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장 표면으로 올라오는 라자드(4)
-----------------------------------
23장 표면으로 올라오는 라자드(4)
"라...자드?"
"당신이...그..라자드라고?"
라자드라는 말에 에밀리와 라미온은 사고가 정지된 것처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 모습에 자신을 라자드라고 소개한 흑마법사는 왼손을 들었다.
"먼저 여긴 너무 시끄럽군. 사람을 줄여야겠어."
"뭐?"
라미온이 되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라자드는 왼손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었다. 왼손에서 나온 검은 연기는 그대로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향해 흘러갔고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갑작스러운 연기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연,연기?!"
"뭐야? 이 검은 연기는!"
연기의 접근에 용감한 한 명의 기사가 방패를 휘두르며 연기를 몰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치이이익...
"어?"
기사는 뭔가 녹는 소리 때문에 고개를 내렸고 자신의 방패가 액체가 되어서 바닥에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사는 그런 광경에 급하게 방패를 놓으면서 뒤로 빠졌는데 갑자기 발밑이 허전함을 느끼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기사는 허전함과 함께 뭔가 위화감을 느끼면서 자신의 발목을 보았고 순간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으아아아악!! 내,내 발이!!"
기사의 발목 밑으로 어느새 녹아서 사라졌는지 빨간 액체로 변해있었다. 그런데 발이 녹으면서 움직이지 못하는 기사를 향해 검은 연기가 조금씩 다가왔고 기사는 살기 위해서 바둥거렸다. 하지만 그런 기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은 연기는 기사를 덮쳤고 기사는 극한의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커헉! 살,살려줘..."
살이 녹아서 떨어지고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기사는 생명력이 질긴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몸이 반 액체로 변했는데도 죽지 않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 기사를 동료들인 기사들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연기를 몰아낼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법사! 이 연기를 몰아내라!"
"빨리!!"
기사들의 독촉에 마법사들이 바람 마법을 사용해서 검은 연기를 날려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이 바람 마법에도 불구하고 검은 연기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착실히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향해 다가왔다.
"뭐,뭐야?!"
"연,연기가 아니야?"
마법사들은 바람 마법에도 날아가지 않는 연기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마법사들이 연기를 날려 보내지 못하자 밀폐된 공간에서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도망갈 길은 없었고 그대로 검은 연기에 먹힐 수밖에 없었다.
"쿨럭!!"
"살,살이!!"
"크아아아악!"
검은 연기에 먹힌 기사들은 살이 녹아내리는 극한의 고통을 느끼며 바둥거렸다.
"온,온다!"
"실,실드!"
검은 연기가 오는 것을 본 마법사는 실드를 펼치며 검은 연기를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검은 연기는 어떻게 된 것이 실드를 통과하여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런 광경에 마법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다가올 고통을 기다렸다.
"으아아아...악?"
"녹지 않아?"
마법사들은 검은 연기에 먹혔는데도 기사들과 다르게 살이 녹아내리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런 의아함도 잠시 그들의 몸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마나가?"
"몸,몸이...움직이지..않..아."
마법사들은 검은 연기에 사로잡힌 채 움직이지 못하고 마나가 흡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은 연기는 마법사들의 마나를 흡수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들의 생기까지 모두 흡수하였다. 그렇게 생기가 빨린 마법사들은 움직이지 못하고 미라처럼 바싹 말라가며 죽어갔다.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라미온은 정예라고 할 수 있는 마법사와 기사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전멸하는 광경에 절망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라자드는 당연한 것을 했다는 것처럼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라자드의 뒤에서 화염과 바람의 기둥이 그를 덮쳤다.
콰콰콰쾅!!
바람과 불의 기둥은 엄청난 파괴력을 보이면서 라자드를 덮쳤지만 검은 연기가 모이면서 길을 막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불과 바람의 기둥은 힘을 잃고 사라졌다.
"대체 왜?! 왜 사라지는 거야?!"
"왜 사라지는지 궁금하나?"
라자드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순식간에 죽인 검은 연기를 몸에 두른 채 입을 열었다.
