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7화 (397/402)
  • 잠룡이 깨어났다.

    덜컥.

    기자회견장 문이 열리고 강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그동안 여러 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냈던 강우였다. 하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달랐다. 마치 전장에 나서는 장수 같은 묵직한 기운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박강우입니다.”

    강우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강우의 육성이 넓은 기자회견장을 가득 채웠다. 강우의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 있었다.

    “......”

    “......”

    강우의 인사에 기자회견장에 있는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늘 자신을 소개하던 기업인으로서의 호칭이 빠져있었다. 그 사실은 이제 강우가 이전의 모든 직책을 완벽히 내려놓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펑- 퍼펑-

    얼어있던 기자들의 사진기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강우의 첫걸음을 담기 위해 바쁘게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플래시 세례가 지나갔다. 강우가 마이크 앞에 섰다.

    -먼저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국민 여러분들에게 제가 정치를 시작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동안 저와 제 가족 그리고 동양 그룹을 사랑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강우가 다시 한번 기자회견을 보고 있을 국민을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제부터 정치의 길을 걷는 제게 주실 국민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이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더 엄중하고 더 엄격한 잣대로 저를 평가해주실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정치의 길을 택한 것은 단 하나의 목표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강우가 잠시 말을 멈추고 기자회견장을 쓱 둘러보았다. 강우에게서 강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와 생중계로 담아내고 있는 카메라 너머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생중계로 보고 있는 많은 국민에게 강하게 전해졌다.

    -저는 꿈꿔오던 것이 있었습니다.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고, 내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는 정당하고 올바른 길로 그 목표를 이루어냈습니다.-

    기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 가족의 성공 신화야 이미 드라마를 통해서도 자세히 알려져 있었다. 강우 가족의 성공 신화는 말 그대로 드라마가 따로 없었다.

    -그다음 제 목표는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문화 강국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이제 날개를 달고 높이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강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대진 엔터와 JG 소프트를 통해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한국 문화였다. 그것은 강우가 가진 미래 기억보다 훨씬 빠르게 그리고 훨씬 폭발적이었다. 전 세계가 한국 문화에 열광하고 있었다.

    -또한, 저는 민족의 역사를 올바로 세우고 싶었습니다. 힘들고 외로운 길이었지만,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힘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강우가 해낸 일들을 떠올렸다. 사단법인 광복을 통해 많은 독립유공자의 신원을 회복시켰다. 또한, 유공자들과 후손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 이후로는 독립유공자만 돕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 전쟁은 물론이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많은 유공자와 후손들을 도왔다.

    -그렇게 목표를 이루고 나니 저는 정말 많은 사랑과 관심을 통해 성장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받은 많은 관심과 사랑을 다시 사회에 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참 오랜 기간 고민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고민의 답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기자들의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지금부터 이어질 강우의 말이 이번 기자회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부족한 저는 제가 받은 국민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을 정치를 통해 돌려 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정치 외에도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운명이 저를 여기에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강우의 발언에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운명이라는 말을 정치인 그 누가 함부로 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강우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중국 주석인 위진오와의 관계. 동북공정을 막고 이제는 FTA 협상까지 끌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아…….”

    기자들 몇 명이 탄성을 뱉어냈다. 이미 강우는 자신도 모르게 정치에 깊게 연관되어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제 본인 스스로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정치부 기자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잠룡이 깨어났다.’

    정치 선언을 한 강우야말로 앞으로 정계를 뒤흔들 엄청난 존재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강우의 행보 하나에 정치계에 지각변동이 생길 것이었다. 아직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한 명의 존재가 뿜어내는 영향력에 기자들의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세상 그리고 일과 삶의 균형이 있는 세상. 땀을 흘린 대가가 정당한 세상. 내가 몸담은 곳에서 부당하지 않은 대우를 받을 세상. 그리고 역사를 잊지 않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강우가 마지막 발언을 끝냈다. 기자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기자회견장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자들의 질문 시간이 찾아왔다. 기자들도 오늘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다. 강우에게 던져지는 첫 질문부터 날카로웠다.

    -얼마 전 가칭 ‘광복당’ 창단발기인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그날 발기인으로 참석한 분들의 면모가 색달랐는데요.-

    기자의 말대로 신당 창당을 위한 발기인 명단은 의외인 점이 많았다. 전직 대통령들과도 인연이 깊은 강우였다. 당연히 현역 의원 몇 명쯤은 포섭할 법도 했다. 하지만 발기인 명단은 전원 대학교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창단발기인 명단이 신당의 구성원을 미리 엿볼 수 있다는 점을 보았을 때, 신당은 현역 의원이 없이 창당을 하게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창당 이후에 합류를 준비하고 있는 의원들이 있을까요?-

    기자가 질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인 만큼 기자들의 시선이 뜨거워졌다. 강우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만들 신당에는 현역 의원들이나 기존 정치인을 포섭할 생각이 없습니다.-

    강우의 폭탄 발언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정치란 인맥 싸움이었고, 인지도 싸움이었다. 국민에게 표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특히 인지도가 필수였다. 누군지도 모르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한국 정치계였다.

