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인간과 오크(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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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인간과 오크(13)
소피아는 그란 왕국으로 이주한 후에 처음으로 가는 학교에 심장이 조금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 설렘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빠르게 일어나서 준비하기 시작했고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같이 생활하는 클레아도 침대에서 일어났다.
"학교 가는 거야?"
"예. 언니는 더 자세요. 오늘도 수련하러 가시려면 좀 더 체력을 비축하셔야 하니까요."
"아니야. 어차피 일어났으니까. 거기다 체력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돼. 이제는 웬만해서 지치지도 않거든."
"정말요?"
"그럼. 오크 오빠들과 같이 수련하다 보면 체력이 붙고 싶지 않아도 알아서 붙게 되어있지."
"헤에~ 굉장하네요."
"나는 오히려 네가 더 굉장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보다 몇 살이나 어리면서 그렇게 어려운 책을 읽는지 존경스러워."
"헤헤. 제가 장점으로 내세울 것은 머리밖에 없으니까요."
"장점이 왜 머리밖에 없어? 마음씨도 좋아, 귀엽기도 해, 붙임성도 있어. 얼마나 많은데."
클레아는 손가락으로 하나씩 굽히며 얘기했다.
"에이~ 하지 마세요. 부끄러워요."
"호호호. 미안. 그런데 학교는 오늘부터라고 했지?"
"예."
"그럼 오늘부터 조금 힘들 수도 있으니까 마음을 다지고 가."
"뭐가 힘들다는 거죠?"
"너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 학생들도 많을 거야. 하지만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겠지. 모두 오크를 싫어하고 혐오하는 반응을 보일 거야. 그런 그들을 네가 다가가서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니까. 쉽지 않을 거야."
"알고 있어요. 충분히 예상했고요."
"그래. 너는 똑똑하고 어른스러우니 잘 헤쳐나가겠지. 하지만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혹시나 너를 괴롭히는 녀석이 있으면 이 언니에게 슬쩍 얘기해? 내가 묵사발로 만들어줄 테니까."
"예. 꼭 그럴게요."
클레아는 알통을 보여주며 얘기했고 소피아는 그런 클레아의 행동에 미소를 지어주었다. 소피아는 그런 클레아의 말에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을 느끼며 학교를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간대에 똑같이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이가 있었다.
"휴...드디어 오늘이군."
피터는 오늘부터 학생을 가르칠 생각에 가슴이 계속 뛰는 것을 느꼈다. 그란 왕국으로 와서 선생 역할을 맡은 이들은 총 4개의 과목을 가르쳤다. 첫 번째는 역사였다. 역사라고 해도 주로 어떤 전쟁이 있었고 병력들이 무슨 지형에서 싸우며 어떤 전략을 취했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역사를 가르쳐주면서 동시에 병법도 알려주는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전쟁에서 그들이 실수했던 점과 성공했던 점을 가르쳐주고 그런 경우에는 이런 전략을 쓰면 된다고 일가견 하게 얘기해줘야 한다. 그렇기에 병법에 빠삭한 이들이 맡게 되었다.
두 번째는 문자였다. 문자를 아는 것은 소통하는데 매우 필요할뿐더러 모든 행동의 기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크들 중에서 문자를 아는 이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문자를 가르쳐주는 선생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피터가 맡은 역할이 이것이었다.
세 번째는 상식 및 문화였다. 그란 왕국에 있는 오크들은 인간의 문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과의 문화 차이 때문에 서로 간에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런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 오크들에게 인간의 문화를 가르쳐주는 역할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하는 선생들도 오크들의 문화를 알아야 했다. 개인적으로 피터는 이 역할이 제일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인간과 오크의 문화 차이는 하루 아침에 생성된 것이 아니고 수천 년 동안 쌓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엄청난 차이를 메꾸려고 하는 것이 힘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네 번째는 농사였다. 오크들은 과거에 농사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 그란 왕국에는 오크들이 농사를 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수천년 동안 농사를 했던 인간 왕국과 이제 막 농사를 시작한 그란 왕국과의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예로 그란 왕국에서 수많은 오크들이 농사를 시도하고 있지만 성공률은 극히 낮았다.
그렇기에 농사에 빠삭한 이들이 오크들에게 농사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그 외로 마법선생이 있었지만 그것은 마법병단원들이 하는 역할이었고 두뇌파 인원들이 맡은 역할이 아니였다.
"무력,지식,식량. 힘을 갖추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3가지. 역시 듀로크님은 주도면밀하시네."
