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위기에 처한 밀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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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위기에 처한 밀런(4)
"미안하지만 약속했던 시간이 다 지났군."
드리트는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레스타드는 그런 드리트를 향해 검으로 지목하며 얘기했다.
"도망치는 것이냐?"
"나도 당신과의 결투를 끝까지 하고 싶다.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은 지키는 신념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이 전쟁은 나 혼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여서 내 고집으로도 이 이상은 힘들다."
드리트는 그 말을 끝으로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기 전에 바르스의 어깨에 한 손을 올려두며 얘기했다.
"네게 맡기겠다. 철저히 부수도록."
"예!"
드리트의 말을 들은 바르스는 자랑스러워하며 그를 바라보았고 드리트는 완전히 숲 속으로 들어가면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바르스는 눈앞에 있는 레스타드와 타르시스, 그리고 천여 명의 엘프들을 향해 얘기했다.
"저도 지금까지 같이 지낸 정으로서 기회는 드리겠습니다. 항복하십쇼. 그러면 제가 어떻게든 사정해서 목숨만은 살려드리겠습니다."
"뭐?!"
"이 잡것이 뭐라고 하는 거냐?!"
엘프들이 바르스의 말에 또다시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런 욕지거리도 레스타드의 목소리에 조용해졌다.
"조용!"
마나가 담긴 목소리는 엘프들을 진정시켰고 타르시스는 치료마법으로 레스타드의 왼쪽 어깨를 치료하면서 레스타드의 목소리에 감탄했다.
"바르스. 네게 묻겠다. 우리 엘프는 어떤 존재라고 네게 가르쳤지?"
"하아?"
"우리 엘프는 긍지 높은 존재들이다. 비록 목숨을 잃을지언정 어떤 존재의 밑에 들어갈 일은 없다. 그 말이 틀린가?"
"맞습니다!"
레스타드의 물음에 천여 명의 엘프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에 바르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활로를 열어줘도 일부러 버리다니. 당신이 그렇게 어리석은 엘프인 줄은 몰랐습니다."
"어리석은 것이 누구인지 제대로 가르쳐주마."
오러가 서린 검으로 살기를 띠며 레스타드가 얘기하자 바르스가 움찔하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리고 뒤에 있는 다크엘프 마법사들을 향해 황급하게 얘기했다.
"버,버서커 모드를 시행해라!"
바르스의 말에 다크엘프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다크엘프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우자 그들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넘실넘실 대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엘프들은 본능적으로 소름 끼치고 음산한 기운에 뒤로 한발짝 물러났다.
검은 기운은 이내 다크엘프 마법사들에게서 나와 수백 마리의 마물들에게 균등하게 흡수되었다. 그리고 검은 기운을 흡수한 마물들이 겉모습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키에에엑!!"
눈이 빨개지며 덩치가 비대해졌고 발톱과 이빨도 크기가 커지면서 날카로움은 배가 되었다. 2미터의 크기를 가진 가고일이 3미터로 커졌고 5미터의 크기를 가진 켈베로스가 6미터를 능가하여 7미터에 육박하였다. 몸을 구성하고 있는 근육들은 더욱 부풀어 올랐고 생기로 가득 차며 꿈틀대었다.
"뭐,뭐야?!"
"커,커졌어?"
엘프들은 갑자기 커지고 위압감을 뿜어내는 마물들을 눈앞에 두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눈치챈 레스타드가 그들의 불안감을 중재해주었다.
"모두 침착해라! 그리고 궁병들은 일제히 조준!"
레스타드의 목소리에 엘프들이 침착을 찾으면서 궁병들은 활에 다시 화살을 매기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마물들이었고 화살을 메기는 것을 본 바르스는 마물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모두 죽여!"
바르스의 명령을 들은 마물들이 일제히 엘프들을 향해 돌격했다. 7미터에 육박하는 켈베로스와 3미터에 달하는 가고일 수백 마리가 일제히 다가오는 광경은 어떤 존재라도 위축될듯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떨고 있어도 도망치는 엘프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발사!"
