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오크 마법사-196화 (196/360)

15장 인간과 오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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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인간과 오크(5)

"도대체 뭐로 만들었길래 하얀색을 띠고 있는 걸까?"

"강도도 장난 아니던데? 더구나 이 성벽의 높이를 봐. 어떻게 저 정도로 높게 지을 수 있을까?"

"저 커다란 왕성도 봐. 성벽과 같은 재료로 사용한 것 같아. 거기다 라이언 왕국의 왕성보다 거대한 것처럼 보이는데?"

"오크들이 사는 집도 우리가 살던 집보다 좋아 보여."

인형의 안내에 따라 움직이던 지원자들은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보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상상했던 모습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듀로크가 얘기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라이언 왕국보다 한참은 뒤떨어진 시설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였다. 오히려 라이언 왕국의 건물들보다 훨씬 좋아 보였고 보지 못한 재료로 만든 건물이나 드워프의 손을 거쳐서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호위하며 따라오는 오크들도 예상했던 모습과 달랐다. 야만적이고 무식하게 행동할 거라고 생각했던 오크들이 그저 조용히 열을 맞히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또 이동하던 도중 이런 일도 있었다.

지원자 중에서는 딸이 있는 이가 있었던 모양인지 꼬마 아가씨가 오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딸의 부모는 화들짝 놀라워하면서 딸을 만류했지만 인사를 받은 오크는 같이 손을 흔들어주면서 인사를 받아주기까지 했다.

'놀라워. 정말 오크가 이렇게 변했다니.'

피터는 이동하면서 주위에 있는 건물과 함께 오크들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대체 뭐가 오크를 이렇게 변하게 했을까?'

피터는 무슨 방법으로 오크를 이렇게 변화시켰는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로그만이 알고 있었다.

지원자들이 그란 왕국에 오기 하루 전. 로그는 오크들을 집합시켰다.

"취이익~ 오늘은 무슨 일인가?"

"취췩~ 모르겠다. 집합이 있다고 해서 모였다."

영문도 모르는 채 모인 오크들은 웅성거리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로그가 나타나면서 오크들을 향해 얘기했다.

"모두 내일 라이언 왕국의 사람들이 그란 왕국에 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취이익~ 알고 있다."

"취췩~ 인간과 만난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겠죠?"

"취이익~ 그렇다."

"취윅~ 잊지 않았다."

로그는 오크들의 말을 듣고 이어서 얘기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합니다. 그들에게 오크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취익~ 새로운 모습?"

"취이익?"

오크들은 로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로그는 손가락을 서로 맞대면서 소리를 내었다.

딱!

그러자 지금까지 숨어있었던 인형들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로그는 오크들에게 얘기했다.

"지금부터 인간들을 맞이했을 때를 대비하여 예행연습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연습은 듀로크님과 그란님에게 미리 상의를 거치고 결정한 것으로 모든 명령권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로그는 오크들을 향해 막대한 기운을 뿜어내며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얘기했다.

"잘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틀릴 시...불이익이 가해질 예정이니까요."

"취이이익..."

"취,취췩. 알,알겠다."

로그의 기운에 쫄은 오크들이 로그의 말을 따라서 예행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잦은 실수가 반복될 때마다 로그는 오크들에게 생명에 위협적이지 않을 정도로만 마법을 사용하였고 오크들의 구슬픈 비명소리는 끝없이 울려 퍼졌다.

그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한 피터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오크들을 이렇게 변화시킨지에 대해서 추측하고 있었다. 옆에 있는 오크들이 공중에 떠 있는 로그의 눈치를 보면서 떨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도착했습니다."

인형과 오크들이 데리고 간 곳은 통나무집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통나무집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었다. 라이언 왕국에서도 왕성에서 생활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통나무집에서 사는데 그 집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누가 만드냐에 따라서 차이가 확연히 나타나는 것처럼 드워프의 손길을 거친 집은 훨씬 고급스럽고 튼튼해 보였다.

