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나이트 VS 게덴(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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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나이트 VS 게덴(10)
클립스 백작의 항복으로 나이트 병력들은 성문을 통해서 안으로 차근차근 들어오기 시작했고 피스텔 백작은 성벽에 서서 게덴 병력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러다가 피스텔 백작은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인형?"
인형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게덴 병력들은 일제히 움직이지도, 표정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마치 인형처럼 생기 없는 눈을 가지고 그들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전쟁을 벌였던 상대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확실히 이상합니다."
"신디트 자작."
성문을 뚫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는 신디트는 여전히 중장갑을 착용한 상태로 피센트를 찾아왔다.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킁. 마치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인형을 상대한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철퇴를 무식하게 휘두르면 웬만한 이들은 질려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물론 그러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도 표정과 감정이 몸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은 마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흐음...역시 뭔가 있는 것 같군."
피스텔 백작은 신디트 자작의 말을 듣고 부관을 불렀다.
"부관."
"예."
"적의 사령관을 데려와라. 그를 잡은...암살자와 같이."
"루치입니다."
"그래. 루치와 같이."
암살자는 필요한 존재인 것을 알고 있지만 기사 왕국답게 명예를 중시하여 암살자는 나이트 왕국에서 천대받는 이들이다. 모순되게도 그들은 천대받으면서도 그들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쟁이나 다른 일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필요성을 인정해도 그들을 좋게 볼 수 없는 피스텔 백작이었다.
'내가 모순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받아들일 수 없군..'
노력해도 기사의 정신이 영혼까지 박혀있는 모양인지 암살자를 좋게 볼 수 없는 피스텔 백작이었다. 백작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부관은 암살자 루치와 함께 클립스 백작을 데려왔다.
클립스 백작은 줄에 묶여서 멍한 표정으로 끌려오고 있었다. 루치는 클립스 백작의 무릎을 발로 눌렀고 그러면서 백작은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게 되었다.
"큭."
"데려왔습니다."
"수고했다. 그럼...나는 나이트 왕국의 점령군 사령관 피스텔 백작이라고 한다. 당신의 이름을 듣고 싶군."
"...클립스 백작이다."
"클립스 백작.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뭐지?"
"당신의 명령을 듣는 저 병력들은 왜 저런 상태지? 마치 인형 같군. 무슨 술법을 사용했나?"
"....."
피스텔 백작의 물음에 클립스 백작은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루치라고 했나?"
"예. 백작님."
"자네 고문 기술은 배웠나?"
"제가 고문은 끝내주게 잘합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포를 뜰 수 있죠. 손가락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몸이 해체되는 광경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히익!"
루치의 말을 들은 클립스 백작은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덜덜 떨어댔고 루치는 품속에서 단검을 하나 꺼내서 혀로 할짝이며 클립스 백작에게 다가왔다.
"말,말하겠다. 말하면 되잖아!"
클립스 백작은 공포에 휩싸여 말을 내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어디서 파육음이 들리면서 그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그리고 이내 눈동자가 뒤로 돌아가면서 흰자로 변했고 클립스 백작의 몸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뭐야?!"
"이건 단검?"
클립스 백작의 뒷덜미에 단검이 꽂혀 있었고 그곳을 통해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암살자는 클립스 백작의 목에 손을 얹어두고 확인한 후에 고개를 저었다.
"...즉사했습니다."
"젠장! 어느새?"
"죄송하지만 저보다 훨씬 강한 놈입니다. 제가 한순간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높은 경지를 가진."
"입막음을 한 건가? 실마리가 사라졌으니 원."
피스텔 백작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였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느낀 피스텔 백작은 고개를 내렸다.
"여,여긴 어디지?"
"아아악! 아,아파!"
"뭐야? 이 피는?!"
"내,내 팔이!!"
갑자기 게덴의 병력들이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일제히 모든 이들이 정신을 차린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본 피스텔 백작은 상황을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게덴의 병력을 겨우 안정시킨 피스텔 백작은 게덴의 수인족들의 대표 1명과 인간쪽 대표 1명을 데려와서 대화를 나누기로 결정했다. 크리센트는 상업이 발달한 도시였고 인간의 도시에 수인족들이 산다는 점만 차이가 있을 뿐 다른 도시와 별반 차이점은 없어보였다.
성까지 나이트 병력과 사로잡은 게덴의 병력이 함께 이동하는 동안 크리센트에서 사는 국민들이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보았지만 피스텔 백작은 미리 위해를 끼치지 말라고 언급을 했다.
오티넘에서 벌어진 일이 있었지만 나이트 왕국은 명예를 중시하는 왕국으로 적이라고 해도 약탈과 같이 항복한 이들에게 위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성을 점령하고 클립스 백작의 방으로 생각되는 장소에서 피스텔 백작은 부관과 게덴의 대표 2명, 그리고 흑마법사 1명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나이트 왕국의 점령군 사령관 피스텔 백작이라고 한다. 자기소개 부탁하지."
"저는 늑대 수인족인 케이라고 합니다."
"나는 게덴의 기사인 다윈즈라고 한다."
"여기 흑마법사는 나이트 왕국에 속해있는 인물이지. 이름이..."
