두 박살 나면서 울리드는 검은 피를 입에서 뿜어내었다. 이어서 나미래는 두 팔로 울리드의 양발을 잡고 발로 그의 고간을 눌렀다. 그리고 그녀는 있는 힘껏 힘을 주기 시작했다.
"으으으..."
나미래의 내부에서 잠자고 있는 무지막지한 힘이 꿈틀대었고 그 힘이 나미래의 두 팔로 모이고 있었다. 그 결과 내부에서 근육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울리드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주먹을 휘둘렀다.
【이거 놔라!!】
퍽!
울리드의 두 주먹이 나미래의 얼굴에 박혔다. 하지만 나미래는 그런 주먹에도 마치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꾸준히 두 팔에 힘을 주었다. 그와 함께 울리드는 내부에서 찢어지는 고통에 실렸고 더욱 주먹을 휘둘렀다.
【이 미친 년이! 놓으라고 했다!】
퍼퍼퍼퍼퍽!!
나미래의 얼굴에 주먹이 수십번 이상 타격하고 지나갔다. 나미래의 얼굴이 그로 인해 엉망진창으로 변했지만 나미래는 그저 하던 대로 계속해서 힘을 주었고 이내 다리의 내구도의 한계가 다가왔다.
"흐아아아!!"
찌지직!!
【크아아아악!!】
울리드의 두 다리가 허벅지를 중심으로 찢겨져 나갔다. 나미래는 찢어진 다리를 멀리 던져놓았고 이내 고통에 울부짖는 울리드의 팔을 양 옆구리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발로 울리드의 가슴을 짓밟으면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년...설마?!】
"준비는 됐겠지?"
울리드는 경악해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나미래는 그의 표정을 무시한 채 다시 한번 힘을 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나미래는 울리드의 양팔까지 찢어놓고 멀리 던져버렸다.
【으아악!!】
그렇게 사지가 찢긴 울리드의 팔다리에서 다시 새로운 팔과 다리가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미래는 한 손으로 울리드의 얼굴을 붙잡으며 얘기했다.
"어디 언제까지 재생할 수 있나 볼까?"
나미래의 눈빛을 본 울리드는 자신도 모르게 공포심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녀의 눈빛에는 상급 마족인 자신조차 두려울 정도로 광기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미래를 향해 울리드는 하고 싶은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미친...년...】
"그걸 이제 알았어?"
나미래는 재생을 시작하는 팔다리를 다시 찢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미래는 재생하는 팔다리를 계속해서 찢었고 울리드는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그도 반항을 하기 위해서 마기를 뿜어내거나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지만 그녀에게 일절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숫자의 팔과 다리를 찢었을까? 생명력이 모두 떨어졌는지 아니면 마기가 바닥났는지 더 이상 재생이 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나미래는 울리드의 얼굴을 부여잡고 일으켜세웠다.
"이제 끝이냐?"
【죽여...차라리..죽여라.】
울리드는 반쯤 정신이 나갔는지 침을 흘리며 눈의 초점이 나가 있었다.
"아니. 너를 죽일지 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야. 안 그래? 드래곤 로드."
"나를 위한 선물인가?"
어느새 나미래의 뒤에는 다르디엔과 헤츠가 다가와 있었다. 그들은 모두 힘겨운 싸움을 했는지 온몸에 수많은 상처가 남아있었다.
"응. 메니에르란 드래곤을 그렇게 한 장본인이 이 녀석이니까. 네게 맡기려고 반 죽여놓고 있었지."
"후...이 은혜는 꼭 갚겠네."
"그래."
나미래는 들고 있는 울리드를 다르디엔의 앞으로 던졌다. 울리드는 무력하게 날아갔고 아직 꿈틀거리며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다르디엔은 그런 울리드를 잡고 그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자네에게 죽음은 너무 가볍네. 그녀도 죽고 나서도 그렇게 긴 고통의 시간을 지냈으니 자네도 그래야 하네."
【제발...죽여줘.】
"마족은 상당히 긴 수명을 갖고 있는 이들이지. 그리고 자네는 천명이 다할 때까지 고통을 느끼게 해주겠네. 내가 아는 지식을 모두 총동원해서 말이네."
【안,안돼...안돼!!】
울리드의 진심 어린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그의 비명을 듣고 슬퍼하다고 느끼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마계 4위 상급마족 울리드는 나미래에 의해서 죽을 때까지 영겁의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가르모스 평야의 전투 중 한 단락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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