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왕국 건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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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왕국 건설(14)
와이번의 추격을 뿌리친지 일주일 동안 트이번과의 거리는 좀 더 가까워졌다. 와이번들의 추격을 뿌리쳤기 때문에 트이번을 재우지 않으면서 같이 이동했고 그동안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처치해 먹이로 주었다. 트이번은 은근히 에밀리와 베로나에게 인기가 있었고 다른 이들에게도 나쁘지 않게 다가와서 어느새 일행의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트이번과 함께 일행들이 일주일 동안 움직인 덕분에 두 번째 산맥의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베로나님. 여기는 와이번이 없습니까?"
"응. 이 산맥은 와이번들의 서식지가 아니야."
"그럼 아무것도 살지 않고 있는 겁니까?"
"몇십 년 전에는 몬스터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내가 이 산맥에 있을 때 이변이 있었지."
"이변입니까?"
"그래. 미라처럼 말라 죽은 몬스터들이 발견되었어. 건드렸을 때 재로 변할 정도로 바싹 말라 있었고 조사해보니 피가 한 방울도 없었지."
"피...말입니까?"
"피라고 했나?"
"그래. 피가 없었어.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나? 영감."
"신경 쓰이는게 있긴 있지. 클클클."
제네스는 베로나의 말을 듣고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그러고 보면 산맥 정상에서 마을이 보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매트님."
"예. 그렇다고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한 번 찾아보죠."
모리스는 산맥 정상에서 눈으로 주위를 샅샅히 훑어보았다. 소드마스터는 신체능력이 월등해서 일반인보다 시력도 좋고 시야도 멀리 보이기 때문에 마을을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기 있군요. 한 100여명이 살고 있는 마을로 보입니다. 지금 가시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지."
"좋아. 몬스터 숲의 마을이라. 기대되는구만."
"저도 기대돼요."
"그럼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키에엑!!"
트이번도 동의한다는 듯이 굉음을 질렀고 매트는 그런 트이번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마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나무로 지어진 오두막집이 삼십여 채가 있었다. 남녀가 서로 이야기를 하고 통나무를 자르며 사냥한 것을 손질하는 등 평범한 마을의 광경으로 보였다. 아니, 그렇게 보였었다.
"...뭐지?"
"그러게, 이런 선남선녀들은 처음인데?"
"이상하군."
"클클클. 그렇군. 그런 건가?"
마을에 있는 이들이 모두 선남선녀였다. 더구나 젊은이들밖에 없고 늙은 사람과 아이가 일체 보이지 않았다. 이런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마을이 있나 하며 의구심이 들고 있을 때 일행들을 향해 다가오는 인물이 있었다.
"어서 오십쇼. 약속을 지키셨군요."
"아, 안녕하십니까."
하루 전날, 산에서 사슴을 양보했던 여자가 매트에게 다가왔고 매트는 다시 멍하니 서 있었지만 저번보다는 빠르게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예. 오라고 해서 왔는데 저희는 어떤 것을 하면 됩니까?"
"그저 저희들의 마을에서 하루를 묶고 가시면 됩니다. 이렇게 숲속에서 살다 보니 외지인을 만나서 마을 밖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러니 저희들이 축제를 준비할테니 같이 즐겨주세요."
"예? 그래도 될런지요?"
"예. 부디 그래 주십쇼. 당신들이 온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기뻐서 벌써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대로 마을 사람들이 집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는 20대와 30대로 보이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100여 명이 모이자 귀가 짧은 엘프들의 마을로 보일 정도였다.
"자. 축제를 열겠습니다! 모두 술과 식량을 가져오세요!"
여자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술과 식량을 가져와서 축제를 벌일 준비를 하였다. 일행들은 갑작스럽게 흘러가는 일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서 어느새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어허허. 다 선남선녀여서 그런지 눈이 즐겁구만."
"그 말에는 동의하네."
"자자. 더 드시지요."
"아, 고맙네."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음식이 들어가고 술이 들어가자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초인들이여서 술에 취하는 것도 느렸지만 마을 사람들도 어지간히 주력이 강한지 끝까지 같이 마셨다. 축제가 거의 끝이 날 무렵 초인들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취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으윽...속이야."
매트는 취해서 누워있다가 속이 안 좋은 것을 느끼고 바닥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어느새 일행들은 물론 마을 사람들도 쓰러져 있었다. 매트는 속이 좋지 않아서 다른 곳에 가서 토를 하려고 했지만 이내 자신을 이끄는 손길을 느꼈다.
"속이 안 좋으십니까?"
"예...조금 좋지 않군요."
그녀는 바로 사슴을 나눠준 여자로 마을의 리더 같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매트는 그녀의 손길에 고마워하며 그녀의 도움을 선뜻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예...고맙습니다."
