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카데스의 딸 로아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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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카데스의 딸 로아프(2)
그란 왕국에 있는 수많은 인간들 중에서 중요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클레아와 소피아였다. 클레아는 오크와의 연결점이 된 최초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었고 소피아는 학교를 운영하게 되는데 제일 큰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인물은 모두 듀로크라는 공통적인 접점이 있었고 그 접점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벌써 제가 여기에 온 지 반년이 지났네요."
"그러게. 시간 참 빠른 것 같아. 그런데 그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어."
"이제야 조금 안정됐지만 정말 다양한 사건들이 있었죠. 아직도 나아가야 할 길은 멀지만요."
"동감이야. 그런데 반년 동안 듀로크 오빠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했네. 텔레포트 마법진도 있으니까 깜짝 방문할까?"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아직 저와 언니가 해야 하는 일이 있잖아요?"
"농담이야. 농담. 오랫동안 보지 않아서 보고 싶다는 거지."
"그건 저도 동감해요."
소피아와 클레아는 잠옷을 입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반년의 시간은 그 두 명의 사이를 더욱 가깝게 해주었다. 애초에 듀로크라는 접점이 있었을뿐더러 그란 왕국에 있는 오크들과 인간과의 사이를 좋게 만들려는 목적 또한 같았다. 더구나 같은 집에서 생활하니 사이가 좋아지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정도였다.
그렇게 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때 문을 누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누굴까요?"
"이 시간에?"
클레아는 해가 떨어진지 오래된 밤에 누가 찾아온 것을 보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벽에 걸려있는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문에 다가간 후에 손잡이를 잡고 소피아를 바라보았다. 소피아는 클레아가 자신을 바라보는 이유를 깨달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클레아는 이내 검을 꽉 쥔 상태에서 문을 조금씩 열며 얘기했다.
"누구세요?"
탁.
문가의 틈새로 정체불명의 한 손이 한순간에 들어와서 열려고 하였다. 클레아는 그에 맞혀서 문을 일부러 열리게 놔두고 손에 쥐고 있던 검으로 문 앞에 있는 인물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인물은 그런 공격을 예상한 모양인지 가볍게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클레아는 인물이 피하는 순간 내려찍던 검의 경로를 의도적으로 비틀어서 인물의 움직임에 따라가게 했다.
"호오?"
인물은 그게 의외인지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망토로 검을 막았다. 클레아는 자신의 공격을 여유롭게 막고 검이 망토를 찢지 못하는 모습에 놀라워했다. 그와 동시에 클레아는 어 둠때문에 보이지는 않지만 감탄사의 목소리를 통해서 눈앞의 인물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듀로크 오빠!"
"듀로크 오빠라고요?"
클레아의 말에 소피아가 놀라워하며 밖으로 나왔고 인물은 조용히 빛이 비치고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무표정한 가면을 쓰고 망토를 두르며 지팡이를 잡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듀로크의 모습이었다.
"갑자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그리고 듀로크 오빠인 줄도 모르고 진심으로 휘둘렀잖아요!"
"하하하. 미안. 그런데 생각보다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그럼요. 그동안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그런데 이 시간에 진짜 무슨 일이에요?"
"저도 그건 궁금하네요."
소피아도 옆에서 클레아의 말을 거들었다. 그 둘의 말에 듀로크는 씨익 웃으며 등 뒤에 숨어있던 로아프를 보여주었다.
"어?"
"그 소녀는...누구죠?"
클레아와 소피아는 같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인형 같은 로아프의 외모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얘가 누군지는 추후에 자세히 가르쳐줄게. 지금은 너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게 있어."
"부탁하고 싶은 거요?"
"어떤 거죠?"
"이 소녀와 함께 생활해주길 바래."
"예?"
소피아는 듀로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클레아는 로아프를 자세히 쳐다본 후에 듀로크에게 얘기했다.
"먼저 들어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얘기 좀 해주세요. 그녀가 누군지 그리고 왜 같이 생활해야 하는지 말이죠."
"조금 길어질 수도 있겠는데...상관없어? 이미 잘 시간인 것 같은데."
"듀로크 오빠가 왔을 때부터 벌써 잠자기는 글렀어요."
"그런가?"
클레아가 농담 식으로 웃으며 얘기했고 듀로크도 그에 맞혀서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로아프가 쭈뼛쭈뼛하며 따라갔고 소피아가 그런 로아프를 데리고 들어갔다.
듀로크는 최대한 간략하고 압축해서 로아프가 겪었던 일과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클레아와 소피아에게 얘기해주었다.
