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여행의 시작(8)
-----------------------------------
5장 여행의 시작(8)
"여긴 것 같은데?"
나는 다른 건물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건물에서 주머니에 걸었던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벨리온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벨리온은 나의 신호에 맞혀서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십수 개의 테이블과 앉아있는 손님들이 있었고 음식을 먹으며 잡담을 나누는 평범한 여관의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3자가 들어온다면 평범한 여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법의 기운이 이 건물에서 느껴지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 착각을 할 일은 없었다.
"어서 오십쇼. 몇 명이십니까?"
여관의 카운터에서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우리를 보고 인사를 하였고 벨리온은 그 남자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여기 주인장이 누구인가?"
"접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네가 주인장이 아닌 것을 난 알고 있다. 여관의 주인장이 아닌 도둑 길드의 길드장을 말하는 것이다."
"도둑 길드라..무슨 말이죠?"
30대 남자는 여유롭게 모르는 척을 했고 벨리온은 그 모습에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남자를 향해 얘기했다.
"이렇게 대화를 어렵게 만들 것인가?"
"무슨 말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이래도 거짓말을 할 수 있나 볼까?"
나는 순식간에 여관의 내부에 수십 개의 파이어볼을 만들었다. 카운터의 남자와 여관에 있던 이들은 모두 갑자기 나타난 파이어볼 때문에 화들짝 놀라면서 자신이 숨기고 있었던 무기들을 꺼내 들었다.
"모든 손님이 도둑일줄은 몰랐는데? 뭐 이렇게나 많으면 얘기가 빠르겠군."
"당,당신은 누구시죠? 마법사분이 왜 이런 곳에?"
"왜긴. 정보를 알기 위해서 왔지. 빨리 길드장을 부르는게 좋을 거야. 맘에 안 들면 확 점령하는 수가 있으니까."
"잠,잠시만 기다려주십쇼!"
남자는 좀 전까지 보여주던 여유는 언제 사라졌는지 급하게 2층을 향해 올라갔다. 남은 십수 명의 손님이였던 도둑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내가 만들어놓은 파이어볼을 쳐다보고 있었다.
"흐음...심심한데? 너무 오래 걸리면 파이어볼을 유지하기 힘들어서 폭발할 수도 있는데 말이야."
나는 그 말을 하면서 도둑들에게 부딪히지 않도록 신경 쓰며 파이어볼들을 움직였다.
"으,으아악!"
"앗, 뜨거!"
하지만 도둑들은 내가 배려하는 것을 모르고 미친 듯이 파이어볼을 피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폴짝폴짝 뛰거나 몸을 날리면서 피하는 것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만하십쇼!"
"응? 드디어 왔군."
나는 이 정도의 연출이면 됐다고 생각하며 파이어볼들을 모두 없애버렸다. 파이어볼들이 사라지자 도둑들은 모두 한숨을 쉬었고 이내 내려온 인물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내려온 인물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호오? 길드장이 여자였나?"
"제가 도둑 길드의 길드장인 쥬디아라고 합니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정보를 받고 싶어서 왔다. 도둑 길드가 정보에는 빠삭하다는 말을 들어서 말이지."
"정보에 빠삭한 것은 맞습니다만 무슨 정보를 알고 싶어 하시는 겁니까? 평범한 마법사는 아니신 것 같은데."
"이 왕국에 대한 정보와 라이언 왕국의 귀족들에 대한 세세한 정보."
"그건 극비정보입니다. 알고 있다고 해도 알려줄 수 없습니다."
"여기 있는 전원이 모두 평생 쓸 수 없는 재물을 준다고 해도?"
내 말에 몇몇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지만 정작 중요한 길드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예. 죄송하지만 불가능합니다."
"그래? 그러면 무력으로 해도 안 된다는 걸까?"
나는 잠시 지팡이를 놓았다. 그와 동시에 나의 일행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위압감을 뿜어내었고 동시에 버티지 못해서 철퍼덕 바닥에 엎드리는 인원들도 나왔다. 하지만 길드장인 쥬디아라고 한 여자는 입을 깨물어서 피를 흘리고 온몸을 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호오?'
나는 쥬디아라는 여자가 익스퍼트조차 되지 않는 그저 평범한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평범한 여인이라면 벌써 졸도하는 게 정상이건만 오히려 남정네들보다 버티고 있는 쥬디아라는 여자를 보고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그때 옆에 있던 벨리온이 얘기했다.
"어이, 그만하는게 좋을걸? 이 이상하면 어떻게 될 거다."
