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오크 마법사-254화 (254/360)

20장 움직이는 듀로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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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움직이는 듀로크(21)

30여 마리의 마물들은 갑자기 나타난 수백 명의 인간들 때문에 경계심을 높인 상태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츠는 지금만큼 암살단원들이 믿음직스럽게 느껴진 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화염으로 엄청난 화상을 입은 이츠의 등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는 인물이 있었고 이츠는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봤다.

"으아악!! 누구야?!"

"나다."

"헉! 쉐,쉐이드님?!"

이츠는 욕을 한 바가지로 내뱉으려고 했지만 쉐이드가 그랬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목까지 올라온 욕을 다시 삼켰다.

"상처가 심하군. 나중에 듀로크한테 치료해달라고 해라."

"알,알겠습니다."

쉐이드는 이츠의 품속에 있는 위스퍼를 힐끗 쳐다본 후에 얘기했다.

"그 녀석을 감싸려고 하다가 그렇게 된 건가?"

"그,그건..."

이츠는 쉐이드의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암살자는 본디 감정을 죽이고 일하는 이들로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당연시하게 여겨지는 이들이었다. 왜냐하면 암살의 임무를 하는데 감정은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엘프를 감싸려고 이렇게 다쳤다고 하면 암살자의 기초적인 것도 부정하는 꼴이 되었다. 그렇기에 이츠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쉐이드는 눈치챈 것일까? 쉐이드는 이츠를 추궁하지 않았다.

"뭐라고 할 생각 없다. 오히려 그것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테니."

"예?"

이츠는 쉐이드가 뭐라고 하는지 몰랐다. 거기다 쉐이드가 다그치지 않고 오히려 잘됐다고 하니 쉐이드가 뭘 잘못 먹었나하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리고 호루라기를 분 것도 적절한 판단이였다."

"감,감사합니다."

호루라기는 암살자들이 모두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로 멀리 있는 암살자들이 소통할 때 사용하는 물건이다. 그리고 이츠는 호루라기를 길게 3번 불렀는데 그것은 긴급상황으로 도움을 필요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암살자들이 모두 눈치챈 덕분에 이렇게 빠르게 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저 녀석들의 정체는 뭐지?"

"저도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싸워본 결과 피부가 엄청나게 단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 실로도 생채기만 주고 다른 상처를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럼 약점부터 찾아야겠군. 마크, 브리츠, 앨런."

""예!""

"몇 마리는 생포하도록. A급들이 필요한가?"

""필요 없습니다!""

"좋아. 시작하도록."

쉐이드의 말에 3명의 암살자들이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앨런은 철로 되어있는 채찍을 꺼내 들었고 브리츠와 마크는 커다란 메이스를 양손에 들었다. 그리고 그 3명은 마물들을 향해 앞으로 나갔고 마물들은 다가오는 3명을 경계한 채 울음소리를 내었다.

"우리가 먼저 간다."

"뒤에서 엄호하도록."

브리츠와 마크는 양손의 메이스를 돌리면서 마물들을 향해 앞으로 돌격했다. 제일 앞에 있던 켈베로스는 그것을 보고 두 발톱과 3개의 머리로 그들을 찢으려고 했는데 그 순간 양손에 있는 메이스가 머리를 강타했다.

콰직!!

강화된 마물들조차 메이스에 버티지 못하고 마치 수박이 터지듯이 머리가 부서졌다. 하지만 3개의 머리 중에 한 개가 남아있는 덕분에 켈베로스는 죽지 않고 물어뜯으려고 했지만 그때 뒤에서 날아오는 채찍이 있었다.

"깽!"

채찍은 정확하게 켈베로스의 눈을 찢으면서 안으로 들어갔고 동시에 뇌까지 터트렸다. 그러자 3개의 머리를 잃은 켈베로스가 힘을 잃으며 쓰러졌고 동시에 두 마리의 가고일이 앨런을 향해 공중에서 하강하며 다가왔다.

