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0화 (400/402)
  • 저 아저씨는 틀렸네.

    함께시민당의 행보는 연일 파격적이었다. 적극적인 당 홍보를 위해 지도부는 물론이고 당원 한 명 한 명이 두 발로 직접 뛰어다녔다. 또한, 온라인을 통한 홍보는 젊은 층을 강타했다. 그런 당의 노력은 강우가 가진 인지도와 인기와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다.

    -함께시민당은 오늘 전국민정책 발표회를 열고 중앙당사에 시민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함께시민당의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한 정책 수렴 창구는 젊은 층의 폭발적인 관심을….-

    뉴스에서는 연신 함께시민당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오늘 박강우 함께시민당 부대표는 부산을 방문해….-

    강우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역구 출마 후보들을 직접 만났다. 강우가 직접 만나는 사람이 곧 지역구 출마 후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강우가 직접 뽑는 후보들의 면면도 충격적이었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은 기본이었고, 인지도가 전혀 없는 사람도 많았다.

    -오늘은 정치 평론가이신 박해인 여의도 정치연구소 소장님을 모시고 함께시민당의 지역구 출마 후보들에 대한 평가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해인 소장님.-

    -네, 안녕하십니까. 박해인 소장입니다.-

    -함께시민당의 박강우 부대표의 행보가 연일 충격적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지역구 출마 후보들의 영입을 직접 담당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영입된 후보들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함께시민당은 기존의 정치 틀을 깨겠다는 슬로건을 걸고 활동 중입니다. 그런데 당의 구성을 보면 당 대표인 강정후 대표는 물론이고 정치 경험이 전혀 없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지역구 출마 후보들의 면모를 보면 약간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기존의 많은 정치학자와 평론가들은 현역 의원이 없는 함께시민당의 장래가 어둡다고 평가했었다. 정치 경험이 없는 신생 정당의 행보라며 코웃음을 치는 정치인들도 많았다. 대부분 정치인과 관계자들은 강우의 인기를 등에 업은 초반 돌풍일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강우는 묵묵히 행보를 이어나갔다.

    -함께시민당의 약진.-

    -함께시민당의 지지율 변화가 심상치 않다.-

    그런 강우의 행보는 점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강우가 영입한 후보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며 큰 지지를 끌어냈다. 강우는 처음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하며 밝혔던 약속을 지켜냈다. 함께시민당의 지역구 후보들은 기존의 정당 후보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곧 시민이었고, 익숙한 이웃이었다. 누구보다 시민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총선을 앞둔 2012년에 접어들었다.

    * * *

    거실에 강우와 수호가 앉아있었다. 초등학생이 된 수호는 눈을 반짝이며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뉴스에서는 선거에 관한 이야기로 뜨거웠다.

    -이번 총선은 기존의 양당 경쟁 구도를 벗어나 3개의 당이 경쟁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함께시민당의 지지율이 높은 만큼 정치판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이라 봅니다.-

    -저는 소장님과 생각이 다릅니다. 새로운 정치에 목마른 시민들의 열의는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 정치라는 것은 익숙한 것으로의 회귀라고 봅니다. 막상 투표 당일에는 기존에 있는 거대정당의 후보들에게 표가 몰릴 것이라고 봅니다.-

    정치 평론가들의 의견도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비관 일색이던 여론을 벗어나 함께시민당의 선전을 예상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물론, 여전히 부정적인 사람들도 존재했다. 아니 함께시민당의 선전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이라고 봐야 했다.

    “저 아저씨는 틀렸네. 우리 아빠가 이길 건데.”

    수호가 함께시민당이 질 것이라 하는 평론가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빠가 질 것이라는 말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나 보다. 강우는 그런 수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수호야, 사람은 누구나 생각이 다를 수 있어. 나랑 생각이 다르다고 비난하는 건 좋지 않아.”

    “네, 아빠.”

    대답은 했지만, 수호의 얼굴은 뾰로통해 있었다. 수호에게 강우는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고 멋있는 아빠였다. 그런 아빠가 질 것이라는 말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수호야, 걱정하지 마. 아빠는 꼭 이겨.”

    “그렇지? 우리 아빠가 캡이니까!”

    수호가 씩 웃으며 콧잔등을 훔쳤다. 그때, 안방에서 이나은이 나왔다. 수호가 이나은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민이는요?”

    “막 잠들었어.”

    수호가 잔뜩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물었다.

    “수민이 보러 가도 돼요?”

    “응, 대신에 아기 안 깨게 조심해.”

    “네!”

    수호가 아기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지난 2년 사이 강우 가족에게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 바로 이나은이 둘째를 출산한 것이었다. 둘째는 강우의 간절한 바람대로 여자아이였다. 딸을 얻은 강우는 세상을 다 가진 남자라며 즐거워했다.

    “수호는 수민이가 그렇게 좋은가 봐.”

    강우가 아기방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매일 동생 만들어 달라고 노래를 불렀잖아.”

    “자식….”

    본인이 원한 동생인 만큼 수호는 수민이를 정말 예뻐했다. 기저귀를 갈아주겠다고 나서는 건 다반사였고, 목욕도 시키겠다고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민이가 신생아일 때는 맡길 수 없었지만. 이제 두 돌이 되어 가는 만큼 수호는 육아에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특히 강우가 선거 준비로 바쁜 요즘은 더욱더 그랬다.

    “이제 다음 달부터지?”

    이나은이 뉴스를 보며 물었다. 다음 달인 3월 29일부터는 본격적인 선거전에 시작됐다. 강우가 눈을 빛냈다.

    “응, 선거 유세 시작하면 당분간 진짜 바쁠 거야.”

