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나이트 VS 게덴(8)
-----------------------------------
11장 나이트 VS 게덴(8)
엄청난 굉음과 함께 일순간 번쩍이며 마치 천지가 개벽하는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크리드는 본능적으로 마나를 최대로 전개하여 휴나 남작과 히드 백작을 감쌌고 다행히 마법포의 공격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눈을 뜨고 보이는 광경은 지옥도와 다를 바 없었다.
"이,이건..."
"젠장!"
휴나 남작과 히드 백작이 욕지거리를 내뱉을 정도로 심각했다. 크리드와 남작과 백작을 제외하면 주변에 몸이 성하게 남은 이가 없었다. 완전히 새까맣게 타버려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시체가 대부분이었고 지금은 살아있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죽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들도 수없이 많았다.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이들은 사지 중 하나를 잃어버린 이들이었고 다행히 마법포에 맞지 않은 이들은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크리드는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며 새까맣게 변해버린 한 병사에게 걸어갔다. 크리드가 그의 손을 잡자 그와 동시에 병사의 손이 잿더미로 변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젠장..."
크리드는 주먹으로 까맣게 변한 땅을 꽉 쥐었다.
"젠장,젠장,젠장!!!"
크리드는 분노에 찬 목소리를 외쳤고 휴나 남작과 히드 백작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은 크리드가 얼마나 분노하고 어떤 것 때문에 저러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의 무력함으로 인해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간 병사들, 명예롭지 않고 허무하게 죽은 기사들. 아군, 적군 분별없이 그저 병사를 말로만 생각하는 사령관에 대한 분노.
그런 것들이 모여서 크리드를 격노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휴나 남작과 히드 백작은 그가 분노하더라도 지금은 참아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총사령관인 그가 통제해야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은 그들만이 아녔다.
"크리드."
"전하..."
아무드 국왕의 하얀 갑옷은 어느새 적의 피로 가득했고 산발로 변한 그의 머리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아직도 불타오르고 있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않나?"
"....."
"총사령관인 그대가 이러고 있으면 누가 병력을 통솔하겠는가? 자네만 분노를 느끼는 줄 아나? 말해봐라! 크리드!"
"....."
크리드는 고개를 올려서 아무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에게서 자신에 못지않게, 아니 자신보다 더한 분노가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추를 보였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후퇴 명령을 내려라."
"예, 알겠습니다. 전원 후퇴!!"
크리드의 목소리와 함께 전장에 남아있던 병력들이 모두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게덴의 총사령관 유피안 백작은 폭소를 하며 외쳤다.
"푸하하핫! 꼴 좋구나. 그렇게 큰소리쳐 놓고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꼴이라니! 다시는 게덴을 쳐다보지도 말고 두려워해라! 푸하하핫!"
유피안 백작의 목소리가 평원을 울려 퍼졌고 많은 이들의 귓가에 흘러들어 갔다.
나이트 왕국 : 병사 74890명 사망, 122379명 중상
기사 7435명 사망, 5293명 중상
중장갑병 1590명 사망, 1865명 중상
마법사 및 정령사 493명 사망, 284명 중상
게덴 왕국 : 수인족 34827명 사망, 8934명 중상
병사 14829명 사망, 2738명 중상
이렇게 골레라스 평원의 대전투는 양측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하지만 이런 전투는 골레라스뿐만 아니라 다른 두 군데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게 크리센트인가?"
피스텔 백작은 아무드 국왕의 명을 받아서 10만의 군대를 이끌고 크리센트에 도착했다. 크리센트는 평범한 도시로 성벽도 10만의 군대면 충분히 뚫을 수 있을 정도로 철옹성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정보가 샌 건가? 너무 대응이 빠른데.."
아무드 국왕이 결정을 내리자마자 출정했는데도 불구하고 크리센트에는 약 3만이 넘는 병력들이 성에서 수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준비성이었다.
'스파이가 있는 건가?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설마...'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계속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돌격하시겠습니까?"
"아니, 3만의 병력이 지키고 있는데 무작정 돌격하는 것은 우매한 짓이다. 그렇다면..."
피스텔 백작은 부관에게 물어봤다.
"지금 기사들 중에서 익스퍼트 중급 이상이 몇 명이 있지?"
"중급 800여 명이고 상급이 100여 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급 50명과 상급 50명으로 이루어서 하나의 집단을 만들어라. 밤에 침투하여 문을 열게 한다."
"알겠습니다.
피스텔 백작은 명령을 내려서 막사를 짓게 하고 밤이 되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찾아오듯이 밤이 다가왔다.
