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현자 오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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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현자 오크(3)
나는 회상을 끝내는 동안 내 앞에서 아직도 싸우고 있는 오크들을 보고 성질을 내며 얘기했다.
"모두 다 시끄러! 현자라고 모두 다 아는 줄 알아?! 난 신이 아니라고!"
"취칙! 현자란게 그런게 아닌가?"
"아니야!"
나는 오크들의 지능을 과대평가했다는 것을 느끼고 남아있던 오크들을 제치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자신을 따라오는 이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쉬며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괜히 현자란 별명이 생겨서 귀찮군.'
현자란게 무슨 만능 고민 상담사도 아니고 잡다한 고민과 궁금증을 다 받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현자라는 별명을 얻고 싶어서 얻은 것도 아니였다.
'나중에 현자란게 뭔지 가르쳐주든가 해야지. 원.'
그렇게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를 찾아오는 한 마리의 오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혹시 나를 뒤쫓아 온 오크인가 싶었지만 내 추측은 예상외로 빗나갔다.
"취칙! 현자 오크. 족장님이 부르십니다."
"족장이? 알겠다."
나는 나를 찾아온 오크의 말대로 족장의 집으로 찾아갔다. 족장의 집은 부족 내의 모든 집 중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족장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서 제일 큰 집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전생의 인간이었던 나의 관점으로 봤을 때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족장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얘기를 했다.
"듀로크입니다. 족장이 불러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취칙~ 들어와라."
나는 족장 듀로한의 말에 따라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집 안에는 듀로한과 예상 밖의 인물이 있었다.
"드워프입니까?"
"취칙~ 그렇다. 너의 부탁을 위해 다른 부족에서 데려왔다."
드워프. 오크보다 키가 작은 난쟁이 족이지만 대장장일의 일로 인해서 엄청난 근육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생김새와 다르게 그들이 만드는 작품들은 엄청나게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질 또한 최상급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반대로 그들의 기술력으로 인해서 드래곤들에게 보석을 만들라고 강요되기도 하고 타종족에게 노예로 잡혀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존심은 엄청나게 쎄서 다른 타종족의 노예로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일상다반사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데려온 드워프에게는 재갈과 밧줄로 몸을 묶고 있었다.
"교환은 역시 씨앗과 키우는 방법입니까?"
"취칙~ 그렇다. 우리 곡물이 다른 부족까지 유명해져 있었다. 거래는 쉽게 이루어졌다."
"그러면 혹시 다른 종족이 납치되어 있는 경우가 더 있습니까? 인간 혹은 엘프 같은."
"취칙~ 수백 개의 부족이니 찾으면 더 있을 것이다."
"그러면 씨앗과 방법을 통해서 그들을 데리고 올 수 있겠습니까? 저한테 생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희 부족을 더욱 강하고 풍요로워지게 해줄 겁니다."
"취칙! 그런가?! 듀로크, 네 말이라면 맞겠지. 네 말대로 부족의 오크들을 다른 부족에 보내겠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 드워프는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취칙! 알겠다. 네 마음대로 하도록."
나는 눈을 부라리고 있는 드워프를 데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데려갔다. 내 집은 다른 오크들이 나무로 대충 지은 집과 다르게 통나무로 만든 오두막으로 이루어져 있는 집이었다. 내가 데리고 온 드워프도 오두막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나는 드워프를 집 안에 놔두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내가 밖으로 나가서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가져온 것을 테이블에 두고 드워프를 의자에 앉혀놓으면서 묶고 있던 밧줄과 재갈을 풀어주었다.
드워프는 갑자기 자신을 묶고 있던 것을 모두 풀어주자 무슨 짓을 하는지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뭐하는 짓이지?"
"얘기는 나중에 하고 먼저 마시는게 어떤가?"
"마신다고? 무엇을?"
"바로 이거지."
나는 밖에서 가져가온 것을 들었다. 내가 가져온 것은 바로 쿠와 후를 통해서 빚은 술로 먹어본 결과 막걸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맛이었다. 드워프란 선천적으로 호통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술을 좋아한다고 들었기에 나는 미리 빚어두었던 술을 통해서 드워프의 호감을 높이기로 결정했다.
