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누가 더 괴물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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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누가 더 괴물인가?(1)
"듀로크라는 분은 어떤 인물인가요?"
"글쎄요...저같은 범인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하늘이 내려준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인가요?"
"예. 머리도 비상하여 획기적인 계획을 만들 뿐만 아니라 무력까지 9서클 마법사로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한가지는 주어지지 않았군요."
"예? 어떤 거입니까?"
"외모..."
"예?"
"아,아닙니다."
소크라 백작은 빠르게 손을 저으며 부정했지만 나미래의 좋은 청력은 소크라 백작의 작은 독백을 놓치지 않고 들었다.
'외모? 얼마나 못생겼길래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내가 본 몬스터 수준인가?'
나미래는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는데 그때 멀리서 뭔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뭔가가 다가오고 있다."
라인트가 하는 말을 듣고 나미래는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들리는 소리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멀리서 한 명의 인물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제 말하면 온다고 하더니 직접 왔군요."
"그렇다는 것은...저 사람이 듀로크입니까?"
"예."
하늘을 날아서 착지한 인물은 얼굴에 무표정의 가면을 쓰고 독특한 로브와 지팡이를 소지하고 있었다. 나미래는 그를 더 관찰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를 본 순간 나미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눈앞에 인물은 괴물이라고. 자신과 같은 괴물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강한 자를 안다. 그렇기에 듀로크라는 괴물에 압도돼서 심장이 뛰고 있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나미래는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부딪히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근질거림이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호승심 또는 투쟁심이라고 불리는 감정이었다.
한쪽에서는 도망치라는 공포감이, 한쪽에서는 싸우라는 투지가. 상반된 두 감정이 그녀의 몸속에서 휘몰아치면서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하고 있었다.
"나미래님? 괜찮으세요?"
겉으로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보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내부에서 부딪히고 있는 두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일을 마치 눈치챈 것처럼 물어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크리스였다. 크리스는 나미래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나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미래는 두근거리는 심장과 날뛰는 감정들을 애써 잠재우고 듀로크에게 물어봤다.
"당신에게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말해봐."
듀로크가 대뜸 반말로 얘기했지만 나미래는 의외로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듀로크라는 인물이 괴물이라는 것을 느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미래는 당연하게 넘어갔다.
"여기로 가져온 향신료들은 당신이 발명한 건가?"
나미래는 소크라 백작이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듀로크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미래의 물음에 듀로크는 당연하다는 듯이 수긍하며 대답했다.
"맞는데? 내가 만들었어."
"그렇다면..."
그녀는 번역 마법이 걸려있는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며 얘기했다.
"당신은 환생한 자인가?"
나미래는 번역 마법이 걸려있지 않는 자신의 모국어를 내뱉었다. 그녀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상대의 반응을 기다렸다.
듀로크는 나미래의 말에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을 움찔거렸고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런 그를 다른 이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았지만 나미래는 그저 듀로크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듀로크는 입을 열어 말을 내뱉었고 그의 말은 나미래를 전율케 하였다.
"그렇다."
듀로크의 입에서 자신만이 알고 있는 모국어가 들려왔다.
"당신은 환생한 자인가?"
듀로크는 흥미가 느껴졌던 여성의 입에서 자신의 모국어가 나오는 것을 듣고 당황했다. 아마 환생하고 나서 제일 당황했을 거라고 듀로크는 생각했다.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 자신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지금 상황은 무슨 상황 인지 등 수많은 생각이 듀로크의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먼저 부딪혀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사실대로 얘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
듀로크는 상대의 말에 맞혀서 번역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모국어로 얘기했다. 그러자 여자도 놀랐는지 경악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당신도 한국인이야?"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잖아? 그러는 당신은 환생한지 얼마나 됐지?"
"시간상으로 1년은 되지 않았어."
"나는 3년 정도 된 것 같군. 아니, 4년인가?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다."
갑자기 여자는 한숨을 쉬었고 듀로크는 갑자기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지?"
"같은 환생자를 봐서 그런가? 안심이 돼서."
"하긴...나도 처음 들었을 때는 당황했다. 환생자를 만난 것도 놀라운데 같은 곳에서 왔다니."
"당신과 진지하게 대화를 하고 싶은데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오래 비울 수는 없지만 가능은 하지. 그전에 이들에게 설명을 해줘야겠군."
듀로크는 자신과 여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들을 보고 번역 마법을 사용한 후에 얘기했다.
"크흠...이 여자는 나와 같은 곳에서 왔다. 그래서 모국어로 얘기했던 거지."
"아,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크리스와 라인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지만 소크라 백작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왜냐하면 소크라 백작은 듀로크가 오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모국어로 얘기했다고 했다는 것은 나미래가 오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나미래는 절대 오크가 아니였다. 그렇기에 소크라 백작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듀로크. 대체 무슨..."
"나중에 얘기해줄게. 먼저 물자와 함께 가 있어주겠나? 나는 이 여자와 얘기할게 있어서 말이지."
소크라 백작은 듀로크의 완강한 눈빛을 보고 한숨을 쉬며 얘기했다.
"알겠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야. 하지만 후에 얘기해주게나."
"명심하지."
소크라 백작은 듀로크의 어깨를 한번 가볍게 치고 걸어갔고 그 뒤를 마법사가 뒤따라갔다. 크리스와 라인트는 나미래를 쳐다봄으로써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선택권을 넘겼고 나미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미래님. 그러면 조금 있다가 봐요!"