이주한지 하루가 지났을 때 인형이라고 불리는 이들에게서 지시가 내려져 왔다. 선생들에게는 4가지의 역할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내용이였다. 피터는 문자와 문화에서 고민을 했지만 문화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문자를 선택했다. 그렇게 선택한 후에 시간이 흐르고 어제 저녁 시간에 또 연락이 왔는데 오늘 아침에 특정 장소로 모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피터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면서 집에서 나와 지정된 장소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후...침착하자. 누구를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해도 이렇게 떨 필요는 없잖아."
피터는 항상 누군가를 보조하고 앞으로 나선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이 다른 이들을 가르치며 주도적으로 나서야 했다. 몇 명이 자신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지 몰라도 그들을 돌봐주고 가르쳐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그런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내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면서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긴장과 기대가 섞인 마음으로 지정된 장소로 갔는데 놀랍게도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피터는 눈에 익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봐서 그들이 자신과 똑같이 선생 역할을 받은 두뇌파 인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원은 약 30여 명. 모두 다 자신과 같은 역할을 받았는지 궁금해하는 찰나에 인형이라고 불리는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서 오십쇼. 당신들은 모두 문자를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이고 오늘부터 학생들이 당신들의 가르침을 받을 겁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동하겠으니 저를 따라오십쇼."
인형은 이내 걸어가기 시작했고 피터를 비롯한 30여 명은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계속 인형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한지 약 5분이 지났을 시점에 한 명의 인물이 인형에게 얘기를 걸었다.
"궁금한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쇼."
인형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속 걸어가며 얘기했다.
"당신 이름 좀 알 수 있을까요?"
"이름은 딱히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칭호로 부르고 싶으시다면 메이드 37이라고 불러주십쇼."
"메이드 37?"
인형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질문을 한 남성은 계속 얘기했다.
"저희가 가르칠 학생은 몇 명입니까?"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한 분당 100명 정도 됩니다. 물론 오크와 인간 합쳐서 입니다."
"100명?!"
"그렇게 많다고?!"
다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에 놀라워했다.
"예. 이번에 입학하는 학생의 인원은 인간 1390명, 오크 1615명입니다. 약 3천여 명이 입학합니다."
"3천여 명?!"
"장,장난 아니네."
생각보다 스케일이 훨씬 큰 것을 알아서 그런지 피터를 비롯한 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은 8세부터 15세까지를 중점적으로 뽑았고 오크는 2세부터 8세까지로 뽑았습니다."
"오크는 왜 그렇게 나이가 적은 겁니까?"
"오크는 인간보다 훨씬 빨리 성장합니다. 보통 반년이면 성장이 끝납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만 그렇게 빠르게 성장하고 정신적으로는 느리게 성장합니다. 그런 조건을 생각해서 2세부터 8세까지로 정했습니다."
"호오. 그렇군요. 오크들과 그런 차이점이 있을 줄이야."
"참고로 오늘은 로그님의 연설이 있을 예정입니다. 그와 같은 일정 때문에 오늘은 제가 인솔하지만 내일부터는 각자 오셔야 하기 때문에 길을 미리 외워두시기 바랍니다."
"저, 질문이 있습니다."
"얘기하십쇼."
"당신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노골적으로 대시하는 티를 팍팍 내는 20대의 남성에 다른 이들은 킥킥 웃었다. 하지만 다음에 인형이 말하는 말에 그들은 멍 쩍인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태어난지 정확히 672일 22시간 18분 되었습니다."
"...예?"
"2...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요?"
그들은 인형이 하는 말을 믿지 못했다. 왜냐하면 인형의 외견은 아름다운 20대의 여성으로 태어난지 2년도 안 됐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더구나 정확히 시간을 얘기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은...인간이 아닌 겁니까?"
"예. 저는 듀로크님에 의해서 태어난 마법 생명체입니다."
"마,마법 생명체?!"
"키,키메라...키메라는 원래 불안전한 창조물이 아닌가?"
"보통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듀로크님은 평범한 마법사들과 차원이 다릅니다. 비록 제게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고 아직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만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인간으로 밖에 안 보이는데."
"맞아. 그냥 얘기해봐도 감정의 변화가 적은 인간으로 밖에 안 보여."
"듀로크님은 대체 무슨 경지에 올라간 거지?"
인형의 말에 두뇌파 인원들은 모두 감탄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어느새 도착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인형의 말에 30여 명의 인원은 고개를 들어서 눈앞의 광경을 봤는데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건물에 입이 쩍 벌어졌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엄청난 평원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건물이 있었다.
건물의 크기가 라이언 왕국의 왕성만하다고 할 정도로 그 크기는 압도적이었다.
"저,저게 무,무슨 건물입니까?"
"당신들이 일할 장소인 학교입니다."
