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여행의 시작(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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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여행의 시작(4)
"자, 어디 보자...다음 마을은 미라크군. 걸어서 일주일 정도의 거리라..."
나는 카니스 마을에서 왕성까지 가는 길에 있는 마을 중 제일 가까운 마을이 미라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음 목적지를 그곳으로 잡았다. 지도에는 카니스와 미라크 사이에 하나의 산이 있었는데 나는 그 산을 가로질러서 갈 생각이었다.
느긋하게 등산이나 하면서 여행을 만끽할 재미에 나는 들뜬 상태로 걸어갔다. 배고플 때는 배낭에 있는 음식을 먹고 목마를 때는 마법을 사용해서 물을 만들어서 먹고 밤이 되면 주위에 알람 마법과 혹시 모를 실드를 쳐서 안전하게 나무 위로 올라가서 잤다.
그렇게 이틀 동안 여유롭게 걷다 보니 어느새 지도에 있던 산에 도착하였다. 나는 산이 생각보다 높다는 점과 울창하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즐겁게 등산할 수 있다는 기분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전생에서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한 공기와 울창한 숲은 등산에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던 나도 등산이 이런 맛으로 하는구나 하고 생각될 정도였다.
"흐읍~ 하~ 공기 참 좋네. 낮잠이나 자보고 갈까?"
나는 나무 위로 올라가서 알람 마법과 실드 마법을 설치해두고 자려고 했는데 누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나의 낮잠을 방해하는 이가 과연 어떤 인물인지 보기 위해 짜증을 내며 고개를 돌려보았다.
15,16세로 보이는 소년, 소녀가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이 황급히 달리고 있었다. 소년, 소녀는 내가 누워있었던 나무를 지나쳐서 달려갔고 그 뒤를 쫓아가는 이들이 있었다. 험상궂게 생긴 얼굴과 흉터로 뒤범벅인 몸, 커다란 몸체와 가죽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무리 다른 걸로 보고 싶어도 산적으로밖에 볼 수 없는 모습이였다.
"대충 봐도 못된 산적들이 착한 소년,소녀를 쫓아가는 모양이구만. 어떻게 할까나?"
나는 내가 보살도 아니고 항상 착한 일만 하며 약한 이들을 돌봐주는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도움을 청해오는 것에 손을 뿌리치는 눈물도 없는 이도 아니였다. 그렇기에 소년, 소녀들이 나를 눈치채지 못하고 도움을 청하지 않았으니까 귀찮아서 그냥 무시하고 자려고 했다.
"그럼, 자볼까?...응?"
나는 산적들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나무 위에 누웠는데 마법의 기운을 느끼고 다시 일어났다. 훨씬 서클이 높은 나는 상대가 무슨 마법을 사용하는지 느끼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이건 탐지마법인데? 아차! 늦었다."
나는 마법이 뭔지를 알아보려고 집중하다가 방심하여 탐지마법이 나에게 오는 것을 흘려보내지 못했다. 그에 맞혀서 마법사가 얘기했는지 산적들이 갑자기 분주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내 쫓던 산적의 절반은 소년, 소녀를 쫓아가고 나머지 절반은 내가 올라가 있는 나무 밑으로 왔다.
"위에 있는 거 다 안다. 불화살을 쏘기 전에 내려와라!"
나는 일이 귀찮게 됐다는 것을 느끼며 망토로 얼굴을 가리고 나무 위에서 내려왔다. 대충 봐도 산적 30여 명은 될듯한 인원이 나를 둘러싸며 비웃고 있었고 그들의 미소에서 악의와 탐욕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신들 산적이군."
"그래. 산적을 만났으니 어떻게 될지 알겠지?"
"뭐, 돈 달라는 거냐?"
"잘 아는군. 하지만 갖고 있는 것은 모두 뱉어야 한다. 크큭."
산적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웃자 30여 명의 산적들이 모두 웃었다. 나는 웃는 우두머리한테 궁금한 것이 있어서 물어봤다.
"저 소년, 소녀는 왜 쫓아가는 거지?"
"그 녀석들? 어차피 지금쯤이면 잡혔겠지만, 우리들은 산적질만 하는게 아니라 사람도 팔거든."
