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새로운 괴물의 탄생(23)
-----------------------------------
8장 새로운 괴물의 탄생(23)
"당신, 진짜 괴물이군."
"너무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요새 저도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탑 타운에서 바텀 타운까지 날개를 펼치지 않고 내려오다 보니 지형지물을 부수면서 무식하게 내려왔다. 그런데도 자신을 떨어트리지 않고 잔 상처 하나도 생기지 않았으니 라인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천 미터는 가볍게 넘는 높이를 나미래는 수십 번의 수직낙하를 반복함으로써 엄청난 시간을 절약하고 내려왔다.
"저기 보이네요."
"당신의 일행들인가?"
"예. 가서 소개해드릴게요."
"당신의 일행이라고 하니 기대되는군."
"그냥 평범한 이들이에요."
일행들로 보이는 인물들이 보이자 나미래는 한 번에 뛰어넘으려고 몸을 날렸다. 상당한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나미래는 자신의 몸을 믿고 있기에 한순간의 주저도 없었다.
휘이이...쿵!!
"뭐,뭐야?!"
"뭔 소리야?!"
피센트와 시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착지하면서 생긴 먼지가 사라지고 나미래가 모습을 드러내자 피센트와 시스는 그제야 안심하고 반가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미래님!"
"무사하셨습니까?!"
"별로 위험한 것도 아니였는데요. 그보다 크리스는요?"
나미래는 크리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어봤다.
"크리스는 잠시 화장실을 갔습니다. 그런데...어깨에 있는 분은?"
"나 말인가?"
지금까지 축 늘어진 척하고 있던 라인트는 나미래의 어깨에서 내려와서 몸을 이리저리 풀어주었다. 아직도 상처가 완벽히 낫지 않았는데도 라인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움직였다.
"으음...제 컨디션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리겠군. 아직도 욱신거리는 것이 얼마나 세게 때린 거지?"
"조금 힘을 주긴 했죠."
나미래가 쑥스럽다는 듯이 뒤통수를 긁적였고 라인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시스는 이 거구의 인물이 누군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피센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뇌하고 있었다.
"...상당한 거구에다가 나미래님과의 대화를 유추해봤을 때 당신은 산왕이 맞습니까?"
"호오? 상당히 머리가 좋군. 맞다. 내가 바로 산왕이라고 불리는 라인트라고 한다."
"저는 피센트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피센트의 작은 손과 산왕의 커다란 손이 악수를 하자 마치 어른과 아이가 악수를 하는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나미래님!!"
크리스는 나미래가 온 것을 보자마자 달려들어서 안겨들었고 나미래는 크리스를 안전하게 받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얘기했다.
"별일 없었니?"
"예. 나미래님이야말로 별일 없었나요?"
"나야 순탄했지. 봐바. 여기 전리품도 가져왔잖아?"
나미래는 라인트를 가리키며 얘기했고 크리스는 라인트를 보고 순수한 놀라움을 표현했다.
"와아~ 몸이 참 크시네요. 아저씨가 산왕이에요?"
"꼬마 아가씨야말로 내 정체를 어떻게 바로 알았니?"
"그냥...느낌으로요?"
"푸하하핫! 답 한번 명쾌하구나."
나미래는 라인트와 크리스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보며 피센트에게 얘기했다.
"제가 없는 동안 별일 없으셨나요?"
"산적들이 몇 번 들이닥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친해진 네스트가 얘기해줘서 완만하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걱정하지 마세요. 산맥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으니."
"그 말씀은?"
"말했던 대로 산왕과 붙어서 이겼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데려왔죠. 통행증 대신."
"...예상했다고 해도 놀랍군요. 그런데 나미래님. 혹시 이 산맥의 정통을 모르고 계신 겁니까?"
"전통이요?"
"...역시 모르시고 있으셨군요. 이 산맥에는 제일 강한 자가 산맥을 통솔하는 리더가 되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미래님이 산왕을 이겼으니..."
"당신이 이 산맥의 리더가 돼야겠지."
라인트가 어느새 옆에서 끼어들어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제가 그걸 왜 해요?"