300개의 화살이 일제히 마물들을 향해 날아갔다. 수백 마리의 마물들에 비해서 화살은 턱없이 부족해보였지만 300개의 화살은 강화된 마물들에게도 유효한 공격으로 들어갔다. 맨전방에 있던 켈베로스와 가고일들이 화살에 맞아서 고슴도치처럼 변하며 쓰러졌다. 하지만 300개의 화살을 쐈는데 쓰러진 것은 겨우 10여 마리에 불과했다. 나머지 수백 마리는 여전히 기세를 잃지 않고 엘프들을 향해 돌격해오고 있었다.
"전사들은 방패를 들고 전진! 궁병은 후방으로!"
약 500여 명에 달하는 엘프 전사들이 앞으로 나가서 방패를 들고 자리를 잡았다. 금색의 갑옷과 방패는 그들의 금발머리와 어울리면서 동시에 단단해 보이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엘프 전사들은 방패로 자신의 몸을 가린 채 한쪽 무릎을 꿇고 방어준비에 나섰고 뒤로 빠진 궁병들은 계속해서 활을 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과 정령사들도 공격!"
엘프 마법사들과 정령사들이 일제히 마법과 정령을 사용하여 공격했다. 화력을 담당하는 이들답게 그들의 공격은 수백 마리의 마물들을 강타했고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로 인해서 생긴 먼지로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천여 명의 엘프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을 하였다.
"다...죽였나?"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저 폭발을 견디지는 않았겠지?"
엘프들은 마법사들과 정령사들이 만든 폭발에 마물들이 모두 죽었을 거라고 희망찬 예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긍정적인 생각이 사라지기도 전에 먼지를 뚫고 나오는 마물들이 있었다.
"크앙!"
콰콰콰쾅!! 콰지직.
"으아아악!!"
"버,버텨!"
"밀린다!"
수십 마리의 켈베로스가 돌격해오면서 부딪히자 500여 명의 엘프가 3열로 서 있었음에도 버티지 못하고 뚫렸다. 제일 전방에 있던 엘프 전사들은 켈베로스와 부딪히는 순간 다져진 고기로 변했고 그것은 강화된 켈베로스조차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번의 부딪힘으로 500여 명의 엘프 중 200여 명의 엘프가 즉사한 반면에 켈베로스는 30여 마리 정도가 죽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수십 마리의 켈베로스의 뒤에서 또 다른 켈베로스들이 또 돌진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마법으로 죽은 거 아니였어?!"
마법과 정령으로 전멸은 아니여도 상당한 피해를 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일절 줄어들지 않은 것 같은 물량에 엘프들은 기가 막히면서 전의가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레스타드도 예상외의 상황에 이를 갈면서도 명령을 내렸다.
"난전은 피한다! 모두 뒤로 후퇴하면서 진형을 갖춘다!"
1대1로 싸운다면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난전은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였다. 그렇기에 레스타드는 후퇴하면서 진형을 갖추라는 명령을 내렸고 엘프 전사들은 켈베로스를 상대로 견제하면서 뒤로 후퇴했다. 하지만 부딪히고 다음에 벌어진 그 짧은 난전 사이에 100여 명의 엘프가 죽었고 이내 남은 엘프 전사는 200여 명에 불과했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마법과 정령에 피해를 거의 받지도 않았고 검조차 팅겨낼 정도로 강화되어 있어.'
좀 전의 난전을 보면서 레스타드는 켈베로스의 피부가 엄청나게 단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조금 그을리고 상처가 생긴 것을 봐서 마법을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런 강력한 폭발에도 저런 상처밖에 입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레스타드는 그런 상황을 통해서 이 이상 싸움을 벌일 시 이득보다 손해가 더 극심하다는 것을 알기에 후퇴하고 추후를 도모하기로 하였다.
"모두 느리게 조금씩 뒤로 후퇴한다! 기회를 봐서 신호를 주면 마법사들과 정령사는 이동방해 마법을 걸고 달리도록 한다!"
레스타드의 명령에 엘프들은 진형을 맞추면서 조금씩 뒤로 물러났고 죽은 엘프의 시체를 갈가리 찢어먹은 켈베로스가 경계하면서 조금씩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레스타드는 지금이 타이밍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다!"
