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움직이는 듀로크(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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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움직이는 듀로크(13)
【으윽...아프잖아?】
잭퍼는 날아가면서 등에 받은 충격 때문에 몸이 삐거덕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잭퍼는 데스나이트라는 언데드의 몸을 가지고 있다. 웬만한 충격에는 죽지 않을뿐더러 마력만 있으면 언제든지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더구나 지금 라마르는 죽음의 도시로 변하면서 마력이 충만하게 깔려있었다.
그 덕분에 통증은 빠르게 사라져 갔고 잭퍼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양검을 한 번씩 휘둘러봤다.
【역시 언데드의 몸은 편리하네. 베는 맛은 없지만 말야.】
쿵! 쿵!
잭퍼는 한숨을 쉬기도 전에 멀리서 멧돼지처럼 달려오는 그란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연기로 되어있는 얼굴이 미소를 지으려고 하는 것처럼 흔들렸고 잭퍼는 양검을 들어 올렸다.
【킥킥. 어디 피터지는 싸움을 해볼까?】
잭퍼는 아직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그란을 보고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고민하였다. 그리고 좀 전에 그란의 힘을 느껴본 잭퍼는 힘싸움을 하면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스피드 싸움으로 나아가야겠다고 결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저 저구라면 스피드가 빨라 보이지는 않지.】
거기다 자신의 검은 상처를 입히면 치료하기도 힘들었다. 그렇기에 잭퍼는 스피드 싸움으로 가서 조금씩 상처를 입혀 고기를 발라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결정했으니 바로 해볼...】
잭퍼는 아직 십여 미터 떨어진 그란을 보고 먼저 앞으로 치고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순간 그란이 발로 땅을 박찼고 동시에 십여 미터의 거리를 제로로 줄였다.
【뭐,뭐야?!】
그 거리를 한 번에 줄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잭퍼는 미처 반응하지 못해서 그란의 도끼를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란은 돌진력을 그대로 도끼에 실어서 바닥부터 쓸며 위로 휘둘렀고 잭퍼는 무의식적으로 양 검을 교차하며 자신의 몸을 막았다.
쾅!!
【우욱!】
양 검으로 도끼를 막는데 성공했지만 충격량까지 무효화시키지 못하여 잭퍼의 몸이 몇 미터 위로 떠버렸다. 그리고 그 충격을 벗어나기도 전에 제2차 공격이 들어왔다.
"취이익!"
이번에는 위에서 도끼로 내려찍기 공격이였는데 잭퍼는 가까스로 피하는데 성공하였다. 도끼가 바닥을 강타하면서 바닥에 있는 흙이 미친 듯이 튀었고 드디어 잭퍼가 공격을 취하려고 했다.
하지만 잭퍼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란의 스피드가 느릴 거라고 예상했던 것이었다.
【이 오크...빠르잖아?】
어떻게 저런 거구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스피드가 나오는지 잭퍼는 믿을 수 없었다. 결국 잭퍼는 그란의 무수한 도끼질을 막거나 피하는데 급급했다. 그러면서 잭퍼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갑옷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취이익~ 수비만 할 건가?"
그란은 수비만 하는 잭퍼를 향해 아쉽다는 어투로 얘기했는데 잭퍼는 그런 그란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킥. 그럴 리가 없잖아?】
쾅!
"취이익?"
처음으로 그란의 도끼가 허공을 가르며 바닥에 찍혔다. 그리고 이어서 그란이 도끼를 휘둘렀는데 마치 어딜 휘두를지 아는 것처럼 잭퍼는 여유롭게 피했다.
【스피드도 빠르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이제는 안 통한다고.】
잭퍼의 말대로 그란이 계속 도끼를 휘둘렀는데 잭퍼는 조금씩 움직이면서 그란의 공격을 모두 피했다. 그리고 그란이 도끼를 크게 휘두르는 순간 잭퍼가 움직였다.
서걱.
"취이익?"
【오크도 베는 맛은 다르지 않는걸?】
어느새 갑옷의 틈새 사이로 보이는 어깨를 베고 지나간 잭퍼였다. 그리고 잭퍼의 검에 베인 어깨는 검게 변해가면서 핏줄기를 내보내고 있었다.