"그 사이에 도망치지 마라! 끝까지 쫓아갈 것이다."
크리스와 라인트가 한마디씩 하고 마차를 끌며 소크라 백작의 뒤를 따라갔다.
"이제야 단둘이 됐군. 어디 조용한 곳에서 얘기나 하겠나?"
"나쁘지 않네."
듀로크는 나미래와 함께 텔레포트를 시전하여 이동했다.
"헉!"
나미래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텔레포트에 아찔한 기분을 만끽하며 눈을 떴다.
"이곳은?"
"왕성의 안이지. 지금은 내가 사용하고 있는 방이지만. 나쁘지 않지?"
"나쁘지 않을뿐더러 이 정도면 좋은 거 아닌가?"
화려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방이었다. 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않을 것 같았고 아늑해 보이는 분위기는 편안하게 다가왔다.
"테이블에 앉아있어. 간단한 간식이나 차를 먹으면서 얘기하도록 하자고."
듀로크가 얘기하는 대로 나미래는 테이블에 앉았고 뒤이어 듀로크도 앉았다. 나미래는 준비할 것 같이 얘기했던 듀로크가 자리에 앉자 그가 뭘 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서 듀로크가 손을 올리고 보여주는 광경에 그녀는 경악했다.
"뭐,뭐야? 귀,귀신인가?"
차와 간식이 담겨 있는 그릇과 물건들이 공중에 떠서 날아오고 있었다. 귀신의 소행이라고 생각한 나미래는 안색이 핼쑥해졌고 듀로크는 피식 웃으며 설명해줬다.
"이것도 마법을 응용해서 사용한 거야. 귀신은 아니니까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돼."
"저런 것도 마법으로 가능하다니...마법은 모든게 가능한 거야?"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일은 가능하지. 그리고 이렇게 마나만으로 물체를 들어 올리고 안전하게 움직이는 것은 나 정도는 돼야 할 수 있는 거다."
"역시 9서클 마법사여서 그런 건가? 그런 힘을 대체 어떻게 얻은 거야?"
"우연이라고 할까? 그보다 당신의 몸도 범상치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지?"
"내 몸이 어떻게 됐는지 보여?"
나미래는 듀로크의 말에 깜짝 놀랐다. 겉모습이 변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는데 한 번에 알아보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정확히는 몰라. 하지만 네 몸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은 알 수 있다."
"그것도 9서클 마법사여서 알 수 있는 거야?"
"그렇다고 해야 하나...그렇게 이해해도 문제없을 것 같군."
나미래는 공중에서 날아와서 테이블에 안착한 차와 간식을 먹으며 듀로크에게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 너는 듀로크라고 불리는 것 같던데 전생의 이름은 뭐였어?"
"김병용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의 이름을 모르는군."
"아, 지금까지 이름도 얘기하지 않았네. 내 이름은 나미래라고 해."
"나미래라...전생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건가?"
"맞아."
"나는 그럴 여건이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이름이 정해졌으니까."
"그런데 너도 환생했다는 것은 죽었었던 거지?"
"그렇지."
"너는 어떻게 죽었어?"
얼핏보면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나미래는 아직도 자신이 죽었던 일을 생각하면 불쾌감이 느껴지고 몸이 떨려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자도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했는지 궁금했기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어봤다.
듀로크는 나미래의 질문에 한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입을 열어서 얘기했다.
"나는 군대에서 전역을 하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섭섭하고도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며 이제 전역했다는 해방감에 가득 차 있었지. 그렇게 나는 전역을 하고 집으로 가기위해서 기차를 타려고 했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고."
'횡단보도?'
나미래는 듀로크의 말에서 횡단보도라는 말이 나오자 머리가 잠깐 지끈거렸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있어서 횡단보도는 죽음에 이르게 한 장소로 조그마한 트라우마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지? 안색이 좋지 않군."
"아무것도 아니야. 얘기 계속해."
"그러도록 하지.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한 아이가 공을 붙잡으려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잠,잠깐...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미래는 듀로크가 하는 말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그에 맞혀서 한 자동차가 아이를 보지 못했는지 지나가려고 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아이를 보호하려고 했고 몸을 날렸고 이내 자동차가 내 몸을 박았지."
'설,설마...내..이야기?'
"그렇게 나는 아이를 보호하려다가 차에 박아서 죽었지. 허망한 죽음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한 아이를 보호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그래?"
"단,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나미래는 듀로크의 말에 고개를 들어서 그를 쳐다보았다. 가면에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지만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운전자는 어떤 새끼인지는 몰라도 참 거지같이 운전하더라고. 아이가 나오는 것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박아버렸으니까. 나중에 만나면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눈을 어디다 팔아 먹어서 그따위로 운전하냐?!'고. 푸하핫!"
"....."
"필히 아줌마였을 거야. 아니, 술먹은 아저씨인가? 운전자의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봤으면 참으로 가관이였겠지. 정상이였으면 그럴 수는 없을 거니까. 암. 너는 어떻게 생각..."
듀로크는 농담식으로 얘기하며 웃었다. 하지만 나미래가 고개를 수그리며 부들부들 떠는 것을 보고 그는 나미래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러지?"
"운..."
"운?"
"운전 못 해서 미안하다! 개새끼야!!!"
퍼어억!!
아주 깔끔한 어퍼컷이 들어가면서 둘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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