명령을 들은 마법사들과 정령사들이 일제히 마법과 정령을 사용하여 켈베로스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땅을 파는 디그마법, 느리게 해주는 슬로우 마법, 빙판을 만드는 아이스 마법 등을 사용했고 정령사들은 정령으로 늪을 만들거나 바람으로 밀리게 하는 등으로 접근시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사이에 엘프들은 일제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스타드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잊고 있던 존재들이 있었다.
"키에에엑!"
바로 공중에 있는 가고일들이었다. 가고일들은 엘프들이 후퇴하는 것을 보는 순간 공중에서 내려오면서 한 명씩 잡아채 가기 시작했고 잡힌 엘프들은 공중에서 가고일들에게 찢겨져 죽어 나갔다.
"젠장! 빨리 후퇴해라!"
레스타드는 가고일에 신경 쓰는 순간 켈베로스들이 달려들게 뻔하기 때문에 비록 피해가 생기더라도 무시하고 후퇴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바르스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제가 언제 도망치게 둔다고 했습니까?"
바르스는 활에 5개의 화살을 메기고 그 화살에 마나를 실으며 목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호흡을 멈춘 후에 시위를 당겼다.
따따따따땅!!
엘프 궁병들의 화살도 엄청난 스피드와 파괴력을 가졌는데 바르스의 화살은 그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차원이 다른 스피드로 날아갔다.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5명의 엘프가 화살에 관통당하며 쓰러졌다.
화살이 꽂히는 것도 아니고 몸을 관통하고 지나갈 정도로 바르스의 화살은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떨 때는 관통하면서 지나간 화살에 또 다른 엘프가 맞아서 5명 이상이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 거기다 바르스의 연사 속도도 느리지 않았다.
5개의 화살을 날린 다음에 곧바로 5개의 화살을 메기고 쏘고 이어서 또 화살을 메기고 있었다. 그렇게 그 짧은 시간에 바르스의 화살에 당한 엘프만 50여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역시 움직이는 목표가 재밌단 말이야! 푸하하핫!"
오러가 서린 화살은 마법사들의 실드도 뚫고 정령사의 방어막조차 관통하여 목표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바르스가 또 다른 마법사를 목표로 화살을 날렸는데 처음으로 화살을 막는 자가 나타났다.
까까까깡!
"호오?"
5개의 화살을 모두 검으로 쳐버린 인물은 바로 레스타드였다.
"후퇴하기 바쁘실텐데요?"
"누가 발목을 잡아서 말이지. 그리고 나도 벼르장머리를 고쳐주고 싶은 이가 있네."
"누구를 고쳐주고 싶은지 궁금하군요."
"그런가? 그럼 지금 바로 가르쳐주겠네."
레스타드는 검을 들고 바르스에게 돌격했지만 바르스의 앞길을 막는 존재들이 있었다. 바로 켈베로스와 가고일들이었다. 켈베로스와 가고일들은 이내 레스타드를 감쌌고 그 모습을 본 바르스는 비웃으며 얘기했다.
"미안하지만 제가 싸운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레스타드!"
마물들에게 둘러싸인 레스타드를 보고 타르시스가 소리치며 다가오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타르시스를 레스타드가 만류했다.
"오지 마라!"
"뭐?"
"타르시스. 내가 시간을 끌테니 엘프들을 이끌고 후퇴해라."
"그런 역할은 내가 아닌 자네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그들을 이끌 재목이 아니네!"
"나는 어차피 남은 여생이 별로 길지 않네. 길어봤자 10년이겠지. 하지만 나보다 조금이라도 젊은 자네는 더 살 날이 남아있지 않겠는가? 더구나 자네에게는 나르샤라는 딸이 있으니 자네가 살아야지."
"....."
"어서 가게나! 그리고 하나 약속해주게."
"...말하게."
"이 놈과 다크엘프에게서 밀런을 지켜주게. 내가 비록 죽더라도."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밀런이 망하는 것을 막겠네."
"충분한 대답이었네. 이제 빨리 가게!"
