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여행의 시작(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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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여행의 시작(11)
"어제는 잘 놀았나?"
"덕분에 잘 보냈습니다. 듀로크님."
"그러고 보니 항상 네 옆에 있는 남자의 이름은 뭐야?"
"예. 크이스라고 합니다."
"옛날에 집사라고 했었나?"
"예. 집사였었습니다. 몰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저를 옆에서 지켜주신 고마운 분이시죠."
"좋아하냐?"
"예?"
나의 말에 쥬디아는 멍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좋아하냐고. 집사와 사랑에 빠지는 그런 이야기 많잖아? 더구나 몰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옆에서 지켜줬으면 더하지 않냐?"
"...그 이야기는 그만하시죠."
"뭐, 아니라면 아니겠지만. 보아하니 내 짐작이 맞나 보구만."
쥬디아는 말을 돌렸지만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니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길드원들의 반응은 어떻지?"
"모두 듀로크님을 섬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그럼 처음 내가 말했었던 라이언 왕국의 정보와 귀족들의 정보를 준비했나?"
"지금 정리 중입니다만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코모드 백작은 어떻게 했지?"
"궁금하십니까?"
"아니. 말하는거 보니 대충 예상은 되는군. 그런데 현재 시프 길드의 인원 구성은 어떻게 되지?"
"10대 미만부터 70대까지 골고루 있습니다. 총 인원은 97명입니다."
"무력은 어느 정도?"
"얘기하기 부끄럽지만 집사를 제외하고 제일 강한 3명이 익스퍼트 초급이고 나머지는 마나를 조금 느낄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길드가 운영됐다는게 신기하군. 그렇다면 지금까지 정보는 어떻게 습득한 거지?"
"저희 도둑 길드는 무력이 약한 대신 널리 퍼져있는 정보망이 있습니다. 97명 말고도 그 밑에 소소한 인원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니까 무력에서 안 되니 숫자로 밀어붙인다는 것이군. 그래도 힘이 너무 부족해."
"그 점은 저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딱히 방법이 없어서..."
"그래? 흠...그럼 정보를 정리하는데 얼마나 걸리나?"
"한 2,3일은 걸릴 것 같습니다."
"2,3일이라...그럼 그동안 시간 때울만한 것은 없어?"
"흐음..아! 하나 있습니다."
"뭔데?"
"이 미라크에는 유명한 투기장이 있습니다."
"투기장?"
"예. 각종 강자들이 모여서 싸우고 관중들은 누가 이기는지 돈을 걸고 따는 형식입니다."
"투기장이라...투기장? 그런 방법이 있었군."
"예? 무슨?"
"네가 말했잖아. 투기장에는 많은 강자들이 있다고. 그 녀석들을 데려와서 길드에 합류시키면 되겠군."
"예? 하지만 그들이 과연 올까요? 투기장에서 항상 싸우는 이들은 모두 독특한 이들입니다."
"독특한? 어떤?"
"인간이 아닌 이들도 많고 집단에 속해있는 인원들도 있습니다."
"한번 읊어봐."
"예. 투기장에서 제일 유명한 이는 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라이칸슬로프입니다. 그의 무력은 소드마스터 초급에 준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계속."
"두 번째는 제이슨이라는 거구의 인간입니다. 2미터를 넘는 거구의 몸에 커다란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는 자입니다. 세 번째는 쿠르라고 하는 하프 오우거입니다."
"하프 오우거?"
나는 하프 오우거라는 소리에 놀랐다. 왜냐하면 하프 오크는 인간과 오크의 신체 특성상 비슷해서 태어날 가능성이 다소 컸다. 하지만 오우거와 인간은 크기도 다르고 신체 특성의 차이가 있어서 하프 오우거가 태어날 확률은 천문학적으로 드물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하프 오우거라는 소리를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 3미터를 넘는 몸을 가지고 있고 얼굴과 몸도 오우거의 유전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과 비슷한 크기의 대검을 휘두르는데 제이슨과의 싸움을 펼친다면 힘과 힘의 대결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고 합니다."
"흥미롭군. 하프 오우거라니. 그리고?"
"예. 마지막으로 밀리나라는 엘프입니다. 그녀는 활과 화살로만 공격하는데도 불구하고 4강에 들 정도로 강자입니다."
"...라이칸슬로프, 하프 오우거, 엘프까지. 노예왕국인 게덴에 있을 법한 인원인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왜냐하면 투기장 자체가 게덴의 상인이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덴의 상인이? 설마 돈으로 간접침략을 하는 건가?"
"잘 아시는군요."
"이런 예가 많은가 보군."
"부끄럽지만..."
나는 라이언 왕국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 타왕국에서 이렇게 대놓고 들어오는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한 것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투기장의 주인이 게덴의 상인이라면 오히려 잘됐군."