그것을 본 앨런은 켈베로스의 뇌에서 빠르게 채찍을 수거한 다음에 가고일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퍽! 퍽!

"캬아아악!!"

채찍은 가고일의 코를 통해서 들어간 후에 머리를 관통해서 나왔고 두 번째 가고일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당해버렸다. 그러자 마치 꼬치에 꿰인 새처럼 채찍에 두 마리의 가고일이 죽은 채 덜렁거리고 있었다.

"이 녀석들의 약점 알 것 같은데?"

"마나를 불어넣으면 부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리고 움직임도 단조롭다."

스피드를 중시하는 암살자들답게 켈베로스와 가고일의 공격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더구나 무기에 마나를 불어넣어서 타격하면 타격을 줄 수 없는 것도 아니였다. 특히 앨런처럼 채찍 끝부분에 마나를 집중시켜서 찔러넣으면 피부를 뚫는 것도 가능했다.

암살자답지 않게 힘을 중시하는 브리츠와 마크의 경우에는 강화된 마물들조차 버티지 못할 만큼의 충격량을 주면서 싸우고 있었다. 거기다 그들은 서로 간의 연계를 통해서 마치 두 사람이 한 명의 인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완하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크르르르..."

"캬아아악..."

S급 암살자 3명에게 벌써 십여 마리가 넘는 켈베로스와 가고일이 쓰러졌다. 그러자 남은 마물들이 전투 의지를 내보내지 않고 조금씩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켈베로스와 가고일들이 그들과 상대하고 있는 찰나, 마물들이 일제히 도망가기 시작했다.

"어? 이 녀석들 도망가잖아?"

"앨런!"

"알겠어."

브리츠와 마크는 도망치는 마물들을 보고 앨런에게 얘기했고 앨런은 그 마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움직이는 이가 있는 것을 본 앨런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걱.

한 소리와 함께 도망치던 마물들의 움직임이 한순간에 멈췄다. 수많은 암살자들이 무슨 일이 벌어진지 눈치채지 못했고 S급 암살자들만이 어렴풋이 그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쉐이드님은 진짜 못 따라겠단 말이야."

"차원이 다르지."

마물들의 앞에 쉐이드가 두 단검을 들고 있었다. 두 단검에는 피가 흥건히 묻어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쉐이드가 단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묻은 피를 제거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멈추었던 마물들이 일제히 입에서 피를 뿜어내었다.

푸화아아악!! 쿵!

입에서 피를 뿜어낸 마물들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이내 움직임을 멈추고 절명하였다. 그 광경을 본 위스퍼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츠를 바라보았다.

"대체...어떻게 된 거죠?"

"너의 입장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게 당연하겠지. 우리 S급들도 흐릿하게 볼 정도니까."

이츠는 다른 A급 암살자에게 부축을 당하며 얘기했다.

"쉐이드님은 남들과 다른 시간대에서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우리가 1초 대의 시간대에서 움직인다면 쉐이드님은 0.1초대의 시간대에서 움직일 수 있어. 한마디로 몇 배에서 수십 배 빠른 움직임을 취할 수 있다는 거지."

"그 말씀은...너무 빨라서 제가 보지 못했다는 건가요?"

"맞아. 나조차도 흐릿하게 봤으니까. 그 짧은 사이에 마물들의 심장을 정확히 찌르고 지나갔어.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네."

이츠의 말대로 쉐이드는 그 짧은 순간에 마물들의 심장을 모두 찌르고 지나갔다. 아무리 강화된 마물이라고 해도 쉐이드의 공격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도망칠 기회조차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잊은 것이냐?"

"죄,죄송합니다!"

쉐이드의 살기 어린 말에 브리츠, 마크, 앨런은 전투 중인데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쉐이드의 말에 대답했다. 쉐이드는 마물이 5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을 보고 얘기했다.

"한 마리씩 생포하도록. 철저히 고문하고 실험하면서 그들의 약점을 알아내라."

"알겠습니다!"