"인신매매인가? 역시 세계는 달라도 악인이 하는 짓은 똑같구만."
"무슨 개소리지? 잡소리 하지 말고 쓴맛을 보기 전에 순순히 돈을 주는게 좋을 거야."
"돈? 주지. 하지만 용도는 노잣돈이다."
"노잣돈?"
"노잣돈이란 말을 모르나? 저승 가는 길에 사용하는 돈."
"뭔 개소리야?!"
우두머리는 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나는 마나를 불어넣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막아내었다. 우두머리와 나머지 산적들은 내가 손가락 하나로 주먹을 막아내자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이어서 손으로 망토를 걷어내었다.
"오,오크!"
"오크다!"
내 모습을 보자마자 산적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무기들을 나에게 휘둘렀다.
까까까깡!
하지만 나는 그저 실드 하나만으로 모든 무기들의 공격을 무효화시켰다. 수십 개의 무기와 실드가 부딪히면서 청량한 쇳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아무런 데미지도 받지 않고 있었다.
나는 힘들게 무기를 휘두르는 산적들을 바라보며 마법을 사용했다.
"그래비티. 10배 증가."
쿵!!
대기가 갑자기 울리는 소리와 함께 나를 중심으로 반경 50미터의 중력이 10배가 증가하였다. 중력이 갑자기 증가하자 무기들을 휘두르던 산적들은 모두 땅에 박혀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부들부들 떨면서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중력이 증가하면서 반경 50미터에 있던 열매와 나뭇가지, 새 등 반경 안에 있는 것들이 모두 땅에 떨어져 있었다.
"크윽...이,이 까짓거."
"아직은 쉽지? 그래비티. 30배 증가."
쾅!!
"커억!"
"크아아악!!"
중력을 30배로 올리자 뼈마디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면서 고통의 비명을 질러대는 인원들이 생겼다. 중력의 30배라면 인간이 차 하나를 등에 메고 있는 느낌과 비슷한 거였다. 우두머리도 얼굴이 빨개지고 이마에 핏줄이란 핏줄은 모두 솟아있었다.
"끄으으으..."
"아직도 살만하지? 그래비티. 50배 증가."
콰아앙!!
50배로 증가하자 나무가 땅에 박히기 시작하고 산적들의 몸도 땅에 점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인체가 중력을 버티지 못하고 해체당하는 장면은 내가 봐도 색다르다고 생각될 정도였고 이제는 중력에 폐가 버티지 못해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우두머리도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는데 그는 눈빛으로 나에게 얘기했다.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 하지만 나는 악인에게 자비가 없는 오크였다.
"당신은 살려달라고 하는 이들을 살려주었나? 안 봐도 알 것 같은데."
나의 말에 우두머리의 눈이 쉴 새 없이 흔들렸고 대답을 들은 나는 마법을 사용했다.
"잘 가라. 그래비티. 100배 증가."
쿠우우웅!!
중력이 100배 증가시키자 반경 50미터에 있던 땅들이 버티지 못하고 모두 폭삭 주저앉았다. 나는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서 공중에 떠 있었고 밑에는 나를 중심으로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 듯한 크레이터가 생긴 것을 볼 수 있었다. 크레이터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한 어둠이 깔려있어서 마치 심연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흐음...나머지 산적들도 이 소리를 들었을 것 같은데. 빨리 가봐야겠군."
나는 광범위 탐지마법을 사용해서 주위에 있는 생명체들을 모두 탐지했다. 탐지된 것 중 새, 사슴, 동물 등을 모두 제거하니 30명의 산적들과 소년, 소녀가 탐지되었다.
"거리는 대략 2km. 이 정도 거리라면 한번 해볼까?"
나는 딱 30개의 파이어볼을 만들어냈다. 30개의 파이어볼은 자신의 기세를 뿜어내며 내 주위에 등장했다. 나는 이어서 만들어낸 파이어볼을 탐지된 30명의 산적들을 향해 날릴 준비를 하였다.
"...간다."