"자자. 먹으라고. 곡물을 통해서 빚은 술이니까."
나는 두 개의 나무잔에 빚은 술을 따르고 하나는 내 앞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드워프의 앞에 두었다. 이어서 나는 나의 잔을 들었고 드워프가 아직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길래 먼저 가볍게 한잔을 마셨다. 그러자 드워프도 이어서 자신의 잔을 들고 한 번에 잔을 들이켰다.
"역시 드워프군. 호탕하구만. 자. 이어서 한잔 더 먹어."
내가 이어서 술을 따라주자 드워프는 곧바로 원샷을 하고 그제야 말을 내뱉었다.
"크으...좋구만. 오랜만의 술이라 그런지 더욱 맛이 좋아. 혹시 안주 없나?"
"그럴 줄 알고 준비해놨지. 잠깐, 기다려봐."
나는 밖에서 굽고 있던 훈제 닭을 가지고 다시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먹음직스럽게 잘라준 다음에 드워프 앞에 두었다. 그러자 드워프는 게걸스럽게 닭고기를 뜯어냈다.
"천천히 먹으라고 꽤 많으니까."
"쩝쩝, 이게 얼마만의 제대로 된 고기인지 너는 모를 거다."
"하긴, 대접이 영 좋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어느 정도 식사와 술이 들어갔을 때 드워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자넨 일반 오크와 다르구만. 당근과 채찍을 잘 이용할 줄 알아."
"나 같은 오크가 있어야지 오크 평판도 좋아지지 않겠어?"
"큭. 하긴 그렇겠구만. 이제 잡담은 그만하고 본심을 꺼내지 그러나?"
"흠. 그럴까나? 나는 돌려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직설적으로 말하지. 우리 부족을 위해서 일해주겠나?"
"지금 오크를 위해서 일하라는 건가?"
"그렇게 열불내지 말아. 충분한 대가를 치러줄 예정이니까."
"대가란?"
"먼저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압류당했던 신분이 아닌 부족 내에서 자유로운 입장으로 바꿔줄 거다."
"그리고?"
"내가 알기론 드워프는 못 만드는 것이 없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나는 오히려 드워프를 자극해서 내가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해 유도하기로 했다.
"당연하지. 우리 드워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그래? 그럼 이런 것은 가능하냐?"
나는 나무판자에 긁어서 만든 도면을 보여주었다. 드워프는 그 도면을 자세히 본 후에 엄청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자,자네. 이 도면은 어떻게 만든 건가?!"
내가 보여준 도면은 바로 권총에 대한 도면이었다. 전생에 보급계였던 나는 권총을 항상 관리해봤기 때문에 권총의 내부 구조를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때? 가능하겠나?"
"자신 있게 얘기하고 말하긴 미안하지만 나 혼자서는 불가능하네. 장비도 없을뿐더러. 하지만 우리 드워프 왕국의 장비와 인원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네!"
"흠..그래? 이런 생각지도 못한 것을 만들면 어떤 기분일까?"
꿀꺽.
드워프의 탐욕스러운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 드워프들에게 새로운 것을 만드는 욕구는 거의 인간의 3대 욕구와 같은 것이었다.
"거기다 나는 이런 새로운 도면이 수십 개가 있어."
"수,수십 개!"
전생에 당연하게 존재했던 것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수십 개는 기본적으로 넘을 수 있었다. 나는 드워프가 마지막 말에 내가 유도했던 대로 넘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이! 좋다! 계약은 성립됐다! 하지만 한 가지의 부탁을 들어줘라!"
"좋다. 뭐지?"
"나는 드래곤 산맥에서 광물을 채취하다가 오크들에게 붙잡힌 거다. 그래서 나중에 때가 된다면 나와 같이 드래곤 산맥에 들어가서 광물을 채취하는데 도와다오."
"무조건 약속은 할 수 없지만 최대한 도와주겠다. 그런데 무슨 광물이지?"
"미스릴이다."
미스릴. 마법을 담글 수 있는 광물. 황금보다 몇십 배는 더 비싸다고 하는 광물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좋아. 그런데 당신은 이름은 뭐지?"