벨리온의 말대로 쥬디아의 눈은 계속 흔들리고 있었고 엎드려 있는 남자들 중에는 기절한 이도 있었다. 나는 결국 지팡이를 다시 잡아서 그들을 압박하고 있었던 위압감이 싹 사라지게 하였다.
"헉,헉!"
"쥬디아님!"
쥬디아라는 여자는 위압감이 사라지자마자 휘청거렸고 그나마 버티고 있던 카운터의 남자가 쥬디아를 부축해주었다.
"어때? 생각이 바뀌었나?"
"헉,헉. 죄,죄송하지만 힘들겠습니다."
"너도 어지간히 고집이 세구만. 그래. 어떻게 하면 들어줄 건데?"
"한,한가지의 부탁을 들어주시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뭔데?"
"그,그건 올라가서 얘기하시지요."
나는 쥬디아라는 여자가 부축 당하면서 힘겹게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따라갔다. 벨리온은 나를 따라서 올라왔고 워디슨과 아레아도 밑에서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웠는지 따라오고 있었다.
남자에게 부축당하면서 쥬디아가 먼저 방으로 들어갔고 나와 벨리온만 안으로 뒤따라 들어갔다.
쥬디아는 소파라고 생각되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한숨을 쉬었고 그 옆에 있는 30대 남자는 쥬디아에게 마실 것을 주었다. 쥬디아는 남자가 준 음료를 마시고 숨을 크게 내뱉은 후에 얘기했다.
"후! 약한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 여자로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에 조금 감명을 받았어. 그것도 아무런 무력도 가지지 않았으면서 말이야."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가 도둑 길드인줄 알고 오신 겁니까?"
"내 돈주머니를 훔친 어린아이가 있었지. 그리고 그 돈주머니에 걸린 마법을 역추적하다보니 도착지가 여기였다."
"그런 일이...돈주머니는 꼭 돌려드리겠습니다."
"아니, 안 줘도 상관없는데?"
"안됩니다. 저희 도둑 길드는 아무런 보상 없이 훔치지 않습니다. 훔치더라도 악인에게만 훔칩니다."
"그래? 도둑 길드 같지 않은데? 다른 도둑 길드원들이 반대하지 않나?"
"...그런 경향은 있긴 있지만 마법사님이 걱정하실 일은 아니십니다."
"네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그럼 이제 슬슬 얘기하지 않겠나? 부탁할 일이 뭐지?"
"옆에 있는 분도 들으셔도 괜찮은 겁니까?"
"그래. 이 녀석도 꽤 하는 녀석이니까. 너도 내가 상당한 마법사라는 것을 눈치채고 일부러 그렇게 얘기한 거잖아?"
"비약적인 생각이십니다. 저는 그저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얘기했을 뿐입니다."
"말은 잘하는군. 그런 녀석이 입술을 깨물면서까지 버티냐? 됐고, 얘기나 해봐."
"알겠습니다. 제가 부탁하는 것은 하나의 물건을 훔쳐달라는 것입니다."
"평범한 물건이라면 나에게 부탁하지 않았겠지. 자세히 얘기해."
"예. 훔쳐야 할 물건은 하나의 목걸이입니다. 블루 사파이어로 되어 있는 목걸이지요."
"비싼 건가?"
"가격으로 따지자면 별로 비싸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목걸이지요."
"무슨 의미인데?"
"그건..."
"쥬디아님."
쥬디아가 얘기하려고 할 때 30대 남자가 말렸다. 하지만 쥬디아는 고개를 가로지으며 얘기했다.
"남한테 부탁을 할 때는 숨기는게 없어야지. 어차피 그렇게 숨길만한 비밀도 아니니까."
"쥬디아님이 그렇게 얘기하신다면야...알겠습니다."
쥬디아가 얘기하는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랬다.
쥬디아는 유복한 귀족가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미라크의 유명한 귀족으로 모두 우러러보는 존재였다. 그녀도 그녀의 부모도 이런 생활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10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부모님에게 접근하는 이가 있었다.
접근한 인물은 코모드 백작이라는 자였다. 그는 상인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이로써 그녀의 부모님에게 하나의 사업을 하자고 권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합의 하에 하기로 결정하여 몇 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몇 년 후 일은 터지고 마는데 코모드 백작이 사기를 치고 모습을 감춘 것이었다. 그가 사기를 치고 튀었는데 그것도 사업의 자산을 빼돌려서 그녀의 부모님은 빼도 박도 못 하고 자금을 메꿀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거기다가 메꿀 자금은 그녀의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모두 팔아도 부족할 정도였다.