매트는 여자가 이끄는 대로 이동했고 여자는 비어 있는 오두막으로 이끌었다. 주변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매트는 경계심을 느끼지 않은 채 오두막으로 들어갔고 여자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문을 닫았다.
"저기...화장실이 어디 있습니까?"
"저를 보십쇼."
매트는 그녀의 말대로 얼굴을 향해 고개를 올렸다. 그런데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 매트는 몽롱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여자의 눈이 이상하게 보였다.
"당신은 이제부터 제 말을 듣습니다. 알겠습니까?"
"...무,무슨?"
"저의 눈을 보십쇼.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제 눈만을 바라보는 겁니다."
"....."
"자, 저의 눈을 보고 제 말을 듣습니다. 이제부터 제 말에 복종하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예."
여자의 눈은 점점 빨갛게 변하면서 매트를 쳐다보았고 매트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져갔다. 여자는 다시 한번 말을 걸어서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
"저에게 검을 주십쇼."
기사의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을 매트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술에 취하고 매혹 마법을 걸었는데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이야. 역시 마나가 많아서 그런가?"
여자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하다가 이내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오래간만의 인간의 피맛은 어떤지 봐볼까? 잘 먹겠습니다~"
여자는 입을 열고 이빨을 날카롭게 세우면서 매트의 목을 향해 이빨을 들이대었다. 하지만 이빨이 매트의 목에 닿으려고 할 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쩝. 좋을 때 누구지?"
여자는 아쉽다는 듯이 얘기하면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한 명의 남성이 서 있었고 그것을 본 여자는 눈을 찡그리며 얘기했다.
"무슨 일이야? 빨리 말하고 방해하지 말고 사라져."
"....."
"뭘 멍하니 서 있는 거야?"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남자는 마치 뻣뻣하게 굳은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이,이게 무슨?"
"클클클.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당신은?"
남성이 쓰러진 자리에서 숨어있던 제네스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는 제네스라고 하네. 마법 왕국 일루드의 왕 루키드의 친구지. 그리고 자네가 매혹한 매트라는 젊은이와 일행일세."
"...당신은 일부러 알고 들어온 건가?"
"자네들이 뱀파이어라는 것을?"
뱀파이어. 몬스터로 보기에는 힘들고 오크처럼 종족으로 보기에는 너무 숫자가 적어서 애매한 위치의 이들이였다. 뱀파이어의 특징은 송곳니가 뾰족하며 모두 외모가 뛰어나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법에 능숙하여 보통 4,5서클은 사용할 줄 아는 강한 이들이었고 그들은 상대의 피를 뽑아 먹으면서 사는 종족이었다.
"클클클. 매트와 에밀리가 선남선녀를 만났다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고 위화감을 느꼈다는 말에 느낌이 왔지. 분명히 매혹마법을 사용해서 그들의 피를 빨려고 하지 않았나?."
"....."
"근데 그들의 마법 내성이 생각보다 높아서 다음 기회에 노리려고 했고 그 고민 끝에 우리를 초대한 거고."
"잘 아는군."
"산맥에 생겼던 미라들도 너희들이 피를 다 빨아서 그랬겠지. 안 그런가?"
"설명 고맙군. 하지만 아직 궁금한게 있는데 왜 일부러 온 거지?"
"클클클. 뱀파이어란게 희귀할뿐더러 보기 힘든 종족이니 한번 보기 위해서지. 더구나 뱀파이어 피는 연구재료로 잘 사용되니까 말일세."
"당신, 최악이네."
"칭찬 고맙구만. 클클클."
여자는 파이어 플레임, 6서클 마법을 시전하여 제네스를 향해 공격했다. 화염의 불꽃이 위력을 뿜어내며 제네스한테 날아갔지만 제네스의 실드에 막혀서 이내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6서클 마법이라. 생각보다 좀 하는구만."
"키야악!!"
여자 뱀파이어는 이빨을 내밀고 제네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뱀파이어의 신체 능력은 상당히 높아서 마법사와 근접전을 하면 마법사를 때려눕히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제네스는 움직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
퍼억!
"키야악!!"
"어우. 이거 완전히 짐승일세. 상당한 힘인데?"
"이래 봬도 뱀파이어의 우두머리로 보이니 조심스럽게 다루게나."
어느새 제네스의 곁에 메스가 와서 여자 뱀파이어를 제압해 바닥에 눕혀두었다. 상당한 타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뱀파이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난리를 피고 있었다.
"밖의 상황은 어떤가?"
"예상대로 에밀리도 매트처럼 당할뻔한 것을 베로나가 구했고 나와 모리스가 대부분의 뱀파이어를 기절시켰다. 근데 영감, 왜 우리한테만 알려준 거야?"
"클클클. 완벽한 연기를 위해서는 내부부터 속여야 하는법. 미끼는 있어야겠지."
"어휴. 이럴 때 보면 영감은 참 무서워."