타르시스는 레스타드의 말에 눈을 질끈 감고 떨어지지 않는 발을 움직여서 뒤로 달려갔다.
"누가 가도록 놔둔다고 했습니까?"
바르스는 켈베로스와 가고일에게 명령을 내려서 타르시스를 쫒게 하였다. 명령을 받은 몇 마리의 마물들이 타르시스를 향해 돌격했는데 그때 마물들의 뒤를 덮치는 이가 있었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
레스타드가 마물들보다 훨씬 빠른 스피드로 마물들의 뒤를 잡고 검을 휘둘렀다. 오러가 서린 검은 강화된 켈베로스와 가고일조차 두 동강으로 내었다. 딱 두 번을 휘둘렀는데 십여 마리의 켈베로스와 가고일이 죽은 것이다.
그 광경을 본 켈베로스와 가고일은 버서커 모드로 이성이 남아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레스타드에게 다가가지 않으려고 했다. 바르스는 레스타드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강할 줄은 몰랐기에 입을 벌리며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레스타드는 검을 한번 휘둘러서 검에 묻은 피를 모두 제거하고 바르스를 검으로 지목하며 얘기했다.
"여기 있는 모든 마물을 죽이는 것은 힘들겠지.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명심해라."
"뭐,뭡니까?"
"내가 죽더라도 너는 무조건 죽이고 같이 가겠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번쩍이는 레스타드의 눈을 본 바르스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그의 시선을 계속해서 쳐다볼 수 없었다. 결국 그가 하는 것은 뒤로 발걸음질을 하며 마물들을 향해 명령을 하는 것뿐이었다.
"죽,죽여!!"
바르스의 명령에 마물들이 일제히 레스타드를 향해 돌격해왔고 레스타드는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마물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헉...헉...헉..."
한 명의 엘프가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피가 울컥하며 입에서 흘러나왔고 만신창이가 된 몸은 언제든지 실이 끊어질 것처럼 비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엘프의 눈은 아직도 불타오르고 있었고 목표로 향한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다.
"괴,괴물이야..."
바르스는 여전히 죽지 않고 서 있는 레스타드를 보고 질렸다는 듯이 얘기했다. 그의 곁에 쌓인 시체만으로 100여 마리에 가까웠다. 레스타드 단 한 명에게 강화된 켈베로스와 가고일이 100여 마리나 죽은 것이었다. 아직 그보다 몇 배는 많은 마물이 있기는 했지만 엄청난 손해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불타오르는 눈빛이 바르스는 너무나 무서웠다.
"후우...뭐하는가?...더 덤비지 않고?"
레스타드가 바르스를 향해 한걸음을 내딛자 마물들이 뒤로 한걸음 후퇴했다. 이성조차 존재하지 않는 버서커 모드임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레스타드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히익!"
바르스는 다가오는 레스타드를 무서워하며 빠르게 활에 화살을 메기고 레스타드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땅! 퍽!
바르스가 날린 화살은 정확히 레스타드의 왼쪽 어깨에 박혔고 그로 인한 충격으로 레스타드는 뒤로 몇 걸음 밀렸다. 하지만 레스타드는 멈추지 않고 다시 바르스를 향해 걸어갔다.
"오,오지 말라고!!"
바르스는 다시 화살을 메기고 시위를 당겼다.
땅! 깡!
하지만 이번에는 레스타드가 검으로 화살을 정확히 팅기면서 화살이 땅으로 박혀 들어갔다. 그것을 본 바르스는 다시 화살을 매기고 쐈지만 레스타드가 모든 화살을 팅겨내기 시작했다.
"이...이 미친 늙은이가! 갈거면 곱게 가라고!"
바르스가 계속해서 화살을 쐈지만 어느새 서로 간에 십여 미터 정도의 거리를 남기고 있었다. 다급해진 바르스는 주변에 있는 마물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모두 죽여! 구경만 하지 말고!"
하지만 바르스의 명령에도 마물들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뭐,뭐하는 거야?! 빨리 죽이라고!!"