브리츠, 마크 그리고 앨런은 쉐이드의 말대로 2마리만 남기고 모든 마물을 섬멸하였다. 생포된 마물은 이츠의 실을 통해서 발버둥 치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고정시켰고 이츠를 제외한 S급 암살자들이 실험을 시작하였다.

"자자. 가만히 있지 않으면 아플 거라고."

"우선 가볍게 피부 하나씩 뜯어보자."

"어이쿠. 이거 힘 좋은 거 봐라? 한쪽 팔 정도는 부숴야겠는데?"

S급 암살자들의 고문으로 고통을 받는 마물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사이에 멀리서 다가오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쉐이드가 제일 먼저 눈치챘다.

"나르샤인가? 역시 빠르군."

쉐이드가 눈치채고 몇 초 후 다른 암살자들도 일제히 고개를 똑같은 방향으로 돌렸고 이내 한 명의 엘프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르샤는 전투태세가 가득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눈앞에 수많은 암살자들이 있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우리가 먼저 눈치채고 왔을 뿐이다. 그리고 상황은 종료되었고."

"쉐이드?"

"넌 도망친 엘프들의 말을 듣고 바로 온 모앙이군."

"그래. 그런데 어떻게 너희들이 나보다 더 빨리 온 거지?"

"우리 암살자들은 서로 멀리서도 소통하는데 사용하는 호루라기를 갖고 있다. 그 소리를 들고 일제히 온 것이지."

"위스퍼는? 위스퍼는 어딨어?"

"나르샤님!"

나르샤는 쉐이드의 말을 듣고 곧바로 위스퍼를 찾았고 위스퍼는 나르샤의 목소리에 모습을 드러내어 그녀에게 달려갔다.

"위스퍼!"

나르샤는 위스퍼를 보고 품 안에 껴안으며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주었다.

"정말 다행이야. 다친 곳이 없어 보이네."

"예. 이분들 덕분에 살았어요. 하지만 몇 명의 엘프가..."

"그래..."

나르샤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이 조용히 위스퍼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위스퍼는 나르샤의 따뜻한 품에 계속 있고 싶다는 열망을 느끼다가 번쩍 든 생각에 나르샤를 바라보았다.

"아! 나르샤님! 치료마법 좀 사용해주시면 안 될까요?"

"왜? 어디 다쳤어?"

"제가 아니고 저를 감싸주시다가 다친 분이 계시거든요."

"뭐? 누군데?"

"저를 따라오세요."

위스퍼는 나르샤의 손목을 부여잡고 이츠가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이츠는 다가오는 나르샤의 모습에 뭔가 복잡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르샤의 시선을 피했다.

"이츠님. 치료를 도와주실 분을 데려왔어요."

"으응...알고 있어."

"이 녀석이였어?"

"어? 나르샤님 알고 있는 분이세요?"

"잘 알지. 같은 곳에서 왔으니까. 악연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렇지?"

"그...렇지."

이츠는 나르샤와 좋은 인연이 있다고 볼 수 없었다. 아니, 암살자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첫 만남이 최악이었기 때문이었다.

'암살자와 암살 대상. 거기다가 실패. 괴물 같은 엘프년이라고 생각했지.'

그 이후로 임무나 일 때문에 얼굴을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대화를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츠는 과거의 일 때문에 나르샤가 껄끄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알고 하는 것일까? 나르샤가 오히려 이츠에게 다가와서 치료 마법을 걸어주었다.

"리커버리."

7서클의 고급 치유 마법. 고서클의 치유 마법답게 화상으로 심하게 다친 등이 한순간에 원래 상태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츠는 리커버리 마법으로 인해서 고통도 사라지고 완전히 멀쩡해진 것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나르샤를 바라봤다.

"...왜?"

"왜 치료해주냐고?"

나르샤의 말에 이츠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르샤는 그런 이츠의 행동에 씨익 웃고 위스퍼의 머리에 손을 올려두며 얘기했다.

