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위기에 처한 밀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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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위기에 처한 밀런(1)
"흐음...평화스럽군."
타르시스는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책을 보며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몇백 년을 살았지만 이런 평화는 언제까지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타르시스였다. 하지만 그런 타르시스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타르시스를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다.
똑똑.
"들어오게나."
"실례하겠습니다."
"응? 바르스 아닌가?"
현재 나르샤가 공석이면서 밀런에서 제일 가는 강자라고 할 수 있는 바르스였다. 그런 바르스가 자신을 찾아온 것을 타르시스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무슨 일인가? 자네가 직접 나를 찾아오다니."
"장로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장로회의를? 누가?"
"레스타드님입니다."
"레스타드가?"
레스타드는 타르시스와 같이 나이가 많은 고령 장로로 상당히 강한 발언을 가지고 있는 엘프였다. 그런 레스타드가 회의를 열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뜻했다.
"알겠네. 지금 가도록 하지."
타르시스는 왠지 불안감이 생기는 것을 느끼면서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르스의 뒤를 따라갔는데 타르시스는 또 다른 강자라고 불리는 맬러스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맬러스는 어디 갔는가?"
"맬러스도 다른 장로님들을 부르러 갔습니다."
"그런가?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러지?"
평화도 오래되면 반감으로 그만한 악재가 다가온다는 것을 타르시스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평화가 너무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슬슬 악재가 올 타이밍인 것을 알기에 타르시스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불안감을 갖고 타르시스는 바르스의 뒤를 따라서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이라고 해도 엘프들은 커다란 나무 본연의 공간을 사용했다. 억지로 깎고 공간을 넓히는 것이 아닌 자연적으로 생긴 공간을 사용했다.
아니면 의식을 치른 나무로 자르고 만드는 것들도 존재했다. 그만큼 엘프들에게 있어서 나무와 식물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존재였다.
"타르시스님을 모셔왔습니다."
"잘했네. 자네도 앉게나."
"알겠습니다."
바르스는 중앙에 있는 테이블이 아닌 모서리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았고 테이블에는 한 자리만이 남아있었다. 타르시스는 그 자리가 자신을 위해서 남겨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타르시스는 남은 자리에 앉았고 이어서 테이블 맨 앞에 앉아있는 레스타드가 얘기하기 시작했다.
"오늘 이렇게 회의를 연 이유는 한 가지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얘기하기 위해서이네."
"중요한 사안이라. 대체 뭔가?"
타르시스는 자신의 불안감이 괜한 걱정이였다고 말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시피 밀런의 서쪽에는 다크엘프들의 왕국인 웨스트랜드가 있네."
웨스트랜드. 트레비아 대륙의 북서쪽에는 엘프들이 사는 밀런 왕국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사실이다. 왜냐하면 밀런 왕국의 서쪽에는 아주 작은 웨스트랜드라는 왕국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밀런 왕국의 10% 면적에 불과하는 크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왕국이었다.
그리고 그 웨스트랜드는 다크엘프들이 세운 왕국이다. 다크엘프란 엘프와 같은 종족이지만 확연히 다른 차이점을 같고 있는 이들이었다. 다크엘프는 타락한 엘프라고 불리며 흑색과 남색을 합친 피부 색깔을 띠고 있고 나무와 식물을 소중히 여기는 엘프들과 다르게 그들에게는 그런 관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흑마법을 숭배하며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선호했다.
그러한 차이점으로 인해 몇천 년 전부터 엘프와 다크엘프간의 사이에 수많은 불화와 전쟁이 벌어졌고 서로 간의 깊은 골은 2천 년 전에 있었던 마왕의 부활 때 정점을 찍었다. 흑마법을 숭배하는 다크엘프들은 당연히 마왕을 섬기었고 그로 인해서 다크엘프와 엘프는 서로 수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그리고 마왕이 봉인당하면서 다크엘프의 패배로 결정되었고 엘프들의 장로는 다크엘프에 대한 처분에 대해서 수많은 의견을 모았다.
다크엘프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고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수많은 의견충돌 끝에 그들은 다크엘프들에게 조그마한 땅을 주고 서로 간에 불가침조약을 걸기로 했다.