"저,저 건물이 학교라고요?! 저,저렇게 큰게?!"
"...자원이 남아도는가 보네."
"그란 왕국은 오크들의 노동력과 드워프의 설계력, 그리고 풍부한 자원이 있습니다. 이런 건물을 짓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건 알고 있었지만...실제로 보니 정말 말이 안 나오는군요."
"마침 다른 학생들과 선생들도 오는 모양입니다. 이동하겠습니다."
피터는 인형의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그녀의 말대로 인형들이 몇십 명씩 인솔하면서 학교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학생들과 선생까지 합쳐서 총 3천명이 넘는 이들이 학교로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소피아는 집에서 나온 후에 지정받은 장소로 이동했다. 어제 자신을 집사 42라고 소개한 남성이 찾아와서 내일 몇 시에 어디로 모여달라고 얘기를 해주고 갔다. 소피아는 그 말에 알겠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남성은 처음 봤을 때부터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는데 소피아의 말을 듣고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졌다.
소피아는 그것을 보고 뭔가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이내 클레아에게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바로 듀로크가 만든 마법 생명체라는 것이었다.
'클레아 언니가 그렇게 얘기했으니 사실이겠지. 하지만 인간과 똑같이 생겼고 대화도 평범했는데...쉽사리 믿기가 힘드네.'
소피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지정받은 장소로 걸어갔는데 이미 상당수의 인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한 소피아는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소피아의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고 조금 더 성장해서 청년과 소녀의 모습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그것만 보면 그냥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그 반대측에는 오크들이 서 있었다.
인간은 키와 분위기가 나잇대 별로 각자 다른 것에 비해서 오크들은 대부분 비슷한 키와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약 150cm의 키에 돼지 같은 얼굴과 통통한 몸매. 그리고 초록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콧소리를 내고 있었다. 가슴이 튀어나와 있느냐 아니냐를 통해서만 성별의 구별이 가능할 정도로 그들의 모습은 비슷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소피아는 오크들의 눈망울에서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다른 학생들은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대놓고 혐오하는 표정을 지으며 오크들에게 다가가기 싫어하는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소피아는 그럴 거면 왜 그란 왕국에 오려고 지원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크들에게 다가갔다.
"어?"
"저,저기!"
인간 소녀와 소년들은 아무런 주저도 없이 오크들에게 다가가는 소피아를 보고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소피아는 그들이 뭐라고 하던 무시하고 오크들에게 다가갔다. 오크들도 그런 소피아를 보고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취익~ 너는?"
"안녕하세요. 저는 소피아라고 해요. 오늘부터 학교 생활을 같이 하게 되서 기뻐요."
"취익~ 나는 크로크라고 한다. 나도 기쁘다."
"저 학생들은 아직 어색하고 낯가림이 있어서 그러는 거에요. 그러니 오크분들이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뭐?"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소피아의 말을 들은 소녀와 소년이 반발했다. 하지만 그런 반발에도 소피아는 오크들을 계속 쳐다보았고 오크들은 당황하면서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취익~ 알겠다."
"취직~ 이해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소피아는 그 말을 끝으로 오크들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인간 학생들을 향해 다가왔다. 이번에는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소피아를 본 몇 명의 학생들이 소피아를 향해 얘기했다.
"대체 너는 누구길래 오크들과 대화를 자연스럽게 하는 거야?"
"오크들이 싫지 않아?"
"우리 인간과 다른 오크들의 모습에 다가가기 힘들어 보이지만 그건 그들의 외적인 모습만 보고 얘기하는 거에요. 그들이 내적으로 얼마나 순수한지 모르고 있어요."
"순수?"
"예. 그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해본 적이 있어요? 대부분 다가가지도 않았겠죠.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당신들은 그란 왕국에서 계속 생활하면서 오크들과 만나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그건..."
"불,불가능하겠지."
"그래요. 그럼 오크분들과 사이가 좋아지는게 훨씬 이득이겠죠?"
"그,그런가?"
"네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 학생들은 자신들보다 훨씬 나이가 적어 보이는 소피아의 말에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 자신보다 어린데도 말을 유창하게 하며 일가견 하게 말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소피아가 오크들과 인간 양쪽을 설득하는 사이에 집사 42라고 말한 인형이 그들을 향해 얘기했다.
"이제 이동하겠습니다. 모두 저를 따라오십쇼."
