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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오크 마법사-54화 (54/360)

5장 여행의 시작(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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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여행의 시작(14)

르와 제이슨 그리고 쿠르와 밀리나는 쿠르를 위해서 만들어진 커다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함~ 슬슬 잘 시간이네. 그런데 오늘 경기 어떻게 생각해? 다들?"

"크르르...굉장했다."

"급이 다르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느껴졌어."

"너희들도 똑같았나 보네. 르는?"

"나는 조금 느낀 바가 달랐다."

"어떻게?"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두려움?"

"끝이 보이지 않는 강함. 그들의 실력은 결승에서 보여준 것이 다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에이, 설마?"

"....."

"진담으로?"

"그래."

"...장난 아닌데?"

"그런데 그렇게 강한 인물들이 왜 투기장에 온 걸까?"

"몰라. 그보다 모두 눈치챘지?"

"크르르...감시자들...쓰러졌다."

"그래. 그것도 한꺼번에 모두 다. 모두 전투 준비해라."

르의 말에 쿠르, 밀리나, 제이슨은 모두 각자의 무기를 빠르게 챙기고 경계태세로 변했다. 숨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긴장의 침묵 속에서 4명은 식은땀을 흘렸다. 왜냐하면 감시자들이 쓰러지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어떻게 당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자신들도 똑같은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누구냐?"

"모습을 밝혀라."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 명의 인물이 들어왔다. 무표정의 가면을 쓰고 망토를 두르며 지팡이를 들고 있는 듀로크라는 인물이었다.

"당신은?"

"듀로크라고 한다. 오늘 봐서 알고 있겠지?"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곳에 온 거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르는 보통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시간에 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말? 혹시 감시자들을 쓰러뜨린 것은 당신인가?"

"12명 말하는 건가? 그저 재운 것뿐이니까 걱정하지 마라."

"걱정을 할 리가. 그저 놀랐을 뿐이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나?"

"물어봐."

"이번 결승에 보여준 무력은 당신의 힘 일부분이지 않나?"

"일부분? 틀렸어."

"그런가?"

"일부분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아니다. 힘을 일절 쓰지도 않았으니까."

"허..."

르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나 싶었지만 실상은 그보다 더한 인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쿠르가 앞으로 나서서 듀로크에게 다가갔고 쿠르가 움직일 때마다 그의 몸에 걸맞게 쿵쿵거리는 소리가 생겼다.

"크르르...나도..당신에게...궁금한게...있다."

"뭐지?"

"당신은...인간이...아닌가?"

"왜 그렇게 생각하지?"

"당신에게서...나와...비슷한...냄새가..난다. 인간이...아닌...동물에..가까운...냄새."

"용케 맞혔군. 역시 코는 속일 수 없나 보네."

듀로크는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서 내려놓았고 그의 얼굴을 본 4명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항상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던 르도 놀란 표정을 지었고 밀리나와 제이슨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쿠르의 놀라움은 더 강력했다. 왜냐하면 오우거인 자신과 사촌격이라 볼 수 있는 오크가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점과 자신과 같이 인간에게 멸시당하는 종족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오크?"

"오크 처음 봐? 오우거도 여기 있잖아? 뭘 놀래?"

"그,그렇긴 하지만..."

"덩칫값을 못 하는군. 당신이 제이슨이지?"

"맞,맞다."

"그리고 여기 있는 엘프가 밀리나고, 오우거가 쿠르, 리더인 늑대인간 르 맞지?"

"크르르...맞다."

"맞습니다."

"맞다. 그런데 당신은 왜 여기 온 거지? 그 이유를 아직도 듣지 못했군."

"여기에 온 이유는 2가지. 첫 번째, 너희들이 브루드라는 귀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듣고 싶어서."

"...그것은 왜?"

"그 이유는 이야기를 듣고 얘기하도록 하지."

"우리가 왜 얘기해야 하지?"

"얘기하든지 안 하든지 자네 마음이야. 하지만 얘기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나?"

"얘기하도록 하지."

"르!"

"괜찮아. 내 감은 이 오크를 믿으라고 하고 있어."

"네가 그렇게 얘기한다면..."

르의 말에 모두 수긍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머지 3명이 르를 얼마나 믿고 있는지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르는 곧바로 옷을 벗고 상체를 보여주었는데 늑대인간의 엄청난 재생력에도 불구하고 근육질의 몸에는 수많은 잔상처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듀로크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근육질의 몸과 잔상처가 아니고 르의 왼쪽 가슴에 있는 검은 문장의 조그마한 마법진이였다.

