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라이언과 그란 왕국의 초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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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라이언과 그란 왕국의 초청(1)
로아프가 깨어난지 1년이 지나고 그런 짧은 시간 동안에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로아프는 반년 만에 4서클 마법사가 되었고 클레아와 친위대 오크들은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수련장의 효과로 인해서 믿기지 못할 만큼의 성장 속도였다.
그리고 동시에 라이언과 그란 왕국의 상황도 변해갔다.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오크와 인간 사이에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었다. 하지만 2년이란 시간은 동시에 인간과 오크를 가깝게 해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2년 전, 오크들이 라이언 왕국에 가고 인간이 그란 왕국에 왔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아직도 오크들을 싫어하고 혐오하는 이들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소수에 불과했다. 2년 동안 오크들과 왕국 각지에 파견되어 있는 암살자와 두뇌파의 노력 덕분에 인간들의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오크들의 행동과 노력하는 모습이 제일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일어났던 사건 중에 오크들이 먼저 사건을 일으킨 것은 찾기 힘들 정도로 매우 드물었다. 오크들이 강자의 말을 얼마나 순종적으로 받아들이는지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듀로크는 지난 2년 동안 그런 현상과 변화를 꾸준히 체크하여 오늘에 이르러서야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휴...그러고 보면 2년 동안 하루도 맘 놓고 쉰 적이 없었던 것 같군."
듀로크는 자신뿐만 아니라 쥬디아, 로그, 두뇌파, 암살자 등 수많은 이들도 똑같이 쉬지 못한건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것도 그들이 도와준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중에 한가해지면 휴가라도 주든지 해야겠군. 하지만 이제는 또 바빠질 예정이란 말이지."
이제 슬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듀로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목표로 하는 곳은 바로 왕성의 어전. 벨치스 국왕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어서 오십쇼. 듀로크님."
"안에 벨치스 국왕은 있나?"
"예. 계십니다. 전하께 알려드립니까?"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어전의 입구에는 경비병들이 있었는데 듀로크를 알아보고 고개를 수그리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듀로크의 말대로 큰 목소리를 내어서 벨치스 국왕에게 알려주었고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경비병들은 문을 열어주었다.
"오랜만이네. 듀로크. 항상 바빠서 보기 힘들었다는 걸 알고 있네."
"키야약~"
벨치스 국왕이 듀로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트이번도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이제는 안정권에 들어가서 조금 나아졌어. 그리고 안정권에 들어가면서 한 가지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얘기하러 왔다."
"계획이라? 뭔가?"
"아마 대륙에 있는 왕국 대부분이 우리 라이언 왕국과 그란 왕국이 동맹을 맺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지.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은 왕국들을 초청하는 거야."
"초청?"
"오크와 인간이 얼마나 잘 섞여서 지내는지 그들에게 보여주는 거지. 오크들도 언제까지 라이언 왕국에만 있을 거는 아니니까. 모든 대륙에 언젠가는 뻗어 나가게 될 거야."
"흐음...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네. 헌데 어떤 왕국에 초청할 건가? 인원수는?"
"우선 인간 왕국에만 보내려고 해. 엘프와 드워프를 부르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거든. 인원은 저번에 그란 왕국으로 왔던 것처럼 왕국당 1명 혹은 2명까지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너무 많으면 통제하기가 좀 그렇거든."
"자네가 직접 데리고 다닐 건가?"
"그렇게 해도 되고 자유롭게 관광하라고 해도 되고. 상황 봐서 결정하려고 해."
"왕국 전체에 공표하는게 좋겠나?"
"아니. 나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으니까. 다른 왕국에게도 내가 전달해줄 테니까 벨치스는 매트 왕자에게만 알려줘. 나도 소수의 인원만 얘기할 테니까."
"알겠네. 자네가 그렇게 하겠다면 그리하겠네. 나도 우리 두 왕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은 했으니까."
"좋아. 아, 그리고 보니 왕국 간의 긴급 연락망 같은 거 있지 않아?"
"있다. 과거에 그란 왕국으로 가기 전에도 사용했었지."
"그 연락망에 대해서 알려줘. 그걸로 얘기하게."
"알겠네."