그렇게해서 다크엘프들은 밀런의 10분의 1에 불과하는 땅에서 살게 되었고 2천 년 동안 엘프와 다크엘프간에 교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엘프들은 모두 알고 있었기에 레스타드가 말한 웨스트랜드란 단어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겠지. 그런데 그 웨스트랜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아직은 없네. 하지만 불온한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하더군."
"불온한 움직임?"
"마치 전쟁을 치르기 전의 준비단계처럼."
"전,전쟁?!"
"전쟁이라고 하셨습니까?"
수근수근.
전쟁이라는 말에 장로들이 수근거리며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하지만 레스타드는 테이블을 손으로 한번 치면서 다시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아직 정확히 확정된 것은 아니네.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뿐이지. 모든 엘프들에게 알리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이니 얘기하지는 말게나. 하지만 장로들은 언제 어느 순간이라도 대처 가능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게나."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이상으로 마치겠네."
회의가 끝나면서 장로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것은 타르시스도 마찬가지였다. 타르시스는 레스타드의 말을 한번 다시 생각해보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전쟁이라...나르샤에게는 미안하지만 다시 돌아오라고 해야 하나?'
혹시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밀런의 최강자인 나르샤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전황이 확연히 뒤바뀔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르샤의 주장을 들었던 타르시스는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확신이 들지 않는 상황에서 돌아오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타르시스가 고민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의 어깨를 부여잡는 존재가 있었다.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겠나?"
"응? 레스타드?"
자신을 붙잡은 이가 레스타드라는 것을 본 타르시스는 그가 자신을 붙잡은 이유를 예상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인가?"
"자네 아마 나르샤를 데려와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겠지. 내 말이 맞나?"
정확히 자신의 생각을 맞춘 레스타드의 말에 타르시스는 움찔거렸다. 그리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본 레스타드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역시 그랬나. 자네는 여전하군."
"그러면 자네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지. 자네는 어떻게 하는게 좋다고 생각하나?"
"내가 만약 나르샤의 아버지였다면 돌아오라고 했을 거네. 왜냐하면 딸의 만족보다는 왕국이 우선이기 때문이지."
"그런가?"
"하지만 나르샤의 아버지는 내가 아닌 자네이네. 결정하는 것도 자네이지. 그러니 나는 자네의 선택에 끼어들 수 없네. 충고를 할 뿐이지."
"그럼 나도 자네에게 조언하나 해주겠네."
"새겨듣도록 하지."
"어떨 때는 왕국보다 내 딸이 중요하다네. 자식이 없는 자네에게 있어서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런가?"
"그렇다네."
그 말을 끝으로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레스타드는 한숨을 쉬며 뒤로 물러났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알겠네. 하지만 나중에 후회할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군."
"후회?"
"일이 터진 후에 올 후회를 말하는 거네."
레스타드는 그 말을 끝으로 돌아갔고 그의 말을 들은 타르시스는 더욱 고민이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타르시스는 오늘 자기 전에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밤이 되기 전에 일이 터진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채.
"전쟁이라...내 힘을 보여줄 절호의 찬스군."
장로회의에 참가했던 멜러스는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에 불안감보다는 기대감으로 가득찼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르샤가 아닌 자신이 최강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알았던 것일까? 또 다른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바르스가 멜러스에게 다가왔다.
"찬스라. 틀린 말은 아니지."
"그렇지?"
"우리가 더 이름을 날릴 절호의 기회이니까."
"역시 뭘 좀 아네."
멜러스는 자신의 마음과 똑같이 얘기하는 바르스를 보고 친밀감을 느꼈다. 바르스는 그렇게 얘기한 후에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멜러스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얘기했다.
"그거에 대한 얘기 말인데. 나한테 한 가지 좋은 생각이 있는데 들어볼래?"
"무슨 생각인데?"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 얘기하기에는 조금 그렇고..."
멜러스는 주위에 장로를 비롯한 많은 엘프들이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4시간 후에 중앙에 있는 숲에서 보자."
"알겠어."
바르스는 그 말을 하고 사라졌고 멜러스는 과연 바르스가 무슨 얘기를 할지 기대하면서 4시간이 빨리 지나기를 바랬다. 그리고 4시간 후...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렸다. 하지만 밀런 왕국의 곳곳에는 어둠을 밝히고 있는 곳이 존재했는데 바로 불의 정령들 덕분이었다. 엘프들은 정령과 좋은 친화력을 갖고 있는 덕분에 불의 정령의 힘을 빌려서 밤에도 밝게 지내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불의 정령들도 엘프들이 모여있는 마을에 집중되어 있어서 다른 장소는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자유로운 정령들로 인해서 부분부분 불이 밝혀진 곳이 있었지만 숲에도 어둠이 깔려있었다.