"이거, 지금까지 이름도 얘기하지 않았군. 내 이름은 쿠로딘이라고 한다."
"내 이름은 듀로크다. 계약이 성립됐다는 축하로 건배하지 않겠나?"
"건배? 그게 뭐지?"
"서로의 술잔을 부딪치면서 한 번에 마시는 것이다."
"크하하하. 그거 하나 좋은 술 문화군. 그럼 이제부터 잘 부탁하겠네! 건배!"
"건배."
이렇게 드워프, 쿠로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쿠로딘이 합류한지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나는 드디어 2서클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2서클 마법을 한번 사용하면 허덕거리지만 1서클의 마법은 3번 정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6개월 동안 드워프 3명을 더 합류시켰다. 드워프 3명은 쿠로딘의 주장과 의견으로 인해서 쿠로딘보다 훨씬 쉽게 합류했다. 드워프가 4명으로 늘어나게 되자 나는 내 집 옆에 작업장 및 생활터를 만들어서 그곳에서 생활하도록 배려해줬고 그 결과 6개월 동안 쿠로딘은 총 3개의 갑옷을 만들었다.
전생의 나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엄청나게 뛰어난 갑옷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갑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는 족장에게 부탁하여 부족원을 데리고 몬스터의 숲에 들어가서 쿠로딘의 주도하에 구할 수 있었다.
나는 만들어진 갑옷 3개를 족장과 그란 그리고 내가 착용하기로 결정했고 멀리서 보니 소, 중, 대의 크기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어서 만들어진 갑옷을 족장에게 보여주자 족장은 입을 떡하니 벌리며 너무나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취칙! 이,이게 대체 뭔가?"
"드워프들이 만든 갑옷입니다. 어떠신지요?"
"취칙! 정,정말 놀랍군. 드워프의 기술이 이 정도 일 줄이야. 대체 어떻게 드워프들을 구슬린 건가?"
"그건 비밀입니다. 결과만 나오면 되잖아요?"
"취칙~ 맞는 말이다."
"그런데 다른 종족은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취칙~ 다른 부족까지의 거리도 거리일뿐더러 드워프들은 광물 때문에 많이 보이는 편이지만 인간과 엘프는 영 보기 힘들다."
"그렇군요. 혹시 또 온다면 부탁하겠습니다."
"취칙! 당연한 말이다."
나는 족장과의 이야기를 끝낸 후에 이번에는 그란에게 갑옷을 들고 갔다. 그란은 갑옷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다가 자신에게 준다는 말에 기쁜 나머지 나를 힘껏 끌어안았고 그 덕분에 나는 순간 죽음의 문턱에 발을 얹고 왔었다.
그 다음에 겨우 그란을 진정시키고 그란에게 갑옷을 입히자 오우거도 때려잡을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취익! 고맙다! 역시 내 친구다!"
"뭘. 친구라면 당연한 일이지. 아, 그리고 너 왕이 될 생각 없냐?"
"취익~ 왕? 왕이 뭔가?"
오크들에게는 왕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나는 왕에 대한 개념부터 먼저 가르쳐주기로 하였다.
"우리 부족에서 제일 강한 오크가 족장이잖아? 그 부족들을 모두 합쳐서 만들면 왕국이 되지. 그 왕국에서 제일 센 자가 왕이야."
"취익~ 결국 모든 부족 중 제일 강한 자가 왕이라는 말인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취익~ 나야 그렇게 되면 좋지만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뭔가?"
"응? 그게 다른 종족들은 왕국이 있거든. 그런데 왜 오크는 왕국이 없나 하고 생각해봤어. 그것은 압도적으로 강한 오크가 없기 때문이야."
"취익~ 그렇군."
"그런데 이번에 씨앗으로 인해서 식량 걱정도 사라지고 드워프로 인해서 시설과 장비 모두 좋아질 거란 말이지? 그것도 우리 부족이 제일. 그래서 요새 생각하는 건데 오크 왕국을 세워보면 어떨까 싶어서."
"취익~ 나는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네가 왕이 되지 않으려는 거지?"
