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라이언 왕국으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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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라이언 왕국으로(7)
남은 20명의 귀족들도 조금씩 나가기 시작했고 그중 몇 명의 귀족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첫 번째로 나를 찾아온 인물은 바로 카니스 마을에서 인연이 있었던 소크라 백작이었다.
"오랜만이네."
"오랜만이라고 하기에는 별로 지나지 않았잖아? 소피아는 잘 있어?"
"자네 덕분에 지금은 매우 쾌활하게 지내고 있네. 더 이상의 행복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지."
"그럼 안 되지. 이제부터 더 좋아질 텐데 벌써 만족하면 어떻게 하나? 난 자네에게 기대하는 바가 많아."
"너무 과대평가 받아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군. 그보다 자네가 가르쳐준 대로 한번 재배해봤고 그 결과품이 나왔네."
"진짜?"
"지금 영지에서 대량으로 재배하기 시작했지만 결과품은 아직 수량이 적네."
"그래도 그게 어디야? 그리고 대량 재배한 결과품이 좋으면 영지도 더 줄게."
"허...그래도 되는 건가?"
"재배한 결과품을 타왕국에게 팔아넘기면 엄청난 이익이 발생할 거야. 경제 살리기의 엄청난 근원이 되는 거지."
"그렇군. 그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네."
"나중에 여유가 되면 소피아를 데리고 와. 괜찮다면 또 놀아주겠다고 해."
"오히려 내가 부탁을 해야지. 소피아가 얼마나 나를 닦달하는지 자네는 모를 걸세."
"킥킥. 미래가 기대되는군."
"그런 말 하지 말게나. 나도 걱정되니까. 그러면 자네는 바쁜 것 같으니 나중에 보도록 하겠네."
"그래. 나중에 볼 수 있으면 보도록 하지."
소크라 백작은 나한테 악수를 하고 이어서 밖으로 나갔다. 소크라 백작이 자리를 피하자마자 나에게 할 말이 있는 발런 후작이 내 앞에 섰다.
"자네, 정체가 뭔가?"
"그게 중요해? 어차피 당신은 라이언 왕국이 번창하면 된 거 아냐?"
"흐음...그렇다해도 조금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네."
"어차피 후에 밝혀질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약속을 지켜줘서 고맙군."
"약속했으니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네. 하지만 귀족들을 죽이는 것은 조금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만.."
"그 자식들은 죽을 만한 짓을 했어. 국왕을 조종하는데 일조했으면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 안일한 생각이 있으니까 이 모양이지."
"...알겠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야...그보다 나는 무엇을 해주면 되겠는가?"
"당신은 아까 쫓겨난 귀족들이 내 말대로 행하는지 확인하고 동시에 그들의 재산을 몰수해서 가져오도록 해줘. 물론 행하지 않은 귀족이 있다면 얘기하고."
"알겠네. 맡겨주게나. 그럼 나는 그 일을 하러 이만 가보겠네."
"알겠어. 부탁하지."
융통성이 없어서 제일 얘기하기 힘들 거라고 예상되었던 발런 후작이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것을 본 나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발런 후작과의 얘기가 끝난 직후 나는 벨치스 국왕을 향해 양해를 구했다.
"벨치스 국왕. 미안하지만 한동안은 내가 마음대로 개혁 좀 할게."
"상관없다.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마음대로 해라. 오히려 통쾌한 기분을 느끼고 있으니까."
"그래? 그럼 다행이네. 나중에 좋은 결과물을 보여줄 테니까 기대하라고."
"기대하겠네."
국왕조차 매트 왕자의 부축을 받으면서 사라지자 귀족회의를 했던 방에는 죽은 귀족들의 시신과 잔해를 더불어서 한 명의 인물만이 남아있었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레크리 백작."
"그래.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해봐."
레크리 백작은 귀족들의 시신을 한번 힐끗 본 후에 나를 향해 얘기했다.
"먼저 저번의 무례에 대해서 사과를 하지."
"됐어. 나도 가족 간의 일에 끼어들었으니까."
"자네가 그렇게 강한 무력을 가진 줄은 몰랐네. 하지만 자네의 무력이 그렇게 강하다 해도 나의 생각은 변함없네."