"호오? 이건 마법진인데? 흥미롭군. 이렇게 몸에 새겨두다니 말이야."

"새길 때의 아픔은 끔찍했습니다. 더구나 저는 자동으로 재생하다 보니 새기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어디 보자..이건 6서클 마법인 라이트닝 캐논 마법진인데? 시동어를 통해서 심장을 직접 타격하는 것 같군."

"마법진을 보고 바로 알아보시다니 역시 평범한 분은 아니시군요."

"딱 봐도 이 마법진때문에 브루드한테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구만. 맞나?"

"맞습니다. 이 마법진은 저희 4명의 가슴에 모두 박혀있습니다. 저와 쿠르는 6서클 마법이 걸려있고 밀리나와 제이슨에게는 4서클 마법이 걸려있습니다. 브루드가 시동어를 얘기하면 마법진이 발동되면서 저희의 심장에 마법이 직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고?"

"맞습니다."

"그럼 간단하군. 이 마법진은 내가 해제해주지."

"...그렇게 간단합니까? 이 마법진은 7서클 마법사가 새긴 겁니다."

"7서클? 가뿐하군. 하이 디스펠!"

하이 디스펠은 8서클 마법으로 9서클 마법을 제외하고 모든 마법을 해제할 수 있는 고급 마법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르의 가슴에 박혀있는 마법진이 산산조각 나면서 깨져버렸고 마법진이 있던 흔적은 일절 남아있지 않았다.

"....."

"....어?"

"크륵?"

"대,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뭐긴. 마법진을 해제한 거지."

"7서클 마법을 이렇게 간단히 해제하신 겁니까?!"

르는 자신의 가슴에 있었던 마법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나머지 인원들도 르의 가슴을 계속 쳐다보며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7서클이면 가볍지. 자, 나머지 마법진도 해제해주지. 줄 서라고."

듀로크는 그대로 이어서 제이슨, 크루, 밀리나의 마법진을 모두 해제했고 모든 마법진을 해제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 이제 끝. 모두 기분이 어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진짜 해제된 겁니까?"

제이슨은 어느새 듀로크에게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맞아. 이제 해제되었으니 브루드라는 귀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지?"

"예?...예.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너희들 내 밑으로 들어와라."

"예?"

"내 수하가 되라고. 너희들이 필요해서 투기장에 참가한 거니까."

"당신처럼 강한 인물이 왜 저희를 필요로 하시는 겁니까?"

"모든 것을 내가 할 수는 없으니까. 혹시 도둑 길드를 알고 있나?"

"예. 들어는 봤습니다."

"그 도둑 길드가 내 밑으로 들어왔거든. 그런데 내가 없을 때 도둑 길드를 지켜줄 이들이 없어. 그래서 너희들이 내 수하로 들어와서 길드를 지켜줬으면 한다."

"저희가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듀로크는 이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물어보는 르를 눈여겨보았다.

"이렇게 누구한테 억제당할 일은 없게 해주지. 그리고 동시에 이 투기장도 없애주겠다."

"예?"

"내 생각에는 내일 브루드가 나올 것 같은데. 아니야?"

"맞습니다. 브루드는 예선 우승자가 나오면 항상 확인하러 옵니다."

"그래? 그럼 한번 깽판을 피워야겠군. 그보다 원하는 것이 더 있나? 조건만 맞으면 딜이라는 말이 있잖아."

르는 동료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쿠르, 제이슨, 밀리나가 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르는 그들의 행동을 보고 결정했다는 듯이 결심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아닙니다. 저희에게 걸려 있는 족쇄인 마법진을 해제해준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더구나 듀로크님의 밑에 있으면 이렇게 억울한 일은 당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크르르...나도...그렇다."

"저도 동의해요."

"나도 동의."

르의 말에 3명은 모두 동의했고 그들은 모두 듀로크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복종하는 자세를 취했다.

"듀로크님.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섬기겠습니다."

그들은 노예 신분으로 지금까지 억울한 심정을 수없이 느꼈을 것이다. 그들이 제일 바라는 것은 그저 노예 신분을 벗어나서 억울한 일을 겪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그 바람을 듀로크는 이루어줄 생각이었다.

"너희들의 소원은 모두 이루어주마. 나의 수하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해주겠다."