그의 말에 오크들과 인간 학생들은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고 이내 몇 분이 지나서 엄청나게 거대한 건물을 볼 수 있었다. 라이언 왕국에 있을 때 학교를 다녀본 소피아도 차원이 다른 크기와 스케일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고 그것은 인간 학생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런 반면에 오크들은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소피아의 그룹이 학교를 향해 이동하는데 동시에 다른 수십 개가 넘는 그룹도 모두 학교를 목표로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3천여 명이 넘는 인원이 학교 앞에 있는 대평원에 모였고 집사와 메이드의 말에 열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한 명의 인물이 공중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인물의 정체는 바로 로그였다.
"안녕하십니까. 학생들과 선생 여러분들. 오늘부터 학교 운영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얘기해드릴 것이 있기에 이렇게 제가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로그의 말에 모든 이들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학생만 인간 1390명, 오크 1615명으로 총 3천여 명이 넘습니다. 이렇게 많은 두 종족이 한 장소에 모여있으면 충돌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죠. 하지만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용납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저는 불화 및 사건을 일으키는 이들에게 제재를 가할 예정입니다."
"어떠한 제재죠?"
"인간분들이 그란 왕국으로 거주해온 이유 중 제일 큰 하나가 바로 배분되는 재산을 받기 위해서 일겁니다. 그래서 이 학교 내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충돌이 생기면 그 재산의 일부를 빼앗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산이 떨어질 때까지 사건을 일으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그러면 더 질이 떨어지는 집으로 이사시킬 겁니다. 거기서도 멈추지 않는다면...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로그의 말에 상당수의 인간 학생들이 불만을 가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로그는 이어서 얘기했다.
"물론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애초에 재산을 노리고 말썽을 피울 생각이었으면 누가 받아주겠습니까? 특혜를 받는 만큼 그에 맞는 행동을 보여주는게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크들에게도 제재가 있을 겁니다."
로그는 오크들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그들에게는 정기적으로 주어지는 돈이 있습니다. 바로 양육비입니다. 물론 자식들을 양육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거꾸로 자식이 없으면 주는 돈입니다. 하지만 사건을 일으킨다면? 이 돈을 줄일 예정입니다."
"취익?!"
"취췩..."
오크들은 로그의 말에 일제히 놀라워하며 시무룩했다. 하지만 로그에게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로그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에게 말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인간 학생들은 로그의 말을 단번에 받아들이는 오크들을 보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 정책은 저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고 듀로크님도 고안해내시고 결정하신 겁니다. 듀로크님의 말로는 그란 왕국에 왔으면 그란 왕국의 법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로그의 말에 무슨 말을 하고 싶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결국 입밖으로 그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반 배정에 들어가겠습니다. 집사와 메이드들은 모두 얘기했던 대로 학생들을 반으로 배정하도록 하고 선생들은 남아주시기 바랍니다."
로그의 말에 학생들을 인솔해 온 집사와 메이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학생들이 그 뒤를 따라가면서 학교로 이동했다. 그리고 로그는 남은 선생들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선생님들은 절 따라오십쇼. 교무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교무실?"
"예. 선생님들이 있을 공간입니다."
피터를 비롯해서 선생은 약 120 명정도 되었다. 피터는 과목당 30명의 선생으로 총 4개의 과목이기에 120명 정도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로그의 뒤를 따라갔다. 로그는 학교를 향해 이동하면서 그들에게 얘기했다.
"이 학교는 듀로크님의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드워프와 오크들이 손길을 거쳐서 탄생한 겁니다. 겉은 주로 콘크리트를 사용해서 만들었고 중간중간 창문을 넣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부의 교실과 교무실 및 화장실도 비슷한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로그는 선생들을 학교로 들이며 계속 이야기하였다. 선생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학교의 모습에 놀라워하며 로그의 말에 귀 기울여 들었다.
"교실마다 나무로 만든 책상과 의자가 100여 개 존재하며 칠판과 분필 그리고 지우개까지 존재합니다. 라이언 왕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는지 모르겠지만 이와 같은 장비는 모두 듀로크님의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어떤 것보다도 가르치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로그의 말을 들으며 교실을 슬쩍 지나가면서 본 광경에 선생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 중에서 선생을 했던 이들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보이는 교실의 광경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학교도 소수의 귀족 자녀들만 다니는 것으로 과외형식으로 수업하여 따로 교육자재가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교육을 위해서 만든 자재만으로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란 왕국이 교육에 대한 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했는지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참고로 학교는 9시부터 6시까지 운영될 예정입니다. 11시부터 12시까지는 점심시간으로 하루 8시간 수업합니다. 하루에 총 4교시로 1교시마다 2시간씩 수업을 하고 한 분당 4개의 클래스를 맡을 예정입니다."
로그는 신기해하면서 듣고 있는 선생들을 데리고 교무실이라고 적혀져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여기가 교무실. 선생님들이 교재를 준비하거나 개인적인 물건을 놔둘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여기가...우리의 공간?"
