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장 전쟁의 불씨가 피어오르는 그란왕국(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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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장 전쟁의 불씨가 피어오르는 그란왕국(9)
피터와 클레아 그리고 매트는 성벽 위에 서서 적이 진군해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많군요."
"예. 확실히 끝이 안 보일 정도네요."
"역시 실제로 보는 것과 듣는 것은 다르네요."
약 20분 전. 메블리의 부대로 보이는 병력이 시야에 들어왔고 미리 짜두었던 작전대로 병사들은 각자 자신에 맞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메블리의 부대는 시야에 모두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숫자를 자랑하며 레스덴 성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군요."
"예. 하지만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싸움이죠."
"맞습니다. 그런데 병사들의 사기는 괜찮습니까?"
"예. 다행히도 그란 왕국의 오크들 덕분에 괜찮습니다."
처음 메블리의 부대가 시야에 보이고 엄청난 숫자인 것을 봤을 때 라이언 왕국의 병사들은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란 왕국의 병사들은 오히려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시라도 빨리 돌격하고 싶은 것을 참는 것처럼 오크들의 몸은 근질거렸고 서로 함성과 목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그런 욕구를 잠재우려 했다.
그리고 그런 오크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눈앞의 대군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그들의 행동에 라이언 왕국의 병사들은 웃음을 터트리면서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의도치 않은 효과지만 그란 왕국의 오크들이 라이언 병사들의 긴장을 풀어준 것이다.
"그렇습니까? 이 대군을 눈앞에 두고도 괜찮다면 좋은 결과를 바랄 수도 있겠군요."
피터는 망원경을 들고 적의 부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으음...적의 선두부대는 마물들로 이루어져 있군요. 우선 마물들이 성벽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피터가 말하는 동시에 옆에 있던 클레아와 매트가 통신용 수정구슬을 사용해서 각 지휘관들에게 향해 말을 전달했다. 그리고 지휘관들은 병사들에게 그 말을 전달하면서 빠르게 명령을 전파시켰다. 그리고 그사이에 마물들은 레스덴 성의 성벽을 향해 조금씩 접근해왔다.
"최대한 성벽까지 접근시킨 후에 제 신호에 맞혀서 준비해둔 함정을 발동시키겠습니다. 그리고 마법병단은 마물들과 마법포의 공격에 대비해서 방어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해주십쇼."
피터의 말을 전파해서 들은 병사들은 그의 말대로 준비에 나섰고 조용히 마물들이 접근하는 것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끝없이 나열되어 있는 부대의 줄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을 수많은 이들이 침을 삼키고 땀을 흘리며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다가오던 마물들도 성벽까지 약 100여미터를 남겨두었을 때 갑자기 돌진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피터는 소리쳤다.
"방어 마법 발동! 함정은 아직 대기!"
피터의 말에 마법병단의 마법사들은 일제히 방어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특이한 진형을 갖추며 마법을 사용했는데 그 진형의 이름은 뤼나티크 마법진이었다. 뤼나티크 마법진은 저서클 마법사들이 한 명의 마법사에게 마나를 몰아주는 것으로 일시적으로 보다 더 높은 서클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마법진이였다. 뤼나티크가 물려받고 고안해낸 것으로 듀로크가 적극 받아들이면서 마법병단에 도입되었다.
그리고 뤼나티크 마법진을 사용해서 마법병단의 마법사들은 수많은 훈련과 경험을 했고 그 결과가 지금 발휘했다.
""실드!""
마법병단의 마법사들은 가장 기초적인 방어 마법인 실드를 사용했다. 하지만 일반 실드와 같다고는 볼 수 없었다. 일반 실드보다 훨씬 단단한 강도를 가지고 있었고 개수 또한 하나가 아니였다. 마법병단 수천 명이 일제히 만든 실드는 수백 중첩에 달하는 실드로 어떤 의미로는 8서클 방어마법인 앱솔루트 실드보다 더 단단하다고 볼 수 있었다.
까까깡!!
수많은 마물들이 실드에 부딪히면서 실드를 박살내었다. 하지만 실드를 부숴도 다음 실드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 실드를 부숴도 수백 개의 실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수많은 마물이 달라붙어도 실드에 막혀서 성벽에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막았다!"
