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왕국 건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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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왕국 건설(8)
트롤을 처리하고 이틀째 되는 날, 그동안 몬스터와 조우해서 싸우는 일은 없었다. 자짤한 몬스터들이 접근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날파리를 쫓듯이 검을 휘둘러서 순식간에 죽이는 것은 수에 세지도 않았다.
어느 때와 같이 노숙을 하면서 이번에는 베로나와 메스가 불침번을 서고 나머지 4명은 잠을 청하기로 하였다.
"하암~ 두 명이서 불침번을 서야 하는 이유가 있나? 한 명만 서도 될 것 같은데."
"그 말에는 찬성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미리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불침번은 정말 오래간만에 서는군. 그런데 당신 몇 살이야?"
"왜? 궁금하냐?"
"수인은 인간보다 2배는 산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당신도 사실은 겉보기와 달리 나이가 많은 거 아냐? 나랑 비슷하다던가."
"...당신 몇 살인데?"
"나? 나야 아직 창창한 52살이지."
"창창? 인간은 평균 60세에 사망하지 않냐?"
"그건 평범한 인간이고 나 같은 초인들은 100살은 기본으로 산다고. 저 영감만 해도 100살에 가까울걸?"
"저 영감이 그렇게나 나이가 많았냐?"
"그러는 당신은 몇 살인데?"
"...듣고 놀라지 말아라."
"어지간하면 안 놀래. 이래 봬도 기사단장이어서 웬만한 일은 간에 기별도 안 와."
"...81살이다."
"...그건 좀 충격이네."
수인의 81살이면 인간으로 치면 거의 40살로 보면 된다. 그런데 저렇게 젊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거 보면 역시 그녀도 초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쳇. 저 영감이 나보다 더 나이가 많다니. 이제부터라도 영감을 존중해줄까?"
"그러던지. 안 그래도 저번에 클린 마법을 걸어주면서 먼저 손을 내밀어준 걸 보고 얼마나 놀란 지 아냐? 그런 일은 영감 인생에 몇 번 없는 거라고."
"그런가? 그런데 당신. 영감과 모리스라는 자와 아는 사이야?"
"영감은 옛날에 만난 적이 있었지. 왕국 간의 교류가 있었을 때. 모리스는...이 이야기를 하려면 나의 과거를 얘기해야 하지."
"어차피 할 것도 없잖아? 불침번을 빠르게 서는 방법은 얘기를 하는 거라고."
"그러면 재미도 없는 나의 과거를 얘기해주지."
메스는 용병의 아들로 태어났다. 용병의 아들로 태어난 메스가 보고 자란 것은 싸우는 것이었다. 항상 아버지가 검을 들고 싸우고 오는 모습은 메스에게는 크나큰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메스는 어릴 때부터 검을 잡기 시작하여 자신의 아버지에게 배움을 받고 자랐다.
8살 때부터 검을 배우기 시작한 메스는 재능도 남달랐다. 15살 때 소드마스터 초급을 찍고 아버지의 실력을 추월하면서 그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용병의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20살 때 소드마스터 중급의 벽에 부딪히고 계속 그 벽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5년 후 메스가 25살 때 중급의 벽을 뚫는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지금의 용병왕 헤츠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헤츠도 그 당시 메스와 같은 상황으로 중급의 벽을 뚫지 못하고 있었고 그들이 만난 것은 서로 적대관계였을 때였다.
용병단과 용병단의 싸움에서는 강자들끼리 붙으면서 승부가 정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헤츠와 메스가 승부를 봐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들의 실력은 막상막하였기에 거의 반죽음이 될 때까지 싸워서 결국 무승부로 끝났고 1주일 동안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다쳤지만 그들이 얻은 것은 엄청났다.
바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덕분에 중급의 벽을 깨게 된 것이다. 용병에서 소드마스터 중급은 거의 볼 수 없는 케이스이였기에 시간이 지나서 모든 용병들은 헤츠의 수하로 가거나 메스의 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헤츠와 메스, 둘 중 1명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용병들은 2개의 파로 나뉘어서 서로 싸울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용병들은 물론 자신들에게도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메스는 35살이 되던 해, 헤츠에게 자신이 사라지겠다고 얘기하고 그대로 기사왕국 나이트로 갔다. 메스는 왕국에서 실력을 인정받아서 기사로 들어갔고 이어서 기사단장이 되었다.
"어때? 재밌지도 않고 그저 따분한 이야기지?"
"그럼 당신이 용병왕이 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 아닌가? 분하지 않나?"