"크루져라고 합니다. 백작님."
"그럼 자기소개는 이것으로 하고 당신들을 부른 이유는 아마 예상은 하고 있겠지만 이번 전쟁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어서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지. 케이."
"예."
"자네 우리 왕국군과 싸운 기억이 있나?"
"없습니다."
"다윈즈는?"
"없다. 오히려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군."
피스텔 백작은 두 명에게서 거짓말을 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되물었다.
"그럼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지?"
"저는 포마스 국왕께 불려간 기억까지 남아있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인간과 수인족들이 불려갔었다."
"그렇다면 포마스 국왕이 무슨 짓을 해서 이들에게 무슨 수를 썼다고 생각하는게 제일 적절한 추론이겠군."
"....."
"우리 국왕님이 그럴 리가 없다!"
케이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다윈즈는 노성을 지르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과연 그럴까? 너희의 정신은 클립스 백작이 죽자마자 돌아왔다. 그렇다는 것은 클립스 백작이 너희를 조종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그,그건..."
다윈즈는 피스텔 백작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크루져."
"예."
"클립스 백작의 몸을 수색해 봤나?"
"예. 확인한 결과 이것이 나왔습니다."
흑마법사는 한 개의 반지로 보이는 물건을 손으로 잡아서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클립스 백작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입니다. 아마 이 반지로 조종했을 겁니다."
"겨우 그 반지 하나로 3만의 병력을 조종했다는 건가?"
피스텔 백작은 흑마법사가 얘기하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겨우 반지 하나로 그런 대규모 군대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상식선에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반지를 분석한 결과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슨?"
"이 반지는 현재 시착자를 잃어서 힘을 잃은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엄청난 기운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반지를 만든 사람은 최소한..."
"최소한?"
"8서클 혹은 9서클 마법사일 겁니다."
"9,9서클?!"
피스텔 백작이 흑마법사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9서클이라니? 9서클은 전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마법사 아닌가?"
"백작님. 9서클 마법사는 실존합니다. 소문에 따르면 라이언 왕국에서 9서클 마법사가 등장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라이언 왕국에서? 허...시대가 변하는 건가? 여하튼 왜 8,9서클 마법사라고 생각하는 건가?"
"흑마법에는 정신을 조종하는 마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동물을 조종해서 정찰하거나 습격하는데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정신체를 조종하는데 많은 심력 소비와 마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동물이 아닌 인간과 같이 복잡한 정신체인 경우에는 훨씬 힘듭니다."
"음..."
"그런데 그런 인간 3만 명에게 마법을 걸고 반지 하나로 그들을 조종할 수 있다. 이것은 9서클 마법사가 아니면 힘들 정도로 최고 난이도의 마법입니다."
"그렇군."
"더구나 게덴의 병력에게서 아주 미세하게 흑마법의 잔향이 남아있습니다. 저희 흑마법사가 아니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럼 나한테서도 그 냄새가 난다는 건가?"
다윈즈는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흑마법사를 향해 노려보았다.
"예. 저희 나이트 왕국과 싸울 때와 비교하면 매우 미세하지만 그래도 남아있습니다."
"그런..."
"....."
다윈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케이라는 수인족은 놀라워하는 표정을 짓지 않고 있었다.
"그쪽은 놀랍지 않은 건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포마스 국왕이 수인족에게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소문으로 미리 들었었기 때문에."
"소문으로? 들었는데도 수인족들은 가만히 있다는 건가?"
피스텔 백작의 물음은 케이의 신경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초탈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던 케이가 화내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 수인족들이 화를 낼 줄 모르고 움직일 줄 몰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압니까? 저희 수인족의 상황을 알고 얘기하는 겁니까?"
"음...그렇군."
피스텔 백작은 자신이 수인족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생각 없이 얘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흠. 그렇게 얘기해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그럼 말을 정리하자면 포마스 국왕 혹은 그를 지지하고 있는 고클래스의 흑마법사가 이들에게 모두 마법을 걸었고 클립스 백작은 그에 대한 명령을 받아서 우리와 전쟁을 펼쳤다고 생각하는게 맞겠지?"
"제 생각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부관이 옆에서 피스텔 백작의 말에 동의해주었다.
"이 정보를 전하께 보내야겠군. 부관, 마법사를 통해서 전하께 영상을 연결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크리센트의 국민들에게 우리가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는 공문을 붙여두어라."
"옙.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부관은 피스텔 백작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서 움직였고 피스텔 백작은 케이와 다윈즈에게 얘기했다.
"우리와 전쟁을 벌였지만 너희들도 일단 위해를 끼치지 않겠다. 하지만 허튼 수작을 부리면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알겠다."
"그리고 너희들을 감시하는 인원들도 배치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고. 흑마법사는 반지에 대해서 더 연구해주게나."
"알겠습니다."
얘기를 마친 이들이 모두 밖으로 나갔고 피스텔 백작은 혼자 남게 되었다. 그는 혼자 남은 상태에서 지도를 펼치고 그것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크리센트에서의 싸움은 나이트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런 와중에 나이트 왕국의 영지인 오티넘에서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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