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격변하는 왕국(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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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격변하는 왕국(10)
"오늘도 재밌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에 사용한 마법은 놀라웠다. 그런 응용법이 있을 줄이야. 내가 살면서 그런 응용법은 처음 보는군."
"칭찬 고마워. 마족한테서 칭찬을 처음 들어보는데 은근히 나쁘지 않네."
"큭. 나도 너같은 엘프는 처음이다. 엘프는 모두 얌전하고 연약할 줄 알았건만."
"너 같은 마족도 있는 것처럼 나 같은 엘프도 있는 것 아니겠냐?"
"맞는 말이군."
나르샤와 벨리온은 라이언 왕국으로 온 이후부터 계속 대련했다. 둘 다 상당한 실력자로 자신과 비슷한 강자를 만나기 힘들었기에 그들은 즐겁게 대련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그 결과 대련을 통해서 그들의 사이는 좀 더 가까워졌고 마족과 엘프 사이에도 불구하고 그 둘 간에 벽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련도 했으니 술이나 마시지 않을래?"
"술? 듀로크에게 혼난게 엊그제인데 다시 먹을 생각을 하는 거지?"
"그건 서로 경쟁하느라 그런 거잖아? 그냥 즐겨먹자고. 싫어?"
"싫은건 아니지만...응?"
벨리온은 지난번의 일이 걸려서 나르샤의 제안대로 술을 먹을지 말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때 벨리온은 멀리서 느껴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나르샤도 같은 행동을 취했다.
"느꼈나?"
"그래. 100여 명이 넘는 인물들이 들어왔군. 상당히 빠르고 민첩한데? 누구지?"
"뭐가 됐든 좋은 의도로 온 것 같지는 않군. 피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한번 가봐야겠지?"
"가보도록 하자고."
쉐이드는 호흡을 조절하고 손짓으로 암살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B급과 C급이 틈을 만들고 S급과 A급이 그 틈에 공격한다.'
끄덕.
쉐이드의 손짓을 본 암살자들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쉐이드의 지시에 암살자들이 살기를 뿜어내었고 100명이 넘는 암살자들의 살기가 모여서 공기가 들끓는다고 착각이 될 정도였다.
"찌릿찌릿한데? 재밌겠어."
"한번 제대로 해볼까?"
나르샤는 옆구리에 있는 검을 꺼내 들어 자세를 잡았고 벨리온은 검은 연기를 조금씩 뿜어내었다.
"이 연기는 뭐지?"
"...기분 나쁘군."
사람을 죽이는 직업을 가진 암살자들도 기분이 좋지 않다고 느낄 정도로 검은 연기는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며 스물스물 올라왔다. 쉐이드는 가만히 놔두면 안 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소리쳤다.
"공격!"
B급과 C급, 합쳐서 150명에 달하는 암살자들이 단 2명을 향해 공격했다. 무기가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을 정도로 150명의 공격은 빽빽하게 공간을 채웠고 그 공격에 2명은 다진 고기가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크아아아악!!"
"으아아악!! 내 팔이!"
"다,다리가!"
단 한 번의 격돌이였다. 그것도 2명과 150명의 격돌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0명 중 3분의 1이 사지 중 하나를 잃어서 쓰러졌고 나머지는 한군데씩 상처를 입고 뒤로 물러났다.
"도,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쉐이드님! 보셨습니까?!"
"....."
쉐이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쉐이드는 흐릿하지만 2명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놓치지 않고 봤기 때문이었다. 엘프는 팔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서 검을 휘둘렀고 수십 명의 암살자의 사지를 하나씩 잘라버렸다.
그리고 미남자는 검은 연기로 자신의 몸을 감싸서 모든 공격을 무효화시켰다. 검은 갑옷이라고 연상케 하는 검은 연기에 모든 무기가 뚫지 못해서 팅겨나갔고 동시에 남자는 주먹으로 타격했다. 주먹에 맞은 암살자들은 날아가는 것이 아니고 분쇄된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사지 중 하나를 잃은 이들 중 단면이 깔끔하게 잘려져 있지 않고 다져진 고기처럼 된 이들도 많았는데 그것은 바로 미남자가 한 행동의 결과였다. 하지만 쉐이드는 더 놀라운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바로 암살자들 중 죽은 이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즉 그 말은...
'봐주면서 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말이지...웃기는군.'