"그야 귀찮잖아. 나는 여유 있게 사는 것을 원하지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거든. 그래서 너를 왕으로 만들까 싶어서."
"취익~ 그렇다고 해도 나는 아직 제일 강하지 않다."
"그래서 너에게 하나를 가르쳐주려고 해. 바로 마나를 느끼는 방법이지."
내가 책을 통해서 배운 마나 호흡법은 기사도 처음에 배우는 호흡법과 같은 것이었다. 뿌리는 같고 나아가는 방향만 다를 뿐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그란과 같이 지내보면서 느낀 바로 그란은 전사에 재능이 있어 보였다. 아마 마나 호흡법을 가르쳐준다면 무기에 마나를 담는 법을 알아서 터득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오크를 통틀어서 마나를 다루는 이는 거의 한 손에 꼽을 정도였기에 그란이라면 충분히 해낼 거라고 단언했다.
"취익~ 마나가 무엇인가?"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자연의 기라고 하는데...그냥 간단하게 말하자면 마나를 다루면 강해진다."
"취익! 그런가? 그렇다면 부탁하겠다!"
"우선 가르쳐주겠는데 이 사실은 비밀로 해야 해."
"취익~ 왜 비밀로 해야 하지?"
"실은 나 마법을 배웠거든."
"취익! 그런가?!"
"그리고 다들 가르쳐달라고 달라붙으면 귀찮으니까."
"취익~ 알겠다. 전사의 이름으로써 약속하겠다."
그렇게 그란에게 많은 노력 끝에 마나 호흡법을 가르쳐주는데 성공했고 그 후에 나는 그란과 함께 집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허둥지둥거리는 한 마리의 오크가 우리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취이익~ 그란. 현자 오크. 비상사태다!"
"무슨 일인데?"
"미노타우로스가 나타났다!"
미노타우로스. 인간의 몸에 황소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몬스터이다. 크기는 대략 3미터 이상으로 오우거보다는 약하지만 오크 10마리와 싸워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한 몬스터였다.
"미노타우로스? 몇 마리인데?"
"취칙~ 확인된 것은 1마리이다. 하지만 숲에서 3명이 당했다."
"흐음..."
보통 숲에 상위 종족이 나타나는 경우 토벌을 하러 가거나 사라질 때까지 접근을 안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미노타우로스의 뿔이 갖고 싶었기 때문에 토벌을 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나는 한가지의 묘안을 떠올렸다.
"그란. 미노타우로스 사냥하지 않을래?"
"취익~ 전에는 힘들었지만 이 갑옷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
"어이. 너 이름이 뭐냐?"
나는 나와 그란에게 소식을 전해러 온 오크에게 물어봤다.
"취이익~ 내 이름은 스롬이다."
"스롬. 우리와 함께 미노타우로스 사냥 안 할래?"
"취이익! 미노타우로스 세다! 우리들로 무리다!"
"나는 현자 오크야. 내 말을 믿어봐."
"취이익..."
"그리고 우리들로만 미노타우로스를 사냥한다면 유명해진다고?"
"취이익~ 알겠다. 현자 믿어보겠다."
이렇게 그란과 나 그리고 미끼 역할인 스롬이 미노타우로스 사냥을 하러 갔다.
"취이익~ 이건 미친 짓이다!"
"나를 믿어봐. 나는 현자잖아?"
"취이익..."
나는 나의 작전을 스롬과 그란에게 얘기했고 스롬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반대했다. 하지만 현자라는 말에 스롬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고 이럴 때는 현자 오크라는 별명과 오크가 지능이 낮은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자, 나를 믿어. 우리는 작업을 하고 있을 테니. 너는 그저 유인만 하면 돼."
"취이익...알겠다. 현자 오크 믿어보겠다."
"역시 우리 부족의 오크야. 당연히 그래야지."
"취이익?"
"이번걸 성공하면 너는 유명해질 거야. 암컷 오크들도 붙어 다닐걸?"
"취이익! 무조건 성공하겠다!"
스롬은 자신 있게 소리치며 숲의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역시 오크는 오크다 하고 생각하며 그란에게 얘기했다.