"생각은 변함없다는 것은 아직도 아레아를 결혼을 억지로 시키겠다는 건가?"
"나는 귀족의 딸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도리라고 생각하네."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귀족도 인간인데 당연히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지. 그리고 그렇게 억지로 시키는 이유가 뭐야? 역시 상대 집안이 좋아서?"
"변명은 하지 않겠네."
"그렇다면 잘 생각해봐.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것은 누구야? 바로 나야.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 그대로가 이 왕국을 바꿀 거야. 그러면 나한테 잘 보여야 하지 않겠어?"
"...말하는 바가 뭔가?"
"그저 나의 변덕으로 어떤 집안을 망하게 할 수도 있고 어떤 집안을 키워줄 수 있다는 것이지."
"협박인가?"
"협박? 내가 왜 협박을 해? 나는 그저 사실을 말할 뿐이야. 나는 당신을 좋게 보고 있어. 물론 융통성이 없는 것은 단점으로 보고 있지만. 그리고 내가 알기로 아레아의 결혼 상대는 지금 도망가기에 바쁠걸? 그 녀석 아버지가 아까 도망간 녀석 중 하나였으니까."
"....."
"그리고 당신도 알잖아? 아레아와 워디슨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 녀석들은 감정을 정리하지 못했을 뿐이야. 여기서 하나 제안을 하지. 그 녀석들이 서로 좋아한다면 방해하지 마라. 그렇다면 나는 워디슨을 키워주는 동시에 당신들의 영지에 혜택을 주도록 하겠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러면야 당신이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않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하니까."
"알겠다. 이 거래는 지켜질 거라고 믿겠다."
"물론. 나는 약속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니까."
나는 레크리 백작과의 얘기도 잘 끝났다는 것을 느끼면서 아직도 바인드 마법에 묶여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경비병들을 놔주고 귀족들의 잔해들을 처리한 후에 밖으로 나왔다.
젖먹던 힘까지 사용해서 밖으로 빠져나온 레드 후작과 모리타 백작은 드디어 한숨을 쉬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젠장!"
"대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레드 후작님."
"뭘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당연히 처리해야지!"
"좀 전의 상황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전,전 솔직히 두렵습니다."
모리타 백작은 안색이 퍼렇게 질린 상태로 몸을 덜덜 떨며 얘기했다.
"그래서! 그대로 그 녀석 말대로 몸만 나가자는 건가?! 나는 그럴 수 없네."
"방,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암살자를 보내야지."
"그,그 괴물이 얘기했잖습니까? 암,암살자를 보내서 실패한다면..."
"실패하지 않을 녀석을 보내야지. 어쌔신 길드를 통해서 말이야."
"어쌔신 길드! 제가 알기로 어쌔신 길드의 특급들은 어지간한 돈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만.."
"모든 것을 잃는 것보다는 낫겠지.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어쌔신 길드에 요청하려고 하네."
모리타 백작은 좀 전에 일어났던 일을 돌이켜보며 너무나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는다고 생각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
"알,알겠습니다.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그럼 바로 가보도록 하지."
벌컥.
"잘들 있었냐?"
"듀로크님."
"회의는 잘 끝내고 오셨습니까?"
"그래. 그보다 너희들은 결정했냐?"
내 말에 워디슨과 아레아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서로 시선을 피했다. 나는 얘들이 아직도 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채고 한숨을 쉬며 얘기했다.
"휴...너희들이 그러면 나도 곤란하다고. 안 그래도 레크리 백작과 얘기를 하고 왔는데."
"예? 아버지와요?"
"그래. 네가 원하던 대로 이번 결혼흘 무효화 시켰지."
"정,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어,어떻게?!"
워디슨과 아레아는 진심으로 기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얘기하지 않은 것이 있기에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단, 조건이 있다. 너희들이 결혼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지."
"예?!"
"예?!"