"그게 전통이니까."
"저는 관심 없어요."
"당신이 관심 없다고 하더라도 산적들은 모두 그 전통에 따를 것이다."
"그러든지 말든지 저는 상관없어요."
"천 명의 산적들이 당신의 뒤를 따를 것이다. 당신이 어딜 가든지."
"뭐가 그렇게 고지식해요?!"
"왕국에 법이 있는 것처럼 이 산맥에도 전통이라는 법이 있는 것이다."
나미래의 노성에 라인트는 진지한 표정을 짓고 얘기했다.
"당신이 우리를 버리고 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 산적들은 당신의 뒤를 쫓을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천 명에 달하는 산적들이 당신의 이름을 대면서."
"지금 나한테 협박하는 거야?! 너희들을 다 몰살시킬 수도 있어!"
나미래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라인트에게 분출했다. 하지만 라인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어서 얘기했다.
"나도 이 전통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천 명의 산적들을 복종시키고 계속해서 유입되는 인물들을 관리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세상은 약육강식. 강한 자는 살아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약한 자들을 이끌어 줘야 하지 않겠나?"
"....."
"그리고 산맥의 통솔자가 된다고 해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천 명의 수하를 맘대로 이용할 수 있고 생활도 편안하다. 더구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매리트가 있다."
"...그건 조금 솔깃한데요?"
"크크크. 잘 생각해보라고. 네가 전쟁을 하고 싶다고 얘기해도 그들은 따를 것이다. 명령에 따르라는게 정통이니까. 네가 산을 뒤엎으라고 한다면 그들은 산을 갈아엎을 것이다. 그게 명령이니까."
"흐음..."
"네 편이 천 명이 늘어났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나쁜 이야기도 아니지 않나?"
"...고민 좀 해볼게요. 지금은 먼저 왕국으로 가야 해서요."
"왕국? 왜지?"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요."
"그럼 나도 따라가도록 하지."
"예? 그래도 되나요?"
"부관에게 맡기고 가면 돼. 그리고 나는 당신을 산왕으로 만들어야 하는 임무가 있으니 옆에서 지켜봐야겠지."
라인트는 미소를 지으며 나미래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부탁한다고. 제 2의 산왕."
나미래는 라인트의 말에 똥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그 이후부터 일은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라인트의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었고 오히려 자진해서 길을 가르쳐주었다.
바텀 타운에서 미드 타운으로, 미드 타운에서 탑 타운까지 지름길을 이용한 덕분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탑 타운에서 라인트가 부관에게 왕국으로 여행을 간다고 얘기하자 부관이 미쳤냐고 되묻는 사건이 있었지만 그것은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부관의 엄청난 반발을 라인트가 일절 무시함으로써 상황은 빠르게 마무리되었고 나미래와 일행들은 산맥을 순조롭게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라인트가 산적들에게 나미래를 제2의 산왕으로 임명한다는 말을 한 후부터 산적들이 나미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지만 그것도 사소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산맥을 넘어서 왕성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저게 성이야?"
"예. 벨치스 국왕님이 살고 계시는 성이에요."
"장난 아니게 크네..."
"그래도 다른 왕국에 비해서 작은 편이에요."
"저게?"
나미래와 일행들은 라이언 왕국의 수도인 라미츠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어서 나미래는 멀리서 보이는 왕성의 크기에 놀라워했고 다른 왕국에 비해서 작다는 말을 듣고 두 번째로 놀라워했다.
"슬슬 저희의 차례네요. 준비하도록 하죠. 아, 참고로 라인트님은 가만히 있어주세요."
"...알겠다."
라인트는 산왕으로 왕국의 입장에서는 범죄자로 봐도 무리가 없었다. 더구나 평범한 범죄자가 아닌 특급 범죄자였다. 하지만 라인트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를 밝힐 것 같았기에 크리스는 미리 언질을 해둔 것이었다.
"다음 분 오십쇼."