"그런...일이 있었군요."
"너무 가혹한 것 같아요."
"그래. 겨우 12살의 나이에 겪기에는 힘든 일이지."
듀로크의 이야기를 들은 클레아와 소피아는 로아프를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로아프는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원래 죽었어야 할 제가 이렇게 살아있잖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정말 안타까웠지만...어쩔 수 없죠."
자신의 표정을 숨기려고 하는 듯이 슬픈 미소를 짓는 로아프의 모습에 소피아는 그녀의 손을 확 붙잡았다. 로아프는 그런 소피아의 행동에 놀라워하며 바라보았다.
"숨기지 않아도 돼요. 슬프면 슬프다고 하면 돼요. 그리고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가지지 마세요. 당신 때문이 아니니까요."
"...예?"
"저도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 않은 병을 갖고 태어났어요. 그래서 마음껏 움직여본 적도 없고 항상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그런 저를 계속 챙겨주시고 치료해주시려는 아버지에게 너무나 죄송했죠. 하지만 그래도 저는 알아요. 아버지는 제가 그런 생각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
"그래서 당신도 죄책감을 느낄 거에요.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고 자신이 살아있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그런 명령을 받지 않아도 됐다고요.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에요. 당신은 아버지가 원했던 대로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거에요. 그 누구보다 보람차게."
로아프는 자신에게 열정적으로 얘기하는 소피아를 보았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를 가졌음에도 마치 어른을 상대하는 것처럼 커다랗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눈빛을 통해서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을 로아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에게는 매우 크게 다가왔다.
현재 로아프에게 있어서 기댈 사람은 듀로크밖에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가졌으며 자신과 나잇대가 같은 소피아를 만났으니 그녀가 크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듀로크가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오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마워요. 그렇게 얘기해주셔서.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천만에요."
로아프와 소피아는 서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듀로크는 그런 분위기에 만족하며 테이블을 탁 치고 얘기했다.
"자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로아프.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오크들이 많은 것을 봐서 여긴 오크들의 왕국인가요?"
"맞아. 텔레포트하고 곧바로 이동해서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여긴 오크들의 왕국. 그란 왕국이라고 해. 나와 그란이 설립한 곳이지."
"그럼 듀로크님도 오크에요?"
듀로크는 로아프의 말에 가면을 벗어서 맨 얼굴을 보여주었다. 로아프는 오크의 얼굴을 가진 듀로크를 보고 조금 놀라워했고 듀로크는 이내 다시 가면을 쓰며 얘기했다.
"이런 오크들의 왕국에 너를 데려온 이유는 몇 가지가 있어. 첫째는 너를 빠르게 성장하게 만드는데 최고의 조건이 이곳에 있거든."
"듀로크 오빠. 수련장을 말하는 거에요?"
"맞아."
클레아의 말대로 왕성의 수련장에는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여 고농도의 마나를 유지하게 해주는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마나를 숨 쉬듯이 흡수하는 로아프에게 있어서 그 마법진은 이 세상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여기 있는 소피아와 클레아를 소개시켜주려고 한 거야. 로아프, 너가 자는 동안 흐른 세월의 시간 때문에 네가 아는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너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을 거야. 시간이 흐르는 동안 너는 자면서 성장이 멈추었으니까. 그래서 여기 있는 소피아와 친구하고 클레아를 친한 언니로 받아들였으면 해. 너희들은 괜찮지?"
"예. 저는 오히려 친구하자고 하고 싶은 걸요?"
"저도 상관없어요."
"봤지? 이래 봬도 괜찮은 얘들이야. 어떻게 할래? 여기서 생활할래? 아니면 다시 라이언 왕국으로 갈까? 라이언 왕국으로 가도 나쁘지 않아. 엘프인 나르샤한테 부탁해도 되니까."
로아프는 자신이 울 때 따뜻하게 안겨주던 나르샤를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있을 곳은 여기라는 것을 로아프는 알고 있었다.
"듀로크님. 감사해요. 저를 위해서 그렇게 신경 써주시다니...여기에 남을게요."
"그래? 클레아와 소피아도 확실한 거지?"
"예."
"예."
"그럼 여기는 3명이서 생활하기에는 조금 불편한 것 같네. 내일 내가 3명이서 살 집을 알아볼 테니 오늘만 여기서 자. 알겠지?"
"알겠어요."
"그럼...로아프."
"예?"
"감성깊은 소녀들끼리 즐거운 밤 보내렴."