"예?"
"상인을 족쳐서 투기장을 없애버리고 그들 4명을 내 휘하에 두면 되는 거 아냐?"
"그,그렇군요."
"그 투기장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하지?"
"참여하실 겁니까?"
"어. 그 녀석들이 어느 정도 힘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유명해지면 그 상인이 나한테 다가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투기장에 빠삭하게 알고 있는 이를 붙여드리겠습니다."
"그래."
나는 쥬디아에게 알겠다고 얘기한 후에 내가 생활하고 있는 2층의 빈방에 들어갔다. 빈방은 4명 이상이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지금은 벨리온과 워디슨, 아레아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자 워디슨과 아레아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벨리온이 혼자 누워서 자고 있었다.
하지만 벨리온은 내가 온 것을 눈치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왔나?"
"자고 있었나?"
"심심해서 말이지."
"그래? 하나 재밌는게 있어서 가려고 하는데."
"뭔데?"
"이 마을에 유명한 투기장이 있다고 하지. 거기서 조금 깽판치고 초토화시키게."
"재밌겠군. 같이 가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냐. 그냥 몸풀기 수준?"
"상관없다. 심심하니까."
"그럼 투기장으로 데려다줄 이가 올 거니까 기다리고 있다가 가자."
나와 벨리온은 안내해줄 이를 방 안에서 기다렸는데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누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벨리온과 함께 문을 열었고 문 앞에는 10대로 보이는 소년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안내할 자인가?"
"안,안녕하십니까! 제가 안내를 맡게 된 네로라고 합니다!"
"반갑군. 그럼 지금 바로 투기장으로 출발해라."
"지금 곧바로 갈 건가요?"
"안될게 뭐가 있어? 지금 바로 간다."
"알겠어요. 저를 따라오세요."
나와 벨리온은 소년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소년이 이끌고 도착한 곳은 투기장으로 생각되지 않는 평범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나의 발달한 신체감각은 이 지하 속에서 엄청난 숫자의 인원이 있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이 지하인가?"
"어? 알고 있었어요?"
"아니. 하지만 이렇게 시끄럽게 해대니 모를 수가 없지."
"시끄럽다고요? 저는 안 들리는데."
"난 감각이 뛰어나서 그래. 하여튼 이 밑이라는 거지?"
"예. 계단을 통해서 내려가면 2명이 철문을 지키고 있을 겁니다. 그 2명에게 이것을 보여주면서 투기장에 참가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면 들여보내 줄 겁니다."
소년이 준 것은 동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문패 같은 것이었다. 문패를 준 소년은 자신의 할 일이 끝냈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인사를 한 후에 사라졌다. 나는 동으로 만들어진 문패를 들고 벨리온에게 눈짓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자 소년이 얘기한 대로 한 개의 철문이 있었고 그 옆에 2명의 남성이 서서 문을 지키고 있었다.
"용무는?"
"투기장 참가."
"참가증은?"
"이거면 되나?"
나는 소년에게 받은 문패를 보여주었다. 문패를 확인한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얘기했다.
"확인했다. 참가자는 2명인가?"
"그렇다."
"투기장에 온 것을 환영한다."
남자는 철문을 열어주었다. 철문을 열고 보이는 광경은 생각보다 놀라웠다. 관객이 수백 명은 돼 보였고 모두 투기장의 경기를 기대하는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투기장의 중앙에는 참가자들이 충분히 싸울 수 있도록 커다란 공간이 있었고 주위에는 지금까지 싸웠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마치 로마시대의 작은 콜로세움을 보는듯한 기분이였다.
철문이 열리자 나와 벨리온의 앞을 가로막는 인원이 있었는데 아마 경비원으로 짐작되었다.
"당신들은 참가자인가?"
"그런데?"
"이름은?"
"난 듀로크. 이 녀석은 벨리온이라고 한다."
"나를 따라와라."
한 명의 남자가 나와 벨리온을 이끌었고 이동하면서 투기장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우리 투기장에는 총 사천왕이있다. 당신들은 처음으로 참가하는 것이니 예선을 거쳐서 우승해야 사천왕과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물론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많이 올라갈수록 받을 수 있는 돈은 많아진다."
"예선은 몇 강으로 되어 있지?"
"당신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당신 2명이 들어와서 딱 32강이 만들어졌으니까."
"다행이군. 귀찮은 짓을 안 해도 되니까."
"대기실에 들어가 있다가 나중에 차례가 되면 누가 찾아올 것이다. 그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된다."
"하나 궁금한게 있다. 원래 이렇게 간단하게 참가할 수 있는 건가?"
"무슨 소리지? 문패를 받고 온 것 아닌가?"
