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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오크 마법사-271화 (271/360)

21장 분노하는 듀로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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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장 분노하는 듀로크(3)

반경 수백 미터가 넘는 화염의 돔. 그 화염의 돔 안에는 수만이 넘는 다크엘프들과 마물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수많은 다크엘프들과 마물들이 모두 공통적인 특징을 띠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모두 경련을 하면서 떨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그들의 시선은 모두 돔의 중심에 서 있는 한 인물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 인물의 정체는 듀로크였다. 그런 수많은 시선에 집중되는데도 듀로크는 조용히. 그것도 아주 느리게 눈앞에 있는 다크엘프와 마물들을 향해 걸어갔다.

듀로크와 제일 가까이 있던 다크엘프들과 마물들은 듀로크가 자신을 향해 느리게 다가오는데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떨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만은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그것이 공포에 질려서 그렇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어서 듀로크는 떨고 있는 다크엘프들과 마물들 앞에 다가왔고 가볍게 오른손을 휘저었다. 마치 날파리를 지우는 것처럼 가벼운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화르륵.

수백 명의 몸이 그대로 잿더미로 변하면서 사라졌다. 듀로크의 가벼운 손짓 하나로 수백 명의 존재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본 다크엘프들은 미친 듯이 눈동자를 굴리며 움직이려고 아등바등거렸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몸은 의지를 듣지 않고 움직이지 않았다.

화르륵.

또다시 듀로크가 손짓하면서 수백 명이 사라졌다. 그런 광경에 그들은 어떤 때보다 더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치열하게 싸워서 죽는 것도 아니였다. 자신의 실수로 죽는 것도 아니였다. 그저 날파리를 죽이는 것처럼 그것도 아주 가볍게. 자신이 죽는 것조차 모르고 죽는 것이었다.

그런 죽음이 그들은 어떤 것보다 두려웠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을 알고 있다고 해도 듀로크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현재 그에게는 분노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그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신밖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두려움을 겪고 죽는 것이야말로 듀로크가 원하는 것이었다.

화르륵.

듀로크가 또 손짓으로 수백 명을 지우고 제일 가까이 있는 다크엘프의 머리를 손으로 잡았다. 손에 잡힌 여성 다크엘프는 눈동자로 말 없는 아우성을 하였다. 듀로크는 그런 여성 다크엘프의 귓가에 입을 대고 얘기했다.

【살고 싶나?】

듀로크의 물음에 여성 다크엘프는 눈동자를 위아래로 쉼 없이 움직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본 듀로크는 입을 열어 얘기했다.

【그럼 나를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화르륵.

듀로크의 손에서 여성 다크엘프가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듀로크는 또 다른 다크엘프에게 다가가서 얘기했다.

【누구든지 자신의 것을 남이 건드리면 좋아하지 않겠지? 안 그래?】

듀로크의 물음에 또다시 눈동자를 움직이며 대답했다.

【그래. 모두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런데...너희들은 왜 알고도 내 것을 건드린 것이지?】

아무도 듀로크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듀로크의 기운에 입을 열지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에게서 나오는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건드리는 것도 마음에 안드는데...내가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건드려? 그건 살고 싶지 않다고 봐도 되는 거지?】

"....."

【안 그러냐고?!!】

푸화아악!!

"컥!"

"쿨럭!"

"윽!"

듀로크의 목소리만으로 천 명이 넘는 이들이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검은 피를 뿜어내며 즉사했다. 하지만 듀로크는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듯이 손을 마구 휘둘렀고 그때마다 수백 명이 넘는 이들이 사라졌다.

【말해봐라! 어떤 자신감으로 건드렸는지!】

화르륵.

【얘기해봐라! 누구를 믿고 클레아를 건드렸는지!】

화르륵.

【그 뚫린 입으로 지껄여보라고!!】

화르륵.

분노에 가득 찬 듀로크가 그렇게 손짓을 하면서 벌써 절반이 넘는 다크엘프들과 마물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일절 움직이지 못하고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였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드리트도 마찬가지였다.

'움직여...움직여...'

드리트도 듀로크의 압도적인 기운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초인답게 다른 다크엘프와 마물들과는 달랐다. 그는 조금이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었고 공포를 느끼고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맞서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온몸을 검게 물들인 채 모든 마나를 뿜어내며 듀로크의 기운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있는 것이 최대였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감각이 얘기하고 있었다. 여기서 한시라도 빨리 도망치라고. 하지만 그것도 몸이 움직여야 할 수 있었다.

'이익!!'