"방심하지 마! 이제 시작이니까!"
"으윽...반동이!"
수천 명의 마법사들이 실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마물은 점점 쌓이고 있었고 실드의 숫자는 줄어만 갔다. 그걸 계속 보는 병사들은 긴장감으로 가득했고 지휘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아닙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야 합니다!"
피터는 최대한의 효율을 발휘하기 위해서 마물들이 더 밀집하는 것을 기다렸다. 옆에서 보는 클레아와 매트도 눈앞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마물들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피터는 남은 실드의 잔량과 마물들의 숫자를 보며 때를 기다렸다.
"크윽...아직입니까?!"
"더,더는 버티기 힘듭니다!!"
"조금만 더!"
마법사들이 핏줄을 세우고 이를 꽉 깨물면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피터는 여전히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병사들과 지휘관들이 침을 삼키며 긴장을 감추지 못하며 바라보았고 실드의 잔량은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줄어만 갔다. 끝내 참지 못한 한 명의 지휘관이 피터에게 뭐라고 하려던 찰나, 피터는 한 손을 들고 소리쳤다.
"지금입니다!!"
피터의 말을 들은 전령 마법사가 공중을 향해 화염을 3번 날려 보냈다. 강가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병사들은 멀리서도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3개의 화염을 볼 수 있었고 이내 자신들이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을 눈치챘다.
"터트려!!"
강가에는 커다란 돌 수십 개로 길을 막고 얼음 마법을 사용해서 물의 흐름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돌의 뒤에는 수많은 폭발 마법진이 박혀있었고 터트리라는 명령과 함께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콰콰쾅!!
폭발 마법진에 의해서 얼음 마법으로 하나의 물체로 이루어져 있던 돌이 산산조각났고 그 결과 멈추었던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추었던 물은 지금까지 막아둔 것을 분노하는 것처럼 엄청난 유속으로 움직였고 이내 마물 행렬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콰콰콰!!
행렬의 옆구리를 강타한 물의 파도는 오우거까지 쓸려 보낼 정도로 엄청난 힘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행렬의 줄이 끊기게 되었고 산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오크 지휘관들은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취익! 줄을 잘라라!"
오크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서 바위를 고정해두었던 줄을 오크 병사들이 모두 자르기 시작했다. 10미터가 넘는 크기의 바위를 고정시키기 위해 수많은 통나무를 박고 줄로 묶어서 상당한 숫자의 줄을 잘라야 했다. 하지만 그만큼 오크 병사들이 미리 무기를 들고 줄을 자르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오크 지휘관의 명령에 맞혀서 동시에 줄을 모두 자를 수 있었다.
드드드드...
줄을 모두 자르자 고정되었던 바위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경사를 따라서 밑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바위는 점점 가속도를 붙으면서 나아갔고 앞에 있는 나무가 바위를 방해했지만 엄청난 크기를 가진 바위의 속도를 일절 줄이지 못했다. 그런 바위가 양산맥에 수십 개에서 수백 개를 미리 고정해두었고 바위들이 굴러가는 것만으로 산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이내 바위들이 빠른 속도로 마물들을 향해 굴러가면서 생물과 무생물의 충돌이 일어났다.
콰직! 우드드득!!
바위가 지나가면서 고깃덩어리가 분쇄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일 강력하고 커다란 트윈 헤드 오우거조차 굴러오는 바위를 멈추지 못하고 바위에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다른 마물들이 어떻게 될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결과였다. 마물들은 바위에 그대로 짓이겨지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취이익! 성공했다!"
"당연하지! 누가 설계했는데!"
오크 병사들과 드워프들은 바위에 분쇄되는 마물들을 바라보며 환호하였다. 대부분의 바위는 놀랍게도 서로를 부딪치지 않고 교차하면서 지나갔고 마물들에게 최대의 피해를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부딪히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드워프들의 뛰어난 눈썰미와 분석력 덕분이었다.
드워프들은 미리 바위를 굴러보면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어떻게 해야 부딪히지 않고 지나가는지 파악하였고 그대로 실전에 사용했다. 그리고 지금 그 결과가 눈앞에 보이고 있었고 드워프들은 자신의 예상대로 움직인 것에 환호했다.