"이 문패?"
나는 소년이 준 문패를 보여주었다.
"그래. 그 문패를 받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배율과 보상에 대해서 얘기했을 텐데?"
"아. 그때 한 말이 그거였군. 알겠다."
나는 문패가 그런 경험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건지 몰랐기에 대충 넘겼다. 남자는 나의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이내 자신의 할 일을 다하고 모습을 감추었다.
"그 녀석은 왜 문패가 이런 거라는 것을 얘기하지 않았던 거야?"
"뭐, 상관없잖아?"
"그렇긴 하지."
나와 벨리온은 대기실에 들어갔다. 대기실에는 참가자로 보이는 인물들이 있었는데 다들 실력이 한가락 해서 그런지 개성적인 모습들이 많았다.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은 나와 벨리온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째려보았다. 아마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난 것에 대한 경계심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벨리온은 신경 쓰지 않고 마치 내 집인 것마냥 의자에 누워서 여유롭게 보냈다. 이들 중 제일 강한 이가 익스퍼트 중급 수준이고 나머지 인원들은 모두 그 이하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여유롭게 누워있을 때 밖에서는 예선이 치루어지고 있는지 시끌벅적했다.
몇명씩 대기실에서 호출돼서 나가거나 이겨서 들어오는 출입이 많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참가자는 듀로크와 드라이입니다. 준비하십쇼."
"내 차례인가? 그러고 보니 대진표가 어떻게 되는지 아냐? 벨리온."
"대진표상 우리가 결승에서 만날 것이다."
"그래? 기대되는군. 그럼 먼저 가겠다."
나는 대기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는데 그때 다른 대기실에서 1명이 또 나왔다. 느낌으로 봐서 아마 나의 상대인 드라이라는 남자인 것 같았다. 투기장에서는 아직 한창 싸우고 있나 본 지 열광과 환호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당신이 듀로크인가?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군. 그런 실력으로 잘도 참가했어."
드라이라는 남자는 갈색 빛깔의 머리에 중년의 남성으로 산적질을 하고 온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나는 드라이라는 남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무시하고 그저 빨리 투기장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잡다한 인물과는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게 만들고 있었다.
"쫄았나? 하긴, 수백 명이 보는 앞에서 쓰러질 것을 생각하면 말이 나오지 않겠지. 순순히 나의 발밑에 굴러주면 좋겠군."
옆에서 조잘대면서 귀찮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말 하나하나가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였다. 나는 아직도 투기장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짜증과 함께 귀찮게 하는 드라이라는 남자 때문에 지팡이를 놓고 얘기하기로 했다.
지팡이를 놓자 나의 기세가 풀풀 피어나오며 드라이를 향해 집중했다. 드라이는 나의 기세에 눌려서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못한 채 눈만 껌뻑이고 덜덜 떨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신경을 거슬리는 말을 계속하는군. 당신이야말로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없어서 죽이지 않는게 아냐. 그저 귀찮을 뿐이지."
"으으..."
"그런데 아까부터 호랑이 앞에 까부는 강아지처럼 짖어대더군. 그러니 한번 우리 저기 투기장에 가서 친밀히 대화를 나누어 보지 않겠나?"
나는 그대로 기세를 더욱 뿜어내었다. 그러자 드라이라는 남자는 참지 못하고 오줌을 터트리며 사시나무 떨듯이 덜덜 떨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듀로크, 드라이 입장하십쇼!"
안내원이 투기장으로 들어오라는 목소리를 듣고 나는 지팡이를 다시 잡았다. 내가 지팡이를 잡자 드라이라는 남자는 바닥에 쓰러져서 기어 다니며 나한테서 멀어지려고 했다.
"괴,괴물!"
"괴물이라. 뭐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지금은 너와 나를 부르고 있잖아? 빨리 가자고. 괴물을 발밑에 굴러 쓰러트려야 하잖아?"
"으...으아아아!!!"
드라이는 그대로 미친 듯이 뛰어가 나에게서 도망쳤다. 안내자는 기다려도 나와 드라이가 오지 않자 찾으러 들어왔다.
"왜 오지 않는 겁니까?"
"드라이라는 남자가 도망쳤는데 어떻게 하지?"
"예? 도망을요?"
"어. 무슨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던데?"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일정 시간 기다리고 오지 않으면 부전승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대기실에 있을 테니 내 차례가 되면 부르라고."
"알겠습니다. 참고로 예선전은 오늘 다 치를 예정입니다. 알고 계십쇼."
"알겠다."
나는 그대로 다시 대기실에 가서 의자에 누워서 잠깐 잠을 청했다. 귀찮게 싸우지 않고 올라갔으니 다음 상대도 이렇게 할까 고민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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