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장 전쟁의 불씨가 피어오르는 그란왕국(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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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장 전쟁의 불씨가 피어오르는 그란왕국(5)
라스와 가르다 마을 사람들은 오크들이 걸어간 쪽과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력감, 절망감, 한탄스러움 등 갖가지의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 한 명의 꼬마가 입을 열었다.
"아빠. 오크 아저씨들은 어디 간 거에요?"
"으음...볼일이 있으셔서 간 거란다."
"볼일?"
"응. 우리를 위해서 하실 일이 있다고."
"그래? 그럼..다시 돌아오시는 거야?"
"그건..."
"나 오크 아저씨랑 다시 놀고 싶어. 언제쯤 돌아오시는 거야?"
"....."
"응?"
꼬마의 말에 꼬마의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라스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왜 대답을 하지 못해?!"
"라스?"
소리치는 라스에게 주변의 시선이 모두 집중되었다.
"돌아온다고 왜 대답을 못 하는 거야?! 그 녀석들은 돌아온다고 약속했어! 드라킨은 다시 돌아와서 나와 술을 마시기로 약속했다고! 왜 자신 있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건데?!!"
"라스!"
흥분한 라스를 옆에 있는 남성이 말렸다. 라스는 그제야 꼬마가 울먹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젠장!"
라스는 욕지거리를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 더러운 기분을 떨쳐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라스의 감정이 전염되듯이 가르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침울해 하고 있을 때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뭔데 이렇게 다 침울해 하고 있어?"
"어?"
라스는 듣지 못했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마차 위에 한 명의 인물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위를 둘러보니 한 명뿐만 아니라 십수 명의 인물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당신은?"
"나? 나는 이츠라고 한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당신들을 도와주러 라이언 왕국에서 온 병사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우리를...도와주러?"
"진짜로? 라이언 왕국에서?"
"살았다!!"
이츠의 말에 가르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껴안으며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런 마을 사람들을 보며 이츠는 피식 웃었다.
"이제야 기뻐하는군. 그런데 왜 이렇게 침울해 있었던 거야?"
"맞아!"
라스는 이츠의 말에 정신을 차린 것처럼 허겁지겁 이츠에게 다가가서 얘기했다.
"우리를 도망치게 하기 위해서 오크들이 싸우고 있어! 빨리 도와줘! 그들이 모두 죽기 전에!"
"뭐? 방향은?"
"저쪽이야! 빨리!"
라스는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고 이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암살자 6명은 나를 따라와라. 위스퍼. 너는 남은 이들을 데리고 이 녀석들을 지키고 있어."
"알겠어요."
위스퍼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동시에 이츠가 6명을 이끌고 빠르게 사라졌다.
"이츠를 믿으세요. 늦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해결해줄 거에요. 이츠는 강하거든요."
"당신은...엘프?"
라스는 뛰어난 미모와 뾰족한 귀를 통해서 위스퍼가 엘프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예. 신기한가요?"
"엘프를 만난 적이 없어서...아!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시겠습니까?"
"이츠가 부탁했으니까요. 당신은?"
"저는 이츠라는 분을 따라가겠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예. 지금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라스는 그 말을 끝으로 전력 질주를 하여 이츠가 사라진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라스는 부디 이츠가 제시간에 도착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이츠와 암살자 6명은 라스가 가리킨 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정확히 목표로 했던 장소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정확히 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냄새였다.
"피와 전투를 치른 냄새가 나는군."
암살자는 암살을 주 생업으로 했던 자들로 오감이 누구보다 뛰어났다. 거기다가 S급 암살자인 이츠는 어떤 존재보다도 오감이 남달라서 그에게는 눈앞에 있는 것처럼 냄새가 진득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냄새로 추적하며 이동한 끝에 이내 전투를 치른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고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그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우욱!"
"...장난 아니군."
암살을 생업으로 한 암살자조차 속이 울렁거리고 보기 힘들 정도로 현장은 참담했다. 수많은 오크의 팔다리가 잘린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피로 인해서 일대의 땅이 붉게 변해있었다. 그리고 팔다리 다음으로 제일 많은 것은 내장과 머리였다.
특히나 머리는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분노와 투지를 뿜어낼 것처럼 생생한 표정이 담겨있었고 수많은 시체가 있지만 그중에서 사지가 멀쩡한 것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으윽...대체 어떤 싸움이 있었던 거야?"
"이렇게 처참한 시체는 본 적이 없어."
암살자들은 치를 떨며 오크들의 시체를 바라봤는데 그런 시체의 무리를 향해 이츠는 거리낌 없이 다가가서 시체를 조사했다.