"분하다고? 천만에. 나는 왕의 재목이 아니야. 그저 왕의 하인으로 족하는 인물이라고."
"흐음..그래?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나?"
"나도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을 거라고."
"마찬가지로 상관없다."
베로나는 몬스터의 숲에서 태어난 수인이다. 그녀는 고양이과 수인으로 몬스터의 숲 안쪽에서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그녀들의 종족, 수인은 몬스터의 숲에서도 강자에 속하여 비교적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흉포해지고 보기 흉할 정도로 이상하게 변해버린 변종 몬스터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변했다고?"
"그래. 역한 냄새를 풍기고 소름이 돋는 기운을 가지는 몬스터였어. 오우거, 트롤, 고블린 등 몬스터들의 본모습이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분명히 모습이 변한 변종 몬스터였어."
원래라면 수인들이 가볍게 이겼을 몬스터들도 모습이 변한 변종 몬스터들에게 밀리게 되었다. 변종 몬스터들에게 수인들은 용감하게 싸웠지만 소수만이 살아남고 마을을 잃고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소수의 수인만이 살아남았을 때 그들에게 나타난 것은 노예상인이었다.
"노예상인들은 기뻐했지. 수인들은 귀족들에게 인기 있는 상품이고 휘귀한 종들이니까. 그렇게 소수의 수인들만이 살아남았지만 그들도 노예상인들에게 팔려가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나는 운 좋게도 포마스에게 팔려갔지만 다른 이들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흐음...좋은 상인한테 들어가서 다행이네. 아니 왕인가? 근데 말이야...포마스라는 왕 진짜 좋은 사람이야?"
"...그건 왜 물어보지?"
"그냥. 난 말이야, 소드마스터 상급에 올라가면서 하나 얻은게 있어. 바로 엄청나게 민감해진 감각 덕분에 사람의 맥박속도, 눈의 떨림, 호흡의 거칠기를 통해서 상대의 감정을 대강은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야."
"...그래서?"
"아니 그저 그렇다는 거지."
"....."
"뭐, 힘이 필요하다면 말하라고. 나는 당신이 맘에 드는 편이니까."
"...알겠다. 새겨듣지."
메스와 베로나의 대화는 갑자기 멈추어서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모닥불이 타는 소리와 일행들이 잠자는 소리만이 주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시간이 지나가고 있을 때 메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얘기했다.
"슬슬 몸 좀 풀어볼까?"
"그 말에는 찬성한다."
"어이! 다들 일어나라고! 습격이다!"
메스의 말에 자고 있던 이들이 빠르게 전투 준비태세로 돌입했다. 트롤과 상대했던 것처럼 에밀리는 곧바로 불의 상급 정령을 사용해서 주위를 밝혔고 그로 인해 습격자의 모습이 보였다. 약 5미터의 크기에 달하고 갈색 피부를 가지며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나무 몽둥이를 가지고 있는 몬스터. 오우거였다. 오우거는 총 15마리 정도로 그들을 노리고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오우거라, 이 정도면 써는 맛이 있겠어. 먼저 간다!"
메스는 마나를 듬뿍 머금은 바스타드 소드를 한 손으로 들고 오우거를 향해 돌진했다. 오우거가 나무 몽둥이로 휘둘렀지만 초인인 메스의 입장에서는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메스는 나무 몽둥이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러서 오우거를 2등분 시켰다.
이어서 메스느 다가오는 오우거 2마리를 가볍게 죽이고 다음 상대를 향해 나아갔다. 베로나는 트롤들을 상대했던 것처럼 정확히 급소만을 향해 주먹과 발을 휘둘렀고 한방에 한 마리씩 죽이면서 쓰러트렸다. 그들 두 명이서 모두 처리할 것 같았기 때문에 남은 4명은 그저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상황이 변하는 일이 발생했다.
매트는 자신의 옆에 접근하는 이가 있는 것을 눈치채고 순간적으로 반응하여 발검하여 검을 휘둘렀다.
서걱.
"쿠에엑!!"
"뭐야? 이건."
검은색의 마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역겨운 기운을 풍기며 이 세상의 것이 아닌듯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오우거의 모습이 조금 남아있을 뿐 다른 것에서 오우거와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기형적인 여러 개의 눈과 손발,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살들, 양 옆구리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붙어있었다.
매트가 반응하여 마나를 불어넣은 검으로 베었기 때문에 나타난 몬스터는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몬스터는 죽지 않고 다시 매트에게 달려들었다. 매트는 좀 전에 위화감을 느꼈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어서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고 몬스터의 목을 베면서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단단해."
