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격변하는 왕국(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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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격변하는 왕국(5)
"그럼 지금부터 질문을 하겠다. 다들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면 된다. 알겠나?"
"예!"
피터는 자신과 비슷한 분류의 인간이 총 15명이 있는 것을 보았다. 상인으로 보이는 이도 있었고 학자 같은 이도 있으면서 철학자로 보이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피터는 그들을 보며 자신도 질 수 없다고 굳게 마음을 다짐했다.
"첫 번째 질문. 옛날에 솔로몬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매우 현명한 왕이였는데 어느 날 두 명의 매춘부가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주장했지. 만약 너희들이 그 솔로몬이라는 왕이였다면 어떻게 하겠나?"
"저는 그 두 매춘부의 주변 인물을 조사해서 누가 진실인지 알아낼 겁니다."
한 명의 상인이 얘기했고 듀로크는 그 상인에게 되물었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 하지만 확실치 않아. 주변 인물이 거짓말을 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다른 의견 있나?"
"저라면 그 아이에 대해서 아는 것을 말하라고 하고 더 정확히 아는 사람을 선택할 겁니다."
"그건 너무 객관적이지. 정확한 사실이 아닌 이상 확인하기 힘들다."
학자로 보이는 이가 대답했고 듀로크가 이어서 얘기했다. 그 이후로도 많은 대답이 나왔지만 듀로크가 만족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피터는 그들의 대답을 들어보며 고민했다.
'객관적이지 않고 누가 봐도 정확한 사실. 그게 뭘까?'
"더 이상 없나?"
피터는 듀로크가 마지막 질문을 하자 어쩔 수 없이 그저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기로 했다.
"저는 아이에게 위해를 가해서 판단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호오? 계속 얘기해봐."
피터는 예상외로 듀로크가 흥미로워하자 이내 고심하며 대답하기로 하였다.
"아,아이에게 위해를 가할 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진짜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정답. 솔로몬은 지금 대답한 것처럼 아이를 반쪽으로 내서 나눠주려고 했고 그에 반대한 매춘부가 진짜 부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피터는 주변의 인물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며 정답을 맞혔다는 기쁨에 기분이 하늘을 찌르는 것 같았다.
"이게 무조건 정답이고 다른 대답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 많은 방법 중에 제일 확실하다는 것뿐이지. 살아가다 보면 이렇게 객관적인 사실들이 절대적인 정답으로 인식되는 때가 있다. 그 예를 하나 들어서 질문을 하겠다."
피터는 과연 듀로크가 무슨 말을 할지 정말 궁금했다.
"예를 들어서 오크 10명과 인간 10명이 싸워서 서로 5명의 사망자를 내었다. 그런 경우에 모든 잘못은 오크에게 있다고 생각하겠지. 안 그런가?"
피터는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렇다는 것을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다들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군. 그것이 바로 고정관념이라는 것이다. 너희들은 '인간은 옳고 오크는 틀리다'라는 고정관념이 뇌에 박혀있는 것이다."
"말도 안 됩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듀로크의 말에 반발하는 이들이 생겼다. 피터는 반발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자신도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듀로크는 계속 얘기했다.
"인간도 악한 인간이 있으면 선한 인간도 있지. 오크도 마찬가지다. 악한 오크가 있으면 선한 오크가 있다는 것이다. 그저 자신이 인간이기에 일부의 오크들만 보고 '오크는 무조건 적이면서 틀리다'라고 결정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피터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못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도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게 오크는 적이고 악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듀로크가 말하는 의미를 알았을 때 멍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좀 전의 예를 얘기해보도록 하지. 인간과 오크가 서로 5명이 죽었다고 했지만 인간이 먼저 오크의 땅을 침략해서 이루어진 결과라면? 악한 인간이 가만히 있는 선한 오크를 먼저 공격한 거라면? 그래도 오크들이 잘못한 건가?"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듀로크의 말은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침묵만이 맴도는 가운데 피터는 손을 들고 듀로크에게 질문을 했다.
"오크들을 직접 만나보신 적이 있습니까?"
피터의 질문에 모두 듀로크를 쳐다보았다.
"물론. 만나본 적 있지. 그리고 나는 그들을 만나고 의사소통을 한 결과 그들이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종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화를 하면 충분히 말이 통하고 이성이 있는 종족이다. 그저 지금까지 그런 시도를, 행동을 한 사람이 없다는 것뿐이지."
"그,그렇군요."
