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내가 바로 현자 오크, 듀로크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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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내가 바로 현자 오크, 듀로크다!(4)
"그란님! 그쪽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
"거기도 안 돼! 자제 좀 하라고 이 멍청아!"
"취이이익..."
매트와 쿠로딘은 현재 힘겹게 그란의 몸을 붙잡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힘겹게 그란을 통제하려고 노력하게 된 것은 단 하나의 실수 때문이었다.
그란과 쿠로딘은 매트 왕자를 따라서 왕성 밖으로 나왔고 매트 왕자는 둘에게 가고 싶은 곳을 물어보기로 하였다.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으십니까?"
"나는 왕국에서 제일 가는 대장간을 보고 싶네."
"취이익~ 나는 기사들과 한번 붙고 싶다."
"대장간과 기사단이라...알겠습니다. 대장간이 여기서 더 가까우니 먼저 대장간에 들른 다음에 기사단에 가서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게나."
"취익~ 알겠다."
그 뒤로 매트는 그란과 쿠로딘을 데리고 왕성에 있는 대장간을 찾아갔다. 대장간을 찾은 쿠로딘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대장장이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대장장이들도 드워프를 만나서 그런지 즐겁게 얘기를 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란이 지루해할까 봐 매트는 대장간에 있는 검들을 그란과 함께 구경하며 설명해주었고 그러면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어서 대장장이들과 충분히 말을 나눈 쿠로딘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대장간을 나왔다.
"여기 대장장이들도 생각 외로 얘기가 통하더군."
"그렇습니까? 정말 다행이군요."
"취이익~ 배고프다."
"아. 그럼 먼저 식당으로 가시겠습니까? 아. 그란님은 투구를 벗을 수 없으니 제가 음식을 사오겠습니다."
"그러도록 하는게 좋겠군. 들었지?...어?"
"왜 그러십니까?"
"그란이...사라졌다."
"예?!"
매트는 쿠로딘의 말에 경악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어느새 쿠로딘의 말대로 그란이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어디로 갔죠?!"
"모,모르겠다...어! 저깄다!"
쿠로딘은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매트가 쿠로딘이 가리킨 곳을 집중해서 보니 그란이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매트는 그런 그란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서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얘기했다.
"그란님. 혼자 가시면 안 되...으억!"
매트는 그란에게 뭐라고 얘기하려다가 어깨를 붙잡은 손과 함께 자신의 몸도 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그,그란님?!"
"취이익~ 배고프다."
"설,설마? 쿠로딘님!"
투구에 침이 넘쳐서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고 계속 배고프다며 반복된 단어를 말하는 것이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소드마스터의 신체를 가지고 있는 매트가 마나를 불어넣어서 그란을 붙잡았는데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급하게 쿠로딘을 불렀고 이내 쿠로딘까지 그란의 허리를 붙잡아서야 그란이 앞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가 지금 이 상황이었다.
"그란님! 그쪽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
매트의 말에 반응하는 것처럼 그란이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지만 그쪽으로 가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도 안 돼! 좀 자제하라고 있으라고 이 멍청아!"
"취이이익..."
"안 되겠습니다! 쿠로딘님! 제가 그란님을 잡고 있을 테니 이 돈으로 먹을 것을 사고 오십쇼!"
"알겠다! 버티고 있어라!"
쿠로딘이 매트에게 돈을 받고 황급히 달려갔고 그런 광경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악착같이 이를 악물면서 버틴 덕분에 그란은 쿠로딘이 가져온 음식을 먹고 정신을 차렸다.
이렇게 굶주린 오크가 얼마나 무서운지 매트가 알아차렸을 때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도 똑같은 것을 보고 있으니까 단체로 미친게 아닐까?"
쥬디아가 데려온 몇 명의 남성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들은 쥬디아에게서 새로운 명령을 받았다. 식량을 가지고 오라는 명령이었는데 그 양이 인간 천명이 먹어도 될 정도로 엄청난 양이어서 먼저 첫 번째로 놀랐다.
너무나 많은 양이여서 몇 명이 움직이기에는 불가능할 것 같아 다른 인원을 써도 되냐고 묻자 안 된다고 단칼에 거절당했다. 불합리한 명령을 하지 않는 쥬디아이기에 무슨 뜻이 있다고 생각한 몇 명의 남성은 먼저 자신들이 들고 갈 수 있는 양을 가져갔다.
그리고 힘겹게 식량을 강당까지 가져온 남성들은 강당의 문을 열었고 그와 동시에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백이 넘어 보이는 오크들과 수십의 와이번들. 문을 열자마자 그 수많은 시선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남성들은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취익~ 밥이다!"
"취췩~ 식량이 왔다!"
"키에에엑~"
남성들은 자신을 보고 밥이 왔다며 달려드는 오크들과 와이번을 보고 순간 오금을 지렸다. 하지만 그때 한 명이 목소리를 내뱉으면서 오크들과 와이번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추었다.
"뭐하는 거야?! 가만히 있어!"
