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라이언 왕국으로(3)
-----------------------------------
6장 라이언 왕국으로(3)
'이건 꿈인가?'
예이츠 후작은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 머리가 따라갈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있어도 이해하고 싶지 않을 것일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주고 엄청난 무력을 보여주던 암살자들이 듀로크라는 자에게 힘도 쓰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장면은 그런 광경이였다.
'최,최악의 상황이야. 국왕을 인질로 잡고 여길 벗어나는 수밖에 없겠어.'
예이츠 후작은 듀로크가 마법사에게 신경이 팔린 사이에 조금씩 국왕에게 다가갔다. 듀로크가 자신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본 예이츠 후작은 인질로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그가 하나 까먹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매트 왕자였다.
퍽!
"컥!"
예이츠 후작은 뒤통수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서 쓰러졌고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예이츠 후작은 자신의 뒤통수를 갈긴 것이 바로 매트 왕자라는 것을 깨닫고 저번의 복수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의식을 잃었다.
"덤빌 거냐?"
듀로크는 떨고 있는 마법사들을 눈으로 힐끗 쳐다보았다. 그들은 듀로크의 눈을 마주친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듯이 떨며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나에 민감한 마법사로 듀로크가 마법을 사용해서 암살자들을 죽이는 것을 보고 다른 이들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듀로크의 힘을 느꼈다.
그렇기에 7서클에 해당하는 고위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전의를 한 줌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매트 왕자. 이 녀석들 좀 기절시켜 줄래? 어차피 싸울 생각은 없는 것 같지만."
"알겠습니다."
매트는 그대로 마법사들을 수도로 기절시켰고 듀로크는 마지막으로 할 일을 하러 국왕에게 다가갔다. 국왕은 이 난리에도 고개를 숙인 상태로 정신을 잃고 있었고 나는 소피아에게 사용했던 마법을 한 번 더 사용했다.
"심장..이상 없고 몸도...이상 없고...하체도 이상 없군. 그렇다면 머리인가?"
듀로크는 상체와 하체에는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했기에 머리를 중심적으로 관찰하였다. 그리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벌레? 이건 무슨 벌레지?"
국왕의 두뇌 속에 한 마리의 벌레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신기하게도 벌레는 듀로크의 마나를 피하는 것처럼 마나를 가까이 갈수록 조금씩 움직여서 멀어지려고 하는 움직임을 취했다.
"신기하군. 이 벌레를 사용해서 조종해 온 건가? 그렇다는건 두뇌를 지배하는 벌레이니까 함부로 죽이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군. 신중하게 해야겠어."
듀로크는 우선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벌레가 도망칠 곳이 없어서 뇌에 악영향을 줄 것을 대비해 마나로 조금씩 유도하는 곳으로 이동시켰다. 벌레가 움직이는 것이 너무 느리고 마나를 상당히 정교하게 움직여야 하다 보니 아무리 듀로크라도 상당한 심력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듀로크의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 흘러 떨어질 때가 돼서야 벌레를 뇌에서 멀어지게 하여 목구멍으로 이동시키는데 성공하였다.
"휴...이제 터트리기만 한다면..."
목구멍으로 이동한 것을 확인한 듀로크는 마나로 벌레를 모두 감싸서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순간에 모든 방향에서 마나를 압축시켜서 벌레를 없애버렸다.
치이익...
벌레가 타죽은 것을 보여주듯이 국왕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왔고 듀로크는 다시 한 번 탐지마법을 사용해서 벌레가 완벽히 죽은 것을 확인하였다.
"휴~ 수십 명 죽이는 것보다 한 명 살리는게 더 힘드니 원."
"듀로크님. 어떻게 된 겁니까? 국왕 전하께서는 괜찮으신 겁니까?!"
어느새 듀로크 옆에는 매트 왕자가 와서 지켜보고 있었고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자신의 아버지 국왕에 대해서 걱정이 되는 모양인지 절실한 눈빛과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걱정 마. 조종하던 벌레까지 싹 없애버렸으니까. 내가 아니였으면 치료할 엄두도 못 냈을 거다."
듀로크가 말한 그대로 듀로크처럼 압도적인 마나를 가지고 있지 않고 마나를 정교하게 움직일 줄 모르면 치료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유명한 치료사라도 뇌속에 있는 것을 꺼낼 방법이 없었고 더구나 벌레가 가만히 있지 않아서 불가능에 가까웠다. 매트 왕자는 듀로크의 말에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됐어. 어차피 동맹이 되는 사이에 이 정도쯤이야. 그보다 이 나라를 한번 싹 갈아엎어야겠어."
"예?"
