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블랙 드래곤 카르티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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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블랙 드래곤 카르티네(21)
"크리드? 누구지?"
"나는 왕성에서 수호기사의 임무를 맡고 있는 크리드라고 한다. 하지만 당신이 사냥꾼들을 몰살시키며 수도를 향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오게 되었다."
"그래? 하지만...부족해 보이는데?"
카르티네는 크리드를 슬쩍 쳐다보고 크리드가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곧바로 파악했다.
"확실히 당신에 비해서 약할 수도 있지. 하지만 약하다고 만만히 봤다가는 큰코다칠 것이다."
크리드는 검집에서 검을 빼고 마나를 불어넣어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카르티네는 완벽히 정제되어 있는 마나에 완성된 오러 블레이드를 보고 조금은 놀라워했다.
"상당한데? 하지만 그래도 그 노인보다는 아니야."
"노인?"
크리드는 노인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카르티네가 손잡이에 손을 얹어두면서 뿜어져 나오는 압박감과 무한한 마나에 크리드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에게서 한치의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너도 상당한 무인인 것 같으니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겠다."
"고맙군. 그리고 나도 당신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
"듀로크에 대한 이야기지."
그 순간 크리드의 말에 카르티네가 반응했고 잠시 빈틈이 생겼다. 그리고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크리드는 검을 뽑아서 카르티네를 향해 공격했다. 카르티네는 생각보다 훨씬 빠른 크리드의 움직임에 다급하게 검을 뽑아내었다.
"하앗!"
"일섬!"
빈틈을 노리고 먼저 움직였는데도 불구하고 크리드는 검집에서 뽑히는 카르티네의 검을 보고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정지하는 것처럼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죽는 순간 주마등을 돌이켜보게 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크리드는 카르티네의 검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있었고 동시에 자신이 어디로 피해야 할지도 알 수 있었다. 어떤 원리로 그렇게 보이고 알 수 있게 됐는지 몰랐지만 크리드는 그대로 자신의 몸을 움직였고 카르티네의 검을 피할 수 있었다. 아니 피할 것처럼 보였다.
서걱.
살이 잘리는 소리와 함께 크리드가 카르티네가 있던 곳으로, 카르티네는 크리드가 있던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카르티네의 어깨가 벌어지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얇게 베여서 피는 그렇게 많이 흘러내리지 않았다.
"...얕았군."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크리드가 아쉬워하는 목소리를 내뱉는 동시에 크리드의 옆구리에서 피가 확 솟아 나왔다. 카르티네의 어깨와 다르게 크리드의 상처는 중상으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아,아쉽군. 볼 수 있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니."
크리드의 말대로 그는 검의 경로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이 검보다 훨씬 느려서 검의 움직임이 보이는데도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피해를 줄이는 것이었고 그것이 옆구리의 중상으로 그치게 하였다.
"그렇군. 나는 분명히 두 쪽으로 갈라내려고 했는데. 이 공격을 피한 것은 네가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런가? 영,영광이군. 쿨럭!"
크리드는 상처에서 나오는 피를 한손으로 막으며 일어나려고 했고 카르티네는 그의 행동을 보며 얘기했다.
"아까 한 얘기는 뭐지? 듀로크라고 했던 것 같은데?"
"당,당신이 듀로크가 어,어딨는지 알고 싶어서 수,수도로 오고 있단 말을 들었다."
"맞다. 알고 있나?"
"그,그래. 그,그는 라이언 왕성으로 돌아갔다."
"쳇. 소문이 사실이였군."
카르티네는 검집에 마검을 넣으며 크리드를 뒤로 하고 걸어갔다. 크리드는 자신을 끝맺지 않는 카르티네를 보고 놀라워하며 얘기했다.
"왜,왜 끝내지 않지?"
"나에게 정보를 가르쳐준 대가이다. 그리고 듀로크가 어딨는지 알게 된 이상 지금 바로 보러가고 싶거든. 너 따위를 죽이는 시간도 아깝다."