젖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마나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러자 드리트는 아주 조금씩 몸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고 한 발짝 발을 앞으로 내디딜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처음이 어려울 뿐이지 한번 익숙해지면 쉬워지는 것처럼 드리트는 몸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됐어. 움직인다.'

몸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드리트는 어느 때보다 검은색을 띠는 몸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의 고민은 아주 단순했다. 도망칠 것인지, 아니면 듀로크를 상대로 싸울 것인지. 도망칠 수 있을지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후자는 어떻게 될 것이 결과가 뻔했다.

'무조건 죽지.'

그건 확신했다. 왜냐하면 지금 듀로크는 자신보다 몇 단계 높은 차원의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바위에 계란치기보다 더 쓸모없는 짓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여기서 도망친다고 해도 내가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명령 때문에 뒤로 빠졌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르다. 자신의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쳐야 했다. 적을 눈앞에 두고. 누구보다 강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리고 여기서 도망친다고 해도 자신은 살아도 산 게 아니였다.

'그렇다면...고민은 하지 않겠다.'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죽었다고 한다면. 그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후우우....하아아아..."

드리트는 아주 고르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마치 주변의 모든 공기를 흡수할 것처럼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들이켠 숨을 모두 한꺼번에 뱉으면서 드리트는 소리쳤다.

[으아아아아!!]

마치 생명의 불꽃을 모두 불태우는 것처럼 드리트의 목소리에는 마나가 가득했고 너무나 큰 공포에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다크엘프들과 마물들에게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와 함께 지금까지 움직이지 못했던 다크엘프들과 마물들이 잠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은 움직이는 자신의 몸을 보고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모두 돌격하라!!!"

드리트가 또 한 번 목소리를 내뱉었고 그와 동시에 상황도 급변했다.

"...돌격!!!"

"돌격하라!!"

"크아아앙!!"

드리트의 목소리에 마치 그제야 깨달은 것처럼 남은 다크엘프들과 마물들이 일제히 듀로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숫자는 만여 명을 넘었고 그들이 움직이는 것만으로 땅이 흔들렸다. 하지만 듀로크는 자신을 향해 돌격해오는 이들을 보며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얘기했다.

【귀찮은 불나방들. 사라져라.】

듀로크가 또 손을 휘젓자 수백 명씩 사라졌다. 그리고 듀로크에게 접근해도 그에게서 나오는 극한의 열기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산화되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다크엘프들과 마물들은 마치 불에 돌진하는 불나방처럼 포기하지 않고 부딪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기 때문이었다.

화염으로 가득 찬 돔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언제 또다시 움직이지 못하고 개죽음을 당할지 몰랐다. 드리트의 외침 덕분에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택할 수 있었다. 그런 다양한 이유로 그들은 듀로크에게 돌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죽어라!"

"키에에엑!!"

"내 동료의 복수다!"

뒤에서 검으로 찌르고 발톱을 휘두르고 원거리에서 마법을 쓰면서 할 수 있는 공격은 모두 했다. 하지만 검도 녹아서 액체가 되고 발톱은 연기처럼 산화되며 마법은 그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들었고 그런 불나방 같은 돌진은 그들이 모두 산화될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만여 명에 달하는 이들이 듀로크와 부딪히면서 산화되었지만 그중 단 한 명도 듀로크에게 손가락 하나 건들지 못했다.

"....."

그렇게 수만 명이었던 다크엘프와 마물들이 산화되면서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런 존재도 남기지 않고 있었다. 이제 커다란 화염의 돔에는 단 두 명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듀로크와 자신의 부하가 모두 산화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드리트였다.

"정말...손가락 하나도 건들지 못하다니...경이롭기까지 하는군."

드리트는 자신의 부하가 목숨을 버려서까지 돌진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을 봤다. 그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참전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이유는 듀로크에게 한 방을 먹이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보여주듯이 그의 팔은 어느 때보다 거대해져 있었다.

평소 때의 3배는 될 정도로 거대해져 있었고 지금까지와 다르게 팔만 완전한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그가 모든 마나를 팔에 집중시키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도 듀로크는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듀로크의 행동이 드리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쪽을 봐라!"

쾅!!!

드리트가 팔로 땅을 내리찍자 그제야 듀로크가 드리트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신경 쓰지 않을 때가 기회일 수도 있었다. 그때라면 드리트라도 듀로크에게 한 방을 먹일 수도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래도 드리크는 이렇게 하고 싶었다.

"나도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니 봐주는 것을 원한다고. 마지막 정도는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좋잖아?"