그런데 그런 어둠을 뚫고 숲으로 들어가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바르스와 숲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멜러스였다. 불의 정령을 담아둔 등불을 앞세워 어둠을 헤치고 조용히 숲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시간에 모이자고 하다니.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거지?"
얼마나 중요하고 은밀한 이야기이길래 밤에 아무도 다니지 않는 숲에서 만나고 하는지 멜러스는 궁금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등불의 빛으로 천천히 숲 안쪽으로 들어간 끝에 멜러스는 바르스와 약속했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장소에는 언제 왔는지 바르스가 기다리고 있었고 멜러스가 온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약속을 지켰네."
"네가 오라고 했잖아?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우선 얘기하기 전에. 지금부터 무슨 광경을 보든 나를 믿고 따라준다는 약속을 해줘."
"그렇게 은밀한 일이야?"
"질문을 하지 말고 답변을 해."
바르스의 강압적인 목소리에 멜러스는 조금 움찔했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알겠어. 약속할게."
"좋아. 약속한 거다?"
바르스는 멜러스의 대답을 듣고 품속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냈다. 그 물건은 검은 색의 돌로 소름끼치는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뭐야? 그건?"
이상하고 꺼려지는 기운을 풍기는 검은 돌을 본 멜러스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바르스는 그런 것을 못 느끼는지 검은 돌을 바닥에 심어놓기 시작했다.
흙으로 검은 돌이 안 보이게 덮어두자 검은 돌을 중심으로 마법진이 생성되었고 마법진이 빛을 발하면서 검은 연기로 만들어진 하나의 문이 생성되었다.
"이건...문? 무슨 문이야?"
"보면 알 거야."
멜러스는 왠지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지만 바르스의 말에 조용히 있기로 하였다. 그렇게 약 1분 정도 기다렸을 시점에 바르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십쇼."
깍듯한 90도 인사. 바르스가 누구한테 그렇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지 멜러스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검은 연기의 문을 통해서 나온 인물을 봤을 때 멜러스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다크 엘프!"
나온 인물은 바로 다크 엘프였다. 그것도 2미터에 육박하며 엄청난 근육질의 소유자였다. 엘프들은 마법, 정령, 활을 주로 사용했고 드물게 검도 다루는 이들도 있었지만 중검이 아닌 스피드의 위주로 단련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서 근육질의 몸을 가진 엘프는 거의 보기 힘들었고 있더라도 눈앞에 있는 다크엘프처럼 엄청난 덩치를 가질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다크엘프는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줄 정도로 엄청난 강자라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을 능가할뿐더러 여차하면 나르샤와 동급일 정도로. 그때 또 한 명의 다크엘프가 검은 연기의 문을 통해서 나왔다.
"호오? 여기가 밀런의 숲인가?"
주변을 신기하다는 듯이 관찰하는 한 여성의 다크엘프는 지팡이와 로브를 갖추고 있는 것이 마법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헌데 덩치의 다크엘프에게서 위압감을 느꼈다면 여성 다크엘프에게서는 공포와 혐오를 느낄 수 있었다.
'정령들이 무서워하고 있어?'
물의 상급 정령사인 멜러스는 물의 정령들이 본능적으로 다크엘프 마법사를 두려워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명의 다크엘프. 그것도 자신보다 강할 수도 있는 강자들. 그런 이들을 왜 바르스가 불렀는지 멜러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바르스! 다크엘프를 왜 부른 거야?!"
"응? 저 엘프는 뭐야?"
"제 친구입니다. 이번에 저와 같이 귀순하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습니다."
"믿어도 되는 건가?"
"예. 저와 같이 밀런에서 꿀릴 것 없는 강자입니다."
"잠,잠깐!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멜러스는 바르스가 뭐라고 얘기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말을 멈추게 하였다.
"바르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야? 설마 밀런을 배반한 것은 아니지?"