아무드 국왕은 요새 이렇게 평화스러워도 되냐고 자신에게 물을 정도로 할 일이 없었다. 게덴과의 전쟁으로 입은 피해는 이미 반년 전에 모두 복구하는데 성공하였고 딱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혼자서 수련하는 것만이 하는 일이었다.
스승인 메스도 게덴의 국왕인 베로나 때문에 게덴과 나이트를 왔다갔다 왕래하고 있어서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저 여가라고 할 수 있는 거라면 메스가 들려주는 부부생활 이야기를 듣는 것뿐이었다.
"스승님도 이제 가셨으니...나도 슬슬 찾아봐야 하나?"
아무드는 진지하게 자신의 반려자를 찾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노크를 하는 이가 있었다.
"전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실로스 후작? 들어오십쇼."
아무드는 실로스 후작이 찾아온 것을 보고 조금 기뻐하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혹시 심심해 하는 저를 달래주시려 온 것은 아니겠지요?"
"하하하. 그런 점을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심심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긴급 연락망의 신호가 왔습니다."
"긴급 연락망이라면...왕국들끼리 소통했던 그 수정구슬 말입니까?"
"예."
"누구에게서 온 겁니까?"
"라이언 왕국입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지금 시급히 준비해주십쇼."
"알겠습니다."
실로스 후작은 아무드 국왕의 명을 받고 긴급 연락망용 수정구슬을 맡은 마법사를 데려왔다. 그동안 아무드 국왕은 옷차림새를 가다듬고 준비태세를 갖추었고 이내 마법사가 준비가 끝났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결해주게나."
"알겠습니다."
마법사가 명에 맞혀서 구슬에 마나를 불어넣어서 연결을 하기 시작했고 이내 수정구슬에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 나이트의 어린 왕이여."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루키드님."
현재 나머지 왕국의 사람들은 오지 않은 모양인지 일루드 국왕인 루키드만이 보이고 있었다.
"오늘 무슨 일로 모이는 건지 아는가? 갑자기 신호가 와서 연결하느라 듣지 못했네."
"저도 신호를 수신하자마자 받아서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아무드와 루키드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2명이 더 모습을 드러내었다.
"뭐야? 한창 재미를 보고 있었는데."
"오늘 대체 무슨 일이야? 기껏 왕국에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잡혔잖아."
새로온 2명은 게덴의 왕 베로나와 요리스의 왕 헤츠였다.
"베로나님. 어서 오십쇼. 스승님은 잘 계십니까?"
"응. 지금 바로 옆에 있는걸?"
"뭐? 메스가 거기에 있다고? 메스 녀석에게 나중에 한 판 붙자고 좀 전해줘라."
"들었지?...뭐?...알겠어. 메스가 바라던 바라는데?"
"좋아. 그 말 잊지 않도록 하지."
베로나의 남편 메스는 헤츠와 라이벌 같은 관계였다. 그리고 아무드에게 있어서는 스승이었다. 아무드는 그 3명과의 관계가 막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헤츠와 베로나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데 그때 1명이 또 모습을 드러내었다.
"모두 오랜만입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어서 오십쇼. 라미온님."
세레티의 대표 라미온까지 모습을 드러내면서 마지막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모인 것이다.
"정작 주최자인 라이언 왕국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군."
"킁. 오늘 대체 무슨 일로 모이는 거야? 아는 사람 있어?"
"난 모르겠는데. 하지만 왠지 재밌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재밌을 것 같은 느낌이란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드는 베로나의 말을 듣고 되물었다.
"왠지 오늘 이렇게 모이게 한 것은 벨치스 국왕의 주최가 아닌 것 같단 말이야."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군요."
아무드는 베로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3명은 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둘이서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네."
"그건 보면 알 거야. 딱 타이밍 좋게 지금 들어오고 있네."
베로나의 말대로 마지막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베로나와 아무드를 제외한 3명은 그 모습을 보고 놀라워했다.
"당신은?"
"벨치스 국왕은 어디 가고 누구야?"
"호오? 이건 좀 흥미롭군."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무표정의 가면을 쓰고 로브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인물이 누군지 아는 베로나와 아무드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 모여줘서 고맙군. 내 이름은 듀로크. 아마 다들 들어는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듀로크였습니까?"
"듀로크? 그 9서클 오크 마법사?"