"잠,잠깐 가지마라. 내,내게 좀 더 깨달음을 줘라. 조,조금만 더 해보면 길이 보일 것 같단 말이다!"
"크리드님!"
"상,상처가! 위생병!"
크리드는 멀어지는 카르티네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 붙잡으려고 했지만 크리드와 같이 왔던 기사들이 들이닥치면서 그의 의도는 무산되었다. 카르티네는 중상에도 불구하고 기사들을 밀치며 자신에게 다가오려 하는 크리드를 보며 얘기했다.
"저 녀석은 왜 상처를 입었는데도 지배를 당하지 않지?"
『저 녀석은 소드마스터잖아. 일반인과 정신의 벽이 차원이 달라. 아무리 나라도 소드마스터 지배는 힘들다고.』
기사 몇 명이 붙어서도 크리드를 진정시키지 못하는 와중에 크리드의 눈은 카르티네에게 고정된 상태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눈을 본 카르티네는 자신이 느끼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는 것을 알면서도 덤비는 바보 같은 녀석은 어디에나 존재하는군. 아니, 저런 것이야말로 바로 인간의 무서움일지도 모르겠어."
결과를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탐구심.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희생. 끝없는 욕심. 지금까지 바라본 인간의 무서운 점들이었다. 그리고 카르티네는 자신의 어깨에 난 상처를 보며 생각했다.
"나도 많이 물러졌군. 이 정도의 상처는 이제 화도 나지 않는 건가? 블랙 드래곤들이 이 광경을 보면 나에게 비웃음을 날리겠지."
"그래도 저는 지금이 낫다고 생각하는걸요?"
옆에 있는 맥이 카르티네의 말에 거들어줬다.
"그런가?"
"예!"
"가지 마! 가지 말라고!!"
맥이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고 카르티네는 피식 웃으며 넘어갔다. 맥은 처음으로 본 카르티네의 웃음에 기뻐하며 힘차게 카르티네를 따라갔고 이내 카르티네와 맥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크리드의 저항은 계속되었고 짐승 같은 소리를 내보내고 있었다.
"전하! 속보입니다!"
"무슨 일인가?"
아무드 국왕과 실로스 후작은 어전에서 둘이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을 열며 급하게 들어오는 마법사 1명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크,크리드님이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뭐라?!"
아무드 국왕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놀란 나머지 목소리에 마나가 실려서 마법사와 실로스 후작이 움찔거렸고 그것을 눈치챈 아무드가 감정을 추스르며 다시 얘기했다.
"자세히 얘기해라."
"예,예. 르티네란 인물과 전투를 벌인 끝에 옆구리가 크게 베였다고 합니다. 이상하게도 상처의 회복이 느려서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럴 수가...대체 왜? 그렇게 내가 싸우지 말라고 했건만..."
"혹시 또 다른 말은 없었나?"
아무드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숨을 쉬었고 그사이에 실로스 후작이 마법사에게 물어봤다.
"의식을 잃기 전에 크리드님이 얘기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말은 전했다고."
"그런가. 그럼 르티네란 인물은 어디로 갔다고 하지?"
"부상당한 크리드님을 놔두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알겠다. 이만 물러가도록."
"알겠습니다."
아무드 국왕의 말을 들은 마법사는 이내 고개를 수그리며 물러났다.
"왜 제 말을 듣지 않은 것일까요? 그렇게 싸움은 피하라고 했건만."
"아마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르티네는 사라졌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마 라이언 왕성으로 갔을 겁니다."
"그게 위안이긴 하지만...그래도 크리드의 의식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것은 마음에 걸리는군요."
실로스 후작이 위로했지만 아무드 국왕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결됐다고 안심하려는 찰나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메,메스?"
"스,스승님."
