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나이트 VS 게덴(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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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나이트 VS 게덴(9)
"금지된 기사갑옷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금지된 기사갑옷?"
피스텔 백작은 처음 들어보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예. 이건 극소수만 아는 정보입니다. 몇백 년 전에 만들어진 물건으로 저희 나이트 왕국에 부족한 화력을 보완하기 위해서 고안해낸 것입니다."
"...그런 정보를 왜 내가 모르고 있던 거지?"
"사령관에게는 일부러 가르쳐주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악용을 할 수 있을뿐더러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악용?"
"예. 이 물건은 사악하기 그지없습니다. 흑마법사들이 만들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갑옷을 입은 자는 시동어를 말하는 동시에 갑옷에게 생명력을 바치고 한 줌의 피로 변해버립니다."
"그런 사악한 것이 왜 남아있는 거지?"
"왜냐하면 그 갑옷은 시전자의 생명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저 거대한 성문을 산산조각낼 정도의 파괴력을 말이죠."
"그러니까 몇 명의 희생으로 몇만 명의 희생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피스텔 백작은 부관의 말을 듣고 고민했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한다. 전쟁에 있어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생긴다. 하지만 흑마법사들이 만든 물건을 사용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사악하기 그지없는 물건에 기댄다는게 싫었다.
그리고 제일 싫은 것은 희생자를 찾는 것이었다. 사령관으로서 누가 폭탄을 들고 가서 자살하라고 시킬 수 있겠는가. 그건 사령관으로서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병사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몇만 명의 희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피스텔 백작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피스텔 백작님. 결정을 내려주십쇼."
"크흠..."
피스텔 백작은 결국 고민 끝에 부관에게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막사를 들추고 들어오는 몇 명의 인원이 있어서 그 의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례하겠습니다."
"너희들은?"
들어온 인물들은 바로 피스텔 백작의 직속 부하들이었다.
"죄송하지만 지금 나누신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갑옷은 저희들이 입겠습니다."
"뭐?"
피스텔 백작은 그들의 말에 놀라워하며 말렸다.
"그럴 필요 없다. 아니, 그럴 수 없다. 너희들이 왜 희생을 한다는 것이냐?"
"지금 딱히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희들의 희생으로 몇만 명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기꺼이 이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그게 바로 기사가 할 행동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너희들..."
피스텔 백작은 자신의 직속 부하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감동하면서 동시에 부끄러워했다. 진정한 기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행동에 감동하였고 그들이 그런 선택밖에 할 수 없게 만든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부하처럼 나설 용기가 자신에게는 없는 것이 부끄러웠다.
"정말...미안하다."
"백작님이 미안할게 뭐가 있습니까? 저희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개를 드십쇼."
"백작님은 10만의 군대를 이끄는 총사령관이지 않습니까? 강해지셔야 합니다."
"...미안하다."
백작은 기사들이 하지 말라고 해도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그 갑옷인가?"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더러워지는군."
부관이 가져온 갑옷은 마치 피를 머금은 것처럼 새빨갛고 검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갑옷을 기사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착용하였다.
"시동어는 어떻게 됩니까?"
"시동어는...[나이트 왕국 만세]입니다."
"킥. 만든 자의 의도가 느껴지는군요."
기사들은 부관의 말에 웃음을 지었지만 백작은 우울한 기분을 숨길 수는 없었다.
"백작님. 그럼 갔다 오겠습니다."
"모든 병력을 준비시켜주십쇼. 저희들이 길을 열겠습니다."
"모두...준비시켰다. 그리고 나는 너희들을 평생 잊지 않겠다! 진정한 기사들을!"
백작은 그들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할 것처럼 눈빛을 빛내며 그들을 지켜봤다.
"감사합니다. 백작님. 저희도 백작님 같은 분을 섬길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럼 잘 지내십쇼."
"부디 안녕하시길."
기사들은 그 말을 끝으로 갑옷을 입은 상태에서 말을 이끌고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피스텔 백작은 이를 악물며 10만의 병력을 향해 외쳤다.
"전군 돌격!"
10만의 병력이 백작의 말에 맞혀서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게덴의 진영에서 마법포와 화살이 앞서가는 기사들을 향해 조준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법사 및 정령사! 모든 마나를 쏟아서 앞서가는 기사들을 향해 방어막을 시전하라! 무조건 막아야 한다!"
