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왕국 건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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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왕국 건설(13)
엘프의 왕국 밀런. 얼핏 보면 평화스러워 보였지만 실제 분위기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엘프들에게는 왕이 없는 대신 수십 명의 장로들이 있는데 그들이 다시 회의를 열고 의논을 하고 있었다.
"벌써 원정을 보낸 나르샤에게 소식이 없는지 몇 달이 되었습니다. 이건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는게 틀림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다른 이들을 보내서 소식을 알아 오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의견 있습니까?"
그때 한 명의 장로가 손을 들었다. 손을 든 자는 바로 나르샤의 아버지 타르시스였다.
"예. 말씀하십쇼."
"인원을 보내는데 불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인원에 저를 넣어주십쇼."
"장로를 그런 위험한 곳에 보낼 수는 없습니다."
"저는 7서클 마법사로 무력도 강한 편이고 무엇보다 제 딸인 나르샤가 소식이 없는 겁니다. 당신들은 딸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찾아가지 않을 겁니까?"
타르시스는 장로들을 향해 눈을 돌렸고 수십 명의 장로들은 타르시스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타르시스님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혼자 보낼 수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혼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후보군을 뽑겠습니다. 다들 생각이 있으시면 말씀하십쇼."
"저는 상급 정령사인 멜러스를 추천합니다."
"저는 소드마스터 중급인 바르스를 추천합니다."
"저도 멜러스를 추천합니다."
"저는 바르스를 추천합니다."
모든 장로들의 의견들을 들었지만 2명의 이름이 제일 많았다. 나르샤의 그림자 때문에 그들의 이름은 잘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도 대륙에 나간다면 강자로 속할 이들이었다.
"그럼 원정대는 타르시스님, 멜러스, 바르스로 정하겠습니다. 이견 있습니까?"
"없습니다."
"없습니다."
"그럼 원정대는 이렇게 정하고 임무는 나르샤의 확인과 더불어 전에 느껴졌던 마나의 원인 파악으로 하겠습니다. 타르시스님. 출발은 언제 하시겠습니까?"
"준비되는 대로 곧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멜러스와 바르스에게도 얘기해둘 테니 이번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타르시스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끝나서 조금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자신의 딸인 나르샤가 소식이 끊겼다는 것이 아직도 마음에 계속 걸리고 있었다. 나르샤는 대륙에서도 그 이상의 강자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한 초인이였다.
그런 딸이 소식이 없는 것은 드래곤에게 당했거나 잡혀있다고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타르시스는 딸을 보내기 전에 느꼈던 불안감이 이걸 뜻하고 있었던 것을 눈치채지 못해서 후회하고 있었다.
타르시스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내일부터 원정을 떠나기 위해 집에서 짐을 꾸리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타르시스는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문을 두드리는 것을 듣고 의아함을 느끼며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두 명의 남자 엘프가 서 있었다.
"너희들은?"
"안녕하십니까. 저는 멜러스라고 합니다."
"저는 바르스라고 합니다."
바르스와 멜러스는 엘프들 중에서 젊은이에 속하고 밀런 왕국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이다. 그들도 강자이지만 나르샤의 그림자에 묻혀서 입에 잘 오르지 않을 뿐이었다.
바르스는 소드 마스터이지만 검을 사용하기보다는 활을 주로 사용하는 엘프였다. 활과 화살에 마나를 불어넣어서 근접전도 활 자체를 휘두르며 싸우거나 화살촉을 사용하고 원거리에서는 그보다 강한 자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엘프들의 활 자체는 의식을 치른 나무를 사용하고 시위는 자신들의 머리카락을 꼬아서 만든다. 엘프들이 만든 활은 타종족의 활의 사거리보다 2배는 길 정도로 우수하다. 더구나 마나가 담긴 화살은 사거리와 파괴력을 더욱 증가시켜서 바르스는 1km 내에 있는 것은 모두 저격할 수 있을 정도였다.
멜러스는 물의 상급 정령사로 최상급 정령사를 눈앞에 둔 엘프였다. 최상급의 정령사는 엘프의 역사 속에서 단 5번이 나왔기에 기대를 받고 있는 멜러스였다.
"그래. 너희들이 이제부터 원정대에 가게 되었는데 불만은 없었니?"
"예. 저는 원래부터 밖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생기고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저도 타종족들을 보고 싶으니까요."