【나의 강점은 검과 신체능력이 아니라고. 바로 예지에 가까운 예측능력이지.】
잭퍼 1명에게 수천 명 이상 죽은 것은 검과 신체능력도 크게 작용했지만 잭퍼에게 특수한 능력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예지에 가까운 예측능력이었다.
상대방의 공격을 몇 번 보면 그 힘과 스피드, 그리고 패턴을 기억하여 다음 공격이 어디서 어떻게 올지 알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예상외로 그란의 스피드가 빠르면서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모두 파악하는데 성공한 잭퍼였다.
【상당히 많이 맞았지만 어차피 이런 상처는 치료되니까.】
잭퍼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갑옷도 어느새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죽음의 도시로 변한 라마르에 퍼져있는 마력을 흡수하면서 자동으로 치료되고 있는 것이다.
【네 공격은 이제 통하지 않고 너는 나한테 상처하나 입을 때마다 약해지겠지. 이 뒤는 어떻게 될지 안 봐도 알겠지?】
"취이익~ 과연 그럴까?"
【뭐?!】
"흐으읍!"
그란이 힘을 주는 소리를 내자 온몸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잭퍼의 검에 베인 상처 주변 근육이 억지로 상처를 막아버리면서 피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
"취이익~ 힘으로 하면 뭐든지 된다!"
【...진짜냐?】
잭퍼는 무식한 그란의 행동에 말을 잇지 못했다. 수천 명을 벤 잭퍼조차 이렇게 행동하는 이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킥킥. 재밌어. 어디 상처가 수십 개로 늘어나도 그럴 수 있나 볼까?】
"취이익! 그전에 네 머리통을 부수겠다!"
그란이 돌진하며 한순간 거리를 줄였고 잭퍼는 양 검을 들며 그란을 맞이했다.
【이제 안 통한다니까 그러네.】
수십, 수백 합의 공방이 지나고 잭퍼는 전과 별반 차이가 없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란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수십 개가 나 있었고 그중 절반 이상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란의 힘과 스피드는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고 예측하고 있는데도 아찔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어떤 상대보다도 너는 끈질기고 강하다.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야. 하지만 그것도 오래 남지 않았지.】
불사신이 아닌 이상 끝은 존재한다는 것을 잭퍼는 알고 있었고 이대로 시간만 끌어도 자신의 승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잭퍼는 그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너도 참 무식하다.】
"취이익?"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똑같이 덤비는게. 한편으로는 감탄스러워. 끝없는 체력과 힘, 스피드. 내가 아니였으면 아마 상대도 못 했겠지.】
"취이익~ 오크들은 무식하다. 그리고 똑똑하지 않다."
【당사자도 알고 있어서 다행이군.】
"취이익~ 나도 똑같이 똑똑하지 않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 무슨 시간?】
"취이익~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을 시간."
【이 상황을 타개한다고?...킥킥킥! 오크들도 농담할 줄은 몰랐는데?! 이거 참 걸작이군!】
잭퍼의 머리를 구성하고 있는 검은 연기가 흔들리는 것이 웃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란은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얘기했다.
"취이익~ 너와 싸우는 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떠올렸다. 너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웃기는군. 어디 한번 해보시지?】
"취이익~ 그럴 예정이다."
그란은 돌진하며 잭퍼와의 거리를 줄였다. 잭퍼는 어느 때와 똑같이 돌진해오는 그란을 보며 비웃었다. 생각한게 그거냐며, 역시 오크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서로 간의 거리가 5미터 정도 남았을 때 그란이 이상행동에 나섰다. 바로 도끼째로 잭퍼에게 던지는 것이었다.
【뭐,뭐야?!】
잭퍼는 화들짝 놀라워하며 몸을 옆으로 날린 끝에 도끼를 겨우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그란 몸 자체였다.
"취이이익!!"
쾅!! 뿌뜨득!
【커어어억!!】
그란은 돌진해오던 힘을 그래도 주먹에 실어서 잭퍼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러자 복부에 있는 잭퍼의 갑옷이 산산조각 났고 동시에 잭퍼가 수십 미터 날아갔다. 잭퍼는 땅에 박히면서 엄청난 충격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멀리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또 엄청난 충격이 휩쓸었다.