"이 녀석을 살려줬으니까. 그리고 첫 만남이 그랬다고 해도 나는 너희들을 싫어하지 않아. 너희들이 이제는 달리 행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이츠는 나르샤의 말에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옆에서 부축해주던 암살자에게서 떨어지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나르샤에게 얘기했다.

"한순간의 변덕일 수도 있으니 너무 믿지는 말라고."

"큭. 귀여운 녀석."

귀엽다는 말에 이츠는 순간 발끈했지만 자신을 다스리며 참았다. 그리고 그사이에 한 명의 인물이 멀리서 날아오고 있었고 그것을 본 쉐이드가 얘기했다.

"이미 상황은 끝났다."

"그래? 이래 봬도 듣자마자 온 건데."

공중에서 날아오면 온 인물은 바로 듀로크였다. 듀로크는 주변을 한번 훑어보고 대충 어떤 상황이 일어났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사상자는 없겠지?"

"겨우 30여 마리다. 있을 리가 없지."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이 귀를 찢는 소리는 뭐야? 고문이라도 하냐?"

"비슷하다. 이 녀석들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서 실험 좀 하고 있지."

"그래? 알아본 후에 알려줘."

"그러도록 하지."

"그런데 엘프들의 피해가 작아 보이는데 누가 막아준 거냐?"

"이츠 녀석이 시간을 벌어줬다."

"이츠가? 흐으음...칭찬해줘야겠는데?"

"그렇지?"

"그래. 이걸로 엘프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모습이 많이 달라질 것 같으니까."

쉐이드는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한 듀로크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다가오는 3명의 S급 암살자들의 모습에 입을 열었다.

"다 알아봤나?"

S급 암살자들은 온몸이 피 칠갑으로 되어있었고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마물들을 해체하였는지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예!"

"약점이 어떻게 되지?"

"마물들의 피부는 A급 암살자 이상이 되어야 피해를 줄 수 있을만큼 단단했습니다. 하지만 눈과 코, 그리고 정수리 부분은 마나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연약했습니다. 더구나 독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독에?"

"예. 독을 피부에 뿌리는 것은 효과가 없었지만 입과 호흡을 통한 섭취에는 면역이 없었습니다."

"독이라...좋은 정보군. 그렇다면 암살자들에게 이렇게 전해라."

"예!"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무기에 독을 듬뿍 바르도록. 마물들과 싸울 때는 눈, 코, 정수리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라고."

"알겠습니다!"

"너희들도 수고했으니 씻고 난 후에 전해라."

"예!"

S급 암살자들은 그 말을 끝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듀로크는 그런 암살자의 모습에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우~ 굉장한데? 독에 약하다는 정보는 나도 몰랐는데."

"정보수집은 암살자의 특기 중 하나이다."

"그래? 내가 몰라봐서 미안하네."

듀로크는 어깨를 으쓱하며 농담을 했고 쉐이드는 한번 피식 웃으며 넘어갔다. 그렇게 마물들의 기습공격은 이츠와 암살자들의 활약 때문에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듀로크의 예상대로 암살자들이 마물들을 처리해주고 이츠 덕분에 엘프들의 피해가 적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엘프들이 보는 시선이 확 달라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물과 식량도 당연하다는 듯이 나눠주었고 보급 준비도 빠르게 진행되어갔다. 마을 촌장인 스윈드는 위스퍼에게 얘기를 듣고 이츠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극존칭을 해주기 시작했다. 이츠는 그런 대우를 처음 받아봐서 그런지 어색해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물과 식량을 섭취하고 약 3시간 뒤에 스윈드는 준비가 모두 끝났다고 듀로크에게 얘기했다.

"윌나스 마을에 연락은 끝난 건가?"

"예. 제가 미리 얘기해두었습니다. 거기다 여기에 있었던 일도 얘기했으니 엘프들도 잘 대해줄 겁니다."

좀 전의 일이 있어서 그런지 스윈드는 듀로크에게도 존칭을 해주고 있었다.