"그럼 지금부터 침투하겠다. 모두 조용히 움직이도록."
"알겠습니다."
이번에 잠입조의 조장을 맡게 된 브로트는 익스퍼트 최상급에 속하는 인물로 소드마스터의 벽에 막혀있었다. 잠입조의 100명 인물들 중에서 제일 경지가 높으며 차기 소드마스터로 기대받고 있어서 그가 조장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흘러갔다.
100명의 기사들은 현재 갑옷을 입지 않고 가죽으로 되어있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잠입하는데 갑옷은 시끄럽고 쓸데없는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제일 경비가 허술해 보이는 곳을 탐색하여 도착한 100명의 기사들은 주위에 바라보는 이가 있는지 둘러봤다. 브로트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 고개를 끄덕였고 기사들은 동시에 움직였다.
성벽의 높이는 약 10미터에 육박하여 아무리 신체능력이 좋은 기사들도 한 번에 뛰어 올라갈 높이가 아니였다. 그렇지만 힘을 합치면 올라가지 못할 높이도 아니였다.
총 10명이 2인조씩 맞추어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이어서 1명의 기사가 달려와서 그들의 손을 밟고 점프해서 성벽 위로 올라갔다. 마나로 향상된 신체능력을 갖춘 기사 2명이 밑에서 손으로 밀어준 것과 가속도로 점프한게 합쳐져서 성벽을 올라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위에 올라가는데 성공한 기사들은 줄을 꺼내서 밑으로 넘겨주었고 남은 기사들은 단단히 고정된 줄을 잡고 위로 올라왔다.
모두 올라온 것을 확인한 브로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짓으로 방향을 지시해주었다. 그들의 목표는 성문을 여는 것으로 최대한 들키지 않고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그들이 움직인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브로트는 뭔가 위화감을 느끼고 손짓으로 기사들을 멈추게 하였다. 뒤따라가던 기사들은 브로트가 갑자기 멈추라고 하자 이상하게 여겼지만 이내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무기들을 꺼냈다.
"....."
침묵이 주위의 공기를 지배하는 가운데 빛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빛의 정체는 바로 수인족들의 눈으로 짐승의 피가 흐르는 것을 증명하듯이 이 어두운 밤속에서도 야광을 띠고 있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십여 명으로 시작했던 것이 수십 명, 수백 명으로 순식간에 늘어났다.
"...젠장.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브로트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등장하는 수인족들을 보고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동시에 수백 명의 수인족들이 달려들었고 브로트는 여기가 자신의 무덤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늦는군."
피스텔 백작은 잠입조들이 성문을 여는데 성공하면 곧바로 돌진하도록 10만 대군을 준비시켜두고 소식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성문이 열렸다. 피스텔 백작은 성문이 열리자마자 돌격명령을 내리려고 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손을 내렸다.
"뭐지?"
성문이 열리긴 열렸다. 하지만 성문이 열리고 한 마리의 말과 함께 위에 타고 있는 기사가 보였지만 이내 성문이 곧바로 닫히고 있었다. 말은 나이트 왕국의 본진까지 걸어왔고 10만의 대군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은 이내 모든 이들이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다가왔고 피스텔 백작은 말 위에 있는 기사를 보고 이를 갈았다. 왜냐하면 말 위에 있는 기사는 얼굴이 없는 채 말과 함께 묶여있었고 그 기사의 정체는 바로 잠입조의 조장인 브로트였기 때문이었다.
"...사령관님."
"알고 있다."
피스텔 백작은 뼈 아픈 손실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익스퍼트 상급 50명은 엄청난 전력으로 함부로 버릴 수 있는 카드로 사용되어서는 안 됐다. 그런데 그 카드를 사용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한 것이 분한 것이다.
"성벽에 마방진이 펼쳐있다고 했나?"
"예. 마법사들이 말하기를 6서클 마방진 펼쳐있다고 합니다."
"6서클? 크리센트조차 6서클이면 다른 데는 어느 정도 라는 거지?"
크리센트는 중요한 도시도 아니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6서클 마방진이 펼쳐져 있다는 것은 수도로 가면 어떤 마방진이 펼쳐져 있을지 두려워지는 피스텔 백작이었다.
"지금 우리 측에 있는 마법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최대 몇 서클이지?"
"공교롭게도 6서클입니다."
"그럼 마법으로 뚫는 것도 안 되겠군. 공성 병기로도 그 정도 마방진을 뚫는 것은 불가능하겠고...부관. 무슨 생각하고 있는 묘안이 있나?"
"하나 있기는 하지만 추천은 할 수 없습니다."
"들어보기나 하지."
"그건..."