이렇게 투기장의 사천왕은 시프 길드의 든든한 보디가드가 되었다.

"그럼 내일 투기장에서 보자고."

"저희와 싸우실 겁니까?"

"싸워봤자 결과는 어떻게 될지 뻔하니까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혹시 한번 싸워보고 싶은 사람 있나?"

나의 물음에 4명은 모두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피웠다.

"그럼 내일 보자고."

"저기..."

"풋, 뭐 궁금한 거 있냐?"

제이슨은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우물쭈물하는 동작을 보여주었고 나는 덩치와 매칭이 되지 않는 행동에 풋 하고 웃어버렸다.

"듀로크님의 정체는 뭡니까? 드래곤입니까?"

"그런 질문도 이제는 지겹다. 같이 겪으면서 알도록."

"알,알겠습니다."

"그럼 진짜 내일 보자고."

나는 그대로 건물 밖으로 나왔고 아직도 쓰러져서 자고 있는 암살자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암~ 벌써 아침인가?"

듀로크는 어젯밤에 만나고 와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피곤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것을 느꼈다. 곧이어 듀로크가 일어나면서 다른 이들도 잠에서 깨어났는지 부스스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가는 건가?"

"그래야지. 그러고 보니...오늘 투기장을 박살 낼 예정인데 너도 갈 거냐?"

"그럼 빠질 수 없지. 그런데 그렇게 날뛰면 날파리들이 끼어들지 않겠나?"

"끼어들라고 하지. 어차피 거치적거리지도 않잖아?"

"뭐, 그렇긴 하지. 빨리 가자고."

"알겠어. 먼저 씻을 테니까 기다려."

"오크 주제에 무슨 청결을 따진다는 건지...넌 정말로 오크가 맞는 건가?"

"그 말을 죽을 때까지 얼마나 들을지 나도 궁금하군. 빨리 갔다 오도록 하겠다."

듀로크는 그대로 문을 열고 세수와 동시에 목욕을 하러 가면서 모습을 감추었다.

"보면 듀로크님은 오크면서 엄청 깔끔떠는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오크의 탈을 쓴 인간 같달까?"

아레아와 워디슨은 듀로크가 나간 사이에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내 벨리온이 옆에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갑자기 조용해졌다. 벨리온은 갑자기 얘기하는 것을 멈춘 아레아와 워디슨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지?"

"아,아닙니다."

"아직도 내가 무섭나?"

"아,아니요."

"말이 떨고 있다."

"죄,죄송해요."

벨리온은 여전히 떨고 있는 두 소년, 소녀를 보고 한숨을 쉬며 얘기했다.

"인간도 천차만별의 인간이 있듯이 마족도 천차만별의 마족이 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파괴와 잔혹을 좋아하는 마족들이 많지. 하지만 나처럼 독특한 마족도 적지 않다. 나는 저번에 얘기했던 것처럼 천년 전에 귀족으로 활동했던 마족이다.

그러니 마족이지만 인간에 가까운 마족이라 할 수 있지."

"그렇..군요."

"하지만 나도 마족은 마족. 싸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어떨 때는 피를 보고 싶기도 해. 하지만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인간도 분명히 있죠."

"마족은 잔혹하며 인간의 적이다. 이런 선입견이 박혀서 그런 것이다. 마족도 지내보면 인간적인 면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럴까요?"

어느새 벨리온과 워디슨, 아레아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공포와 두려움의 감정이 들어있지 않은 그저 평범한 대화였다. 그렇게 셋은 대화를 나누었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벨리온은 다시 그들에게 물었다.

"어떤가? 아직도 내가 무섭나?"

워디슨과 아레아는 벨리온의 말대로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무서워했던 감정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고 벨리온이 자신들을 위해서 일부러 말을 걸어줬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별거 아니다. 어차피 계속 보지 않을 사이도 아니니 그랬을 뿐이다."

"그건 무슨 츤데레냐?"

어느새 듀로크가 세수와 목욕을 마치고 문을 열고 들어오며 얘기했다.

"츤데레? 무슨 뜻이지?"

"좋은 뜻이야. 그보다 슬슬 가도록 하지."

"알겠다."

"너희들은 기다리고 있어. 별로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심심하면 길드 일이나 도와줘라."

"알겠습니다."

"가자."