듀로크는 그 말을 끝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로아프는 클레아와 소피아를 바라보았다. 클레아는 이 중에서 자신이 제일 언니라는 것을 깨닫고 먼저 나서서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말을 터는 게 어떨까? 소피아랑 같은 나이인 것 같으니까 친구를 하면 될 것 같은데."
"저는 찬성이에요. 로아프는 어때?"
"저도...좋아요. 잘 부탁해요. 클레아 언니. 그리고 소피아도."
이렇게 3명의 소녀는 이날을 계기로 만나서 친해졌고 다양한 대화를 나누며 잠에 들었다. 로아프는 친한 친구와 언니가 생겼다는 기쁨을 느끼면서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다음 날. 듀로크는 3명이 새로 살 집을 구하는데 성공하여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아프는 새로운 집을 향해 이동하다가 처음으로 자세히 보는 그란 왕국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제는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이동하여 몰랐는데 엄청나게 많은 오크들과 다양한 종류의 건물들. 그리고 엄청나게 활기찬 모습과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로아프에게 있어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런 감정이 표정을 통해서 나오는 모양인지 듀로크는 클레아와 소피아에게 로아프를 데리고 그란 왕국의 구경시켜달라고 얘기했다. 그의 말에 클레아와 소피아는 가볍게 받아들인 다음에 로아프를 데리고 그란 왕국을 구경시켜주었다.
학교, 노점, 대장간, 목욕탕, 훈련장 등 하루 동안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주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아서 사람이 많은 곳에 가보지 못했던 로아프에게 있어서 그만큼 진귀한 경험은 없었고 소피아는 그런 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서 그런지 로아프를 계속 이끌고 나서면서 구경시켜주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웃으며 즐겁게 지낸 3명의 소녀가 새로운 집으로 왔을 때는 이미 짐이 모두 옮겨진 상태였다. 마침 짐을 모두 옮긴 듀로크는 이내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얘기했다.
"로아프. 재밌었니?"
"예.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것보다 더요."
"다행이구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보다 더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거다. 그러니 열심히 살아가렴."
"...예!"
듀로크는 로아프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에 클레아와 소피아를 향해 얘기했다.
"짐은 모두 옮겼으니까 풀기만 하면 될 거야. 그리고 로아프는 내일부터 마법 수련을 하자."
"어? 그럼 듀로크 오빠. 한동안 여기 있는 거에요?"
"로아프가 어느 정도 마법을 익힐 때까지는 그래야 할 것 같은데?"
"앗사! 그러면 저도 종종 가르쳐주세요! 어차피 저도 수련장에서 수련을 하니까요!"
"알겠다."
"예이!"
"히잉~ 저는 학교를 가야 해서..."
클레아는 대놓고 좋아했고 소피아는 시무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듀로크는 그런 소피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얘기했다.
"학교 끝나고 오면 되잖아? 시무룩하지 마렴."
"예. 그럼 그렇게 할게요."
로아프는 그런 모습을 보고 클레아와 소피아가 듀로크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듀로크를 안지 이틀밖에 안됐지만 오크같지 않는 그의 모습에 호감을 가질 수도 있다고 로아프는 생각했다. 하지만 둘이 듀로크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로아프는 그날 밤, 잠에 들기 전에 둘에게 물어봤다.
"클레아 언니."
"응?"
"듀로크님을 좋아하세요?"
"응."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클레아는 대답했다.
"소피아도?"
"응."
소피아의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렇게 단번에 대답할 수 있는 이유를 로아프는 알고 싶었다.
"왜 둘 다 듀로크님을 좋아하는 거에요?"
"으음...그러고 보니 우리 얘기를 하지 않았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괜찮아?"
"예. 저도 클레아 언니와 소피아의 이야기를 듣고 싶거든요."
"그럼 얘기해줄게."
상당한 시간을 투자한 끝에 로아프는 둘의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이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험난한 삶을 살았고 모두 듀로크에 의해서 구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저도 듀로크 오빠를 좋아해야 하나요?"
"아니. 그건 너의 자유지.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게 아니야. 네 마음이 정하는 거지."
"그런가요?"
"그래. 좋아한다는 것은 상대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고 계속 같이 있고 싶고 많은 것을 하고 싶어지는 거야."
"복잡...하네요."
"어차피 모르고 싶어도 나중에는 알게 될 거야. 급할 거 없어. 로아프는 내일부터 마법 수련이지?"
"예."
"수련을 하려면 숙면을 취하는게 좋을 거야. 수련은 생각보다 힘들거든."
"알겠어요. 그럼 이만 잘게요."