"후훗. 나이트 녀석들. 방법이 없을 것이다."
클립스 남작은 성벽 위에서 나이트 10만의 병력을 보면서 웃었다.
"잠입하는 것도 미리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도 못했겠지. 그 결과가 이 모양이고."
클립스 남작은 나이트가 잠입조를 보낸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인족들을 대기시켜놓고 그들이 오자마자 몰살시키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그 정보를 입수하는데 많은 돈이 들어갔지만 게덴은 돈이 넘치는 왕국이었다.
"나도 포마스 국왕님에게 좋은 결과를 보여줘야지. 아니, 이 정도의 병력을 갖고 있는데도 지는게 힘든가?"
클립스 남작은 크리센트 영지의 영주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힘 있는 귀족도 아니였고 병력도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다. 하지만 포마스 국왕은 크리센트로 나이트 병력이 공격해올 것이니 방어를 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그것도 천문학적인 돈과 3만의 병력을 쥐여주면서. 3만의 병력도 2만이 수인족이고, 1만이 중장갑을 착용하고 있는 병력이었다.
"그건 그렇고 수인족들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군."
좀 전의 전투를 떠올리며 클립스 남작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기사들은 무력에 일가견이 없는 남작이 봐도 강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수인족들은 그런 기사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백 명의 수인족들 중에서 많은 이가 죽고 다쳤지만 아직도 2만의 병력이 있었고 나이트 왕국의 최정예멤버를 몰살시켰다는 것은 엄청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클립스 남작은 자신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는 3만의 병력을 보고 든든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탐나는군. 국왕님은 대체 어떻게 이들을 통솔할 수 있을까?"
남작의 손가락에도 반지가 껴있었고 3만의 병력은 멍하니 정신을 놓은 채로 눈에 생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남작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전군 돌격!!"
그때 나이트 왕국의 총사령관이 명령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10만의 병력이 성벽을 향해 돌진해오는 것이 보였다. 클립스 남작은 돌진해오는 10만의 병력을 보고 비웃었다.
"하하핫! 방법이 없어서 그저 돌진을 하다니! 정말 바보 같은 사령관이군. 마법포와 화살을 준비하라."
성벽에는 10개의 마법포가 언제든지 쏠 수 있도록 장비되어 있었고 3만의 병력이 일제히 화살을 당기면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클립스 남작은 나이트의 병력들이 오는 타이밍에 맞혀서 명령을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클립스 남작의 눈에 나이트 왕국의 진영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뭐야?"
마치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진영에 상관없이 무작정 돌진해오는 몇 명의 기사가 보였다. 그들은 각자 말을 미친 듯이 때리면서 달려오고 있었는데 클립스 남작은 그들을 비웃었다.
"킥. 공포 때문에 미친 건가? 이봐. 저 애들한테 한 방 먹여줘라."
클립스 남작의 명령에 따라서 10개의 마법포와 3만의 병력이 일제히 다가오는 기사들을 향해 조준했다. 그리고 남작의 손이 내려가는 동시에 마법포와 3만 개의 화살이 기사를 향해 날아갔다.
콰콰쾅!!
10여 개의 마법포는 작은 지역을 초토화시키기에 충분했고 3만 개의 화살은 기사들을 고기 반죽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남작은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멀리서 조금씩 다가오는 10만의 병력에 시선을 두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실수였다.
"이럇!"
"뭐야?!"
폭발과 화살이 집중된 곳에서 기사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부상을 당하고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말을 이끌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클립스 남작은 뭔가 불안하다고 느끼면서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쏴라! 다가오게 해서는 안 된다!"
마법포는 재장전의 시간이 필요해서 사용하지 못했지만 3만개의 화살은 일제히 기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남작은 이어서 보이는 광경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채채채챙!!
3만 개의 화살은 일제히 기사들을 향해 떨어졌지만 투명한 막에 팅겨서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일부 화살들이 뚫고 들어가긴 했지만 기사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없었고 그들의 돌격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몇 명의 기사들은 성문에 도착하였고 그들은 일제히 서로 몸을 붙잡으며 얘기했다.
"나이트 왕국 만세!!"
콰콰쾅!!!
"으아악!!"
성벽이 흔들리면서 남작은 비명을 지르고 중심을 잃으며 바닥에 넘어졌다.
"으윽...대체 무슨 일이.."
남작은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성,성문이..."
어떻게 된 일인지 성문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파괴되어 사라져 있었고 커다란 구멍이 생겨있었다. 그리고 성문이 사라지자마자 돌진해오는 나이트 10만의 병력을 보며 남작의 안색은 새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