쾅!!
【크어억!】
그란의 무릎에 옆구리가 강타당하면서 갑옷이 부러졌다. 갑옷의 틈새로 자신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잭퍼는 양 검을 휘둘렀다.
【이 오크 자식이 감히!!】
하지만 그란은 검을 피하고 다시 한 번 발길질로 잭퍼의 어깨를 타격했고 갑옷이 또 산산조각났다.
【크아아아악!!】
다시 한 번 갑옷의 구멍을 통해서 자신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잭퍼는 진심으로 위험하다고 느꼈다.
【말,말도 안 돼...내가 맞아서 죽는다고?! 천하의 살인귀라고 불린 잭퍼인 내가?!】
잭퍼는 분노를 느끼며 양손에 쥔 검을 들고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그란의 모습을 보고 잭퍼는 순간 몸이 얼어버렸다.
【.....】
온몸에 피칠갑을 하며 광인처럼 붉게 뜬 눈. 무식하게 커다란 도끼를 두손으로 들고 마치 장작을 패는 것과 같은 자세. 먹잇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흥분한 숨결. 그것을 보고 그란의 다음 행동을 잭퍼는 예측능력이 아니여도 알 수 있었다.
【안,안 돼!】
"취이익~ 이만 가라."
【웃,웃기지 마라!】
그란은 그대로 도끼를 있는 힘껏 내리찍었고 잭퍼는 모든 힘을 검에 불어넣고 교차하면서 자신의 몸을 방어했다. 그리고 이어서 도끼와 잭퍼의 검이 부딪혔고 한순간 불을 뿜어내었다.
【이이익!!】
잭퍼는 그란의 도끼에 버티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란이 숨을 한번 몰아쉬고 소리를 지르자 그 순간 결판이 났다.
"취이이익!!"
콰쾅! 콰지직!
도끼가 잭퍼의 양검을 산산조각내면서 지나갔고 검이 부서지면서 수많은 원념들이 검에서 해방되어 목소리를 내뱉었다. 수십, 수백, 수천의 원념들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잭퍼는 자신의 검이 부서졌다는 것에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검,검이?!】
하지만 그란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취이이익!!"
콰드득! 서걱!
양검을 부수고 남은 힘을 사용해서 휘두른 그란의 도끼가 갑옷까지 완벽하게 이등분을 내고 지나갔다.
【말도...안 돼....】
잭퍼는 자신이 당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 모양인지 몸을 구성하고 있던 검은 연기가 사라지는데도 소리를 질렀다.
【내,내가 오크 따위에게 졌다고?! 나는 더 많은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단 말이다!!】
잭퍼는 마치 양초가 마지막에 불타오르는 것처럼 몸을 구성하고 있는 검은 연기를 폭발적으로 뿜어내면서 부러진 양검을 들어서 그란을 향해 찔렀다. 하지만 그란은 잭퍼의 검을 피하지 않고 맞아주었고 어깨에 찍혀 들어갔다. 하지만 부러진 양검의 날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이어서 그란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두 손으로 잭퍼의 갑옷을 부여잡았다.
"취이익~ 내 승리다."
그란이 두 손에 힘을 주어서 갑옷을 양쪽으로 벌렸고 그러면서 안 그래도 이등분된 갑옷이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잭퍼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의식이 아득해졌다.
【으아아아악!! 내,내가 이런 곳에서!!】
"취이익~ 내 이름은 그란. 네게 두 번째 죽음을 주는 오크다. 기억해라."
【크아아아악!!】
잭퍼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검은 연기가 모두 사라지면서 결국 잭퍼의 존재는 사라졌다. 그란은 어깨에 박혀있는 두 검을 뽑아내고 피가 철철 나는 몸을 이끌고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취이익~ 그럼 다시 싸우러 가볼까?"
수십 개의 상처를 입은 자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팔팔하게 그란은 전쟁터를 향해 이동했고 남아있는 갑옷만이 잭퍼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남기고 있었다.
【후우우...일제히 발사.】
라스틴의 말에 50여 명의 리치들이 일제히 마법을 사용했다. 그 마법의 목표는 바로 벨리온. 벨리온은 수많은 마법이 오는 것을 보고 빠르게 몸을 움직여서 옆으로 피했다.