달려가던 오크들과 와이번들의 앞에 투명한 막이 생기면서 그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나르샤의 몸에서 막대한 마나가 뿜어져 나오면서 오크들과 와이번들을 압박했다.
"취이익?"
"키에에엑!!"
하지만 그들은 오크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친위대 오크들과 와이번 라이더였다. 나르샤의 위협에도 위축되지 않았지만 이내 나르샤의 의도를 눈치채고 조금 진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사이에 쥬디아는 부하들을 향해 빨리 음식을 갖고 들어오라고 명령했고 남성들은 멍하니 쥬디아의 말대로 음식을 갖고 들어왔다.
이어서 쥬디아가 문을 닫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남성들은 정신을 차리고 쥬디아에게 다가가서 얘기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왜,왜 오크들과 와,와이번이 여기 있는 것이죠?!"
"설,설마 우,우리를 식량으로 사용하려는 것은 아니겠죠?"
불안, 공포, 긴장 등 수많은 정서불안의 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부하들의 모습에 쥬디아는 무리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답해주었다.
"사정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당신들을 선택한 것도 이 비밀을 지켜줄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믿기 힘들 광경이군요."
"오크들이 저희를 공격하지 않겠죠?"
"예. 믿어도 됩니다. 지금도 가져온 식량에 정신이 팔려있지 않습니까?"
쥬디아의 말대로 가져온 식량을 오크들과 와이번이 허겁지겁 먹고 있었고 그 양이 순식간에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저 양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겠죠. 그러니 식량 운반을 부탁 좀 하겠습니다."
"취이익~ 더 없나?"
"캬아아악~"
"최대한 빠르게 부탁하겠습니다. 식량이 부족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요."
쥬디아가 한쪽 눈으로 윙크하면서 농담을 했지만 남성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안색이 핼쑥해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남성들은 지옥이었다. 힘겹게 가져온 식량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면 다시 갔다 와야 했고 또 가져다주면 삽시간에 사라졌다.
"헉...헉...우리..지금..몇 번을...간거지?"
"몰,몰라...대략...30번?"
"문,문제는 이게 끝없이 이어질 것 같다는 거야."
그들이 가져오고 있는 식량의 양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현 상황을 유지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조금만 더 하면 되겠지하며 자신에게 위안을 걸면서 움직였다. 하지만 이틀 동안 계속하면서 끝내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는 것을 그들은 그 시점에 알 수 없었다.
허기를 겨우겨우 달랜 그란을 데리고 쿠로딘과 함께 기사단에 온 매트는 예상보다 더한 피곤함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기사단에 도착했을 때 기사들이 여전히 수련을 하고 있었는데 르가 매트 왕자가 온 것을 알고 소리쳤다.
"모두 대기!"
르의 말에 기사들이 수련하던 동작을 멈추고 이내 차려자세를 갖추었다.
"수고하시는군요. 르 기사단장, 제이슨 부기사단장."
"아닙니다. 왕자님."
"원래 저희가 해야 할 일이죠."
"하하하. 수련을 하는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이분이 꼭 기사들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오늘따라 저희 기사단을 방문하시는 분들이 많군요. 아까는 듀로크님과 한 여성분이 오시던데."
"그렇습니까? 이분들도 듀로크님의 친분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는 말은...킁킁...그렇군요."
르는 갑자기 말을 하다가 코로 냄새를 맡았고 이내 기사들을 향해 얘기했다.
"오늘의 훈련은 여기까지다. 해산하도록."
"와아아!"
르의 말에 기사들은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심정으로 르의 마음이 달라지기 전에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이내 수련장에는 르와 제이슨을 비롯해서 5명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그도 오크입니까?"
"역시 르 기사단장은 다르군요. 후각입니까?"
"그것도 있지만 듀로크님과 친분이 있다는 말과 그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투기가 컸습니다."
"그렇군요. 그란님. 투구를 벗으셔도 됩니다."
"잠깐. 괜찮나?"
쿠로딘이 매트 왕자의 말에 놀라워했지만 이내 매트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란은 매트의 말에 따라서 투구를 벗어서 르를 향해 얘기했다.
"취이익~ 당신 이름이 뭔가?"
"르라고 합니다. 당신은?"
"취이익~ 그란이라고 한다. 르. 한번 싸워보고 싶다."
"저와 말입니까?"
"취이익~ 당신에게서 강한 전사의 냄새가 난다. 그리고 특유의 짐승 냄새도 난다. 싸워보고 싶다."
"좋군요. 저도 당신과 한번 싸워보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사들을 보낸 것이니까요."
"취이익~ 좋다."
그란은 등 뒤에 메고 있던 커다란 도끼를 꺼내 들었고 르는 건틀릿을 착용하였다. 그리고 서로 자세를 잡은 후에 한번 약하게 도끼와 건틀릿을 부딪히고 이내 둘이 격돌했다.
깡!!