마법사와 정령사가 자신이 갖고 있는 최대 출력으로 방어막을 시전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마법포와 화살이 기사들을 직격했다.
콰콰쾅!!
엄청난 충격과 굉음이 일어났지만 기사들은 부상만 입은 채 성벽을 향해 돌격했다. 화살이 다시 기사들을 타격했지만 남아있는 방어막이 그들을 보호해주었고 기사들은 드디어 성벽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사들은 마지막으로 돌진해오는 나이트 왕국의 병사들을 쳐다본 후에 서로의 몸을 잡으며 말했다.
"나이트 왕국 만세!!"
시동어와 동시에 갑옷이 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빨갛게 빛나면서 검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기사들의 몸에서 생명력을 흡수하였고 그들의 몸은 한순간에 비쩍 말라버려 가죽만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가죽도 사라지면서 한 줌의 피로 변해버렸고 그 피 또한 갑옷 안으로 흡수되었다. 모든 것을 흡수한 갑옷은 희생을 치른 기사를 배반하지 않듯이 용광로처럼 더욱 빨개졌고 이내 금이 가면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콰쾅쾅!!
갑옷의 폭발은 성벽의 입구를 깔끔히 날려버렸고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백작은 그들의 희생이 쓸데없지 않게, 더욱 값지게 만들기 위해서 소리를 질렀다.
"전군! 성벽으로 입성하라!!"
"우와아아아!!"
10만의 대군이 명령에 맞혀서 성벽의 입구로 빠르게 들어갔다.
"막,막아라! 저들을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
클립스 남작은 성벽이 사라지면서 들어오는 나이트 병력들을 보고 명령을 내렸다. 그에 맞혀서 게덴의 병력들이 입구를 향해 돌격했고 기세등등하게 들어오는 나이트 왕국과 부딪혔다.
퍼퍼퍼퍼퍽!
제일 최전방에서 부딪힌 병력들이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그들은 멈추고 싶어도 뒤에서 수만 명이 미는 힘에 멈추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저 돌진밖에 할 수 없었다.
한번의 격돌로 수백 명에서 수천 명까지 고깃덩어리가 되면서 사라졌고 그때서야 서로의 무력을 펼칠 차례가 되었다.
"크아아악!"
"크륵.."
"컥!"
무기를 휘두를 공간도 없을 정도로 밀집된 곳에서 서로 간에 육체를 부딪치며 어떻게든 무기로 공격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몸 자체가 무기인 수인족들이 일반 병사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피스텔 백작은 적절한 판단을 내렸다.
"일반 병사는 성벽에 사다리를 두고 올라가라! 기사들과 중장갑병은 입구를 돌파한다!"
피스텔 백작의 명령에 맞혀서 일반 병사들이 사다리를 성벽에 설치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몸을 갑옷으로 무장한 중장갑병과 그나마 얇은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들이 성문을 향해 돌격했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수인족들이 성벽도 막고 성문도 막으면서 병력이 분산되었다.
쿵! 쿵! 쿵!
"킁! 비켜라!"
엄청난 덩치를 가지고 온몸을 갑옷으로 가린 중장갑 병사가 앞을 나섰다. 그는 무려 2.3미터의 신체에 150kg에 육박하는 체중을 가지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20kg에 육박하는 철퇴, 왼손에는 그의 신체를 모두 가려줄 정도로 커다란 방패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신디트로 익스퍼트 상급에 속하는 무력에도 불구하고 기사에 들어가지 않는 중장갑병의 단장이었다.
"흐읍!"
그의 근육이 팽창되면서 철퇴로 한번 휘두르자 주위에 있던 수인족들이 철퇴에 맞아서 분쇄되었다. 철퇴를 피하고 몇 명의 수인족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발톱으로 휘둘렀지만 특별제작된 갑옷의 두께는 수인족들의 공격을 충분히 막아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물 만난 물고기처럼 철퇴를 휘두르며 수인족들을 학살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는 싸우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이 정도로 학살하면 대부분 사기가 떨어지거나 질려서 주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수인족들은 처음과 다를 바 없이 그를 향해 덤벼들었다. 마치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처럼.
"뭐야? 이 녀석들?"