"너도 느꼈잖아. 지금 이 나라가 얼마나 썩어 있는지. 현실을 그저 받아들이는 국민들이 있는가 하면 국왕이 조종당하는데도 가만히 있는 귀족들, 이 난리에도 긴장감 없는 경비병들까지. 모두 다 갈아엎어야돼."
"...예. 맞는 말씀입니다."
매트 왕자도 사실 깨닫고 있었다. 자신에게 기대를 거는 국민들과 귀족, 국왕. 자신에게만 기대를 거는 이들을 보고 그런 생각을 왜 해보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자신 혼자로는 이 나라를 갈아엎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이라 할 수 있는 듀로크가 그렇게 말하니 더욱 자신이 얼마나 안일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저 혼자서는 할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었던 거야? 아니면 하지 않은 거야?"
매트 왕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 보았다. 오크에도 불구하고 현자란 별명을 괜히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듀로크의 눈빛은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빛을 갖고 있었다.
"하지...않았습니다.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제가 하겠다고 했어도 과연 바뀌었을까요?"
"모르지. 하지만 하지 않고 후회를 겪는 것보다는 하고 후회를 겪는 것이 낫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너를 대신하여 내가 이 왕국을 갈아엎어 주마."
"...그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뭡니까? 저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매트는 듀로크가 자신과 자신의 왕국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노력해주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처음은 클레아를 기쁘게 해주려고 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미래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서?"
"그래. 미래에 그란 왕국과 라이언 왕국의 힘을 모두 쓸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모두 쓸 날이라는 것은?"
"오지는 않으면 좋겠건만..."
듀로크는 베아트리스가 말했던 마왕의 강림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매트에게 그 얘기를 지금 말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얼버무렸다.
"어차피 내가 해준 만큼 나중에 내가 돌려받을 거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나는 준 만큼 받는 사람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보다 내가 갈아엎을 때 옆에서 동의나 해줘. 나는 혁신적으로 바꿀 거니까."
"염려마십쇼. 저는 듀로크님을 믿습니다."
"고맙군. 그럼 나는 이들을 심문하러 갈 테니 너는 국왕이 일어날 때까지 통솔해라."
"알겠습니다."
"지금 난리를 치고 있는 나의 환상들을 모두 없애버릴 것이다. 그리고 국왕이 제정신을 차린다면 모든 귀족들을 소집시켜라."
"모든 귀족들을 말입니까? 왜 그러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갈아엎어야지. 원래 고여서 썩은 물이 들어간 항아리는 새 물로 교체하는 법."
듀로크는 그 말을 끝으로 쓰러져 있는 예이츠 후작과 마법사들을 데리고 갔고 매트는 듀로크가 말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계속 고민했다.
"워터 볼."
촤아아악!
"어억! 여,여긴?"
"여기가 어디냐고? 과연 어딜까?"
나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기 위해서 왕성의 빈방에 들어가서 사일런스 마법과 문에 락 마법까지 걸어 놓았다. 예이츠 후작과 마법사들을 바인드 마법으로 구속한 상태로 예이츠 후작에게만 물을 뿌려서 깨웠다.
예이츠 후작은 물을 맞고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상황을 이해했는지 나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나를 심문하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니 얘기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그래? 왜지?"
"내게는 각인이 박혀있다. 그분에게 불경한 감정을 가지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각인이다."
"스캔을 해봐도 네 몸에는 각인이 박혀있지 않던데?"
"육체의 각인이 아니다. 영혼의 각인이다."
"영혼의 각인..그런 것도 가능한가?"
영혼에 각인을 넣는다는 것은 드래곤조차도 힘들 정도로 엄청난 고위 마법이였다. 그런데 이런 부하에게 각인을 새겼다는 것은 이들이 섬기는 이가 상상 이상의 인물이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군. 과연 각인이 제대로 발동되나 볼까?"
"나,난 불고 싶어도 불 수 없다."
"그건 해봐야 아는 거지. 센시빌리티."
소피아에게 인센시빌리티 마법을 사용해서 심장을 교체했던 것과 반대로 이번에는 센시빌리티 마법을 사용해서 감각을 키웠다. 나는 마법이 제대로 걸렸는지 확인 차원에 과일 깎는 칼인 소도를 마법 배낭에서 꺼내 들어서 한번 손가락에 찔러보았다.
푸욱.
"크아아악!!"
예이츠 후작은 마치 손가락이 잘린듯한 표정으로 고통에 울부짖었다.
"마법은 제대로 걸렸나 보군.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크으으...얘기했지 않은가?! 나는 얘기하고 싶어도 얘기할 수 없다고!"
"그건 해봐야 아는 거고. 너의 의지로 각인을 이길 수도 있잖아? 먼저 손가락부터 해제를 시작하자고."
"잠,잠깐! 크아아악!!"
