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장 전쟁의 불씨가 피어오르는 그란왕국(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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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장 전쟁의 불씨가 피어오르는 그란왕국(7)
그라이언 동맹의 병사들은 진격하는 도중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야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야영을 하는 와중에도 임시 사령부에는 인간과 오크의 지휘관들과 중요 인물들이 모여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자. 그러면 얼추 모인 것 같으니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피터는 지휘관들을 바라보며 거대한 지도를 펼치고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시간에 관해서 얘기하겠습니다. 저희 그라이언 동맹은 생각보다 빨리 이동한 덕분에 내일이면 레스덴 성에 도착할 듯합니다. 그리고 적이 레스덴 성에 도착할 거라고 예상되는 시간은 약 60시간 후. 한마디로 레스덴 성에 도착하고 남은 시간은 약 하루 반나절이라는 뜻입니다."
"하루 반나절..."
"그 하루 반나절 동안 어떤 것을 하겠다는 건가?"
"그걸 지금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피터는 기다란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지도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레스덴 성의 특징은 성문에서 약 20분 떨어진 곳에 커다란 강이 지나간다는 것과 양옆에 험난한 산맥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사용해서 함정을 설치할 겁니다."
"어떻게 말인가?"
"우선 강의 상류에 장애물을 설치하여 물의 흐름을 막을 겁니다. 그리고 적이 어느 정도 지나갔을 때 장애물을 터트려서 적을 분리시킬 예정입니다."
"장애물은 어떤 걸로 설치할 거죠?"
"거대한 바위들로 길을 막고 얼음 마법을 사용하면 될 겁니다. 이 임무는 라이언 기사단과 마법병단에게 맡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겠네."
"참고로 장애물은 타이밍에 맞혀서 터질 수 있도록 폭발 마법을 설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네."
"이어서 오크 병사들과 드워프 분들은 산맥에 함정을 설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떤 함정 말인가?"
"신호에 맞혀서 거대한 바위가 산맥을 따라서 적을 향해 굴러가야 합니다."
"으음..한마디로 자네는 강을 사용해서 적을 분리시키고 산맥에 있는 바위를 굴려서 분리된 적을 공격하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알겠네. 끝내주는 함정을 만들어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와이번 라이더 분들도 그때 맞혀서 공중에서 폭탄을 떨어트려 주세요."
"취익~ 맡겨만 줘라."
"그럼 가볍게 함정에 대한 내용은 이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 계획에 대해서 얘기할 건데 그전에 전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피터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먼저 그라이언 동맹의 전력입니다. 라이언 왕국의 기사단 10890명, 마법병단 7543명, 암살단 1329명, 일반 병사 97320명. 그란 왕국의 오크 병사 148273명, 와이번 라이더 97명, 친위대 오크 98명, 뱀파이어 1872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상보다 많군."
"도합 30만에 달하는 대군이라니. 이 정도면 가능할 수도 있겠어."
"두 왕국이 모였으니 이 정도는 해야지."
피터의 말을 듣고 희망적인 말을 내뱉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는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피터였다.
"그렇게 보이지만 실제 상황은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예?"
"그게 무슨?"
"적의 부대 규모가 상상 이상입니다. 우선 적의 전력은 크게 마물과 골렘 부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물의 숫자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약 10만 마리 내외로 추정됩니다."
"마물이 10만?!"
"엄청나군."
마물이 일반 병사보다 강하고 기사들이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10만이라는 숫자는 그들에게 어떤 것보다 거대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마물들도 트롤, 미노타우로스, 켈베로스, 가고일을 비롯해서 트윈 헤드 오우거까지 강력한 마물들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또한 마물들을 데스나이트들이 지휘하면서 일반 마물들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할 거라고 예상됩니다."
"그 정보대로라면 마물들만으로 엄청난 위협이 될 겁니다."
"맞습니다. 특히나 트윈 헤드 오우거는 전략을 세우고 싸워야 할 정도로 상상 이상의 몬스터입니다."
"취익~ 마물 우리에게 맡겨라. 마물 상대는 우리가 하겠다."
"취직~ 그렇다. 우리 오크들 강하다. 마물 상대할 수 있다."
"오크들이 강한 것은 압니다. 하지만 무작정 싸우다가는 많은 피해를 입을 겁니다."