콰콰콰쾅!!
벨리온은 아무리 자신이라도 저 많은 마법을 직통으로 맞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벨리온이 리치들보다 더 유리한 장점이 있었는데 바로 신체능력이였다.
"마법사들이 접근전에 약하다는 것은 진리지."
리치들의 무리에 들어간 벨리온은 한 리치의 목을 비틀어서 얼굴과 몸을 분리시켰다. 하지만 리치답게 얼굴이 바닥에 떨어졌는데도 죽지 않고 발버둥 쳤고 벨리온은 그 리치를 부여잡은 채로 다른 리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리치 한 마리를 부여잡고 달려든 이유는 같은 편이 있으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벨리온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다른 리치들이 일제히 마나를 끌어 올리면서 자신을 향해 조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들?!"
수십 개의 마법이 벨리온이 있는 곳을 타격했고 인질로 잡고 있던 리치를 빠르게 버리고 튄 덕분에 벨리온은 피해 없이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질로 잡혀있던 리치는 수십 개의 마법을 받고 재조차 남기지 못하면서 사라졌다.
"어이. 동료가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는 건가?"
【후우우...동료? 이 리치들은 모두 내가....사용하는 병사일뿐이다. 소모품이지.】
"그렇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군."
【후우우...그리고 촐랑촐랑 움직이지....말아주겠나? 시간을 끌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라스틴이 손을 들자 리치들이 일제히 손에서 마법진을 그려내었다. 그러자 마법진에서 여러개의 촉수들이 나와서 벨리온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벨리온은 그 촉수를 보고 뒤로 빠졌지만 수십 개의 마법진에서 나온 촉수들은 끝까지 벨리온을 쫓아갔다.
【후우우...이 촉수는...무한히 증식하는 촉수지. 아무리 도망치더라도....끝까지 네 녀석을 쫒아갈 것이다.】
그 말대로 벨리온이 뒤로 빠지는데도 촉수는 끝까지 그를 쫓아갔다. 그리고 수십 개의 촉수가 이내 벨리온을 감쌌고 그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켰다. 벨리온이 움직이지 못하고 촉수에 잡힌 것을 본 라스틴은 그에게 걸어가면서 얘기했다.
【후우우...마지막으로 묻겠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수십 명의 리치들이 벨리온을 향해 조준하고 명령에 맞혀서 언제든지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절체절명의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벨리온은 웃음을 터트렸다.
"킥킥킥. 푸하하핫!"
【후우우...뭐가...웃기지?】
"킥킥킥. 그야 웃기지. 웃기지 않을 리가 없잖아?"
【후우우...실성한 건가?】
"실성? 마족이? 농담도 잘하는군."
【후우우...그렇다면 왜 웃는 거지?】
"궁금해? 가르쳐주지.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후우우...라스틴이다.】
"라스틴. 너는 마계에 언제부터 있었지?"
【후우우...그게 무슨?】
"됐고 말해봐."
라스틴은 갑자기 시간을 끌며 얘기하는 벨리온을 보고 무슨 속셈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벨리온은 지금 수많은 촉수에 묶여서 꼼짝없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수십 명의 리치들이 언제든지 마법을 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기에 대화를 나눠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라스틴이였다.
【후우우...500년 정도 됐다.】
"500년? 상당히 오래됐네. 그렇다면...마족인 나는 마계에 얼마나 있었을까?"
【후우우...뭐라고?】
"마족인 나는 마계에 얼마나 있었겠냐고. 너는 500년 정도 있었다고 했지. 그러면 나는 너의 몇 배는 마계에 있지 않았겠어?"
【후우우...그게 무슨 상관이지?】
"그게 상관이 왜 없냐? 나는 너보다 마계에 대한 것들을 더 잘 알고 있지. 그리고 그건 네 패배의 원인이 될 것이다."
【후우우...패배? 그렇게 잡혀서 아무것도 못 하는 녀석한테 들어서 설득력이 있는 말은 아니군.】
"아? 이거?"