쉐이드는 2명이 150명을 상대로 여유를 부릴 정도로 얕잡아 보였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올랐고 다시 손짓하여 지시했다.
'좀 전과 같이 B급과 C급이 틈을 만든다. 단, 일시에 공격하지 않고 번갈아가면서 공격해 무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S,A급은 내가 움직이는 동시에 공격한다.'
끄덕.
"한번 당하고도 또 하려고 하다니. 미련한 거야? 용감한 거야?"
"뭐가 됐든 결과는 변하지 않겠지만."
쉬익! 깡!
쉐이드는 대답 대신 떨어져 있는 표창 하나를 던졌고 표창은 상대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분쇄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신호로 암살자들은 일제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까까깡! 쉬익! 퍽!
"어?"
"생각보다 멍청하지는 않군."
나르샤와 벨리온은 좀 전의 격돌과 완전히 다른 공격에 상대가 노리는 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보다 조심스러워진 암살자의 움직임과 공격은 까다로웠고 합동 공격과 서로 보조해주는 움직임은 거슬릴 정도였다.
그렇다해도 워낙 개인과의 실력 차이가 있어서 조금씩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은 막지 못하였다. 쉐이드는 자신의 부하인 암살자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것을 봤지만 조급해 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기회를 보고 있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S,A급들이 상대가 언제든지 틈이 보일 시 움직일 준비를 하면서 뿜어내는 살기만으로도 그들에게는 방해적인 요인이 될 거라는 것을 쉐이드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충분히 기다리고 언제든지 움직일 준비를 한 상태로 계속 유지중이었다.
'지금인가? 아니야. 조금만 더. 정확한 틈이 보이는 순간이여야 해.'
쉐이드는 기다리면서 단검에 마나를 부여 넣으며 전력으로 부딪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신경을 상대의 움직임에 쏟아붓는다. 호흡, 발걸음, 마나의 움직임. 모든 것을 관찰하고 틈을 노린다.'
쉐이드는 쉐도우 워크를 쓰면서 주위가 느려지는 현상이 지금 발생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암살자들이 어떻게 당하며 그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생각하고 모든 상황을 보고 있던 쉐이드는 자신이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온 것을 눈치채고 움직였다.
"크리티컬 히트!"
크리티컬 히트는 엄청난 돌진력과 함께 한곳에 모든 힘을 다 불어넣어서 공격하는 기술이였다. 쉐이드는 땅을 박차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스피드로 목표인 엘프를 향해 돌진했다. 그 스피드는 엘프인 나르샤가 지켜보고 있었더라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빠른 스피드였다.
'단검의 끝 부분. 그 끝 부분에 모든 마나를 집중시켜서 돌진력과 함께 상대의 한 점에 꽃아넣는다!'
쾅!!
쉐이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을 펼쳤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보고 그는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괴물 자식."
쉐이드는 자신의 최대 스피드로 공격했고 엘프가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프는 검신으로 자신의 공격을 막았고 상대가 괴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막은 건가? 하지만...충분해.'
쉐이드의 공격을 막은 그 한순간 틈. 그 틈을 놓치지 않고 S급과 A급의 암살자들이 일시에 엘프를 향해 공격했다.
까까까까깡!
괴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그 한순간의 틈을 이용해서 공격했건만 70% 이상의 공격이 무효화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총 3개의 공격을 성공시켰고 S급과 A급은 그것에 만족하면서 뒤로 빠졌다. 물론 피해 없이 성공한 것은 아니였다.
A급 2명이 거동이 힘들 정도로 중상을 입었고 다른 A급들이 경상을 입었지만 그래도 쉐이드는 공격에 성공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허벅지에 하나, 팔에 하나, 어깨에 하나. 그 와중에 치명타 될만한 것만 골라서 쳐내었어. 정말 괴물이지만 그래도 독을 발라뒀으니 장기전으로 가면 된다.'
쉐이드는 암살자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손짓을 하려다가 이내 엘프의 동작을 보고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엘프에게서 들려오는 말은 마법의 말이기 때문이었다.
"리커버리."
수십 명의 암살자들을 희생으로 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부하들도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공격한 것이 한순간에 무효화가 되었다. 엘프의 몸에 하얀빛이 생기면서 암살자들에게서 받은 상처들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모든 암살자들이 그 장면을 보고 멍하니 있었다. 쉐이드는 여기서 전의를 잃어버리면 끝이라는 것을 알고 손짓이 아닌 목소리로 얘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어서 보이는 광경에 쉐이드조차도 전의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몸은 그만 풀고 제대로 해볼까?"