"그 말이 맞아. 정면으로 싸우면 안 돼."
피터가 말한 마물의 정보로 오크와 인간 지휘관들이 입을 열어 얘기했다. 그리고 하나 둘씩 입을 열어 얘기하자 소란스러워졌고 피터는 언제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클레아가 대신해서 소리쳤다.
"모두 집중해주세요!"
클레아의 말에 모든 이들이 입을 닫았다.
"이미 피터 님은 모든 정보를 알고 작전을 짜셨습니다. 그리고 그 작전을 저와 소크라 백작님도 동의했습니다. 그러니 피터 님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따라주세요."
"알겠습니다."
"취직~ 명심하겠다."
클레아의 말로 피터에게 모두 집중하기 시작했고 피터는 클레아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다시 얘기하자면 적은 마물과 골렘 부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마물은 좀 전에 얘기했으니 골렘 부대에 대해서 얘기하겠습니다. 골렘 부대는 크게 스톤 골렘, 아이언 골렘, 다이아 골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여기 있는 쿠로딘님이 말씀해주실 겁니다."
피터는 드워프의 대표자라고 볼 수 있는 쿠로딘에게 부탁했고 지목받은 쿠로딘은 앞으로 나와서 임시 칠판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핵심만 얘기하도록 하겠다. 스톤 골렘은 말 그대로 돌을 사용해서 만든 골렘으로 약 5미터에 달하는 크기를 가지고 있지. 핵은 뒷덜미에 1개 박혀있어서 핵을 부수면 무력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단단한 돌을 관통해야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스톤 골렘이 약 1000여 기 정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1000여 기?!"
"그렇게나 많이?"
"흥! 카무란 왕국에는 그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은 골렘이 존재한다. 수도에 있는 골렘만 데려오다 보니 그렇게 적은 것이겠지."
쿠로딘은 놀라워하는 이들을 향해 콧방귀를 한번 뀌고 얘기를 계속 이어갔다.
"아이언 골렘은 철로 된 몸을 가지고 있고 약 7미터의 크기에 달하지. 핵은 2개로 뒷덜미와 가슴에 박혀있다. 물론 스톤 골렘보다 내구성, 강도, 힘 모두 더 강하지."
"아이언 골렘은 약 250여 기 정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이아 골렘. 이 다이아 골렘은 다이아로 된 몸에 약 10미터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이아 골렘은 다른 골렘과 다르게 핵의 위치가 특정되어 있지 않다. 핵은 보통 4~5개를 사용하고 뒷덜미, 가슴, 양팔, 복부, 머리 등에 박혀져 있다. 또한 다이아 골렘의 무서운 점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법?"
"다이아로 만든 마법검을 소환한다. 크기도 4미터에 달하지. 또한 다이아 골렘은 다른 골렘들과 다르게 몸이 유연하다. 그만큼 만들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다이아 골렘은 30여 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30여 기..."
"얼마나 강할지 측정이 불가능하군요."
"옛날에 카무란 왕국에서 한번 실험을 해본 적이 있다. 그 결과 아이언 골렘이 혼자서 5기의 스톤 골렘을 처리했다."
"다이아 골렘은?"
"혼자서 10기를 처리했지."
"그렇다면 스톤 골렘 1500여 기가 모여있다고 보면 되겠군."
"아니. 틀렸어."
"뭐?"
"다이아 골렘은 혼자서 스톤 골렘 10기를 처리했다는 말이 아니다. 혼자서 아이언 골렘 10기를 처리했었다."
"그렇다는 말은...다이아 골렘 혼자서 50여 기의 스톤 골렘과 맞먹는다는 말이야?!"
쿠로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잠시 침묵이 빠졌는데 그때 한 명의 오크가 손을 들어서 얘기했다.
"취익~ 그러면 몇 기가 있다고 보는게 맞나?"
"취직~ 1500여 기 아닌가?"
"취윅~ 아니라고 아까 얘기했다."
"취췩~ 그러면 몇 기인가?"
"취익~ 나도 모르겠다."