벨리온은 자신의 몸을 잡고 있는 촉수들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
【뭐?!】
라스틴은 자신이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촉수들이 벨리온을 놓아주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벨리온은 땅에 착지한 후에 몸을 한번씩 풀어주며 얘기했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어,어떻게?!...소환자가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너는 마계에 겨.우. 500년 있을 뿐이야. 수천 년을 있었던 나와 마계에 대한 지식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
벨리온은 가만히 멈추어 있는 촉수들을 손으로 찌르며 얘기했다.
"이 촉수는 원래 프로모크라는 생물의 일부이지. 프로모크는 마계의 생물체 중 상당히 강한 측에 속하지만 온순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함부로 남을 공격하지 않지. 그리고 자신보다 강한 자를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그에게 복종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벨리온은 검은 기운을 몸에서 뿜어내었고 그러자 촉수들이 움찔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처럼."
딱!
벨리온이 손으로 소리를 내자 촉수들이 일제히 자신을 소환한 리치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리치들은 소환마법진을 없애거나 촉수에 대항하며 마법을 사용했지만 촉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들을 향해 다가갔다.
"거기다 리치의 핵은 총 3개. 가슴 ,머리 ,복부 정중앙에 존재하지. 3개를 모두 파괴해야만 리치가 쓰러진다는 말씀."
벨리온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촉수들이 리치들을 감싸면서 정확히 가슴과 머리, 그리고 복부를 으스러트렸다. 그러자 리치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뼈가 가루가 되면서 검은 연기로 변해 산화되었다. 50여 명의 리치들이 촉수에게 산화되는데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말,말도 안 돼...내,내 리치들이...이렇게 한순간에?!】
수십 명의 리치들이 그야말로 한순간에 산화되어 사라졌다. 라스틴은 그런 광경을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는지 뼈만 남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드디어 1대1이 되었네? 그럼 이제 한번 싸워볼까? 너의 특기인 흑마법을 사용해보라고. 아, 참고로 나는 흑마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 과연 내가 알지 못하는 흑마법이 있을까? 그것도 궁금하네."
벨리온이 라스틴에게 다가갔고 라스틴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뭐야? 왜 도망치려고 해? 마족과 한번 싸워보고 싶다고 했잖아? 겨우 이것밖에 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
【으으으...스켈레톤 소환!!】
미리 만들어놓은 스켈레톤들이 소환되면서 벨리온을 향해 달려들었다. 강화되어 철보다 단단한 강도를 가진 스켈레톤들이었다. 하지만 벨리온에게는 한순간의 시간도 끌지 못했다.
"어딜."
벨리온이 손 한번 휘두르자 스켈레톤들이 일제히 가루가 되어 쓰러졌다. 스켈레톤에게 걸려있는 라스틴의 마법이 해제되어 원래 상태로 되돌린 것이다. 그리고 벨리온은 도망치는 라스틴과의 거리를 한순간에 줄이고 그의 뒤에서 속삭였다.
"도망치려고?"
【다,다크 볼!】
검은 화염의 구체들이 벨리온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벨리온은 검은 연기로 자신을 둘러쌓으면서 화염의 구체들을 무시하고 라스틴에게 다가갔고 구체들은 벨리온의 검은 연기에 산화되어 사라졌다.
【컥!】
손에 목을 부여 잡힌 라스틴은 신음소리를 내었고 벨리온은 손을 뒤로 뺀 다음에 라스틴의 복부를 향해 찔렀다.
【크아아아악!!】
"우선...하나."
벨리온은 복부에서 리치의 핵을 맡고 있는 구슬을 빼내었고 힘을 주어 부쉈다. 그리고 이어서 다시 가슴의 중심을 향해 손을 찔렀다.
"둘."
【으아아악!!】
라스틴은 벌써 3개의 핵 중 2개가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생명력이 산화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라스틴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난,난 여기서 죽으면 안 되는 인물이다!!】
"걱정 마. 빠르게 끝내줄 테니까."
마지막으로 벨리온이 손을 머리를 향해 찔렀고 라스틴은 안간힘을 다해서 마법을 사용했다.
【텔,텔레포트!!】
텔레포트를 사용하면서 라스틴의 몸은 그대로 남아있으면서 머리만 사라졌다. 그리고 벨리온에게 잡혀 있던 몸이 이어서 가루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군. 머리만 이동하다니. 어디 보자...이곳에는 없는 모양인데?"