"대부분이 오크의 시체고 뭔가에 베이고 찔린 것과 같은 상처로 가득하군. 하지만 보이는 것은 가고일이라는 몬스터밖에 없어...이봐."
"예!"
이츠의 말에 암살자들이 대답했다.
"주위에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해봐라."
"알겠습니다."
"나는 남은 녀석을 처리할 테니."
"...예?"
이츠는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서 던졌고 단검은 정확히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퍽!
하지만 단검이 얼굴에 박혔는데도 상대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것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다가오는 상대를 본 암살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데스나이트?!"
"역시 데스나이트였나?"
이어서 데스나이트가 2마리 더 모습을 등장하면서 총 3마리가 되었다. 이츠는 그런 데스나이트를 바라보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처리할 테니 가라."
"예!"
암살자들은 이츠의 명령대로 생존자를 찾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츠는 수십 개의 단검을 근처에 있는 나무를 향해 날렸다. 그리고 데스나이트가 다가오려는 순간 손가락을 움직여서 단검에 연결되어있는 실로 데스나이트를 감쌌다.
수많은 실로 감싸인 데스나이트는 힘으로 실을 끊으려고 했지만 와이번 수염으로 만든 실일뿐더러 마나까지 실려있어서 끊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츠도 마나를 사용하는데도 불구하고 데스나이트의 갑옷을 자르지 못하는 것에 인상을 찌푸렸다.
"쳇. 더럽게 단단하네. 그렇다면...머리는 어떨까?!"
이츠가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고 이번에는 갑옷이 아닌 투구를 향해 실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갑옷과 다르게 투구는 강도가 약하다는 것을 눈치챈 이츠는 데스나이트가 행동을 취하기 전에 움직였고 이내 투구를 박살 내는데 성공했다.
『.....!!!』
실이 투구를 박살 내면서 데스나이트가 괴성을 질렀고 몸도 검은 연기로 변했다. 그렇게 데스나이트는 자신이 존재했던 증거들을 모두 없애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이래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군."
"이츠님! 생존자 1명 발견했습니다!"
"알겠다."
이츠는 손가락을 움직여서 한 번에 단검과 실을 회수하였고 생존자를 발견했다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어서 이츠는 암살자 5명이 모두 한곳에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츠님."
"상태는?"
"살아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암살자들이 모인 곳에는 1명의 오크가 나무를 등지고 앉아있었다. 오크는 오른쪽 어깨를 중심으로 팔이 없었고 온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복부에 커다란 자상으로 인해서 내장과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발목도 이상한 방향으로 꺽어져있었다.
입고 있던 갑옷은 피로 붉게 물들어진 것은 당연하고 격렬한 전투를 벌인 것을 증명하듯이 멀쩡한 부위를 보기 힘들 정도였다.
"살아있는 거 맞아?"
"예. 아직 숨을 쉬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알겠다."
이츠는 상급 치료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살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암살자들이 상급 치료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츠는 오크의 마지막 말을 들어주기 위해서 바닥에 앉으려고 했는데 그때 멀리서 비명소리가 하나 들려왔다.
"으아아악!!"
"뭐야?"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암살자 1명이 비명소리가 난 곳을 향해 움직였고 이내 한 명의 인물을 데려왔다. 그 인물은 마치 보지 못한 것을 본 것마냥 안색이 핼쑥해졌고 이츠는 그가 마을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이봐. 무슨 일이야?"
"혹시...모두...죽은 겁니까?"
"그래. 몇 명이랑 싸웠는지는 몰라도 그런 것 같다."
이츠의 말에 인물의 안색은 더욱 파랗게 변하고 극한의 절망감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실이 끊긴 인형처럼 인물은 양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럴..수가...모두 죽었다고?..다 우리 때문이야...우리를 지키려고 하다가..."
"그 때문이었나? 이렇게 치열하게 싸운 이유가?"
"...그게 무슨 소리죠?"
이츠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인물을 향해 얘기했다.
"주위의 시체를 봐라. 제대로 사지가 붙어있는 것이 없잖아? 겨우 팔다리 하나 잘린 것만으로 오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너희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이츠의 말에 인물은 수많은 감정이 일렁거렸다. 하지만 그때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쿨럭...라스.."
"드,드라킨?!"
인물, 라스는 혼자 살아남은 드라킨을 향해 달려들었고 드라킨은 고개를 조금 움직여서 라스를 바라보았다.
"취..직. 적은...모두..죽었나?"
"그래. 네 덕분이야. 네 동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서 모두 죽었어."
"취..직. 다행...이군."
드라킨은 자신의 남은 손을 힘겹게 움직여서 복부의 상처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손에 흥건히 묻은 피를 바라보며 드라킨은 조그마한 미소를 지어내었다.
"취..직. 나는...살기 글렀군...그렇지 않나? 라스."