나는 소도로 손가락부터 해체하기 시작했다. 먼저 소도로 가죽을 벗겨서 피가 나오지 않게 하고 고통만 느끼도록 아주 정밀하게 작업을 했다. 10분간의 작업 동안 예이츠 후작은 고통에 울부짖었지만 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은 채로 마치 고기를 먹기 위해서 가죽을 뜯은 것처럼 속의 근육들이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크으으..말했지 않은가? 말을 할 수 없다고!"
"기다려봐. 이제 시작이니까. 리커버리."
나는 리커버리 마법으로 가죽이 벗겨져 있는 손을 원상복구 시켰다. 예이츠 후작은 방금까지 흉측하게 변해있던 손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 손은 치료했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부위를 해볼까? 머리는 어때? 뇌를 한번 파보는 것도 색다른 맛이 있을 것 같은데. 아니면 눈? 눈을 파보면 어떤 기분일까?"
"너,넌 미쳤어."
"원래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미쳤어. 안 그래? 마법사들."
예이츠 후작의 비명을 듣고 정신을 차렸는지 옆에 있는 마법사들은 오줌을 지린 채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얼마나 너는 버틸 것 같냐? 나는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 같은데. 하지만 몸은 걱정하지 마. 언제든지 치료해줘서 원상복귀 시켜줄 테니까. 어디 그럼 이번에는 머리를 한번..."
"말,말하겠다!"
"말하지 못한다며? 난 말하지 않아도 돼. 그저 즐기면 되니까."
"말,말하겠다. 아,아니 말하게 해달라!"
"좋아. 한번 말해봐."
예이츠 후작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니, 하려고 할 때였다.
"나,나는...크으으...으아아악!!"
갑자기 예이츠 후작의 눈에 핏발이 서고 얼굴과 온몸에 핏줄이 튀어나오면서 고통의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나는 갑자기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옆에 있던 마법사들도 동시에 똑같은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통에 울부짖는 것도 얼마되지 않아서 그들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지고 고개를 떨궜다.
"뭐야?"
나는 그들이 모두 동시에 고개를 떨구는 것을 보고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얼굴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그들의 입에서 똑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가 듀로크인가?]
"호오? 그럼, 당신이 이들이 말하는 그분인가?"
[9서클 마법사라고 다 같은 줄 아는가? 선배에 대한 공경이 없군.]
"그러는 당신은 후배에 대한 애착이 없나? 암살자들이라는 좋은 선물을 보내고 말이야."
[암살자들을 보낸 것은 나의 명령이 아니였다. 이 멍청한 예이츠의 독단이였지.]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었잖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만히 놔두었겠지."
[과연. 괜히 9서클이 아니라는 거군. 자네의 무력은 잘 봤네. 조금은 봐줄 만하더군.]
"그래? 그럼 나도 당신의 마법을 보고 싶구만.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러는지 궁금한데?"
[아쉽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군. 하지만 언젠가 자네는 나를 만나게 될걸세. 그리고 자네는 분명 나의 가장 큰 걸림돌이면서 중요한 열쇠가 되겠지.]
"높게 평가해줘서 고맙군. 근데 어째 그렇게 될 것을 아는 것처럼 얘기한다?"
[자네가 데리고 있는 점쟁이만이 미래를 볼 수 있는 줄 아나? 나도 그 점쟁이만큼은 아니지만 미래를 볼 수 있지.]
"대단하군. 그런 대단하신 분이 왜 라이언 왕국을 조종하러 드나?"
[라이언 왕국은 비록 약하지만 잠재력이 있는 나라이지. 그런 것은 싹이 나기 전에 밟는 것이 좋다.]
"미안하지만 그 싹은 내가 키우도록 하지. 그러니 넘보지 말라고."
[과연 어떨까? 자네와의 대화는 흥미로웠네.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을지 기대하지.]
"그래. 한번 얼굴을 보이라고. 재밌게 해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조종당하고 있던 이들의 눈에서 초점이 잡히면서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그들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허겁지겁 소리를 지르며 빌기 시작했다.
"살,살려주십쇼! 라자드님!"
"제,제발! 자비를!"
예이츠 후작에 더불어 마법사들까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램은 덧없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얼굴의 살들이 요동치며 울퉁불퉁해지기 시작했다.
"아,안돼!"
"살려..."
퍼억!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의 머리는 수박이 터지듯이 뇌수와 살점들을 뿜어내었고 몸은 힘을 잃고 쓰러졌다.
"라자드라...어떤 인물인지 궁금하군."
나는 그들의 목소리에서 라자드라는 인물의 힘을 느낄 수 있었고 나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가 그렇다는 것일 뿐 미래에도 그럴지는 모르는 법이였다. 아니, 미래에는 다르게 만들 거라고 나는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