【너도 사라져라.】

듀로크가 손을 휘둘렀고 드리트는 그것을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모든 감각이 죽을 거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드리트가 그동안 부하들이 죽는 것을 보고 있던 것은 마나를 모으려고 한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네 공격을 파악하기 위해서지!"

드리트는 듀로크가 손을 휘두르는 순간 앞으로 수그리면서 돌진했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있던 곳에서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곳에 있었더라면 순식간에 사라졌을 거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피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말씀!"

듀로크가 다음 공격을 하기 전까지 다가가서 공격하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공격답게 드리트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였고 듀로크가 다음 동작을 펼치기 전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넘어야 할 벽은 아직 남아있었다.

"크윽!"

듀로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자신의 몸이 조금씩 산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마나를 응집시킨 팔만큼은 아직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드리트는 자신이 산화되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모든 힘을 다해서 듀로크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으아아아아! 가라!!"

쾅!!!

주먹에서 느껴지는 타격감에 드리트는 듀로크를 때리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드리트는 고개를 들어서 듀로크가 피를 흘리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드리트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입에서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풋. 진짜냐?"

정확히 주먹이 얼굴에 들어갔다. 하지만 듀로크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고 타격을 전혀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드리트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상상 이상이군. 죽여라."

드리트의 말에 듀로크는 그저 눈만 움직여서 드리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드리트는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끼면서 그게 자신에게 내리는 마지막 경고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회는 없었다.'

드리트는 자신의 몸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후회는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딱 한 가지 아쉬운 것이라면 라자드와 듀로크가 싸우는 광경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초인인 드리트는 사라지며 이 세상을 떠났다.

"....."

혼자 남은 듀로크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지금까지 수많은 다크엘프들과 마물들이 있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멀리 보이는 화염의 돔만이 그런 일이 있었다고 증명해주고 있었다.

"...피곤하군."

듀로크는 오랜만에 마나를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아니면 분노에 미쳐서 마법을 남발해서 그런지. 또는 드래곤의 흉포한 본성에 휩싸여서 피곤함을 느끼는 건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느껴왔던 어떤 때보다 피곤이 몰려왔다. 그냥 바닥에 엎어져서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해야 할 것이 남아있었다.

"클레아..."

누구보다 소중한 클레아를 치료하는 것. 그 생각이 듀로크의 머릿속에 다시금 떠올랐고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빨리 돌아가야겠군. 이럴 때가 아니야."

듀로크는 어느 때보다 급하게 텔레포트를 사용하며 클레아를 향해 사라졌고 그렇게 듀로크가 모습을 감추면서 화염의 돔을 만들고 있던 불꽃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때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이는 조그마한 검은 연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한 치의 빛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동굴. 그곳에는 한없이 깊은 어둠이 가득했다. 하지만 빛이 들어오지 못해서 어두워져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빛 때문에 깊은 어둠이 깔려있는 것은 아니었다. 동굴의 중심에는 커다란 크리스탈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 크리스탈을 중심으로 오성 마법진이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 오성 마법진의 꼭지점에는 중심의 크리스탈보다 조금 작은 크리스탈들이 박혀 있었다. 크리스탈의 공통점은 모두 내부에 검은 연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 검은 연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굴 안에 그렇게 깊은 어둠이 깔려있는 것도 모두 그 검은 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동굴 안에 자욱이 깔려있는 검은 연기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가 위로 올라가면서 한곳에 모이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검은 구멍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구멍이 생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명이 구멍을 통해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크윽!"

한 명의 인물은 바닥에 떨어지며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는 한쪽 팔이 어디서 사라졌는지 존재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통증 때문에 신음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젠장, 젠장! 젠장!!"

그는 극한의 통증에도 불구하고 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내가 꼬리를 내리고 도망쳤다고? 내가?!"

그가 분노와 함께 소리를 지르자 동굴이 울렸고 검은 연기가 그를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크리스탈 내부에 존재하고 있던 검은 연기의 농도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마치 그에게 흡수되는 것처럼.

"내가 공포를 느끼다니! 내,내가 라자드님을 제외한 이에게서 공포를 느낀다고?!! 말도 안 돼! 인정할 수 없다!!"