벨리온은 라스틴이 완전히 먼 곳으로 텔레포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쯧. 죽이지 못한 것이 영 찝찝하지만...뭐. 어떻게든 되겠지?"
벨리온은 완전히 처리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았지만 이내 다른 전투에 발걸음을 이동하였다.
어두운 지하실. 그곳에는 다양한 실험도구와 함께 중앙에는 하나의 마법진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고 빛이 사라지면서 하나의 물체가 나타났다.
【커억!】
마법진 위에 나타난 것은 단 하나의 해골머리였다. 그 해골머리는 바로 겨우겨우 텔레포트에 성공한 라스틴이였다.
【크으으윽...몸이...】
3개의 핵 중 2개의 핵이 부서져서 얼굴이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려고 하고 있었다.
【몸이...사라지기 전에...준비해두었던...인형을...】
라스틴은 혹시나 해서 몸을 옮겨둘 인형을 준비해두었다. 하지만 문제는 몸을 옮기는데 상당한 준비와 마력이 필요한데 지금 머리 하나만 남은 라스틴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젠장...어떻게 하지?】
점점 몸이 사라지는 다급한 순간에 라스틴은 머리를 굴려서 방안을 모색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라스틴이 절망을 느끼고 있을 때 지하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누,누구?!】
라스틴은 자신의 연구실 존재를 알아차린 인물을 향해 힘겹게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인물이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라스틴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라,라자드!】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은 바로 라자드였다. 라스틴은 라자드라면 자신의 몸을 옮겨주는 작업을 완벽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신이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미안하지만 나를...도와주지 않겠나?】
라자드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라스틴이 옮겨갈 인형을 향해 걸어갔다.
【그,그거라네...내 몸을 옮길 매개체...옮기는 것을 도와주지...않겠나?】
라스틴은 간절하게 라자드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하지만 라자드는 인형을 바라볼 뿐 아무런 대답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빨,빨리...시간이 없네...】
라스틴이 구걸을 하자 라자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스틴은 한숨을 쉬며 라자드의 행동을 지켜봤는데 그의 행동을 라스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네...뭐하는 건가?】
라자드는 마법진을 그리는 것이 아니고 손을 들고 있었다. 왜 마법진을 그리지 않고 손을 드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라자드의 다음 행동을 본 라스틴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뭐하는 거야!!】
푸화아악!!
라자드의 손이 정확히 인형의 심장을 관통했고 인형의 몸이 펄떡펄떡 뛰면서 반응하다가 이내 생명활동을 멈추었다. 라스틴은 자신이 준비한 인형이 죽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야?! 미친 거냐?!】
라자드는 인형에게서 나온 피로 온몸을 적셨는데 조금씩 라스틴에게 다가와서 한손으로 라스틴의 머리를 들었다.
"뭐하는 건지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무,무슨?!】
"난 분명히 너와 거래를 했다. 그런데 너는 거래를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고 이렇게 도망을 쳤지. 너야말로 뭐하는 거지?"
【그,그건...여기서 다시 정비를 하고 가려는 생각이였다! 결코 도망치려고 한게...】
"아니. 너는 도망을 쳤다. 마족에게 쫄아서 도망쳤지. 그리고 한번 공포를 맞본 이는 다시 기회를 줘도 똑같은 결과를 유출해내지. 그러니 너는 필요 없다."
【뭐,뭐?!】
"너는 그저 내게 흡수되어 힘을 보충해주는 것밖에 남은 가치가 없다. 이만 사라져라."
라자드는 손에 힘을 줘서 라스틴의 머리를 박살냈고 라스틴이 단발마를 질렀다.
【크아아악!! 네,네놈!!】
라스틴의 머리가 으스러지면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검은 연기는 고스란히 라자드의 몸에 흡수되었고 라자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인도 내 기대를 져버리는군. 내 밑에 있는 녀석들을 왜 다 이 모양이지? 어차피 한 마리의 말에 불과하지만."
라자드는 감시의 눈을 통해서 라마르의 상황을 보며 얘기했다.
"마지막 목숨이라도 불태워서 네 존재의 의미를 증명하도록 해라. 세인."
라자드가 그 말을 끝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라자드가 떠나자마자 지하실에 불이 붙어서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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