멜러스의 말에 바르스는 손으로 이마를 탁 쳤고 다크엘프 마법사는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얘기가 다른데?"
"아직 상황 판단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제대로 얘기하면..."
"이미 늦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덩치의 다크엘프가 저음의 목소리로 얘기하면서 움직였다. 그리고 멜러스가 반응하기도 전에 멜러스에게 다가가서 그의 목을 잡고 가볍게 들어 올렸다.
"커억!"
멜러스는 다크엘프의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악력에 숨을 들이실 수 없어서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그리고 아직 의식이 사라지기 전에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안간힘을 써서 물의 정령을 불렀다.
"엔...엔다이론!"
물의 상급 정령인 엔다이론이 멜러스의 옆에 소환되면서 다크엘프를 공격했다. 커다란 물기둥에 의해서 다크엘프는 뒤로 밀려났지만 쓰러지지 않았고 그 틈을 타서 멜러스는 다크엘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커헉!"
숨을 거칠게 쉬며 멜러스는 2차 공격을 하려고 했고 다크엘프도 멜러스를 향해 돌진하려했다. 하지만 그때 그 둘을 막는 이가 있었다.
"잠깐만요! 제발 대화로 풀죠!"
바르스는 힘겹게 둘의 중간에 서서 중재했고 그 모습을 본 여성 다크엘프가 얘기했다.
"대화? 내가 보기에는 대화로 풀 수 없을 것 같은데."
"한번 기회를 주십쇼.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할래?"
여성 다크엘프가 남성 다크엘프에게 물어봤고 남성 다크엘프는 주먹을 들었던 것을 내려놓으며 얘기했다.
"좋다. 죽이기에는 아까운 인재니 기회를 주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바르스는 남성 다크엘프에게 고개를 수그리며 감사를 표한 후에 멜러스에게 다가갔다.
"멜러스. 대답을 잘해야 할 거야."
"바르스...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다크엘프들은 왜 여기 있는 거고. 그리고 그들의 말을 왜 듣는 거야?"
멜러스가 진심으로 혼란해 하고 있는 것을 본 바르스는 있는 그대로 얘기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말했잖아? 나르샤한테 항상 뒤처지며 비교당했던 우리가 나르샤보다 더한 명성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바로 우리가 새로운 왕국을 세우면 돼."
"...뭐?"
"나는 다크엘프들과 거래를 했어. 밀런 왕국을 새로 싹다 갈아엎는 대신 나를 밀런 왕국의 왕으로 만들어준다고. 내가 왕이 된다면 누구도 나를 낮게 보지 않겠지. 지금의 나르샤와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나를 찬양할 거야."
"...진심이야?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의 적인 다크엘프들과 손을 잡는다고?"
"왜? 뭐가 문제야? 그리고 나는 너만 좋다면 같은 왕으로 통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물론 너도 다크엘프들과 손을 잡아야지."
"....."
"어때? 정말 좋은 제안이지?"
바르스는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고 멜러스는 바르스가 제정신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갔다. 자신도 바르스와 똑같이 나르샤로 인한 트라우마같은 것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트라우마를 깨기 위해서 적인 다크엘프의 손까지 빌릴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다. 그 선택이 지금 살고 있는 밀런 왕국의 파멸로 온다면 더더욱.
"...미안.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어."
멜러스의 말에 미소를 짓고 있던 바르스의 표정이 깨졌고 뒤에서 듣고 있던 남성 다크엘프가 피식 웃으며 얘기했다.
"교섭 실패군."
교섭이 결렬된 것을 알고 남성 다크엘프와 여성 다크엘프가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멜러스가 한 발 더 빨리 움직였다.
"엔다이론!"
물의 상급 정령 엔다이론은 미리 얘기한 멜러스의 명령대로 안개를 만들어서 주변 시야를 제한시켰다. 그리고 멜러스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전력을 다해 숲을 뛰쳐나갔다.
"마녀."
"알겠다고. 그리고 마녀라고 부르지 말랬지? 나한테는 엄연히 소리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빨리 해라."
"쳇. 나중에 천천히 얘기해주겠어."
소리아라고 하는 여성 다크엘프가 지팡이로 바닥을 한번 강타하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하게 깔려 있던 안개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러면서 저 멀리서 도망치고 있는 멜러스를 볼 수 있었다.
"약 700미터. 지금 쫓아가도 늦지 않겠군."