메스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얘기했고 그 모습을 본 아무드와 실로스 후작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래곤을 상대하기 위한 작업의 절차를 보고하려고 왔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군요. 크리드가 부상당했고 르티네는 라이언 왕성으로 갔다는 말을."
"그,그건..."
"전하께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 거다. 메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하는 아무드를 대신해서 실로스 후작이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게 최선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저를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예?"
메스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아무드 국왕을 향해 예를 표하면서 얘기했다.
"전하. 지금 부로 저는 라이언 왕성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듀로크를 도와서 르티네를 상대하겠습니다. 허락해주십쇼."
"흐음..."
"허락해주시리라 믿겠습니다."
메스에게서 엄청난 압박감이 뿜어져 나오면서 말 없는 시위를 하였다. 아무드 국왕은 침을 꿀꺽 삼키며 결국 고개를 흔들며 얘기했다.
"제가 졌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이름을 빌려서 텔레포트 진을 써서 이동하십쇼. 그러면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메스는 그 말을 끝으로 가지고 있는 마나를 사용하여 엄청난 속도로 이동했다. 순식간에 사라진 메스를 본 실로스 후작은 아무드 국왕에게 얘기했다.
"허락해도 괜찮겠습니까? 전하?"
"예. 차라리 잘됐습니다. 그 듀로크님과 같이 싸운다면 드래곤이라도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류 최강이라 할 수 있는 듀로크와 스승님. 이 두 조합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그래도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스승님이라면 잘 해내시겠죠."
아무드는 말한 대로 스승인 메스가 잘 해낼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와 똑같은 시간에 카르티네와 맥이 라이언 왕성이 있는 라미츠에 도착하고 있었다.
"우으윽...속이 좀 메스겁네요."
"텔레포트는 처음인가?"
"예. 신기하지만 속이 좋지 않는 부작용이 있을 줄은..."
카르티네는 맥과 함께 텔레포트를 하여 라이언 왕성이 있는 라미츠에서 제일 가까운 장소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텔레포트를 처음 겪으면 그렇듯이 맥은 속이 좋지 않아서 갤갤거렸고 카르티네가 간단한 치유마법을 사용해줘서 낫게 했다.
"고마워요! 르티네 누나."
"여기서 계속 지체할 수는 없으니까. 이제 안으로 들어간다."
"예!"
마침 라미츠의 성문 입구에는 수많은 짐마차가 들어가고 있었고 카르티네와 맥은 그 짐마차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며 이내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어서 오십쇼! 라미츠에."
성문의 경비병은 힘차게 인사했고 그 사이에 카르티네는 최면 마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말에 솔직하게 얘기하도록 하였다.
"듀로크는 라이언 왕성에 있나?"
"예...그렇습니다."
"이 짐마차들은 뭐지?"
"소크라 백작의...물자입니다."
"여기서 왕성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약...6시간 정도입니다."
"알겠다."
카르티네와 맥은 경비병을 지나쳐서 입성하였고 이내 라미츠의 분위기를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다른 어떤 마을보다도 사람이 많고 북적거리며 활발했다. 그들의 표정에는 행복이 넘쳐 흘러나고 있었고 업되어 있는 분위기는 무의식적으로 미소를 내보내게 하는 것이 있었다.
"사람이 많군."
"그렇네요."
"웬만해서는 다 휩쓸고 가고 싶지만...귀찮군. 빠르게 이동하겠다. 나를 붙잡아라."
"예!"
맥이 카르티네의 옆구리를 강하게 붙잡았고 이어서 카르티네는 집 지붕으로 블링크를 하여 같이 이동하였다. 그리고 시선이 보이는 곳까지 블링크를 하고 또다시 이어서 블링크를 하면서 빠르게 둘은 움직였다. 그렇게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걸어서 6시간 걸릴 왕성이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눈앞에 보이고 있었다.
"여기군."
"와아~ 엄청 커요! 이게 왕성인가요?"