"9서클 마법사를 보게 되어 영광이네."
듀로크를 처음 본 라미온, 헤츠, 루키드는 각자 한 마디씩 내뱉었다. 듀로크는 모인 5명을 한번씩 쳐다본 후에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오늘 이렇게 긴급 연락망을 통해서 연락을 넣은 이유는 한 가지 통보를 하기 위해서이다. 라이언 왕국은 그란 왕국과 동맹을 맺으면서 오크들과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 모두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교류를 시작한지 벌써 2년이 지났고 그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끝내 인간과 오크가 서로 어울려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었다. 아직도 많은 걸림돌이 있긴 하지만."
"호오?"
"그게 정말입니까?"
"사실이다."
루키드와 라미온은 흥미롭다는 듯이 되물었지만 한 명의 인물, 헤츠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흥. 오크들이 그래봤자 짐승들이지. 언제 인간에게 칼을 꽂을지 모르는 것들을 잘도 벨치스 국왕은 허가했군."
"아니. 그럴 일은 없어."
"어떻게 단언할 수 있지?"
"그럴 생각이였으면 벌써 하고도 남았으니까. 내 힘으로 라이언 왕국을 지배하는게 어려웠을 것 같아?"
"...킁."
헤츠는 맘에 안 든다는 것처럼 크게 콧소리를 내었다. 듀로크는 용병왕 헤츠가 한 발짝 물러난 것을 보고 이어서 얘기했다.
"저 용병왕처럼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겠지. 그래서 우리 왕국에 당신들을 초대하고 싶어."
"초대?"
"무슨 말이죠?"
"인간과 오크들이 같이 어울려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야. 오크들도 이제는 인간과 소통하며 같이 교류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거지. 물론 너무 많이 오면 안 되니까 왕국에서 최대 2명씩만 오면 좋겠어."
"초청이라...재밌군. 그런데 그럼 라이언 왕국에 대한 정보도 수집할 수 있는데 상관없나? 타왕국에 정보를 유출해도?"
"상관없는데? 어차피 알아간다고 해도 피해 볼 것도 아니고. 더구나 그래봤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
"무슨 말이지?"
"솔직히 이 대륙에서 우리 라이언 왕국과 그란 왕국의 동맹보다 강한 왕국은 없어."
"...그거 매우 재밌는 말이군."
"그 말은 나도 흥미롭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건가?"
헤츠와 루키드가 듀로크의 말에 적의와 비슷한 기운을 보였지만 듀로크는 가볍게 이어서 얘기했다.
"객관적인 근거를 통해서."
듀로크의 말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5명 중 아무드와 베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듀로크의 말을 인정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듀로크의 개인적인 무력뿐만 아니라 그의 곁에 있는 수많은 강자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3명으로서는 어디서 저런 자신감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킁! 그걸 확인하러 직접 가겠다! 기다려라!"
"용병왕. 기다리고 있겠다. 참고로 텔레포트 진은 열어둘 테니 1주일 후에 와라."
"안 그래도 간다고!"
헤츠는 그 말을 끝으로 수정구에서 모습을 감추었고 이어서 루키드가 얘기했다.
"나도 9서클 마법사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네. 더구나 그 자신감의 근거를 알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할 일이 있어서 못 갈 것 같네. 그래서 우리 일루드에서는 제네스를 보내겠네."
"오랜만에 뵙겠군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루키드도 이어서 수정구슬에서 사라졌고 이어서 라미온이 얘기했다.
"저희 세레티에서 상의를 거친 후에 2명을 보내겠습니다. 추후에 연락드리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라미온도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고 이내 아무드, 베로나, 듀로크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당신들은 어떻게 할 거야? 나로서는 당신들이 오는게 편한데."
"흐음...어떻게 하실 겁니까? 베로나님?"
"응? 뭐가?"
"나이트에서는 저와 스승님이 가는게 좋을 것 같은데. 베로나님도 오셔서 3명이 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흐음...그럴까? 나쁘지 않은 생각 같은데...메스도 괜찮다고 한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듀로크님. 준비되는 대로 출발하겠습니다."
"알겠다. 기다리고 있겠다."