마물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본 레스타드는 한순간 눈빛이 번쩍이면서 남은 힘을 사용해서 앞으로 치고 나갔다. 치고 나가면서 십여 미터의 거리를 한 번에 줄인 레스타드는 검으로 바르스를 향해 휘둘렀고 그 광경을 본 바르스는 본능적으로 뒤로 몸을 뺐다.
서걱.
"크아아악!!"
"쳇."
머리를 자르려고 했는데 바르스가 몸을 빼면서 눈 한쪽을 자르고 지나갔다. 바르스는 눈이 터진 고통에 몸을 움츠러들었고 레스타드는 그 사이에 완전히 끝을 맺으려고 다시 검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이가 있었다.
"거기까지."
쾅!!
주먹에 맞은 레스타드가 마치 홈런을 맞은 야구공처럼 훨훨 날아갔다. 수십 미터는 날아간 레스타드는 땅에 박혔지만 이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왼쪽 어깨가 완전히 으스러지면서 힘없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왜 끼어드는 거지?"
"나도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녀석이 죽으면 조금 곤란하거든."
레스타드의 왼쪽 어깨를 으스러트리고 바르스의 앞에 나타난 인물은 바로 드리트였다.
"그런데 정말 대단하군. 당신이 얼마나 버틸지 궁금해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바르스를 죽일 지경까지 오다니.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해할 거면...자네도 죽이겠네."
"푸하하핫! 그 상처로? 설마 버서커 모드의 마물을 100여 마리나 혼자서 죽일 줄은 몰랐지만 지금 상태가 영 아닌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지."
"...그래도 자네와...저 놈을 죽이는데는 충분하네."
"그런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전사는 정말이지 무섭지. 더구나 당신의 목표는 이루지 않았나?"
"....."
"목,목표? 목표란게 무슨 말입니까?"
고통에 조금 익숙해진 바르스는 드리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얘기했다.
"저 엘프의 목표는 너를 죽이는 것이겠지. 하지만 진정한 목표는 그게 아니야. 시간을 끄는 것이지."
"시,시간?"
"저 엘프에게 시선이 끌려서 이 수많은 마물들이 마을을 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나머지 엘프들은 도망가고 다른 마을에도 연락을 돌리겠지. 알겠나?"
"그,그런..."
"너는 저 엘프에게 놀아났다는 것이다."
드리트의 말에 레스타드가 씨익 웃으며 얘기했다.
"역시...저 멍청이와 다르게...머리가 좀 돌아가는군."
"멍청이가 아니면 충분히 알고도 남지."
레스타드와 드리트의 말에 바르스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치욕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서 레스타드는 남은 오른쪽 팔로 검을 들고 드리트를 지목했다.
"자네를 죽이기 전에...하나 물어봐도 되겠나?"
"물론."
레스타드의 말에 드리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왜 내 의도를 알고도...움직이지 않았던 거지?"
"도망쳐도 소용없으니까. 어차피 미리 알고 방어한다고 해도 밀런을 모두 멸망시킬 예정이니까 그렇다."
"밀런을...너무 과소평가하는군."
"과연 그럴까?"
레스타드는 말 도중에 갑자기 움직여서 드리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기습적인 공격. 원래의 레스타드라면 이런 공격을 비겁하다고 생각하며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레스타드는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때보다 빠르게 어떤 때보다 더 순식간에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드리트는 그것에 반응했다.
쾅!!
100여 마리의 마물을 베면서 날이 나간 검이 드리트의 주먹과 부딪히면서 손잡이만 남고 검신이 산산조각났다. 그러면서 드리트의 주먹의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 레스타드는 뒤로 또 밀렸고 오른손도 부들부들 떨며 검을 드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미안하지만 기습도 통하지 않는다."
"....."
레스타드는 만신창이인 몸인데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손잡이만 남아있는 검을 다시 들었다.
"포기하지 않는 근성은 감탄스럽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근성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푸흡."
"응?"
"푸하하하핫!"
갑자기 레스타드가 피를 토하면서도 웃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미친 자가 된 것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광경에 바르스는 물론이고 드리트까지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뭐가 웃기는가?"