"그렇게 많은 마물들을 한 번에 쓸어버렸어!"
"아니야! 아직 남아있는 녀석들이 있어!"
그 말대로 수많은 바위가 지나갔지만 운 좋게 빗나가서 살아났거나 트윈 헤드 오우거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마물들은 아직 죽지 않고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매트는 그대로 손을 들어 다음 명령을 전달하였다.
"와이번 라이더 출동 준비해주십쇼!"
"예!"
클레아는 매트의 말을 듣고 가지고 있던 검을 위로 찌르며 소리쳤다.
"와이번 라이더 출격!"
"취익~ 가자!"
"취췩! 출격이다!"
90여 명의 와이번 라이더가 클레아의 명령을 받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와이번과 함께 공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와이번 라이어들은 바위에 당해서 정신 차리지 못한 마물들의 위를 지나갔고 그와 동시에 준비해두었던 마나 폭탄을 일제히 떨구었다.
퍼퍼퍼펑!!
마나 폭탄은 살아있는 마물은 물론이고 강력한 트윈 헤드 오우거조차 즉사시킬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마치 폭격기가 지나간 것처럼 90여 명의 와이번 라이더가 지나간 곳은 불바다와 함께 폭발과 수많은 시체를 만들어내었다.
그렇게 피터의 작전대로 수만에 달하는 마물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는 것을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해냈어요."
"그래! 작전이 먹혔어!"
"피터님! 작전대로에요!"
"...그렇군요."
클레아와 매트는 눈앞에 마물들이 전멸한 것을 보고 기뻐하며 피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피터는 클레아와 매트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작전이 통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제...작전이 통한 거군요."
"예! 그래요!"
"...하하하."
피터는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쌓였던 울분이 한 번에 풀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을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착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우월감 혹은 울분이 풀어진 것과 같은 느낌 때문이었을까? 피터는 후퇴명령을 곧바로 내리지 못했고 그것은 커다란 실수로 다가왔다.
"이봐! 매트 왕자!!"
"...이츠?"
매트는 갑작스럽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이츠가 자신을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츠는 위스퍼의 부축을 받으면서 뭔가 초췌한 모습이였고 찢어진 옷을 통해서 커다란 상처의 흉터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눈에 들어온 것은 이츠의 심각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야?!"
"지금 바로 전군 후퇴시켜! 저 녀석들에게 그것이 있다!"
"그것이 뭔데?!"
"마나 폭탄!"
"뭐?!"
매트는 이츠의 말에 놀라워했는데 이츠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도 우리가 사용한 것과 다른 폭탄이였어!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그것이 사용되면 엄청난 피해를 입을 거야! 그러니 지금 바로 후퇴..."
펑!
이츠가 말하는 도중에 마치 폭죽이 발사된 것과 같은 소리와 함께 멀리 있는 메블리의 부대 쪽에서 빛나는 것이 날아왔다. 빛나는 물체는 수십 개가 넘었고 그것은 마치 목표를 정해두지 않은 것처럼 규칙성 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떨어진 곳 중에는 아직 산맥에서 벗어나지 못한 오크 병사들과 드워프들이 몰려있는 곳도 있었다.
"취익?"
"취직~ 이건 뭐지?"
갑작스럽게 떨어진 물체를 향해 오크들이 호기심을 갖고 접근했다. 떨어진 물체는 지름이 1미터에 달하는 구체였는데 내부가 보일 정도로 투명한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내부에는 복잡한 마법진과 함께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빛나는 물질이 있었다.
"취익~ 빛나고 있다."
"취직~ 예쁘다."
"취윅~ 뭔지 모르겠다."
오크들은 빛나는 구체를 보고 얘기했고 그 말을 들은 드워프는 그 구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구체를 바라본 드워프는 마치 보면 안 되는 것을 본 것마냥 안색이 완전히 새파랗게 변했고 어떤 때보다 다급하게 소리쳤다.
"가까이 가지마!! 그것은!"