결국 그녀와 그녀의 부모님은 모든 자산을 팔아버리고 귀족의 신분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그녀의 부모님은 3년 안에 모두 화병으로 인해서 죽어버리고 그녀만이 혼자 남게 되었다. 그리고 쥬디아와 그녀의 집사는 미라크에 숨겨두었던 건물을 사용해서 도둑 길드를 만들었고 10년 이상을 노력한 결과 지금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였다.
"전형적인 사기 이야기군. 그런데 그 목걸이와는 무슨 관계야?"
"그 목걸이는 제 어머님이 소중하게 차시던 목걸이입니다. 자금을 메꾸려다가 팔아버린 목걸이입니다."
"그렇군. 그 목걸이는 어디에 있지?"
"...코모드 백작의 집에 있습니다."
"뭐? 그 백작이라는 얘가 여기에 있어?"
"예. 3년 전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나타났는지 한순간 나타나서 커다란 집을 짓고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근데 나에게 부탁을 하는 것을 보면 그 백작의 집에 상당한 경비가 있나 봐?"
"예. 저의 정보에 의하면 수십 명의 경비병과 6서클 마법사 1명, 익스퍼트 중급이 10명 있다고 합니다."
"....."
"역시...무리입니까?"
"아니. 너무 쉬워서 그래."
"예?"
"그 정도면 여기 있는 벨리온이 가도 5분도 안 돼서 끝낼걸?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훨씬 강해."
"그,그렇습니까? 믿기 힘들군요."
"그렇다면 너도 비밀을 가르쳐줬으니 우리도 하나씩 가르쳐주지. 벨리온, 네 정체를 얘기해줘도 돼?"
"알려줘도 난 상관없지만 너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나?"
"뭐, 사냥꾼들이 와봤자 얼마나 강하겠어?"
"하긴. 천년 전에는 나 혼자여서 당했지만 나보다 강한 너까지 있다면 당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얘기가 샌다면 여기서 샌 거니까."
"그렇군."
쥬디아와 남자는 나와 벨리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동시에 불안해 보였다.
"그럼, 들을 준비는 됐나?"
"예,예. 얘기하시죠."
"내 옆에 있는 이 녀석은 중급 마족이야. 봉인되었다가 나온지 며칠 안 됐지."
"마,마족!"
"마족이라고요!"
지금까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던 쥬디아도 마족이라는 말에는 무표정을 유지할 수 없는지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뒤로 물러나면서 언제든지 칼을 뽑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놀라워해? 마족이여도 무해한 마족이니까, 걱정 말라고."
"마족은 무해할 수 없습니다. 파괴와 잔인한 것을 좋아하는 마족은 인간의 적입니다!"
남자는 미세한 살기를 뿜어내며 얘기하고 있었지만 그런 살기에 움직일 나와 벨리온이 아니였다.
"마족 혼자만 놔둔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이 녀석은 나보다 약할뿐더러 나와 계약했으니까 내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거야."
"그,그런 마족을 데리고 다니는 마,마법사님의 정체는 뭡니까?"
쥬디아는 아직 혼란스러운 기색을 보이며 나에게 물어봤다. 옆에 있는 남자도 쥬디아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나는 9서클 마법사 듀로크. 종족은 오크지."
나는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던 것을 얼굴이 보이게 들춰내었다. 쥬디아와 남자는 나의 얼굴을 보고 마족이라는 말보다 더욱 놀란 반응을 보여주었다.
"오,오크!"
"오,오크가 어떻게 여기에?"
"왜 오크가 오면 안 되냐? 너도 비밀을 얘기했으니까 우리도 쿨하게 비밀을 얘기했을 뿐이야. 실망이야?"
"아,아닙니다. 그저..갑작스러워서."
"하긴, 나를 보고 놀라지 않는 인간은 보기 드물지. 하여튼 거래는 계속 할 거지? 설마 오크여서 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는 건 아니겠지?"
"예? 예. 그...가능한 일이십니까?"
"식은 죽 먹기지."
"식은 죽 먹기?"
"아. 그냥 눈 깜빡하는 것만큼 쉽다는 말이야. 좌표가 있나?"
"예. 여기 있습니다."
쥬디아는 좌표가 적힌 지도를 주었고 나는 그 지도를 받아들이며 얘기했다.
"벨리온. 넌 여기 있어. 얼마 걸리지도 않을 테니까."
"알겠다."
"지금 가시는 겁니까?"
"그래. 지금 날이 저물고 있으니까 저녁이나 만들어놔. 저녁 먹기 전에 갔다 오지."
나는 당황하는 쥬디아와 남자를 두고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