듀로크는 벨리온을 데리고 텔레포트를 시전했고 그 결과, 투기장의 상공에 도착했다. 투기장에 들어가는 입구에는 벌써부터 관객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듀로크는 벨리온과 함께 밑에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플라이 마법을 사용하여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관객들은 듀로크와 벨리온이 공중에서 내려오자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하지만 듀로크와 벨리온은 그들의 환호성을 무시하며 투기장으로 들어갔고 투기장에는 벌써 어제보다 더 많은 숫자의 관객들이 앉아있었다.

듀로크는 수많은 관객들을 보며 그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빛에서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도망쳐 투기장에 몸을 맡기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인간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종종 다른 길로 현실에서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은 그것을 투기장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광경을 만든 것도 그 브루드라는 귀족 때문이겠지. 한시라도 빨리 없애버려야겠어.'

듀로크는 관객들을 보며 투기장을 없애버려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다지며 결투장을 둘러보았다. 결투장에는 4명의 인원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어제 만난 이들이었다. 듀로크는 주위의 눈치를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결투장으로 날아갔고 벨리온도 뛰어서 뒤를 따라왔다.

4명은 듀로크가 온 것을 보고 인사를 하며 얘기했다.

"안녕하십니까, 듀로크님. 하나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말해봐."

"어제 듀로크님이 가시고 의논을 해봐서 결정한 것인데 혹시 오늘 듀로크님과 대전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나야 괜찮은데 갑자기 생각을 바꾼 이유가 뭐야?"

"듀로크님의 무력을 알고 싶은 것도 있지만 저희가 듀로크님에게 도움이 될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듀로크는 그들이 생각을 바꿨다는 것 자체가 맘이 들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럼 4명이서 모두 덤벼."

"예? 그래도 되겠습니까?"

"날 못 믿냐? 봐주면서 해도 이기니까 덤벼."

"그렇게 얘기하신다면야..알겠습니다."

"그보다 그 브루드는 어디 있는 거야?"

"저기 있습니다."

듀로크는 르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돌이켜보니 특수 제작한 유리가 설치되었다고 생각된 장소였다.

"특수 제작한 유리로 되어있는 곳?"

"알고 계셨습니까?"

"대충은. 그래서 경기는 언제 시작하는 거야?"

"조금만 기다려주시지요. 그런데 뒤에 있는 분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르는 벨리온이 듀로크의 뒤에 있는 것을 보고 물어봤다.

"벨리온. 조금 있다가 와라."

"알겠다. 시작하면 오도록 하지."

벨리온은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고 듀로크는 4명과 함께 잡담하며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투기장의 모든 좌석이 가득 찼다고 생각될 때 심판이 모습을 드러내서 관객들을 향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모두 기다리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사천왕과 우승자, 듀로크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럼 시합에 들어가기에 앞서 도전자 듀로크에게 선택권을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듀로크님. 누구와 먼저 싸우시겠습니까?"

심판은 듀로크에게 확성마법이 부여되어 있는 봉을 입에 가져다주었고 듀로크는 능숙하게 봉을 받으며 얘기했다.

"4명과 한꺼번에 싸우겠다."

"예?"

"4명 다 싸우겠다고."

"4대1로 싸우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우와와아아아!!!

듀로크의 말에 관객들은 미친 듯이 환호성을 외쳤고 심판은 갑작스러운 듀로크의 말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다가 위에서 싸인을 받았는지 이내 관객들을 향해 얘기했다.

"듀로크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투기장의 역사상 최초로 4대1!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관객들의 함성과 함께 심판은 결투장 밖으로 나갔고 결투장에는 듀로크와 4명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4명은 시합이 시작하자마자 자연스럽게 듀로크를 중심으로 둘러싸며 자리를 잡았다.

듀로크의 정면에는 하프 오우거인 쿠르가 거대한 몸을 자랑하고 있었고 오른쪽에서는 상당한 거구인 제이슨이, 왼쪽에서는 르가, 뒤쪽에서는 엘프인 밀리나가 위치하고 있었다.

모두 자신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집중하는 것을 듀로크는 느낄 수 있었다. 수하로 들어갔다고 했지만 봐주지 않겠다는 그들의 투지를 듀로크는 볼 수 있었고 심판이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4명은 동시에 움직였다.

앞에서 3미터가 넘는 쿠르가 돌진해오자 듀로크는 상당한 위압감을 느꼈다. 쿠르가 자신과 비슷할 정도의 크기를 가진 대검을 휘두르자 그 풍압 만으로 주위의 지반이 흔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듀로크는 실드를 2번 중첩시킨 이중첩 실드로 막으려고 했다.