딸깍. 위이이잉~
드워프가 뭔가를 외치려는 순간 구체에서 뭔가 작동하는 소리와 함께 마법진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구체의 안에 있던 내용물이 불규칙하면서 빠르게 움직였고 그로 인해 구체의 겉면이 버티지 못하고 깨져버리면서 내용물이 터져 나왔다.
우우우웅! 퍽!!
"뭐,뭐야?!"
우우우웅! 퍽!!
우우우웅! 퍽!!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구체의 내용물이 터지면서 반경 십수 미터에 있는 모든 존재를 삼켰다. 돌, 바위, 풀 등 무생물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오크와 드워프들도 모두 삼켜졌다. 그리고 삼켜진 모든 존재는 엄청난 압축력으로 인해서 단, 5cm에 불과한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갑옷을 입고 있어도 소용없었다. 도망치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구체가 폭발하는 순간 어떤 존재든지 예외 없이 손톱만한 덩어리로 변했다.
"이,이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당황하여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2차로 구체가 날아오는 것을 본 매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있는 힘껏 목소리를 내어 소리쳤다.
"전군 후퇴!!"
매트의 목소리에 지휘관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모두 후퇴의 명령을 내렸고 모든 병력들이 후퇴하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클레아! 우리도 후퇴하자!"
"예! 친위대 오크 분들도 병사들의 후퇴를 도와주세요!"
"취익! 알겠다!"
"취직! 맡겨만 줘라!"
그렇게 클레아와 매트의 명령에 전군은 후퇴하기 시작했고 산맥과 강가에 있던 병사들도 움직였다. 하지만 2차로 날아온 구체가 우연히 떨어져서 죽는 이들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런 광경을 피터는 여전히 멍하니 쳐다보았다.
"대체 저건...뭐지?"
"마나 붐 프로젝트."
"예?"
어느새 옆에 다가온 쿠로딘의 말에 피터는 되물었다.
"마나 붐 프로젝트는 카무란 왕국에서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너희들이 사용하는 마나 폭탄은 불안정한 마나의 파괴력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불안정한 마나를 안정시키고 파괴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들이 모여서 진행된 것이 바로 마나 붐 프로젝트다."
"그렇다는 말씀은...저 구체가 그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라는 겁니까?"
"아마도. 마나 붐 프로젝트에 대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구체에 박은 마법진으로 불안정한 마나를 안정화시키고 일정한 타이밍에 맞혀서 폭발시킬 수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폭발은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고 한다. 이건 내 예상이지만 마법진으로 안정화시키고 있던 불안정한 마나가 해방되면서 엄청난 압축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대응 방법은...대응 방법은 있습니까?!"
피터는 쿠로딘의 어깨를 붙잡으며 얘기했고 쿠로딘은 그런 피터의 손을 옆으로 치며 얘기했다.
"있다. 마나 붐을 날리는 포가 따로 존재하는데 사정거리가 별로 되지 않고 정확도 또한 낮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야! 지금은 뒤로 후퇴할 때라고! 이 녀석아!"
쿠로딘의 말에 피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전 병력이 후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제대로 후퇴명령을 내렸다면..."
마물들이 모두 죽은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후퇴명령을 내렸으면.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았다면. 자만심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지금 죽은 병사들이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피터는 자책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때문에...내가 정신만 차렸어도.."
"지금은 그렇게 자책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라고!"
쿠로딘은 피터의 팔을 잡고 억지로 움직였다. 그리고 피터와 쿠로딘을 비롯해서 모든 병력들이 레스덴 성에서 빠져나갈 시점, 메블리 부대 쪽의 마법포가 발사되었고 그대로 실드와 함께 성벽을 분쇄했다.
"제가 너무 과소평가했군요."
메블리는 수만에 달하는 마물이 아무것도 못 하고 죽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예상과 다르게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고 한방 먹여주기까지 하는 적을 오히려 칭찬하며 메블리는 기쁨을 느꼈다.
"그렇습니다. 이래야 재밌죠. 싸움이란 어느 정도 싸울 가치가 있는 상대여야 합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당신들을 제 적수로 인정하겠습니다."
와이번 라이더들이 뒤로 빠지려는 순간 메블리는 왼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데스나이트들이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고 그 소리를 들은 몇백 마리의 고블린들이 마법포랑 다른 포대를 작동시키면서 쏠 준비에 나섰다.