"이 마력 돌풍은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지. 그리고 성질 또한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기사들을 녹인 것도 마나를 흡수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검은 연기가 갑자기 휘몰아치면서 라자드의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런 것도 가능하지."
라자드의 앞에 모인 검은 연기가 에밀리를 향해 날아갔다. 에밀리는 그것을 보고 화염과 불의 방어막을 만들었지만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은 연기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방어막을 산산이 깨부쉈다.
"꺄아아악!!"
"에밀리!"
에밀리는 벽에 몸이 박힐 정도로 큰 충격을 받으며 날아갔고 벽에 부딪히는 충격에 입에서 검은 피를 뿜어내며 쓰러졌다. 라미온은 그런 에밀리를 향해 빠르게 다가가서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으냐?!"
"쿨럭...라미온님."
에밀리는 검은 피가 울컥거리는데도 힘겹게 눈을 떠서 라미온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라자드가 조금씩 다가온 것을 본 에밀리는 온 힘을 다해서 품속에 있는 양피지를 꺼내었다.
"저를...붙잡으세요."
"뭐?"
라미온은 에밀리가 뭐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라미온이 이해하기도 전에 에밀리는 라미온의 어깨를 부여잡고 동시에 양피지를 있는 힘껏 찢어버렸다. 그러자 에밀리와 라미온의 밑에 마법진이 생겼고 그녀와 라미온의 몸이 입자 단위로 분해되면서 사라졌다.
"텔레포트 스크롤인가? 귀찮게 하는군."
라자드가 고개를 까딱거리자 조용히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어차피 어디로 도망치든 상관없지만."
텔레포트 스크롤로 인해서 짧은 거리를 이동한 에밀리와 라미온은 수많은 인물이 움직이고 있는 광장의 하늘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텔레포트에 성공하자마자 라미온과 에밀리는 지상으로 추락했고 그 모습을 본 국민들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떨,떨어진다!"
라미온은 추락하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였는데 그때 에밀리가 이를 악물면서 실프를 사용하였다.
"실,실프!"
에밀리의 말과 함께 실프가 바람을 일으키면서 그와 반작용으로 라미온과 에밀리의 떨어지는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라미온과 에밀리는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였다.
"쿨럭!"
"에밀리!"
안 그래도 좀 전에 받은 충격 때문에 중상을 입었는데 마나까지 사용하면서 에밀리의 상처가 더 벌어지게 되었다.
"전,전 괜찮아요. 그보다 빨,빨리 도망치세요."
"너는 어떻게 하고?!"
"저는...라자드를 막겠어요."
"이런 몸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그래도...저 말고는 그,그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어요. 왕,왕국에서 저보다 강한 사람은 없잖아요? 그,그러니 제가 시간을 끌 동안 도망치세요! 쿨럭!"
라미온은 에밀리를 말리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각오를 하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에밀리. 나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느냐?"
"...예?"
에밀리는 급박한 상황과 맞지 않는 얘기를 꺼내는 라미온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너를 서커스에서 구한 것은 너의 능력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이었다. 동기는 좋았다고 할 수 없지. 너를 어떻게 데리고 살지도 고민했었고. 하지만 너와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나는 행복을 느꼈단다."
"라미온님.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그냥 조용히 하고 들어!"
에밀리는 라미온의 호통에 조용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너를 친딸로 생각하며 대했단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네게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라미온님...불안하게 대체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에밀리는 라미온의 얘기를 듣고 불안감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라미온은 에밀리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 마지막은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게 해주겠니?"
"...예?"
라미온이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고 에밀리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에밀리가 반응하기도 전에 라미온은 품속에서 하나의 양피지를 꺼내었고 에밀리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건?"
"지금까지 고마웠단다. 그리고 꼭 살아남으렴."
"라미온님. 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예? 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마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에밀리를 향해 라미온은 그저 자상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라미온이 갑자기 행동에 나섰다.
찌이이익!!
라미온이 에밀리의 손에 있는 양피지를 찢었고 그와 동시에 에밀리의 몸이 입자 단위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에밀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눈치챘고 라미온을 향해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라미온님!!"