워디슨과 아레아는 내가 조건이 있다는 말에 집중해있다가 더 이상 놀랄 수 없다는 듯이 괴성을 질렀다. 두 명에게서 저런 괴성이 나올 줄 몰랐던 나는 실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난 해줄 수 있는 만큼 해줬어. 이젠 너희들에게 달렸지. 레크리 백작이 나중에 너희들을 찾으러 올 거다. 그 전까지 다 정하면 좋겠군."
"잠,잠깐만요! 듀로크님!"
"듀,듀로크님!"
나는 나를 잡으려는 워디슨과 아레아를 무시하고 방 밖으로 나와서 매트 왕자를 찾아갔다. 매트 왕자는 서류의 산에 쌓여서 엄청나게 바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쁜가봐?"
"예. 듀로크님이 얘기하신 대로 진행하려면 준비할 것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서류처리에 능한 인물들이 없다 보니.."
"서류처리? 흐음...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예?"
"잠시 갔다 올 곳이 있어서 자리를 비울 테니 기다리고 있어."
"예?"
매트 왕자가 얼빠진 표정으로 있을 때 나는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여 사라졌다.
듀로크는 텔레포트하여 시프 길드에 도착할 수 있었고 눈을 떠보니 저번과 똑같이 텔레포트를 경계하고 있는 4인방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듀로크님이셨습니까?"
"크르르...주먹...나갈뻔 했다."
"좀 자제해줘. 그보다 쥬디아 있어?"
"저를 찾으셨습니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적절한 타이밍에 쥬디아가 방에 들어왔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정확하게 오는 거야?"
"그야 듀로크님이 텔레포트 해서 올 때는 건물이 흔들리니까요."
"그래? 그건 몰랐네. 잠깐...그럼 내가 오는 것을 알고도 주먹이 나갈 뻔했다는 거야?"
듀로크는 쿠르를 바라보았고 쿠르는 시선을 피하며 이를 드러냈다. 듀로크는 쿠르가 이를 드러내는 것이 웃는 표정임을 알고 있었다.
"그보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맞다. 쥬디아. 너 귀족될 생각 없냐?"
"예?"
쥬디아는 뭔 소리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원래 귀족이였잖아? 거기다가 능력도 좋고. 어때 생각 없어?"
"저,저...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내가 좀 대격변을 일으켜서 귀족들을 대거 없애버렸거든. 그래서 그 자리를 능력있는 인재들로 메꾸려고 하는데 네가 제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그...뭐라고 해야 할지..."
"어때? 차라리 시프 길드를 다 끌고 오는 건 어때? 하나 영지를 줄 테니까 한번 거창하게 키워보라고."
"저..저기.."
쥬디아는 귀족에서 몰락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귀족이 될 수 있다는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너무나 갑작스러운 제안과 듀로크가 말하는 스케일에 따라갈 수 없어 당황하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듀로크님."
쥬디아의 옆에 있던 크이스 집사가 쥬디아의 앞에 나서서 얘기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얘기해주시겠습니까?"
"말 그대로인데? 내가 이번에 왕국에서 썩은 귀족들을 제거했거든. 그래서 그들의 영지를 관리할 귀족들이 부족하게 되어서 혈통도 계급도 따지지 않고 오로지 능력 위주로 귀족을 새로 뽑을 예정이야. 그런데 쥬디아는 내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능력이 괜찮거든.
그래서 영지 하나를 주고 귀족으로 만들어주면서 더불어 이 길드를 그 영지로 옮기는게 낫다고 생각하는데?"
듀로크의 말을 자세히 들은 크이스는 감상을 얘기했다.
"듀로크님은 몇 번을 봤지만 아직까지도 예상을 하지 못하겠군요."
"그 점은 나도 동의한다. 주인님의 한계가 어느 정도 인지 상상이 안 되는군."
크이스와 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듀로크를 제외한 모든 인원들이 동의한다는 듯이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듀로크는 자신을 빼고 서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을 보며 왠지 소외감이 들었다.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그것만 얘기해."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연히 하겠습니다."
쥬디아는 어느새 혼란 속에서 빠져나왔는지 의지가 느껴지는 어투로 듀로크에게 얘기했다. 쥬디아의 입장에서는 이렇게까지 받아도 될 정도인가 생각될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이였다.
"그래? 그러면 널 라이언 왕국의 정보장으로 임명하겠다."