"지금부터 집 배정에 들어가겠습니다. 오크들이 안내해주는 대로 따라가십쇼."

인형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오크들은 좀 전에 자신이 배정받은 인물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취이익! 도르겐! 이리 와라!"

"취췩! 트로이, 날 따라와라."

수많은 오크들이 나서서 집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피터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렸다.

"취익~ 피터. 어디 있는가?"

"여,여기 있습니다!"

하도 사람이 많다 보니 피터는 목소리를 크게 높여서 대답했는데 그걸 또 오크는 단번에 알아차리고 피터에게 다가왔다.

"취익~ 피터 맞는가?"

"맞,맞습니다."

피터에게 다가온 오크는 피터보다 작았다. 약 1.5미터에 육박하는 키로 피터가 큰 편이 아닌데도 얼굴 하나 차이가 날 정도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작은 키를 가지고 있음에도 오크가 자신보다 크게 느껴진다고 피터는 생각했다.

그 이유는 바로 오크의 몸 때문이었다. 세간에서는 보통 오크들을 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지금까지 그 생각대로인 경우가 많았다. 오크들 자체가 게으르고 나태한 특성을 나타내기 때문이었다. 헌데 눈앞에 있는 오크는 확연히 달랐다.

온몸에는 전투 혹은 노동으로 쌓인 근육들로 가득했고 얼굴에는 커다란 3개의 흉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옷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을 입고 있었는데 마치 숙련된 모험가의 옷처럼 깔끔하진 않지만 실용성이 있어 보였다. 등 뒤에는 커다란 도끼를 메고 있었는데 도끼가 오크의 등을 대부분 가릴 정도로 커다랬다.

피터는 주변을 둘러봤는데 다른 오크들도 눈앞에 있는 오크와 별반 차이가 없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건물들만 구경하다 보니 정작 오크들에게 신경 쓰지 못한 것이다.

'마치 숙련된 용병을 보는 것 같아.'

"취익~ 날 따라와라. 집으로 안내해주겠다."

"예,예."

피터는 오크의 뒤를 따라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원자 중에서는 혼자 지원한 자도 있었고 가족끼리 지원한 자도 있었다. 그리고 배정받는 집도 인원 비례인 모양인지 혼자 지원한 자는 1층 집으로, 2명 이상의 지원자들은 2층 집으로 안내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1층 집의 퀄리티도 장난 아니여서 집에 들어간 지원자들이 모두 다 감탄성을 내뱉고 있었다. 피터는 그런 광경을 보던 와중에 묵묵히 자신을 이끌고 가는 오크가 궁금했다. 그리고 어차피 그란 왕국에서 사는 이상 오크들과 친목을 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입을 열어서 얘기를 걸었다.

"저기."

"취익?"

"이름이 뭡니까?"

오크는 자신에게 얘기를 걸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모양인지 조금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취익~ 쿠란이라고 한다."

"쿠란님. 당신은 그란 왕국에서 무슨 일을 합니까?"

"취익~ 몬스터 숲에서 오는 몬스터들을 처치한다. 그리고 노동한다."

"노동?"

"취익~ 돈 벌려면 노동해야 한다. 돈이 많아야 살기 편해진다."

"화폐지식까지 갖고 있군요."

지금까지 오크들에게 돈은 그저 하나의 철조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돈의 소중함을 안다? 이것은 커다란 진보였다. 화폐는 거래의 기초이고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제일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그런 화폐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것은 최소한 그란 왕국에서 화폐로 인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과연 오크들의 발전이 어디까지 되어있는 걸까? 궁금하군.'

피터는 그란 왕국이 어느 수준까지 발전되어 있는지 궁금했고 나중에 차근차근 알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취익~ 오늘도 이렇게 일하면 돈 준다."

"그렇군요. 그런데 저희들을 이끌고 온 분은 누구십니까? 인간으로 보였는데."

"취익~ 인형 말인가?"

"인형?"

피터는 쿠란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취익~ 인형이다. 듀로크가 만든 인형으로 알고 있다."