"그렇지 않아!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서 라이언 왕국에서 사람을 보냈어! 그 사람들이 너를 살려줄 거야!"
라스는 이츠를 바라보았지만 이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츠의 행동의 뜻을 알고 있는 라스는 입술을 씹었고 드라킨은 라스에게 얘기했다.
"취..직. 거짓말...하지 않아도...된다. 내 목숨은...내가 안다."
"드라킨..."
라스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드라킨을 쳐다보지 못했다.
"미안해. 우리 때문에 너희들이 모두 죽었어. 우리가 너무 나약해서. 이기적이여서. 너희를 희생으로 우리가 살았어...우리를 용서해줘! 드라킨."
"취..직...라스."
"응?"
"그딴 소리 지껄이지 마라!"
어디서 그런 힘이 남아있던 것인지 드라킨은 소리를 지르며 남은 손으로 라스의 멱살을 잡고 머리를 향해 박치기했다. 라스는 갑작스러운 박치기에 뒤로 벌러덩 쓰러졌고 놀라워하는 표정으로 드라킨을 바라보았다.
"드,드라킨?"
"취직! 우리 오크들은 너희들이 시켜서 싸운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들이 싸우고 싶어서 싸운 것이다! 우리를 받아준 너희들을 지키고 싶어서! 그런 우리들의 각오와 투쟁을 의미 없다는 듯이 얘기하지 마라!"
드라킨이 부러진 발목에도 불구하고 일어났고 그로 인해 복부에 있던 자상이 더 벌어져서 내장과 피가 쏟아졌다. 하지만 드라킨은 그에 개의치 않고 얘기했다.
"취직! 우리 오크들 멍청하다! 무식하고 잘 까먹고 모든 것을 힘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우리들도 동료를 보는 눈은 있다! 그런 우리를 라스. 너는 틀렸다고 얘기하는 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라스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너희들은 내게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였어! 내 가족과 친구 같은 존재였다고! 그런 너희들을 내가 그렇게 봤을 리가 없잖아!"
"취직! 그렇다면 그렇게 얘기하지 마라! 우리 오크들은 자신들이 선택해서 싸운 것이다! 그러니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하지 마라!"
드라킨은 피를 토해내면서도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 품속에 있던 가죽 주머니를 라스에게 던지면서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드라킨?!"
"취직. 마셔라."
"이건?"
"술이다."
"술?"
"취직.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라스는 약속이라는 말에 다시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느꼈다. 돌아와서 술을 마시자는 약속.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드라킨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는 순간 드라킨이 어떻게 될지는 상상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크흑...드라킨..."
"취..직...마셔라."
라스는 마시라는 드라킨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고 결국 흐느낌을 참으며 술을 들이켰다. 드라킨이 준 술은 어느 때보다 달콤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때보다도 쓴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술 한 모금을 마신 라스는 떨리는 손으로 드라킨에게 주머니를 건네주었고 드라킨은 주머니를 입가에 가져다 대고 술을 들이켰다.
꿀꺽. 꿀꺽.
"취직...맛있다..이만큼 맛있는 술은...처음이였다."
드라킨은 그 말을 끝으로 주머니를 바닥에 내려놓았고 이내 편안하게 잠을 자듯이 눈을 감았다. 그렇게 가르다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몸을 바친 드라킨은 마지막 숨을 내뱉으며 죽었고 라스는 그런 드라킨을 감싸 안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드라킨과 오크들은 자신들의 희생으로 가르다 마을 사람들을 아무도 다치지 않고 왕성에 도착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오크와 인간 학생을 가르치는 학교. 그리고 그런 학교에도 소란스러움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란 왕국에 상륙한 메블리의 부대 때문이었다.
"지금 왕성을 향해 진격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럼 우리도 위험한거 아닌가?"
"글쎄요. 확실히 이런 분위기 속에서 수업이 될지 모르겠네요."
"그렇지? 아. 피터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나?"
"예? 저 말입니까?"
피터는 문서를 작성하다가 옆 선생이 물어보는 것에 시선을 맞추고 얘기했다.
"글쎄요..현 상황을 잘 모르니까 제대로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적의 전력과 그란 왕국의 전력을 모르니까 대답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적의 전력이 그란 왕국의 전력보다 강하다고 생각되면 위험하겠죠."
"그,그렇군."
피터의 대답을 들은 선생은 조금 당황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하지만?"
"전력이 약하다고 해서 전쟁에 무조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략을 통해서 전력 차이를 메꿀 수 있으니까요."
"그런가?"
"예. 물론 수업하기에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는 것은 동의하지만요."
"하하하. 피터 선생도 그건 동의하는구만!"