"칭찬 고맙구만. 클클클."
"그런데 기절시킨 뱀파이어들은 어떻게 할 거야? 솔직히 말하는데 우리 넷으로 상당히 버거웠잖아? 드래곤을 상대하기 위해서 준비한 마방 갑옷을 입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당했을 거야."
메스의 말대로 상당한 신체능력과 4,5서클에 해당하는 마법사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뱀파이어 100마리의 상대로 4명이서 상대하기는 조금 버거웠다. 더구나 기절시키는데 주력하여서 마법방어기능이 박혀있는 갑옷이 아니였으면 불가능한 일이였다.
"기절시킨 뱀파이어들을 어떻게 할지는 이 뱀파이어 아가씨에게 달려있지."
제네스의 말에 난리를 치던 여자 뱀파이어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만 위로 올리며 얘기했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얘기가 빨라서 좋군. 아가씨의 이름은 뭐지?"
"아르셰라고 한다."
"아르셰. 자네의 입장은 알고 있겠지?"
"뭘 원하는 거지?"
"클클클. 나는 희귀한 뱀파이어를 관찰하고 싶다네. 자네가 우리와 같이 다니면 좋겠군. 덤으로 피도 정기적으로 주면 좋겠고."
"...정말 그것뿐이냐?"
"내 맘 같아서는 모두 초토화시키고 납치해가고 싶지만 우리 일행에 그러지 말자고 부탁하는 자들이 있다 보니 말일세. 자네는 그들에게 고마워하게나."
"그러게 말이야. 한 명은 뱀파이어한테 당할 뻔했으면서 봐달라고 부탁하고 또 다른 한 명은 자신도 마을을 잃어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는데."
"그러기 전에 저 젊은이에게 걸었던 매혹 마법을 해체하게나."
"...알겠어."
여자 뱀파이어 아르셰는 제네스의 말에 따라서 매트에게 걸었던 매혹 마법을 해제했다. 마법이 해제당한 매트의 초점이 점차 잡혀지면서 매트는 주위를 둘러보고 얘기했다.
"저기...어떻게 된 일입니까?"
"자네는 여자 뱀파이어에 매혹당했었다네. 그 증거로 검도 뺏기지 않았나?"
매트는 제네스의 말대로 자신의 검이 검집에 있지 않고 바닥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생명과 같은 검을 뺏긴 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아무리 술을 마셨더라도 초인인 자신이 뱀파이어한테 매혹 마법을 당했다는 것이 치욕으로 느껴졌다.
"그랬었군요...정말 죄송합니다."
"신경 쓰지 말아.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원래 그러면서 배우는거 아니겠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괜찮은 겁니까?"
"에밀리도 너랑 같이 당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구했지. 그리고 남은 뱀파이어들은 모두 기절시켰고."
"그럼 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뱀파이어란 말입니까?"
"그랬던 거지."
"그럼...어떻게 하실 겁니까? 죽이실 겁니까?"
"네 생각은 어때? 죽이고 싶다면 말릴 수야 없겠지만."
"...모르겠습니다. 분한 마음도 있지만 일행들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은 영감의 주장대로 이 아르셰라는 뱀파이어를 인질로 납치한다는 거야. 이 뱀파이어를 납치하는 이유는 영감이 관찰을 하고 싶다는 것도 있고 다른 뱀파이어들이 우리를 추격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야."
"왜 죽이지 않는 겁니까?"
"에밀리가 반대하고 의외로 베로나도 반대해서 말이지. 인간과 비슷한 유사종족을 죽이는 것은 좀 그렇다고 했었나?"
"그렇군요. 대충 이해했습니다."
매트는 떨어져 있는 검을 다시 검집에 넣었다. 아르셰라는 뱀파이어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서 다니는 것이 아니니 그런 감정은 비추지 않기로 결심한 매트였다.
"그럼 지금 곧바로 출발하실 겁니까?"
"뱀파이어들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니까 빨리 떠나는게 좋을듯합니다."
"모리스님!"
어느새 모리스와 베로나, 에밀리 그리고 트이번이 와 있었다.
"에밀리 누나. 괜찮아요?"
"응. 너도 당했다는데 괜찮아?"
"키에엑."
"부끄럽지만 괜찮습니다. 트이번, 나는 괜찮아. 모리스님, 그럼 지금 바로 가는 겁니까?"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제네스님. 포박 마법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맡겨주게나. 바인드."
제네스는 속박마법인 바인드를 사용해서 아르셰를 묶고 이어서 메스가 아르셰를 어깨에 들고 뛰기 시작했다. 아르셰는 체념한 듯이 가만히 있었고 일행들은 모두 메스를 따라가면서 뱀파이어 마을에서 떠나갔다.
이렇게 초대하지 않은 뱀파이어, 아르셰가 일행에 합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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