마치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그는 주위에 있는 모든 연기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크리스탈 내부에 있던 검은 연기들도 모두 사라졌고 이내 하나의 물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크리스탈 안에 있는 물건은 마치 구슬과 같았고 순수한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그 구슬 안에는 검은 연기와 같은 기운이 맴돌고 있었는데 구슬 내부의 기운은 외부의 기운과 다르게 완전히 순수한 기운이었다. 한마디로 동굴에 깔려져 있는 것이 50% 농도의 마력이라고 한다면 구슬 내부에 있는 것은 100% 순수한 농도를 띄는 마력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모든 검은 연기를 흡수하면서 구슬의 기운까지 흡수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의도는 한 목소리와 함께 무산되었다.

"그만해라. 카리아스."

그 목소리에 이성을 잃고 날뛰던 카리아스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에게 흡수되던 검은 연기도 멈추었다.

"라자드님..."

"지금 뭐하는 거지? 구슬의 기운까지 흡수하면 어떻게 될지 네가 모르는 것은 아닐 텐데?"

"...죄송합니다."

지금 크리스탈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는 구슬에서 생성되는 거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원천인 구슬의 기운까지 흡수한다면? 더 이상 마력을 뽑아내지 못한다고 봐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카리아스는 자신이 얼마나 중대한 실수를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구슬은 마왕의 부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코어이다. 그런 코어를 흡수하려고 하다니. 할 말이 있나?"

"...없습니다. 제게 벌을 내려주십쇼."

"흐음...모습을 보아하니 듀로크에게 당했나 보군."

"면목없습니다."

라자드의 말에 카리아스는 고개를 더욱 떨구며 감히 라자드를 쳐다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저자세를 취했다. 그런 카리아스를 향해 라자드는 다가갔고 이내 잘린 카리아스의 팔에 손을 얹어두었다. 카리아스는 라자드가 어떤 행동을 하든 간에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라자드의 몸에서 나오는 마력이 잘려 있는 팔의 단면에 스며들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잘려진 팔의 단면을 통해서 검은 팔이 솟아났고 카리아스는 그 광경을 놀랍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라자드님?"

"이 정도면 생활하는데 불편은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해졌을 것이다."

"제게...벌을 내리지 않으시는 겁니까?"

"벌을 줄 수 있지. 하지만 나에게 너만큼 쓸모 있는 말은 없다. 그러니 한번 자비를 베풀어주겠다."

카리아스는 라자드가 자비를 준다는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자비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다니...영광입니다."

"쓸모없는 소리는 됐다. 그보다 네 상처는 듀로크에게서 당한 것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듀로크와 있었던 일을 세세히 설명해라."

"알겠습니다."

라자드의 명에 카리아스는 있었던 일을 모두 얘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합류하면서 싸운 첫 번째 전투, 클레아라고 하는 듀로크의 소중한 존재, 클레아를 사용한 협박. 그리고 듀로크의 분노.

"분노한 듀로크가 그렇게 강했다는 건가?"

"예. 솔직히 말해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라자드님을 제외하고 다른 이에게서 공포를 처음 느껴봤습니다."

"호오? 흥미롭군. 잠시 너의 기억을 훑어보겠다."

"예! 라자드님의 뜻대로 하십쇼!"

카리아스는 라자드에게 다가가서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라자드는 카리아스의 머리에 손을 얹어두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카리아스의 얼굴에서 핏줄이 튀어나오면서 머리를 떨어대었다. 남의 기억을 강제로 열어서 메모리 하는 마법. 흑마법의 일종으로 당하는 피해자는 머리를 강제로 쑤시는듯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카리아스는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고 그사이에 라자드는 카리아스가 본 기억을 모두 훑어볼 수 있었다.

"놀랍군. 놀라워. 일이 재밌어지는군."

카리아스는 라자드의 얼굴에 미소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왜냐하면 라자드의 미소를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통해서 라자드가 진심으로 재밌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리아스. 너는 여기에 남아서 마력을 채우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이제 때가 무르익은 것 같군."

"그...말씀은?"

카리아스는 라자드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끼며 라자드를 바라보았고 여전히 미소가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미 일은 진행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 처리만 하면 되지. 그 일을 네게 맡기겠다."

"예! 그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믿겠다. 그럼 나는...잠깐 재미 좀 보고 오겠다."

"예!"

라자드는 그 말을 끝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카리아스는 남은 크리스탈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라자드의 말에 자신의 몸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분노가 찌꺼기조차 남지 않고 완전히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이제는 오랜 기다림이 끝났다는 말에 기쁨과 만족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나도 이제 할 일을 해야겠군."

카리아스는 자리를 잡고 몸 안에서 흐르고 있는 마력을 뿜어내었다. 그리고 그 마력은 크리스탈에 흡수되기 시작했고 그렇게 오랜 기다림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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