"그래."
왕성을 처음 보는 맥은 반짝이는 눈으로 감탄을 표출하며 왕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때 맥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고 카르티네는 맥이 배고파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배고픈가?"
"헤헤~ 조금 그렇네요."
"왕성에 들어가기 전에 식사나 하고 가지."
"예! 그럼 제가 식당을 찾을게요!"
맥은 신난다는 듯이 근처에 있는 음식점들을 배회하기 시작했고 이내 한 음식점을 선택하여 들어갔다.
"어서 오십쇼."
"아저씨. 두 자리 있나요?"
"두 자리? 운이 좋구나, 꼬맹이 손님. 오늘은 단체 예약이 되어 있어서 남아있는 자리가 별로 없었는데 타이밍을 잘 맞혔어."
"정말요? 헤헤. 르티네 누나. 자리 있대요!"
카르티네는 맥의 말에 따라서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은 주인장이 말했던 것처럼 단체 손님이 온 모양인지 시끌벅적했고 모두 술과 음식을 마시면서 떠들썩하게 대화를 나누며 즐기고 있었다.
"음식은 뭐로 하겠소?"
"어떤게 있나요?"
"우리 가게에서 제일 추천하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닭고기 찜이지. 그걸로 하겠소?"
"예! 르티네 누나는요?"
"나도 같은 걸로 먹겠다."
"닭고기 찜 2인분. 조금만 기다리게나."
주인장은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걸어갔고 맥은 주위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카르티네에게 얘기했다.
"단체로 왔다고 하는 이분들은 누구일까요?"
"글쎄."
카르티네는 이들이 누구든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지금 듀로크라는 인물에 대해서만 계속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아트리스가 듀로크였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혹시나 아닐 경우에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맞을 경우에는 그와 함께 유희를 즐기면 되는 거고. 아닐 경우에는...이제 또 그의 행방을 찾으러 가야지. 그때도 맥을 데리고 가야 하나?'
맥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여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일뿐더러 지금까지 만난 이들과 달랐다. 같이 있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되는 인간. 그녀에게는 이제 특별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건 그때 생각해보기로 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주인장이 음식을 가져와서 테이블에 얹어두었고 맥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카르티네도 맥처럼 음식을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카르티네의 귀에 한 가지의 단어가 들려왔다.
[...듀로크는...과연...]
음식점 안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어서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듀로크라는 단어를 누군가 내뱉었다는 것을 카르티네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이번에 돈을 어디다 쓸 거야?]
[오랜만의 회식이야. 맘껏 먹자고!]
[너 아직도 남자 좋아하는 거는 아니겠지?]
수많은 대화가 오가면서 북적거렸지만 카르티네는 여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많은 대화를 넘기면서 귀를 기울인 끝에 원하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변한 것도 다 듀로크님 때문이지.]
정확히 어디서 들렸고 누가 얘기했는지 알아챈 카르티네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꿀꺽. 꿀꺽.
"키야야아! 역시 오랜만의 술이여서 그런지 잘 들어가는구만!"
"확실히 요새는 너무 바빴잖아? 왕국에 속하게 되면서 밑에 있는 애들을 가르치는데 얼마나 시간을 많이 썼는데."
"맞아. 좋아 보이는 남자들도 많았고."
"그럼, 그럼."
"어이. 마크, 브리츠. 아무리 게이라도 부하들은 건드리지 마라?"
"우리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알고 있다고. 그런 짓을 하다가는 쉐이드 단장님이 우릴 가만히 두겠어?"
"맞아. 난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이츠는 동료들의 말을 듣고 다시 술을 들이킨 후에 얘기했다.
"그럼 다행이고. 앨런, 너도 자제하고 있겠지?"
"그렇다니까. 요새는 제이슨과 같이 노느라 정신이 없어."
"제이슨? 그 부기사단장?"