"예?!"
하지만 쥬디아가 놀랄 일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
"뭘 놀래? 길드를 키워준다고 했잖아? 그러면 아예 왕국에 소속되어 있는게 낫지 않겠어?"
"그,그렇긴 하지만..."
"길드원들 다 집합시켜놔. 어떻게 할지 내가 얘기할 테니까. 그러면 되지?"
"듀,듀로크님!"
듀로크는 쥬디아가 다른 소리내기 전에 방문을 열고 나갔고 남은 이들은 한바탕 휩쓸고 간 것 같은 분위기 속에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군."
"몸은 괜찮냐? 벨리온?"
"조금 쑤시는 곳은 있어도 모두 회복했다."
방문을 열고 나온 듀로크 앞에는 벨리온이 기다리고 있었다. 벨리온은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듀로크는 짐작 되는 바가 없었기에 어리둥절했다.
"왜 그래? 뭐가 불만이야?"
"나 없을 때 재미 좀 봤다는 소문이 있던데..사실인가?"
"재미? 아, 왕국으로 쳐들어간 거?"
"그래. 나 없을 때 그런 재밌는 것을 하다니. 너무 한 거 아닌가?"
"그럼 어떡해? 넌 부상으로 쉬고 있었잖아. 그것보다 너 귀족이나 하지 않을래?"
"귀족? 웬 귀족 말인가?"
"이번에 내가 왕국에 깽판 친 덕분에 귀족이 부족해서 말이지. 너 천 년 전에 귀족했다면서? 그러면 경험도 있고 능력도 되니까 해보는 건 어때?"
"귀족이라...내가 그걸 하면 무슨 매리트가 있지?"
"영지를 어떻게 하든 네 맘대로 해. 내가 봐서 너무할 정도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라면 신경 쓰지 않도록 하지."
"흐음...약한데.."
듀로크는 역시 생각대로 설득이 힘든 벨리온에게 지금까지 얘기하지 않았던 비밀 중 하나를 얘기하기로 했다.
"벨리온. 내가 오크인 것은 알고 있지?"
"당연하지."
"그렇다면 오크인 내가 왜 라이언 왕국을 이렇게 챙겨주는 것일까?"
"모른다. 지금까지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지."
"대륙의 남동쪽에는 오크들이 살고 있는 거 알지?"
"알고 있다. 수많은 오크들이 부족을 이루고 살고 있지. 그런데?"
"내가 그 오크들을 통합해서 하나의 왕국을 만들었거든. 지금 이 와중에도 왕국은 발전되고 있어. 내가 라이언 왕국을 챙겨주는 이유는 바로 그 왕국과 라이언 왕국을 동맹시키기 위해서야."
"오크들의 왕국이라...재밌군."
듀로크는 역시 예상대로 벨리온이 덥석 무는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귀족이 되면 우리 그란 왕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가해주지. 어때?"
"네가 허락하지 않더라도 무력으로도 들어갈 수 있다만?"
"과연 그럴까? 너랑 비슷한 실력을 가진 이가 최소 2명은 있다. 그리고 내가 오크들을 가만히 두고 있을까?"
"...쳇. 알겠다."
"말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것이 낫겠지. 지금 바로 한번 보고 올래?"
"그래도 되는가?"
"내가 만들었는데 안 될 게 어딨어? 가자고."
듀로크는 벨리온을 잡고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그란 왕성의 수많은 방 중에 하나의 방. 그 안에는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있었다. 엘프, 드워프, 오크 그리고 인간. 정확히 말하자면 만들어진 인간까지 모여있었다.
엘프는 나르샤, 타르시스, 바르스, 멜러스로 총 4명이였고 드워프는 쿠로딘과 훌도로 2명이었다. 오크는 그란 혼자였고 인간은 클레아와 로그로 이렇게 총 9명이 방안에 있었다.
하지만 그런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어색했고 어색한 분위기의 원인은 종족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엘프에게서 발생하고 있었다.
"....."
"....."
타르시스는 나르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나르샤가 시선을 피하면서 일부러 회피하고 있어서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고 그런 분위기가 어색하게 만들고 있었다.