피터의 말에 선생들도 모두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피터도 속으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위의 모든 분위기가 모두 어수선하여 그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었고 오크와 인간 학생들도 모두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피터 또한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휴. 어떻게 해야 할까?'
피터는 이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해야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혹은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또는 침공당하는 불안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등 다양한 생각과 고민을 하였다. 그렇게 피터의 머릿속이 복잡하고 다양한 생각으로 가득 차고 있을 때 피터를 부르는 이가 있었다.
"피터 선생님."
"으,응? 소피아? 무슨 일이니?"
피터는 소피아가 자신을 부른 것을 듣고 하던 생각을 멈추었다.
"피터 선생님께 부탁이 있어요."
"부탁?"
"예. 선생님이 꼭 필요한 일이에요."
소피아의 진지한 눈빛을 본 피터는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여기서 얘기하기에는 그런 일이니?"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알겠다."
피터는 소피아를 데리고 비어있는 교실로 들어갔다. 이어서 피터는 소피아를 바라보고 얘기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뭐니?"
피터는 가르치는 학생들 중 평범하지 않은 이를 뽑아서 순위를 매기라고 하면 소피아를 최상위권으로 뽑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피아가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니 피터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에 소문은 들으셨죠? 그란 왕국에 적이 침공했다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그게 네가 얘기하는 것과 상관이 있는 이야기니?"
"예. 현재 그란 왕국에서도 수비를 하기 위한 작전을 펼치고 있어요. 라이언 왕국에서도 병력을 보내고 있고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 것이냐?"
피터는 소피아가 말하는 것이 소문이 아니고 실제 극비 정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소피아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피터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현재 그란 왕국을 이끌고 있는 클레아 누나가 저랑 인연이 있거든요. 그리고 클레아 누나를 제 아버지 소크라 백작님이 도와드리고 있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그 얘기를 왜 나한테 얘기하는 거니?"
"...지금부터가 본론이에요. 피터 선생님. 저와 함께 왕성으로 가서 제 아버지를 도와주시지 않겠어요?"
"내가?!"
피터는 소피아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했다.
"예. 현재 소크라 백작님이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필요한 인재들을 모으고 계세요. 물자관리, 인적관리, 상인 등 전쟁에 관련된 이들은 모두 찾고 있어요."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니?"
"하지만 지금 제일 부족한 것이 전략가, 전술가에요."
"전략가, 전술가...설마 내가 그 자리를?"
"예."
"...나보고 전쟁을 치를 전략을 세우라는 거냐?"
"예."
소피아의 단호하고도 간단한 대답은 마치 가벼운 것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였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왕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쟁의 전략을 세워달라는 내용은 결단코 가볍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런 중대한 것을 왜 나한테?"
"저는 피터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나를?"
"예. 피터 선생님이 학교에서 하신 행동들을 보고 선생님에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란 왕국으로 오시기 전에 본 시험에 대해서 조사해봤어요. 전략, 전술에 대한 점수가 매우 높더군요."
"그렇게 평가해줘서 고맙구나. 하지만 우연일 수도 있잖니?"
"아니요. 우연일 리가 없어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지?"
"제 눈을 믿으니까요."
소피아는 확신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며 얘기했다.
"저는 얘기했다시피 어렸을 때 쇠약해서 책만 보고 살았어요. 그리고 저를 치료하러 온 의사들, 심심한 저를 위해서 아버지가 불러준 이야기꾼, 책을 쓴 소설가 등 수많은 인물을 만나봤어요. 그러면서 사람을 판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죠."
"그래서 나를 믿겠다?"
"예. 피터 선생님은 진짜니까요."
"진짜...라."
이번 전쟁의 책략가로서 활동하여 전쟁을 이기면 출세는 떼 놓은 당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이 소피아가 평가한 대로 뛰어난 것일까? 소피아의 착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피터는 자신이 어느 정도 재능은 갖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이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말할 자신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확인할 기회가 없었기에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확인할 기회인가?"
"예?"
"알겠다. 왕성으로 가서 도와주도록 할게."
피터는 문득 자신의 재능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궁금해졌다. 물론 자신에게 걸맞지 않게 부담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보고 절망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끼며 가만히 있을 바에는 차라리 직접 나서서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이라면 그렇게 얘기하실 줄 알았어요."
소피아는 피터의 대답에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다. 그리고 그런 소피아의 미소를 보고 피터는 제자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 바로 준비해주세요."
"뭐? 지금 바로?"
"예. 한시가 급하거든요."
소피아의 재촉에 피터는 바로 짐을 꾸리기 위해서 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소피아가 피터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바로 그란 왕국에 전략가로 적합한 인재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피터가 그란 왕국을 대표하는 책략가가 된다는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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