남성 다크엘프가 멜러스의 뒤를 쫓아가려고 했는데 그때 그를 만류하는 이가 있었다.
"드리트님.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가능하겠나?"
"충분합니다."
남성 다크엘프, 드리트를 만류한 자는 바로 바르스였다. 바르스는 등 뒤에 매고 있던 활을 잡고 화살을 땡기면서 마나를 실어넣었다. 그리고 멜러스를 정확히 바라보면서 시위를 놓았다.
"핫!"
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화살이 사냥감을 향해 날아갔다.
"젠장!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서 알려야해!"
멜러스는 자신의 느린 발걸음을 재촉하며 마을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엘프를 배반하고 다크엘프에게 붙은 바르스를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딴 이유는 나중에 알아도 되잖아! 지금은 보다 빨리 마을로!"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고 보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그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가 들려왔다.
땅!!
"잠깐...이 소리는?"
익숙한 소리지만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멜러스의 제일 큰 실수였다.
퍼억!!
"커억!"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지도 못하고 화살이 멜러스의 목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제서야 멜러스는 그 소리가 바르스가 화살을 쏠 때 나는 소리라는 것을 떠올렸다. 멜러스는 목에서 폭포수처럼 나오는 피를 멈추지 못하고 의식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바,바르스...쿨럭...네 이놈!!"
피를 토하면서도 멜러스는 한에 맺힌 목소리를 내뱉었지만 그때 또 똑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땅!! 퍼억!
이번에는 화살이 정확히 멜러스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갔고 미간을 뚫고 나왔다. 멜러스의 몸은 이내 힘을 잃고 움직이지 않게 되었고 밀런의 기대를 받고 있던 멜러스는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렸다.
"처리했습니다."
"쩝. 아까운 인재를 잃었군."
"하지만 적이 된다면 귀찮은 존재였어."
"...그 말이 맞다. 아쉬움은 그만하고 일을 진행하도록 하지."
드리트는 품속에서 두 개의 검은 돌을 꺼내었다. 둘 다 주먹만한 크기였지만 생김새에서 차이가 있었다. 하나는 울툴불퉁한 돌처럼 생겼고 하나는 마치 가공한 것처럼 완벽한 구체를 이루고 있었다. 거기다 구체의 검은색 돌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순수한 검은색의 빛깔을 띠고 있었다.
"시작하겠다."
바르스가 한 것처럼 드리트는 두 개의 검은 돌을 바닥에 심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마법진이 생기면서 또 다른 2개의 문이 생겼다. 하지만 구체의 돌에서 생긴 문은 보다 더 커다랗고 순수한 검은 기운을 풍겨내고 있었다.
"온다."
울퉁불퉁한 돌로 만들어진 문에서는 다크엘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고 마치 끊이지 않는 줄처럼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바르스의 시선은 그들이 아닌 다른 하나의 문에 박혀있었다.
"저,저건 마,마물?!"
마계에서 살고 있는 생물을 마물이라고 일컷는다. 마물은 흉측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게 공통적인 특징이었고 동시에 익스퍼트 상급 이상이 되어야 대응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강한 생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마물들이 문을 통해서 수없이 나오고 있었다.
"놀랐나? 이게 바로 우리가 섬기는 라자드님의 힘이다."
"정,정말 놀랐습니다. 이렇게 많은 마물이라니."
수백 마리의 마물이 나와서야 문이 닫혔고 다크엘프는 여전히 끝없이 나오고 있었다.
"소리아. 너는 이곳에서 문을 지켜라. 나는 마물들과 다크엘프들을 데리고 마을을 칠 테니."
"에?! 나도 놀고 싶다고."
"이 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그리고 방어에 있어서 나보다는 네가 적합하다."
"응? 방어는 내가 너보다 강하다는 거지? 그렇게 말한다면야...알겠어. 문을 철저히 지키도록 할게."
"그럼 맡기겠다...바르스."
"예!"
"길을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바르스를 선두로 드리트를 비롯한 수백의 마물들과 다크엘프들이 뒤를 따라갔고 바르스는 그런 광경을 보고 마치 자신이 그들을 이끄는 리더가 된 것 같다는 만족감을 느꼈다. 이렇게 바르스의 배신으로 인해서 밀런의 위기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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