"이렇게 커다란 공간이 저희만의 공간이라는 겁니까?"
로그의 말에 그들은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교무실에는 각자 이름이 적혀져 있는 책상이 따로 있었고 그 위에는 교재 및 필요한 각종 도구들이 준비되어있었다. 교무실 자체도 120명의 개인적인 공간을 위해서 엄청난 부피를 차지하고 있었고 내부도 교실에 비해서 질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좋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선생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을 위해서 이렇게 만들어준 것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듀로크가 이렇게 선생들을 대우해주는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그럼 모두 9시가 되면 수업을 시작해주시기 바랍니다. 누가 어떤 반을 맡을지는 여기다가 적어두었으니 보고 가시기 바랍니다."
로그는 그 말을 끝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선생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적힌 책상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떡하니 적힌 책상과 부속품들을 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정말 대우가 좋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선생이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게 많은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피터는 자신이 무슨 반에 배정되었는지 보러갔다. 게시판에는 선생의 이름과 1반부터 30반 중에서 어떤 반을 맡아야 되는지 적혀져 있었고 피터는 자신이 5반부터 8반을 맡는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피터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서 책상에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봤다. 책상은 나무와 무슨 재질로 되어있는지 알 수 없는 재료로 만들어져 있었다. 서랍 공간이 밑에 존재하였고 혼자 사용하기에는 좀 크다고 느껴질 정도로 책상의 공간은 충분했다.
책상 위에는 펜과 책을 걸 수 있는 책꽂이가 있었고 컵과 학교의 원칙이 적혀져 있는 책이 있었다. 이어서 피터는 서랍장을 열어봤는데 서랍장에도 몇 가지의 물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출석부로 5반부터 8반까지 반마다 배정된 인간과 오크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금속재질로 만들어져 있는 봉이 있었다. 피터는 그 봉이 있는 의도를 알 수 없었는데 그것을 미리 예상한 모양인지 설명서도 같이 옆에 나란히 들어있었다.
[이 봉은 수업을 하면서 칠판을 가리키거나 누구를 지목할 때 사용하는 용도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1서클 라이트 마법이 내재되어있는 마법 봉으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시전어는 '켜져라'로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마법 봉이라고?...켜져라."
피터는 적혀져 있던 대로 시전어를 얘기했고 그와 동시에 봉의 꼭지점에서 빛이 일직선으로 나왔다. 빛은 빨간색으로 손톱만한 점의 크기로 나왔는데 피터는 이 점을 통해서 지목하라고 만들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 마법 봉도 듀로크가 생전에 있었던 레이저 빔을 떠올리고 만들게 한 것이었다.
피터는 마법 봉을 신기해하면서 출석부와 함께 챙기고 미리 교실로 가기로 했다. 자신의 시간표를 보니 1교시는 5반이었고 2교시는 6반, 3교시는 7반, 4교시는 8반으로 되어있었다. 주 6일 근무제로 하루를 쉴 수 있고 6시 이후에는 자유시간인 것을 보고 피터는 상당히 스케줄이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5반을 향해 이동했다.
학교는 총 4층으로 되어있는 것 같았고 교무실은 맨 꼭대기층인 4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1반부터 10반이 1층, 11반부터 20반이 2층, 21반부터 30반이 3층에 위치하는 것 같아서 피터는 1층으로 내려 가리고 결심했다. 그런데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피터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 이유는 바로 3천여 명의 학생이 30반의 교실에 들어가 있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두 종족이 섞여 있다고 해도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피터는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다가 1층에 내려가서 창문을 통해 10반의 내부를 슬쩍 쳐다보았고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00명의 학생들이 교실에 앉아있었는데 그 뒤에 집사와 메이드라고 한 인형들이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로 간의 충돌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를 띠고 있었고 그 분위기에 쫄아서 학생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피터는 조금 학생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5반이라고 적혀져 있는 교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복장을 한번 체크한 후에 피터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5반의 학생들은 문을 열고 들어온 피터에게 시선을 집중했고 피터는 그들의 시선에 조금 부담스러운 것을 느꼈지만 긴장을 풀려고 노력하면서 교탁으로 걸어갔다.
"크흠...저는 오늘부터 문자를 가르치게 된 피터라고 합니다. 모두들 반갑습니다."
피터는 학생들을 향해 고개를 수그리며 인사했고 한 명의 오크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모두 그에 따라서 박수를 치면서 피터를 환영해주었다. 피터는 그런 박수소리에 정말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쳐야겠다며 다짐을 하는데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아서 그 다짐을 지킬 수 있을지 의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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