타르시스는 확실히 평화가 오래 지속됐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평화란 것이 피를 흘리고 쌓은 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젊은 애들을 뭐라고 할 수 없는 것도 이들은 전쟁이라는 것을 겪어보지 못했고 그저 왕국 안에서만 활동한 우물 안의 개구리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들에게는 밖으로 나가서 보고 겪는 것이 살이 되고 피가 되기에 적절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타르시스는 이들이 나르샤 때문에 비교당해서 콤플렉스 같은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나가서 자신들도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을 깨닫고 콤플렉스를 깼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구나. 그러면 원정을 갈 준비를 하렴."
"준비 다 하고 온 중입니다."
"저도 끝났습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라. 곧 준비를 끝내고 갈 테니."
타르시스는 집에서 간단한 짐을 챙긴 후에 두 명의 엘프를 이끌고 원정을 떠나게 되었다. 목표는 소식이 끊긴 오크 부족을 향해서.
작업을 끝내고 휴식을 취한지 2주일이 지났다. 2주일 동안 그란과 오크들은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클레아와 나르샤도 같은 입장이었다. 나는 이제 휴식도 충분히 취했으니 무슨 일을 해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쿠로딘에게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듀로크. 있는가?"
"어. 오랜만이네. 웬일이야?"
"후후후. 자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있네."
"설,설마?"
"그래! 목욕탕이 완성됐다!"
"당장 나가야지!"
나는 오크들에게 목욕을 시키기 전에 먼저 시험 입욕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쿠로딘과 드워프들, 그란을 데리고 목욕탕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클레아와 나르샤가 들어와서 나에게 물어봤다.
"오빠. 뭐하는 거에요?"
"그러게. 기분 좋아 보이는데?"
"크크크. 드디어 목욕탕이 완성됐다고. 이제 드디어 목욕을 하루에 두 번 할 수 있다!"
"이럴 때 보면 진짜 오빠는 오크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러게. 목욕 좋아하는 오크는 처음 듣는 것 같은데?"
"오빠와 같이 살 때 느낀 건데 오빠가 얼마나 깔끔 떠는줄 알아요? 웬만한 인간보다 훨씬 깔끔해요."
"확실히 너는 오크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것 같다."
언젠가는 내가 전생에 인간이였고 오크로 환생했다는 것을 말할 기회가 있을지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크크크.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넘겨 듣지. 너희들도 우리가 목욕 다 하고 나면 한번 해보라고. 나는 간다!"
나는 둘을 남기고 그란을 찾으러 갔다. 그란은 연무장에서 홀로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그란. 친위대는 어디 갔고 너 혼자 있어?"
"취익~ 애들 쉬라고 했다."
"그래? 그란. 나와 목욕탕 가자."
"취익~ 목욕탕?"
"그래. 목욕탕이 완성됐다고 하니까 나랑 같이 가자고."
"취익~ 잠깐, 기다려달라."
나는 텐션이 올라가서 기다려달라는 그란의 말을 무시하고 그란을 이끌며 목욕탕을 향해 달려갔다. 목욕탕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거대하여 전생에 있던 사우나를 수십 개를 모아놓은 것 같았다.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옷을 넣어놓는 옷장이 있어서 나는 옷을 벗고 목욕탕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이는 내부에 감동의 물결이 나를 부딪쳐왔다.
"이야아..."
수도꼭지가 달려있는 샤워기가 수백 개, 수천 개가 한 줄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그 옆에는 씻기 편하게 비누가 놓아있었다. 거기다가 수백 명은 들어가도 될 욕탕이 10개 이상 있었고 열탕뿐만 아니라 냉탕도 있었다. 열탕은 마나석을 사용해서 항상 같은 온도로 유지하게 되어있었고 인테리어는 드워프가 만들어서 그런지 더 이상 완벽하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어떤가? 듀로크."
쿠로딘과 드워프들은 벌써 옷을 벗고 들어와 있었다.
"내 상상보다 훨씬 완벽해. 이야~ 이거 너무 좋은데?"
"크하하하! 이렇게 좋아하니 고맙구만. 그럼 이제 들어가 보게나."
"취익! 이건 뭔가?!"
그때 그란이 옷을 다 벗고 들어왔다. 그란의 몸은 오크로 보기에 힘들 정도로 클뿐더러 완벽한 근육질 몸에 지금까지의 수련과 몬스터들과의 싸움으로 인한 잔흉터가 몸을 뒤덮고 있었다. 쿠로딘과 드워프들은 그란의 몸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야~ 그란 몸 좋은데?"
"취익~ 그런가? 고맙다."
"그럼 이제 씻어보자고."
나는 수도꼭지를 돌려보았다. 마법으로 데워진 뜨거운 물이 내려오면서 깔끔한 물과 비누질로 몸을 닦자 몸에 있는 때가 씻겨져 나가는 것처럼 청량감이 느껴졌다.