"만들었다...새로운 생명체를 말입니까?!"

"취익~ 자세한 것은 모른다. 듀로크가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생명 창조!'

피터는 마법사들이 키메라 같은 마법 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키메라는 평범하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있고 지능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인간과 똑같은 모습에 말도 유창하며 지능의 차이도 없어보이는데 그게 듀로크가 만든 인조 생명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것은 9서클 마법사라고 들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일 정도로 커다란 사실이었다.

'인조 생명체. 아니, 그럼 인형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인간과 다른 것이 뭐지? 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아.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들어간 건가? 듀로크님은?'

"취익~ 도착했다."

피터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이에 쿠란의 말에 고개를 들어서 눈앞에 있는 집을 볼 수 있었다.

"이,이게 제 집이 맞습니까?"

"취익~ 그렇다."

피터가 놀라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였다. 그 이유는 가족끼리 온 지원자들도 2층 건물이었는데 피터의 눈앞에 있는 건물은 3층 건물이기 때문이었다.

"잘,잘못 배정 받은 것 아,아닙니까?"

"취익~ 아니다. 확실히 여기다."

"왜,왜 저만 이렇게 좋고 커다란 집을 주는 겁니까?"

"취익~ 너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듣기로 선생들은 모두 이렇다고 들었다."

피터는 쿠란의 말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좋은 혜택을 준다? 주면 준만큼 받는게 세상의 이치임을 알고 있기에 피터는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선생이라는 역할이 뭐길래 이런 집을 주는 거지? 그냥 오크들을 가르치는 거 아닌가? 설마 내가 모르는 위험한 것이라도?!'

갖가지의 잡생각과 함께 추론이 피터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리고 그사이에 쿠란은 가겠다고 얘기를 하며 사라졌고 피터가 그것을 눈치챈건 엄청난 시간이 지나고 난 이후였다.

"취이익~ 다시 돌아왔다."

"짧은 여행이었군. 라이언 왕국도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클레아. 넌 어땠냐?"

"저도 괜찮았어요. 오랜만에 고향에 간 느낌이었어요."

"원래 여기서 살기 전에는 라이언 왕국에 있었으니 무리도 아니지. 그런데...소피아라고 했나?"

"예. 쿠로딘 아저씨."

클레아보다 어려 보이는 소피아의 순진무구한 미소에 쿠로딘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꼈다.

"크흠. 소피아는 별로 놀라워하지 않는구나."

쿠로딘의 말대로 소피아는 그란 왕국에 도착하고 나서도 놀라워하는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다.

"저는 한 번 와본 적이 있거든요. 듀로크 오빠가 데리고 와줬어요."

듀로크라는 말에 클레아가 움찔 거리는 것을 충분히 볼 수 있었던 쿠로딘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얘기를 돌리기로 하였다.

"소,소피아는 어디서 지내고 싶나? 우리는 왕성의 남는 방에서 각자 생활하는 중인데 소피아도 그렇게 할 생각인가?"

"그럴게요. 그런데 혹시 클레아 언니만 괜찮다면 같은 방을 써도 될까요?"

"뭐?!"

"취이익?!"

소피아의 말에 쿠로딘은 물론이고 그란까지 경악했다. 하지만 의외로 클레아는 소피아의 말에 놀라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왜 같은 방을 쓰고 싶은지 물어봐도 될까?"

"물론이죠. 저는 클레아 언니와 친하게 지내고 싶거든요. 그리고 언니에게만 하고 싶은 말들도 있고요."

저 순진무구한 미소에 어떤 수많은 감정이 들어가 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쿠로딘과 그란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했다. 그런데 그때 클레아의 입에서 또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좋아."

"클,클레아?!"

"취,취이익?!"

"고마워요. 클레아 언니."

소피아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고 클레아도 똑같이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런데 그 광경을 보던 쿠로딘과 그란은 왠지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무서워 죽,죽겠군."

"취,취이익...여자는 무섭다."