도끼와 건틀릿이 부딪히면서 엄청난 소리를 내보냈고 부딪힌 곳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한번의 격돌로 무기에서 느껴지는 반발감에 서로 놀라워했다.
'이 정도의 반발감이라니!'
'취이익~ 내 도끼를 정면으로 받고도 멀쩡해?'
그란은 이내 도끼를 하단에서 상단으로 크게 휘둘렀다. 르는 웬만해서 힘에 밀리지 않는 자신이 그란의 도끼를 맞고 뒤로 밀려나는 것을 보면서 정면으로 받으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르는 하단에서 올라오는 그란의 도끼를 피하고 건틀릿으로 그란의 얼굴을 가격했다. 하지만 그란은 르의 건틀릿을 피하지 않고 맞아주었다.
퍼억!
"아닛! 억!"
르는 당연히 피할 줄 알고 주먹을 휘둘렀는데 오히려 피하지 않고 맞는 그란의 모습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란의 주먹이 르의 안면을 강타했고 르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팅겨났다.
"킁!"
그란은 콧바람과 함께 코피를 뿜어낸 후에 르를 향해 돌진했다. 르는 건틀릿을 장착한 자신의 주먹을 정면으로 맞고도 거의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은 그란을 보고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사라지기도 전에 그란의 무릎이 빠르게 얼굴을 향해 다가왔고 르는 옆으로 몸을 굴려 피했다.
쾅!
르의 얼굴을 강타하려고 했던 그란의 무릎은 바닥을 강타했는데 놀랍게도 무릎이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저걸 정면으로 맞는다면 아무리 회복력이 좋은 자신이라도 죽을 것이 분명해 보일 정도로 엄청난 공격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르는 자신의 본성을 끌어내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조금 진심으로 하겠습니다!"
르의 얼굴이 늑대의 모습으로 변하고 온몸에서 털이 나면서 입에서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그란은 르가 변하는 모습에 놀라워하며 이내 르의 정체를 눈치챘다.
"취이익~ 늑대인간이었나?"
"그렇습니다. 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오래간만이군요."
"취이익~ 늑대인간을 상대로 싸우는 건 처음이다. 재밌게 해달라."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르는 늑대인간의 울음소리를 내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조금 전과 확연히 다른 힘과 스피드에 그란은 적잖이 놀랐지만 그는 평범한 오크가 아니였다. 오크들 중에서도 제일 가는 오크전사였다.
깡!!
르의 건틀릿과 도끼가 부딪치면서 굉음을 내었고 이번에는 르가 밀리지 않고 서로 대치했다. 그란은 자신의 힘에도 밀리지 않는 르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도끼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이,이건!"
르는 도끼에 소드마스터들의 상징인 완전한 오러가 서리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왜냐하면 오크가 소드마스터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고 지금까지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취이익!"
그란이 소리를 지르며 오러로 둘러싼 도끼로 르를 밀쳤고 마나를 사용하지 않아도 강한 그란이 마나까지 사용하자 르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컥!"
소드마스터에 근접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르였지만 소드마스터 초급에 오른 그란의 실력은 중급과 비슷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했다. 그리고 르도 신체능력과 회복능력 때문에 무식하게 싸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였는데 그보다 더 무식하게 싸우는 것이 바로 그란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르는 포기하지 않고 그란과 싸웠고 이내 서로 누가 더 무식한지 대결하는 것처럼 피 튀기는 전투를 펼쳤다. 그리고 그런 전투를 장기간에 펼친 끝에 르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졌습니다."
"취이익~ 대단했다. 정말 재밌었다."
르와 그란의 얼굴은 마치 빻은 찐빵처럼 엉망이었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 무기도 던져두고 주먹으로 서로 치고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둘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매트는 그것을 보고 자신도 전에 저랬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하하하. 정말 듀로크님의 곁에는 무시무시한 분들만 있군요."
"취이익~ 당신도 만만치 않았다. 오랜만에 피가 들끓는 기분이었다."
"그럼 이제는 술 대결을 하시겠습니까?"
"취이익~ 술?!"
"술이라고 했나? 지금?!"
르의 말에 그란은 물론이고 쿠로딘까지 눈을 번쩍이며 반겨워했다.
"예. 제 방에 가서 마시도록 하시죠. 제이슨도 한잔할 건가?"
"초대를 받고 가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지. 왕자님도 한잔 어때?"
"뭐...알겠습니다. 저도 합류하도록 하죠. 헌데 조심하시는게 좋을 겁니다. 그란님과 쿠로딘님의 주량은 장난 아니거든요."
매트는 처음 그란 왕국에 갔을 때 술을 마셨던 것을 떠올리며 얘기했다.
"저희도 평범하지 않으니 괜찮습니다."
"그럼,그럼."
르와 제이슨이 자신 있어 하며 그렇게 3명을 데리고 갔지만 결국 매트의 예상대로 그란만이 혼자 남았고 나머지 4명은 술에 먹혀서 꼬꾸라졌다. 그렇게 여러 명이 이틀 동안 많은 일을 보냈고 이내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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