    -새로운 정치를 위해서는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당에 영입될 인재들은 국민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삶을 살아오고 같이 공감한 그런 분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언뜻 듣기에는 정치에 대해 모르는 초보의 이상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강우의 이 발언이 있는 순간. 텔레비전 앞에서 잔뜩 긴장하던 여러 정치인이 코웃음을 치며 전원 버튼을 눌렀을 정도였다.

    -물론, 많은 분이 이상적인 생각이라고, 정치 초짜의 허황한 꿈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태껏 다른 사람들이 안 될 거로 생각한 것들을 이루어냈습니다. 제 신념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내겠습니다.-

    강우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렇게 기자회견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기자들은 창당 시기와 목표 그리고 규모 등을 물어보았다. 강우는 하나하나 자세히 답을 해주었다.

    * * *

    기자회견이 끝나고 여론은 더욱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강우가 밝힌 신당의 모습이 기존의 다른 정당과는 매우 달랐기 때문이었다. 여러 정치평론가는 신당의 성공과 실패를 점치며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여당과 야당도 강우의 기자회견을 두고 논평을 내놓았다.

    -저희 당은 새로운 정치를 위해 나선 박강우 전 동양 그룹 사장의….-

    일단 여당은 강우의 신당에 호의적이었다. 아무래도 전직 대통령 때부터 이어져 온 호감이 작용한 듯했다. 야당은 지극히 평범한 논평을 내놓았다.

    -신당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강우가 만들 신당은 시작부터 엄청난 화제를 끌었다. 그렇게 세상이 시끄러운 가운데 강우와 강정후는 신당을 위해 얻은 당사에 모여있었다. 당사의 위치는 역시나 국회와 가까운 여의도로 구했다. 강우는 신당을 위해 자금을 아끼지 않았다. 여의도의 크고 깨끗한 건물을 통째로 사들이는 재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강우가 사용하는 자금의 출처는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정당한 방법을 통해 제대로 된 세금까지 전부 내는 순수한 내 자금이니까.’

    생각에 빠진 강우의 앞쪽으로는 강정후와 창당 작업을 위해 영입된 여러 인재도 함께였다. 강정후와 창당 준비위원회 임원들은 창단 준비를 위해 열띤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창당이라는 절차는 쉽지 않았다. 먼저 20인 이상의 발기인이 창당발기인대회를 개최하여 발기 취지와 규약 그리고 당 명칭을 정하고 대표자와 회계책임자 등을 선임하여 중앙당 창당 준비위원회를 결성해야 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였다.

    ‘이왕 창당하기로 했으니 서두르는 게 좋지.’

    다음으로는 창당을 위해 특정 숫자 이상의 시, 도당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각 시, 도당마다 1천 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 했다.

    “일단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 도당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당원 모집도 순조롭습니다. 준비하신 당 홈페이지와 핸드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당원을 모집한다는 생각은 정말 혁신적이었습니다.”

    강정후가 강우를 보며 감탄의 빛을 내비쳤다.

    “그런가요.”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아직은 보편화되지 않은 방법이었지만, 국민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홈페이지와 모바일을 통해 당원 신청이 폭주하고 있었다. 강우가 만들 신당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네, 역시 젊은 분이시라 시대에 앞서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업에 성공하실 때처럼 신당도 잘 이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강정후의 말에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그…. 당 대표님은 제가 아닙니다.”

    “아…. 제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정후도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했어도, 마냥 강우에게 의지할 생각은 없었다. 이왕 강우를 돕기로 했으니 자신도 적극적으로 당을 위해 나설 생각이었다.

    “일단 화제를 모으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내실을 다지고 다음 총선을 위해 공격적인 홍보에 들어갈 차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당명을 확정 지을 필요가 있습니다. 당 명칭은 어떻게 정하실 생각이십니까?”

    강정후가 강우를 향해 물었다. 광복당이라는 정당명은 말 그대로 가칭이었다.

    “음…. 일단 제가 생각하고 있는 당명은 있습니다. 바로 함께시민당입니다.”

    “함께시민당….”

    강정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시가의 정당명과는 사뭇 색다른 이름이었다. 하지만 강우가 추구하는 정당의 모습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강우는 다음 총선을 위해 구성할 출마 후보들을 국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찾겠다 했다. 강정후는 그 주인공이 바로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아닐까 예측했었다.

    “조금 어색한가요?”

    “아닙니다. 정말 마음에 듭니다.”

    강우와 강정후가 좋다고 하자 당명은 함께시민당으로 굳어졌다.

    “다음은 총선을 위한 후보자 선별 작업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계신지….”

    강정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음 총선을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후보자가 아니던가. 그런 강정후를 향해 강우가 씩 웃었다.

    “그 부분은 제가 전적으로 책임지겠습니다.”

    강우의 말에 강정후와 임원들이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강우 혼자 감당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강정후도 임원들도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내가 가진 인물을 파악하는데 가장 확실하고 사기적인 능력을 말이지….’

    강우가 씩 웃음을 지었다. 강우는 생각하고 있는 후보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모든 것을 파악한 후 결정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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