에밀리는 라미온의 옷을 붙잡는데 성공했다. 텔레포트 하는데 접촉해있으면 동시에 이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에밀리가 그런 행동을 할 것을 눈치챈 것일까? 라미온이 몸을 뒤로 빼면서 에밀리의 손이 옷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에밀리의 손도 입자 단위로 분해되어 사라졌고 그녀의 몸도 순식간에 분해되었다. 에밀리는 그런 라미온을 향해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도 분해되면서 얘기를 할 수 없었고 그저 마지막으로 라미온의 말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꼭...살아남으렴. 나의 딸 에밀리."
그 말과 함께 에밀리가 텔레포트 되었고 그녀가 사라진 후에 라미온은 이어서 얘기했다.
"기다려줘서 고맙다. 라자드."
라미온은 그녀가 사라진 곳에 서 있는 인물을 향해 고개를 들며 얘기했다.
"왜 기다려준 거지?"
"글쎄. 한 가지의 변덕이라고 할 수 있겠군."
"...그런가. 네가 한 일들을 들어보면 인간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인간미가 있군."
"훗.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목숨이 여러 개라도 되나?"
라자드가 라미온의 눈을 바라보자 라미온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표정이 떨리는데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라자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라자드의 발악이 재밌는 것일까? 라자드는 웃음기가 붙어있는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하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봐주도록 하겠다."
라자드는 그 말을 하며 광장에 있는 분수대의 벤치에 앉았다. 주위의 평화스러운 광경에 절대 악이라고 볼 수 있는 라자드가 앉아있으니 그렇게 위화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라미온을 제외한 이들은 그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나는 죽는 거겠지?"
"글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그렇다면 죽는 김에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 궁금한 것이 죽는 것보다 싫어서 말이지."
라미온의 말에 라자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피식 헛웃음을 내보냈다.
"좋다. 이것도 하나의 유희겠지. 무엇이 궁금하지?"
"왜 세계를 파괴하려는 거지?"
"그 물음에 내가 오히려 네게 묻겠다. 너는 개미들과 친해질 수 있나?"
"개미?"
라자드의 뜬금없는 물음에 라미온은 무슨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질문인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기도 전에 라자드가 계속 얘기했다.
"개미와 대화를 할 수 있나?"
"...아니."
"그래. 대화가 성립되지 않지. 그리고 대화가 되지 않는다면 친해질 수도 없다. 그렇다면 개미들이 우글거리면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짓밟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적이 없었나?"
"...부정하지는 못하겠군."
"그래. 그게 내 대답이다."
"...뭐?"
라미온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개미와 자신의 질문에 무슨 관계성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서 라자드의 입에서 나온 대답을 듣고 라미온은 입을 닫았다.
"내 입장에서 너희들은 개미와 똑같다."
"....."
"너희들은 하찮은 존재들이다. 좀 전에 네가 얘기한 것처럼 개미와 친해질 수는 없지. 우글거리면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짓밟고 싶지. 파괴하고 싶지. 그래서 내가 이 세계를 파괴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흑마법사로 둔갑을 하고 내 명령을 따른 것처럼 행동한 것이지?"
"한번 개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라는 호기심이 생겨서 그랬다."
"...너도 인간이지 않나?"
"인간? 훗.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인간을 초월한지 200년도 더 되었다. 그저 인간의 탈을 쓴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 힘을 좋은 곳에 쓸 수는 없는 것이냐?"
"...너는 정점에 선 자의 고독함을 아는가?"
"뭐?"
"힘의 정점에 선 자는 항상 고독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모든 것이 움직이지. 하지만 그래서는 너무나 따분하고 고독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래서 나는 나에게 맞설 수 있는 상대를 찾는다."
"그게 네 녀석이 세계를 파괴하는 이유냐?"
"그 이유가 제일 크다...아니,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라자드는 중요한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라자드를 바라보던 라미온은 갑자기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중요한 이유가 아니겠지. 다시 얘기를 돌리자면 이렇게 작은 대륙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힘을 가진 녀석들이 존재한다. 그나마 그 녀석들이 나의 고독감과 지루함을 덜어주겠지. 그리고...듀로크라는 아주 재밌는 녀석도 나왔으니까."