그 말을 끝으로 3명도 모습을 감추었고 이렇게 초청이 이루어져 다섯왕국에서 중요인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용병왕국 요리스. 요리스의 국왕 헤츠는 통신이 끝나자마자 자리에 일어났다. 그리고 옆에서 듣고 있던 모리스에게 압박감을 넣으며 얘기했다.
"이번엔 내가 가겠다. 불만은 듣지 않겠다."
모리스는 헤츠가 단단히 열이 올라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럴 때 말리는 것은 오히려 역으로 안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리스는 한숨을 쉬며 얘기했다.
"알겠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
"그래야지."
"단, 조건이 있습니다."
헤츠는 의외로 모리스가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짓다가 모리스의 이어지는 말에 눈썹이 꿈틀거렸다.
"조건?"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뭐?"
"저도 동행하겠다고 했습니다."
모리스가 동행하면 사사건건 옆에서 잔소리를 하며 끼어들 것이 보지 않아도 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안 된다고 하면 분명히 모리스가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다. 헤츠는 두 가지의 고민 끝에 결국 한숨을 쉬면서 얘기했다.
"알...겠다. 동행을 허락하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 둘이 빠져도 괜찮은가?"
"실리스와 리키드에게 맡기면 어떻게든 될 겁니다."
"아우성치는 둘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군."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헤츠님을 혼자 보내는게 더 불안합니다."
"킁! 쓸데없는 걱정이다."
"아니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이동은 어떻게 할 예정이지?"
"라이언 왕국과 제일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텔레포트진으로 이동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준비를 좀 하도록 하지."
"무슨...준비 말씀하시는 겁니까?"
준비하기 귀찮다며 맨몸으로 항상 전쟁터에 나갈 정도로 헤츠가 뭘 준비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모리스는 10년을 넘는 세월 동안 모시면서 알고 있었다. 그런 헤츠가 무슨 준비를 한다고 하니 모리스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얕보인 이상 전력으로 다하는게 도리겠지. 내 장비를 챙길 테니 기다려라."
자신에게 얘기하며 장비를 챙기려고 모습을 감추는 헤츠를 보고 그가 단단히 열이 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이번 여행이 왠지 불안할 것 같다는 예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클클클. 웬일로 나를 불렀는가?"
제네스는 루키드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루키드를 찾아왔다. 책을 보며 감상에 빠져있던 루키드는 이내 책을 덮은 후에 제네스에게 얘기했다.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네."
"나에게 부탁할 일이라니. 참 오래 살고도 볼 일이군. 그래. 무슨 일인가?"
"오늘 라이언 왕국에서 초청이 왔다네."
"초청?"
"자네도 알다시피 라이언 왕국은 오크들과 교류를 하고 있지. 그런데 이번 초청은 그 교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 같네. 다른 의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군. 그런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초청은 왕국에서 1명 혹은 2명이 오면 좋겠다고 하더군. 그래서 자네가 대신 라이언 왕국에 갔다 오게나."
"클클클. 듀로크인가?"
"정답이네."
"그럴 줄 알았네. 본지도 꽤 됐고...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니...알겠네. 내가 다녀오도록 하지."
"자네라면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네."
"여행한다는 기분으로 간다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지. 그 대신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맡아주게나."
"당연하지. 어떤 일인가?"
"최근에 국경 바깥의 서쪽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보고가 들어오더군."
"서쪽이라면...나가들인가?"
"모르겠네. 하지만 평범한 나가들이라면 이상하다는 말이 들리지 않겠지. 하여튼 그 건에 대해서 조사하게나."
"알겠네. 내가 조사하겠네. 자네는 라이언 왕국에 가서 많은 것을 보고 오게나."
"클클클.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겠네."
"그러게나."
제네스는 그 말을 끝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루키드는 제네스가 말한 서쪽의 이상한 기운이라는게 계속 신경이 쓰였다. 왜냐하면 일루드의 서쪽 바다 밑에는 나가 왕국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심해 속에서 사는 나가들은 정기적으로 일루드를 공격했지만 대륙에서 제일 강한 마법왕국의 무력 앞에 항상 무산되었다. 그런데 그런 서쪽에서 이상한 기운이 감지된다고 하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세인과 비드에게 조사를 부탁하면 되겠군. 그 둘이라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정한 루키드는 곧바로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루키드는 이때 알지 못했다. 그 선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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