쿠로딘과 그란은 덜덜 떨면서 빠르게 사라졌고 소피아와 클레아는 계속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기가 언니의 방이에요?"

"맞아."

클레아는 소피아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왔고 소피아는 클레아의 방을 보고 신기해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클레아의 방은 소피아와 둘이서 생활해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넓었고 여자 방답게 아기자기한 것과 귀여운 물건들이 많았다.

"짐을 먼저 풀도록 하자."

"예."

소피아가 가져온 짐은 별거 없었다. 몇 가지의 옷과 생필품이 끝이었다. 클레아는 소피아가 가져온게 너무 없다고 생각하며 이내 소피아에게 얘기했다.

"소피아. 밖에 나가자."

"예? 어디로요?"

"상점으로."

클레아는 소피아를 데리고 상점을 향해 이동했다. 상점은 나무로 지어진 1층 건물로 허름하지도 않지만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상점의 크기가 다른 건물의 몇 배는 되었고 드나드는 오크들도 엄청 많았다.

클레아는 그 상점을 많이 와 봤는지 자연스럽게 상점으로 들어갔고 그 뒤를 소피아가 쫄래쫄래 따라갔다. 내부에는 무기뿐만 아니라 수많은 잡다한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장인의 손길을 거친 것으로 보이는 훌륭한 물건도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허접해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그런 수많은 물건을 소피아가 신기해하면서 바라보고 있을 때 클레아는 안쪽으로 계속 들어갔고 이내 주인장으로 보이는 오크가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취칙~ 클레아냐? 오랜만이구나."

"잘 있으셨어요? 듀로한 아저씨."

듀로한. 듀로크의 아버지이며 전 부족장이었던 오크. 다른 오크들보다 월등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덕분에 몬스터의 숲에서 좋은 재료들을 공수해올 수 있었고 그 재료들을 팔아서 가게를 차렸다. 그런데 가게도 흥행하면서 점점 더 커다란 상점으로 변해갔고 이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된 것이었다.

"취칙~ 당연히 잘 있었지. 장사도 잘 되고 별 걱정 없이 산다. 그런데 네 뒤에 있는 소녀는 누군가?"

"소피아라고 해요. 인사해."

"안녕하세요. 오크 아저씨."

"취칙~ 안녕, 꼬마 아가씨. 마치 네 과거를 보는듯하군. 클레아."

"그런가요?"

"취칙~ 저렇게 꼬마애였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숙녀의 냄새를 풍기는군. 역시 세월의 흔적은 막을 수 없구나."

"벌써부터 그런 소리를 하다니. 아저씨, 할아버지 같아요."

"킥킥킥. 취칙~ 미안하구나.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온 건가?"

"오늘 인간분들이 그란 왕국으로 온 것은 알고 계시죠?"

"취칙~ 모를 리가 없지. 그 때문에 며칠 전부터 시끌벅적 했으니까."

"소피아도 이번에 왔거든요. 그런데 가져온 짐을 보니까 생필품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생필품을 사려고 이렇게 왔어요."

"취칙~ 그란 왕국에 나보다 나은 상점은 없지. 클레아의 얼굴을 봐서 특별히 싸게 팔아주마."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오크 아저씨."

"취칙~ 천만에 말씀. 그럼 잘 고른 다음에 찾아오렴."

듀로한은 험상 맞은 인상과 어울리지 않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고 클레아는 소피아를 데리고 상점 내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제일 기본적인 세면도구는 여기서 사면 되고 옷과 속옷은 다른 가게에서 사면 되고...혹시 필요한 거 있어?"

"혹시 종이와 펜이 있나요?"

"종이와 펜? 있지. 그런데 필요한 거야?"

"예. 저는 책 읽는 것과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인 질병을 갖고 있어서 책만이 제 친구였어요."

"그런데 그 병을 듀로크 오빠가 고쳐준 거고?"

"예! 건강하게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줄 몰랐어요. 제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구나. 그때부터 듀로크 오빠를 좋아하게 된 거고?"