오크들은 몇 기로 봐야 한다는 주제로 싸우기 시작했고 쿠로딘이 말한 내용보다 더 심각하게 대화했다. 그리고 그런 오크들의 대화에 침묵하고 있던 인간 지휘관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래. 몇 기로 보는 것이 뭐가 중요하겠어? 모두 부숴버리면 되는 거니까. 안 그래?"
"맞습니다. 그리고 적을 효율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작전은 벌써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말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피터에게 쏠렸고 피터는 그에 답하기로 했다.
"그 말대로입니다. 현재 적의 전력은 우리의 전력을 압도합니다. 더구나 마법포 200문까지 합치면 그 전력차이는 더 늘어나겠죠. 하지만 그런 적에게도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기동성이죠."
피터는 손으로 지도를 세게 때리며 얘기했다.
"골렘과 마법포는 기동성이 매우 취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동성을 살리는 작전을 펼칠 겁니다. 레스덴, 게를린 성을 통해서 적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슈타인 성에서 약화된 적을 상대로 전면전을 펼칠 겁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작전을 지금부터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피터는 인간과 오크 지휘관들을 데리고 작전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오크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처야 했고 그로 인해 날이 지나간 것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이츠와 위스퍼 그리고 암살자들은 적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예상 진로 방향으로 움직였고 이내 거대한 병력 물결을 찾을 수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군."
"그라이언 동맹을 보고 감탄했는데 이곳도 장난 아니군요."
"그야말로 대전쟁이 될 것 같습니다."
이츠는 부하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들의 말에 동감할 수 있었다. 물결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마물들과 골렘들. 그들이 움직이는 것만으로 주변 땅이 울리고 공기가 진동하였다.
그런 압도적인 광경에 수많은 경험을 한 암살자들조차 감정 변화를 하지 않고 지켜볼 수는 없었다.
"이츠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선 지금까지 얻은 정보와 다른 것이 있는지 확인하겠다."
"그럼 조금 더 접근하시겠습니까?"
현재 이츠와 암살자들은 마물들과 골렘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멀리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 접근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움직이는 이들이 바로 암살자였다.
"모두 지금 바로 온몸에 진흙을 묻힌다."
"알겠습니다."
암살자들은 이츠의 명령대로 주변에서 진흙을 구해와서 온몸에 묻히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렇게 진흙을 바르는 이유는 냄새를 차단하여 마물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되었을 때 이츠는 위스퍼에게 얘기했다.
"위스퍼. 너는 여기에 남아."
"예?"
"지금부터 가는 곳은 너를 지켜줄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아직 기척을 제대로 지울 수 없잖아. 너로 인해서 모든 이들이 위험해질 수 있어. 그러니 여기 남아있어."
"...알겠어요. 대신 이걸 가져가세요."
"이건?"
"위험할 때 사용하세요."
위스퍼는 한 개의 스크롤을 이츠에게 건네주었다. 이츠는 어떤 마법의 스크롤인지 몰랐지만 위스퍼가 건네주는 것이니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그냥 받기로 했다.
"알겠어. 잘 사용할게."
이츠는 스크롤을 품속에 넣은 후에 손으로 위스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빨리 갔다 올게."
"예. 기다리고 있을게요."
위스퍼는 부끄러워하는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고 그와 동시에 이츠와 암살자들이 앞으로 달려갔다.
"점점 관계가 좋아지시는 것 같습니다? 이츠님."
"그러게 말입니다. 부러워 죽겠습니다. 언제 첫날을 지낼 생각입니까?"
"시끄러. 나도 타이밍을 보는 중이니까 닥치고 따라오기나 해."
이츠의 말에 암살자들은 웃음을 터트렸고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기척을 지우기 시작했다. 이어서 암살자들과 이츠는 마물들과 골렘이 지나가고 있는 길 바로 옆의 나무나 덤불에 숨어서 지켜보았다.
"그르르..."
"크우...크우.."
마물들의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릴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눈치채지 못한 것을 증명하듯이 마물들은 조용히 가던 길을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츠는 검지 손가락으로 입술에 댄 후에 바닥을 가리켰고 암살자들은 이츠의 행동이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 눈치챘다.
그렇게 암살자들과 이츠는 모습을 감춘 채 마물들과 골렘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켜봤을까. 어느새 또 다른 행렬이 지나가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저건 뭐지?'