내 손짓과 함께 공중에 떠 있던 30개의 파이어볼이 타겟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나는 탐지마법을 통해 파이어볼이 예상대로 상대를 향해 가는지 보고 있었다. 산적들은 땅이 무너지는 순간 울린 충격 때문인지 움직이지 않고 있었는데 파이어볼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막 급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놓칠 생각이 없어서 30개의 파이어볼을 유도탄처럼 그들을 따라가도록 조종했고 파이어볼의 속도는 산적들이 도망가는 속도 이상으로 빨랐기에 그들을 어김없이 타격했다. 30여 명의 산적들에게 파이어볼이 모두 완벽하게 들어갔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소년, 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소녀는 내가 내려오기 전에 소년을 끌어안고 떨고 있었는데 내가 앞에 나타나자 땅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소년 또한 떨고 있지만 소녀를 지키기 위해서 낡은 검으로 나를 향해 위협하고 있었다.
"오,오크!"
"살,살려 주세요!"
"우,우리도 죽일 셈이냐?!"
"죽인다고? 너희들을 구해줬는데?"
"우,우리를 구해줬다고?"
"그래. 쫓고 있던 산적들을 다 죽여줬잖아. 그들은 인간을 팔고 다니는 악인이라 들었는데 아닌가?"
"맞,맞다. 그런데 오크가 우리를 구할 이유는 없다."
"난 그저 너희들을 구할 생각은 없었어. 오히려 그냥 두려고 했지. 하지만 산적들이 날 귀찮게 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야."
나의 솔직한 말은 소년, 소녀들을 침착하게 만들어준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반말로 했던 소년이 갑자기 존댓말을 하며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그저 귀찮게 해서 다 죽인 겁니까?"
"귀찮을뿐더러 악인이니까 죽였지. 너희들은 왜 산적한테 쫓기고 있었던 거냐?"
"저,저희들은 산적 마을에 잡혀있었는데 기회를 봐서 도망치다가 걸려서 쫓기고 있었어요."
"그래? 그렇군. 그럼 난 이만 가보겠다."
"예?"
"뭐 할말 있냐?"
"저기...도와주시지 않는 겁니까?"
"내가 왜 도와줘야 하는 거지? 나는 악인은 아니지만 선인도 아니다. 내가 산적마을에 가서 그들을 무찌른다고 해도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지?"
"그,그건."
"말해봐. 내가 받아들일 만한 거래면 도와주지."
"돈,돈을 드릴게요."
"나 돈 많아."
"맛있는 음식을 드릴게요."
"음식도 많은데?"
"그,그러면 원하는 것이 있으세요?"
"흐음...그러면 저 여자애가 내 아내가 된다고 하면?"
"예?"
"예?"
내 말에 소년, 소녀 모두 놀랐다. 소년은 소녀의 앞을 가리며 안된다는 듯이 행동했지만 소녀는 소년의 팔을 내리고 앞으로 나와서 용기 있는 표정을 지어 얘기했다.
"예! 그렇다면 그러겠습니다."
"아레아!"
소년은 소녀에게 소리쳤다. 나는 소녀의 눈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후회는 없겠지?"
"예. 제가 해서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소녀의 눈을 보고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나는 소녀의 결심을 알 수 있었기에 거짓말은 그만하기로 했다.
"농담이야. 내 마을에는 엘프도 있다고. 그런데 너 같은 애가 눈이 들어오겠냐? 그냥 결심이 섰나 본 거라고."
"예? 그럼...어떤 걸로 보상을 해야."
"흐음...이런 것은 어떨까? 난 왕성으로 갈 예정이야. 그런데 내가 잘 때 불침번을 설 애들이 필요해. 짐꾼 역할도 필요하고. 그러니 너희들이 대신 그 역할을 한다는 조건은 어떠냐?"
솔직히 불침번과 짐꾼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히 받을 보상도 없고 이대로 가기도 뭐해서 그런 조건을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 조건으로 할게요."
"예! 부디!"
"알겠다. 거래는 성립했다. 산적 마을은 어디 있지?"
"저를 따라오시면 돼요."
"그보다 너희 이름이 뭐냐?"
"아! 제 이름은 워디슨이라고 합니다. 얘는 아레아라고 해요."
"아레아라고 해요. 저기..오크님의 이름은 어떻게 되세요?"
"나는 듀로크라고 한다. 이제부터 잘 부탁한다."
이렇게 워디슨과 아레아가 합류했고 다른 이와의 첫 여행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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