"보급품 준비도 끝난 건가?"

"예. 저기 마법진에 미리 준비시켜두었습니다."

스윈드가 가르키는 곳에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었는데 보급품만으로 자리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마법진의 크기가 작았다.

"마법진이 너무 작군. 내가 조정 좀 하겠다."

"예?"

듀로크는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에 손을 둔 채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마법진이 듀로크의 마나에 반응하여 빛을 내기 시작했고 크기를 한순간에 키워나갔다. 듀로크가 마나를 불어넣는 것을 끝마쳤을 때는 원래 크기의 수십 배 이상 커질 정도로 엄청나게 거대한 마법진으로 변해있었다.

"놀,놀랍군요. 이런 방법이 있을 줄이야."

"이건 별거 아니에요. 이 녀석의 진심을 보면 놀라서 쓰러질 걸요?"

스윈드는 듀로크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에 말을 더듬었는데 옆에 있는 나르샤가 거들어서 얘기했다.

"그정도...인가?"

"그럼요."

나르샤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스윈드는 알 수 있었고 과연 어느 정도인지 상상도 불가능했다.

"그럼 슬슬 가도록 하지. 모여라."

먼저 듀로크가 마법진의 중심으로 걸어갔고 그 뒤를 클레아와 맥이 뒤따라갔다. 그리고 이어서 쉐이드가 앞장서면서 S급 암살자들이 뒤따라갔고 이어서 나머지 암살자들이 마법진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때 목소리를 높여서 얘기하는 이가 있었다.

"잠깐만요!"

자동으로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고 스윈드 또한 시선이 돌아갔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딸인 위스퍼라는 것을 보고 스윈드는 조금 놀라워했다.

"위스퍼?"

"아버지. 죄송해요. 저는 이분들을 따라가려고 해요."

"뭐?!"

스윈드는 위스퍼의 말에 매우 놀라워했다.

"이분들은 전쟁 한복판으로 가는 이들이다! 그런 위험한 곳에 가겠다고? 지금?"

"예."

위스퍼의 완곡한 눈빛에 스윈드는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딸은 현명한 대신 한번 자신이 정한 것은 눈에 칼이 들어와도 번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유라도 듣자. 왜 갑자기 가겠다는 거니?"

"그게...신경 쓰이는 이가 있어서요."

위스퍼는 스윈드의 물음에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시선을 돌리고 손가락을 주물럭거렸다. 하지만 스윈드는 위스퍼의 시선이 누구에게 쏠려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이냐?"

"...예."

"후우...그 선택이 얼마나 힘든 선택인지 알고 있느냐?"

"알고 있어요."

한 남자에게 눈에 멀어서 딸이 전쟁 한복판으로 간다. 어떤 아버지든 간에 딸을 만류할 것이 분명했다. 스윈드도 물론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스윈드는 딸을 믿었다. 현명한 눈을 가지고 있는 위스퍼를 믿기로 하였다.

"후우...알겠다. 단, 약속해라. 무조건 다치지 말고 돌아오겠다고."

"예. 약속할게요."

"그래."

스윈드는 떠나가는 딸을 한번 포옹하였고 위스퍼는 신경 쓰인다고 하는 이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츠는 자신 앞에 오는 위스퍼를 보고 상당히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다른 암살자들은 그런 이츠를 보고 휘파람을 불며 옆에서 부추겼다.

"휘이익! 부럽다!"

"엘프가 여친이라니! 이런 행운아가 어딨냐?!"

"사겨라! 사겨라!"

암살자들은 마치 아이들처럼 순진하게 이츠를 놀렸고 이츠는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 이 자식들아! 내 밑으로 다 닥쳐!"

이츠의 말에 암살자들이 조용해졌고 그제야 이츠가 헛기침을 하고 위스퍼에게 얘기했다.

"나를 따라온다고?"

"예."

"왜? 너를 구해줘서 은혜를 갚으려고?"