거대한 천으로 감싸져 있어서 안의 내용물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폭과 넓이가 몇 미터에 달하는 상자로 예상되었다. 그런 거대한 상자를 수레에 담은 채로 스톤 골렘들이 끌고 다니고 있었다. 이츠는 다시 한번 시프 길드원들에게 받은 정보 서류를 살펴보았고 저런 물건이 적혀져 있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냄새가 나는군.'
저 상자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몰라도 매우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껴졌고 이츠는 주변을 살폈다. 마물의 행렬은 멀리 지나갔고 지금은 골렘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마물이 없는 지금이 찬스라고 생각한 이츠는 암살자들에게 손짓을 했고 손짓의 의미를 받아들인 암살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짓의 움직임이 끝나는 순간 몇 명의 암살자들이 일부러 기척을 내며 빠르게 한쪽을 향해 움직였고 그 기척을 눈치챈 골렘들의 고개가 한쪽으로 모두 돌아갔다. 이츠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천으로 감싼 상자로 돌진하여 천을 벗기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이건?"
내용물을 본 이츠의 몸이 한순간 굳었다. 언제 들킬지 모르는 가운데 그런 행동은 치명적인 실수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츠는 내용물을 보고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상자의 내용물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상자의 내용물을 모두 합친다면...반경 몇백 미터는 가볍게 날려 보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걸 활용할 방법이 있는 건가?"
"있으니까 가져오지 않았겠습니까?"
두근!
이츠는 자신의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듣고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동시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등 뒤에 있는 녀석은 자신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차원이 다른 녀석이라는 것을.
"네 놈은...뭐냐?"
"제 이름은 메블리. 당신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죠."
"어떻게 눈치챘지?"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소리가 거슬려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죠."
"...귀가 좋은 편인가 보군."
"예. 그리고 당신을 비롯해서 다른 날파리들이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메블리는 다른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이츠는 그곳에 자신의 부하들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자식!'
이츠는 메블리가 시선을 돌린 사이에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고 잡은 연막탄을 있는 힘껏 바닥에 세게 던졌다.
펑!!
"산개(散開)!"
터진 연막탄으로 연막이 뿌려지면서 주변 시야를 막았다. 그리고 그사이에 이츠의 명령대로 암살자들은 전방향으로 도망쳤고 이츠 또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망쳤다. 메블리는 그런 암살자들이 도망치는 것을 보며 얘기했다.
"숨바꼭질 놀이인가요? 좋습니다. 그 놀이에 끼워주도록 하죠."
이츠는 어떤 때보다도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몸은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긴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칫! 저런 괴물이 있을 줄이야!"
암살 의뢰로 인해 라이언 왕성에서 듀로크를 처음 만났을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강하고 두려운 상대는 처음이였다. 이츠의 머릿속에는 한시라도 빨리 위스퍼를 데리고 이 일대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더구나 자신이 본 물건을 얘기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전쟁의 판도를 가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츠는 어느 때보다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모두 산개했으니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 충분히 가능해."
전 방향으로 도망치면서 모두 잡으려면 시간이 걸릴 거고 그사이에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츠는 S급 암살자로 자신의 스피드라면 충분히 따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메블리는 이츠의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였다.
흠칫!
이츠는 달리는 도중에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몸이 경고를 보내는 메세지임을 알고 있었기에 이츠는 실로 자신의 몸을 감싸서 보호했다.
우지지직! 서걱!
"크아아악!"
강철보다 높은 강도를 가진 실이 가볍게 잘리면서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기다란 자상이 생겼다. 다행히도 실로 보호한 덕분에 즉사는 면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중상을 입었다.
"놀랍군요. 제 공격을 받고 죽지 않았다니."
메블리의 오른손은 마치 몬스터처럼 검은 발톱으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이츠는 그 발톱으로 자신을 공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윽...내 부하들은 어떻게 한 거지?"
"이미 처리하고 왔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요. 물론 모두 한 번에 죽었지만요."
산개했는데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모두 처리하고 왔다는 말에 다시금 그가 괴물이라는 것을 인지시켜주고 있었다.
"당신이 제일 멀리 도망치고 일격에 죽지 않았습니다. 놀랍군요. 인간 중에 이런 인재가 있을 줄은."
"인재?"
"예."
"푸흡. 지금 인재라고 했냐?"