"그래. 잘 자."
로아프는 눈을 감으면서 좋아한다는 것이 뭔지 계속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생활을 해보지 못한 그녀에게 있어서 좋아한다는 감정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클레아의 말대로 언젠가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로아프는 잠에 들었다.
수련장에는 이미 오크들이 수련을 하고 있었다. 수십이 넘는 오크들이 일제히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에 로아프는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수련장의 공기가 바깥과 많이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처음에 듀로크가 보여주었던 찐득찐득한 느낌의 마나. 그것이 공기 중에 가득 차 있었다.
"찐득찐득해요."
"그렇지? 여기는 바깥과 다르게 마나가 몇 배는 모여있단다. 그래서 수련하기에 좋은 곳이지."
듀로크는 로아프에게 얘기하면서 마법 가방 속에 있는 1서클 마법서를 꺼내었고 이내 마법서를 로아프에게 넘겨주었다.
"이건?"
"이게 마법서란다. 마법서는 마법사들이 제일 원하는 물건으로 서클을 올리는데 보다 쉽게 도와주지."
"서클이요?"
"마법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단계란다. 1서클부터 9서클까지 존재하고 서클이 올라갈수록 더욱 많은 마나가 필요하지만 그만큼 효율이 더 높다."
"그렇군요."
"보통 인간 마법사들이 마나를 느끼고 1서클 마법사가 되는데 1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또 서클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걸리는 시간이 기하학적으로 증가한다."
"1년이나요?"
로아프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것에 깜짝 놀라워했지만 듀로크가 손가락을 흔들며 얘기했다.
"잊어먹은 거냐? 너는 벌써 마나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아..맞다."
"네가 보통 인간 마법사와 같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너는 그들보다 몇십 배는 빠른 속도로 마법을 터득할 수 있을 거야. 실험을 해볼까?"
"실험이요?"
"그래. 마법서의 아무 곳이나 펼쳐보렴."
로아프는 듀로크의 말대로 마법서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았다. 그리고 듀로크는 로아프가 펼쳐본 페이지를 보고 얘기했다.
"음...이건 라이트 마법의 설명과 공식이 적혀져 있네. 책은 읽을 줄 알아?"
"어느 정도는요."
"그럼 여기 설명대로 한번 해보렴."
"알겠어요."
문자를 완전히 익히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로아프는 마법서에 적혀져 있는대로 따라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마법서에 적혀져 있는 설명대로 하다가 로아프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이건..."
"뭘 모르겠어?"
"공식까지는 어떻게 했는데 마나를 사용한다는게 뭔지 모르겠어요."
"자. 공기 중에 마나가 떠돌아다니는게 느껴지지?"
"예."
"그 마나를 흡수해서 심장에 모아두는 거야. 무슨 이미지인지 알겠어?"
"한번 해볼게요."
로아프는 주위에 떠다니는 마나에 집중하고 자신의 몸에 흡수하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마나가 자신의 몸으로 조금씩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좋아. 그 흡수한 마나가 혈액을 타고 심장으로 가는 이미지를 떠올려."
듀로크의 말대로 로아프는 흡수한 마나가 심장을 중심으로 모이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러자 몸에 흡수되어 정체하고 있던 마나들이 아주 조금씩 심장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느린 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속도는 빨라졌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심장에 조금씩 마나가 쌓이는 것이 느껴지니?"
"예."
"그럼 심장에 마나를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채워보렴."
"알겠어요."
듀로크의 말에 따라서 로아프는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듀로크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취이익?"
"취익~ 마나가 사라진다?"
수련하던 오크들이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듀로크도 예상외로 일어나는 일에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건?"
수련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농축된 마나가 로아프를 중심으로 모두 흡수되고 있었다. 듀로크는 원래 로아프가 일부분의 마나만 흡수할 거라고 예상해서 그렇게 얘기했었다. 그런데 마치 마나를 먹는 괴물처럼 로아프는 수련장에 쌓여있던 막대한 마나를 흡수하고 있었다.
듀로크는 이내 수련장에 있던 마나를 흡수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밖에 있는 마나까지 모두 흡수하려는 것을 보고 로아프를 멈추기로 했다.
"로아프! 멈춰!"
"...예?"
듀로크가 로아프를 멈추게 하려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로아프가 자신의 그릇에 맞지 않게 마나를 과도하게 흡수해서 마나 중독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였고 두 번째는 밖의 마나까지 흡수하면 자칫하다가 생태계가 파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로아프는 집중하고 있다가 갑자기 듀로크가 소리를 지르자 깜짝 놀라워하며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너...괜찮니?"