라자드가 듀로크라는 단어를 말하면서 짓는 미소는 라미온이 살면서 본 어떤 미소보다도 소름 끼쳤다.
"그야말로 라이벌이라는 말에 적합하다. 어떤 싸움이든 한쪽이 너무 우세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비등비등하고 치열한 싸움의 끝에 이긴 승리야말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너는...미쳤어. 겨우 그런 재미를 위해서?"
"미쳤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군. 그럼 내 밑에 있는 녀석들도 모두 미친 녀석들인가?"
"뭐?"
"권력을 위해서, 차별화 없는 세상을 위해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복수를 위해서.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지고 나의 뜻을 받들며 따르고 있다. 너희들과 무엇이 다르지?"
"너희들은 그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잖아!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키고!"
"그것이 뭐가 잘못되었지? 너희들도 살기 위해서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키지 않나?"
"뭐?"
라자드는 벤치에서 일어나서 손으로 라미온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라미온의 얼굴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며 얘기했다.
"이 세레티 왕국도 봐라. 이 왕국을 설립하기 위해서 수많은 이들을 죽이지 않았나? 군대를 동원해서 반대하는 자들을 죽이고 자신의 뜻과 다른 이들을 추방해서 굶어서 죽게 만들지 않았나? 그것과 뭐가 다르지?"
"그건..."
확실히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데 피가 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뭐든지 새로운 시도를 하면 반대하는 이가 등장하는 마련이고 반대하는 이가 생기면 서로 부딪히는 것은 필연이였다.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그것은 필요한 희생이다. 너희처럼 수많은 이들을 죽이고 맘대로 하지는 않는다."
"훗. 궤변이군. 1이든 10이든 100이든. 죽인 것은 똑같다. 스케일이 다를 뿐이지."
라자드는 그 말을 끝으로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라자드의 옆에는 수많은 흑마법사들이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광장에 있던 사람들도 갑자기 나타난 흑마법사들의 존재에 웅성거리면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시간 때우기 대화는 끝이다. 시간이 되었군."
"뭘...하려는 거냐?"
라미온은 수백 명이 넘는 흑마법사들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끼는 동시에 이 녀석들이 무슨 짓을 할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궁금한가?"
"...그렇다."
"그럼 끝까지 지켜봐라. 지켜볼 수 있다면."
"..뭐?"
"시작해라."
라자드의 명령과 함께 흑마법사들이 일제히 지팡이를 들어서 하늘을 향해 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팡이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그 검은 기운은 하늘을 향해 쭉 뻗어 나갔다.
"뭐,뭐야?"
"무,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흑마법사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고 흑마법사들이 뿜어낸 검은 연기는 이내 하나의 실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저건...마법진?!"
하늘 멀리 생성되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법진이라는 것을 라미온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흑마법사들이 계속 검은 연기를 뿜어낼 때마다 그 마법진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나의 집과 같은 크기였다.
하지만 몇 초도 되지 않아서 하나의 성만한 크기로 변했다. 이어서 10초도 되지 않아서 하나의 도시를 뒤덮을 정도로 커졌고 30초도 되지 않아서 여러 개의 도시를 뒤덮을 정도로 비대해졌다.
"저렇게 커다란 마법진이라니...대체 뭘 하려는 거냐?!"
지금까지 태어나면서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마법진이였다. 그리고 그 질문에 라자드가 대답했다.
"리바이브 언데드란 마법을 아나?"
"리바이브...언데드?"
"모르나? 그럼 죽음의 도시 사건은 알겠지."
"죽음의 도시...설마?!"
라미온은 죽음의 도시라는 말에 한가지 생각이 번쩍였다. 죽음의 도시는 약 500년 전 대륙의 서쪽에 존재하는 나르트라는 도시의 인간들이 모두 언데드화 된 사건을 얘기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지금 얘기한다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 도시를...죽음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소리냐?"
"아쉽군. 조금 틀렸다."
라자드는 흑마법사들과 똑같이 오른손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며 얘기했다.
"이 도시만이 아니다. 세레티 왕국 전체를 그렇게 만들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