"발사."
펑!
폭죽이 터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나면서 수백 개의 마나 붐이 무작위로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마나 붐이 떨어지고 몇 초 후, 수백 개의 마나 붐이 터지면서 수많은 생명체를 즉사시켰다.
"좋군요. 역시 드워프들은 쓸만한 것을 많이 만드는군요."
마나 붐의 파괴력을 봐서 그런지 인간과 오크 병사들은 후퇴하는 모습을 메블리는 볼 수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메블리는 좀 전과 다르게 오른손을 번쩍 들었고 그의 신호를 인지한 데스나이트들이 또다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 소리를 들은 고블린들이 이번에는 마법포를 작동시켜 성벽을 향해 조준했다.
"발사."
콰콰콰쾅!!
마법포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광선이 성벽에 있는 실드를 으깨고 그대로 성벽을 분쇄시켰다. 분쇄된 성벽을 통해 레스덴 성의 내부가 보였고 메블리는 이미 병사들이 모두 후퇴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전진한다."
메블리의 명령에 따라서 부대 전 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블리 부대의 최전방은 불어난 강물로 인해서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때 다이아 골렘 10기가 서로를 붙잡고 일렬로 선 채 강가 중심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다이어 골렘 10기가 일렬로 강가에 앉자 빠른 유속을 자랑하던 강가의 물도 골렘에게 막혀서 느려졌다. 그렇게 골렘들이 막는 사이에 메블리 부대의 병력은 성벽을 향해 전진했다.
"역시 모두 도망친 것 같군요."
메블리는 주변을 살폈지만 숨어있는 것과 같은 흔적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메블리는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왜 도망을 친 걸까요? 마나 붐에 당황해서?"
이쪽은 10만의 마물 중에 절반 이상을 잃을 정도로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그런 호기 속에서 갑작스러운 마나 붐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성까지 버리고 도망을 친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함정을 치고 기다리던 적 지휘관의 행동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흐음..."
메블리는 열린 성벽을 앞에 두고 고민을 했고 그 뒤를 수많은 병력들이 대기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뭐. 술수가 있다고 하면 한번 당해주도록 하죠."
압도적인 자신감. 무슨 술수를 쓰더라도 상관없다는 자신감이 그의 고민을 길게 하지 않게 하였다. 이어서 메블리의 전진 명령에 골렘과 마물들은 레스덴 성으로 들어와서 후문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리고 제일 앞에 있는 마물들이 후문에 도착해서 후문을 박살 냈고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펑!
"응?"
펑! 퍼펑!!
뭔가 터지는 소리가 하나 들려왔다. 이어서 그와 똑같이 터지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고 메블리는 이 소리가 폭발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레스덴 성 내부에 있는 건물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그 폭발은 다른 건물까지 전파되면서 이내 모든 건물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콰콰콰쾅!!!
이렇게 전파된 폭발은 메블리조차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일어났고 동시에 일어난 폭발은 상상 이상으로 커다란 폭발이었다. 레스덴에 있는 커다란 성을 한 번에 분쇄시키고 내부에 있는 모든 건물을 산산조각낼 정도였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겠지만 성안에 있던 마물들과 골렘들도 그 폭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투두둑.
폭발로 생긴 충격파로 성벽이 흔들릴 정도였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우면서 부서진 건물 잔해들이 바닥에 수없이 깔려있었다. 그리고 폭발에 말려들었던 골렘 중 스톤 골렘은 완전히 박살 나서 기동을 멈추었다. 아이언 골렘 또한 상당한 타격을 받았고 다이아 골렘만이 그 폭발에서도 멀쩡할 수 있었다. 골렘조차 그런 피해를 받은 와중에 폭발에 휘말린 마물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폭발에 휘말려서 즉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폭발의 충격으로 건물의 잔해들이 마치 총알처럼 마물과 골렘들을 강타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건물 잔해들은 마물은 물론이고 골렘도 우겨질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폭발에 휘말린 골렘들은 잔해들 속에서 일어나려고 기동하고 있었지만 멀쩡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물론 그런 폭발 속에서도 멀쩡한 존재가 다이아 골렘만 있는 것은 아니였다. 폭발 소리를 듣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방어막을 치면서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은 메블리도 있었다.