"예. 멀쩡한데요?"
듀로크는 로아프가 마나 중독현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그리고 듀로크는 로아프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심장에 어느 정도 마나가 찼니?"
"잠깐만요...10% 정도 찬 것 같아요."
"10%?!"
"예...뭐가 잘못됐나요?"
"잠깐만 그대로 서 있어. 스캔!"
로아프의 말을 들은 듀로크는 스캔 마법으로 로아프가 거짓말을 하는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없다. 그리고 스캔 마법을 통해서 관찰한 결과 로아프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수련장에 있던 막대한 마나가 심장에 모여있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얼추 알 수 있었다.
"...그렇군. 그렇게 된 일이었나?"
"뭐가 잘못되었나요?"
듀로크의 심상치 않은 말에 로아프는 조금 두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듀로크가 로아프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얘기했다.
"아니. 놀라워서 그만 불안감을 주었구나."
"놀랍다고요?"
"그래. 사실대로 말하자면 너는 지금 8서클 마법사에 버금가는 그릇을 가지고 있단다."
"예? 8서클 마법사? 그릇?"
로아프는 듀로크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되물었고 듀로크는 차근차근 얘기해주기로 했다.
"그릇은 마나를 흡수할 수 있는 양을 말해주는 것으로 사람마다 제각각의 그릇을 가지고 있지. 마법사도 마찬가지로 그릇이 존재하며 서클이 높아질수록 이 그릇이 점점 커진단다."
"예."
"예를 들어서 5서클 마법사는 1서클 마법을 수십 번 사용할 수 있단다. 왜냐하면 그만큼 그릇이 크기 때문이지. 이해할 수 있겠지?"
"예...잠깐만요. 그렇다면 좀 전에 8서클에 버금가는 그릇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데...제가요?!"
"그래."
로아프는 듀로크의 말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왜,왜죠?!"
"내 생각에는 2가지 원인 때문인 것 같아. 첫 번째는 네 선천적인 병 때문일 가능성이 있어. 그릇을 키우는데 가장 좋은 점은 그릇에 가득차 있던 마나를 모두 버리고 다시 채우는 것이란다. 그런데 네 몸은 선천적인 병 때문에 마나가 항상 부족하여 그릇이 빈 상태였지. 그래서 그릇은 조금이라도 마나를 흡수하려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키웠을 거야. 마치 가뭄이 잦은 곳의 나무들이 뿌리가 깊은 것처럼."
"병 때문이라니...두 번째는요?"
"두 번째는 내가 네게 새겨넣은 마법진과 라자드의 마법진 때문인 것 같아. 좀 전의 비유인데 가뭄이 잦은 곳의 나무에 비가 정기적으로 온다면 나무는 어떻게 될까?"
"커지지 않을까요?"
"맞아. 안 그래도 가혹한 환경 속에서 자란 나무인데 거기에 비까지 오면 나무는 순식간에 커지겠지. 그처럼 마른 그릇에 정기적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마나에 의해서 그릇이 더욱 거대해진 것 같아."
"놀,놀랍네요. 제 그릇이 그렇게 크다니."
"마법사들이 서클을 올리는데 있어서 마법 공식의 문제점도 있지만 제일 큰 벽은 그릇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런데 네 그릇은 벌써 완성되어있다고 과언이 아니야."
"그렇다는 말씀은?"
"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마법을 익힐 거야. 아까 라이트 마법의 공식과 설명은 외웠니?"
"예."
"그럼 적혀져 있는 대로 따라 해봐."
로아프는 마법서에 적혀져 있던 설명대로 공식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리고 심장에 돌고 있는 마나의 일부분을 사용하면서 입을 열었다.
"라이트."
로아프의 머리 위에 조그마한 빛의 구체가 생성되었다. 빛의 구체는 주위를 밝히면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주고 있었고 로아프는 자신이 만든 마법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듀로크를 쳐다보았다. 듀로크는 그런 로아프의 시선에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며 얘기했다.
"1서클 마법사가 된 것을 축하한다."
"제가 마법사가 된 거에요?"
"그래. 아마 네 재능과 그릇을 생각하면 4,5서클을 올라가는데는 어려움이 없을 거야. 그 이후부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로아프. 너라면 충분히 빠르게 강해질 수 있을 거란다."
"예! 열심히 할게요!"
로아프는 이렇게 마법사의 길을 걷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서, 역사상 최연소의 나이로 8서클 마법사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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