"...죽을 때가 되서야 길이 보이다니. 정말 아이러니 하지 않나? 살아있을 생전에는 그렇게 보고 싶어도 보이지 않던 것이 모든 것을 내려놓아서야 보이다니...이게 웃지 않고 어떻게 가만히 있겠는가?"
"무슨 소리지?"
"지금 바로 보여주겠다."
레스타드는 실실 웃으며 손잡이만 남아있는 검을 들고 드리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드리트가 흠칫하며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내가...물러났다고?"
자신도 모르게 레스타드에게 쫄은 것이다. 다크 엘프를 이끄는 자신이 손잡이만 남고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노인 엘프 1명에게 쫄아서 뒤로 물러난 것이다. 드리트는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화를 내었다.
"말도 안 돼! 내가?! 웃기지 마라!"
드리트는 그 순간 온몸을 검게 물들이고 100% 파워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순간 레스타드가 손잡이만 남은 검을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누가 봐도 드리트의 파워가 우세했고 스피드조차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둘이 부딪혔다.
쾅!! 서걱.
드리트의 주먹에 가슴을 맞은 레스타드는 검은 피를 입에서 뿜어내며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드리트는 정확히 심장이 터지는 느낌을 주먹을 통해 느낄 수 있어서 즉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느꼈던 불안감이 뭔지 알지도 못한 채 레스타드가 죽어서 그런지 드리트는 조금 찝찝함을 느꼈다.
"뭐였지? 좀 전의 그건?"
그런데 그런 찝찝함이 사라지기도 전에 갑자기 왼쪽 어깨에서 통증이 일어났다.
"크윽! 뭐야?"
화끈한 통증은 이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고 드리트는 왜 이렇게 고통이 느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왼쪽 어깨에서 하나의 실금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금?"
실금은 이내 점점 길어져서 왼쪽 어깨부터 허리까지 이어졌고 동시에 어깨를 중심으로 드리트의 왼쪽 팔이 쩌억 벌어지면서 밑으로 떨어졌다.
"크아아아악!!"
"드,드리트님!!"
드리트의 비명에 다크엘프 마법사들이 시급히 다가와 치료하기 시작했고 드리트는 고통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다크엘프 한 명에게 얘기했다.
"생,생사를 확인하고 와라."
다크엘프는 드리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 멀리 날아간 레스타드에게 다가가서 살아있는지 확인했다. 확인을 마친 다크엘프는 다시 드리트에게 돌아와서 얘기했다.
"죽었습니다."
"다,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나?"
"그게...죽은 자 치고는 표정이 너무 편안해보였습니다."
"큭! 내가 과소평가했다는 건가?"
"대,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손잡이만 남은 검으로?"
바르스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얘기했고 드리트는 호흡을 고르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얘기했다.
"소,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지...검의 극한에 오른 자들은 검이 없어도 공격할 수 있다고...마음의 검. 심검을 사용해서."
"심검?"
"실제로 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정말 대단한 자였군. 레스타드란 엘프는."
"....."
"그의 말대로 나는 밀런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제는 전력을 다해 밀런을 공격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먼저 이 프리드 마을을 거점으로 밀런을 먹는다. 바르스. 마물을 데리고 프리드 마을을 점령하도록. 이번에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바르스는 트리드의 말을 듣고 마물들을 이끌고 프리드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리트는 마법사들의 치유에 겨우 고통이 사그라진 것을 느끼며 레스타드의 시체를 향해 접근했다.
"...이봐. 이 엘프를 나무 밑에 묻어줘라."
"예?"
"엘프들은 죽으면 나무로 돌아가고 싶어서 나무 밑에 묻는다는 습성이 있다고 하더군."
"...그냥 놔두시는 것은 어떠신지?"
"내 팔을 자른 남자다. 비록 죽었더라고 해도 강자에 대한 대우는 해줘야지. 어서!"
"알겠습니다!"
다크엘프들이 그의 명령을 받고 죽은 레스타드의 시체를 들고 이동했다. 드리트는 멀어지는 레스타드의 시체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그건 그렇고 정말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 의도대로 흘러가면서 만족한 그의 표정은 지금까지 드리트가 본 어떤 표정보다도 편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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