"시원하구만! 그렇지? 그란?"
"취익~ 이건 어떻게 사용하는 건가?"
그란은 수도꼭지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손으로 만지작거렸고 그 결과, 쇠로 만든 수도꼭지가 찌그러져 있었다.
"이건 위를 돌리면 물이 나오는 구조야."
"취익! 신기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비누를 물과 잘 조합해서 몸에 바르면 깨끗해지는 거야."
"취익~ 알겠다."
그란은 나의 말대로 비누를 사용해서 몸을 씻기 시작하였고 쿠로딘과 드워프들은 비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씻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전생에 사용했었던 비누와는 비교가 되지만 그래도 비누로 씻는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며 나는 몸을 씻었다.
그리고 나는 열탕에 몸을 담그면서 마지막으로 최고의 행복을 느꼈다.
"으아아아~ 시원하구나~"
"취익! 뜨겁다! 시원하지 않다!"
"원래 뜨거우면서 시원한 거야. 몸을 끝까지 담그고 천천히 즐겨보라고."
그란은 내 말을 듣고 몸을 푹 담갔다. 하지만 30초도 버티지 못하고 뜨겁다면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역시 오크는 목욕과는 맞지 않나? 아, 나중에는 때밀이도 만들어야지. 오크로 태어나서 한번도 때를 밀지 않았으니까."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그대로 몸의 긴장을 놔버렸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으음...어? 내가 잠이 들었었나?"
나는 깜빡 졸아버린 것을 눈치채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쿠로딘과 드워프들도 어느새 목욕을 마치고 갔는지 아무도 있지 않았다.
"그럼 나도 슬슬 나가볼..."
"와. 언니 이거 보세요. 엄청 큰 욕탕이 열 개는 넘게 있어요."
"그러게. 역시 드워프들이 만들기는 잘 만든단 말이야."
"인,인비저빌리티!"
나는 들려오는 소리에 순간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나의 최대속도로 투명마법을 나한테 걸었다. 오크로 살아가면서 이렇게 당황해본 적이 없다고 장담할 정도로 당황했다. 아니, 전생까지 합쳐서 일 수도 있었다.
'침,침착하자. 먼저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보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상황은 모두 목욕을 다했다고 생각한 두 명이 목욕을 하러 온 것 같았다. 나는 자다가 나갈 타이밍을 놓친 것이고.
'이거 걸리면 최소한 사망이다.'
나는 투명마법이 걸렸으니 조용히 움직이면서 나가기로 결정했다.
"언니. 이게 수도꼭지라는 건가 봐요."
"그래. 그 드워프가 돌리면 물이 나온다고 했지?"
클레아와 나르샤는 물을 틀고 목욕을 즐기기 시작했다. 나는 목욕에 정신이 팔렸을 때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움직였다. 하지만 나의 머리는 빨리 밖으로 나가라고 했지만 나의 몸은 조금 봐도 상관없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명령을 따르고 있지 않았다. 이내 점점 머리가 몸한테 지고 있는 것을 느끼며 발걸음은 두 명을 향해 다가갔다.
'그래. 조금만 봐도 되겠지? 내가 일부러 남아있던 것도 아니고.'
멀리서 봐도 전생의 연예인 뺨치는 몸매를 가진게 보이는 나르샤였다. 클레아도 슬슬 무르익고 있는 열매처럼 나쁘지 않은 몸매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가까이 보려고 점점 앞으로 갔다.
"누구냐!"
나르샤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고 클레아도 똑같이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설마 내가 보이나 싶어서 심장이 철렁했지만 이내 시선이 나한테 오지 않는 것을 보고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언니. 왜 그러세요?"
"뭔가 기척이 느껴진 것 같았는데...착각인가?"
"언니. 그보다 욕탕에 먼저 들어가보죠. 저렇게 큰 욕탕에 들어가는게 꿈만 같아요."
"그래. 그러자꾸나."
클레아와 나르샤가 얼음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나를 지나쳤다. 나는 그녀들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밖으로 나오려고 움직였고 동시에 흐르는 코피를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나는 코피가 나오는 것은 만화에서만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나오니 당황했다. 처음 보는 여자의 몸은 그만큼 충격인 모양이었다.
'내가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야. 너희들이 보여준 거지. 이 사실은 죽을 때까지 입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돼.'
이 사실이 밝혀진다면 아마 나르샤에게 산채로 회를 뜨게 된다고 생각하면서 상상해보았다. 순간 등에 식은땀이 흐르면서 오싹했지만 그와 동시에 아까 봤던 장면을 다시 회상하면서 옷을 입고 빠르게 튀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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