경비병의 말에 따라서 승합 마차와 화물 마차가 앞으로 나아갔다. 승합 마차의 마부석에는 라인트가 앉아있었고 마차의 내부에는 피센트와 시스, 조이스가 있었다. 화물 마차의 마부석에는 크리스와 나미래가 앉아있었고 마차의 내부에는 향신료와 물자, 크리스탈, 그리고 시체들이 들어있었다.
"통행증 있으십니까?"
"예. 저희는 소크라 백작님의 임무를 받고 그것을 시행하고 오는 길입니다."
"소크라 백작님의? 알겠습니다."
경비대장으로 보이는 이의 고갯짓에 나머지 경비병들이 마차의 내부를 조사하려고 움직였다. 경비대장도 통행증이 위조된게 아닌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전에는 이렇게까지 엄격하지 않았는데...경비병들이 바뀐 것도 같고...'
듀로크에 의해서 개편이 되어 경비병들의 질이 좋아졌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크리스가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대장님. 잠시 와서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다. 잠시만 같이 오시지요."
크리스는 경비대장의 말에 따라서 걸어갔다. 경비대장은 화물 마차의 내부에 있는 것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물자와...저것들은 뭔가요?"
"크리스탈과 시체들입니다."
"시체?"
"예. 이번 임무를 하면서 희생당한 용병단원들의 시체입니다. 장례식을 치르고 싶어서 이렇게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용병단의 이름과 그렇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얘기해주시겠습니까?"
경비대장의 말에 경비원 중 한 명이 종이와 펜을 가져와서 적을 준비를 하였다. 그때 마차 안에 있었던 피센트가 모습을 드러내며 얘기했다.
"저희 용병단의 이름은 블러드 이글입니다. 현재 사망한 버크 단장을 대신하여 제가 임시로 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사망한 인원은?"
"총 5명입니다. 사망한 지점은 식인의 숲. 저 크리스탈도 식인의 숲의 원인으로 왕성에 보고하기 위해서 가져온 것입니다."
"식인의 숲이라...먼저 어떤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아픈 기억을 다시 되살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것도 일의 일부분이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통과시켜드려라."
경비대장의 말에 문 앞을 막고 있던 경비병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다행히 경비대장은 라인트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아서 순조롭게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야..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네."
나미래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감탄했다. 지금까지 오면서 들렀던 마을들도 서로 다른 분위기를 띠고 있었는데 왕국의 수도여서 그런지 라미츠도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어떤 마을보다 사람이 많고 북적거리며 활발하였다. 또한 업되어 있는 분위기는 자신도 모르게 아드레날린이 생겨서 들뜬 몸을 사용하여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흐르는 것이 보여 그런 기분이 피부로 와닿고 있었다.
"크리스, 네가 말하기로 라이언 왕국은 다른 왕국보다 못 살고 불만이 많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내가 보기에 그래 보이지 않는데?"
"이,이상하네요. 얼마 전까지는 이러지 않았는데..."
크리스는 자신이 없던 몇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왕국이 격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는 해도 이렇게 한 번에 변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고?"
"아니다. 내가 장담하지."
앞에서 마차를 이끌고 있는 라인트가 얘기했다.
"산맥에 들어온 산적들의 대부분은 본래 왕국에 있는 국민들이었다. 불만을 가진 이들이었지. 그런 이들이 천 명이었다."
"확실히 맞는 말이네요. 그럼 갑자기 이렇게 변했다는 거에요?"
"그건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우리 산맥에 들어오는 숫자가 적어진 것은 사실이다."
"흐음...알 수 없네요."
"그에 대한 답은 제가 해드리죠."
피센트가 어느새 마차 안에서 나오며 얘기했다.
"이렇게 변한 이유는 모두 듀로크님이 일으키신 격변 때문입니다."
"대체 어떤 격변을 했길래 이렇게 변한 거죠?"
크리스의 질문에 피센트는 마치 얘기하고 싶어하는 아이마냥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썩은 귀족들의 제거, 흐트러진 경비의 재정비, 교육과 징병 의무제,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으로만 뽑는 인재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신료와 새로운 발명품의 수출."
"향신료와 새로운 발명품...설마?"
"예. 맞습니다."
피센트는 화물 마차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저 물자가 바로 그 수출품들의 초기작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