쾅! 쩌정!

"허..."

듀로크는 이중첩 실드가 쿠르의 대검에 버티지 못하고 깨지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실드가 4서클 마법이라고 하지만 이중첩으로 사용하면 6서클 정도의 위력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실드가 버티지 못하고 깨졌다는 것은 대검에 6서클 이상의 위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듀로크는 쿠르의 대검에 마나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서려 있는 것을 보고 오우거의 힘과 마나가 합쳐지면 이렇게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듀로크의 실드가 부서진 사이에 제이슨은 바스타드 소드로 상단 베기를 시도하고 르는 주먹을 휘두르며 밀리나는 화살을 당겼다.

듀로크는 피하기 힘들고 그들의 연계가 상당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마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윈드 스톰."

듀로크를 중심으로 바람의 회오리가 생성되어서 4명을 밀어내었다. 하지만 듀로크는 그들이 윈드 스톰에 밀린 것이 아니고 마법 발현의 기운을 느끼자마자 뒤로 물러났다는 것을 눈치챘다. 거기다 윈드 스톰의 힘이 다하는 모습을 보이자 4명은 동시에 공격을 하려는 기세를 보여주었다.

'호오? 연계도 나쁘지 않고 센스도 괜찮아. 원정대의 인원들보다 실력은 많이 떨어지지만 상당한 인물인 것은 확실하군.'

듀로크는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에 조금은 감동하였다. 하지만 감동할 뿐이었다.

"그렇다 해도 나한테는 안 통하지."

듀로크는 윈드 스톰이 유지되는 사이에 스트렝스와 헤이스트 마법을 사용하여 육체를 강화시켰다. 그리고 윈드 스톰이 힘이 다하는 순간 듀로크는 순식간에 지팡이를 들고 뒤에 있던 밀리나에게 접근했다.

"어?"

밀리나는 갑자기 접근하는 듀로크에 반응하지 못하고 멍을 때렸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활대로 듀로크가 휘두르는 지팡이를 막으려고 했다. 이때 밀리나는 크나큰 잘못을 하는데 바로 지팡이의 강도를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콰지직!!

"꺄아악!"

밀리나는 활대가 부러지는 것뿐만 아니라 지팡이에 들어있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그사이에 제이슨이 듀로크에게 접근하여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렀다.

쾅!!

"뭣?!"

듀로크는 거구의 제이슨이 모든 힘을 담아서 휘두른 커다란 바스타드 소드를 그저 지팡이로 가볍게 막아내었다. 듀로크는 이어서 주먹으로 제이슨의 복부를 때렸고 복부를 맞은 제이슨은 헛구역질을 내며 그대로 쓰러졌다.

제이슨이 쓰러지는 사이에 쿠르는 어느새 듀로크의 뒤로 다가와 3미터의 대검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듀로크는 쿠르가 휘두르는 대검의 위력을 알고 있었기에 섣불리 지팡이로 막지 않고 오히려 뒤로 움직여서 쿠르의 몸쪽으로 이동했다.

콰쾅!!

대검이 듀로크가 있었던 자리를 타격하여 지반을 가르며 커다란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듀로크는 뒤로 움직이는 동시에 팔꿈치로 쿠르의 배를 가격했다.

"커억!"

스트렝스 마법으로 강화된 육체로 배를 가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쿠르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쿠르는 두 팔로 듀로크를 감싸서 그대로 짓누르려고 했다. 하지만 듀로크는 양팔로 쿠르의 팔을 잡아서 말 그대로 오우거와 힘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크어어!"

듀로크는 스트렝스 마법에다가 풍부한 마나로 신체능력이 증가한 육체로도 쿠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대치한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그렇게 대치하는 사이에 어느새 듀로크 앞에 르가 모습을 드러내어서 주먹을 휘둘렀다. 듀로크는 르의 주먹에 상당한 기운이 들어있는 것을 느끼고 결국 또 다른 마법을 사용했다.

"익스플로젼!"

퍼퍼퍼펑!

5서클 마법인 익스플로젼이 나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익스플로젼은 폭발 마법으로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무수한 폭발을 일으켰다. 듀로크는 익스플로젼 마법이 끝나고 주위를 둘러봤는데 너무 했나 하고 생각될 정도로 주위는 초토화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듀로크의 예상과 다른 광경도 있었다.