이츠는 피가 철철 흐르는 중상에도 불구하고 메블리의 말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하하하! 키키키킥!"
"...뭐가 그렇게 웃깁니까?"
"그야 웃기지! 웃지 않고 있을 수야 있겠어? 나보고 인재라고 하는데!"
이츠는 가까스로 바닥에서 일어나며 메블리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잘 들어! 나는 인재 축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나보다 강한 인간은 널리고 널렸다! 인간을 너무 우습게 보지 않는게 좋을 거다!"
피를 철철 흘리고 눈앞의 시야가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츠는 자신이 왜 이렇게 얘기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말을 내뱉고 나니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습니까? 그거 기대되는군요.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죽여드릴까요? 일격을 막았으니 어떻게 죽을지 선택권을 드리겠습니다. 목을 베어드릴까요? 아니면 내장을 꺼내드릴까요? 또는 잘게 잘게 분해해드릴까요?"
"으음...고민되는걸..."
이츠는 조용히 손을 품속으로 넣었고 이내 위스퍼가 건네준 스크롤이 생각났다. 그리고 위스퍼의 선택을 믿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닌가 보다."
"예?"
"예전이라면 포기했을텐데 지금은 다르거든. 왜냐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녀석이 있으니까!"
이츠는 위스퍼가 준 스크롤을 있는 힘껏 뜯었고 그와 동시에 이츠의 몸에서 빛이 났다. 그것을 본 메블리는 빠르게 오른손으로 이츠를 찔렀지만 그가 이츠를 찌르기도 전에 이츠의 몸은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간이 텔레포트 마법 스크롤. 거리는 짧지만 지정한 장소로 도망칠 수 있죠."
메블리는 공중으로 올라와서 주위를 관찰했지만 이츠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혼자라면 추격을 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양동 작전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겠군요. 아쉽지만 그 목은 후에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위스퍼는 이츠와 암살자들이 이동한 후에 주변을 둘러보고 안전한 장소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서 이츠에게 건네준 스크롤을 위한 마법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위스퍼가 준 간이 텔레포트 스크롤은 일반 텔레포트와 다르게 짧은 거리만 가능했다.
더구나 전송해 올 마법진이 없으면 효과가 발휘되지 않는다. 그만큼 제약이 많았지만 위기 때 그만큼 좋은 효율을 발휘하는 것도 없어서 위스퍼는 항상 지참하고 있었다.
"물론 쓸 일이 없었으면 더 좋겠지만요."
혼잣말대로 위스퍼는 오히려 자신의 쓸데없는 걱정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선견지명이였을까? 마법진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면서 이츠가 전송되었다.
"쿨럭!"
"꺄아아악! 이츠님!"
위스퍼는 전송하자마자 피를 토하는 이츠의 모습에 비명을 지르며 이츠를 부축했다. 그리고 이츠의 몸에 있는 거대한 자상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정신 차려요! 이츠님!"
"크으...위스퍼...하이 포션."
"아! 예!"
위스퍼는 당황한 나머지 포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깜빡했다. 그리고 하이 포션을 꺼내서 이츠의 상처에 뿌렸고 상처는 빠르게 치료되었다. 하지만 하이 포션에도 불구하고 중상으로 입은 상처는 완벽하게 완치가 되지 않고 흉터가 남았고 빠져나간 피까지 보충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일어나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되었고 이츠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위스퍼에게 얘기했다.
"지금 바로 여기서 벗어난다."
"예? 다른 분들은요?"
"죽었어."
"...그런가요."
죽었다는 말에 위스퍼는 슬퍼하는 표정을 지었고 이츠 또한 자신의 부하가 죽었는데 그런 감정이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였다.
"미안한데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해. 그 녀석이 날 쫓아오고 있을 수도 있어. 가면서 설명해줄게."
"알겠어요."
"그리고...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이츠는 쑥쓰럽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얘기했고 위스퍼는 미소를 활짝 지으며 얘기했다.
"천만에요."
그렇게 얘기가 끝나고 이츠는 위스퍼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이츠는 달리면서 자신의 좋지 않은 몸 상태로 과연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츠가 그렇게 노력하는 사이에 메블리의 부대와 그라이언 동맹 모두 레스덴 성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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