"후후후...재밌군요! 이렇게 재밌게 해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메블리는 폭발한 현장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제대로 된 전투도 치르지 않고 벌써 이만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런 적은 처음입니다! 이 마계서열 1위 메블리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니! 이런 색다른 경험을 느끼게 해주다니! 적 지휘관에게 축복을 내리고 싶을 정도군요! 푸하하하!"
메블리는 이렇게 색다른 경험을 느끼고 싶었다. 마계서열 1위라는 자리와 그의 막강한 힘은 그에게 따분함을 안겨주었다. 마왕을 제외하고 마계에서 자신의 상대는 없었고 오로지 힘으로만 상대하려는 마족들은 그에게 어떤 신선함도 주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은 그에게 무엇보다 신선함을 느껴주고 있었다.
"특별히 지휘관은 죽이지 않고 제 부하로 만드는 것이 좋겠군요. 물론 다른 이들은 모두 죽겠지만요."
공중으로 올라간 메블리는 멀리서 후퇴하는 인간과 오크 병력들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그래도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은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군요. 이쪽에서도 다른 움직임을 보여줘야 재밌지 않겠습니까?"
레스덴 성에서 후퇴하는 도중에 아르셰와 뱀파이어들은 숲에서 숨어서 성을 지켜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준비해둔 마법진을 발동시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직...아직이야."
아르셰는 최대한 많은 피해를 주기 위해서 적이 후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런 아르셰의 명령이 떨어지는 것을 뱀파이어들이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르셰 또한 자신의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에 조용히 하며 집중하고 있었다.
"실수는 없겠지?"
"물론입니다. 지금도 마법진과의 동조는 끊기지 않았습니다."
오크와 인간 병사들이 강가와 산맥에 함정 설치를 하는 동안 뱀파이어들은 소수의 드워프들과 함께 레스덴 성 내부에 있는 건물을 돌아다니면서 폭발 마법진을 설치하였다. 그것도 일반 폭발 마법진이 아니였다.
하나의 마법진이 작동하여 폭발하면 연쇄적으로 다음 폭발 마법진이 발동하고 그 다음 마법진이 발동하게 하면서 마치 도미노와 같은 원리를 가진 연쇄 마법진이였다. 그리고 그 마법진도 건물 아무 곳에나 설치한 것이 아니였다.
드워프들의 도움으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피해를 주고 어디에 박아야 더 적은 마법진으로도 효율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며 설치하였다. 만드는 것에 누구보다 일가견 있는 드워프일뿐더러 직접 레스덴 성을 지을 때 참여했던 드워프도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마법진을 설치했지만 도미노를 무너트리려면 처음 한번은 움직여야 하는 것처럼 첫 번째로 발동돼야 하는 마법진이 존재해야 했다. 그리고 그 마법진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지근거리에 있어야 했고 그래서 아르셰와 뱀파이어들이 성 근처에 있는 숲에서 숨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르셰님! 조금 있으면 후문에 도착한다는 정보입니다!"
"알겠어. 마법진 발동을 준비해라."
"예!"
기척을 숨기고 아직 남아있는 암살단의 정보를 받은 아르셰는 레스덴 성의 후문을 뚫어져라 관찰하였고 이내 후문을 부수면서 나오는 마물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르셰는 뱀파이어들에게 소리쳤다.
"발동!"
퍼퍼펑!!
아르셰가 소리치는 동시에 건물 십수 채가 폭발했다. 그리고 한순간에 폭발은 전파되면서 수십 채로 늘어났고 끝내 레스덴 성에 존재하는 모든 건물을 폭발시킬 정도로 커다란 폭발로 번져나갔다.
콰콰콰쾅!!
폭발의 충격이 숲까지 느껴질 정도였고 아르셰와 뱀파이어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후퇴한다!"
뱀파이어들은 아르셰의 후퇴명령에 따라서 숲에서 움직였고 이내 후퇴하고 있는 병사들의 뒤를 따라붙었다. 그렇게 레스덴 성의 전투는 끝이 났고 메블리 부대는 다음 도착지인 게를린 성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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