소드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는 철도 베어버릴 수 있다. 그런데 몬스터를 공격하면서 느껴지는 반발감이 상당했다. 지금도 목을 완벽하게 베지 못하고 절반만 날이 들어간 채 죽어있었다. 매트가 한 마리를 죽였지만 이어서 검은 마나를 보이는 몬스터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들의 생김새는 모두 달라서 다양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모여!"
모리스는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 것을 보고 한곳에 모이도록 얘기했다. 6명은 모두 등을 맞대고 서 있었고 검은 몬스터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베로나. 네가 말한 변종 몬스터가 저거 아니냐?"
"맞아. 그런데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내가 있던 마을은 여기서 한참 가야 하는데."
"클클클. 저들에게서 심상치 않는 마나가 느껴진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도 처음 느껴보는 마나다."
"정령들이 속삭이고 있어요. 저들은 이상해진 거라고."
"몬스터들의 벨 때 조심하십쇼. 철보다 강한 강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선 강행돌파밖에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네스님. 이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마법이 있습니까?"
"있다만 너희한테까지 피해를 줄 것 같구나. 누가 방어해주겠나?"
"제가 정령들을 통해서 방어막을 형성할게요."
"알겠다. 잘 부탁하네, 아가씨."
에밀리가 바람과 불의 정령을 통해서 방어막을 형성하였다. 6명의 주위를 바람과 불이 맴돌면서 하나의 구형 방어막을 만들었다. 희한하게도 바람과 불이 맴도는데도 뜨겁지 않고 바람에 영향을 받지도 않고 있었다.
"준비됐습니다."
"클클클. 알겠네. 나도 준비되었지. 블리자드."
8서클 마법인 블리자드가 사용되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쳐서 주위를 둘러쌓고 있는 몬스터들도, 주위에 있던 나무들과 땅, 풀등 모든 것이 극한의 한기를 버티지 못하고 얼어버렸다. 6명은 에밀리가 만든 방어막 덕분에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방어막이 좋구만. 8서클 마법까지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고 막다니."
"과찬입니다. 제네스님."
에밀리는 블리자드 마법이 끝난 것을 확인하고 방어막을 해제했다. 주위의 모든 것이 얼음으로 변해있어서 마치 얼음의 땅에 온 듯한 기분을 주고 있었다. 일행들은 모두 얼어버린 몬스터들을 보기 위해 가까이 갔다. 얼어버린 덕분에 박제를 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투명한 얼음에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이 몬스터는 대체 뭐지? 처음 보는데."
"베로나. 이 몬스터의 특징은 알고 있어?"
"이 변종 몬스터들은 다른 몬스터들보다 훨씬 강한 생명력과 단단한 갑피를 가지고 있어. 희안하게도 생김새가 똑같은 이들이 하나도 없지."
"흐음...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클클클. 분명 본적이 있는 것 같은데...검은 마나, 변종한 몬스터...기억이 안 나는군. 역시 나이가 들어서 건망증이 심해지나 보는군."
"제 생각을 말해드리겠습니다. 이 변종 몬스터는 상당히 강한 몬스터로 저희 같은 초인들이 아니면 잡기 힘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지금 저희의 임무는 오크 부족으로 가서 원인을 규명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그 임무를 끝내고 이 일에 대해서 의논하는 것은 어떠신지요?"
"나는 찬성. 어차피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있어 보이지 않으니까."
"나도 불만 없어. 맘 같으면 이 녀석들 다 찾아서 죽이고 싶지만 지금은 다른 임무가 있으니까."
"저도 상관없습니다."
"저도요."
"나도 동의하네. 난 나중에 돌아가서 서고를 한번 뒤져봐야겠네. 아마 원인을 알 수 있을 걸세."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만 이동하죠. 해가 벌써 올라오고 있습니다."
모리스의 말대로 동이 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행들은 모두 짐을 챙기면서 이동할 준비를 하였고 매트는 얼어있는 몬스터를 관찰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변종이 생길 수 있을까?"
움찔.
매트는 몬스터를 뻔히 쳐다보다가 얼어있던 몬스터가 순간적으로 움직인 것 같다 느낌을 받았다. 매트는 자신이 제대로 본 건지 확인하려고 얼음을 더 자세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때 모리스가 얘기했다.
"이만 이동하겠습니다."
이동하겠다는 말을 들은 매트는 그저 착각이겠지 하고 생각하며 얼어있는 몬스터를 두고 발을 이동했다. 하지만 원정대가 출발한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몬스터들이 얼려져 있던 얼음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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