"하루 아침에 받아들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그저 차츰차츰 받아들이고 그들과 사이가 좋아지라는 것이다...분위기도 전환할 겸 이어서 질문을 하도록 하지. 옛날에 제갈공명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피터는 듀로크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었고 새로운 지식에 대한 탐구는 그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하아..."
피터는 한숨을 쉬었다. 듀로크와 피터를 비롯한 이들이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며 토의하고 논의했다. 피터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들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 이렇게 재밌고 기쁜 일인지 몰랐다.
그래서 듀로크가 이야기를 끝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머리 쓰는 이들이 제일 쓸만하군. 생각보다 괜찮아."
"감사합니다!"
피터는 진심을 다해서 감사하다 외쳤고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어서 마치 일을 치르고 나온듯한 얼굴이었다.
"순위를 정하겠다. 1위는 너. 2위는 너. 3위는 너..."
'누가 1위라고?...나? 내가 1위?! 1위!'
피터는 누가 1위인지 궁금했는데 듀로크가 자신을 지목하자 믿을 수가 없었다. 머리 좀 쓴다는 인물들이 모인 가운데서 자신이 1위를 한다는 것이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모두 시험받느라 수고했다. 순위를 내가 정했는데 순위가 높을수록 유리한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여기서 나와 같이 일하게 될 이들도 있을 것이다."
듀로크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한번씩 쳐다보았다. 피터는 자신이 듀로크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피터는 듀로크가 이 시대를 이끌 인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와 같이 일한다는 것은 자신도 그 시대의 한 페이지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나중에 볼 수 있으면 보도록 하지. 모두들 왕국을 위해 일해주게나."
"알겠습니다!"
"그럼."
듀로크는 그 말을 끝으로 사라져버렸다. 듀로크가 사라지자마자 백작은 다시 진행을 하려고 앞으로 나섰다.
"듀로크님이 얘기하신 대로 순위는 그대로 적용할 예정입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여관을 통째로 빌렸으니 하루 동안 먹고 즐기시길 바랍니다."
"우와아아아!!"
다들 제일 크고 유명한 여관에서 하루 동안 먹고 즐길 수 있다는 말에 환호했다. 여관에서 하루를 묶는 값이 거의 평민이 반년은 먹고 살 돈이였기 때문이었다. 백작이 손짓하자 음식과 술이 무더기로 들어왔고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피터는 음식과 술이 나오자 달려가는 이들을 보며 어느 정도 사람이 빠지면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자신의 옆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피터는 고개를 돌렸는데 순간 깜짝 놀라서 쓰러질뻔했다. 엄청난 덩치의 남자가 떡하니 자신의 옆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뭡니까?"
"당신 이름이 뭐지?"
"피,피터입니다. 저,저한테 하실 말이 있나요?"
"자네 1위 하지 않았나? 나도 1위 했고. 그러니 얼굴 좀 미리 알려고 하는 거지. 내 이름은 그레이라고 한다."
"그 대화에 나도 끼워주지 않겠나?"
대화에 끼어든 인물은 바로 늙은 마법사인 뤼나티크였다.
"자네의 이야기는 잘 들었네. 상당히 박식하더군."
"감,감사합니다. 저는 마법사님이 쓰시는 마법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과찬이네. 그분에 비하면 난 땅을 기는 개미와 같은 존재지. 자네도 느끼지 않았나? 그레이군?"
"크윽. 충분히 느꼈지. 나는 용병 일을 했었다. 그래서 수많은 전장을 돌아다니며 강자란 강자는 수없이 만났지. 물론 나보다 훨씬 강한 이들도 만나본 적도 있어. 하지만 듀로크님은...차원이 다른 분이야."
"그,그렇습니까?"
"나는 이래 봬도 용병에서는 좀 유명해. 용병 중에서 거의 최상급에 달하는 무력을 가지고 있거든. 그렇기에 나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그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어. 그런데 듀로크님은 예상조차 안 돼."
"그,그렇군요."
피터는 그레이라는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에 마법사도 동의했다.
"9서클 마법사는 역사에 단 3번만이 나왔을 정도로 매우 희귀하며 경이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다네. 9서클 마법사는 도시를 한 번에 없애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하지만 마법사들은 대부분 근접전에 약하잖아? 9서클 마법사도 고블린의 도끼에 훅 간다는 말이 있다 듯이."
"맞는 말이네. 하지만 그건 우리 범인과 같은 이들에게만 통하는 것일 수도 있네."
"하지만 듀로크님은 말했잖아? 신체강화 마법만 사용하고 다른 마법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내가 싸울 때도 느꼈지만 다른 마법을 사용한 느낌은 없었어. 그리고 듀로크님과 싸우면서 느낀 건데 마법사와 싸우는 것 같지 않았어. 마치 숙련된 전사와 같은 느낌이었지."