"그 제이슨이란 녀석도 불쌍하구만. 저런 미친년을 상대로 장단 맞춰주려면."
"왜? 요새는 점점 나한테 빠져드는게 보인다고. 두고 봐라."
"예이 예이."
이츠는 오랜만에 S급 암살자들과 모여서 회식을 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라이언 왕국의 암살단 인원들도 대거 몰려왔다. 300명이 넘는 암살단 전원이 오다 보니 많은 음식점에 나뉘어서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회식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이런 평범한 음식점에 모여서 먹은 적이 있었나?"
"없지. 우리 암살자들이 이렇게 편하게 먹은 적이 있겠냐?"
"이렇게 변한 것도 다 듀로크님 때문이지."
"맞아. 어떤 왕국에서 암살자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며 다니겠냐? 라이언 왕국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뭐, 라이언 왕국도 처음에는 인식이 좋지 않았지만."
그 말대로 듀로크가 개편을 했음에도 암살자를 보는 눈이 처음에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주듯이 암살단은 라이언 왕국에 있어서 하나의 단체로 자리 잡으면서 이제는 그런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모여서 마시고 있지. 이런 편안한 분위기가 어딨어? 안 그래?"
이츠는 술잔을 들어 올리며 얘기했고 앨런과 마크, 브리츠는 쓴웃음을 지으며 똑같이 술잔을 올렸다. 이어서 그들은 동시에 술을 들이켜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옆에서 한 명의 인물이 다가와서 얘기를 걸었고 이내 그 행동은 무산되었다.
"하나 물어보도록 하지."
"응?"
"당신 누구야?"
이츠는 딱 좋은 분위기에 들이닥친 인물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취기가 올라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까 듀로크라고 하던데 누가 얘기했지?"
"왜. 당신도 듀로크님 추종자야? 이거 동지를 만났구만."
"그는 왕성에 있나?"
"응? 그렇지. 하지만 아무나 만날 수 없어. 듀로크님은 인기쟁이니까. 안 그래?"
"그렇지."
이츠의 물음에 동료들이 웃음을 지으며 동의해주었다.
"너희들은 그를 만날 수 있나?"
"음...힘들걸? 우리 단장님이라면 모를까."
"단장? 그는 어디서 만날 수 있지?"
"몰라. 몰라. 그보다 왜 이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당신이 내 상관도 아닌데 말이야."
"....."
"그리고 기분 나쁘게 로브로 얼굴을 가리고 그래? 말을 할 거면 얼굴을 보이고 얘기하란 말이야."
이츠는 취기가 올라와서 그런지 처음 보는 인물의 로브를 벗기려고 했고 그런 행동을 옆에 있는 동료들이 제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눈앞에 있던 인물이 검의 손잡이로 손을 가져가 대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팟!
"호오?"
맥과 주인장을 제외하고 음식점에 있던 이들이 모두 한순간에 움직여서 인물을 중심으로 둘러쌓았다. 그들의 손에는 어느새 무기들을 들고 있었고 살기를 뿌리며 경계하고 있었다. 아까까지 말하고 있던 이츠도 어느새 취기가 싹 사라지고 진지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놀랍군.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반응할 줄이야."
"당신...정체가 뭐지?"
이츠는 대치하고 있는 암살자들의 대표로 얘기했다. 그의 얼굴에는 현재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뿐만이 아니였다. 이곳에 있는 암살자들 모두 이츠와 다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물에게서 나오던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인물이 검에 손을 가져가 대는 순간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모두 감지하였고 그에 암살자들이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었다.
"100...200...밖에 있는 녀석들도 모두 같은 편인가?"
"빨리 말해!"
다른 음식점에 있는 암살자들도 모이는 것을 눈치챘음에도 여전히 여유로워 보이는 인물에 이츠는 초조해 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인물은 검을 검집에서 빼내면서 얘기했다.
"내 이름은 카르티네. 듀로크를 만나러 온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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