"그런 것도 있지만...신경 쓰여서요."

"신경 쓰인다고 전쟁 한복판에 오는 건 미친년이라고 생각되는데."

"이츠님도 정상적인 분은 아니시잖아요."

"...이거 한 방 먹었는걸?"

이츠는 엘프인 위스퍼가 그런 말을 할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으음...솔직히 얘기할게. 어여쁜 엘프가 나를 따라다닌다고 하는데 그 기회를 차버릴 정도로 나는 바보가 아니야. 나도 어느 정도 강한 편이니까 너 하나 정도는 지킬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가는 곳은 전장이야. 너를 지키지 못할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 확신이 있어?"

"예."

"나는 성격도 나쁘고 사람 죽이는 일을 해서 그런지 남들과 조금 달라. 엘프인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어. 그래도 상관없어?"

"예."

"후우...나는 상관인 쉐이드님의 명령을 받고 움직일 경우가 많아. 그럴 경우에는 너를 보호할 수 없어서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켜야 해."

"괜찮아요. 저도 제 몸은 제가 알아서 지킬 테니까요."

"그렇게 얘기한다면..."

이츠는 위스퍼의 확고한 의지에 고개를 끄덕인 후에 쉐이드에게 다가갔다.

"뭐냐?"

"허락을 받고 싶습니다."

"저 엘프가 따라다녀도 괜찮다는?"

"예."

이츠는 쉐이드가 허락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쉐이드의 성격상 이런 일은 대부분 안된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은 예상 외로 흘러갔다.

"상관없다."

"부디 다시 한번...예?"

"상관없다고 했다. 임무에 지장이 가지 않게 행동하도록."

허락할줄 몰랐던 이츠는 쉐이드의 말에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런 이츠를 향해 S급 암살자들이 달라붙어서 축하해주기 시작했다.

"이츠 대단할걸? 엘프를 꼬시다니 말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말을 걸걸. 그러면 미남자가 나한테 올 수도 있잖아?"

"그럴 일은 없으니까 걱정 마라. 이 게이들아."

이츠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 모양인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고 쉐이드는 조용히 마법진의 중심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듀로크가 쉐이드에게 얘기했다.

"용케 허락해줬네?"

"의외인가?"

"의외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얘기해줄게."

듀로크도 쉐이드의 성격상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다.

"저 녀석들도 이젠 인간다운 삶을 살았으면 했다."

"헤에~ 그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네."

"지금까지는 살아남는데 주력했으니까. 하지만 왕국에 속하면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지. 그럼 지금까지 고생했던 보상으로 조금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도 되지 않겠나?"

쉐이드는 여전히 옥신각신하는 S급 암살자들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저 엘프를 지킬 수 있을지는 저 녀석의 손에 달려있겠지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걸? 이츠뿐만 아니라 나르샤도 똑같은 생각일 것 같으니까."

듀로크는 위스퍼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나르샤를 바라보았다.

"뭐...그럴 여유가 남아있지 않는다면 모를까."

"그럴 가능성이 있나?"

"모르지. 하지만 언제든지 생각은 해놔야 해. 절대적인 것은 없으니까."

듀로크는 그 말을 끝으로 텔레포트 마법진의 이동을 빠르게 진행하였다. 위스퍼로 인해서 잠깐 중지되었지만 암살자들도 마법진에 모두 올라섰고 나르샤와 위스퍼까지 오면서 준비는 모두 끝낼 수 있었다.

"그럼 지금 바로 갈 테니 연락해둬라."

"예. 그쪽도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잘 갔다 올게요."

"그래. 무조건 다치지 말아야 한다."

듀로크는 다시 한 번 모든 인원들이 마법진 위에 올라선 것을 확인한 후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진이 빛을 내었고 듀로크가 입을 열어 얘기했다.

"텔레포트."

그러자 보급은 물론이고 수백 명이 넘는 인원이 일제히 텔레포트하면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게 원정대는 조금씩 전쟁의 중심터로 이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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