"흥미롭군. 자세히 말해주겠나?"
"우리 전사들은 한순간의 호흡, 발걸음, 움직임으로 인해서 승부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지. 그렇기에 어딜 때리고 어딜 막으며 언제 공격해야 하는지 수없이 단련한 전사라면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 그런데 듀로크님은...엄청났지."
"엄청나다?"
"예를 들어서 10개의 검이 동시에 자신한테 공격해온다면 어떻게 할 거야?"
"막을 수 있는 것은 막고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는게 아닐까 싶네."
"당신은?"
"저도...같은 생각입니다."
"그게 대부분 우리 범인이 생각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듀로크님은 달랐어. 10개의 검 중 3개의 검을 쳐서 다른 4개의 검과 부딪히게 해서 공격을 무산시켰지. 그리고 나머지 3개의 검은 몸을 최소한으로 움직여서 피했어."
"허..."
"놀랍군요."
"그게 끝이 아닙니다."
3명의 대화에 갑자기 끼어든 이가 있었는데 바로 여자 검사였다. 여자 검사는 아무런 위화감 없이 얘기를 계속했다.
"듀로크님은 회피할 때도 어디로 움직여야 공격하기 어려운지 아는 것뿐만 아니라 공격할 때도 어딜 공격해야 막기 힘든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마법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전사라도 하루 이틀 해서 쌓이는 것이 아닙니다."
"맞아. 내가 하고 싶은 말 중 하나지. 그런데 당신의 이름은 뭐지?"
"제 이름은 스티아라고 합니다."
"스티아? 당신 용병 일은 하지 않았지? 여자면서 당신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들어보지 못할 리가 없어."
"저는 떠돌이 검사였습니다. 모험가라고 하면 될까요?"
"저 녀석의 이름을 알고 있나?"
그레이는 손가락으로 한 명의 인물을 지목하며 얘기했다. 피터는 그레이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고 그곳에는 듀로크가 2위로 지목했던 왜소한 남자가 있었다.
"모릅니다. 하지만 움직임을 봐서 암살자인 것 같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나도 동의.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고 발소리도 나지 않는 것이 암살자의 움직임이야. 저 정도면 암살자 길드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실력일 거야."
"사연이 있을 걸세. 여기에 사연이 없는 이가 얼마나 되겠나? 자신의 핏줄을 원망하거나 계급에 불만을 갖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이들이 있을 걸세. 아니면 기회를 노리거나 위로 가고 싶거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도 있겠지."
"맞는 말이지. 그런 이야기가 나왔으니 묻는데 영감은 뭐 때문에 지원한 거야?"
"늙은이의 추악한 욕심이지. 아니, 마법사의 욕심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 마법사들은 끝없는 갈망을 가지고 있네. 더 높은 써클에 올라가고 싶은 열망을. 1써클을 올라갔을 때의 감정이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이지. 그렇기에 나는 듀로크라는 인물의 소문을 듣고 그를 만나기 위해서 지원한 걸세."
"그가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해줄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맞네. 그리고 나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오늘 알 수 있었지. 9써클...오늘 듀로크님이 쓰시는 마법을 봤을 때야말로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한순간이지 않을까 싶네. 신관으로 얘기하자면 신을 직접 만나는 것이고, 검사로 얘기하자면 깨달음을 얻은 것이고, 학자로 얘기하자면 새로운 발견을 한 것과 같은 것일세."
"그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저도 듀로크님이 말하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으니까요...그중 오크의 이야기가 최고였습니다."
피터는 뤼나티크의 말에 동의하며 자신이 느낀 바를 얘기했다.
"그건 나도 동의하네. 많이 살아온 나도 그런 생각을 한번도 못했건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역시 우리 범인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네...그런데 자네는 왜 지원한 건가?"
"저도...제 능력을 계급 때문에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에 불만을 품은 사람입니다. 저는 상전에서 서류처리를 하며 지냈는데 주인장이 가르쳐줘서 이렇게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자네는 운이 좋은 편일세. 주인장이 착한 이인 것 같으니. 세상에는 그런 이들이 드무니까."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만 우리도 먹고 마시는게 어때? 어느새 많이 사라졌군."
"그러게나. 피터군. 같이 가세나."
피터는 뤼나티크의 말을 듣고 동의하며 자리에 일어섰고 식사를 하려 움직였다. 그렇게 피터는 자신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시간을 새로운 인물들과 보내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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