"예! 언니는요?"

"나? 내 얘기를 듣고 싶어?"

"듣고 싶어요!"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소피아를 클레아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재미없어도 몰라?"

"괜찮아요!"

"나는...원래 라이언 왕국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살고 있었어. 부모님은 어부였고 나는 부모님을 도와주고는 했지. 그런데 어느 날 바다로 가서 일을 하고 있을 때 크라켄을 만났어. 동시에 배가 침몰하고 나는 바다에 떨어졌지. 그리고 눈을 떠보니 여기 그란 왕국에 도착해있었어."

독백과 같이 얘기하는 클레아의 얘기를 소피아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란 왕국도 처음에는 이렇게 평화스럽지 않았어. 인간을 식량이나 노예로 사용하는 오크들.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였고 들었던 이야기 그대로였어. 그렇게 난 무서움에 떨면서 공포에 질려있었지. 그런데 어느 날 나를 필요로 하는 오크가 있다는 거야. 그 순간 나는 이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포기했어."

클레아는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얘기했다.

"그렇게 포기한 상태로 날 필요로 하는 오크를 만났는데 우습게도 그 오크는 내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았어. 오히려 나를 챙겨주고 마치 여동생처럼 대해주었지."

"그 오크가 듀로크 오빠였어요?"

"맞아."

클레아는 소피아에게 마치 자랑하듯이 미소를 지어주고 이어서 얘기해주었다.

"나는 듀로크 오빠가 진짜 친오빠처럼 느껴졌어. 아무도 모르고 무서운 오크들만이 있는 외지 속에서 듀로크 오빠는 내가 붙잡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였지. 그런데 웃기게도 하루만에 듀로크 오빠는 실종을 하게 돼. 드래곤 산맥이라는 위험한 곳을 가게 되거든."

"나는 그때 표류되서 그란 왕국에 오게 되었을 때보다 더한 절망을 느껴. 단 하루지만 듀로크 오빠가 얼마나 나한테 소중한 존재인지 느낄 수 있었지. 그리고 그런 절망에 빠져 있는 나를 보살펴주고 다독여준 게 쿠로딘 오빠와 그란 오빠야. 그 두 분의 도움 때문에 나는 다시 일어서는게 가능했어."

"그리고 나는 듀로크 오빠가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강해지겠다고 결심하지. 그리고 수련을 하면서 듀로크 오빠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만 있었어. 그렇게 기다린지 1년이 지났을 때 듀로크 오빠가 다시 돌아왔어. 그때의 감격은 정말...잊을 수 없었어...이게 듀로크 오빠를 알게 된 이야기야."

클레아의 말을 들은 소피아는 뭔가 복잡한 감정이 들어있는 표정이었다. 클레아는 소피아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왜 그래?"

"...부러워서요. 제가 듀로크 오빠와 알고 지낸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셨잖아요. 그리고 듀로크 오빠가 생각하고 있는 것도 저보다는 언니일 것 같고요."

"....."

클레아는 소피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위로한다? 아니면 그냥 소피아의 말을 인정한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클레아는 선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클레아가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을 소피아는 충분히 눈치챈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고민하지 않으셔도. 제가 언니와 함께 살고 싶다고 한건 언니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것도 있지만 이렇게 듀로크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어요."

자신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이는 소피아가 저런 말을 하니 클레아는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스럽구나."

"그런 말은 많이 들어요. 하지만 그건 모두의 착각이에요. 겉으로는 어른스러워 보여도 내면은 엄청 여리거든요."

"그게 어른스럽다는 거야."

"그런가요?"

클레아는 왠지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소피아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클레아는 소피아의 손을 잡고 얘기했다.

"빨리 필요한 거 사가지고 가자. 돌아가서 남은 이야기를 나누게."

"...예! 클레아 언니!"

소피아는 잠시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며 얘기했다. 클레아는 라이벌이지만 좋은 여동생을 얻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소피아와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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