"크르르르..."

"크윽. 뜨겁군요."

쿠르의 몸은 까맣게 그을리거나 벌겋게 타오른 화상으로 뒤덮여 있었고 르의 몸에는 아직도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5서클의 마법에도 불구하고 쿠르는 오우거의 가죽에 있는 마법 내성으로 대응했고 르는 늑대인간의 재생능력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크와아아아!!"

쿠르는 괴성을 지르며 다시 대검을 들고 듀로크에게 돌진해왔다. 듀로크는 이번엔 피하지 않고 오히려 쿠르를 향해 돌진했다. 쿠르의 대검과 듀로크의 지팡이가 서로를 향해 부딪혔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검의 압도적인 승리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지팡이에 부딪힌 대검은 그 크기 값을 하지 못하면서 위로 들어 올려졌고 듀로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쿠르의 몸에 바짝 달라붙었다.

"하압!"

퍼퍼퍼퍽!!

순식간에 수십 번의 주먹질이 쿠르의 배에 박혀 들어갔다. 아무리 하프 오우거인 쿠르도 듀로크의 마나가 담겨진 주먹질에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버렸다. 듀로크는 쿠르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고 이어서 르를 상대하려 했는데 뭔가 섬뜩한 기운이 등을 타고 지나갔다.

이러한 섬뜩한 기운은 위협이 느껴질 때 몸이 경고하는 신호라는 것을 몬스터의 숲에서 충분히 경험한 듀로크였다. 듀로크는 그대로 몸을 옆으로 피했지만 미처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화살이 가면을 뚫고 뺨을 스쳐 지나갔다. 듀로크는 지나간 화살에 마나가 담겨진 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기진맥진한 밀리나가 화살을 다시 메기고 있었다. 듀로크는 밀리나에게 마법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까먹고 있던 르가 주먹을 휘둘러서 미처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마나가 담겨져 있는 르의 주먹은 상당히 위협적이였고 듀로크는 역시 4명의 리더라고 생각했다.

듀로크는 르의 주먹을 피하면서 지팡이로 오른쪽 어깨를 가격하여 르의 뼈를 부러트렸다. 하지만 르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무표정으로 왼쪽 주먹을 휘둘렀고 듀로크는 다시 지팡이로 왼쪽 팔을 가격했다. 그런데 그사이에 회복했는지 르는 다시 오른쪽 주먹을 휘둘렀고 르의 회복력에 놀란 듀로크는 전투를 진행하면서 얘기했다.

"대단하군. 원래 늑대인간은 이렇게 회복력이 빠르나?"

"아닙니다. 늑대인간이 원래 회복력이 뛰어나지만 저는 회복에 특화된 몸이여서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얼마나 회복이 빠른지 보자고."

듀로크는 르와 격돌하면서도 밀리나의 화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듀로크는 점점 몸을 빠르게 움직이면서 르를 타격했다. 듀로크는 타격하고 르는 그것을 다시 회복하는 무식한 싸움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르의 회복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슬슬 포기하지?"

"제 정신이 버티고 있는 이상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좋은 정신이야. 하지만 정신으로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지."

듀로크는 지팡이를 놓고 전 마나를 개방해서 르를 향해 기세를 뿜어내었다.

"이,이건."

르는 듀로크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를 통해 듀로크를 이길 수 없다는 것과 자신은 그의 앞에서 그저 벌레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메꿀 수 없는 차이를 느꼈다고 하더라도 르는 투지를 불태웠다.

"역시 듀로크님은 대단하시군요. 웬만해서는 변신을 하지 않지만 듀로크님을 상대하려면 어쩔 수 없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대하지."

"크으으......아우우우!!"

르의 온몸에서 털이 나고 얼굴이 늑대로 변하면서 손과 발에서 손톱과 발톱이 튀어나왔다. 듀로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늑대인간과 다르게 보름달이 아닌데도 변신할 수 있다는 점에 놀라움을 느꼈다.

"크으으...야수화..모드는...되도록..자제하고...있습니다."

"왜지?"

"야성을...억누르기..힘들기..때문입니다..지금도..미처..날뛰고..싶습니다."

"억누르지 마라. 나한테는 억누를 필요가 없다."

"그럼...그러겠습니다!"

르는 듀로크를 향해 마치 사냥감을 찾은 사자처럼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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