"취익~ 왜 다들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거지?"
"쉬잇! 그란. 지금은 조용히 있어야 할 타이밍이야. 부녀 간의 재회를 우리가 방해할 수는 없잖아?"
"취익~ 재회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면 우린 나가 있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그건..."
쿠로딘은 그란이 한 번씩 날카로울 때가 있었는데 바로 이렇게 쓸데없는 것에 날카로운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쿠로딘은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위기 속에서 도와주는 인물이 있었다.
"그란 오빠. 그래도 외지에서 온 손님인데 저희가 맞이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더구나 나르샤 언니의 가족분도 계시는데."
"취익~ 그렇군."
그란은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쿠로딘은 그란이 보지 못하는 사이에 슬쩍 클레아에게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클레아는 쿠로딘에게 미소를 지었고 그때 타르시스가 결국 나르샤에게 얘기를 걸었다.
"묻고 싶은 것은 많지만 먼저 하나 물으마."
"뭔,뭔데?"
나르샤는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고 있는지 타르시스의 시선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왜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
"그...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여러 가지 사정? 내게는 별로 일이 있어 보이지 않는데 무슨 사정이냐?"
"그,그건..."
"그리고 원인을 파악했으면 다시 돌아오지, 왜 돌아오지 않는 거냐? 너를 걱정해서 이렇게 온 이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없느냐?"
"미,미안해. 내가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야. 하지만 나는 여기서 나갈 생각 없어."
"뭐?"
타르시스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나르샤의 얼굴에 굳은 의지가 박혀있는 것을 본 타르시스는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정신이냐?"
"물론 제정신이야."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냐?"
"아직 여기서 하고 싶은 것들이 있거든. 그리고 여기에서는 밀런 왕국에서 느꼈던 심심함과 무료함을 느끼지 않아. 항상 색다른 것을 만나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타르시스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총총한 눈빛으로 말하고 있는 나르샤를 보고 그녀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밀런 왕국에서 최강자는 나야. 그런데 최강자는 좋은게 아니야. 더 이상 위를 바라볼 것도 없고 라이벌도 없지. 그런 상황에서 나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었어. 하지만 여기서는 나보다 강한 자가 있을뿐더러 나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이도 있어. 그리고 가르치는 색다른 맛도 있고. 그래서 난 여기에 있고 싶어."
"여기는 오크들이 사는 곳이다. 엘프들이 있을 곳이 아니야!"
"그럼 아빠, 물어볼게. 여기 와서 놀라지 않았어? 오크들이 이런 성을 짓고 무작정 공격하지 않고 높은 문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았어?"
"...놀라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냐?!"
"오크들이 이렇게까지 바뀐 것은 한 명의 인물 때문이야. 나는 그 녀석이 과연 어디까지 바꿀 수 있나 궁금해. 그 녀석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가볍게 행하는 녀석이야. 그렇기에 나는 그 녀석 옆에서 관찰하며 그 녀석과 함께 행동하고 싶어."
"그 녀석,그 녀석 하는데 그가 누구냐?"
"그 녀석은 마나 변동의 원인이면서 나보다 강한 오크인 듀로크라고 해."
"듀로크?"
타르시스는 자세한 이야기를 더 들으려고 했지만 그때 나르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얘기를 이어서 하지 못했다. 타르시스는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이내 자신도 느껴지는 마나에 고개를 돌렸다.
"텔레포트? 또 누가?"
"왔다."
"왔군요."
나르샤와 로그가 동시에 얘기하고 시선을 맞추었다. 타르시스를 비롯해서 외지에서 온 3명의 엘프와 훌도를 제외하고는 무슨 일이 벌어진지 아는 눈치였다.
"취칙~ 오랜만이군."
"그러게. 과연 뭘 하고 왔는지나 물어보자고."
"이게 오빠의 마나인가요? 기억해둬야겠네요."
"대체 누가 왔다는 거냐? 나르샤."
"지금까지 말한 주인공. 듀로크가 왔어."
타르시스는 과연 듀로크가 누구길래 이런 반응들을 보이는지 궁금해하면서 듀로크를 만나러 가는 이들을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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