"좋지."
엘프의 검에 소드마스터를 증명하는 오러 블레이드가 마나를 활활 태우며 자신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고 엘프의 주변에는 마법으로 만든 회오리들이 대기를 요동치게 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미남자는 마치 흑기사처럼 검은 피부로 온몸을 둘러싸서 좀 전과 차원이 다른 양의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소드마스터 이상의 기세를 펼쳐댔다.
"마,마검사.."
"이,이건 악몽이야..."
"괴물들.."
"여,여기서 빨리 나가야 해!"
이미 전의는 찾아볼 수 없고 공포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쉐이드는 더 이상 전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후퇴의 신호를 날렸다. 후퇴의 신호를 받은 암살자들은 전방위로 흩어져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 둘이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실드!"
퍼퍼퍽!
"뭐,뭐야?"
"보이지 않는 막이?"
"뚫어!"
암살자들은 앞을 가로막는 실드에 부딪혀서 넘어지고 일어나서 실드를 향해 공격했다. 실드를 뚫는 이들도 많았지만 실드는 한 겹으로 처져 있는 것이 아니고 다중으로 겹쳐져 있어서 뚫는 것이 쉽지 않았다. 더구나 실드는 부서지는 것이 무섭게 곧바로 회복되어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길,길드장님! 퇴로가 막혔습니다! 어,어떻게 합니까?!"
"쉐,쉐이드님!"
"길드장님!"
쉐이드는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이판사판으로 싸워 적을 죽여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쉐이드는 퇴로가 없는 상태에서 오히려 궁지에 몰리면 이판사판으로 공포를 등지고 싸운다는 것을 알기에 퇴로가 막힌 것을 오히려 좋게 생각하였다. 어중간하게 퇴로가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쉐이드는 암살자들에게 피할 수 없으면 죽여라라고 얘기했다. 아니, 얘기하려는 찰나였다.
쩌저저적. 드드드드.
모든 암살자들이 시도해서 뚫리지 않던 다중 실드가 종잇장 찢어지듯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쉐이드와 암살자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또 벌어지는지 시선을 돌렸지만 엘프와 미남자는 무슨 일인지 아는 눈치였다.
"한창 재미 보는 중인데 무슨 일이야?"
"저 녀석들에게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죽이지는 않았겠지?"
"일부러 죽이지는 않았는데 죽이는 것이 맞았나?"
"아니, 잘 했어. 이제 내가 이어서 하도록 하지."
"조심하라고. 보스로 보이는 녀석은 조금 날카롭더라고. 잘못했으면 당할뻔 했으니까."
'말은 잘하는군. 여유만만이였으면서.'
쉐이드는 엘프를 향해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였기에 입 밖에 나오는 것을 겨우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실드를 종잇장같이 찢고 들어온 인물이 과연 누구길래 저들이 저렇게 얘기하는지 관찰하기로 하였다.
지팡이를 잡고 있고 무표정의 가면을 쓰고 있는 남성이였다. 쉐이드는 엘프와 미남자에게서는 엄청난 기세를 느낄 수 있었는데 새로 온 남성에게서는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저들의 동료라면 그와 비견되는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군.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니. 아무리 약한 노인네라도 기운이 느껴지건만. 기운을 감쳐주는 아이템이라도 있는 건가? 지팡이 같은 걸로...잠깐.'
쉐이드는 고민을 하다가 이내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았을 때 쉐이드는 경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팡이, 무표정의 가면, 그리고 들었던 인상착의가 일치한다는 점을 본다면 저 자는!'
"안녕하신가? 암살자 여러분. 나는 듀로크라고 한다."
"듀,듀로크!"
"저 자가?!"
암살자는 자신들의 목표인 듀로크가 눈앞에 보이는 인물이라는 것에 경악을 했다. 쉐이드는 이보다 좋지 않게 흘러갈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상황이 최악으로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신들에게 두가지 선택지를 주도록 하지. 한가지는 나에게 복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듀로크는 지팡이를 놓고 얘기했다.
"나와 싸우는 것이지."
듀로크에게서 나오는 엄청난 마나의 기운이 주변을 지배했고 쉐이드는 꿈이라면 너무나 악몽이니까 빨리 깨어나 달라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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