"좋아. 미끼는 갔으니까 작업을 시작하자."
"취익! 알겠다."
스롬은 미노타우로스가 출몰했다는 지점으로 조용히 이동했다. 주위에 혈향이 물씬 풍기는 것을 맡으며 조금씩 몸이 움츠러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암컷 오크들이 자신을 반기는 장면을 상상하며 용기 내서 몸을 움직였다.
툭.
"취이익?"
스롬은 발에 뭔가 걸리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내렸다. 그곳에는 바로 살이 깔끔하게 뜯긴 오크의 머리 해골이 있었다.
"취이익!!"
스롬은 놀란 나머지 발을 헛디디어서 땅에 쓰러졌다. 그러자 풀에 가려져 있었던 오크들의 시체들이 주위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스롬은 그 시체들을 보고 자신이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을 이끌고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쿠어어어!!"
"취이익!!"
스롬은 미노타우로스의 함성을 듣고 모든 힘을 다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 뒤를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구의 미노타우로스가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쾅! 우지끈!
미노타우로스는 들고 있는 도끼로 걸리적거리는 것은 모두 베어버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스롬은 자신의 허리 두께와 비슷한 나무가 한방에 잘리는 것을 보며 안색이 파리해졌다. 자신이 이렇게 멀리 왔나 싶을 정도로 길게 느껴졌고 지금까지 살아왔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크어어어!!"
미노타우로스는 쥐새끼같이 잘 빠져나가는 오크 한 마리에 화가 나서 함성을 질렀다. 스롬은 함성을 들으면서 아직도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며 이제 거의 다 왔다는 것을 눈치챘다. 스롬은 작전대로 언덕에서 경사진 내리막길을 향해 내려갔고 따라오던 미노타우로스도 똑같이 내리막길을 향해 발을 디디었다.
나는 멀리서 들리는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성으로 인해 미노타우로스가 거의 접근을 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어서 나는 스롬이 내리막길에 발을 디디고 미노타우로스도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이다!"
스롬이 나의 말에 맞혀서 내리막길에서 옆으로 몸을 날렸고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마법을 시전했다.
"그리스!"
그리스는 표면의 마찰력을 줄여서 미끄러지게 하는 마법이다. 보조계열 마법인 1서클로 지금의 나도 3번은 시전할 수 있는 쉬운 마법이다. 하지만 그런 마법도 사용하기에 따라 천차만별의 효과를 나타낸다.
그리스로 인해 미노타우로스는 발이 미끄러지면서 넘어졌다. 내리막길이면서 거구의 몸으로 인한 관성 때문에 미노타우로스는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밑으로 굴러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미노타우로스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와 그란이 작업한 곳으로 곧장 굴러갔다.
콰앙!!
미노타우로스가 땅에 푹 꺼지면서 사라져 들어갔다. 나와 그란은 내리막길이 끝나는 지점에 땅을 파둔 후에 뾰족한 말뚝을 수십 개 박아놓았고 그 위에 보이지 않게 위장을 해두었다. 그리고 나의 예상대로 미노타우로스는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한 채 만들어놓은 함정으로 들어갔고 그 결과 미노타우로스는 몸에 수십 개의 말뚝이 박힌 채 죽어있었다.
"좋아! 잡았다!"
"취익! 대단하다! 미노타우로스 잡았다!"
"역시 머리가 좋으면 몸이 고생을 안 하지."
"취익! 역시 현자다!"
"취이익~ 겨우 살았다."
나와 그란이 미노타우로스를 잡은 것에 기뻐하는 사이에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스롬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우리 셋이서 미노타우로스를 잡았어. 이제 너는 유명해질 거야."
"취이익~ 그런가? 기쁘다!"
"흐음...그러면 이제 이거를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미노타우로스를 부족으로 가져가는 것에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쿠어어어!!"
멀리서 하나의 미노타우로스의 함성이 들려왔다. 인간의 탐욕이란 끝이 없다고 하던가. 아니 지금은 오크인가? 하여튼 나는 미소를 지으며 스롬을 쳐다보았다.
"한 마리 더 있네?"
스롬의 안색은 초록색이 아닌 파란색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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