    “우리는 걱정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이나은이 강우를 응원해 주었다. 선거 유세가 시작되면 강우는 전국을 돌며 지원 유세를 펼칠 예정이었다. 물론, 강우도 지역구인 강남구에 출마한 상태였다. 하지만 강우의 지지율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아…. 당분간 엄마가 집에 자주 오신다고 했어.”

    “나 혼자도 괜찮은데….”

    강우가 정치에 뛰어든 이후 강우 가족에게도 작지 않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전과는 다른 관심과 시선이 강우 가족에게 쏟아졌다. 가족들은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하며 언행도 더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했다.

    “아니야. 한동안 진짜 나 집에 못 올 수도 있어.”

    강우는 그런 가족들에게 참 미안했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상황에서 가족들은 절제된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늘 강우를 응원하고 힘을 실어 주었다.

    “그래도 괜찮은데….”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이번 선거 유세에 네가 좀 활약을 해줘야 할 거 같기도 하고….”

    “아~ 그런 거구나.”

    이나은이 육아를 위해 잠정은퇴한 상황이었지만, 그 인기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육아에 힘쓰는 이나은의 일상을 SNS에 올리며 더욱더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SNS에 올라오는 수호도 엄청난 인기스타였다. 물론, 아직 본인은 몰랐지만 말이다.

    “괜찮겠어?”

    강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나은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고개를 끄덕했다.

    “당연하지! 내가 도울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이나은이 오랜만에 의지를 불살랐다. 강우가 그런 이나은을 보며 헤벌쭉 웃었다. 아이를 둘이나 낳았지만, 이나은의 미모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보는 사람이 설렐 정도로 말이다.

    “고마워. 여보가 도와주면 진짜 큰 도움이 될 거야.”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이나은이 강우를 포근히 안아주었다.

    * * *

    한편 아기방에서는 수호가 턱을 괴고 수민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수민이를 바라보며 수호는 행복함에 빠져있었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기다란 속눈썹. 눈처럼 하얀 피부까지. 수민이는 이나은을 닮아 정말 예뻤다.

    “수민아, 오빠 말 들리지?”

    수호가 작은 목소리로 수민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아기인 수민이었지만, 분명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거로 생각했다. 자신 역시 아기인 시절 강우와 이나은의 말을 알아들었으니 말이다. 물론, 강우와 이나은에게는 밝히지 않은 사실이었다.

    꿈틀-

    수호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잠든 수민이가 팔을 살짝 꿈틀거렸다. 수호는 그런 수민이가 귀여운지 활짝 웃었다. 그러더니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수민아, 아빠가 다음 달에 선거에 나간대. 엄청나게 큰 선거인데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뽑는 일이래. 오빠도 얼마 전에 반장 선거 나가봤는데 조금 긴장되더라고. 아빠는 얼마나 긴장이 될까?”

    수호가 강우를 떠올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들이 그러는데 거기서 뽑히는 사람들은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막상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지는 않는대. 오빠가 옛날이야기에서 봤는데 일하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던 사또 같은 걸까?”

    수호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정치라는 것은 아직 어린 수호에게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음…. 왜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사또들도 그렇고 지금 있는 정치인 아저씨들도 그렇고 사람들을 위해서는 일하지 않는 걸까? 우리 아빠는 정치인도 아닌데 진짜 많은 사람을 돕고 있거든?”

    수호가 자기 생각을 쏟아냈다. 강우나 이나은에게 말하지 못할 또래(?)와 가능한 이야기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수호가 슬쩍 수민이를 살폈다. 수호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곤히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아빠라면 분명히 잘 해낼 거야. 삼촌이 그러는데 우리 아빠는 지금껏 실패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그랬거든. 그러니까 우리 아빠가 이길 거야. 아빠가 이기고 나면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실 거고. 우리 아빠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 수민이도 아무 걱정하지 말고 빨리 커. 그래야 오빠랑 놀지. 알겠지?”

    말을 마친 수호가 수민이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혹시 수호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잠들었던 수민이가 스르륵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는 수호가 환하게 웃었다.

    “수호야.”

    그때, 아기 방문이 열리고 강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호가 고개를 돌려 강우를 바라보았다.

    “네, 아빠.”

    “뭐 하고 있어?”

    강우가 조심히 문을 닫고는 아기방으로 들어왔다. 아기침대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있는 수호의 모습에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수민이랑 이야기 좀 했어요.”

    “수민이랑?”

    강우가 씩 웃었다.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그러는데요. 아기 때부터 목소리를 많이 들려줘야. 나중에도 나랑 친하게 지낼 수 있대요. 그래서 목소리 들려주고 있었어요.”

    “착하다.”

    강우가 수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수호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강우가 잠든 수민이를 바라보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모습에 정말 행복했다. 강우가 수호를 바라보았다.

    “수호야.”

    “네, 아빠.”

    “아빠가 당분간 엄청 바쁠 거야. 그리고 엄마도. 그동안 우리 수호가 수민이 잘 지켜 줄 수 있지?”

    강우의 말에 수호의 얼굴에 강한 책임감이 떠올랐다.

    “네, 당연하죠. 제가 수민이 잘 볼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고마워 우리 아들.”

    강우가 수호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항상 자주 해주던 말을 꺼냈다.

    “우리 수호 아빠가 많이 사랑한다.”

    “네, 저도 사랑해요. 아빠.”

    수호가 작은 팔을 벌려 강우를 안아주었다. 그 손길에 강우가 힘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수호와 수민이를 위해서라도 아니 한국에 있는 수많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좋은 나라, 강한 나라 그리고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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