신디트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마치 불도저가 미는 것마냥 수인족들을 분쇄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곁에 100여 명이 넘는 시체가 쌓였고 체력이 떨어져서 지칠 정도로 수인족들을 죽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인족들은 똑같은 행동을 보여주었다.
깡!
"윽."
까까깡!
"이,이게!"
체력이 떨어졌는데 계속해서 똑같이 달려드니 신디트는 조금씩 밀리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10여 명의 수인족들이 그의 몸에 달라붙었고 아직은 제대로 된 타격을 받고 있지 않았지만 수인족들이 갑옷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신디트는 이렇게 흘러가면 위험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옆에서 그를 거드는 이들이 생겼다.
"크아아악!"
"컥!"
"저희들이 옆에서 거들겠습니다. 신디트님."
"이 페이스대로 나아가죠!"
"너희들.."
신디트는 자신의 부하들이 옆에서 거드는 것을 보고 콧소리를 내며 피식 웃었다.
"킁! 방해나 하지 말라고."
"예!"
중장갑병 50여 명이 일제히 10명씩 5열을 만들었다.
"자, 가자!"
중장갑병은 오와 열을 맞혀서 앞으로 나아갔다. 성문의 크기 때문에 수인족들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것도 20여 명이 한계였다.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은 수인족이 많았지만 무작정 달려드는 수인족에 비해서 중장갑병은 한 명, 한 명이 묵직할뿐더러 오와 열을 갖추고 뒤에서 보조해주는 이들까지 있어서 훨씬 단단하고 안정되었다.
중장갑병과 수인족의 무력의 차이는 그렇게 나지 않았지만 진영의 중요성을 알려주듯이 중장갑병은 느리지만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저 녀석들을 막아라! 뭐하는 거냐?!"
클립스 백작은 조금씩 성문을 뚫고 오는 중장갑병을 보고 소리쳤다. 그러자 수인족들이 미친 듯이 중장갑병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오히려 너무 몰리다 보니 수인족들의 움직임이 봉쇄되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 밀고 간다!"
"예!"
중장갑병들의 갑옷에는 수인족들의 피와 내장으로 떡칠했고 수인족들의 공격에 찌그러들거나 예리하게 잘려 있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중장갑병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뭐하냐?! 빨리 막지 않고! 몸으로라도 막아라!"
클립스 백작은 괴성을 질렀지만 결국 중장갑병은 입구를 뚫었고 동시에 뚫은 입구를 통해서 나이트의 병력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진정한 난전이 펼쳐졌다.
"이,이럴 수가...말도 안 돼. 이 병력을 갖고도 뚫리다니."
난전이 펼쳐지면서 클립스 백작은 멍하니 싸우는 광경을 쳐다보았다. 수인족들은 입구를 뚫린 것과 상관없이 계속 전투를 펼쳤고 하나하나가 기사 클래스에 육박하여 난전이 대등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클립스 백작은 사령관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상황을 크게 바꿔났다.
"도,도망쳐야 해. 수인족들이 시간을 끄는 사이에 어떻게든."
백작은 멍하니 있다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칫하다가 뚫리게 된다면 크리센트 영지의 사령관으로 나이트에게 처형당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지는 순간 포마스 국왕이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그는 도망치자고 결심을 먹었고 대등하게 싸우고 있던 전투를 지게 만든 결과를 만들었다.
"멈쳐라."
"히익!"
클립스 백작은 도망치려다가 자신의 목에 검이 닿아있는 것을 보고 안색이 새파래졌다. 백작은 어느새 자신의 뒤를 잡고 있는 이를 고개만 돌려 바라보았다.
"어,어느새?"
"기사왕국이라고 해서 기사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이렇게 상황이 급하게 흘러갈 때 움직이는 암살자들도 있단 말씀."
"젠,젠장."
"빨리 항복하는게 좋을 거야. 아니면 실수로 목을 그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암살자가 칼을 목에 더 가깝게 대자 목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내렸다. 클립스 백작은 검의 차가운 느낌이 살에 맞닿자 비명을 지르며 얘기했다.
"히익! 항,항복하겠다! 그,그만해라!"
"말로만 하지 말고 병력들을 멈추지?"
"모두 멈춰라! 전투 중지!"
클립스 백작이 명령을 내리자 게덴의 병력들이 모두 일제히 멈추었다. 암살자는 전투가 중지된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크리센트 전투는 몇 명의 값진 희생으로 나이트 왕국의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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